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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들여다보기

이슬람혁명 40주년을 맞는 이란

경제 파탄, 지도층 ‘내로남불’로 민심 이반

글 :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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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간 집권해 온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승계 놓고 권력 암투
⊙ 미국의 경제제재로 경제 어려운 가운데 권력층 2세 ‘아가자데’들의 사치와 오만 드러나면서 민심 이반
⊙ 테헤란 미국대사관 점거 당시 美帝 규탄했던 부통령 아들은 미국 유학 중… 대통령 조카는 미국 회사 근무
⊙ 볼턴 美 안보보좌관은 ‘2019년은 이란 전복의 해’ 외치지만, 오히려 역효과 날 수도
이란 이스파한 이맘광장의 어린이들. 혁명 40주년을 맞는 이란은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박현도
  1979년 1월 16일 시위대에 밀려 샤 파흘라비가 이란을 떠남으로써 왕정(王政)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2주일 후인 2월 1일 프랑스에 머물던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오랜 해외 망명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 이날부터 호메이니가 임명한 바자르간 정부가 이란을 완전히 장악하여 샤 파흘라비가 국정을 맡긴 바흐티아르 정부를 무너뜨려 혁명에 성공한 2월 11일까지 10일간을 ‘10일간의 새벽(다헤예 파즈르)’이라고 부른다. 이란력(曆)으로는 11번째 달인 바흐만월 22일, 양력으로는 2월 11일에 무려 2500년이라는 긴 역사를 지닌 이란의 왕정이 쓰러지고 이란 역사상 최초의 공화정(共和政)이 들어섰다. 이란 국기에는 혁명기념일 22일을 기리기 위해 ‘알라는 가장 위대하시다(알라후 아크바르)’는 아랍어 문구가 위아래에 각각 11번씩 모두 22번이 쓰여 있다.
 
  이란에 들어선 새로운 공화정은 이슬람 역사상 최초로 이슬람법학자들이 다스리는 이슬람민주정이다. 이슬람이라는 종교와 민주주의가 혼합된 정체(政體)로 우리에게 익숙한 세속(世俗)민주정과는 다르다. 이슬람 역사에서 이슬람법학자들이 정권에 봉사한 적은 있지만, 직접 정권을 잡은 것은 이란이 처음이다. 샤 파흘라비가 서구적 세속주의를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전통 이슬람문화를 중시하던 민심을 세심하게 보살피지 못한 잘못을 지적이라도 하듯, 3월 30~31일 이틀간 열린 국민투표에서 유권자의 89%가 참가하여 98%가 이슬람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정체에 찬성하면서 이슬람민주정을 채택했다. 찬반을 묻는 투표용지는 ‘구(舊)정권을 이슬람공화정으로 바꾸는 헌법 승인’이라는 문구와 함께 찬성이 녹색, 반대는 적색으로 나뉘어 있었다.
 
 
  대통령 위에 이슬람법학자
 
  이란의 개혁파 성직자이면서 대통령을 8년간 지낸 하타미는 “민주주의는 여러 형태를 취할 수 있으며, 이란의 이슬람 민주주의는 다른 나라에 없는 영성(靈性)이 있다”고 말한다. 이슬람과 민주주의가 만난 이란의 정체는 혁명의 지도자 호메이니가 오랫동안 구상한 ‘법학자 통치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호메이니는 시아파에서 불의한 세상 종말에 재림(再臨)하여 정의를 세울 것이라고 믿는 12번째 이맘 마흐디가 올 때까지 무슬림들을 이슬람법에 정통한 법학자들이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맘을 대신하여 이슬람법학자가 다스리는 것이 호메이니의 이슬람법학자 통치론의 핵심이다.
 
  그 결과 이란의 국가원수(元首)는 이슬람법학자인 최고지도자다. 대통령은 국민 직선(直選)으로 선출하지만, 말 그대로 행정부의 수반일 뿐이다. 대통령에게는 국군 통수권이 없다. 핵심적인 외교사안 결정권 역시 최고지도자에게 있다. 정보수장도 최고지도자의 동의 없이 대통령이 임명할 수 없다. 그래서 미국이 이란과 핵(核)협상을 할 때 미국 측에서 “루하니 대통령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러 차례 말을 흘렸고, 이에 루하니 대통령은 이란의 대미(對美)협상이 최고지도자의 승인을 받았음을 강조한 것이다.
 
  종교와 정치가 동행하는 이란의 정치체제에 대해 비판론자들은 “종교인들이 정치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종교적인 나라도 있다”고 지적하면서 세속적 민주주의를 애써 외면하는 이란을 비판한다. 그러나 지난 40년간 이란인들은 현 이슬람공화정을 수호하면서 4년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직접 선출하고, 최고지도자를 뽑고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전문가의회 의원을 8년마다 직접 선택했다.
 
 
  하메네이 이후를 둘러싼 암투
 
지난 2013년 6월 총선 당시 투표하는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뒤에 호메이니의 초상이 보인다. 사진=뉴시스/로이터
  최초의 최고지도자직에는 혁명을 이끈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당연하게 올랐다. 1989년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현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가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노령에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하메네이의 후계자를 두고 이란 정계에 정치적 긴장감이 흐른다.
 
  지난 1월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 사망 2주년을 애도하면서 루하니 대통령은 “부자(父子) 세습을 막기 위해 혁명을 했고, 라프산자니가 아니었다면 전문가의회가 호메이니 사후(死後) 최고지도자를 결정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은 최고지도자 측근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후문이 돌았다. 부자 세습은 왕정을 무너뜨린 이란혁명을 말하는 것이지만, 하메네이가 자신의 아들 모즈타바를 최고지도자로 만들려고 한다는 소문이 수년 동안 유포된 것을 고려하면 단순히 파흘라비 왕정을 타파한 혁명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는 해석이 나온다.
 
  더욱이 호메이니 사후 최고지도자직에 공백이 생겼을 때 주저하는 하메네이에게 임시 최고지도자직을 맡으라고 강권하여 수습한 사람이 당시 전문가의회 의장인 라프산자니였다는 점을 상기시킨 것 또한 예사롭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를 두고 루하니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루하니가 차기 최고지도자를 노리고 있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다. 사실 진위와 무관하게 이러한 추측과 해석을 보면 향후 최고지도자 자리를 둘러싸고 이란 정치체제에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란 화폐 가치 3분의 1로 떨어져
 
  혁명 40주년의 풍경은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다. 이슬람 전통에서 40은 ‘완성’을 상징한다. 이는 이슬람 이전 중근동(中近東) 문화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모세가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헤맨 기간이 40년, 예수가 사탄의 유혹을 뿌리치며 광야에서 기도한 날이 40일인 것도 그러한 이유다.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가 40세에 예언자가 된 것, 무함마드와 부부의 연을 맺은 첫 번째 아내 카디쟈의 나이가 40세인 것도 완성의 상징을 반영한다. 중세 무슬림들이 “내 나이 40세 때”라는 말을 한 것도 생물학적 나이가 40이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만큼 인간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무슬림의 전통문화에서 탈상(脫喪)은 40일, 아이를 낳은 산모가 정상생활을 하는 것도 40일이다. 이처럼 40이라는 숫자가 지닌 뜻을 새겨보면 이슬람혁명 40주년은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롭고 즐거워야 하지만 이란을 둘러싼 안팎의 우울한 기운이 축제 분위기를 끌어내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경제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줄기차게 취해온 이란 적대정책 때문에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과 맺은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경제부흥 분위기에 한껏 고무되었던 이란 경제가 급전직하로 추락하면서 민심이 싸늘하다. 이란의 화폐 가치가 3분의 1로 하락하고 인플레이션이 급등하면서 민생경제가 처참하게 망가지고 있다.
 
  지난해 말 국내에서 열리는 행사에 초청받아 온 이란의 지인(知人)은 “1만원짜리 물건을 사려다가도 이란 돈으로 환산하면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고 필자에게 토로한 적이 있다. 이란 화폐 가치가 하락하면서 1만원짜리가 3만원이 되었으니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이란으로 여행 가는 사람에게는 쓸 돈이 넘치지만, 이란인이 이란 밖에서 돈을 쓰기에는 어려운 현실이다.
 
 
  이란의 철부지 금수저 ‘아가자데’
 
‘테헤란의 부잣집 아이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들. 경제난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민심에 불을 질렀다.
  그런데 이러한 우울한 상황에도 유력인사들의 자녀들이 인터넷에 흥청망청 돈을 쓰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올려 자랑질을 하면서 이란인들의 분노를 자아내는 일이 발생했다. 인스타그램에는 아예 ‘테헤란의 부잣집 아이들(Rich Kids of Tehran)’이라는 항목까지 등장하여 소위 잘나가는 아이들의 적나라한 ‘돈 자랑’을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경제제재로 나라가 어렵든 말든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금수저를 문 젊은이들의 모습은, 정부의 단속을 피해 프락시 서버를 이용하여 인터넷에 접속하여 세상사를 접하는 이란 젊은이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박탈감을 선사했다.
 
  이들 철부지 금수저를 이란어로는 ‘아가자데(Aghazadeh)’라고 한다. ‘아가’는 남자를 높여 부르는 칭호로 경(卿), 선생과 같은 뜻이다. ‘자데’는 아들이다. 이 말은 원래 1990년대부터 이란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유력한 인사의 자녀를 비꼬는 말로 통용되었다. 그런데 최근 이란 경제가 극도로 어려워지면서 ‘아가자데’의 도를 넘은 언행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심한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다 주고 있는 것이다.
 
  외교관의 아들 사샤 소브하니는 그리스의 섬이나 샴페인이 가득한 요트 배경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50만명에 달하는 팔로워들에게 얼마나 오랫동안 자신을 질투할 것이냐는 글을 써서 논란을 초래했다가 글을 지워야만 했다. 또 퇴역한 혁명수비대 사령관 아들 라술 톨루이는 2세 된 딸아이를 위하여 애완 호랑이를 동원한 호화파티를 연 사실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를 두고 보수적인 성직자 마흐디 사드로사다티는 “일반인들은 아이 기저귀를 사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당신은 어느 나라에서 살고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사실 아가자데의 돈 자랑이나 호화로운 생활만이 문제는 아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싼 차(車), 옷, 가방, 음주 호화파티보다 평범한 이란 젊은이들의 마음을 후벼 파는 것은 유력인사들의 언행불일치의 이중적인 삶이다.
 
  작년 12월 루하니 대통령의 33세 된 사위 캄비즈 메흐디자데는 지질연구소장에 임명되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이틀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석유부 자문위원을 지냈기에 지질연구소장직을 맡을 능력이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이란인들은 이른바 대통령 장인이 뒤를 봐줬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판단하고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평소 젊은이들을 보듬는 말을 하던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될 인사를 했으니 곱게 보일 리 만무하겠는가.
 
  유명한 개혁파 정치인 모함마드 레자 아레프는 “좋은 유전자(Good Genes)를 물려받아서 성공했다”는 말을 한 아들 때문에 이란인들의 냉소(冷笑)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지난 11월 아레프가 트위터에 “미국의 경제제재에 맞서 이란인들이 열심히 일하며 합심단결해야 한다”고 하자 한 변호사가 이란인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좋은 유전자를 없애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이란을 좀 더 개혁적인 국가로 만들겠다는 정치인으로 젊은 층으로부터 굳건한 지지를 받았고, 루하니가 대통령이 되는 데 크게 공헌했던 아레프 역시 자식 교육 잘못한 원죄(原罪)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아레프 아들의 발언 이후 ‘좋은 유전자’는 인터넷상에서 해시태그로 폭발적으로 사용되면서 이란 상류사회를 비판하는 용어가 되었다. 사위 때문에 곤욕을 치른 루하니도 ‘좋은 유전자’ 조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 트위터 사용자는 루하니가 산적한 경제문제를 풀 수 있는 전문가들은 활용하지 않고 ‘좋은 유전자’를 써서 자신 주변 사람들만 만족시키려고 한다고 비꼬았다.
 
 
  이란 지도층의 ‘내로남불’
 
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소녀. 혁명기득권층의 자녀들은 이 소녀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사진=박현도
  1979년 1월 이란을 떠난 마지막 왕 샤 파흘라비는 여러 나라를 떠돌다 암 치료를 위해 그해 10월 미국으로 갔다. 이란인들은 이에 크게 분노했다. 과격한 학생들은 11월 4일 담장을 넘어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을 점거하고 52명의 미국인을 인질로 잡았다. 무려 444일 동안 지속된 대사관 점거 때문에 당시 미국 대통령 카터는 재선(再選)에 실패했다.
 
  대사관 점거 당시 영어를 아주 잘하는 여학생이 서구 방송과 인터뷰에서 미국의 제국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당시 ‘최고지도자를 따르는 무슬림 학생들’ 조직 소속으로 스스로를 메리(Mary)라고만 밝혔던 그녀는 바로 현재 루하니 행정부에서 여성・가족문제 담당 부통령으로 있는 마수메 에브테카르다. 40년 전 거침없이 미국의 죄악을 영어로 세계에 알렸던 그녀의 아들 이사 하셰미는 2015년 현재 ‘사탄의 나라’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해변에서 찍은 사진, 미국 전몰용사들이 묻힌 샌프란시스코 국립묘지 동영상 등을 올렸다.
 
  반미(反美)를 외치던 과거 운동권 인사가 자신의 자녀들은 미국으로 유학 보내는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적지 않아 빈축을 산 바 있는데, 이란 역시 예외는 아니다. “미국에 죽음을(마르그 바르 아므리카)!”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미국을 ‘거대한 사탄’이라고 비난하던 유력 인사들이 자식들 앞에서는 한없이 초라해지는 꼴이다.
 
  지난해 10월 15일 미국의 《워싱턴타임스》는 국회의장 알리 라리자니의 딸이 오하이오에서 대학신입생이 되었고, 부통령 모함마드 바게르 노바흐트의 조카이자 국회의원 알리 노바흐트의 자녀인 에흐산과 닐루파르가 각각 조지워싱턴대학과 UCLA에서 가르치고 있으며, 루하니 대통령의 동생 호세인의 아들 알리 페레이둔은 맥그로-힐 교육회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좋은 유전자’를 보살피고, 반미를 외치면서도 2세들의 미국행을 막지 않은 유력인사들의 이중적 언행이 날이 갈수록 외부의 압박으로 삶이 팍팍해지는 이란인들의 마음을 흔들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아가자데’의 풍요로운 삶이 인터넷으로 알려지면서 정의를 세우고자 40년 전 거리를 가득 메웠던 순수한 시민들의 혁명 열기가 한없이 초라해지는 형색이다. 어쩌면 미국의 경제제재가 없었다면 현실과 이상의 간극이 이처럼 크게 느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 행정부의 이란 제재가 미국이 원하는 이란 체제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을까?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 볼턴은 “현 이란 체제가 40년이 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고 하면서 2019년을 ‘이란 전복(顚覆)의 해’로 지목한 바 있다. 물론 최근 볼턴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이란 정책의 목표가 정권교체는 아니라고 한발 물러서긴 했다.
 
 
  미국의 압박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 2012년 오랫동안 테러조직으로 불법시했던 이란의 반정부단체 모자헤디네 할크(MEK)를 테러조직 명단에서 제외했다. 트럼프 행정부 내 인사들은 모자헤디네 할크의 부속 조직인 이란저항협의회(NCRI)와 활발하게 접촉하면서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볼턴은 2017년 NCRI 총회에서 2019년 총회는 테헤란에서 하자고 말할 정도였다.
 
  혁명 직후 초대 대통령을 지내다 탄핵된 후 서구로 망명을 떠난 바니사드르는 “트럼프의 압력이 이란인을 현 체제로부터 결코 해방시키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현 이란 정권에 도움이 될 뿐”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이란은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세 번의 혁명, 즉 1905년 입법혁명, 1951년 석유국유화(國有化), 1979년 혁명을 이룬 나라다.
 
  바니사드르는 “역사적으로 이란에서 폭정(暴政)은 정치적으로는 왕정과 군대, 경제적으로는 대지주와 바자르 상인, 문화적으로는 성직자, 외부적으로는 서구 열강과 관계라는 4가지 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세 번의 혁명으로 이제 남은 것은 성직자뿐”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외부 요인인 트럼프가 압력을 가하면서 오히려 자생적인 시민들의 민주화 움직임에 해를 끼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러한 입장은 트럼프의 JCPOA 탈퇴, 이란 제재 재개 때 서구의 이란 전문가들이 지적한 바 있다. 지난 40년간 투표를 통해 정부를 구성한 유일한 중동 국가로 민주주의 근육이 가장 잘 발달한 이란에 외부에서 불필요한 압력을 가하면 서구가 그토록 외치는 민주주의는 설 길이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다. 이러한 걱정은 테헤란 에빈교도소에 투옥된 여성 인권운동가 파르하드 메이사미가 보낸 편지에도 잘 드러난다.
 
  “나는 차라리 잘못된 일을 저지르는 우리나라의 억압자들에게 갇힌 채 감옥에서 평생을 보내면서 그들의 잘못을 고치는 데 전념하겠다. 약속을 깨고 도덕적 원칙을 무시한 채 합리적이고 평화적인 JCPOA를 탈퇴한 자들의 수치스러운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단 1초도 허비하지 않을 것이다.”
 
  완성의 숫자 40을 즐기기에는 이란인의 삶에 아직 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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