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의 워싱턴 벚꽃축제는 美日 우호의 상징, 마이클 그린 등 親日인맥 막강
⊙ 미국 내 중국·한국 연구자 중에는 일본연구자 출신 많아
⊙ 美, 센카쿠 문제, 동남아 군사원조 등에서 일본과 긴밀하게 협력
劉敏鎬
⊙ 52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 15기.
⊙ SBS 보도국 기자, 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
⊙ 現 워싱턴 〈Pacific,Inc〉 프로그램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소장.
⊙ 미국 내 중국·한국 연구자 중에는 일본연구자 출신 많아
⊙ 美, 센카쿠 문제, 동남아 군사원조 등에서 일본과 긴밀하게 협력
劉敏鎬
⊙ 52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 15기.
⊙ SBS 보도국 기자, 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
⊙ 現 워싱턴 〈Pacific,Inc〉 프로그램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소장.
-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워싱턴의 벚꽃축제는 미국에서 일본의 소프트 파워를 상징한다.
박근혜 당선자는 역대 그 어떤 대통령보다도 가시밭길에 들어설 듯하다. 산적한 국내 문제, 나아가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업그레이드한 북한 문제 때문만이 아니다.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도 난제(難題) 중 하나다.
12·16총선을 통해 전열(戰列)을 다듬은 일본은 한국에 버거운 상대가 될 것이다. 자민당과 일본유신회를 중심으로 한 ‘우향우(右向右)’ 정당은 가장 먼저 한국을 시험할 것이다.
한국에서 통용되는 대일관(對日觀)의 대부분은 일본 안에서 얻어낸 정보나 상황을 분석해서 나온 것이다. 한국에 실리는 ‘우향우 일본’에 관한 기사의 대부분은, ‘망언(妄言)’ ‘시대착오적’ ‘제국주의적’이라는 수식어(修飾語)와 함께 시작한다. 81세의 도쿄도(東京都) 지사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가 내뱉는 발언은 한국에서는 ‘막장 일본’을 상징하는 핫뉴스다. ‘우향우’의 맏형으로 자리 잡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 일본유신회를 이끄는 하시모토 도루(橋下徹)도 한국인에게 친숙한 막장 주인공들이다. 이들 ‘막장 삼형제’는 마치 일본의 내일을 가늠하는 잣대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것이 일본의 전부가 아니다.
한국인이 간과하고 있는 일본관(觀) 중 하나가 워싱턴에서 통용되는 미·일(美日)관계에 관한 것이다. 이는 일본이나 한국·중국에서 바라본 일본이 아니라 일본 밖에서 관찰되는 세계적인 대일관이다. 언제부턴가 한국에서는 일본과 관련해 3류 연예인까지 추적해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워싱턴에서 보는 미·일관계에 관한 뉴스는 해외토픽처럼 전해질 뿐이다.
2012년 4월 이시하라 신타로가 워싱턴에 들렀을 때 미국 보수주의 인사들과 ‘막장 노인’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고 있는 한국인은 드물다. 그때 이시하라는 미국 보수주의 핵심을 향해 헌법개정이 아니라 아예 헌법포기를 공언했다. 그 이시하라 발언의 배경과 의미에 주목하는 한국 언론은 드물다.
노(No) 라고 말할 수 없는 일본
‘수퍼 파워 미국의 붕괴’라는 말이 유행한 지 오래지만, 중동(中東) 문제, 심지어 북한 미사일 문제만 봐도 워싱턴의 파워는 아직 건재(健在)하다. 우리가 미·일관계, 나아가 일본을 대하는 미국의 자세를 봐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미·일관계에서 핵심은 일본을 대하는 미국의 자세이다. ‘일본이 미국을 어떻게 보는냐’는 문제는 ‘당분간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한때 ‘일본이 미국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던 시기도 있었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기 직전과, 일본의 경제력이 하늘을 찌르던 1980년대가 바로 그때다. 그때 일본은 미국에 대해 ‘노(No)’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태평양전쟁에서 지고, 1990년대 들어 일본의 버블 경제가 붕괴하면서 일본은 ‘노’라는 말을 입 밖에 낼 수 없게 된다. 미국의 의향에 맞추고, 미국과 함께 발을 맞추고, 미국의 논리에 박수를 보내면서 미·일관계를 유지해 왔다.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일본이 미국에 대해 ‘노’라고 말한 적은 없다. 단카이(團塊)세대의 아이콘인 간 나오토(菅直人) 전 총리는 후텐마(普天間)기지 이전 문제로 미국에 대들었다가 지금까지 후유증을 겪고 있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총리 시절 민주당 정권이 군말 없이 미군의 수직이착륙수송기 MV22 오스프레이(Ospley)의 오키나와 배치를 수용한 것이 그 증거이다. 오키나와 주민을 비롯한 많은 일본 국민들은 사고가 잦다는 이유로 오스프레이의 배치에 반대했다.
그러나 자국민이 아니라 미국의 의사를 더 존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일본이다. 간 나오토 총리가 미국과의 약속을 어기고 후텐마기지 이전 문제에 대해 딴소리를 냈다가 미국에 호되게 혼났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미·일관계에서는 미국이 주체(主體), 일본이 객체(客體)다.
美상원, 센카쿠 수호의지 明文化
따라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일본의 급속한 우향우 정책은 미국의 동의(同意) 없이는 불가능하다. 아니,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군사·외교 문제에 대한 일본의 변화는 동의 수준을 넘어 미국의 적극적인 지지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이 일본의 우향우를 지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중국 때문이다. 중국이 경제에 이어 군사대국으로 떠오르면서 미국은 일본에 태평양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지만 2012년 12월 2일 중국 외교부가 미국을 비난한 내용을 보면, 현재의 미·일관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미국은 센카쿠(尖閣·중국명 釣魚島)열도 문제와 관련해 특정국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피력해 왔다. 미국의 언행일치(言行一致)를 기대한다.”
중국 외교부가 이처럼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그보다 하루 전날 미국 상원(上院)을 통과한 ‘국방권한법 수정안(修正案)’ 때문이다.
이 수정안의 주요 내용 중 하나가 센카쿠열도가 미·일안전보장조약의 적용 대상임을 재확인한다는 것이었다. 센카쿠열도가 중국의 무력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이 자동 개입한다는 것이 수정안의 핵심인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새해 접어든 직후인 지난 1월 2일 이 법에 서명했다.
센카쿠분쟁에서 미국을 제3자로 만들려던 중국의 의도는 이로써 무위(無爲)가 됐다. 2013년부터 센카쿠 문제는 종래 중국과 일본 간 문제에서 중국과 미·일동맹의 문제로 변한 것이다.
법안이 통과되는 순간, 미·일 양국이 가까운 시일 내에 센카쿠열도 주변 합동군사훈련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흘러나왔다. 미국은 중국이 노리는 남중국해에 대한 수호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미 상원의 국방권한법안 통과는 일본을 미국의 파트너로 삼겠다는 의지를 법으로 명문화한 것으로 보면 된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이후, 중국은 ‘언제나처럼’ 김정은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북한의 로켓 발사 직후인 지난해 12월 12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벌어진 수전 라이스 미국대사와 리바오둥(李保東) 중국대사와의 설전(舌戰)을 통해서도 중국의 태도를 잘 알 수 있다. 당시 미국은 규탄성명서 채택과 관련해, 북한의 행위가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이자 도발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그것이 도발이 아니며 규탄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이처럼 북한을 대변하는 것은 미·일동맹을 통한 대중(對中) 견제를 북한카드로 무마해 보겠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일동맹이 심화할수록, 나아가 미얀마·베트남·필리핀의 친미(親美)정책이 강해질수록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한 중국의 편들기는 노골적이 될 것이다.
21세기 들어 워싱턴에서는 태평양안보 구상 중 하나로 한·미·일 삼각안보체제(The United States-Korea-Japan Security Triangle)가 논의되어 왔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국·일본이 공동전선을 구축한다는 의미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아시아판에 해당한다. 워싱턴의 안보관계자라면 예외 없이 찬성하는 구상이다. 이 구상이 중국과 러시아를 가상적(假想敵)으로 삼고 있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한·미·일 삼각안보체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이미 부분적으로 구축되어 있는 상태다.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공식화하자는 것이 워싱턴의 생각이다.
2012년 6월 한국 국무회의를 통과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은 미국이 오랫동안 추구해 온 삼각안보체제의 서막에 해당한다. 삼각안보체제는 한일 양국이 군사분야에서 인적(人的) 교류는 물론, 일본 전투기와 잠수함이 한국에 들어가고, 한국도 일본의 오키나와 등 일본 내 기지를 자유롭게 사용하자는 것이다. 더 나아가 군사작전이나 방어체제도 공동으로 구상하자는 것이다.
한국의 고민
한국은 외형적으로는 그 같은 생각에 반대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삼각안보체제에 적극 참여할 경우, 중국이 가상적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은 한반도 통일을 생각할 때 중국을 적으로 돌리기 어렵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삼각안보체제 속에서 일본의 역할이 강화될 수 있다는 것도 불편한 일이다. 지리적·기술적·군사적으로 일본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나 독도 문제도 한국이 주저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문제는 독도사태 이후 실종되어 버리고 말았다. 지난 1월 8일, 월터 샤프 전 한미연합사 사령관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무산되면서 한국측 손실이 더 크다”면서 “북한의 도발상태를 입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은 앞으로도 끈질기게 3국 군사동맹체제를 추진할 것이다. 중국이 팽창할수록 3국 군사동맹체제의 필요성은 높아질 것이다.
워싱턴은 중국이 항공모함을 취역시키고 스텔스전투기를 띄우는 상황에서 한국의 동의를 기다릴 수는 없다. 결국 워싱턴은 일본의 독자적인 군사력 강화를 지지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통제권 아래서 아시아에서 일본의 군사적 역할과 기능을 부분적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아베 일본 총리가 자위대의 해외파견을 보다 활발히 추진하려는 것도 미국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美국무부·국방부 모두 일본 右傾化 지지
워싱턴의 힘은 크게 두 개의 손을 통해 구체화된다. 주먹을 쥔 왼손과 악수를 하려는 오른손이다. 왼손은 국방부, 오른손은 국무부다.
두 부처는 대외정책 면에서 상극(相剋)관계라 보면 된다. 국무부는 대화를 통한 해결에 주력한다. 국방부는 일방적 원칙과 주장 선언을 통해 문제를 풀어 나간다. 국무부는 볼펜을 쥐고 있고, 국방부는 총칼을 잡은 상태이다. 냉전(冷戰)이 끝나면서 두 조직의 이견(異見)은 한층 심해졌다. 아프가니스탄전쟁·이라크전쟁은 국방부의 전면적인 승리이다. 북한과 이란에 관한 문제는 국무부가 아직까지 주도권을 쥐고 있다.
이렇게 사사건건 부딪치는 두 부서가 일본의 우향우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이견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두 부서가 경쟁적으로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지지하고 있다. 양손이 박수를 치면서 일본의 우향우를 응원하는 격이다.
워싱턴에서 부분적으로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에 대한 고려와 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세는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무부와 국방부 모두 일본의 우향우에 동의하고, 이를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을 믿을 만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일본의 군사적 능력에 대한 신뢰가 아니다. 일본인 자체에 대한 신뢰감이 워싱턴에 만연해 있다. 친일(親日)감정이 워싱턴 주류(主流)인사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그 이유는 어디 있을까? 친절하고 예의바른 일본인 특유의 국민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일본이 그동안 워싱턴 내에 친일환경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해 온 것도 중요한 이유다.
한국과 중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워싱턴을 외교의 중심으로 여기고 총력(總力)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이 한국, 중국과 다른 점은 ‘총력’의 내용이 외교·정치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親日의 아이콘 벚꽃축제
대표적인 것으로 매년 4월 초 워싱턴 포토맥 강변에서 열리는 벚꽃축제를 들 수 있다. 2012년은 도쿄에서 갖고 온 벚꽃이 워싱턴에 입식(入植)된 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오바마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 워싱턴의 모든 실력자들이 벚꽃축제에 얼굴을 내밀거나 축하 메시지를 보내 왔다. 매년 봄 워싱턴은 일본 대사관과 문화원, 일본관련 단체가 사람들로 들썩인다. 좀 과장하자면, 좁은 워싱턴 전체가 일본판이 된다.
포토맥 강변 주변만이 아니라, 스미스소니언 박물관과 미국 의회, K스트리트 주변의 싱크탱크와 국제기구가 일본 기념관으로 변한다. 일본에서 1급 스시(すし) 요리사가 몰려와 일본 대사관이나 야외에서 공짜 음식을 대접한다. 전통예술에 관련된 장인(匠人)들도 몰려와 워싱턴 어딘가에서 일본을 알린다. 스시 리셉션에 초대받았는지, 일본관련 행사에 갔다 왔는지 여부는 워싱턴에서의 역량을 시험하는 척도에 해당된다.
벚꽃축제가 끝날 때쯤인 4월 말이 되면, 1주일 이상 연휴가 이어지는 골든 위크(Golden Week)를 이용해 일본의 정치인과 정부관료들이 워싱턴에 밀려온다. 워싱턴 싱크탱크가 개최하는 미·일관련 정책포럼과, 미국 정부 내 실력자와 정책담당관을 찾아가는 일본인의 행렬이 이어진다.
벚꽃축제에 맞춰, 미술전시회나 음악경연대회, 분재(盆栽), 다도(茶道)를 중심으로 한 미·일 청년들의 교류도 열린다. 벚꽃축제는 워싱턴만이 아니라 뉴욕,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등 미국 내 10여 곳에서 개화기(開花期)에 맞춰 순차적으로 열린다. 벚꽃축제는 친일 분위기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된다.
중국이 가진 소프트 파워 가운데 판다가 최고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지만, 일본의 벚꽃축제에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벚꽃축제는 먹고 마시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즐기는, 오감(五感)을 통한 소프트 파워이다. 사람을 통해 이뤄지는, 피부로 느끼는 소프트 파워이다. 판다는 이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미국은 전 세계 민족과 인종이 모인 곳이다. 벚꽃축제에 대한 미국 지도층의 관심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지 모른다. 부분적으로 옳고 전체적으로 틀렸다. 표에 목숨을 거는 정치인의 경우 마이너리티 축제나 행사에 어김없이 얼굴을 내밀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 가족과 미국 정부 핵심요원들 전부 나서서 마이너리티 축제에 관심을 쏟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영국·이스라엘 정도라고나 할까?
중국 정부는 틈만 나면 벚꽃축제를 일본만이 아닌 아시아 전체의 축제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아시아 공존공영과, 벚꽃축제 기간 중 노점에 나서는 사람과 참석자의 상당수가 중국계(系)라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일본 소프트 파워의 상징인 벚꽃축제를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잘 알 수 있다.
일본어도 미국 내에서 친일환경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80년대에 일본은 돈으로 뉴욕을 사 버리겠다고 공언했을 뿐 아니라, 일본어를 미국인의 제2의 외국어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일본은 엔(円)의 위력을 통해 유능한 미국인들을 도쿄에 불러들였다. 각종 장학금을 주면서, 일본인과 함께 생활하면서 배우는 일본어 교육에 주력했다. 일본어만이 아니라, 일본문화와 일본인의 가치와 의식구조를 미국인에게 가르쳤다. 일본어를 배우는 미국인들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친일인사가 된다.
미국 내 親日인맥
일본 유학파들은 일본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미국에서의 대일(對日)관계를 직접 담당한다. 현재 자타가 공인하는 워싱턴 내 대표적인 친일인사는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이다.
1980년대에 도쿄대학에서 공부한 일본통으로, 2001년 부시 행정부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아시아 총책임자로 일한 인물이다. 한국 신문·방송에도 자주 등장하는 인물로, 공화당이 정권을 잡을 경우 아시아 문제 전체를 총지휘할 브레인이다. 그는 한·미·일 3국 군사동맹체제 강화를 역설하는 안보통이기도 하다.
존스홉킨스 대학의 켄트 칼더(Kent Calder) 교수는 학계를 대표하는 일본통이다. 일본어가 능숙한 그는 한 세대 이상 일본을 연구해 온 일본전문가다. 하버드대학을 나온 그는 프린스턴대학 아시아전공 교수로 근무하기도 했다. 하버드・프린스턴・존스홉킨스대의 일본 관련 학계 인맥의 대부(代父)에 해당된다. 노무현 정권 때부터 한국과도 관계를 맺어 왔다.
<아미티지 리포트>로 유명한 리처드 아미티지(Richard Armitage)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부 부(副)장관을 지낸 외교・국방분야의 일본통이다. 미 국방부와 국무부를 일본과 연결시켜 주는 인물이다. 베트남전쟁 때 헬리콥터 조종사로 복무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개발에 관한 거의 모든 구상이 아미티지에게서 나왔다고 보면 된다. 1980년대 국방부에서 일할 당시, 대(對)공산권 수출관련 협정을 위반한 도시바(東芝)제재 법안에 반대한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이 투자한 제1세대 친일인사는 현재 50대의 연령층이다. 정책결정에 관한 한 최고 선임자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현재 국무부·국방부·싱크탱크·백악관·의회, 심지어 중앙정보국(CIA)이나 비정부단체(NGO)의 아시아 관련 총사령탑으로 일하고 있다.
中, 소프트웨어 측면 부족
중국도 전 세계, 특히 미국을 대상으로 한 중국어 확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 정부가 집중투자하고 있는 것이 공자학원이다. 일본이 한 세대 전에 시행한 일본어 국제화 정책을 그대로 본뜬 것이다.
2년 전이지만, 필자는 워싱턴 근처 버지니아 대학에서 이뤄진 중국어 학습시간에 참가한 적이 있다. 중국어를 배우기보다 중국어를 대하는 미국인들의 자세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열심히 배우고 중국을 알려는 분위기가 넘쳐 났다. 그러나 일본어 교육과 크게 다른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먼저 교사의 질적(質的) 수준이다. 대학과 자매결연 관계를 맺은 중국인이 직접 와서 가르치지만, 미국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냥 중국어를 가르치는 데 열심이다. 교재 속에 중국 문화나 역사에 관한 부분이 나오지만, 중국인 교사 자신이 이에 대해 잘 모르는 듯했다. 그냥 주입식 교육으로 필요한 말을 배울 뿐, 중국 문화라는 차원에서의 교육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본어 교육체제를 흉내 내기는 했지만, 소프트웨어는 없고 하드웨어만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중국어를 배운다고 해서 친중인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오히려 반중파(反中派)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국인으로 중국통이라 불리는 사람은 세대를 기준으로 크게 세 개 부류로 나눠진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친구로 알려진 에드거 스노 같은 사람이 원조(元祖) 중국통이기는 하지만, 그런 사람은 현재 세상에 없다.
지금 원로 중국통으로 대접받는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닉슨 정권 시절 미·중 비밀교섭을 진행했던 핵심인사라는 점 때문에 중국의 라이펑유(老朋友)로 인정받고 있지만, 원래 국제정치통이다.
현재 미국의 중국통 1세대는 모르몬교(敎) 신자들이다.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를 지냈고 대통령 선거 후보로도 나왔던 존 헌츠먼이 대표적이다.
미국 내 中國通의 한계
존 헌츠먼은 주중대사 재직 중 파룬궁(法輪功) 등 인권 문제로 중국 정부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다. 중국계인 게리 로크 현 주중대사를 제외하면, 그는 역대 미국대사 가운데 중국어가 가장 유창한 인물이다. 그는 타이완에서 중국어를 배웠다.
1970년대에 모르몬교는 ‘반공(反共)국가’ 타이완에 모르몬교 선교사를 많이 파견했다. 이들은 당시 타이완을 통해 중국을 관찰했다. 자연히 공산독재 국가인 중국을 곱게 볼 수가 없다. 모르몬교도로 공화당 대통령 후보에 올랐던 미트 롬니처럼 공화당의 전통과 가치를 중시 여기는 반공주의자들이 제1세대 중국통이다.
미국의 중국통 2세대는 일본어를 배우면서 중국을 함께 연구한 사람들이다. CSIS의 마이클 그린 같은 사람이다. 원래 일본에 주력했지만, 중국이 커지면서 중국도 함께 연구하는 식이다.
이들 중에서 중국어가 가능한 사람은 극소수이다. 다만 한자를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아시아 문화 전반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일본이 갖고 있는 엄청난 아시아 관련 정보를 통해 중국을 이해한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일본이라는 스크린을 통해 중국을 들여다본다. 때문에 일본과 사이가 나쁜 중국을 좋게 볼 수 없다. 사실 미국의 한국 연구가의 대부분도 비슷하다. 일본 연구가가 한국과 중국을 함께 연구하는 식이다.
고인(故人)이 된 김근태 전 국회의원이 10여년 전 워싱턴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당시 한 싱크탱크서 열린 한미정책포럼에서 미국인 연구원이 일본을 주체로 하면서 한국과 북한을 변수(變數)처럼 얘기하기 시작했다. 얘기를 듣던 김근태 의원은 대화를 끊으며 “왜 한반도 얘기를 안 하고 일본 얘기만 하느냐?”면서 불만을 터뜨렸다.
당시 미국인 연구원은 일본어가 능통한 일본통이었다. 최근 들어 한국의 국력이 향상되면서 한국을 기반으로 중국과 일본을 보는 사람도 생겨났지만, 아직 대부분의 한국 전문가들은 일본을 기반으로 한 사람이 많다.
3세대는 최근 미국에 정착한 대륙출신 중국계이다. 중국어는 물론 영어에도 능통하다. 친중(親中)의 전위병(前衛兵)인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특별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1세대·2세대가 결정한 대중정책을 다듬는 수준에서 일하고 있을 뿐이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 3세대가 전면에 나서겠지만, 기존 정책결정자들 사이의 반중정서가 일반화한 상태에서 친중적인 중국계 3세대가 중요한 위치에 오를지는 의문이다. 냉전 당시 러시아계가 대소(對蘇)정책의 최고봉에 오른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진주만을 기억하라!
일본의 근대화는 1853년 미국 동인도함대의 흑선(黑船)이 도쿄만에 들어서자 포함으로 위협하면서 시작됐다. 81년 뒤 일본은 미국과 태평양전쟁을 치렀다.
2차대전 후 미국은 일본을 재건하고 일본에 민주주의를 이식했다. 하지만 1980년대에 일본은 경제력을 배경으로 또 한 번 미국을 쳤다. 이번에는 총이 아니라 돈으로 미국을 사려 했다.
‘일본의 반란’은 버블이 터지면서 실패로 끝나지만, 미국은 일본을 마냥 믿을 수만은 없으며, 그렇기에 한층 일본과 가까이해야만 교훈을 얻었다. 이후 미국은 미·일 군사동맹, 미·일 경제교류을 중심으로 한 물적·인적 교류를 강화했다.
그와 함께 미국은 믿을 수 없는 일본에 대한 경계와 경고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매년 12월 7일 되풀이되는 진주만기습 기념행사는 미국인의 저변에 깔린 대일관(對日觀)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예이다.
작년 12월 7일에도 진주만 기습 관련 행사가 미국 곳곳에서 열렸다. 그날 저녁 워싱턴 비정부단체인 ‘미국 혁명의 딸(DAR)’ 안의 콘스티튜션 홀(Constitution Hall)에서는 영화 <영광스러운 비행(Honor Flight)>을 상영했다. 헤리티지재단의 친구로부터 이 영화관람에 대한 얘기를 들은 나는 어렵게 표를 구해 영화를 보러 갔다. 남녀노소 구별 없이 초만원이었다.
영화 마지막 장면은 진주만기습의 생존자인 90대의 퇴역군인이 휠체어를 타고 하와이 해군기지를 방문하는 장면이다. 현역 미군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그를 정중히 맞이하는 장면에서는 관람객 모두가 기립박수를 했다.
진주만 기습공격은 일본인이 가장 피하고 싶어하는 얘기다. 그러나 미국은 매년 되풀이해서 진주만기습을 상기시킨다. 진주만기습을 소재로 한 어린이 게임도 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자주 언급하는, “용서(Forgive)는 하지만 결코 잊지 않겠다(Not Forget)”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된다. 미·일관계가 아무리 좋아도, 아니 좋기 때문에 더더욱 과거사를 잊지 말아야만 한다는 것이 일본에 대한 미국의 기본원칙 중 하나이다.
東南亞의 代父로 등장하는 일본
중국견제와 관련해 미국이 어느 정도까지 일본의 역할을 지지, 지원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궁금증의 단서는 2012년 12월 10일의 필리핀 외무장관 기자회견에서 찾을 수 있다. “필리핀은 일본이 군대를 보유하는 것에 찬성한다. 일본은 동북아시아 질서를 무시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에도 보도됐지만, 기자회견 내용을 들었을 때 필자는 두 가지 점에 주목했다. ‘외무장관’이 직접 행한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군 부활을 지지했다는 점과, 발언 시기가 일본 총선인 12월 16일의 ‘6일 전’이라는 사실이다.
세상에 어떤 나라가 외무장관 입을 빌려 옆 나라, 그것도 한때 자신을 식민지로 만들었던 나라의 무장(武裝)을 지지 발언할 수 있을까? 총선 직전에, 일본의 특정 당에 유리해질 수 있는 발언을 정부 최고위급이 하는 것도 상식 밖이다. 필리핀이 황당하고 정신 없는 나라이기 때문일까?
악연(惡緣)도 있지만 미국과 가장 가깝고 미국의 의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나라가 필리핀이다. 필리핀 외무장관의 발언은 직·간접으로 미국과의 교감을 통한 것이라 볼 수 있다. 2012년 5월 남중국 바다 주변 영토 문제로 중국과 전쟁 직전까지 갔던 필리핀은 ‘중국과 맞서서 싸울 수 있는 나라라면 어디든 좋다’는 입장이다.
필리핀과 같은 입장에 처한 주변 국가로는 민주화한 미얀마, 베트남, 인도 등이 있다. 센카쿠 분쟁은 동남아권이 일본을 대부(代父)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낳았다.
2012년 11월 26일, 《뉴욕타임스》는 일본 정부가 동남아시아에 대한 무기수출과 군사지원을 활발히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의하면 일본은 캄보디아와 동티모르에 200만 달러를 보내 현지 공병단(工兵團) 훈련을 지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적은 액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군사목적으로 일본이 외국을 지원한 첫 번째 케이스이다. 또 일본은 필리핀 해양경비를 위해 1200만 달러의 군사용 장비를 판매하고,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도 비슷한 장비의 수출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베트남에는 일본제 디젤 잠수함 수출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제 디젤 잠수함은 성능 면에서 세계 제일이라고 한다. 빠르고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자국의 바다를 방위하기 위해 일제 잠수함에 관심이 많다.
워싱턴을 주목하라
《뉴욕타임스》 기사를 보면 미국 무기에 대한 얘기는 단 한 줄도 안 나온다. 그러나 미국의 허락 없이 일본제 무기를, 그것도 과거 식민지의 나라들에 군사차관이나 지원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원래 일본은 자국의 무기를 직접 수출하는 나라가 아니다. 미국과 합작을 해서, 부품을 보내 미제(美製)로 재포장한 뒤 외국에 수출한다. 직접 나서서 하는 것보다 미국에 제공해서 2인자의 위치를 차지하는 셈이다. 이시하라 신타로가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일본 독자의 기술력을 통해 대륙간탄도탄을 1m 오차범위 내로 명중시킬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이 일본의 독자적 무기수출을 용인하는 것은 그만큼 중국의 위협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일본이 베이징·파리·런던·모스크바에 주재하던 외교관과 기자들을 워싱턴으로 돌리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일본의 우향우가 강화될수록, 중국이 북한 김정은의 대변인 역할을 계속할수록 미·일관계의 내용과 방향을 한층 주목해야 할 것이다.⊙
12·16총선을 통해 전열(戰列)을 다듬은 일본은 한국에 버거운 상대가 될 것이다. 자민당과 일본유신회를 중심으로 한 ‘우향우(右向右)’ 정당은 가장 먼저 한국을 시험할 것이다.
한국에서 통용되는 대일관(對日觀)의 대부분은 일본 안에서 얻어낸 정보나 상황을 분석해서 나온 것이다. 한국에 실리는 ‘우향우 일본’에 관한 기사의 대부분은, ‘망언(妄言)’ ‘시대착오적’ ‘제국주의적’이라는 수식어(修飾語)와 함께 시작한다. 81세의 도쿄도(東京都) 지사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가 내뱉는 발언은 한국에서는 ‘막장 일본’을 상징하는 핫뉴스다. ‘우향우’의 맏형으로 자리 잡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 일본유신회를 이끄는 하시모토 도루(橋下徹)도 한국인에게 친숙한 막장 주인공들이다. 이들 ‘막장 삼형제’는 마치 일본의 내일을 가늠하는 잣대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것이 일본의 전부가 아니다.
한국인이 간과하고 있는 일본관(觀) 중 하나가 워싱턴에서 통용되는 미·일(美日)관계에 관한 것이다. 이는 일본이나 한국·중국에서 바라본 일본이 아니라 일본 밖에서 관찰되는 세계적인 대일관이다. 언제부턴가 한국에서는 일본과 관련해 3류 연예인까지 추적해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워싱턴에서 보는 미·일관계에 관한 뉴스는 해외토픽처럼 전해질 뿐이다.
2012년 4월 이시하라 신타로가 워싱턴에 들렀을 때 미국 보수주의 인사들과 ‘막장 노인’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고 있는 한국인은 드물다. 그때 이시하라는 미국 보수주의 핵심을 향해 헌법개정이 아니라 아예 헌법포기를 공언했다. 그 이시하라 발언의 배경과 의미에 주목하는 한국 언론은 드물다.
노(No) 라고 말할 수 없는 일본
‘수퍼 파워 미국의 붕괴’라는 말이 유행한 지 오래지만, 중동(中東) 문제, 심지어 북한 미사일 문제만 봐도 워싱턴의 파워는 아직 건재(健在)하다. 우리가 미·일관계, 나아가 일본을 대하는 미국의 자세를 봐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미·일관계에서 핵심은 일본을 대하는 미국의 자세이다. ‘일본이 미국을 어떻게 보는냐’는 문제는 ‘당분간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한때 ‘일본이 미국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던 시기도 있었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기 직전과, 일본의 경제력이 하늘을 찌르던 1980년대가 바로 그때다. 그때 일본은 미국에 대해 ‘노(No)’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태평양전쟁에서 지고, 1990년대 들어 일본의 버블 경제가 붕괴하면서 일본은 ‘노’라는 말을 입 밖에 낼 수 없게 된다. 미국의 의향에 맞추고, 미국과 함께 발을 맞추고, 미국의 논리에 박수를 보내면서 미·일관계를 유지해 왔다.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일본이 미국에 대해 ‘노’라고 말한 적은 없다. 단카이(團塊)세대의 아이콘인 간 나오토(菅直人) 전 총리는 후텐마(普天間)기지 이전 문제로 미국에 대들었다가 지금까지 후유증을 겪고 있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총리 시절 민주당 정권이 군말 없이 미군의 수직이착륙수송기 MV22 오스프레이(Ospley)의 오키나와 배치를 수용한 것이 그 증거이다. 오키나와 주민을 비롯한 많은 일본 국민들은 사고가 잦다는 이유로 오스프레이의 배치에 반대했다.
그러나 자국민이 아니라 미국의 의사를 더 존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일본이다. 간 나오토 총리가 미국과의 약속을 어기고 후텐마기지 이전 문제에 대해 딴소리를 냈다가 미국에 호되게 혼났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미·일관계에서는 미국이 주체(主體), 일본이 객체(客體)다.
美상원, 센카쿠 수호의지 明文化
따라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일본의 급속한 우향우 정책은 미국의 동의(同意) 없이는 불가능하다. 아니,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군사·외교 문제에 대한 일본의 변화는 동의 수준을 넘어 미국의 적극적인 지지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이 일본의 우향우를 지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중국 때문이다. 중국이 경제에 이어 군사대국으로 떠오르면서 미국은 일본에 태평양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지만 2012년 12월 2일 중국 외교부가 미국을 비난한 내용을 보면, 현재의 미·일관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미국은 센카쿠(尖閣·중국명 釣魚島)열도 문제와 관련해 특정국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피력해 왔다. 미국의 언행일치(言行一致)를 기대한다.”
중국 외교부가 이처럼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그보다 하루 전날 미국 상원(上院)을 통과한 ‘국방권한법 수정안(修正案)’ 때문이다.
이 수정안의 주요 내용 중 하나가 센카쿠열도가 미·일안전보장조약의 적용 대상임을 재확인한다는 것이었다. 센카쿠열도가 중국의 무력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이 자동 개입한다는 것이 수정안의 핵심인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새해 접어든 직후인 지난 1월 2일 이 법에 서명했다.
센카쿠분쟁에서 미국을 제3자로 만들려던 중국의 의도는 이로써 무위(無爲)가 됐다. 2013년부터 센카쿠 문제는 종래 중국과 일본 간 문제에서 중국과 미·일동맹의 문제로 변한 것이다.
법안이 통과되는 순간, 미·일 양국이 가까운 시일 내에 센카쿠열도 주변 합동군사훈련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흘러나왔다. 미국은 중국이 노리는 남중국해에 대한 수호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미 상원의 국방권한법안 통과는 일본을 미국의 파트너로 삼겠다는 의지를 법으로 명문화한 것으로 보면 된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이후, 중국은 ‘언제나처럼’ 김정은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북한의 로켓 발사 직후인 지난해 12월 12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벌어진 수전 라이스 미국대사와 리바오둥(李保東) 중국대사와의 설전(舌戰)을 통해서도 중국의 태도를 잘 알 수 있다. 당시 미국은 규탄성명서 채택과 관련해, 북한의 행위가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이자 도발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그것이 도발이 아니며 규탄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이처럼 북한을 대변하는 것은 미·일동맹을 통한 대중(對中) 견제를 북한카드로 무마해 보겠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일동맹이 심화할수록, 나아가 미얀마·베트남·필리핀의 친미(親美)정책이 강해질수록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한 중국의 편들기는 노골적이 될 것이다.
21세기 들어 워싱턴에서는 태평양안보 구상 중 하나로 한·미·일 삼각안보체제(The United States-Korea-Japan Security Triangle)가 논의되어 왔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국·일본이 공동전선을 구축한다는 의미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아시아판에 해당한다. 워싱턴의 안보관계자라면 예외 없이 찬성하는 구상이다. 이 구상이 중국과 러시아를 가상적(假想敵)으로 삼고 있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한·미·일 삼각안보체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이미 부분적으로 구축되어 있는 상태다.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공식화하자는 것이 워싱턴의 생각이다.
2012년 6월 한국 국무회의를 통과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은 미국이 오랫동안 추구해 온 삼각안보체제의 서막에 해당한다. 삼각안보체제는 한일 양국이 군사분야에서 인적(人的) 교류는 물론, 일본 전투기와 잠수함이 한국에 들어가고, 한국도 일본의 오키나와 등 일본 내 기지를 자유롭게 사용하자는 것이다. 더 나아가 군사작전이나 방어체제도 공동으로 구상하자는 것이다.
한국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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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터 샤프 전 한미연합사령관. |
한국의 입장에서는 삼각안보체제 속에서 일본의 역할이 강화될 수 있다는 것도 불편한 일이다. 지리적·기술적·군사적으로 일본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나 독도 문제도 한국이 주저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문제는 독도사태 이후 실종되어 버리고 말았다. 지난 1월 8일, 월터 샤프 전 한미연합사 사령관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무산되면서 한국측 손실이 더 크다”면서 “북한의 도발상태를 입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은 앞으로도 끈질기게 3국 군사동맹체제를 추진할 것이다. 중국이 팽창할수록 3국 군사동맹체제의 필요성은 높아질 것이다.
워싱턴은 중국이 항공모함을 취역시키고 스텔스전투기를 띄우는 상황에서 한국의 동의를 기다릴 수는 없다. 결국 워싱턴은 일본의 독자적인 군사력 강화를 지지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통제권 아래서 아시아에서 일본의 군사적 역할과 기능을 부분적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아베 일본 총리가 자위대의 해외파견을 보다 활발히 추진하려는 것도 미국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美국무부·국방부 모두 일본 右傾化 지지
워싱턴의 힘은 크게 두 개의 손을 통해 구체화된다. 주먹을 쥔 왼손과 악수를 하려는 오른손이다. 왼손은 국방부, 오른손은 국무부다.
두 부처는 대외정책 면에서 상극(相剋)관계라 보면 된다. 국무부는 대화를 통한 해결에 주력한다. 국방부는 일방적 원칙과 주장 선언을 통해 문제를 풀어 나간다. 국무부는 볼펜을 쥐고 있고, 국방부는 총칼을 잡은 상태이다. 냉전(冷戰)이 끝나면서 두 조직의 이견(異見)은 한층 심해졌다. 아프가니스탄전쟁·이라크전쟁은 국방부의 전면적인 승리이다. 북한과 이란에 관한 문제는 국무부가 아직까지 주도권을 쥐고 있다.
이렇게 사사건건 부딪치는 두 부서가 일본의 우향우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이견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두 부서가 경쟁적으로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지지하고 있다. 양손이 박수를 치면서 일본의 우향우를 응원하는 격이다.
워싱턴에서 부분적으로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에 대한 고려와 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세는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무부와 국방부 모두 일본의 우향우에 동의하고, 이를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을 믿을 만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일본의 군사적 능력에 대한 신뢰가 아니다. 일본인 자체에 대한 신뢰감이 워싱턴에 만연해 있다. 친일(親日)감정이 워싱턴 주류(主流)인사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그 이유는 어디 있을까? 친절하고 예의바른 일본인 특유의 국민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일본이 그동안 워싱턴 내에 친일환경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해 온 것도 중요한 이유다.
한국과 중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워싱턴을 외교의 중심으로 여기고 총력(總力)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이 한국, 중국과 다른 점은 ‘총력’의 내용이 외교·정치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親日의 아이콘 벚꽃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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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판다는 만화영화 캐릭터로 사용될 만큼 중국을 대표하는 소프트 파워지만, 일본의 벚꽃축제에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
포토맥 강변 주변만이 아니라, 스미스소니언 박물관과 미국 의회, K스트리트 주변의 싱크탱크와 국제기구가 일본 기념관으로 변한다. 일본에서 1급 스시(すし) 요리사가 몰려와 일본 대사관이나 야외에서 공짜 음식을 대접한다. 전통예술에 관련된 장인(匠人)들도 몰려와 워싱턴 어딘가에서 일본을 알린다. 스시 리셉션에 초대받았는지, 일본관련 행사에 갔다 왔는지 여부는 워싱턴에서의 역량을 시험하는 척도에 해당된다.
벚꽃축제가 끝날 때쯤인 4월 말이 되면, 1주일 이상 연휴가 이어지는 골든 위크(Golden Week)를 이용해 일본의 정치인과 정부관료들이 워싱턴에 밀려온다. 워싱턴 싱크탱크가 개최하는 미·일관련 정책포럼과, 미국 정부 내 실력자와 정책담당관을 찾아가는 일본인의 행렬이 이어진다.
벚꽃축제에 맞춰, 미술전시회나 음악경연대회, 분재(盆栽), 다도(茶道)를 중심으로 한 미·일 청년들의 교류도 열린다. 벚꽃축제는 워싱턴만이 아니라 뉴욕,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등 미국 내 10여 곳에서 개화기(開花期)에 맞춰 순차적으로 열린다. 벚꽃축제는 친일 분위기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된다.
중국이 가진 소프트 파워 가운데 판다가 최고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지만, 일본의 벚꽃축제에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벚꽃축제는 먹고 마시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즐기는, 오감(五感)을 통한 소프트 파워이다. 사람을 통해 이뤄지는, 피부로 느끼는 소프트 파워이다. 판다는 이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미국은 전 세계 민족과 인종이 모인 곳이다. 벚꽃축제에 대한 미국 지도층의 관심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지 모른다. 부분적으로 옳고 전체적으로 틀렸다. 표에 목숨을 거는 정치인의 경우 마이너리티 축제나 행사에 어김없이 얼굴을 내밀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 가족과 미국 정부 핵심요원들 전부 나서서 마이너리티 축제에 관심을 쏟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영국·이스라엘 정도라고나 할까?
중국 정부는 틈만 나면 벚꽃축제를 일본만이 아닌 아시아 전체의 축제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아시아 공존공영과, 벚꽃축제 기간 중 노점에 나서는 사람과 참석자의 상당수가 중국계(系)라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일본 소프트 파워의 상징인 벚꽃축제를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잘 알 수 있다.
일본어도 미국 내에서 친일환경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80년대에 일본은 돈으로 뉴욕을 사 버리겠다고 공언했을 뿐 아니라, 일본어를 미국인의 제2의 외국어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일본은 엔(円)의 위력을 통해 유능한 미국인들을 도쿄에 불러들였다. 각종 장학금을 주면서, 일본인과 함께 생활하면서 배우는 일본어 교육에 주력했다. 일본어만이 아니라, 일본문화와 일본인의 가치와 의식구조를 미국인에게 가르쳤다. 일본어를 배우는 미국인들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친일인사가 된다.
미국 내 親日인맥
일본 유학파들은 일본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미국에서의 대일(對日)관계를 직접 담당한다. 현재 자타가 공인하는 워싱턴 내 대표적인 친일인사는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이다.
1980년대에 도쿄대학에서 공부한 일본통으로, 2001년 부시 행정부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아시아 총책임자로 일한 인물이다. 한국 신문·방송에도 자주 등장하는 인물로, 공화당이 정권을 잡을 경우 아시아 문제 전체를 총지휘할 브레인이다. 그는 한·미·일 3국 군사동맹체제 강화를 역설하는 안보통이기도 하다.
존스홉킨스 대학의 켄트 칼더(Kent Calder) 교수는 학계를 대표하는 일본통이다. 일본어가 능숙한 그는 한 세대 이상 일본을 연구해 온 일본전문가다. 하버드대학을 나온 그는 프린스턴대학 아시아전공 교수로 근무하기도 했다. 하버드・프린스턴・존스홉킨스대의 일본 관련 학계 인맥의 대부(代父)에 해당된다. 노무현 정권 때부터 한국과도 관계를 맺어 왔다.
<아미티지 리포트>로 유명한 리처드 아미티지(Richard Armitage)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부 부(副)장관을 지낸 외교・국방분야의 일본통이다. 미 국방부와 국무부를 일본과 연결시켜 주는 인물이다. 베트남전쟁 때 헬리콥터 조종사로 복무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개발에 관한 거의 모든 구상이 아미티지에게서 나왔다고 보면 된다. 1980년대 국방부에서 일할 당시, 대(對)공산권 수출관련 협정을 위반한 도시바(東芝)제재 법안에 반대한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이 투자한 제1세대 친일인사는 현재 50대의 연령층이다. 정책결정에 관한 한 최고 선임자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현재 국무부·국방부·싱크탱크·백악관·의회, 심지어 중앙정보국(CIA)이나 비정부단체(NGO)의 아시아 관련 총사령탑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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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대표적인 일본 전문가들. 왼쪽부터 마이클 그린, 켄트 칼더, 리처드 아미티지. |
中, 소프트웨어 측면 부족
중국도 전 세계, 특히 미국을 대상으로 한 중국어 확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 정부가 집중투자하고 있는 것이 공자학원이다. 일본이 한 세대 전에 시행한 일본어 국제화 정책을 그대로 본뜬 것이다.
2년 전이지만, 필자는 워싱턴 근처 버지니아 대학에서 이뤄진 중국어 학습시간에 참가한 적이 있다. 중국어를 배우기보다 중국어를 대하는 미국인들의 자세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열심히 배우고 중국을 알려는 분위기가 넘쳐 났다. 그러나 일본어 교육과 크게 다른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먼저 교사의 질적(質的) 수준이다. 대학과 자매결연 관계를 맺은 중국인이 직접 와서 가르치지만, 미국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냥 중국어를 가르치는 데 열심이다. 교재 속에 중국 문화나 역사에 관한 부분이 나오지만, 중국인 교사 자신이 이에 대해 잘 모르는 듯했다. 그냥 주입식 교육으로 필요한 말을 배울 뿐, 중국 문화라는 차원에서의 교육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본어 교육체제를 흉내 내기는 했지만, 소프트웨어는 없고 하드웨어만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중국어를 배운다고 해서 친중인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오히려 반중파(反中派)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국인으로 중국통이라 불리는 사람은 세대를 기준으로 크게 세 개 부류로 나눠진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친구로 알려진 에드거 스노 같은 사람이 원조(元祖) 중국통이기는 하지만, 그런 사람은 현재 세상에 없다.
지금 원로 중국통으로 대접받는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닉슨 정권 시절 미·중 비밀교섭을 진행했던 핵심인사라는 점 때문에 중국의 라이펑유(老朋友)로 인정받고 있지만, 원래 국제정치통이다.
현재 미국의 중국통 1세대는 모르몬교(敎) 신자들이다.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를 지냈고 대통령 선거 후보로도 나왔던 존 헌츠먼이 대표적이다.
미국 내 中國通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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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헌츠먼 전 주중미국대사. |
1970년대에 모르몬교는 ‘반공(反共)국가’ 타이완에 모르몬교 선교사를 많이 파견했다. 이들은 당시 타이완을 통해 중국을 관찰했다. 자연히 공산독재 국가인 중국을 곱게 볼 수가 없다. 모르몬교도로 공화당 대통령 후보에 올랐던 미트 롬니처럼 공화당의 전통과 가치를 중시 여기는 반공주의자들이 제1세대 중국통이다.
미국의 중국통 2세대는 일본어를 배우면서 중국을 함께 연구한 사람들이다. CSIS의 마이클 그린 같은 사람이다. 원래 일본에 주력했지만, 중국이 커지면서 중국도 함께 연구하는 식이다.
이들 중에서 중국어가 가능한 사람은 극소수이다. 다만 한자를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아시아 문화 전반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일본이 갖고 있는 엄청난 아시아 관련 정보를 통해 중국을 이해한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일본이라는 스크린을 통해 중국을 들여다본다. 때문에 일본과 사이가 나쁜 중국을 좋게 볼 수 없다. 사실 미국의 한국 연구가의 대부분도 비슷하다. 일본 연구가가 한국과 중국을 함께 연구하는 식이다.
고인(故人)이 된 김근태 전 국회의원이 10여년 전 워싱턴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당시 한 싱크탱크서 열린 한미정책포럼에서 미국인 연구원이 일본을 주체로 하면서 한국과 북한을 변수(變數)처럼 얘기하기 시작했다. 얘기를 듣던 김근태 의원은 대화를 끊으며 “왜 한반도 얘기를 안 하고 일본 얘기만 하느냐?”면서 불만을 터뜨렸다.
당시 미국인 연구원은 일본어가 능통한 일본통이었다. 최근 들어 한국의 국력이 향상되면서 한국을 기반으로 중국과 일본을 보는 사람도 생겨났지만, 아직 대부분의 한국 전문가들은 일본을 기반으로 한 사람이 많다.
3세대는 최근 미국에 정착한 대륙출신 중국계이다. 중국어는 물론 영어에도 능통하다. 친중(親中)의 전위병(前衛兵)인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특별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1세대·2세대가 결정한 대중정책을 다듬는 수준에서 일하고 있을 뿐이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 3세대가 전면에 나서겠지만, 기존 정책결정자들 사이의 반중정서가 일반화한 상태에서 친중적인 중국계 3세대가 중요한 위치에 오를지는 의문이다. 냉전 당시 러시아계가 대소(對蘇)정책의 최고봉에 오른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진주만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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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1년 진주만기습 당시 침몰한 애리조나호 위에 건립된 진주만기습기념관. 미국은 미·일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과거를 잊지는 않는다. |
2차대전 후 미국은 일본을 재건하고 일본에 민주주의를 이식했다. 하지만 1980년대에 일본은 경제력을 배경으로 또 한 번 미국을 쳤다. 이번에는 총이 아니라 돈으로 미국을 사려 했다.
‘일본의 반란’은 버블이 터지면서 실패로 끝나지만, 미국은 일본을 마냥 믿을 수만은 없으며, 그렇기에 한층 일본과 가까이해야만 교훈을 얻었다. 이후 미국은 미·일 군사동맹, 미·일 경제교류을 중심으로 한 물적·인적 교류를 강화했다.
그와 함께 미국은 믿을 수 없는 일본에 대한 경계와 경고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매년 12월 7일 되풀이되는 진주만기습 기념행사는 미국인의 저변에 깔린 대일관(對日觀)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예이다.
작년 12월 7일에도 진주만 기습 관련 행사가 미국 곳곳에서 열렸다. 그날 저녁 워싱턴 비정부단체인 ‘미국 혁명의 딸(DAR)’ 안의 콘스티튜션 홀(Constitution Hall)에서는 영화 <영광스러운 비행(Honor Flight)>을 상영했다. 헤리티지재단의 친구로부터 이 영화관람에 대한 얘기를 들은 나는 어렵게 표를 구해 영화를 보러 갔다. 남녀노소 구별 없이 초만원이었다.
영화 마지막 장면은 진주만기습의 생존자인 90대의 퇴역군인이 휠체어를 타고 하와이 해군기지를 방문하는 장면이다. 현역 미군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그를 정중히 맞이하는 장면에서는 관람객 모두가 기립박수를 했다.
진주만 기습공격은 일본인이 가장 피하고 싶어하는 얘기다. 그러나 미국은 매년 되풀이해서 진주만기습을 상기시킨다. 진주만기습을 소재로 한 어린이 게임도 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자주 언급하는, “용서(Forgive)는 하지만 결코 잊지 않겠다(Not Forget)”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된다. 미·일관계가 아무리 좋아도, 아니 좋기 때문에 더더욱 과거사를 잊지 말아야만 한다는 것이 일본에 대한 미국의 기본원칙 중 하나이다.
東南亞의 代父로 등장하는 일본
중국견제와 관련해 미국이 어느 정도까지 일본의 역할을 지지, 지원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궁금증의 단서는 2012년 12월 10일의 필리핀 외무장관 기자회견에서 찾을 수 있다. “필리핀은 일본이 군대를 보유하는 것에 찬성한다. 일본은 동북아시아 질서를 무시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에도 보도됐지만, 기자회견 내용을 들었을 때 필자는 두 가지 점에 주목했다. ‘외무장관’이 직접 행한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군 부활을 지지했다는 점과, 발언 시기가 일본 총선인 12월 16일의 ‘6일 전’이라는 사실이다.
세상에 어떤 나라가 외무장관 입을 빌려 옆 나라, 그것도 한때 자신을 식민지로 만들었던 나라의 무장(武裝)을 지지 발언할 수 있을까? 총선 직전에, 일본의 특정 당에 유리해질 수 있는 발언을 정부 최고위급이 하는 것도 상식 밖이다. 필리핀이 황당하고 정신 없는 나라이기 때문일까?
악연(惡緣)도 있지만 미국과 가장 가깝고 미국의 의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나라가 필리핀이다. 필리핀 외무장관의 발언은 직·간접으로 미국과의 교감을 통한 것이라 볼 수 있다. 2012년 5월 남중국 바다 주변 영토 문제로 중국과 전쟁 직전까지 갔던 필리핀은 ‘중국과 맞서서 싸울 수 있는 나라라면 어디든 좋다’는 입장이다.
필리핀과 같은 입장에 처한 주변 국가로는 민주화한 미얀마, 베트남, 인도 등이 있다. 센카쿠 분쟁은 동남아권이 일본을 대부(代父)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낳았다.
2012년 11월 26일, 《뉴욕타임스》는 일본 정부가 동남아시아에 대한 무기수출과 군사지원을 활발히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의하면 일본은 캄보디아와 동티모르에 200만 달러를 보내 현지 공병단(工兵團) 훈련을 지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적은 액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군사목적으로 일본이 외국을 지원한 첫 번째 케이스이다. 또 일본은 필리핀 해양경비를 위해 1200만 달러의 군사용 장비를 판매하고,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도 비슷한 장비의 수출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베트남에는 일본제 디젤 잠수함 수출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제 디젤 잠수함은 성능 면에서 세계 제일이라고 한다. 빠르고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자국의 바다를 방위하기 위해 일제 잠수함에 관심이 많다.
워싱턴을 주목하라
《뉴욕타임스》 기사를 보면 미국 무기에 대한 얘기는 단 한 줄도 안 나온다. 그러나 미국의 허락 없이 일본제 무기를, 그것도 과거 식민지의 나라들에 군사차관이나 지원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원래 일본은 자국의 무기를 직접 수출하는 나라가 아니다. 미국과 합작을 해서, 부품을 보내 미제(美製)로 재포장한 뒤 외국에 수출한다. 직접 나서서 하는 것보다 미국에 제공해서 2인자의 위치를 차지하는 셈이다. 이시하라 신타로가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일본 독자의 기술력을 통해 대륙간탄도탄을 1m 오차범위 내로 명중시킬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이 일본의 독자적 무기수출을 용인하는 것은 그만큼 중국의 위협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일본이 베이징·파리·런던·모스크바에 주재하던 외교관과 기자들을 워싱턴으로 돌리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일본의 우향우가 강화될수록, 중국이 북한 김정은의 대변인 역할을 계속할수록 미·일관계의 내용과 방향을 한층 주목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