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변이 ‘나꼼수’ 이용해 2012년 1월 모은 기금, 2013년 말까지 국가보안법 피의자 변론,
선거법 교육 등에 사용
⊙ 서울시에 등록한 기금모집 목적은 사회적·경제적 약자 변론… 국보법·선거법 위반 변론에
사용 가능한가
⊙ 기금 참여자들 “간첩 사건에 쓰일 줄은 몰랐다”
⊙ 민변 1년 예산 6억7000만원인데 일개 기금이 5억원
⊙ “정치후원금과 기부금품은 별개… 기부금 모아 정치적으로 사용하면 기부금품법 위배”
보수단체, 기부금품법 위반혐의로 민변 검찰에 고발
선거법 교육 등에 사용
⊙ 서울시에 등록한 기금모집 목적은 사회적·경제적 약자 변론… 국보법·선거법 위반 변론에
사용 가능한가
⊙ 기금 참여자들 “간첩 사건에 쓰일 줄은 몰랐다”
⊙ 민변 1년 예산 6억7000만원인데 일개 기금이 5억원
⊙ “정치후원금과 기부금품은 별개… 기부금 모아 정치적으로 사용하면 기부금품법 위배”
보수단체, 기부금품법 위반혐의로 민변 검찰에 고발
- 2011년 말 정봉주 전 의원이 공직선거법위반으로 실형이 확정되자 ‘나는 꼼수다’와 민변이 함께 기부금품 모집에 나서 민변의 ‘공익변론기금’이 탄생했다.
2011년 11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표현의 자유 옹호 및 증진을 위한 공익변론기금’(이하 공익변론기금) 공개 모금에 나섰다. 당시 세간에 화제가 됐던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주요 인물인 정봉주 전 의원이 징역형을 구형 받으면서 시작된 일이다. 그를 변론하기 위해 나꼼수는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아서는 안 된다며 ‘쫄지마 프로젝트’에 나섰고, 나꼼수와 민변은 ‘쫄지마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공익변론기금(일명 ‘쫄지마기금’)을 모금해 변론 비용으로 사용키로 했었다.
민변은 공익변론기금 모집을 위해 2011년 11월 22일 서울시에 기부금품 모집등록을 하고, 12월부터 나꼼수와 함께 인터넷과 SNS를 통해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모금에 나섰다.
모금 시작 약 3주 만에 시민 1만여 명이 참여해 원래 기금의 목표금액 5억원을 달성했다. 유명작가 공지영씨가 1000만원을 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민변은 이 기금으로 국가보안법과 공직선거법, 명예훼손 등의 피의자를 변론해 왔다. 그런데 최근 보수단체들은 이 기금이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대한 법률>(이하 기부금품법)을 위반했다며, 이와 관련해 민변을 검찰에 고발했다.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기부금품법 등록 목적과 사용방법 같아야
지난 4월 3일 서울지검에 민변을 기부금품법 위반으로 고발한 정의로운시민행동 정영모 대표는 “선량한 시민들이 기부해 조성한 기금이 종북세력을 변론하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현실이 안타까워 고발에 나서게 됐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민변 같은 단체가 불특정 일반인을 대상으로 일정금액 이상의 기부금을 공개모집하려면 기부금품법 제4조에 따라 정부(안전행정부) 또는 광역단체에 모집등록을 해야 한다. 10억원 이상은 안전행정부에, 10억원 이하는 서울시에 등록을 해야 하는 것이다. 또 같은 법에 따르면 모집등록을 할 때 모집 목적을 명시해야 한다.
민변은 서울시 등록 당시 목적을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변론, 경제적 이유로 법률조력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이라고 밝혔다. 기부금품법 제4조 제2항 제4호 라목(박스 참조) ‘사회적 약자의 권익신장에 관한 사업’을 근거로 ①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변론 ②경제적 이유로 법률조력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이 목적이라고 등록 서류에 명기한 것이다.
민변은 보도자료를 통해 〈공직선거법 위반이나 명예훼손 등으로 민·형사상 피소된 시민의 변론 등을 위해 공익변론기금을 모집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나꼼수 측 역시 ‘쫄지마 기금’의 목표는 〈SNS 등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했다가 공직선거법 위반이나 명예훼손 혐의로 법적인 제재를 받게 된 시민들을 위한 변론 비용으로 사용한다〉고 SNS를 통해 밝혔다.
서울시는 2011년 11월 말 이 등록을 받아들였고, 2012년 12월 24일부터 기금 모집이 시작됐다. 다음 해 1월 한 달이 채 못 돼 기금 5억원이 조성됐다.
기부금품법에 따르면 등록 후 모집된 기금은 2년 안에 사용하고 사용처를 등록기관에 제시해야 한다. ‘쫄지마기금’의 사용 기한은 2014년 2월 26일까지다. 민변은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공익변론기금 후원시민을 위한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기부자들에게 사용내역과 현황을 공개했다.(표 1·2·3 참조) 민변 측에 따르면 지금까지 85건의 소송건에 대한 수임료 약 1억8000만원과 ‘표현의 자유’ 관련 포럼과 이벤트 등에 약 9000만원 등 2억7000여만원을 지출했다고 공개했다.
정치적 용도로 사용?
그러나 이 기금이 원래의 취지와 달리 특정 사건(국보법 위반, 공직선거법 위반, 모욕죄, 명예훼손죄, 공무집행방해죄, 협박죄)에만 사용됨으로써 ‘정치·종교적 활동이 아니어야 한다’는 기부금품법 조항과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것이 고발단체들의 주장이다.
민변이 이 기금으로 사용한 사건이 주로 공직선거법과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일상적인 시민단체 활동이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경우, 후보자와 그 가족을 비난한 경우, 야권연대 관련 신문광고를 낸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150쪽 박스1 참조)
고발단체들은 기부금품법 제12조에 따르면 모집금품은 목적 외의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보수단체 대표로 민변을 고발한 정의로운시민행동 정영모 대표의 얘기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기부금품을 모집해 상근간사 인건비와 강의료, 비품과 식대, 출판과 홍보 등 민변 사업의 용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봤을 때 기부금품 모집등록 신청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상황입니다. 모집 목적과 다르게 사용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범법이기 때문에 고발에 나서게 됐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민변은 기부금품법 제16조에 따라 ‘부정한 방법으로 등록을 하고 기부금품을 모집하거나(16조1항), 기부금품을 모집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16조 5항)했기 때문에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 대표는 기금의 사용처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이 기금이 이석기나 유우성 등 간첩 사건 수임료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민변은 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며 “민변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확실히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변, “사회적 弱者를 위한 변론 비용”
그러나 민변 측은 “모집등록 당시 명기한 사용방법과 사용내역은 같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변이 서울시에 제출한 신청서의 기금사용 방법은 다음과 같다.
<①헌법상 보장되는 정당한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였으나 수사대상이 되거나 기소를 당하거나 제3자로부터 피소당한 시민들 중 경제적 이유를 포함한 기타 사정으로 법률적 조력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법률적 지원
②표현의 자유에 관한 연구 및 토론, 공청회를 통한 의견수렴 등 표현의 자유를 진작케 하는 제반 활동>
공직선거법이나 국가보안법 외에도 상관모욕죄나 협박죄, 경범죄 등 언뜻 보기에 ‘표현의 자유’와 관련없어 보이는 사건 변론에 기금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확인 결과 이들 사건은 현역군인이 대통령을 비방했다는 이유로 상관모욕죄로 기소된 경우, 전직 대통령 비방 작품을 제작했다는 이유로 경범죄에 걸린 경우 등이다. 결국 ‘표현의 자유’를 누리지 못한 ‘사회적 약자’를 변호했다기보다 민변의 ‘정치적 성향’과 부합하는 ‘범죄 혐의자’를 고른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도 크게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 때문에 ‘쫄지마 기금’의 용도가 법을 위반했느냐 여부를 놓고 벌이는 논란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변 측은 4월 초 보수단체의 고발 이후 이메일과 전화로 수차례에 걸쳐 관련 답변을 요청하는 기자에게 “《조선》에는 답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당시 기부금품 모집을 담당했던 민변 이수미 총무간사 역시 “공익변론기금 내용은 후원자들에게 뉴스레터를 통해 안내하고 있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민변은 현재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피고인 유우성씨와 내란음모 사건 피고인인 이석기 의원의 변론도 맡고 있다. 민변 측은 두 사건 모두 “간첩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이 사건에도 기금을 사용했는지는 민변이 입을 다물고 있는 이상 확인되지 않는다. 민변의 1년 예산은 2013년 기준 6억7696만8231원(수입=지출 동일)이다. 연간 예산이 6억7000만원에 불과한 조직이 팟캐스트의 인기를 빌미로 5억원의 기금을 모아 쓰고 있는 것이다.
기부금품 모집단체 관련 주무부처인 서울시 행정국 시민지원팀에 기부금품 모집단체가 목적과 사용방법이 다를 때는 어떤 제재를 하는지, 과거 처벌받은 사례가 있는지 문의했다.
서울시 시민지원팀 김종환 팀장은 “현실적으로 등록 이후 기부금품의 사용방법을 일일이 점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고소고발건은 우리가 언급할 사안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안전행정부 민간협력과 담당자인 최시영 사무관 역시 “기부금품 모집 시 목적과 사용방법, 결산내역 등을 제출하게 돼 있지만 그것이 법률적 해석을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라는 답이었다.
법조계, “애매한 현행 기부금품법이 문제”
‘쫄지마기금’의 합법성 여부에 대한 법조인들의 입장은 어떨까. 기부금품법의 적용 범위는 법조계에서 적지 않게 논란이 돼 오고 있는 상태다. 진보성향의 변호사를 비롯한 법조계 인사들조차 민변 피고발 사건과 민변 활동의 정치 관련성 여부에 대해 ‘노코멘트’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부금에 의한 정치적 활동’이 금지되는 현행 기부금품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는 “현행 기부금품법은 영리와 정치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은 기부금품 모집 등록이 불가능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데, 과연 ‘정치활동’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아무도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사회활동에 대해 그런 올가미를 씌울 우려가 많다”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진보 혹은 야당 성향 단체의 정치활동과 관련된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 행위가 현행법을 위반할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박경신 교수는 현행 기부금품법이 정치적 표현 등의 활동을 금지하고 있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주장을 펼쳐 온 사람이다. 박 교수는 “현행 기부금품법은 종교, 영리, 정치적 목적의 기부금품 모집을 금지하고 정치자금법이나 종교단체 관련법에 의해서만 허용하고 있다”며 “기부금품 모집단체가 정치적인 이유로 법 위반으로 얽혀들 여지는 언제든지 있다”고 설명했다. 법조인들은 대체로 “공익변론기금이 정치활동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판단 아니겠느냐”며 “공익변론기금 고발과 소송의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고 그것마저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조차 있다”는 반응이었다.
“간첩사건에 사용된다는 건 글쎄…”
기자 주변에도 민변 공익변론기금에 입금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나꼼수’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트위터 사용자들은 ‘나꼼수를 무료로 듣는 사람은 수백만 명인데 쫄지마기금에 참여한 사람은 수천 명에 불과하다’며 기금 참여를 독려했다. 소액을 입금했던 40대 직장인은 “표현의 자유를 위한 기금이라는 취지는 인정하지만 민변의 운영자금이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의 수임료로 사용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기금에 참여했던 20대 대학생은 “20대 대학생들은 정봉주 전 의원을 도와준다는 취지에 동감해 참여한 것이고, ‘쫄지마기금’이라고 생각했지 민변의 공익변론기금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생각해 보니 그 금액이 지나치게 컸고 어디에 사용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생각은 든다”고 말했다. 팟캐스트의 인기를 업고 시민으로부터 정치후원금 아닌 기부금 명목으로 수억 원을 모금해 쓰고 있는 민변. 어떤 사건에 얼마만큼의 돈을 썼는지 보다 분명하고 투명하게 해명을 해야 하지 않을까.⊙
민변은 공익변론기금 모집을 위해 2011년 11월 22일 서울시에 기부금품 모집등록을 하고, 12월부터 나꼼수와 함께 인터넷과 SNS를 통해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모금에 나섰다.
모금 시작 약 3주 만에 시민 1만여 명이 참여해 원래 기금의 목표금액 5억원을 달성했다. 유명작가 공지영씨가 1000만원을 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민변은 이 기금으로 국가보안법과 공직선거법, 명예훼손 등의 피의자를 변론해 왔다. 그런데 최근 보수단체들은 이 기금이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대한 법률>(이하 기부금품법)을 위반했다며, 이와 관련해 민변을 검찰에 고발했다.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기부금품법 등록 목적과 사용방법 같아야
지난 4월 3일 서울지검에 민변을 기부금품법 위반으로 고발한 정의로운시민행동 정영모 대표는 “선량한 시민들이 기부해 조성한 기금이 종북세력을 변론하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현실이 안타까워 고발에 나서게 됐다”고 취지를 설명했다.민변 같은 단체가 불특정 일반인을 대상으로 일정금액 이상의 기부금을 공개모집하려면 기부금품법 제4조에 따라 정부(안전행정부) 또는 광역단체에 모집등록을 해야 한다. 10억원 이상은 안전행정부에, 10억원 이하는 서울시에 등록을 해야 하는 것이다. 또 같은 법에 따르면 모집등록을 할 때 모집 목적을 명시해야 한다.
민변은 서울시 등록 당시 목적을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변론, 경제적 이유로 법률조력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이라고 밝혔다. 기부금품법 제4조 제2항 제4호 라목(박스 참조) ‘사회적 약자의 권익신장에 관한 사업’을 근거로 ①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변론 ②경제적 이유로 법률조력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이 목적이라고 등록 서류에 명기한 것이다.
민변은 보도자료를 통해 〈공직선거법 위반이나 명예훼손 등으로 민·형사상 피소된 시민의 변론 등을 위해 공익변론기금을 모집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나꼼수 측 역시 ‘쫄지마 기금’의 목표는 〈SNS 등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했다가 공직선거법 위반이나 명예훼손 혐의로 법적인 제재를 받게 된 시민들을 위한 변론 비용으로 사용한다〉고 SNS를 통해 밝혔다.
서울시는 2011년 11월 말 이 등록을 받아들였고, 2012년 12월 24일부터 기금 모집이 시작됐다. 다음 해 1월 한 달이 채 못 돼 기금 5억원이 조성됐다.
기부금품법에 따르면 등록 후 모집된 기금은 2년 안에 사용하고 사용처를 등록기관에 제시해야 한다. ‘쫄지마기금’의 사용 기한은 2014년 2월 26일까지다. 민변은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공익변론기금 후원시민을 위한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기부자들에게 사용내역과 현황을 공개했다.(표 1·2·3 참조) 민변 측에 따르면 지금까지 85건의 소송건에 대한 수임료 약 1억8000만원과 ‘표현의 자유’ 관련 포럼과 이벤트 등에 약 9000만원 등 2억7000여만원을 지출했다고 공개했다.
정치적 용도로 사용?
그러나 이 기금이 원래의 취지와 달리 특정 사건(국보법 위반, 공직선거법 위반, 모욕죄, 명예훼손죄, 공무집행방해죄, 협박죄)에만 사용됨으로써 ‘정치·종교적 활동이 아니어야 한다’는 기부금품법 조항과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것이 고발단체들의 주장이다.민변이 이 기금으로 사용한 사건이 주로 공직선거법과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일상적인 시민단체 활동이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경우, 후보자와 그 가족을 비난한 경우, 야권연대 관련 신문광고를 낸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150쪽 박스1 참조)
고발단체들은 기부금품법 제12조에 따르면 모집금품은 목적 외의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보수단체 대표로 민변을 고발한 정의로운시민행동 정영모 대표의 얘기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기부금품을 모집해 상근간사 인건비와 강의료, 비품과 식대, 출판과 홍보 등 민변 사업의 용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봤을 때 기부금품 모집등록 신청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상황입니다. 모집 목적과 다르게 사용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범법이기 때문에 고발에 나서게 됐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민변은 기부금품법 제16조에 따라 ‘부정한 방법으로 등록을 하고 기부금품을 모집하거나(16조1항), 기부금품을 모집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16조 5항)했기 때문에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 대표는 기금의 사용처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이 기금이 이석기나 유우성 등 간첩 사건 수임료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민변은 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며 “민변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확실히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변, “사회적 弱者를 위한 변론 비용”
그러나 민변 측은 “모집등록 당시 명기한 사용방법과 사용내역은 같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변이 서울시에 제출한 신청서의 기금사용 방법은 다음과 같다.
<①헌법상 보장되는 정당한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였으나 수사대상이 되거나 기소를 당하거나 제3자로부터 피소당한 시민들 중 경제적 이유를 포함한 기타 사정으로 법률적 조력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법률적 지원
②표현의 자유에 관한 연구 및 토론, 공청회를 통한 의견수렴 등 표현의 자유를 진작케 하는 제반 활동>
공직선거법이나 국가보안법 외에도 상관모욕죄나 협박죄, 경범죄 등 언뜻 보기에 ‘표현의 자유’와 관련없어 보이는 사건 변론에 기금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확인 결과 이들 사건은 현역군인이 대통령을 비방했다는 이유로 상관모욕죄로 기소된 경우, 전직 대통령 비방 작품을 제작했다는 이유로 경범죄에 걸린 경우 등이다. 결국 ‘표현의 자유’를 누리지 못한 ‘사회적 약자’를 변호했다기보다 민변의 ‘정치적 성향’과 부합하는 ‘범죄 혐의자’를 고른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도 크게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 때문에 ‘쫄지마 기금’의 용도가 법을 위반했느냐 여부를 놓고 벌이는 논란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변 측은 4월 초 보수단체의 고발 이후 이메일과 전화로 수차례에 걸쳐 관련 답변을 요청하는 기자에게 “《조선》에는 답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당시 기부금품 모집을 담당했던 민변 이수미 총무간사 역시 “공익변론기금 내용은 후원자들에게 뉴스레터를 통해 안내하고 있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민변은 현재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피고인 유우성씨와 내란음모 사건 피고인인 이석기 의원의 변론도 맡고 있다. 민변 측은 두 사건 모두 “간첩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이 사건에도 기금을 사용했는지는 민변이 입을 다물고 있는 이상 확인되지 않는다. 민변의 1년 예산은 2013년 기준 6억7696만8231원(수입=지출 동일)이다. 연간 예산이 6억7000만원에 불과한 조직이 팟캐스트의 인기를 빌미로 5억원의 기금을 모아 쓰고 있는 것이다.
기부금품 모집단체 관련 주무부처인 서울시 행정국 시민지원팀에 기부금품 모집단체가 목적과 사용방법이 다를 때는 어떤 제재를 하는지, 과거 처벌받은 사례가 있는지 문의했다.
서울시 시민지원팀 김종환 팀장은 “현실적으로 등록 이후 기부금품의 사용방법을 일일이 점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고소고발건은 우리가 언급할 사안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안전행정부 민간협력과 담당자인 최시영 사무관 역시 “기부금품 모집 시 목적과 사용방법, 결산내역 등을 제출하게 돼 있지만 그것이 법률적 해석을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라는 답이었다.
◆ 이○○-상관모욕죄 현역 대위 이모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명박 대통령과 관련해 내곡동 사저 문제, 인천공항 매각 문제, BBK 문제 등에 대한 트윗을 올렸다. 군 검찰은 헌법상 대통령이 군통수권자인 만큼 대통령이 ‘상관’이라 주장했고, 일부 비속어와 ‘가카’, ‘맹박이’ 등의 표현을 모욕이라 주장했다. 이씨는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의 판결을 받아 불명예 제대했다. ◆ 김○○-공직선거법 위반 시민 김모씨는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인터넷 신문을 읽다가 기사에 댓글을 작성했다. 18대 대선 과정에서 토론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을 북한 지도자 그룹의 폐쇄적 상황에 빗대 비판하고 현실을 개탄하는 내용이었다. 김모씨는 특정 후보의 낙선을 위한 목적으로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후보자와 그 후보자의 직계존속, 형제자매를 비방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 이○-경범죄처벌법 중 불법광고물 부착 예술작가 이모씨는 전직 대통령과 정치인을 풍자하는 포스터를 붙여 경범죄처벌법 중 불법광고물 부착 혐의로 벌금형을 받았다. 이씨는 거리포스터부착작업은 수년 전부터 꾸준히 했던 예술행위 중 하나이고 정치인 아닌 일반적인 내용도 많았으며,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불법광고물을 붙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씨는 유독 정치인의 얼굴에 대해서만 예민하게 반응하고 법의 잣대로 처벌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김○○-공직선거법 위반 시민단체 경력자 김모씨는 안식년을 맞아 활동을 쉬고 있던 중 지인으로부터 야권연대 시국회의를 준비 중이니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김씨는 참가단체와 광고동참자를 취합하고 신문광고비를 걷었다. 광고문구 초안을 짜고 의견을 수렴해 신문사에 최종안을 보낸 사람도 김씨였다. 신문광고가 나가자마자 김씨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공직선거법 위반의 혐의가 있다며 출석요구를 받았고, 피고인에게 90만원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
법조계, “애매한 현행 기부금품법이 문제”
‘쫄지마기금’의 합법성 여부에 대한 법조인들의 입장은 어떨까. 기부금품법의 적용 범위는 법조계에서 적지 않게 논란이 돼 오고 있는 상태다. 진보성향의 변호사를 비롯한 법조계 인사들조차 민변 피고발 사건과 민변 활동의 정치 관련성 여부에 대해 ‘노코멘트’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부금에 의한 정치적 활동’이 금지되는 현행 기부금품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는 “현행 기부금품법은 영리와 정치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은 기부금품 모집 등록이 불가능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데, 과연 ‘정치활동’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아무도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사회활동에 대해 그런 올가미를 씌울 우려가 많다”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진보 혹은 야당 성향 단체의 정치활동과 관련된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 행위가 현행법을 위반할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박경신 교수는 현행 기부금품법이 정치적 표현 등의 활동을 금지하고 있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주장을 펼쳐 온 사람이다. 박 교수는 “현행 기부금품법은 종교, 영리, 정치적 목적의 기부금품 모집을 금지하고 정치자금법이나 종교단체 관련법에 의해서만 허용하고 있다”며 “기부금품 모집단체가 정치적인 이유로 법 위반으로 얽혀들 여지는 언제든지 있다”고 설명했다. 법조인들은 대체로 “공익변론기금이 정치활동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판단 아니겠느냐”며 “공익변론기금 고발과 소송의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고 그것마저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조차 있다”는 반응이었다.
기부금품 등록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업의 경우에만 할 수 있다. 이 경우 같은 사업을 위하여 둘 이상의 등록청에 등록하여서는 아니 된다. 1. 국제적으로 행하여지는 구제사업 2. 천재지변이나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재난(〈재난 및 안전 관리기본법〉 제3조 제1호 가목에 따른 재해는 제외한다)의 구휼사업(救恤事業) 3. 불우이웃돕기 등 자선사업 4. 영리 또는 정치·종교 활동이 아닌 사업으로서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업 가. 교육, 문화, 예술, 과학 등의 진흥을 위한 사업 나. 소비자 보호 등 건전한 경제활동에 관한 사업 다. 환경보전에 관한 사업 라. 사회적 약자의 권익 신장에 관한 사업 마. 보건·복지 증진을 위한 사업 바. 남북통일, 평화구축 등 국제교류·협력에 관한 사업 사. 시민참여, 자원봉사 등 건전한 시민사회 구축에 관한 사업 아. 그 밖에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 |
“간첩사건에 사용된다는 건 글쎄…”
기자 주변에도 민변 공익변론기금에 입금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나꼼수’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트위터 사용자들은 ‘나꼼수를 무료로 듣는 사람은 수백만 명인데 쫄지마기금에 참여한 사람은 수천 명에 불과하다’며 기금 참여를 독려했다. 소액을 입금했던 40대 직장인은 “표현의 자유를 위한 기금이라는 취지는 인정하지만 민변의 운영자금이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의 수임료로 사용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기금에 참여했던 20대 대학생은 “20대 대학생들은 정봉주 전 의원을 도와준다는 취지에 동감해 참여한 것이고, ‘쫄지마기금’이라고 생각했지 민변의 공익변론기금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생각해 보니 그 금액이 지나치게 컸고 어디에 사용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생각은 든다”고 말했다. 팟캐스트의 인기를 업고 시민으로부터 정치후원금 아닌 기부금 명목으로 수억 원을 모금해 쓰고 있는 민변. 어떤 사건에 얼마만큼의 돈을 썼는지 보다 분명하고 투명하게 해명을 해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