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한길 민주당 대표 “의료영리화 반드시 막겠다”
⊙ 저지특위 위원장 김용익 의원은 당시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 野圈, 제19대 총선 앞두고 한미 FTA, 제주해군기지 관련 말 바꾸기 前歷
⊙ 저지특위 위원장 김용익 의원은 당시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 野圈, 제19대 총선 앞두고 한미 FTA, 제주해군기지 관련 말 바꾸기 前歷
- 지난 1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의료영리화 저지와 국민건강권 수호를 위한 6개 보건의료단체 공동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민주당 김용익, 이언주 의원도 참석했다.
철도파업과 함께 2014년 초를 달군 이슈는 이른바 ‘의료민영화’ 논란이다. 정확히 말하면 원격(遠隔)진료와 의료법인 영리 자회사(子會社) 허용이 골자다. 원격진료는 원격의료(Telemedicine)의 일종이다. 원격의료란 원격진료는 물론 이미 많이 사용하는 PACS나 로봇수술 등을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원격진료는 말 그대로 환자가 의료기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 집이나 직장에서 IT 장비를 이용해 진료를 받고 처방받는 것을 뜻한다. 가령 산간벽지에서 환자가 생겨 멀리 떨어진 큰 병원의 처방이 필요할 경우, IT 장비를 활용해 환자의 정보를 큰 병원에 보내는 것이다. 이때 환자는 큰 병원으로부터 의료정보나 전문적인 조언을 원격으로 받을 수 있게 된다. 의료행정과 의학교육, 자문과 의뢰까지도 받을 수 있다.
아직 국내에서는 이런 서비스가 불가능하다. 환자-의사 간 원격진료를 불법으로 규정한 현행 의료법 때문이다. 현 의료법은 환자가 의사와 함께 있는 경우에만 다른 의사에게 원격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나마도 시범사업에 한해서만 허용된다.
국내 U헬스케어(유비쿼터스와 원격의료 기술을 활용한 건강관리 서비스)가 1988년부터 지금까지 50여 차례에 걸친 시범사업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본궤도에 오르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국의 경우 ‘엠디라이브케어닷컴(MDLive care.com)’ 등의 원격진료 사이트를 이용하면 환자들이 안방에서 웹 카메라 등을 통해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전자 처방전에 따라 인근 약국에서 약을 택배로 받을 수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원격진료 서비스를 도입할 경우,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20%가 원격진료를 이용한다고 봤을 때 2조원이 넘는 새로운 의료 시장이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최성환 유화증권 연구원은 “우리나라에서 고령화 현상이 급격히 진행되고 있지만, 의사 수는 부족하고 환자 관리 시설도 부족한 상황”이라며 “원격진료를 통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작년(2013년) 10월 29일 원격진료 허용을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현오석(玄旿錫)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월 14일 출입기자 신년간담회에서 “원격진료를 도입하면 농어촌 지역이나 섬·산골 등에 사시는 분, 연세가 많은 분, 장애 때문에 병원에 가기 힘든 분들이 혜택을 볼 것”이라며 “집에 있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쉽게 진찰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부의 4차 투자 활성화 대책
의료법인 영리 자회사 허용 논란은 정부가 지난 2013년 12월 13일 ‘4차 투자 활성화 대책’을 확정 발표하면서 불거졌다.
‘4차 투자 활성화 대책’에는 병원이 자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이 담겼다. 병원의 자회사 설립과 관련된 가이드라인을 제정(制定)해서 각종 부대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예컨대 현재 병원이 장례식장을 부대사업으로 하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장례식장을 자회사로 분리해 병원이 51%의 지분을 갖고 나머지 49%에 투자자를 모집할 수 있다. 규제를 풀고 영리사업을 허용해 의료인들이 식당과 장례식장 경영을 걱정하는 대신 환자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게 하는 취지라는 게 정부 측의 설명이다. 정부는 병원이 자회사로 수익을 확충하게 되면 그만큼 환자 부담도 줄어들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정부는 자회사 수익은 본업인 의료업에 80% 이상 재투자하도록 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서울대병원법인은 ‘(주)헬스커넥트’라는 자회사(자법인)가 있고 세브란스병원을 둔 연세학교법인은 의약품·의료용품을 파는 ‘(주)안연케어’를 가지고 있다. 반면 학교법인이 아닌 의료법인으로 분류되는 일반 병원들은 자법인을 둘 수 없으니 그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 그로 인한 이익은 환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거대 자본 체인 병원 등장으로 동네 병원 枯死할 것”
하지만 대한의사협회와 시민단체들은 “원격진료와 의료법인 영리 자회사 허용 방침이 결국 모든 동네의원을 영리병원으로 바꾸고 거대 자본의 체인 병원으로 만들어 고사하게 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은 원격의료 도입과 관련 “원격진료 허용은 환자를 앞세워 동네의원을 말살하려는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야기다.
“원격진료를 허용하게 되면 그것만을 전문으로 하는 의료기관이 출현할 것입니다. 이는 비윤리적인 진료 형태로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을 붕괴하는 대혼란을 초래할 것입니다. 또 동네의원과 대형병원이 외래 원격의료 환자를 두고 무차별 경쟁을 할 수밖에 없어 동네의원과 지방 중소병원이 줄도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정부는 원격의료를 도입하면 농어촌 지역이나 섬·산골 등에 사는 분, 연세가 많은 분, 장애 때문에 병원에 가기 어려운 분들이 혜택을 볼 것이라고 합니다.
“엄밀히 말해 대한민국에는 무의촌(無醫村)이 없습니다. 의사가 부족한 지역의 경우, 국방의 의무를 대신하는 공중보건의사들이 근무합니다. 도심 지역에서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도 많으니 이들을 재배치하거나 정부가 의사를 고용해 방문 진료를 하는 제도를 시행하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봅니다.”
—원격진료는 오진(誤診)의 위험이 매우 크다고 주장해 왔는데요.
“휴대폰이나 일반전화, 혹은 컴퓨터를 이용한 진료는 얼굴을 직접 보고 하는 진료보다 진료의 정확성이 크게 떨어집니다. 특히 ‘초진’의 경우, 그 위험은 더욱 큽니다. 오진의 결과는 환자의 몫입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원격진료를 법안의 문구대로 해석하면 컴퓨터 채팅 진료나 이메일 진료도 가능합니다. 오진의 위험성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정부는 원격진료는 허용한다고 하면서 원격조제는 여전히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원격진료를 통해 처방전을 받아 약을 타러 약국으로 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약국은 병의원 옆에 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도, 장애인도 그리고 섬 지역에 살고 계신 분들도 결국 병의원 근처로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정부가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을 추진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정형준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장도 “원격진료는 안전성과 의학적 효율성이 입증된 바 없다”며 “원격진료는 문진과 병력청취, 필요검사와 진단 순서를 무시하여 오진과 누락의 위험성이 크고, 현재의 기술로는 원격의료용 검사장비가 제한돼 있어 오진의 가능성이 크다. 해외에서도 원격진료의 의학적 안전성과 타당성, 효율성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했다.
“영리 子회사 허용, 의료비 증가로 이어질 것”
의료법인 영리 자회사 허용에 대해서도 노 회장은 “의료법인의 경영난은 원가 이하의 저수가(低酬價) 때문”이라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영리 자회사를 만들어 돈을 벌어 충당하라는 것은 편법을 권유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의료법인 영리 자회사가 설립되면 오너가 의료법인에서 번 돈을 이곳을 통해 합법적으로 외부로 가져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자회사가 기본적으로 병원 부대사업을 영위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익 추구 대상이 환자들일 수밖에 없다”며 “이는 곧 의료비 상승을 의미한다”고 했다.
병원의 수익은 결국 환자의 의료비인 만큼 병원의 수익이 늘어날수록 환자의 의료비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박형근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의료법인 영리 자회사 허용의) 본질은 영리 자회사 허용을 통해 의료법인을 사실상 영리 법인화한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김철신 대한치과의사협회 정책이사는 “정부가 추진하는 영리 자회사는 ▲인건비 절감을 위한 위임 진료 ▲비의료인의 의료행위 ▲과장·허위 광고와 과잉 진료로 인한 환자 진료비 증가 ▲비용절감을 위한 무허가 의료기기의 사용으로 국민건강 위협 ▲건강보험 진료를 외면하고 비급여 고가 진료에 집중하여 환자부담 증가 등의 폐해를 오히려 합법화하고 확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부가 원격의료와 의료법인 영리 자회사 허용 입장을 고수할 경우 투표를 통해 총파업(3월 3일)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다만 의사협회는 2000년 의약분업 반대 집단휴진 이후 정부와 갈등을 빚을 때마다 수시로 총파업(집단휴진) 카드를 꺼냈지만 이를 실행에 옮긴 경우는 거의 없다.
실제 의협이 총파업에 돌입하기란 쉽지 않다. 내부적으로 의사들의 의견이 갈리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의협 회원의 약 3분의 1(3만5000명)을 차지하는 동네 개업의들은 원격진료를 시행하면 환자의 대형병원 쏠림이 심해질 것이라며 반대하지만, 개원의보다 1만여 명 더 많은 종합병원 의사들은 개의치 않는 분위기라고 보도(2014년 1월 13일자)했다.
野圈도 한목소리
민주당 등 야권도 정부의 원격의료와 의료법인 영리 자회사 허용 방침을 의료영리화, 즉 의료민영화의 전(前) 단계로 규정하고 반드시 저지하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은 지난 1월 9일 의료영리화 저지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했다. 위원장으로 임명된 김용익(金容益) 의원은 “정부가 내놓은 정책의 공통적 특징은 의료로 돈을 벌라는 것”이라며 “민주당은 정부의 의료영리화 정책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도 지난 2월 5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의료영리화 정책을 반드시 막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영리화를 막는 일이 시급합니다. 의료영리화는 의료를 산업화하여 돈을 벌자는 정도의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 20년 동안 보건의료를 상업화하고 영리화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계속됐습니다만, 보건의료는 상업화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민주당의 방향입니다. 민주당은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다른 민간건강보험이 필요하지 않을 수준으로 높이고, 작년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여야 합의로 채택된 ‘공공의료 정상화를 위한 국정조사 보고서’가 실현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대변인이었던 천호선 정의당 대표 또한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허용은 의료법인으로 하여금 의료의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돈벌이 사업에 주력하게 할 것”이라며 “수서발 KTX가 민영화의 수순이라고 여겨지는 것처럼 영리 자회사도 민영화의 우회로라 할 수 있다. 또 많은 한계와 위험성을 가진 원격진료는 국민건강을 위협함은 물론 주민건강을 직접 살피는 동네병원을 무너뜨리고 대형병원의 독점을 초래하고 말 것이다. 고가의 장비에 환자 부담은 늘어나고, 이를 판매하는 삼성 등 몇몇 대기업에만 커다란 이득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했다.
의료비 怪談의 진실
의료영리화 논란이 증폭되면서 네이버와 다음 등 각 포털사이트에서는 의료비 폭등을 우려하는 각종 괴담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의 정책대로라면 맹장 수술비가 1500만원이 된다”는 식이다.
사실일까. 국회를 통해 보건복지부에 정부 정책과 의료민영화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괴담의 진실은 무엇인지 등 의문 가는 사안을 질의(質疑)했다.
보건복지부는 다음과 같은 답변서를 보내왔다.
—원격의료나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은 의료민영화를 초래해 맹장 수술비가 1500만원, 제왕절개 분만비가 2000만원으로 치솟을 거라는 얘기가 인터넷에 나돌고 있습니다.
“비싼 사보험에 가입한 환자는 진료받을 수 있고, 건강보험 환자는 진료를 제대로 못 받는 식의 의료민영화는 정부도 절대 반대입니다. 의료민영화란 건강보험 환자를 받을지 말지를 의료기관 스스로 선택하게 맡기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현재 추진하는 원격의료나 의료법인 자회사는 의료민영화와는 무관합니다. 또 국내 모든 의료기관과 국민이 건강보험에 의무 가입하고, 건강보험이 필수 의료서비스 비용을 관리하기 때문에 갑자기 진료비가 치솟는 일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의료법인 자회사는 외부 투자자 지분에 대해 수익 배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은 영리 병원을 허용하는 의료민영화 아닙니까.
“현재도 의료법인이 아닌 특수법인(서울대병원)이나 학교법인(세브란스병원)은 자회사 설립이 허용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번 조치는 경영난에 허덕이는 중소병원의 폐업을 예방하고, 경영을 개선함으로써 국민에게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지 의료민영화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의료법인 자회사가 설립되면 영리사업에만 치중해 환자 진료에 소홀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무분별한 자법인 설립을 막고, 공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운영될 수 있도록 ‘출자비율 제한’ 등의 안전장치를 마련할 계획이며, 사업의 종류 역시 의료법상 정해진 종류로 한정되기 때문에 본래의 목적인 환자 진료가 부실해질 염려는 없습니다.”
—원격의료는 결국 IT 기업들이 의료사업에 뛰어들어 돈 벌게 허용하는 것 아닙니까.
“원격의료가 도입되더라도 건강보험을 적용해 환자의 의료비 부담은 늘지 않습니다.”
—원격의료의 최대 문제는 오진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원격의료는 의학적 위험이 낮은 가벼운 질환 위주의 재진 환자 진료를 원칙으로 한다는 것이 정부 입장입니다. 노인·장애인 등 일부에 허용된 초진은 환자의 건강 상태를 잘 아는 의사에 한해 허용할 계획입니다.”
盧武鉉 정부 의료산업 선진화 전략 문건
원격진료,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 도입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다. 찬성론자와 반대론자 모두가 나름의 객관적 논리를 근거로 들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민주당 등 야권이 당력을 모아 저지하려는 원격진료와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은 노무현 정부에서도 추진하려고 했던 정책이라는 것이다. 《월간조선》이 입수한 ‘참여정부 의료산업 선진화 전략’ 문건에는 이러한 사실이 잘 나타나 있다. 총 62페이지로 이뤄진 이 문건은 2006년 7월 11일 ‘대통령자문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가 작성했다. ‘대통령자문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는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핵심 공약인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추진하는 등 의료 정책을 총괄한 컨트롤 타워였다.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 도입과 관련한 내용은 보고서 49~50페이지에 담겨 있다.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사업 다각화를 위한 부대·수익사업 확대
-회계투명성이 확보된 의료법인부터 수익사업의 단계적 허용
-환자 진료와 관계없는 수익사업에 대해서는 기업회계에 준하는 회계투명성 기준을 적용받는 의료기관에서부터 단계적으로 허용
-의료·복지 연계 서비스, 의료기관 해외진출, 관광사업·바이오 연구사업 등의 수익사업을 통해 산업연관 효과 극대화 도모
-수익용 재산에 대해 별도회계로 구분 경리하도록 하고 수익사업의 소득은 의료업에 재투자하도록 규정
▲인수·합병 절차 마련 및 소규모 병상 시설 및 인력기준 강화
-의료법인 간 소관 지자체가 다른 경우, 용도변경이 필요한 경우 등에 경직적 법 적용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절차를 간소화하고, 자율적 합병계획을 존중하도록 하는 규정 마련
-소규모 병상 시설·인력 기준 강화를 통해 규모의 경제 유도>
원격의료와 관련해서는 61페이지에 언급됐다.
<▲원격의료 제도 보완
-현행 의료법에서 가능한 의료인 사이의 원격의료 활성화 유도
-현재 금지되고 있는 의사와 환자 간의 원격의료는 시범사업을 통해 안전성, 책임성 및 비용-효과성 등에 대한 검증 실시
▲소비자 건강정보 제공
-검증된 건강, 의학정보를 개발·제공하는 등 국민에게 안전하고 양질의 건강정보를 종합적으로 서비스하기 위한 체계 마련>
문건 내용을 보면 현 정부의 정책과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당시 정책이 의료영리화 및 민영화에 더 가까워 보인다.
현 정부는 의료법인 아닌 자회사가 부대사업을 하되 의료행위가 아닌 사업 부문에서 제한적으로 수익사업을 허용하도록 하고 있는데 반해 노무현 정부 보고서는 의료법인이 직접 수익사업을 하도록 했다. 또 현 정부는 원격진료의 대상을 거동이 불편하거나 노인·장애인, 벽오지 주민 등으로 제한하고 중증질환자가 아닌 감기 등 경증 환자로 한정했지만 노무현 정부 보고서는 원격진료의 범위를 특정하지 않았다.
민주당 저지특위 김용익 의원이 원격의료 추진 주역
흥미로운 점은 현재 민주당 의료영리화 저지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김용익 의원이 문건이 만들어질 당시 노무현 정부에서 사회정책수석(2006년 2월~2008년 2월)직을 수행하면서 ‘원격의료,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 도입’ 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논란이 일자 김 의원은 “내가 하면 의료선진화고 남이 하면 의료영리화라는 따위의 견강부회를 할 생각이 전혀 없다”며 “의료영리화는 내가 했건 남이 했건 잘못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의 공세를 피하지 않겠다는 의도다. 김 의원은 “참여정부에서 추진한 의료영리화 정책이 잘못된 것이었으며 당시 청와대 사회정책수석비서관이던 나에게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이 있음을 밝히고 사과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의원의 ‘속죄’로 노무현 정부와 민주당(당시 열린우리당)이 추진했던 의료영리화 정책이 ‘없던 일’이 될 수는 없다.
노무현 정부 초기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지낸 김성재 전 의원은 지난 2010년 인터넷 신문인 《프레시안》에 실린 ‘시동 걸린 의료민영화, 막을 방법은?’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에 이렇게 썼다.
<참여정부는 신자유주의를 추종하여 의료산업화란 이름으로 의료민영화를 추진하였는데, 경제자유구역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외국인 영리법인 병원(주식회사 병원)이 내국인을 진료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으며, 보험업법을 개정하여 생명보험회사도 ‘실손’형 의료보험 상품을 판매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생명보험업계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서민을 위한 희망과 눈물을 아이콘으로 해서 당선되고 출범한 참여정부가 서민과 지지자를 배반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의료민영화의 추진은 참여정부 후반기 들어 의료민영화 법안의 국회 제출로 대미를 장식하게 되는데, 이는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이 추진한 일이다.>
참고로 앞서 박근혜 정부의 의료영리화 정책을 의료민영화로 간주해 반대 입장을 밝힌 정의당의 천호선 대표는 문건이 작성된 2006년 7월 11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 의전비서관(2005년 8월 12일~2006년 8월)이었다.
문건을 만든 대통령 자문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는 2005년 10월에 발족했는데 당시 위원장은 국무총리였던 이해찬(李海瓚) 민주당 의원이었다. 문건이 작성된 2006년 7월에는 이 의원의 후임 국무총리였던 한명숙(韓明淑) 민주당 의원이 위원장직을 수행 중이었다.
노무현 정권의 의료영리화 정책은 고(故) 김근태(金槿泰) 전 의원 등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는 노무현 정부 때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다.
정권교체와 함께 ‘소신’까지 바꾼 민주당
시계추를 정확히 2년 전인 2012년 1월 15일로 되돌려보자. 제19대 총선(4월 11일)을 앞두고 당시 민주통합당(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새 대표로 당선된 한명숙 의원은 “오는 4·11 총선에서 승리해 한미 FTA를 반드시 폐기하겠다”고 했다.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정동영(鄭東泳) 전 통일부 장관도 “참여정부에 원죄가 있는 부분에 대해선 잘못을 인정하고 고쳐나가겠다고 하는 것이 국민의 신뢰를 얻는 첩경”이라며 ‘한미 FTA 무효’를 주장했다. 노무현 정부 때 타결된 한미 FTA를 부정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노무현 정부 때는 한미 FTA로 인한 경제적 실익이 크고 앞으로의 한미 관계도 돈독해질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한 의원은 지난 2007년 2월 3일 국무총리 자격으로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코리아 소사이어티 50주년’ 기념 만찬에 참석한 자리에서 “한미 FTA는 우리에게 또 다른 도전”이라며 “이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할 때 한미관계는 한 단계 발전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미 FTA는 양국 경제에 커다란 활력소가 되는 것은 물론, 한미동맹 강화와 지역 안정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FTA 등 여러 분야에서) 긍정적 여론을 만드는 데 힘써주기를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지난 2006년 3월 17일 열린우리당 의장으로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美) 대사를 면담한 자리에서 “FTA가 완성되면 향후 50년간 관계를 지탱시켜 줄 중요한 기둥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4월 13일에는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를 만나 “한미 FTA가 필요하고 유용하다는 (정부와 여당의) 콘센서스(consensus)가 있다”고도 했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한 의원 등은 노 전 대통령이 지난 2007년 6월 제주도 평화포럼에서 “제주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해군이 필요하며 제주 해군기지는 예방적 군사기지”라며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했을 때에는 맞장구를 쳤지만, 정권이 바뀌자 이정희(李正姬) 통합진보당 대표와 함께 해군기지 반대시위를 벌였다(2012년 3월 7일).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위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통적 지지기반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미 FTA,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의료영리화 정책을 추진하거나 추진하려고 했던 것은 좌파 논리로만 국가를 운영할 경우 나라가 결딴날 수도 있겠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라며 “그때 노 전 대통령의 정책에 찬성했던 사람들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반대로 돌아선 것은 표 때문이다.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이 내부의 반대에도 이런 정책을 밀어붙였는지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치인이든 누구든 생각을 바꿀 순 있다. 그러나 적어도 왜 생각이 바뀌었는지를 국민에 설명하는 게 도리일 터인데, 지금 민주당에선 그런 걸 찾을 수 없다.⊙
원격진료는 말 그대로 환자가 의료기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 집이나 직장에서 IT 장비를 이용해 진료를 받고 처방받는 것을 뜻한다. 가령 산간벽지에서 환자가 생겨 멀리 떨어진 큰 병원의 처방이 필요할 경우, IT 장비를 활용해 환자의 정보를 큰 병원에 보내는 것이다. 이때 환자는 큰 병원으로부터 의료정보나 전문적인 조언을 원격으로 받을 수 있게 된다. 의료행정과 의학교육, 자문과 의뢰까지도 받을 수 있다.
아직 국내에서는 이런 서비스가 불가능하다. 환자-의사 간 원격진료를 불법으로 규정한 현행 의료법 때문이다. 현 의료법은 환자가 의사와 함께 있는 경우에만 다른 의사에게 원격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나마도 시범사업에 한해서만 허용된다.
국내 U헬스케어(유비쿼터스와 원격의료 기술을 활용한 건강관리 서비스)가 1988년부터 지금까지 50여 차례에 걸친 시범사업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본궤도에 오르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국의 경우 ‘엠디라이브케어닷컴(MDLive care.com)’ 등의 원격진료 사이트를 이용하면 환자들이 안방에서 웹 카메라 등을 통해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전자 처방전에 따라 인근 약국에서 약을 택배로 받을 수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원격진료 서비스를 도입할 경우,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20%가 원격진료를 이용한다고 봤을 때 2조원이 넘는 새로운 의료 시장이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최성환 유화증권 연구원은 “우리나라에서 고령화 현상이 급격히 진행되고 있지만, 의사 수는 부족하고 환자 관리 시설도 부족한 상황”이라며 “원격진료를 통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작년(2013년) 10월 29일 원격진료 허용을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현오석(玄旿錫)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월 14일 출입기자 신년간담회에서 “원격진료를 도입하면 농어촌 지역이나 섬·산골 등에 사시는 분, 연세가 많은 분, 장애 때문에 병원에 가기 힘든 분들이 혜택을 볼 것”이라며 “집에 있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쉽게 진찰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부의 4차 투자 활성화 대책
의료법인 영리 자회사 허용 논란은 정부가 지난 2013년 12월 13일 ‘4차 투자 활성화 대책’을 확정 발표하면서 불거졌다.
‘4차 투자 활성화 대책’에는 병원이 자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이 담겼다. 병원의 자회사 설립과 관련된 가이드라인을 제정(制定)해서 각종 부대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예컨대 현재 병원이 장례식장을 부대사업으로 하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장례식장을 자회사로 분리해 병원이 51%의 지분을 갖고 나머지 49%에 투자자를 모집할 수 있다. 규제를 풀고 영리사업을 허용해 의료인들이 식당과 장례식장 경영을 걱정하는 대신 환자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게 하는 취지라는 게 정부 측의 설명이다. 정부는 병원이 자회사로 수익을 확충하게 되면 그만큼 환자 부담도 줄어들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정부는 자회사 수익은 본업인 의료업에 80% 이상 재투자하도록 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서울대병원법인은 ‘(주)헬스커넥트’라는 자회사(자법인)가 있고 세브란스병원을 둔 연세학교법인은 의약품·의료용품을 파는 ‘(주)안연케어’를 가지고 있다. 반면 학교법인이 아닌 의료법인으로 분류되는 일반 병원들은 자법인을 둘 수 없으니 그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 그로 인한 이익은 환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거대 자본 체인 병원 등장으로 동네 병원 枯死할 것”
 |
|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 |
“원격진료를 허용하게 되면 그것만을 전문으로 하는 의료기관이 출현할 것입니다. 이는 비윤리적인 진료 형태로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을 붕괴하는 대혼란을 초래할 것입니다. 또 동네의원과 대형병원이 외래 원격의료 환자를 두고 무차별 경쟁을 할 수밖에 없어 동네의원과 지방 중소병원이 줄도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정부는 원격의료를 도입하면 농어촌 지역이나 섬·산골 등에 사는 분, 연세가 많은 분, 장애 때문에 병원에 가기 어려운 분들이 혜택을 볼 것이라고 합니다.
“엄밀히 말해 대한민국에는 무의촌(無醫村)이 없습니다. 의사가 부족한 지역의 경우, 국방의 의무를 대신하는 공중보건의사들이 근무합니다. 도심 지역에서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도 많으니 이들을 재배치하거나 정부가 의사를 고용해 방문 진료를 하는 제도를 시행하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봅니다.”
—원격진료는 오진(誤診)의 위험이 매우 크다고 주장해 왔는데요.
“휴대폰이나 일반전화, 혹은 컴퓨터를 이용한 진료는 얼굴을 직접 보고 하는 진료보다 진료의 정확성이 크게 떨어집니다. 특히 ‘초진’의 경우, 그 위험은 더욱 큽니다. 오진의 결과는 환자의 몫입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원격진료를 법안의 문구대로 해석하면 컴퓨터 채팅 진료나 이메일 진료도 가능합니다. 오진의 위험성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정부는 원격진료는 허용한다고 하면서 원격조제는 여전히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원격진료를 통해 처방전을 받아 약을 타러 약국으로 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약국은 병의원 옆에 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도, 장애인도 그리고 섬 지역에 살고 계신 분들도 결국 병의원 근처로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정부가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을 추진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정형준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장도 “원격진료는 안전성과 의학적 효율성이 입증된 바 없다”며 “원격진료는 문진과 병력청취, 필요검사와 진단 순서를 무시하여 오진과 누락의 위험성이 크고, 현재의 기술로는 원격의료용 검사장비가 제한돼 있어 오진의 가능성이 크다. 해외에서도 원격진료의 의학적 안전성과 타당성, 효율성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했다.
“영리 子회사 허용, 의료비 증가로 이어질 것”
의료법인 영리 자회사 허용에 대해서도 노 회장은 “의료법인의 경영난은 원가 이하의 저수가(低酬價) 때문”이라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영리 자회사를 만들어 돈을 벌어 충당하라는 것은 편법을 권유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의료법인 영리 자회사가 설립되면 오너가 의료법인에서 번 돈을 이곳을 통해 합법적으로 외부로 가져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자회사가 기본적으로 병원 부대사업을 영위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익 추구 대상이 환자들일 수밖에 없다”며 “이는 곧 의료비 상승을 의미한다”고 했다.
병원의 수익은 결국 환자의 의료비인 만큼 병원의 수익이 늘어날수록 환자의 의료비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박형근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의료법인 영리 자회사 허용의) 본질은 영리 자회사 허용을 통해 의료법인을 사실상 영리 법인화한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김철신 대한치과의사협회 정책이사는 “정부가 추진하는 영리 자회사는 ▲인건비 절감을 위한 위임 진료 ▲비의료인의 의료행위 ▲과장·허위 광고와 과잉 진료로 인한 환자 진료비 증가 ▲비용절감을 위한 무허가 의료기기의 사용으로 국민건강 위협 ▲건강보험 진료를 외면하고 비급여 고가 진료에 집중하여 환자부담 증가 등의 폐해를 오히려 합법화하고 확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부가 원격의료와 의료법인 영리 자회사 허용 입장을 고수할 경우 투표를 통해 총파업(3월 3일)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다만 의사협회는 2000년 의약분업 반대 집단휴진 이후 정부와 갈등을 빚을 때마다 수시로 총파업(집단휴진) 카드를 꺼냈지만 이를 실행에 옮긴 경우는 거의 없다.
실제 의협이 총파업에 돌입하기란 쉽지 않다. 내부적으로 의사들의 의견이 갈리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의협 회원의 약 3분의 1(3만5000명)을 차지하는 동네 개업의들은 원격진료를 시행하면 환자의 대형병원 쏠림이 심해질 것이라며 반대하지만, 개원의보다 1만여 명 더 많은 종합병원 의사들은 개의치 않는 분위기라고 보도(2014년 1월 13일자)했다.
野圈도 한목소리
 |
| 민주당 김용익·김현미·이언주 의원은 1월 14일 ‘박근혜 정부 의료영리화 정책 진단 토론회’를 공동으로 개최했다. |
민주당은 지난 1월 9일 의료영리화 저지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했다. 위원장으로 임명된 김용익(金容益) 의원은 “정부가 내놓은 정책의 공통적 특징은 의료로 돈을 벌라는 것”이라며 “민주당은 정부의 의료영리화 정책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도 지난 2월 5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의료영리화 정책을 반드시 막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영리화를 막는 일이 시급합니다. 의료영리화는 의료를 산업화하여 돈을 벌자는 정도의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 20년 동안 보건의료를 상업화하고 영리화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계속됐습니다만, 보건의료는 상업화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민주당의 방향입니다. 민주당은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다른 민간건강보험이 필요하지 않을 수준으로 높이고, 작년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여야 합의로 채택된 ‘공공의료 정상화를 위한 국정조사 보고서’가 실현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대변인이었던 천호선 정의당 대표 또한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허용은 의료법인으로 하여금 의료의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돈벌이 사업에 주력하게 할 것”이라며 “수서발 KTX가 민영화의 수순이라고 여겨지는 것처럼 영리 자회사도 민영화의 우회로라 할 수 있다. 또 많은 한계와 위험성을 가진 원격진료는 국민건강을 위협함은 물론 주민건강을 직접 살피는 동네병원을 무너뜨리고 대형병원의 독점을 초래하고 말 것이다. 고가의 장비에 환자 부담은 늘어나고, 이를 판매하는 삼성 등 몇몇 대기업에만 커다란 이득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했다.
의료비 怪談의 진실
의료영리화 논란이 증폭되면서 네이버와 다음 등 각 포털사이트에서는 의료비 폭등을 우려하는 각종 괴담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의 정책대로라면 맹장 수술비가 1500만원이 된다”는 식이다.
사실일까. 국회를 통해 보건복지부에 정부 정책과 의료민영화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괴담의 진실은 무엇인지 등 의문 가는 사안을 질의(質疑)했다.
보건복지부는 다음과 같은 답변서를 보내왔다.
—원격의료나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은 의료민영화를 초래해 맹장 수술비가 1500만원, 제왕절개 분만비가 2000만원으로 치솟을 거라는 얘기가 인터넷에 나돌고 있습니다.
“비싼 사보험에 가입한 환자는 진료받을 수 있고, 건강보험 환자는 진료를 제대로 못 받는 식의 의료민영화는 정부도 절대 반대입니다. 의료민영화란 건강보험 환자를 받을지 말지를 의료기관 스스로 선택하게 맡기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현재 추진하는 원격의료나 의료법인 자회사는 의료민영화와는 무관합니다. 또 국내 모든 의료기관과 국민이 건강보험에 의무 가입하고, 건강보험이 필수 의료서비스 비용을 관리하기 때문에 갑자기 진료비가 치솟는 일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의료법인 자회사는 외부 투자자 지분에 대해 수익 배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은 영리 병원을 허용하는 의료민영화 아닙니까.
“현재도 의료법인이 아닌 특수법인(서울대병원)이나 학교법인(세브란스병원)은 자회사 설립이 허용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번 조치는 경영난에 허덕이는 중소병원의 폐업을 예방하고, 경영을 개선함으로써 국민에게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지 의료민영화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의료법인 자회사가 설립되면 영리사업에만 치중해 환자 진료에 소홀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무분별한 자법인 설립을 막고, 공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운영될 수 있도록 ‘출자비율 제한’ 등의 안전장치를 마련할 계획이며, 사업의 종류 역시 의료법상 정해진 종류로 한정되기 때문에 본래의 목적인 환자 진료가 부실해질 염려는 없습니다.”
—원격의료는 결국 IT 기업들이 의료사업에 뛰어들어 돈 벌게 허용하는 것 아닙니까.
“원격의료가 도입되더라도 건강보험을 적용해 환자의 의료비 부담은 늘지 않습니다.”
—원격의료의 최대 문제는 오진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원격의료는 의학적 위험이 낮은 가벼운 질환 위주의 재진 환자 진료를 원칙으로 한다는 것이 정부 입장입니다. 노인·장애인 등 일부에 허용된 초진은 환자의 건강 상태를 잘 아는 의사에 한해 허용할 계획입니다.”
盧武鉉 정부 의료산업 선진화 전략 문건
 |
|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7월 11일 오후 청와대에서 의료산업 선진화 전략 보고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과 함께 회의실로 가고 있다. |
다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민주당 등 야권이 당력을 모아 저지하려는 원격진료와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은 노무현 정부에서도 추진하려고 했던 정책이라는 것이다. 《월간조선》이 입수한 ‘참여정부 의료산업 선진화 전략’ 문건에는 이러한 사실이 잘 나타나 있다. 총 62페이지로 이뤄진 이 문건은 2006년 7월 11일 ‘대통령자문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가 작성했다. ‘대통령자문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는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핵심 공약인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추진하는 등 의료 정책을 총괄한 컨트롤 타워였다.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 도입과 관련한 내용은 보고서 49~50페이지에 담겨 있다.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사업 다각화를 위한 부대·수익사업 확대
-회계투명성이 확보된 의료법인부터 수익사업의 단계적 허용
-환자 진료와 관계없는 수익사업에 대해서는 기업회계에 준하는 회계투명성 기준을 적용받는 의료기관에서부터 단계적으로 허용
-의료·복지 연계 서비스, 의료기관 해외진출, 관광사업·바이오 연구사업 등의 수익사업을 통해 산업연관 효과 극대화 도모
-수익용 재산에 대해 별도회계로 구분 경리하도록 하고 수익사업의 소득은 의료업에 재투자하도록 규정
▲인수·합병 절차 마련 및 소규모 병상 시설 및 인력기준 강화
-의료법인 간 소관 지자체가 다른 경우, 용도변경이 필요한 경우 등에 경직적 법 적용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절차를 간소화하고, 자율적 합병계획을 존중하도록 하는 규정 마련
-소규모 병상 시설·인력 기준 강화를 통해 규모의 경제 유도>
원격의료와 관련해서는 61페이지에 언급됐다.
<▲원격의료 제도 보완
-현행 의료법에서 가능한 의료인 사이의 원격의료 활성화 유도
-현재 금지되고 있는 의사와 환자 간의 원격의료는 시범사업을 통해 안전성, 책임성 및 비용-효과성 등에 대한 검증 실시
▲소비자 건강정보 제공
-검증된 건강, 의학정보를 개발·제공하는 등 국민에게 안전하고 양질의 건강정보를 종합적으로 서비스하기 위한 체계 마련>
문건 내용을 보면 현 정부의 정책과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당시 정책이 의료영리화 및 민영화에 더 가까워 보인다.
현 정부는 의료법인 아닌 자회사가 부대사업을 하되 의료행위가 아닌 사업 부문에서 제한적으로 수익사업을 허용하도록 하고 있는데 반해 노무현 정부 보고서는 의료법인이 직접 수익사업을 하도록 했다. 또 현 정부는 원격진료의 대상을 거동이 불편하거나 노인·장애인, 벽오지 주민 등으로 제한하고 중증질환자가 아닌 감기 등 경증 환자로 한정했지만 노무현 정부 보고서는 원격진료의 범위를 특정하지 않았다.
민주당 저지특위 김용익 의원이 원격의료 추진 주역
 |
| 김용익 민주당 의원. |
논란이 일자 김 의원은 “내가 하면 의료선진화고 남이 하면 의료영리화라는 따위의 견강부회를 할 생각이 전혀 없다”며 “의료영리화는 내가 했건 남이 했건 잘못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의 공세를 피하지 않겠다는 의도다. 김 의원은 “참여정부에서 추진한 의료영리화 정책이 잘못된 것이었으며 당시 청와대 사회정책수석비서관이던 나에게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이 있음을 밝히고 사과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의원의 ‘속죄’로 노무현 정부와 민주당(당시 열린우리당)이 추진했던 의료영리화 정책이 ‘없던 일’이 될 수는 없다.
노무현 정부 초기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지낸 김성재 전 의원은 지난 2010년 인터넷 신문인 《프레시안》에 실린 ‘시동 걸린 의료민영화, 막을 방법은?’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에 이렇게 썼다.
<참여정부는 신자유주의를 추종하여 의료산업화란 이름으로 의료민영화를 추진하였는데, 경제자유구역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외국인 영리법인 병원(주식회사 병원)이 내국인을 진료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으며, 보험업법을 개정하여 생명보험회사도 ‘실손’형 의료보험 상품을 판매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생명보험업계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서민을 위한 희망과 눈물을 아이콘으로 해서 당선되고 출범한 참여정부가 서민과 지지자를 배반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의료민영화의 추진은 참여정부 후반기 들어 의료민영화 법안의 국회 제출로 대미를 장식하게 되는데, 이는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이 추진한 일이다.>
참고로 앞서 박근혜 정부의 의료영리화 정책을 의료민영화로 간주해 반대 입장을 밝힌 정의당의 천호선 대표는 문건이 작성된 2006년 7월 11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 의전비서관(2005년 8월 12일~2006년 8월)이었다.
문건을 만든 대통령 자문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는 2005년 10월에 발족했는데 당시 위원장은 국무총리였던 이해찬(李海瓚) 민주당 의원이었다. 문건이 작성된 2006년 7월에는 이 의원의 후임 국무총리였던 한명숙(韓明淑) 민주당 의원이 위원장직을 수행 중이었다.
노무현 정권의 의료영리화 정책은 고(故) 김근태(金槿泰) 전 의원 등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는 노무현 정부 때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다.
정권교체와 함께 ‘소신’까지 바꾼 민주당
시계추를 정확히 2년 전인 2012년 1월 15일로 되돌려보자. 제19대 총선(4월 11일)을 앞두고 당시 민주통합당(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새 대표로 당선된 한명숙 의원은 “오는 4·11 총선에서 승리해 한미 FTA를 반드시 폐기하겠다”고 했다.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정동영(鄭東泳) 전 통일부 장관도 “참여정부에 원죄가 있는 부분에 대해선 잘못을 인정하고 고쳐나가겠다고 하는 것이 국민의 신뢰를 얻는 첩경”이라며 ‘한미 FTA 무효’를 주장했다. 노무현 정부 때 타결된 한미 FTA를 부정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노무현 정부 때는 한미 FTA로 인한 경제적 실익이 크고 앞으로의 한미 관계도 돈독해질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한 의원은 지난 2007년 2월 3일 국무총리 자격으로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코리아 소사이어티 50주년’ 기념 만찬에 참석한 자리에서 “한미 FTA는 우리에게 또 다른 도전”이라며 “이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할 때 한미관계는 한 단계 발전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미 FTA는 양국 경제에 커다란 활력소가 되는 것은 물론, 한미동맹 강화와 지역 안정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FTA 등 여러 분야에서) 긍정적 여론을 만드는 데 힘써주기를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지난 2006년 3월 17일 열린우리당 의장으로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美) 대사를 면담한 자리에서 “FTA가 완성되면 향후 50년간 관계를 지탱시켜 줄 중요한 기둥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4월 13일에는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를 만나 “한미 FTA가 필요하고 유용하다는 (정부와 여당의) 콘센서스(consensus)가 있다”고도 했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한 의원 등은 노 전 대통령이 지난 2007년 6월 제주도 평화포럼에서 “제주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해군이 필요하며 제주 해군기지는 예방적 군사기지”라며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했을 때에는 맞장구를 쳤지만, 정권이 바뀌자 이정희(李正姬) 통합진보당 대표와 함께 해군기지 반대시위를 벌였다(2012년 3월 7일).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위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통적 지지기반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미 FTA,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의료영리화 정책을 추진하거나 추진하려고 했던 것은 좌파 논리로만 국가를 운영할 경우 나라가 결딴날 수도 있겠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라며 “그때 노 전 대통령의 정책에 찬성했던 사람들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반대로 돌아선 것은 표 때문이다.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이 내부의 반대에도 이런 정책을 밀어붙였는지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치인이든 누구든 생각을 바꿀 순 있다. 그러나 적어도 왜 생각이 바뀌었는지를 국민에 설명하는 게 도리일 터인데, 지금 민주당에선 그런 걸 찾을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