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과징금 부과는 결국 소송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로펌 좋은 일만 시키는 격… 공정위 출신 로펌 인사들과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닌가.”
⊙ 매년 공정위 부과 과징금의 90% 이상 소송당해… 올해도 정유사 등 줄소송 예고
⊙ 2010년 부과 과징금 총 6081억원, 올해는 5월말 현재 벌써 6000억원 넘어서
⊙ 2008년 이후 공정위 출신 고위직의 절반이 로펌행
⊙ 과징금 부과기준 공정위 입맛대로… “과징금은 국민에게 가하는 금전적 제재,
공정위 전권이 아닌 법률로 규정해야”(국회예산정책처 관계자)
⊙ 공정위, “공정위 퇴직자가 자리 잡은 로펌과 공정위의 ‘밀월’이란 지나친 비약”
⊙ 매년 공정위 부과 과징금의 90% 이상 소송당해… 올해도 정유사 등 줄소송 예고
⊙ 2010년 부과 과징금 총 6081억원, 올해는 5월말 현재 벌써 6000억원 넘어서
⊙ 2008년 이후 공정위 출신 고위직의 절반이 로펌행
⊙ 과징금 부과기준 공정위 입맛대로… “과징금은 국민에게 가하는 금전적 제재,
공정위 전권이 아닌 법률로 규정해야”(국회예산정책처 관계자)
⊙ 공정위, “공정위 퇴직자가 자리 잡은 로펌과 공정위의 ‘밀월’이란 지나친 비약”
- 서울 서초동 공정거래위원회 청사.
기업인들이 ‘과징금 폭탄’을 뿌려대는 공정거래위원회에 분노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8년 2728억원이었던 과징금을 2009년 3710억원, 2010년 6081억원으로 늘린 데 이어 올들어서는 5월 말 현재까지 벌써 60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기업들에 부과, ‘과징금 연 1조원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특히 5월에는 4개 정유사(SK,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에 ‘주유소 확보경쟁 자제 담합 혐의’를 들어 434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해 정유사들의 즉각 반발을 불러 왔다. 앞으로 정유사들의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고 때에 따라선 공정위-정유사 간 전면전도 예상된다. 정유사들은 2009년 말 LPG 공급 공동행위 혐의로 409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데 이어 또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접하고 “해도 너무한다. 이게 정상적인 나라냐”며 분을 삼키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과징금이 많아서가 아니다. 근거가 명확하지도 않은 천문학적인 거액 과징금 때문에 소모적인 법정 소송에 나서야 하는 데다, 공정위 고위직 출신자가 자리 잡은 로펌과 손잡은 정유사는 과징금을 면제받는 ‘공정하지 못한 듯한’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어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남의 공정성을 따지기 앞서 정말 자기들 일에 관해서 공정하게 처리하고 있는 것일까.
매년 부과금 90% 이상이 소송 휘말려
최근 몇 년간 공정위 과징금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관련 소송도 줄을 잇고 있다. 2007년 이후 부과된 거의 대부분의 부과액에 대해 소송이 제기됐다. 2007년에는 과징금의 96.1%, 2008년 82.1%에 대해 행정소송이 제기됐으며 2009년에도 94.9%의 금액에 대해 소송이 제기됐다고 국회예산정책처는 분석했다. 2010년에는 금액기준 소(訴) 제기율은 아직 집계되지 않았으나, 건수(件數)기준 소송 제기율은 2009년보다 0.9%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 2010년에도 90% 이상의 금액에 대해 소송이 제기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공정위가 계속된 소송과 이에 대한 외부의 따가운 지적에도 불구하고 과징금 부과에 별다른 브레이크를 걸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는 2003년부터 매년 공정위의 과징금 환급 및 감액규모, 지나치게 많은 소송률 등을 문제 삼고, 국회의 결산 시정요구에 이를 포함해 왔다. 2007년 감액 및 환급액은 1304억원, 2008년 1201억원(감액 및 환급률 44%), 2009년 1882억원(51%)에 달했다. 공정위는 징수 후 이 금액을 환급하느라 이자만 연 200억~300억원을 지급해야 했다.
환급 및 감액의 원인은 대부분 행정소송에서 패소 혹은 부분 패소했기 때문이다. 공정위 제재조치가 법원에 제소됐을 때 부분 패소율이 30%를 훨씬 넘고, 완전 패소율도 10%에 이른다.
국회예산정책처 관계자는 “매년 당초 부과액의 30% 넘게 환급 및 감액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연례적 지적에도 불구하고 과징금 환급 규모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것은 과징금과 관련된 부과 체계와 행태, 금액산정 기준, 소송대응 등에 대해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매년 수천억 원이 징수되는 과징금은 어디에 사용될까. 과징금은 국가 세입예산의 일부로 국고에 귀속돼 국가 세출예산의 재원으로 사용된다. 목적세가 아니기 때문에 특정한 용도에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과징금을 많이 걷는다고 해서 공정위 자체가 풍족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또 지나치게 많이 부과해서 소송당해 패소할 경우 이자까지 물어내야 하기 때문에 세수(稅收)를 위해서라면 굳이 많이 부과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늘 소송에 휘말리고 매년 국회의 지적을 받으면서도 이렇게 무리한 과징금을 계속해서 부과하고 있는 것이다.
과징금 부과 기준은 법령 아닌 고시
공정위의 원래 기능은 공정거래법 등 위반사건에 대해 심판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공정위 전성복 정책홍보관은 “공정위는 준(準)사법적 기관으로, 위원장 이하 위원들이 참석하는 전원회의에서 무혐의결정 또는 시정조치(명령, 과징금, 검찰고발 등)를 결정해 집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의 정보공개를 토대로 사건처리 절차를 살펴보면 철저하게 공정위 내에서 독립적으로 이뤄진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이나 하도급법, 전자거래와 가맹사업 등 기업 관련법 위반 혐의가 있는 사건이 신고 또는 인지되면 공정거래법 제49조에 따라 조사에 착수할 수 있다. 공정위는 조사권을 갖고 있으며, 조사공무원이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심사관(공정위 내 4급 이상 공무원 중 사무처장이 지정하는 직원)이 이를 심사한다.
공정위 조사공무원과 심사관들이 조사 및 심사를 마치고 보고서를 작성하면 위원회에 상정된다.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사건과 재결(再決)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상임위원 1인을 포함해 위원 3인이 참석하는 소회의에서 심의 및 의결(심결)된다. 심결이 끝나면 과징금 등 시정조치가 기업에 전달된다.
기업이 공정위에 이의신청을 할 경우 위원 전원(총 9명)이 참석한 전원회의를 통해 재결에 들어갈 수 있다. 재결 결과에도 불복하는 기업은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며, 첫 심결 후 이의신청 없이 바로 행정소송하는 것도 가능하다.
문제는 명목상 공정위가 법을 위반한 사건 및 기업을 심판하는 준사법기관이지만, 판단 및 결정의 기준은 대다수가 내부 고시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 행정답변에 따르면, 공정거래 심판의 경우 1개 법률(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1개 시행령(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 50개 고시·지침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기업결합 심사기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 심사기준’ ‘공동행위 심사기준’ ‘불공정거래행위 심사지침’ ‘부당한 지원행위의 심사지침’ ‘과징금 부과 세부기준 등에 관한 고시’ 등이 모두 사실상 행정기관의 내부절차일 뿐 법적 효력이 약한 고시·지침으로 규정돼 있다.
‘과징금 부과 세부기준 등에 관한 고시’에 따르면 해당 업체의 매출액과 위반기간, 부당이득, 행위유형(시장지배적지위 남용·부당공동행위·불공정공동행위 등)에 따라 부과기준액을 정하며, 위반의 중대성을 ‘매우중대’ ‘중대’ ‘중대성 약함’ 등 3단계로 나눠 부과기준율을 조정한다.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것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55조의 3(과징금부과)에 법률로 명시돼 있지만, 이를 어떤 기준으로 얼마나 부과하느냐는 것은 공정위 자율에 따르는 것이다.
공정위 퇴직 후 로펌으로 가 정보 제공
공정위가 독립적으로 기업을 대상으로 위법여부 심사와 과징금 부과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속적으로 소송 및 국회의 지적에 시달리면서도 무리한 과징금을 ‘스스로’ 부과하는 이유는 뭘까.
공정위를 취재한 경험이 있는 한 고참 언론인의 이야기다. “공정위가 법원에서 패소하는 사례가 많은 이유는 두 가지라고 봅니다. 경제법 집행 경험이 많지 않아 ‘아니면 말고’ 식으로 무리하게 제재 결정을 내리거나, 공정위 출신들이 대거 몸담고 있는 로펌의 영향력이 미치는 것이죠. 로펌이 공정위나 법원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981년 출범한 공정위 역사로 미뤄 볼 때 전자보다는 후자에 힘이 실릴 만하다. 국내 로펌에 공정위 출신 인사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표4 참조) 이들은 전(前) 직급에 따라 고문(장·차관 및 1급)과 전문위원(2급 이하)이라는 명목으로 억대의 연봉을 받으며, 소송결과에 따른 인센티브도 받고 있다. 현행법상 공무원은 퇴직 후 2년간 기존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정규모(자본금 50억원 이상, 외형거래액 연 150억원 이상)의 사기업 취업이 제한돼 있다. 그러나 국내 로펌은 자본금 50억원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취업제한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퇴직 후 며칠 만에 로펌으로 출근하는 전 공직자도 적지 않다.
고문이나 전문위원의 업무는 컨설팅과 정보수집 등 다양하다. 로펌이 초빙하는 전직 고위공직자 중 선호도가 가장 높은 인재는 공정위·금융위·국세청 등 경제관련 부처 출신이다. 특히 공정위 출신이 많은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최근 국내 6대 로펌 고문과 전문위원의 전(前) 재직기관을 조사한 결과 공정위가 19명으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금융위(전 금감위 포함, 18명), 3위는 국세청(16명)이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김미영 정치입법팀장은 “법조인의 전관예우 문제가 주로 소송관련 문제에 국한된 것이라면, 권력기관 퇴직공직자들이 로펌이나 기업에 취업하는 ‘신(新)전관예우’는 소송뿐만 아니라 기업의 업무진행 전반에 걸쳐 영향력이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전관예우보다 심각성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조영택 의원은 “2008년 이후 공정위 서기관급 이상 퇴직간부 중 절반이 법률회사에 재취업했고, 업무상 체득한 공정위의 조사회피 방법까지 기업에 전수하는 역할을 한다는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조 의원의 설명이다. “로펌 입장에서는 퇴직자들의 정보와 인맥이 욕심 날 수밖에 없지요. 거액의 고문료를 주고라도 데려가고 싶어합니다. 심지어 퇴직자들이 로펌의 쟁송(爭訟)사건 건수를 늘리기 위해 기업의 불공정행위를 공정위에 제보한 뒤, 그 대가로 사건을 수임한다는 의혹까지 있습니다. 투명성을 위해 공정위원장 임명이나 위원회 구성에 입법기관이 관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조사회피 방법까지 기업에 전수
특히 최근 정유사와 관련된 공정위 퇴직자에 대한 의혹은 업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다. 올해 1월까지 공정위 사무처장을 지냈던 인사가 지난 3월 한 대형 로펌에 취업했다. 이 로펌은 이번 5월 정유사 과징금 부과대상에 포함된 4개 정유사 중 GS칼텍스의 자문법률회사다. 이 로펌에는 공정위에서 수년 전 송무담당관(외부소송 담당)을 맡은 경험이 있는 전직 검사 출신 변호사도 재직 중이다.
문제는 GS칼텍스가 ‘리니언시(leniency·자진신고시 과징금 경감혜택제도)’로 10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피해 갔다는 것이다. 현행 제도상 담합 조사과정에서 가장 먼저 담합 사실을 자진신고하면 과징금의 100%가 감면된다. 일반적으로 리니언시는 담합 혐의자가 스스로 담합을 인정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여러 담합 혐의자들이 일제히 담합사실이 없다며 과징금 반환소송을 제기하면 문제가 꼬일 수밖에 없다. 업계 입장에서는 일종의 ‘배신행위’인 리니언시가 그나마 증거로 뒷받침되면 모르지만 어느 일방의 증언만 있을 경우 소송에서 불리하게 작용하게 된다.
어쨌든 이번 일로 이 회사는 애초 부과된 1772억원의 과징금을 리니언시로 전액 면제받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리니언시에 이르게 된 과정이 문제다. 공정위는 지난해 말부터 정유사 담합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었는데, 로펌의 전직 공정위 관계자가 각종 정보를 입수해 해당 정유사에 자문을 해 주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즉, “어차피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할 테니 리니언시를 통해 면제받는 게 좋겠다”는 정책적인 판단으로 선수를 친 것 아니냐는 것이 과징금을 내게 된 3개 정유사의 의심이다.
3개 정유사는 “절대 담합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곧 소송을 낼 것이고 소송 결과도 낙관하고 있지만, 소송을 내더라도 우선 과징금을 내야 하고 소송 기간이 길어 소모적인 경비가 많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3곳 중 한 정유사의 핵심 간부는 “사실 실태조사 때 우리도 리니언시로 과징금을 경감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아무리 자체조사 해 봐도 담합한 사실이 없어 포기했다”며 “그런데 공정위 출신이 자문하는 회사는 리니언시에 나서고 공정위가 이를 받아 주다니 이게 어찌 공정한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담합한 사실이 없다”는 한 정유사와 “담합 사실이 있다”고 공정위에 ‘고백’한 또 다른 정유사. 범죄 심리로 볼 때 일견 ‘고백한 기업’에 진실성이 있다고 믿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어차피 과징금이 부과된다는 사실을 알고 선수를 쳤다면 사실관계를 정확히 따진 뒤에 과징금 부과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재판에서도 ‘자백’만이 유일한 증거일 땐 범죄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판례다. 그러므로 담합 제보만이 유일한 증거일 땐 다른 증거로 제보가 뒷받침돼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 일이 없으면 공정위와 로펌의 유착관계에 대한 의심을 사도 할 말이 없게 된다. 그런데 관련 업계에선 공정위와 로펌의 유착 의혹이 있는 사건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한양대 경영학부 이상빈 교수는 “로펌에 소속된 전직 고위공직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면 이를 무시할 후배 공무원은 많지 않다”며 “후배 공무원들의 미래가 로펌에서 일하는 선배공무원이고, 로펌에서 다시 고위공직으로 가는 이른바 ‘회전문 인사’ 사례도 많아 후배 공무원들은 이를 절대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의 설명이다. “현재 로펌은 작은 국가를 방불케 할 만큼 고위공직자를 많이 영입하고 있습니다. 공직생활에서 쌓은 경력과 인맥을 활용하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고 항변할 수도 있지만, 로펌은 국민 전체의 공익을 위한다기보다는 의뢰인에 따라 취해야 할 방향이 다른데, 이에 전 공직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죠.”
“과징금 부당하면 소송해서 찾아가라”
기업인들을 화나게 하는 원인 중 하나는 부당한 과징금에 대응하는 방법은 일단 과징금을 낸 후 로펌을 통해 소송에 나서 환급받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정위에 이의신청을 해 재결을 요청할 수도 있지만, 재결의 주체인 전원회의(위원 9명)는 심결 참석자(위원 3명)들을 100% 포함하고 있는 만큼 재결에서 심결과 다른 판결을 내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공정위로부터 큰 액수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던 한 대기업 대표의 이야기다.
“과징금 폭탄을 맞고 나서 내부적으로 철저히 조사해 봐도 부당행위를 한 게 없더라고요. 알아 보니 경쟁업체 직원의 제보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뿐이고 다른 증거도 없어요. 소송하면 과징금을 분명히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공정위 사람들을 만나면 ‘당당하면 소송해서 다시 찾아가라’고 합니다. 이렇게 무책임할 수가 있습니까. 소송이 기업 측의 승소로 끝나도 제대로 조사 못하고 부과했다는 반성 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어요. 하지만 절차상 일단 과징금을 낸 후에 반환소송을 해야 하고, 워낙 액수가 크다 보니 소송비용이 얼마나 들어갈지 황망합니다. 결국 로펌만 배불리는 격입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라면 이렇게 황당한 짓을 하겠습니까. 공정위 입장에서는 이른바 전관예우해 주고, 또 그런 식으로 로펌과 ‘좋은’ 관계를 맺어 놓으면 퇴직 후 자리를 마련하기도 쉬울 것이고, 일석이조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심밖에 안 든다는 것이죠. 다 밝힐 순 없지만 실제 그런 사례도 알고 있죠.”
그는 부당한 과징금이 결국 소비자의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매출 몇천억 원 되는 회사라 한들 순이익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런 회사가 과징금 수백억 원 내고 나면 타격이 엄청납니다. 어떤 편법을 써서라도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지요. 과징금을 매기려면 정당한 근거라도 제대로 알려줬으면 좋겠습니다.”
과징금 소송 경험이 있는 한 중소기업 대표를 만났다. “우리도 고문변호사가 있긴 하지만 공정위를 상대로 하려면 대형 로펌을 찾아가라고 주변에서 조언하더군요. 웬만한 중대형 로펌엔 공정위 고위직 출신이 반드시 있으니 그런 로펌을 통해 소송하면 완전승소는 못해도 부과액수를 대폭 줄일 수는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 중간에 ‘기름칠’을 좀 해야 한다는 조언도 받았고요.”
공정위 관련 사건의 경우 로펌은 줄어든 과징금의 3~5%를 성공 보수로 받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 법조계 인사는 말했다. 소송 비용은 별개다. 로펌이 1000억원의 과징금을 반(500억원)으로 경감시켜 줬다면 15억~25억원이 성공 보수로 책정된다는 것이다.
“공정위 자율에 맡기는 과징금 부과기준, 법률로 규정 필요”
이 같은 현상의 근본 원인 중 하나는 과징금 부과체계가 공정위 자율로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 관계자는 “공정위 고시, 즉 공정위의 자율로 결정되는 과징금 산정 기준은 법률로 규정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설명이다.
“과징금의 경우 국민에게 금전적 제재를 가하는 처분이기 때문에 과징금 부과와 산정을 위한 본질적 내용과 부과액 상한 등을 법률에 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과징금 금액 산정의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는 매출액 범위나 기간 산정방법 등은 전혀 법률로 규정돼 있지 않아요. 공정위 재량에 따라 이뤄지는 고시에 따르게 돼 있습니다. 고시가 아닌 엄격한 제·개정 절차를 거치는 시행령이나 법률의 형식으로 관련 내용이 규정돼야 한다고 봅니다.”
퇴직 공직자의 취업제한이 더욱 엄격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다. 공정위 등 고위공직자의 ‘퇴직 후 로펌행(行)’의 문제점은 언론이나 시민단체, 국회 등으로부터 끊임없이 지적당하고 있지만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고위공직자가 로펌 등에 취업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 의원입법으로 발의돼 계류 중인 법안만 현재 16건에 이르고 있다. 최근 공정위는 퇴직자 윤리규정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실효성은 미지수다.
공정위 김형배 감사담당관은 이에 대해 “퇴직공무원 재취업이 언론에서 계속 문제가 되면서 최근 퇴직공무원이 1년간 청사에 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등 내부 윤리규정을 강화했다”며 “이 같은 의혹과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공무원 행동강령과 퇴직공무원 윤리규정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계속된 그의 설명이다.
“이런 오해들을 없애기 위해서는 스스로 정화하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이와 관련한 교육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퇴직 예정자들에게는 관련 서약서도 받고 있고요.” 그는 공정위 퇴직자가 자리 잡은 로펌과 공정위의 ‘밀월’이란 지나친 비약이라고 해명했다. “로펌 입장에서는 퇴직자들의 정보나 능력을 우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를 굳이 막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특히 5월에는 4개 정유사(SK,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에 ‘주유소 확보경쟁 자제 담합 혐의’를 들어 434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해 정유사들의 즉각 반발을 불러 왔다. 앞으로 정유사들의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고 때에 따라선 공정위-정유사 간 전면전도 예상된다. 정유사들은 2009년 말 LPG 공급 공동행위 혐의로 409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데 이어 또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접하고 “해도 너무한다. 이게 정상적인 나라냐”며 분을 삼키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과징금이 많아서가 아니다. 근거가 명확하지도 않은 천문학적인 거액 과징금 때문에 소모적인 법정 소송에 나서야 하는 데다, 공정위 고위직 출신자가 자리 잡은 로펌과 손잡은 정유사는 과징금을 면제받는 ‘공정하지 못한 듯한’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어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남의 공정성을 따지기 앞서 정말 자기들 일에 관해서 공정하게 처리하고 있는 것일까.
매년 부과금 90% 이상이 소송 휘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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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4개 정유사는 담합혐의로 공정위로부터 434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고 이에 반발하고 있다. |
문제는 공정위가 계속된 소송과 이에 대한 외부의 따가운 지적에도 불구하고 과징금 부과에 별다른 브레이크를 걸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는 2003년부터 매년 공정위의 과징금 환급 및 감액규모, 지나치게 많은 소송률 등을 문제 삼고, 국회의 결산 시정요구에 이를 포함해 왔다. 2007년 감액 및 환급액은 1304억원, 2008년 1201억원(감액 및 환급률 44%), 2009년 1882억원(51%)에 달했다. 공정위는 징수 후 이 금액을 환급하느라 이자만 연 200억~300억원을 지급해야 했다.
환급 및 감액의 원인은 대부분 행정소송에서 패소 혹은 부분 패소했기 때문이다. 공정위 제재조치가 법원에 제소됐을 때 부분 패소율이 30%를 훨씬 넘고, 완전 패소율도 10%에 이른다.
국회예산정책처 관계자는 “매년 당초 부과액의 30% 넘게 환급 및 감액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연례적 지적에도 불구하고 과징금 환급 규모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것은 과징금과 관련된 부과 체계와 행태, 금액산정 기준, 소송대응 등에 대해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매년 수천억 원이 징수되는 과징금은 어디에 사용될까. 과징금은 국가 세입예산의 일부로 국고에 귀속돼 국가 세출예산의 재원으로 사용된다. 목적세가 아니기 때문에 특정한 용도에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과징금을 많이 걷는다고 해서 공정위 자체가 풍족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또 지나치게 많이 부과해서 소송당해 패소할 경우 이자까지 물어내야 하기 때문에 세수(稅收)를 위해서라면 굳이 많이 부과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늘 소송에 휘말리고 매년 국회의 지적을 받으면서도 이렇게 무리한 과징금을 계속해서 부과하고 있는 것이다.
과징금 부과 기준은 법령 아닌 고시
공정위의 원래 기능은 공정거래법 등 위반사건에 대해 심판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공정위 전성복 정책홍보관은 “공정위는 준(準)사법적 기관으로, 위원장 이하 위원들이 참석하는 전원회의에서 무혐의결정 또는 시정조치(명령, 과징금, 검찰고발 등)를 결정해 집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의 정보공개를 토대로 사건처리 절차를 살펴보면 철저하게 공정위 내에서 독립적으로 이뤄진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이나 하도급법, 전자거래와 가맹사업 등 기업 관련법 위반 혐의가 있는 사건이 신고 또는 인지되면 공정거래법 제49조에 따라 조사에 착수할 수 있다. 공정위는 조사권을 갖고 있으며, 조사공무원이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심사관(공정위 내 4급 이상 공무원 중 사무처장이 지정하는 직원)이 이를 심사한다.
공정위 조사공무원과 심사관들이 조사 및 심사를 마치고 보고서를 작성하면 위원회에 상정된다.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사건과 재결(再決)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상임위원 1인을 포함해 위원 3인이 참석하는 소회의에서 심의 및 의결(심결)된다. 심결이 끝나면 과징금 등 시정조치가 기업에 전달된다.
기업이 공정위에 이의신청을 할 경우 위원 전원(총 9명)이 참석한 전원회의를 통해 재결에 들어갈 수 있다. 재결 결과에도 불복하는 기업은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며, 첫 심결 후 이의신청 없이 바로 행정소송하는 것도 가능하다.
문제는 명목상 공정위가 법을 위반한 사건 및 기업을 심판하는 준사법기관이지만, 판단 및 결정의 기준은 대다수가 내부 고시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 행정답변에 따르면, 공정거래 심판의 경우 1개 법률(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1개 시행령(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 50개 고시·지침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기업결합 심사기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 심사기준’ ‘공동행위 심사기준’ ‘불공정거래행위 심사지침’ ‘부당한 지원행위의 심사지침’ ‘과징금 부과 세부기준 등에 관한 고시’ 등이 모두 사실상 행정기관의 내부절차일 뿐 법적 효력이 약한 고시·지침으로 규정돼 있다.
‘과징금 부과 세부기준 등에 관한 고시’에 따르면 해당 업체의 매출액과 위반기간, 부당이득, 행위유형(시장지배적지위 남용·부당공동행위·불공정공동행위 등)에 따라 부과기준액을 정하며, 위반의 중대성을 ‘매우중대’ ‘중대’ ‘중대성 약함’ 등 3단계로 나눠 부과기준율을 조정한다.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것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55조의 3(과징금부과)에 법률로 명시돼 있지만, 이를 어떤 기준으로 얼마나 부과하느냐는 것은 공정위 자율에 따르는 것이다.
공정위 퇴직 후 로펌으로 가 정보 제공
공정위가 독립적으로 기업을 대상으로 위법여부 심사와 과징금 부과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속적으로 소송 및 국회의 지적에 시달리면서도 무리한 과징금을 ‘스스로’ 부과하는 이유는 뭘까.
공정위를 취재한 경험이 있는 한 고참 언론인의 이야기다. “공정위가 법원에서 패소하는 사례가 많은 이유는 두 가지라고 봅니다. 경제법 집행 경험이 많지 않아 ‘아니면 말고’ 식으로 무리하게 제재 결정을 내리거나, 공정위 출신들이 대거 몸담고 있는 로펌의 영향력이 미치는 것이죠. 로펌이 공정위나 법원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981년 출범한 공정위 역사로 미뤄 볼 때 전자보다는 후자에 힘이 실릴 만하다. 국내 로펌에 공정위 출신 인사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표4 참조) 이들은 전(前) 직급에 따라 고문(장·차관 및 1급)과 전문위원(2급 이하)이라는 명목으로 억대의 연봉을 받으며, 소송결과에 따른 인센티브도 받고 있다. 현행법상 공무원은 퇴직 후 2년간 기존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정규모(자본금 50억원 이상, 외형거래액 연 150억원 이상)의 사기업 취업이 제한돼 있다. 그러나 국내 로펌은 자본금 50억원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취업제한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퇴직 후 며칠 만에 로펌으로 출근하는 전 공직자도 적지 않다.
고문이나 전문위원의 업무는 컨설팅과 정보수집 등 다양하다. 로펌이 초빙하는 전직 고위공직자 중 선호도가 가장 높은 인재는 공정위·금융위·국세청 등 경제관련 부처 출신이다. 특히 공정위 출신이 많은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최근 국내 6대 로펌 고문과 전문위원의 전(前) 재직기관을 조사한 결과 공정위가 19명으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금융위(전 금감위 포함, 18명), 3위는 국세청(16명)이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김미영 정치입법팀장은 “법조인의 전관예우 문제가 주로 소송관련 문제에 국한된 것이라면, 권력기관 퇴직공직자들이 로펌이나 기업에 취업하는 ‘신(新)전관예우’는 소송뿐만 아니라 기업의 업무진행 전반에 걸쳐 영향력이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전관예우보다 심각성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조영택 의원은 “2008년 이후 공정위 서기관급 이상 퇴직간부 중 절반이 법률회사에 재취업했고, 업무상 체득한 공정위의 조사회피 방법까지 기업에 전수하는 역할을 한다는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조 의원의 설명이다. “로펌 입장에서는 퇴직자들의 정보와 인맥이 욕심 날 수밖에 없지요. 거액의 고문료를 주고라도 데려가고 싶어합니다. 심지어 퇴직자들이 로펌의 쟁송(爭訟)사건 건수를 늘리기 위해 기업의 불공정행위를 공정위에 제보한 뒤, 그 대가로 사건을 수임한다는 의혹까지 있습니다. 투명성을 위해 공정위원장 임명이나 위원회 구성에 입법기관이 관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조사회피 방법까지 기업에 전수
특히 최근 정유사와 관련된 공정위 퇴직자에 대한 의혹은 업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다. 올해 1월까지 공정위 사무처장을 지냈던 인사가 지난 3월 한 대형 로펌에 취업했다. 이 로펌은 이번 5월 정유사 과징금 부과대상에 포함된 4개 정유사 중 GS칼텍스의 자문법률회사다. 이 로펌에는 공정위에서 수년 전 송무담당관(외부소송 담당)을 맡은 경험이 있는 전직 검사 출신 변호사도 재직 중이다.문제는 GS칼텍스가 ‘리니언시(leniency·자진신고시 과징금 경감혜택제도)’로 10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피해 갔다는 것이다. 현행 제도상 담합 조사과정에서 가장 먼저 담합 사실을 자진신고하면 과징금의 100%가 감면된다. 일반적으로 리니언시는 담합 혐의자가 스스로 담합을 인정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여러 담합 혐의자들이 일제히 담합사실이 없다며 과징금 반환소송을 제기하면 문제가 꼬일 수밖에 없다. 업계 입장에서는 일종의 ‘배신행위’인 리니언시가 그나마 증거로 뒷받침되면 모르지만 어느 일방의 증언만 있을 경우 소송에서 불리하게 작용하게 된다.
어쨌든 이번 일로 이 회사는 애초 부과된 1772억원의 과징금을 리니언시로 전액 면제받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리니언시에 이르게 된 과정이 문제다. 공정위는 지난해 말부터 정유사 담합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었는데, 로펌의 전직 공정위 관계자가 각종 정보를 입수해 해당 정유사에 자문을 해 주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즉, “어차피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할 테니 리니언시를 통해 면제받는 게 좋겠다”는 정책적인 판단으로 선수를 친 것 아니냐는 것이 과징금을 내게 된 3개 정유사의 의심이다.
3개 정유사는 “절대 담합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곧 소송을 낼 것이고 소송 결과도 낙관하고 있지만, 소송을 내더라도 우선 과징금을 내야 하고 소송 기간이 길어 소모적인 경비가 많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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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는 2003년부터 공정위의 무리한 과징금 부과를 매년 지적해 왔고, 국정감사에서도 로펌과 공정위의 공생관계는 단골 공격메뉴였다. |
“아무리 찾아봐도 담합한 사실이 없다”는 한 정유사와 “담합 사실이 있다”고 공정위에 ‘고백’한 또 다른 정유사. 범죄 심리로 볼 때 일견 ‘고백한 기업’에 진실성이 있다고 믿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어차피 과징금이 부과된다는 사실을 알고 선수를 쳤다면 사실관계를 정확히 따진 뒤에 과징금 부과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재판에서도 ‘자백’만이 유일한 증거일 땐 범죄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판례다. 그러므로 담합 제보만이 유일한 증거일 땐 다른 증거로 제보가 뒷받침돼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 일이 없으면 공정위와 로펌의 유착관계에 대한 의심을 사도 할 말이 없게 된다. 그런데 관련 업계에선 공정위와 로펌의 유착 의혹이 있는 사건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한양대 경영학부 이상빈 교수는 “로펌에 소속된 전직 고위공직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면 이를 무시할 후배 공무원은 많지 않다”며 “후배 공무원들의 미래가 로펌에서 일하는 선배공무원이고, 로펌에서 다시 고위공직으로 가는 이른바 ‘회전문 인사’ 사례도 많아 후배 공무원들은 이를 절대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의 설명이다. “현재 로펌은 작은 국가를 방불케 할 만큼 고위공직자를 많이 영입하고 있습니다. 공직생활에서 쌓은 경력과 인맥을 활용하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고 항변할 수도 있지만, 로펌은 국민 전체의 공익을 위한다기보다는 의뢰인에 따라 취해야 할 방향이 다른데, 이에 전 공직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죠.”
“과징금 부당하면 소송해서 찾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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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거래위원회 고위급 퇴직자 중 절반은 로펌의 고문 또는 전문위원으로 재취업했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
“과징금 폭탄을 맞고 나서 내부적으로 철저히 조사해 봐도 부당행위를 한 게 없더라고요. 알아 보니 경쟁업체 직원의 제보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뿐이고 다른 증거도 없어요. 소송하면 과징금을 분명히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공정위 사람들을 만나면 ‘당당하면 소송해서 다시 찾아가라’고 합니다. 이렇게 무책임할 수가 있습니까. 소송이 기업 측의 승소로 끝나도 제대로 조사 못하고 부과했다는 반성 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어요. 하지만 절차상 일단 과징금을 낸 후에 반환소송을 해야 하고, 워낙 액수가 크다 보니 소송비용이 얼마나 들어갈지 황망합니다. 결국 로펌만 배불리는 격입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라면 이렇게 황당한 짓을 하겠습니까. 공정위 입장에서는 이른바 전관예우해 주고, 또 그런 식으로 로펌과 ‘좋은’ 관계를 맺어 놓으면 퇴직 후 자리를 마련하기도 쉬울 것이고, 일석이조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심밖에 안 든다는 것이죠. 다 밝힐 순 없지만 실제 그런 사례도 알고 있죠.”
그는 부당한 과징금이 결국 소비자의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매출 몇천억 원 되는 회사라 한들 순이익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런 회사가 과징금 수백억 원 내고 나면 타격이 엄청납니다. 어떤 편법을 써서라도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지요. 과징금을 매기려면 정당한 근거라도 제대로 알려줬으면 좋겠습니다.”
과징금 소송 경험이 있는 한 중소기업 대표를 만났다. “우리도 고문변호사가 있긴 하지만 공정위를 상대로 하려면 대형 로펌을 찾아가라고 주변에서 조언하더군요. 웬만한 중대형 로펌엔 공정위 고위직 출신이 반드시 있으니 그런 로펌을 통해 소송하면 완전승소는 못해도 부과액수를 대폭 줄일 수는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 중간에 ‘기름칠’을 좀 해야 한다는 조언도 받았고요.”
공정위 관련 사건의 경우 로펌은 줄어든 과징금의 3~5%를 성공 보수로 받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 법조계 인사는 말했다. 소송 비용은 별개다. 로펌이 1000억원의 과징금을 반(500억원)으로 경감시켜 줬다면 15억~25억원이 성공 보수로 책정된다는 것이다.
“공정위 자율에 맡기는 과징금 부과기준, 법률로 규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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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거래위원회 민원실에 통신사 담합 관련 신고서를 접수하는 참여연대 관계자들. 공정위의 심사가 증거보다는 일부 관계자의 증언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
이 같은 현상의 근본 원인 중 하나는 과징금 부과체계가 공정위 자율로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 관계자는 “공정위 고시, 즉 공정위의 자율로 결정되는 과징금 산정 기준은 법률로 규정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설명이다.
“과징금의 경우 국민에게 금전적 제재를 가하는 처분이기 때문에 과징금 부과와 산정을 위한 본질적 내용과 부과액 상한 등을 법률에 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과징금 금액 산정의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는 매출액 범위나 기간 산정방법 등은 전혀 법률로 규정돼 있지 않아요. 공정위 재량에 따라 이뤄지는 고시에 따르게 돼 있습니다. 고시가 아닌 엄격한 제·개정 절차를 거치는 시행령이나 법률의 형식으로 관련 내용이 규정돼야 한다고 봅니다.”
퇴직 공직자의 취업제한이 더욱 엄격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다. 공정위 등 고위공직자의 ‘퇴직 후 로펌행(行)’의 문제점은 언론이나 시민단체, 국회 등으로부터 끊임없이 지적당하고 있지만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고위공직자가 로펌 등에 취업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 의원입법으로 발의돼 계류 중인 법안만 현재 16건에 이르고 있다. 최근 공정위는 퇴직자 윤리규정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실효성은 미지수다.
공정위 김형배 감사담당관은 이에 대해 “퇴직공무원 재취업이 언론에서 계속 문제가 되면서 최근 퇴직공무원이 1년간 청사에 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등 내부 윤리규정을 강화했다”며 “이 같은 의혹과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공무원 행동강령과 퇴직공무원 윤리규정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계속된 그의 설명이다.
“이런 오해들을 없애기 위해서는 스스로 정화하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이와 관련한 교육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퇴직 예정자들에게는 관련 서약서도 받고 있고요.” 그는 공정위 퇴직자가 자리 잡은 로펌과 공정위의 ‘밀월’이란 지나친 비약이라고 해명했다. “로펌 입장에서는 퇴직자들의 정보나 능력을 우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를 굳이 막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