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대표로 있을 적에 대학입시 자율화, 등록금 반값 얘기를 많이 했는데 상대적으로 주목을 못 받았다. 일전에도 교육 얘기를 했는데 (신문에) 한 자도 안 났다. 밖에서는 왜 교육정책이 없느냐고 하고, 가슴이 답답해서 평소 생각을 모아서 얘기했는데 쓰나미같이 밀려버리고 제가 너무 허망하다.”(박근혜 전 대표, 2007년 1월 31일)
⊙ 2006년 당시 한나라당의 ‘반값 등록금’ 정책에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대학 선(先)무상교육안’,
민주노동당은 ‘가계수지 연동 대학 등록금 상한제’ 내놓아
⊙ 이명박 대통령은 ‘반값’에 미온적. “예산이 많이 드는 것은 둘째 치고, 반값이란 말을 탐탁지
않아 했다”는 후문
⊙ 민주당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국민을 현혹하는 포퓰리즘’이라 공격(2007년 열린우리당 정봉주)
⊙ 2006년 당시 한나라당의 ‘반값 등록금’ 정책에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대학 선(先)무상교육안’,
민주노동당은 ‘가계수지 연동 대학 등록금 상한제’ 내놓아
⊙ 이명박 대통령은 ‘반값’에 미온적. “예산이 많이 드는 것은 둘째 치고, 반값이란 말을 탐탁지
않아 했다”는 후문
⊙ 민주당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국민을 현혹하는 포퓰리즘’이라 공격(2007년 열린우리당 정봉주)
- 지난 6월 13일 국회 교과위에 민주당 의원들이 노트북에 한나라당을 비판하는 문구를 붙이자(왼쪽),잠시후 한나라당 의원들도 보좌관을 시켜 맞불작전으로 민주당을 비난하는 문구를 붙이고 있다(오른쪽).
여야가 반값 등록금 늪에 빠져들고 있다. 진원지는 지난 5월 22일 한나라당 황우여(黃祐呂) 원내대표의 ‘불쑥 발언’이었다. 그는 15대 국회 후반기인 1998년부터 내리 13년 동안 ‘교육기술과학위원회’에서 활동했다. 나름 교육전문가인 셈이다.
황 원내대표는 “등록금에 대한 국가와 정부, 당의 입장은 단순한 재정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대한 것”이라며 무상교육을 포함한 대학 등록금 인하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재원확보 방안을 담지 않아 갈등을 증폭시켰다.
야당과 시민단체는 “반값 등록금은 이미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데 왜 안 지키느냐”고 주장하고 나섰다. 청와대는 당혹감에 빠졌다. 과거 이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발언을 찾아보고 대선 공약집을 들추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 대통령이 ‘반값’을 언급한 적은 없었다. 2007년 12월에 발간된 한나라당 ‘대선 공약집’에서도 ‘반값’이 들어간 등록금 공약은 없었다. 대신 ‘맞춤형 국가장학제도 구축’이란 항목에서 ‘연간 1000만원대 등록금 시대에 돌입했으나 2005년 현재 전체 장학금의 11.5% 규모에 불과해 국가장학금을 확충하겠다’는 표현이 들어갔다.
그러나 2007년 10월 MB의 선대위 산하 경제살리기 특위 내에 ‘등록금 절반 위원회’가 존재했다. 다만, 이 위원회가 실제 활동했는지, 했다면 어떤 논의가 이뤄졌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한나라당 교육과학기술위 간사인 임해규(林亥圭) 의원은 “선거 전까진 ‘반값’이란 단어를 썼으나 집권 뒤 오해받을 소지가 있어 공약집에서 뺐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임기 첫해인 2008년 9월 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반값 등록금 정책’에 대한 물음에 “당시 정치적으로 공약이 나온 데가 많다. 내 자신은 등록금을 반값으로 하겠다는 공약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었다.
이 대통령의 해명에도 불구, 반값 등록금 정책은 한나라당이 2006년부터 일관되게 추진한 당론이었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반값 정책을 ‘포퓰리즘’이라 공격했다. 무상급식으로 촉발된 ‘교육 포퓰리즘’의 원조는 다름 아닌 한나라당이었다.
‘반값’ 대 ‘후불제’의 첫 충돌
2006년 3월 31일로 돌아가 보자. 그해 5·31 지방선거를 두 달여 앞둔 미묘한 시기였다. 한나라당 ‘교육비 부담 반으로 줄이기’ 팀장인 이주호(李周浩) 의원(현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은 “우리나라 대학 재정의 등록금 의존 비율이 70% 정도로 OECD 선진국에 비해 과도하게 높다”며 “총 11조원 규모의 등록금(대학원 포함) 중 장학금과 학자금 융자를 뺀 학부모 부담 8조원을 4조원으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06년 당시만 해도 국·공립대 등록금은 1년에 300만원대, 사립대 등록금은 1년에 600만원 가량이었다(2005년 도시근로자 1가구 월평균 소득은 325만원).
그리고 4월 11일 박근혜(朴槿惠) 당시 대표는 성균관대 특강에서 “전체 대학 등록금 중 3조원 정도를 장학금으로 대치하고 나머지 일부를 다른 방안에서 찾으면 등록금을 반액으로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의원과 박 대표의 ‘대학 등록금 절반 인하’ 발언은 한 치도 틀리지 않았다. 또 당시 국회 교육위원장이 황우여 의원이었다. ‘박-황-이’가 반값 등록금의 진원지인 셈이다.
야당의 반값 정책에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적잖이 당황했다.
다음 날인 12일 국회 교육위 열린우리당 간사였던 정봉주(鄭鳳株) 의원은 기자회견을 자청, ‘대학 선(先)무상교육제’ 도입을 제안했다. ‘무상’이란 말은 ‘반값’만큼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니, ‘공짜’가 아니었다. ‘대학 선무상교육제’는 국가가 국채 발행을 통해 등록금을 우선 납부하면, 해당 대학생은 졸업 후 취업을 한 시점부터 소득 수준에 맞게 ‘원금(등록금)’을 갚도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정 의원은 13일 임시국회 대정부 질문을 통해 ‘대학 선무상교육안’을 재차 제안하며 ‘등록금 문제를 비롯한 고등교육재정 구조개선을 위한 특별팀’ 구성을 요구했다.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여야의 ‘반값’ 대 ‘후불제’의 충돌은 그때부터 전쟁으로 비화됐다.
4월 14일 한나라당은 국회에서 ‘대학 등록금 부담 반으로 줄이기 정책토론회’를 당 정책위 주관으로 열었다. 이주호 의원이 당 제5정조위원장 자격으로 주제발표를 했다.
물론 당 대표였던 박근혜 의원도 참석, 반값 등록금에 확실한 지지의사를 밝혔다. 그는 “배우고 싶어도 형편이 안돼 대학에 가지 못하고 교육의 기회를 잃어 버리는 일은 젊은이들에게서 꿈을 빼앗아가는 것”이라며 “대학에 적극적으로 기부할 수 있게 유인하는 제도를 만들고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장학기금 창설 등을 추진하면 등록금을 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주호 의원은 ‘등록금 부담 반값’에 대한 논란을 의식한 듯 용어를 자세히 설명했다. 이 의원은 “‘반값 등록금’의 내용은 모든 학생의 부담을 똑같이 반으로 줄이는 것이 아니라, 평균하여 반으로 줄인다는 것이다. 실질적 효과는 저소득층 대학생 자녀에게 대폭 혜택이 갈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반은 반이되 고르게 반이 아니라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는 더 많은 액수를 감면하고, 넉넉한 학생에게는 적은 액수를 줄여 주어 평균하여 반이 되게 하자는 것이다.
이주호, 반값 등록금의 4조원 財源 대책까지 마련
당시 이주호 의원이 밝힌 ‘등록금 반값’의 대안은 이렇다. 2006년 무렵, 대학의 총 등록금 규모는 10조5000억원. 이 중 장학금(1조5000억원)과 학자금 융자(8300억원)를 제외한 8조원을 학부모가 부담하고 있었다. 이 의원은 8조원의 절반인 4조원을 마련하면 등록금을 반값으로 줄일 수 있다고 계산했다.
4조원의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까. ▲국가 차원의 장학기금 1조원(민간기부금 1조원과 매년 지속 적립·확충하는 정부 출연금 2조원으로 구성. 연간 가용재원은 1조원) ▲근로장학금 4800억원 ▲군 사병 월급 예치 뒤 등록금 활용 8000억원 ▲저소득층에 대한 학자금의 장학금 전환(3000억원) ▲사립대 민간기부 활성화 차원에서 대학 기부금 가운데 10만원까지 전액 세액공제(약 1조원) 등을 통한 재원확충 세부 방안까지 마련했다.
한나라당은 이 의원의 제안을 토대로 2006년 5·31 지방선거를 겨냥한 공약집 ‘NEW 대한민국’에 대학 등록금 대책안을 마련했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등록금 정책을 놓고 경쟁을 벌이자, 이번에는 민주노동당이 가세했다. 그해 4월 26일의 일이다.
민노당은 이날 ‘가계수지 연동 대학 등록금 상한제’라는, 제목이 다소 긴 정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내용은 열린우리당의 대책과 엇비슷했다.
골자는 이렇다. 또 대학 등록금 후불제는 등록금 납부와 상관없이 수강신청으로 학기를 등록하도록 하되, 등록금은 수강신청을 하면서 일시불로 완납하는 방식과 졸업 후 분할 상환하는 방식을 개인이 선택토록 했다.
민노당 안과 열린우리당 안은 명칭만 다를 뿐 똑같았다. 다만, 모든 학생에게 혜택을 주느냐, 학생으로 하여금 선불제와 후불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느냐의 차이뿐이었다.
2006년 대학가의 ‘春登鬪’가 등록금 공약 끌어내
왜 여야가 2006년부터 대학 등록금 문제에 매달렸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단순히 그해 있었던 5·31 지방선거를 의식해서일까.
이주호 장관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이었던 김윤정(현 한국과학창의재단 창의인재기획단장)씨는 “지방선거를 겨냥한 공약이 아니었다. 당시 학기 초마다 대학생들의 등록금 투쟁이 있을 정도로 큰 이슈였다”고 말했다. 그해 대학가에는 ‘춘등투’라는 말이 유행했다고 한다. ‘봄이면 어김없이 시작되는 등록금 투쟁’을 줄인 말이다. 대학 총장실을 점거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2006년의 등록금 투쟁은 그해 3월 4일 결성된 ‘전국대학생 교육대책위원회(교대위)’가 주도했으며, 민주노총과 전국교수노동조합, 전교조 등이 지원에 나서 투쟁 볼륨이 커진 상태였다.
등록금 문제가 대학가의 핫이슈로 떠오르자 정치권도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민노당은 2006년 2월 27일 최고위원회를 개최해 ‘2006년 대학 등록금 동결과 대학 무상교육 쟁취를 위한 민노당 특별위원회’를 구성, 교대위와 함께 대학 등록금 투쟁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정치권에서 등록금 문제를 가장 먼저 다룬 정당은 민노당이었다.
5·31 지방선거 이후 여야는 비슷한 시기에 등록금 해법을 담은 ‘고등교육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하기에 이른다.
열린우리당 정봉주 의원은 그해 9월 4일, 민노당 최순영(崔順永) 의원은 11월 13일,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은 12월 8일 각각 국회 교육위에 법안을 제출했다.
정 의원의 개정안은, 대학이 등록금을 물가상승률 평균의 1.5배 이상을 올릴 경우 사유서를 교육부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최 의원의 개정안은 등록금을 올릴 경우 대학의 학생, 학생회의 의견과 ‘등록금관리자문위원회’의 자문을 거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였다.
이 의원의 개정안 역시 물가상승률의 2배를 초과하는 경우 산출근거 자료를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공시토록 했다.
다만, 이 의원은 대학에 대한 기부금의 세액공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국가장학기금을 조성해 저소득층 대학생들에게 무상장학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학술진흥 및 학자금 대출 신용보증 등에 관한 개정 법률안’ 등 관련 법안 4개를 추가로 발의했다.
박근혜, “당 대표 때, 등록금 반값 얘기 많이 했는데 주목 못 받았다”
해가 바뀌었다. 대선(大選)이 있는 2007년 새해 벽두부터 한나라당은 ‘등록금 반값’을 꺼내 들었다.
1월 4일 한나라당 전재희(全在姬) 정책위의장은 첫 최고위원 회의에서 “서민들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학생 등록금을 절반으로 줄여 주는 ‘반값 등록금’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1조~2조원 규모의 국가장학금 제도를 만들어 저소득층과 이공계 학생을 지원하고, 대학에 기부금을 내면 10만원 한도에서 세액공제를 해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박근혜 대표 뒤를 이어 대표가 된 강재섭(姜在涉) 대표 역시 1월 26일 신년연설을 통해 “대학 등록금 부담을 반으로 줄이는 5대 법안을 반드시 관철시키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값 등록금 기조가 박 전 대표 시절과 달라진 게 전혀 없었다.
강 대표는 측근인 나경원(羅卿瑗) 의원을 당 제6정책조정위원장에 임명하고 ‘반값 등록금’ 정책을 계속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경선후보 시절, 박 전 대표의 등록금 발언이다. 1월 31일 대선후보 캠프에서 기자들과 만나 “안보 이미지는 강하지만 교육부분은 별로 떠오르는 게 없다”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대표로 있을 적에 대학입시 자율화, 등록금 반값 얘기를 많이 했는데 상대적으로 주목을 못 받았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일전에도 교육 얘기를 했는데 (신문에) 한 자도 안 났다. 밖에서는 왜 교육정책이 없느냐고 하고, 가슴이 답답해서 평소 생각을 모아서 얘기했는데 쓰나미같이 밀려 버리고 제가 너무 허망하다. (내일 신문에 어떻게 나는지) 기억 잘해 두겠다”고 말했다. 무척 화가 난 듯 보였다.
사실, 반값 등록금 문제는 박 전 대표가 대표시절부터 이 의원과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사안이었다. 김윤정 단장은 “이 의원이 대표시절, 박 전 대표에게 수시로 보고를 했다. 여당 대표도 아니었으니 만날 시간이 많았다. 박 전 대표는 꼼꼼하게 교육 문제를 챙겼고 관심이 많았다”고 기억했다.
반값 등록금이 한나라당 당론이었던 만큼 당시 원내대표였던 김형오 의원은 2월 7일 임시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대학 등록금 부담을 반으로 줄이는 ‘반값 등록금 법안’, 서민의 내집 마련을 돕는 이른바 ‘반값 아파트 법안’, 서민의 부담을 완화하고 생활보호를 위한 ‘감세 법안’, 기업과 지방이 주도하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지방투자촉진특별법안’ 등 민생 관련 4대 법안을 우선 처리하겠다”고 했다.
노무현, “등록금을 반으로 줄이지는 못하지만…”
2008년 2월 9일에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강재섭 대표와 만나 반값 등록금 얘기를 주고받았다.
강 대표는 “학생들이 학자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고 있다”면서 “기부금 확대 등을 통해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반으로 줄여야 한다”고 하자, 노 대통령은 “등록금을 반으로 줄이지는 못하지만 장학금 지원, 학자금 저리융자를 검토하겠다”고 화답했다.
영수회담의 진전된 논의는 며칠 뒤 2월 12일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다시 거론됐다. 그러나 여야의 견해차는 너무 확연했다.
한나라당 김기현(金起鉉) 의원은 “정부가 ‘비전 2030’ 등 무려 1100조원의 엄청난 예산을 수반하는 정책을 발표하는데도 ‘비전 2030’의 0.5% 수준인 6조원의 반값 등록금 재원을 마련하지 못하는 건 결국 의지문제”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앞서 이주호 의원이 제기했던 ▲국가장학기금 설립 ▲대학기부금 세액공제 ▲국립대 적정교육비 산출 등을 통해 ‘등록금 반값’ 정책을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반면 열린우리당 정봉주 의원은 ‘반값 등록금’ 정책에 대해 시종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정 의원은 “이 법안을 위해 4조원을 정부가 지원해야 하는데, 재정운영상 불가능하다”며 “한나라당이 감세를 주장하면서 증세를 해야만 가능한 반값 등록금 정책을 내놓은 것은 국민을 현혹하는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의 반값 공약을 포퓰리즘으로 규정한 것이다.
당시 언론에서도 한나라당의 반값 정책을 두고 ‘좌측 깜박이’란 표현을 썼다. 《세계일보》 2007년 4월 16일자에 실린 ‘한나라, 좌측 깜박이 한번 켜봐?’ 기사의 일부다.
<당론으로 채택된 ‘반값 아파트 정책’, ‘대학 등록금 반값 정책’ 등도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분배의 철학을 담은 정책들이다.
이 같은 한나라당의 움직임에는 다분히 대선 전략을 염두에 둔 고려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두 차례의 대선에서 당의 이미지가 ‘수구보수당’, ‘부자옹호당’의 모습으로 비쳐지고 남북 관계와 관련해서도 대결구도를 조장하는 정당으로 상대편에서 공격받았던 ‘패착’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행보라는 것이다.>
반값이란 말을 싫어한 MB
박근혜 전 대표가 반값 등록금에 관심이 많았으나 상대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반값’에 미온적이었다. “예산이 많이 드는 것은 둘째 치고 반값이란 말을 탐탁지 않아 했다”는 후문이다.
2008년 8월 20일 대선 후보로 확정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화합차원에서 경선 경쟁자의 반값 공약을 가져올 수도 있었지만 마뜩잖아했다고 한다.
당시 ‘당 일류국가비전위원장’으로 대선 공약을 전체 조율하던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반값 등록금이 공약으로 다뤄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대통령 성격이 신중한 편이어서 특히 예산이 수반되는 공약은 아주 엄격했다”고 말했다.
MB 캠프에서 대선 공약을 검토했던 모 대학 교수는 “홍준표(洪準杓) 의원이 내놓은 ‘반값 아파트’ 공약을 당론으로 채택해 공약에 포함시킬 계획도 세웠지만, 반값 등록금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당시 박 전 대표의 공약 중에는 ‘6대 생활비 지출 30% 줄이기’ 공약 등이 MB 공약에 포함됐었다”고 기억했다.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대학 등록금과 관련한 공약은 크게 4가지다. ▲대학생 근로장학금 확대 ▲대학 등록금 융자제도 혁신 ▲대학기부금 세액공제로 교내 장학금 대폭 확대 ▲평생학습계좌제 도입 등이다.
이 공약들은 2006년부터 의원 시절 이주호 장관이 추진했던 사안이지만, 가장 중요한 서민가정과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무상 장학금 얘기는 빠져 있다.
이에 대해 이주호 장관 측근의 말이다.
“이 대통령의 일관된 기조가 ‘똑같이 적용되는 복지가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많이 주는 복지여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어요. 한나라당이 ‘반값 등록금’을 통해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등록금 부담을 아예 없애 주는 내용은 빠졌지만 2009년 5월 한국장학재단을 설립, 국가 차원의 장학제도의 토대를 어느 정도 닦아 놓았습니다.”
그러나 한국장학재단의 ‘든든 장학금’은 가구소득 수준과 학점, 성적, 연령 등을 적용해 지원 대상자를 선정하지만 저소득층 학생 무상 장학금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대출 이자율이 2008년 2학기에는 7.8%, 2010년 1학기에는 5.7%, 2011년 1학기에는 4.9%로 감소 추세지만 학생들로서는 여전히 부담스럽다. 적어도 3% 미만으로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황우여 원내대표의 ‘불쑥 발언’으로 촉발된 반값 등록금 사태는 현재 진행형이다. 2006년 당시처럼 다시 여야가 경쟁을 벌이고 있다. ‘무상 급식’으로 재미를 본 민주당은 과거 자신들이 그토록 반대하고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반값 등록금 정책을 이제 아예 등록금 폐지까지를 염두에 둔 ‘더 센’ 공약을 내걸 태세다.
‘반값 등록금’의 원조격인 황 원내대표와 한나라당으로선 더욱 혼란에 빠졌다. 민주당보다 한걸음 앞선 공약을 내놔야 싸움이 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노무현 정부든 이명박 정부든 집권했을 땐 반값 등록금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반값 등록금이 포퓰리즘은 맞는 모양이다. 박근혜 전 대표도 야당 시절에 주장했으니 말이다.
야당이 아니라 여당이 반값 등록금을 본격적으로 들고 나오고, 미래 권력인 박 전 대표는 이에 적극적이고, 반값 등록금의 창시자가 교육부장관이니 상황은 이전과 크게 달라진 셈이다. 반값 등록금을 탄생시킨 주역들이 ‘힘’을 가지고 있는 세상이 왔으니 실현 가능성이 커졌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렇더라도 정부가 돈을 내놔야 한다. 흔히 좌파 성향이라고 분류되는 노무현 정부도 내놓을 돈이 없었는데, 이명박 정부는 내놓을 돈이 있을까.⊙
황 원내대표는 “등록금에 대한 국가와 정부, 당의 입장은 단순한 재정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대한 것”이라며 무상교육을 포함한 대학 등록금 인하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재원확보 방안을 담지 않아 갈등을 증폭시켰다.
야당과 시민단체는 “반값 등록금은 이미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데 왜 안 지키느냐”고 주장하고 나섰다. 청와대는 당혹감에 빠졌다. 과거 이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발언을 찾아보고 대선 공약집을 들추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 대통령이 ‘반값’을 언급한 적은 없었다. 2007년 12월에 발간된 한나라당 ‘대선 공약집’에서도 ‘반값’이 들어간 등록금 공약은 없었다. 대신 ‘맞춤형 국가장학제도 구축’이란 항목에서 ‘연간 1000만원대 등록금 시대에 돌입했으나 2005년 현재 전체 장학금의 11.5% 규모에 불과해 국가장학금을 확충하겠다’는 표현이 들어갔다.
그러나 2007년 10월 MB의 선대위 산하 경제살리기 특위 내에 ‘등록금 절반 위원회’가 존재했다. 다만, 이 위원회가 실제 활동했는지, 했다면 어떤 논의가 이뤄졌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한나라당 교육과학기술위 간사인 임해규(林亥圭) 의원은 “선거 전까진 ‘반값’이란 단어를 썼으나 집권 뒤 오해받을 소지가 있어 공약집에서 뺐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임기 첫해인 2008년 9월 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반값 등록금 정책’에 대한 물음에 “당시 정치적으로 공약이 나온 데가 많다. 내 자신은 등록금을 반값으로 하겠다는 공약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었다.
이 대통령의 해명에도 불구, 반값 등록금 정책은 한나라당이 2006년부터 일관되게 추진한 당론이었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반값 정책을 ‘포퓰리즘’이라 공격했다. 무상급식으로 촉발된 ‘교육 포퓰리즘’의 원조는 다름 아닌 한나라당이었다.
‘반값’ 대 ‘후불제’의 첫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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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 반값 등록금 정책을 담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야당과 시민단체는 “한나라당의 당론이었으니 이 대통령이 책임져라”는 입장이다. |
2006년 당시만 해도 국·공립대 등록금은 1년에 300만원대, 사립대 등록금은 1년에 600만원 가량이었다(2005년 도시근로자 1가구 월평균 소득은 325만원).
그리고 4월 11일 박근혜(朴槿惠) 당시 대표는 성균관대 특강에서 “전체 대학 등록금 중 3조원 정도를 장학금으로 대치하고 나머지 일부를 다른 방안에서 찾으면 등록금을 반액으로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의원과 박 대표의 ‘대학 등록금 절반 인하’ 발언은 한 치도 틀리지 않았다. 또 당시 국회 교육위원장이 황우여 의원이었다. ‘박-황-이’가 반값 등록금의 진원지인 셈이다.
야당의 반값 정책에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적잖이 당황했다.
다음 날인 12일 국회 교육위 열린우리당 간사였던 정봉주(鄭鳳株) 의원은 기자회견을 자청, ‘대학 선(先)무상교육제’ 도입을 제안했다. ‘무상’이란 말은 ‘반값’만큼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니, ‘공짜’가 아니었다. ‘대학 선무상교육제’는 국가가 국채 발행을 통해 등록금을 우선 납부하면, 해당 대학생은 졸업 후 취업을 한 시점부터 소득 수준에 맞게 ‘원금(등록금)’을 갚도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정 의원은 13일 임시국회 대정부 질문을 통해 ‘대학 선무상교육안’을 재차 제안하며 ‘등록금 문제를 비롯한 고등교육재정 구조개선을 위한 특별팀’ 구성을 요구했다.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여야의 ‘반값’ 대 ‘후불제’의 충돌은 그때부터 전쟁으로 비화됐다.
4월 14일 한나라당은 국회에서 ‘대학 등록금 부담 반으로 줄이기 정책토론회’를 당 정책위 주관으로 열었다. 이주호 의원이 당 제5정조위원장 자격으로 주제발표를 했다.
물론 당 대표였던 박근혜 의원도 참석, 반값 등록금에 확실한 지지의사를 밝혔다. 그는 “배우고 싶어도 형편이 안돼 대학에 가지 못하고 교육의 기회를 잃어 버리는 일은 젊은이들에게서 꿈을 빼앗아가는 것”이라며 “대학에 적극적으로 기부할 수 있게 유인하는 제도를 만들고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장학기금 창설 등을 추진하면 등록금을 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주호 의원은 ‘등록금 부담 반값’에 대한 논란을 의식한 듯 용어를 자세히 설명했다. 이 의원은 “‘반값 등록금’의 내용은 모든 학생의 부담을 똑같이 반으로 줄이는 것이 아니라, 평균하여 반으로 줄인다는 것이다. 실질적 효과는 저소득층 대학생 자녀에게 대폭 혜택이 갈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반은 반이되 고르게 반이 아니라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는 더 많은 액수를 감면하고, 넉넉한 학생에게는 적은 액수를 줄여 주어 평균하여 반이 되게 하자는 것이다.
이주호, 반값 등록금의 4조원 財源 대책까지 마련
당시 이주호 의원이 밝힌 ‘등록금 반값’의 대안은 이렇다. 2006년 무렵, 대학의 총 등록금 규모는 10조5000억원. 이 중 장학금(1조5000억원)과 학자금 융자(8300억원)를 제외한 8조원을 학부모가 부담하고 있었다. 이 의원은 8조원의 절반인 4조원을 마련하면 등록금을 반값으로 줄일 수 있다고 계산했다.
4조원의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까. ▲국가 차원의 장학기금 1조원(민간기부금 1조원과 매년 지속 적립·확충하는 정부 출연금 2조원으로 구성. 연간 가용재원은 1조원) ▲근로장학금 4800억원 ▲군 사병 월급 예치 뒤 등록금 활용 8000억원 ▲저소득층에 대한 학자금의 장학금 전환(3000억원) ▲사립대 민간기부 활성화 차원에서 대학 기부금 가운데 10만원까지 전액 세액공제(약 1조원) 등을 통한 재원확충 세부 방안까지 마련했다.
한나라당은 이 의원의 제안을 토대로 2006년 5·31 지방선거를 겨냥한 공약집 ‘NEW 대한민국’에 대학 등록금 대책안을 마련했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등록금 정책을 놓고 경쟁을 벌이자, 이번에는 민주노동당이 가세했다. 그해 4월 26일의 일이다.
민노당은 이날 ‘가계수지 연동 대학 등록금 상한제’라는, 제목이 다소 긴 정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내용은 열린우리당의 대책과 엇비슷했다.
골자는 이렇다. 또 대학 등록금 후불제는 등록금 납부와 상관없이 수강신청으로 학기를 등록하도록 하되, 등록금은 수강신청을 하면서 일시불로 완납하는 방식과 졸업 후 분할 상환하는 방식을 개인이 선택토록 했다.
민노당 안과 열린우리당 안은 명칭만 다를 뿐 똑같았다. 다만, 모든 학생에게 혜택을 주느냐, 학생으로 하여금 선불제와 후불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느냐의 차이뿐이었다.
2006년 대학가의 ‘春登鬪’가 등록금 공약 끌어내
왜 여야가 2006년부터 대학 등록금 문제에 매달렸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단순히 그해 있었던 5·31 지방선거를 의식해서일까.
이주호 장관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이었던 김윤정(현 한국과학창의재단 창의인재기획단장)씨는 “지방선거를 겨냥한 공약이 아니었다. 당시 학기 초마다 대학생들의 등록금 투쟁이 있을 정도로 큰 이슈였다”고 말했다. 그해 대학가에는 ‘춘등투’라는 말이 유행했다고 한다. ‘봄이면 어김없이 시작되는 등록금 투쟁’을 줄인 말이다. 대학 총장실을 점거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2006년의 등록금 투쟁은 그해 3월 4일 결성된 ‘전국대학생 교육대책위원회(교대위)’가 주도했으며, 민주노총과 전국교수노동조합, 전교조 등이 지원에 나서 투쟁 볼륨이 커진 상태였다.
등록금 문제가 대학가의 핫이슈로 떠오르자 정치권도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민노당은 2006년 2월 27일 최고위원회를 개최해 ‘2006년 대학 등록금 동결과 대학 무상교육 쟁취를 위한 민노당 특별위원회’를 구성, 교대위와 함께 대학 등록금 투쟁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정치권에서 등록금 문제를 가장 먼저 다룬 정당은 민노당이었다.
5·31 지방선거 이후 여야는 비슷한 시기에 등록금 해법을 담은 ‘고등교육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하기에 이른다.
열린우리당 정봉주 의원은 그해 9월 4일, 민노당 최순영(崔順永) 의원은 11월 13일,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은 12월 8일 각각 국회 교육위에 법안을 제출했다.
정 의원의 개정안은, 대학이 등록금을 물가상승률 평균의 1.5배 이상을 올릴 경우 사유서를 교육부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최 의원의 개정안은 등록금을 올릴 경우 대학의 학생, 학생회의 의견과 ‘등록금관리자문위원회’의 자문을 거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였다.
이 의원의 개정안 역시 물가상승률의 2배를 초과하는 경우 산출근거 자료를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공시토록 했다.
다만, 이 의원은 대학에 대한 기부금의 세액공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국가장학기금을 조성해 저소득층 대학생들에게 무상장학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학술진흥 및 학자금 대출 신용보증 등에 관한 개정 법률안’ 등 관련 법안 4개를 추가로 발의했다.
박근혜, “당 대표 때, 등록금 반값 얘기 많이 했는데 주목 못 받았다”
해가 바뀌었다. 대선(大選)이 있는 2007년 새해 벽두부터 한나라당은 ‘등록금 반값’을 꺼내 들었다.
1월 4일 한나라당 전재희(全在姬) 정책위의장은 첫 최고위원 회의에서 “서민들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학생 등록금을 절반으로 줄여 주는 ‘반값 등록금’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1조~2조원 규모의 국가장학금 제도를 만들어 저소득층과 이공계 학생을 지원하고, 대학에 기부금을 내면 10만원 한도에서 세액공제를 해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박근혜 대표 뒤를 이어 대표가 된 강재섭(姜在涉) 대표 역시 1월 26일 신년연설을 통해 “대학 등록금 부담을 반으로 줄이는 5대 법안을 반드시 관철시키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값 등록금 기조가 박 전 대표 시절과 달라진 게 전혀 없었다.
강 대표는 측근인 나경원(羅卿瑗) 의원을 당 제6정책조정위원장에 임명하고 ‘반값 등록금’ 정책을 계속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경선후보 시절, 박 전 대표의 등록금 발언이다. 1월 31일 대선후보 캠프에서 기자들과 만나 “안보 이미지는 강하지만 교육부분은 별로 떠오르는 게 없다”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대표로 있을 적에 대학입시 자율화, 등록금 반값 얘기를 많이 했는데 상대적으로 주목을 못 받았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일전에도 교육 얘기를 했는데 (신문에) 한 자도 안 났다. 밖에서는 왜 교육정책이 없느냐고 하고, 가슴이 답답해서 평소 생각을 모아서 얘기했는데 쓰나미같이 밀려 버리고 제가 너무 허망하다. (내일 신문에 어떻게 나는지) 기억 잘해 두겠다”고 말했다. 무척 화가 난 듯 보였다.
사실, 반값 등록금 문제는 박 전 대표가 대표시절부터 이 의원과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사안이었다. 김윤정 단장은 “이 의원이 대표시절, 박 전 대표에게 수시로 보고를 했다. 여당 대표도 아니었으니 만날 시간이 많았다. 박 전 대표는 꼼꼼하게 교육 문제를 챙겼고 관심이 많았다”고 기억했다.
반값 등록금이 한나라당 당론이었던 만큼 당시 원내대표였던 김형오 의원은 2월 7일 임시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대학 등록금 부담을 반으로 줄이는 ‘반값 등록금 법안’, 서민의 내집 마련을 돕는 이른바 ‘반값 아파트 법안’, 서민의 부담을 완화하고 생활보호를 위한 ‘감세 법안’, 기업과 지방이 주도하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지방투자촉진특별법안’ 등 민생 관련 4대 법안을 우선 처리하겠다”고 했다.
노무현, “등록금을 반으로 줄이지는 못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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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6년 9월 8일 한나라당 정책위가 주관한 ‘대학등록금 부담 반으로 줄이기 입법 공청회’ 모습. 당시 박근혜 대표와 황우여 국회 교육위원장, 이주호 의원 모두 ‘반값 등록금’ 정책에 동조했다. |
강 대표는 “학생들이 학자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고 있다”면서 “기부금 확대 등을 통해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반으로 줄여야 한다”고 하자, 노 대통령은 “등록금을 반으로 줄이지는 못하지만 장학금 지원, 학자금 저리융자를 검토하겠다”고 화답했다.
영수회담의 진전된 논의는 며칠 뒤 2월 12일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다시 거론됐다. 그러나 여야의 견해차는 너무 확연했다.
한나라당 김기현(金起鉉) 의원은 “정부가 ‘비전 2030’ 등 무려 1100조원의 엄청난 예산을 수반하는 정책을 발표하는데도 ‘비전 2030’의 0.5% 수준인 6조원의 반값 등록금 재원을 마련하지 못하는 건 결국 의지문제”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앞서 이주호 의원이 제기했던 ▲국가장학기금 설립 ▲대학기부금 세액공제 ▲국립대 적정교육비 산출 등을 통해 ‘등록금 반값’ 정책을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반면 열린우리당 정봉주 의원은 ‘반값 등록금’ 정책에 대해 시종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정 의원은 “이 법안을 위해 4조원을 정부가 지원해야 하는데, 재정운영상 불가능하다”며 “한나라당이 감세를 주장하면서 증세를 해야만 가능한 반값 등록금 정책을 내놓은 것은 국민을 현혹하는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의 반값 공약을 포퓰리즘으로 규정한 것이다.
당시 언론에서도 한나라당의 반값 정책을 두고 ‘좌측 깜박이’란 표현을 썼다. 《세계일보》 2007년 4월 16일자에 실린 ‘한나라, 좌측 깜박이 한번 켜봐?’ 기사의 일부다.
<당론으로 채택된 ‘반값 아파트 정책’, ‘대학 등록금 반값 정책’ 등도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분배의 철학을 담은 정책들이다.
이 같은 한나라당의 움직임에는 다분히 대선 전략을 염두에 둔 고려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두 차례의 대선에서 당의 이미지가 ‘수구보수당’, ‘부자옹호당’의 모습으로 비쳐지고 남북 관계와 관련해서도 대결구도를 조장하는 정당으로 상대편에서 공격받았던 ‘패착’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행보라는 것이다.>
반값이란 말을 싫어한 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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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10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촛불집회가 열렸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도로로 나와 행진하고 있다. |
2008년 8월 20일 대선 후보로 확정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화합차원에서 경선 경쟁자의 반값 공약을 가져올 수도 있었지만 마뜩잖아했다고 한다.
당시 ‘당 일류국가비전위원장’으로 대선 공약을 전체 조율하던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반값 등록금이 공약으로 다뤄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대통령 성격이 신중한 편이어서 특히 예산이 수반되는 공약은 아주 엄격했다”고 말했다.
MB 캠프에서 대선 공약을 검토했던 모 대학 교수는 “홍준표(洪準杓) 의원이 내놓은 ‘반값 아파트’ 공약을 당론으로 채택해 공약에 포함시킬 계획도 세웠지만, 반값 등록금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당시 박 전 대표의 공약 중에는 ‘6대 생활비 지출 30% 줄이기’ 공약 등이 MB 공약에 포함됐었다”고 기억했다.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대학 등록금과 관련한 공약은 크게 4가지다. ▲대학생 근로장학금 확대 ▲대학 등록금 융자제도 혁신 ▲대학기부금 세액공제로 교내 장학금 대폭 확대 ▲평생학습계좌제 도입 등이다.
이 공약들은 2006년부터 의원 시절 이주호 장관이 추진했던 사안이지만, 가장 중요한 서민가정과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무상 장학금 얘기는 빠져 있다.
이에 대해 이주호 장관 측근의 말이다.
“이 대통령의 일관된 기조가 ‘똑같이 적용되는 복지가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많이 주는 복지여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어요. 한나라당이 ‘반값 등록금’을 통해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등록금 부담을 아예 없애 주는 내용은 빠졌지만 2009년 5월 한국장학재단을 설립, 국가 차원의 장학제도의 토대를 어느 정도 닦아 놓았습니다.”
그러나 한국장학재단의 ‘든든 장학금’은 가구소득 수준과 학점, 성적, 연령 등을 적용해 지원 대상자를 선정하지만 저소득층 학생 무상 장학금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대출 이자율이 2008년 2학기에는 7.8%, 2010년 1학기에는 5.7%, 2011년 1학기에는 4.9%로 감소 추세지만 학생들로서는 여전히 부담스럽다. 적어도 3% 미만으로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황우여 원내대표의 ‘불쑥 발언’으로 촉발된 반값 등록금 사태는 현재 진행형이다. 2006년 당시처럼 다시 여야가 경쟁을 벌이고 있다. ‘무상 급식’으로 재미를 본 민주당은 과거 자신들이 그토록 반대하고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반값 등록금 정책을 이제 아예 등록금 폐지까지를 염두에 둔 ‘더 센’ 공약을 내걸 태세다.
‘반값 등록금’의 원조격인 황 원내대표와 한나라당으로선 더욱 혼란에 빠졌다. 민주당보다 한걸음 앞선 공약을 내놔야 싸움이 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노무현 정부든 이명박 정부든 집권했을 땐 반값 등록금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반값 등록금이 포퓰리즘은 맞는 모양이다. 박근혜 전 대표도 야당 시절에 주장했으니 말이다.
야당이 아니라 여당이 반값 등록금을 본격적으로 들고 나오고, 미래 권력인 박 전 대표는 이에 적극적이고, 반값 등록금의 창시자가 교육부장관이니 상황은 이전과 크게 달라진 셈이다. 반값 등록금을 탄생시킨 주역들이 ‘힘’을 가지고 있는 세상이 왔으니 실현 가능성이 커졌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렇더라도 정부가 돈을 내놔야 한다. 흔히 좌파 성향이라고 분류되는 노무현 정부도 내놓을 돈이 없었는데, 이명박 정부는 내놓을 돈이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