阿Q의 시 읽기 〈14〉 예브게니 옙투셴코의 〈별의 역사〉

서로 닮은 별은 하나도 없다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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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길의 지도를 읽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 지난 4월에 사망한 시인 옙투셴코 … 시 〈바비 야르〉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라
러시아의 시인 에브게니 옙투셴코.
  별의 역사
  예브게니 옙투셴코(최선 옮김)
 
  이 세상에 흥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사람의 운명은 별의 역사와도 같은 것
  하나하나가 모두 독특하고 비범하여
  서로 닮은 별은 하나도 없다
 
  누군가가 눈에 띄지 않게 살았다면
  눈에 띄지 않는 것에 친숙해졌다면
  바로 이 눈에 띄지 않는 것으로 하여
  그는 사람들 가운데 흥미롭다
 
  모든 사람에게 그만의 비밀스러운 세계가 있다
  이 세계 안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이 세계 안의 가장 무서운 순간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사람이 죽어 가면
  그와 함께 그의 첫 눈이,
  첫 키스가, 첫번째 싸움이 죽어 가는 것 …
  이 모든 것을 그는 함께 가져간다
 
  그래, 책들이, 다리들이,
  자동차들이, 화가의 화폭들이 남을 것이다
  그래, 많은 것은 남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여전히 떠나가는 법!
 
  이것이 가차 없는 유희의 법칙이다
  사람들이 죽어 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들이 죽어 가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 세상 죄 많은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러나 우리가 본질적으로 그들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우리가 우리의 형제들과 친구들에 대해서
  사랑하는 유일한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낳아 준 아버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아무 것도 모른다
 
  사람들이 떠나간다 그들을 되돌릴 수는 없다
  비밀스러운 세계도 다시 탄생시킬 수 없다
  그리고 매번 나는 이 돌아올 수 없는 것 때문에
  다시 소리 지르고 싶어진다
 
  《러시아 명시 200선 : 끝없는 평원의 나라의 시들지 않는 말들》 최선 역, 도서출판 천지, 1993
 
 
젊은 시절의 옙투셴코. 스탈린 독재를 비판하며 개성과 자유를 옹호하는 시를 썼다.
  게오르그 루카치가 쓴 《소설의 이론》(심설당, 1985)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地圖)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반성완 譯)라고.
 
  지도가 없던 시대, 유일한 지도는 별자리였다. 길잡이들은 어두운 밤, 빛나는 별을 보며 길을 재촉했다. 별이 지도가 되던 시절, 인간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임철우의 소설 《그 섬에 가고 싶다》(살림, 1991)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모든 인간은 별이다. 이젠 모두들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지만 그래서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고, 누구 하나 기억해 내려고조차 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건 여전한 진실이다.’
 
  러시아 출신의 시인 예브게니 옙투셴코(1932~2017)의 시 〈별의 역사〉는 ‘별이 지도가 되던 시절’의 이야기다. 시인은 ‘사람의 운명은 별의 역사와도 같은 것/ 하나 하나가 모두 독특하고 비범하여/ 서로 닮은 별은 하나도 없다’고 노래한다.
 
  어쩌면 그 별은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일지 모른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듯, 불꽃의 밝기 역시 저마다 다를 것이다. 소설로 치면 그 별은 ‘평범한 주인공’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공이다. 만약 그런 자신을 중심으로 시와 소설을 쓴다면, 그리고 그 문학을 ‘역사적 진보’의 관점에서 쓴다면, 어떻게 쓰여질까.
 
시인 옙투셴코는 생전 150여 권의 시집을 펴냈다. 초기 시집인 《조숙한 자서전》.
  루카치가 ‘문제적 개인’이라 불렀고, 헤겔이 ‘세계사적 개인’이라 칭한 인간은 그저 평범할 수 있지만 그 개개인의 삶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도 평범하지 않다. 삶은 누구에게나 치열하다. 가혹하다. 사랑스럽다. 눈물겹다. 인간의 삶이란 어느 것이나 정답이 없는 복잡한 방정식이다.
 
  시인 옙투셴코는 ‘사람이 죽어 가면/ 그와 함께 그의 첫 눈이,/ 첫 키스가, 첫번째 싸움이 죽어 가는 것 …/ 이 모든 것을 그는 함께 가져간다’고 썼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첫 눈, 첫 사랑, 첫 키스, 첫 싸움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겹겹의 추억이 한 인간을, 한 가족을, 한 사회를 밝히는 별일지 모른다. 비록 크고 웅장하지 않더라도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 별빛을 드러내는,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는 문학양식인 시와 소설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시인 옙투셴코는 용기 있는 반체제 작가였다. 생전 150편이 넘는 시집을 펴냈다. 지난 4월 1일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신장암으로 사망했다. 스탈린 독재에 맞서 개성과 자유를 옹호한 시를 썼으며 구 소련내 반(反) 유대주의를 비판하는 시 〈바비 야르(Babi Yar)〉로 1963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바비 야르 골짜기에는 기념물 하나 없네./ 저 순정한 벼랑이 묘비런가./ 그게 나는 두렵다./ 그날의 그 유대인들처럼/ 이제 나도 나이를 먹었고/ 마치 내가 그들 같아./ 내가 그 유대인들만 같아.// 나는 나 자신이 고대 유대인이라 생각하지./ 고대 이집트의 길을 떠돌아다닌다네./ 그리고 여기, 십자가 위에서, 나는 멸망하고 고문을 당했어./ 그리고 지금도 손톱자국이 남아있지.(하략)
 
  -시 〈바비 야르〉 1, 2연
 
 
  한때 그의 시는 《프라우다》지에 실렸고, 택시 운전사가 암기하고 낭송할 정도로 사랑을 받았다. 그가 죽자 사람들은 〈바비 야르〉를 다시 꺼내 읽고 있다고 한다.
 
  시 〈바비 야르〉는 우크라이나 키예프 계곡에서 나치 점령자들이 저지른 유대인 학살을 비판한 시다. 당시 3만4000명의 유대인이 사망했다. 〈바비 야르〉가 쓰여지기 전까지 키예프 유대인 학살의 역사는 가려져 있었다. 그의 시는 소련 전역에 퍼져 있던 반유대주의를 성토한 용기 있는 선언이었다.
 
  시인 옙투셴코와 비교할 수 있는 국내 시인은 누굴까. 김수영(金洙暎·1921~1968)이 떠오르는 것은 우연일까. 평론가 유종호 선생은 김수영을 ‘자기 검열을 몰랐던 직선의 산문가, 가장 치열한 양심의 극(劇)’이라 했다. 그가 남긴 시들 중에서 1960년 6월에 쓴 〈푸른 하늘을〉이 떠올랐다.
 
 
1960년 4·19 당시 고려대 학생들의 시위 모습. 〈푸른 하늘을〉은 4·19 직후 쓰였다.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修正)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 김수영의 〈푸른 하늘을〉 전문
 
 
시인 김수영.
  4·19 직후에 쓰인 이 시에서 ‘자유’ ‘혁명’ ‘피’라는 시어가 눈에 띈다.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혁명에 피가 섞여 있음을 드러낸다. 자유를 위해 비상하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고독한 것인가를 시인은 말하고 있다.
 
  촛불민심이 대통령을 끌어내렸고 새 대통령은 지지율이 80%가 넘는다고 한다. 진짜 혁명이 일어난 것일까. 그리고 그 혁명이 새로운 세상을 변화시킨 것일까.
 
  문득 6·25 당시 북한 의용군에 끌려갔던 김수영이 떠올랐다. 평양 거리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국군장병에게 보낸 치하문을 읽고 시인은 눈물을 흘렸다. 훈련소를 탈출한 김수영은 아픈 발을 채찍질하여 남으로, 남으로 내려왔다. 그러다 문득 신을 벗어 보니 엄지발이 까맣게 죽어 있었다. 하지만 극심한 고통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었다. 바로 자유였다. 촛불민심이 만든 피와 눈물은 어떤 것일까. 또 국회와 검찰, 언론이 법정에 세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눈물과 피는 그저 가짜에 불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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