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박한 남북-미북정상회담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 만난 탈북작가, 이현서씨가 전하는 백악관 초청 뒷이야기

이현서씨, “더 이상 북한의 속임수에 놀아나지 않고, 중국까지도 압박하겠다는 백악관 의지 확인했다”

글 : 김동연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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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탈북자들에게 물은 질문 최초공개!
⊙ “평창올림픽 이후 백악관 집무실에서 중대한 결심할 것 같은 느낌 강하게 받아”
⊙ “트럼프 대통령 탈북자 면담 뒤 스케줄도 미루고 50분 동안 이야기 들어줘… 여지껏 만나본 정상 면담 중 최장시간”
⊙ “백악관의 미 수뇌부, 북한의 인권유린 실상 너무 잘 알고 있어”
⊙ “백악관과 청와대 커뮤니케이션 엇박자 나고 있음 확인, 백악관은 남북대화 진전 기대하는 문 정부 순진하다고 여겨…”
⊙ “트럼프 대통령의 전례 없는 대북압박정책에 한 가닥의 희망 보여”
⊙ 천안함 기념관에서 펜스 부통령, 자신의 이름, ‘현서’를 딸처럼 불러줘
⊙ 민주주의에 불평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일침, “대한민국은 지상낙원”
⊙ “문재인 정부 북한에 무조건적으로 비위 맞춰주면 안 돼”
트럼프 대통령과 이현서 탈북작가가 백악관에서 찍은 사진. 사진=이현서 제공
  목발을 치켜든 남성의 모습을 전 세계가 지켜봤다. 그런 그의 모습에 트럼프 대통령, 펜스 부통령을 포함한 미국의 군 장성들, 의원들이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지난 1월 30일 트럼프 대통령의 미 의회 국정연설에서 있었던 일이다. 목발을 치켜든 남성은 탈북자 지성호씨다. 북에서 어릴 적 달리던 기차에 두 다리를 잃은 뒤 목발로 탈북한 사람이다. 그런 지성호씨는 현재 탈북자들을 돕는 인권운동가로 활동 중이다.
 
  그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탈북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백악관의 오벌오피스(oval office)에 모였다. 세계 언론 앞 유창한 영어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국에서 북송되는 탈북자들을 막아주시고, 자유를 누려야 마땅한 북한 사람들을 도와주세요”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건넨 탈북자도 있었다. 이현서. 그녀는 《7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라는 책을 쓴 탈북작가다. 해당 책은 영어로 작성되었으며,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베스트셀러다. 그녀가 7개의 이름을 가지게 된 이유는 탈북 과정에서 중국 등에서 북송을 피하기 위해 여러 개의 가명을 쓴 것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현서씨. 사진=VOA 영상 캡처
  이현서씨는 이미 오래전부터 유명세를 떨친 탈북자다.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가진 그녀는 미국 비영리 재단에서 진행하는 TED(이하 테드, 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미국 비영리재단의 강연회)에서 자신의 탈북 이야기를 전달한 바 있다. 테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CEO인 빌 게이츠, 전기차 회사 테슬라의 CEO인 엘론 머스크 등 유명인이 서는 강연회로 유명하다. 이런 국제적인 강연회에서 이현서씨는 탈북작가로서 북한 인권 등에 대해 강의한 바 있다.
 
  기자가 이현서씨를 처음 접촉한 것은 그녀가 미국 워싱턴에 방문했을 때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끝난 직후였다. 그녀와의 인터뷰 진행은 쉽지 않았다. 그녀는 워싱턴 일정을 마친 뒤에도 여러 개의 해외출장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다. 미국 외에도 다수의 국가에서 이현서씨를 초청, 그녀의 북한 인권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다. 그녀는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앞두고 방문한 펜스 부통령과도 한국에서 만났다.
 
  이현서씨와의 일문일답이다.
 
 
  국제 강연 TED에 서고, 《7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 출간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선정
 
TED에서 강연 중인 탈북작가 이현서씨. 사진=이현서 제공
  — 《월간조선》 독자들을 위해 이현서씨, 본인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지금 사람들이 저에게 나이를 물어보면, 저는 가끔 ‘9세입니다’라고 대답을 하곤 합니다. 저의 프리덤 에이지(freedom age, 한국에서 자유를 누리게 된 기간)입니다. 저는 고향을 함경남도 함흥에 둔 탈북자 이현서입니다. 대다수의 탈북자가 그랬듯이, 북한을 떠나 중국에서 약 11년 동안 숨어 지내다 2008년에야 남한에 정착했습니다. (남한에서의 삶이) 비록 쉽지는 않았지만 처음으로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한국에서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중국어와 영어를 복수전공 했습니다.
 
  그 뒤로는 ‘TED’라는 국제적인 유명한 스피치 무대에 남북한 최초로 초대받아, 북한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TED 웹사이트와 유튜브(Youtube)를 통해 공개된 제 강연 영상의 조회수가 1843만이 넘을 정도로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TED라는 무대가 저를 국제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어요. 또한 제가 2년 전 영어로 출간한 저의 35년 인생을 담은 자서전, 《The Girl with Seven Names(7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가 2016년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 14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현재 저의 자서전은 35개 국가에서 해당 국가 언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한때 저는 ‘채널 A’의 탈북자들의 방송 프로그램인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외국에서 탈북 강연을 주로 하다 보니, 지금은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저를 더 많이 찾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북한 인권 운동가 혹은 탈북작가로 활동하며,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모든 이가 누리는 자유가 나에겐 영원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 9년간 한국(남한)에서 자유를 누린 소감은.
 
  “제가 서두에 밝혔듯이 저의 프리덤 에이지는 9세라고 했죠. 제 인생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린 것이 고작 9년밖에 안 되다 보니 사실 가끔은 지금 제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가 믿기지 않습니다. 영어 단어로 표현하자면, ‘surreal(비현실적)’ 한 느낌을 받습니다.
 
  기자들로부터 자주 듣는 질문 중의 하나가, 이 질문과 유사한 지금 제가 누리는 자유에 대한 제 소감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의 대답은 그리 거창하지 않습니다. 이미 (북한에서) 너무 많은 것을 누리지 못한 채 살았기에, 가끔 마주하는 아주 작은 것들이 행복을 줄 때가 많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햇살 따뜻한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 그 광경을 서울의 어느 커피숍에서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잔이 큰 행복을 주곤 합니다. 왜냐하면, 북한에서의 18년 동안 저는 (당시 북에서) 우리의 적국이었던 남한에서 지금처럼 이렇게 커피를 마실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으니까요. 또 제가 그렇게 중국에서 방황하고 쫓기면서도 꿈에라도 와보고 싶었던 우리의 반쪽 땅인 남한에 이제는 제가 와 있다는 그 사실이 너무 믿기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에라도 얻은 이 자유가 너무 소중하며,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입니다. 모든 이에게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자유가) 그렇지 못하다고 여길 때가 있습니다. 특히 북한에 가족을 두고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 눈엣가시처럼 북한의 인권을 알리는 역할을 하는 저는 수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제 입장에서는 정말 영원한 것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됩니다.”
 
  — 탈북을 한 시점이나 북한에서 하시던 일 등 북한에서 있었던 생활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탈북을 할 당시에는 북중 국경지역인, 양강도 혜산시에서 살았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한국 드라마나 미국 할리우드 영화가 몰래 들어오던 시기는 아니었습니다. 90년대 중반 무렵 저는 밤마다 집에서 몰래 텔레비전으로 중국 채널을 시청하게 되었죠. 집이 국경지역이다 보니 중국 채널들이 잡혔기 때문이죠. 북한에는 채널이 단 하나밖에 없는데, 중국은 정말 다양한 텔레비전 채널을 갖고 있어 당시에는 중국이 너무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북한에서 외부 미디어 콘텐츠 시청은 불법입니다. 제가 몰래 텔레비전을 제 방에서 보던 그때도 불법이었죠. 그래서 저는 방에 숨어 텔레비전 불빛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밤마다 커튼과 두꺼운 담요로 창문을 가리고 중국 방송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매우 발달된 현대 도시들을 보면서 어쩌면 북한이 지상낙원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점차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탈북한 1997년 말은 당시 북한에서 거의 300만명이 굶어 죽어 나가던 대아사(大餓死) 때였습니다. 북한의 현실은 참혹하기 그지없었죠. 저는 그때 국경을 사이에 둔 채로 두 나라(중국과 북한)를 보면서, 완전히 서로 다른 블랙과 화이트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의 한 눈은 시장에 넘쳐나는 꽃제비들과 길거리에서 죽어가던 영혼들… 정말 어둑컴컴한 북한의 현실을 보았어요. 다른 한 눈은 너무나도 컬러풀한 또 다른 세계, 눈 앞에 펼쳐진 생생한 중국을 끝없이 쳐다보면서, 외부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나날이 증폭했습니다. 그러고는 텔레비전이 아닌 중국을 직접 내 눈으로 경험하고, 무엇이 진실인지를 알고 싶다는 커다란 욕망으로 인해 어느 겨울밤, 가족한테도 비밀로 한 채 혼자 압록강 국경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일주일 후에는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굳게 다짐했는데… 돌이켜보니 그 순간이 제 고향 땅과의 마지막 순간이었고, 그렇게 사랑하는 가족과 14년이라는 긴 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꿈의 나라 같았던 그 화려한 중국이 사실은 탈북자라는 이유만으로 저의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는 그런 곳이었어요. 또 수많은 세월을 숨어서 지내야 하는 그런 곳인 줄은 꿈에서조차 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만나는 사실은 하루 전에 알아…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서전을 전달 중인 이현서씨. 사진=이현서 제공
  — 이번에 백악관에 초청을 받아 트럼프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을 면담을 하셨는데, 그 과정을 상세히 알려주시죠.
 
  “백악관과 제(탈북자) 사이를 이어주시는 관계자분이 워싱턴DC에 계십니다. 그분이 1월 초부터 이메일로 저에게 대단히 중요한 행사가 열릴 예정이니 빨리 프로필(자기소개서)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가 여러 곳으로 해외출장을 다니다 보니 그분에게 답장을 거의 한 달 동안 못 했어요. 제가 하도 연락이 안 되니 결국 그분이 1월 말 즈음 저에게 전화를 걸어왔죠. 당시 전화통화를 통해 중요한 행사가 있으니 미국으로 오라는 내용을 전달받았어요.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고, 나중에 워싱턴DC에 도착하고 보니, 트럼프 대통령의 연두교설(국정연설) 초대와 관련된 초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연두교설이 있기 하루 전에서야 연두교설에 우리가 참석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미팅도 하게 된다는 걸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내용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더군요. 심지어 엄마(모친도 이후 탈북함)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처음 그 전화를 받았을 때 감정은 굉장히 복잡했어요.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의 뭔가를 느끼고 있었다고 할까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은 호불호가 갈리는 평가를 받고 계시는 분이시라, 혹시 대통령과의 미팅으로 인해서 제 주위 사람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라는 그런 걱정도 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비록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하루 전에 알았지만 그 자리서 바로 만나겠다는 확답을 백악관 측에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약 하루 동안 대통령과의 면담을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현재 (세계에서) 제일 파워 있는 목소리를 가지신 분이시고, 우리 모든 탈북자가 바라는 걸 이루어줄 능력을 가진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국에서의 탈북자 북송 문제를 어쩌면 대통령께서 해결해 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갖고 면담에 참석하겠다고 결정을 내렸어요.
 
  당시 이런 과정을 우리 엄마도 모르셨습니다. 제가 늘 다니는 해외출장 중의 일부라고만 생각하셨죠. 제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러 갔다는 사실을 나중에 엄마의 지인분들을 통해서 듣게 되셨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엄마의 친구분들이 엄마에게 카톡으로 지금 네 딸이 트럼프 대통령 만나는 걸 봤다는 식으로 내용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엄마의 입장에서는 매우 놀란 순간이셨을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만남에 긴장해 손이 차가워지자… 트럼프 대통령 ‘왜 이리 손이 차냐’고 물어
 
TED에서 북한 인권을 이야기 중인 이현서씨. 사진=유튜브 캡처
  — 면담 초대를 받은 직후 미국에서 제공한 편의 등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시죠.
 
  “미국 백악관에서 항공권을 보내와 한국에서 출발한 3명의 탈북자와 함께 미국으로 갔습니다. 숙소는 백악관에서 아주 가까운 호텔로 이미 예약을 해주셨더군요.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이 있기 직전에는 맥매스터(McMaster) 국가안보 보좌관을 비롯한 미국 고위 인사들과 오전 9시부터 비공개 미팅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우리 탈북자 8명이 호텔 앞으로 나오자, 백악관에서 보낸 경호원 4명이 저희 주변을 앞과 뒤에서 보호해 주며 백악관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저는 사실 백악관으로 들어서는 그 순간까지도 트럼프 대통령을 정말 만날 수 있을까 확신이 없었어요. 왜냐면 대통령은 바쁘신 분이시고, 혹시 모를 더 급한 일이나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못 만날 수도 있으니 말이죠. 특히나 제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는 작년 12월 무렵 미국 시카고에서 강연에 초청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행사에 초대된 강연자들이 대략 50명 정도이고 그중의 한 분이 오바마 전 대통령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는 몇 개월 동안 그 행사를 고대했는데 막상 현장에 도착해서 보니, 해외출장으로 오바마 대통령만 오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그런 기대 같은 걸 안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과는 실제로 만남이 성사되었고, 당초 대통령과의 미팅은 30분 예정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께서 우리 탈북자들과 악수하고 인사를 하는 등 모두 50분의 시간을 함께하셨습니다. 저도 여러 해외출장을 통해서 주요 국가들의 정상분들을 여럿 만난 경험이 있지만 보통 그런 리더들과의 면담시간은 그렇게 길지가 않습니다. 더군다나 당시 트럼프 대통령께서는 탈북자들과의 미팅 바로 뒤에 다른 스케줄이 있으셨는데도 무려 20분을 더 우리 탈북자들과 머물며 탈북자들의 스토리에 귀 기울여주셨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합니다.”
 
  —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소감은.
 
  “사실 제 스스로도 너무 놀랐던 점은 트럼프 대통령을 봤던 그 첫 순간 저의 반응입니다. (탈북자들) 8명이 처음 백악관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 맥매스터 국가안보 보좌관을 비롯한 백악관 관계자분들이 다 기다리고 있었지만, 트럼프 대통령만 거기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백악관 관계자들과) 서로 인사를 나누며 3분 정도 지났을 무렵, 저는 무의식중에 고개를 뒤로 돌렸는데 집무실 테이블 앞에 대통령께서 손에 서류를 들고 읽고 계시더군요. 그 모습을 본 첫 순간 정말이지 이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안 믿겨서 머릿속이 온통 백지장이 된 것 같았습니다. 한마디로 그분의 아우라(aura, 기운)에 혼(魂)이 잠시 나갔던 것 같아요.
 
  그렇게 그분(트럼프 대통령)을 쳐다보고 있었고 (대통령께서) 우리 쪽으로 걸어와서 악수를 건네셨어요. 제 차례가 되었을 때까지도 저는 그분 손을 잡고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냥 너무 놀라서 입이 안 열렸던 것 같아요. 대통령을 보고 너무 긴장해 제 손이 차가운 얼음장같이 변했는데 그런 제 손을 잡더니 손이 왜 이리 차냐고 물으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너무 긴장해서입니다’라고 아주 짧게 답변을 했었습니다. 아마 아주 오랫동안 저는 제가 고개를 돌렸을 때 봤던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과 그 순간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딸 이름 부르듯이 ‘현서’ 불러준 펜스 부통령… 어린아이처럼 기뻤다
 
펜스 부통령과 경기를 관람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웃고 있다. 사진=조선일보
  — 펜스 부통령과 한국에서의 만남은 어땠나요.
 
  “백악관에 갔을 때는 펜스 부통령께서는 없었는데, 트럼프 대통령과의 미팅이 끝난 직후 서울에 있는 미국대사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평창올림픽 오프닝 때 펜스 부통령께서 오시니 지성호씨와 제가 참석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백악관 행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북유럽의 자서전 출간 행사로 출국했습니다. 거기서 일주일 머물다 한국으로 귀국, 바로 다음날인 9일 천안함 기념관에서 펜스 부통령을 만났습니다.
 
  뉴스의 영상에도 여러 번 나왔지만 제가 펜스 부통령을 만난 그 순간 너무 좋아서 어린아이처럼 뛰었습니다. 제가 당시 펜스 부통령께서 들어오는 문을 등지고 서 있었죠. 그래서 펜스 부통령의 입장을 모르고 있었는데, 누군가 ‘현서!’라고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돌아보니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펜스 부통령께서 제 이름을 불러주시다 보니 순간 너무 감격해서 어린아이가 된 것마냥 기뻤습니다. 당시 펜스 부통령의 눈에서 우리 탈북자들을 마치 아버지가 된 것 같은 마음으로 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함께했던 다른 탈북자분들도 아버지를 만난 듯 정말 편안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펜스 부통령과의 만남은 30분이 예정되었지만, 저는 제가 생각하는 대북제재를 말씀드리고자 펜스 부통령과 이야기를 더 나눴습니다. 이 내용을 들으시던 부통령께서는 제가 매우 스마트하다며 미국 대학원에서 공부할 수 있는 추천서도 써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 이번에 미국이 탈북자들을 불러 모은 연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미국으로부터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진정성을 느끼셨는지요.
 
  “저도 사실 백악관의 미팅 참석 요청 전화를 받고 나서 정말 의아했어요. 전혀 기대나 예상치 못했던 트럼프 대통령께서 우리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을 갖는다고 하니 정말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을 통해서 저는 미국의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자세, 이제는 더 이상 미국 행정부가 북한의 속임수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와의 만남을 통해서 북한의 아킬레스건인 북한 인권을 전 세계에 알림으로써 중국도 함께 강력하게 압박하겠다는 의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천안함 기념관에서 펜스 부통령과 이야기 중인 이현서씨. 사진=이현서 제공
  — 미국 수뇌부의 많은 관료(맥매스터 국가안보 보좌관, 폼페오 CIA 국장 등)도 만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을 논의했는지요.
 
  “수뇌부와는 아침 9시 비공개 미팅이 있었습니다. 현 문재인 정부에서 바뀐 한국 내 탈북자들의 인식, 북한 정치범 수용소 문제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나머지 답변 생략)
 
  이 질문에 대하여 탈북작가 이현서씨는 상세히 답변해 주었으나, 국가안보 및 국제관계 등과 저촉되는 부분이 있어 《월간조선》은 일반적인 범주에 해당되는 답변의 일부만을 공개하기로 한다. 또한 당초 백악관에서 비공개로 설정해 놓은 미팅의 취지상 그 내용을 외부로 공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
 
  — 현재 워싱턴 내 분위기는 ‘한 번만 더 북한이 위협적인 도발(미사일 발사, 핵실험 등)을 한다면 무언가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는 입장이 팽배하다고 알려졌습니다. 전직과 현직 미국 고위 관료(존 볼턴 전 국제안보차관) 등도 북한의 꼼수인 시간 끌기나 추가 도발에 더 이상 휘말리지 말고, 미국이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는 입장을 언론을 통해 밝혔습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미국이 이른바 코피전략(bloody nose)을 준비 중이라는데,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나요.
 
  “제가 군사전문가는 아니지만, 백악관에서 대통령을 만나고 나서 들었던 느낌은 분명히 평창올림픽 후 그 어떤 중대한 결정을 백악관 집무실에서 내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답변 중 미국 측과의 비공개 미팅 등에 관한 부분은 비공개라는 본래 취지에 맞춰 《월간조선》은 한미동맹관계 및 국가안보상 밝히지 않기로 한다. 또한 이 답변 내용이 적(敵)을 이롭게 한다고 판단했다.
 
 
  트럼프 대통령, 탈북자들에게 “북한 스스로 군사력 강하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 물어
 
  — 미국 관계자들을 만나본 결과, 미국의 고위 관료들이 북한과 한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것 같나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거나 잘 모른다거나 어떻게 보시나요.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자면, 북한의 특히 김가(金家) 정권 밑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권유린들에 대해서 (미국 수뇌부는) 너무 자세히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제일 기억에 남는 부분은 미디어에 공개된 대통령과의 24분의 내용 외에 비공개로 진행된 20여 분간의 대화 중 나온 트럼프 대통령께서 던진 질문입니다. 대통령께서 우리(탈북자들)에게 ‘북한 정권이 자국의 군사력이 강하다고 떠드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그때 그 질문에 제가 이렇게 답을 했어요.
 
  ‘북한 군부에는 군인만이 볼 수 있는 특별한 군사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그것은 북한의 텔레비전에는 절대 공개 안 되는 영화로 일반인은 볼 수 없는 영화다. 해당 영화는 북한이 세계에서 제일 강하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영화이다. 미국이나 한국의 군사력에 대해서 알 길이 없는 북한 군부는 그 영화 한 편으로 북한의 군사력이 지구상에서 제일 강하다는 오판을 가지고 미국과의 전쟁에서 무조건 승리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우리가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은 북한의 군부가 외부세계에 대한 군사력 저평가로 인한 오판으로 큰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 다른 중요한 포인트는 아무리 지금 외부의 미디어 콘텐츠가 북으로 유입되어 북한 주민들의 김씨 정권을 향한 충성심이 약해지고 있다지만, 그래도 현재 이 지구상에서 북한 사람이 가장 북한 정권에 세뇌된 사람들이기에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당과 수령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것이 바로 북한 군인들이 가진 정신력이다. 그들의 이러한 정신력은 미국의 젊은이들이나 남한의 젊은이들도 절대 이길 수 없는 부분이다’라고 조심스럽게 답변을 했습니다.
 
  제 답변을 들은 트럼프 대통령께서는 격한 반응을 보이면서 제 대답을 좋아해 주셨습니다. 사실 저는 보편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말을 꺼냈는데 아마도 북에서 자라난 사람인 제가 가지는 인식과 다른 사람들이 가지는 북에 대한 인식에 차이가 있음을 느낀 것 같습니다.”
 
  — 일각에서는 미국의 수뇌부가 한국(남한)의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번 만남을 통해 그런 분위기를 감지했나요.
 
  “이 부분에 대해 제가 느낀 바로는 청와대와 백악관이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번 북한과 함께한 평창올림픽에 대해서 한국 정부의 태도나 방식에 (미국이) 의구심을 나타냈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미국은 절대로 두 번 다시 북한의 선전공세(attractive propaganda)에 속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를 확인함과 동시에 현재 남한 정부가 추진하는 평창올림픽 이후 남북평화협정의 그 어떠한 진전도 기대하지 않음을 확인했습니다.
 
  즉 미국은 절대로 남북의 대화로 무언가의 진전을 기대할 일이 없다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더 나아가 이런 남북대화를 통해 진전된 모습을 기대하는 한국 정부를 나이브(naive·순진하게)하게 보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대한민국이 지상낙원… 베네수엘라의 안일한 안보의식으로 영원한 자유도 없어
 
미 국정연설 도중 목발을 치켜든 탈북자 지성호씨. 사진=TV조선 영상 캡처
  — 귀하는 자유, 평등, 민주주의, 공화국의 표본이자 상징인 미국을 방문했고 그 국가의 수장(트럼프)을 만났습니다. 반대로 귀하는 앞서 언급한 권리 및 가치와는 반대되는 국가인 북한에서 살다 왔습니다. 극과 극을 경험한 셈인데,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저는 주로 미국이나 영국으로 강연을 많이 다니다 보니 가끔 일부 사람들로부터 ‘공산주의에서 살아본 제가 느끼는 자본주의 및 민주주의가 완벽하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이런 질문을 제게 던지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은 지금 자신들이 겪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이 불공정하다고 여기며 불평을 하는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이와 유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한국에서도 여러 번 접하게 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은 이 세상에 누구나가 100%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완벽한 체제는 존재할 수 없다고 봅니다. 분명히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스템 속에서도 문제점들이 많죠. 하지만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로 둔갑한 독재국가에서 태어나서 그 속에서 인간으로서 누려야하는 아주 기본적인 인권마저 박탈당한 채, 언론의 자유, 발언의 자유, 이동의 자유, 종교의 자유, 모든 자유를 박탈당한 그곳에서 살아본 저는,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이 사실은 김일성이 그렇게 만들고 싶었던 지상낙원. 즉 모든 주민이 이밥에 돼지고깃국을 먹을수 있는 국가로 만들고 싶었던 그 나라가 바로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한국이나 미국을 경험하면서 제일 놀랐던 부분은 사람들이 동물 보호 를 외치는 모습입니다. 사람의 인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북한, 그곳에서 태어난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의 동물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인도에 모두 3번 강연을 갔었는데 그곳에서 제일 많이 받았던 질문이 북한의 여성 인권 상황이에요. 가부장적인 사회인 북한에서 남성의 인권도 없는데 여성의 인권이라니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저는 그래서 지금 제가 찾은 이 자유, 그리고 제가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이 너무 소중합니다.
 
  하지만 저는 민주주의가 북한보다 훨씬 도입되었고 북한보다 더 부유했던 지난날의 베네수엘라가, 현재는 모든 것이 다 파괴가 된 현실을 보면서 우리가 누리는 지금의 민주주의와 자유에 너무 익숙해져서 국가안보에 안일하게 대처한다면, 영원한 것 또한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문재인 정부, 무조건적으로 북한에 비위 맞춰줄 때 아니야”
 
김정은이 약전기계공장을 시찰 중이다. 사진=조선중앙통신 캡처
  — 이번 방미를 통해서 한국 정부에 바라는 점이나, 한국의 대북정책 등에 대하여 하실 말씀은 없으신가요.
 
  “이번 방미에서 제일 중요한 사안은 북한 인권 문제였습니다. 저는 지금 문재인 정부가 무조건적으로 북한의 비위를 맞춰줄 게 아니라, 대북정책과 북한 인권에 관해서 당근과 채찍을 함께 쓰는 그런 정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북한 인권 문제가 분명히 우리의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당사국인 우리보다 다른 국가들이 더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북한 인권 결의안을 체택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 우리나라에서만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이 약한지 의문이에요. 특히 현 정권에서는 왜 (북한 인권이) 금지어가 되었는지 참 아쉬울 따름입니다. 당사국인 현 정부가 좀 더 앞장서서 당당하게 북한에 요구할 건 요구하고, 인도적 지원 차원에서 필요한 건 해주고 밸런스를 맞추는 정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 미국이 향후 탈북자 인권의 개선의지 등을 가지고 있던가요.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 트럼프 대통령께서 미팅 당시 (탈북자들에게) 이야기했듯이, 이미 미국 정부는 탈북자들을 위한 노력을 진행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더 관심 가지고 해나갈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 트럼프 정부는 전례 없는 대북압박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에 이어 이번 평창올림픽에 앞서 미국의 항공모함 3척을 다시 한반도로 보냈습니다. 미국의 이러한 대북정책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보기에 이번 트럼프 정부의 전례 없는 대북압박 전략은 제대로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의 효과를 높이 평가합니다. 미국의 그 어떤 행정부도 이번 트럼프 정권만큼 북한과 중국을 압박한 정부는 없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 현재 북한 수뇌부조차 예측할 수 없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음을 북한의 소식통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북한의 입장에서 미국이 정말 북한을 선제공격할지 아닐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 북한은 불안한 상태에 처했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저는 처음으로 한가닥의 희망을 느꼈습니다.”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탈북자 신변보호 해주는 제도 마련 시급해
 
  — 이번 면담 전, 면담 중, 면담 후에 신변에 위협을 느꼈다든지, 종북단체 등으로부터 위협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까.
 
  “사실 2013년 TED 강연 후 갑자기 양지(陽地)에 너무 노출되어 있다는 공포에 휩싸여 학교 가는 것조차 두려웠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제가 경찰청에 신변보호 요청만 하면 보호를 해주겠다는 제의가 두 차례나 있었죠. 그런데 대학생인 제 곁에 누가 항상 저를 따라다니고, 수업시간에도 누가 곁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워 거절했습니다.
 
  설마 이한영과 같은 사건(김정은 처조카 암살)이 요즘에도 일어날까 하는 생각 때문에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절차상,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신변보호를 제공해 주는 서비스 자체가 없다고 과거 국정원을 통해서 들은 바 있습니다. 저처럼 해외로 자주 강연을 다니는 입장에서는 정부가 보호해 주지 못하는 셈이죠. 그 후로는 사설 경호업체 인력과 함께 해외로 가기도 합니다. 과거 2016년 중국 베이징에 탈북자 최초로 공개강연을 갔을 때는 당시 정부에서 일부 도움을 준 바 있습니다.
 
  최근 백악관 방문 및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 이후부터는 제 발언이 국제적으로 더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특정 국가를 방문하기에 앞서 여러 번 해당 국가의 방문을 심사숙고하게 됩니다. 지난 김정남 암살 사건 이후부터는 해외출장이 우려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국제행사의 위험성이 높다고 생각되면 일정을 취소하기도 합니다.”
 
  이현서씨는 앞으로도 북한인권운동을 위해 국제적인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본지에 인터뷰 답변을 전달한 직후 해외로 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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