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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년 4월호

29 미국 존뮤어트레일

숲·언덕·초원·호수를 가로지르는 영혼의 길

글 : 이상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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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는 거리 : 하루 18~20km(총 358km)
⊙ 걷는 시간 : 하루 평균 10시간 (총 18~20일)
⊙ 코스 : 해피 아일스~데빌스 포스트파일~실버패스~무어랜치
    ~ 무어패스~마더패스~포레스터패스~휘트니포탈
⊙ 난이도 : 고도의 체력과 정신력, 팀워크
⊙ 좋은 계절 : 6~8월









요세미티 하프돔 정상. 일명 다이빙보드라는 곳에서 세상의 끝을 마주하다.
  탁월한 강태공, 에드워드 형님이 너무나 사랑스러운 순간이다. 큰 코펠에는 벌써 송어 두 마리가 물을 튀기며 꿈틀거리고 있다. 누구나 낚싯대를 넣는다고 다 잡히는 건 아닌데, 형님이 넣었다 하면 호수의 송어들이 달려드는 건 참으로 신기하다. 덕분에 우리는 라면수프와 건조김치를 넣고, 신선한 송어매운탕을 끓여 간만에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다.
 
  “후루룩 쩝쩝, 캬~.”
 
  이따금 감탄사만이 흘러 나오는 저녁식사. 흐흐, 참으로 오랜 만에 모두 행복하다. 이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나중에 보면, 영락없이 각설이들의 궁색한 저녁으로 보이겠지만, 백 가지 반찬 중에 가장 맛있는 한 가지 찌개만 골라 먹는 것처럼 우리의 저녁은 풍요롭고 달콤하다.
 
  358km 존뮤어트레일은 자신과 새롭게 만나는 장이자, 무게와 부피와의 지난한 싸움이기도 하다. 맛있는 통조림이나 반찬을 배낭에 꾸역꾸역 넣는 만큼 걸음은 휘청휘청 더디게 나아갈 수밖에 없다. 라면은 포장을 뜯고, 수프는 지퍼백에 다 쏟아 넣고, 건조김치와 미역 등으로 과감히 무게와 부피를 줄이는 만큼 발걸음 가볍게 앞으로 쭉쭉 나갈 수 있다. 욕심을 비우고 몸을 가볍게 한 자리는 풍요로운 영혼이 맞이할 것이다.
 
  캘리포니아 서부의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위치해 요세미티국립공원, 안셀애덤스 자연보호구역, 인요국유림, 킹스캐년국립공원, 세쿼이아국립공원 등을 관통하는 존뮤어트레일(John Muir Trail). 요세미티 계곡에서 미국 본토 최고봉인 휘트니(Mt.Whitney·4418m)봉까지 수많은 호수와 계곡을 오르내리며 걷는 꿈 같은 산길이다. 해발 3000~4000m의 고도에 보석처럼 빛나는 호수가 숨겨져 있는가 하면, 먼지 풀풀 날리는 거대한 바위산들을 한가닥 끈으로 이어주는 트레일, 자연 그대로의 울창한 숲, 계곡, 냇물이 지친 걸음을 다시 보듬어 주는 그곳으로, 이제 358km 큰 걸음을 떼어 보자!
 
 
  끝날 것 같지 않은 길고도 긴 길
 
넓은 품…. 자연아, 네 앞에서 무슨말을 하랴! 내가 잘하마! 도노휴패스를 넘고 나서 큰 품을 마주하다.

  먼저 요세미티 레인저 사무실에서 입산 허가증을 받으면 여러 주의사항을 함께 듣게 된다. 종주를 하려면 강화플라스틱으로 만든 곰통을 필히 지참해야 하며, 물가와 길에서 30m 이상 떨어진 곳에다 텐트를 치고, 음식물은 반드시 곰통(Bear Canister)에 넣어야 한다. 곰통에 넣지 않으면 밤새 곰에게 음식을 다 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해발 3000m 이하에서는 모닥불을 피워도 되지만, 그 이상 높이에서는 안 되고, 쓰레기는 반드시 가져와야 한다는 등등.
 
  요세미티의 상징인 하프돔을 오르다 보면 트레일과 갈림길이 나타난다. 하프돔과 휘트니봉 정상은 트레일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지나쳐도 무방하지만, 요세미티의 상징인 하프돔을 그냥 지나칠 순 없잖은가. 하프돔을 오르기 전에 먼저 올라야 하는 전위봉에 서니, 먼저 온 많은 이가 거대한 화강암 바위를 마주하고 있다. 일행 중 몇몇은 전위봉에 머물고, 몇몇은 그늘 한 점 없는 바위에 쇠줄을 잡고 30여분 올라 정상(2695m)에 도달했다. 몸은 고단하나,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천국이다.
 
  종주 358km를 하루 평균 18km씩 걷는다면 약 20일 걸리는 거리이다. 물론, 시간이 부족하다면 하루에 몇km씩 더 걸으면 된다.
 
  투올룸메도(Tuolum Meadow)에서 본격적인 종주 시작이다. 투알롬 강을 끼고 초원을 가로지르는 트레일에는 세상의 평화가 다 숨어 있는 듯하다. 색색의 작은 야생화들과 풀들이 사그락 몸을 비비며 강바람을 쐬고 누워 있다. 하늘도 푸르고, 강물도 푸르고, 초원도 푸르다. 덩달아 걷는 이의 마음도 걸음마다 푸르다. 평화로운 강가를 떠나 고도를 올리자 길은 지그재그로 끝없이 오르고 또 오른다. 정말 끝이 없는 게냐 묻고 싶을 즈음, 그제서야 처음 만나는 3000m 이상의 오르막, 도노휴패스(Donohue Pass)가 정상을 내준다. 고개를 넘고 나니 이제 몸이 길에 적응한다. 걸음도 한결 가볍고, 7~8월에 이곳을 걸어간 이들은 극성스런 모기 때문에 고생을 했다는데, 9월에 오니 선선한 날씨 덕분에 괴롭히는 이 없이 호방하게 걷기만 하면 된다. 아일랜드패스를 넘어서면 1000개의 섬을 품고 있다는 사우전드 아일랜드 호수(Thousand Island Lake)가 쪽빛 자태를 드러낸다. 3000m가 넘는 고개를 힘겹게 넘으니 위로해 주듯 맞아 주는 호수라니…. 세상 어디에 이런 길이 또 있을까. 가넷레이크, 글레디스레이크…. 여러 호수를 지나 존스턴 초원(Johnston Meadow)에서 야영을 하고 출발~. 다람쥐 같은 마모트가 햇살 속 초원 곳곳에서 쫑쫑 고개를 내민다. 시원한 개울소리에 맞춰 씩씩하게 걷다 보니 데빌스 포스트파일(Devil’s Post Pile) 표지판이 나타났다. 내려가는 길은 멀어도 언제 다시 만나랴. 화산지역에서 볼 수 있는 주상절리가 육각형의 커다란 바위기둥이 되어 하늘을 찌를 듯이 병풍처럼 펼쳐진 광경을. 해발 3300m의 버지니아 호수(Lake virginia)가에 자리를 잡고 침낭에 누우니 온종일 걸어온 노곤함에 선물이라도 주듯 별들이 쏟아져 내린다.
 
 
  산, 인간을 허락하다!
 
걷는 자, 길 위에서 꿈꾸다. 천 개의 섬을 지닌 사우전드아일랜드 레이크.

  고도가 높아 숨이 차고, 하룻동안 운행거리가 길어 온몸이 비명을 질러대도 자고 나면 또 걷게 되는 길. 내가 온전히 나를 마주할 수 있는 길이다. 문명의 잣대가 도저히 맥을 못 추는 대자연 속에서 정직하게 몸으로 버틸 만큼 지고 걷고 쉬며, 흔적 없이 소유 없이 그저 손님으로 왔다가 가면 그것으로 좋다.
 
  숲과 초원, 화강암바위를 넘어 호수를 맞이하고 다시 완만한 숲길로 들어선다. 원없이 걷는 길이다 보니 가끔 어디쯤인지 지도를 챙겨 봐야 한다. 무어랜치는 트레일에서 벗어나 있는데, 에드워드 형님을 따라가니 과연 나무로 지은 건물 몇 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종주를 위한 중간 기착지로 식량을 보충하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82세의 페티 할머니가 우편으로 오는 짐들을 관리하고, 인터넷으로 세계 도처의 트레커들에게 온 메일에 답장을 한다. 기일이 지나서 찾지 않은 짐들을 배고픈 트레커들에게 나눠준다는 할머니의 말을 뒤로하고, 근처의 유황온천으로 향했다. 조금 더디게 가면 어떠랴. 트레일 시작하고 처음 만난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니 여기가 천국이다!
 
  아, 오늘은 특히 힘들겠구나! 드디어 뮤어패스(3643m)를 넘는 날이다. 무인대피소인 뮤어산장을 찍고 내려오는 길은 길고도 길다. 마더패스, 핀초패스, 포레스터 패스…. 여전히 길이 우리를 기다린다.
 
  존뮤어트레일은, 미국 자연보호 운동의 대부인 존 뮤어(John Muir)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존 뮤어는 100년이 넘는 역사와 60여만 명의 회원을 자랑하는 미국의 자연보호 시민단체 ‘시에라클럽’의 창설자이다. 그는 시에라네바다, 유타, 알래스카 등의 빙하와 숲을 관찰한 후, 요세미티 계곡의 장관이 빙하의 침식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증명한 학자이며, ‘산을 오르는 것은 곧 마음의 본질을 등반하는 것이다’라고 한 진정한 등반가였다. 또한 인간이 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산이 인간을 허락하는 것임을 일깨워 준 위대한 작가이기도 했다. 그의 깨달음을 따라 길을 걷다 보면 그가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했던 대자연의 위대한 의지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게 된다.
 
  기타처럼 생긴 기타레이크에서 야영을 하고, 바로 위에 있는 휘트니봉을 향해 일찌감치 출발했다. 햇살을 받으며 뾰족뾰족 바위들이 빛난다. 평평한 휘트니봉의 정상에 서서 저 멀리 지나온 길을 보니, 정말 그림 같은 저 속에 내가 있었나, 스스로 대견하다. 뮤어산장 앞의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트레일의 종점인 휘트니포탈을 향해 다시 지그재그 열심히 길을 재촉한다.
 
  고갈된 체력과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풍경에의 호기심 중 무엇이 이길까.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트레일 내내 끝없이 펼쳐진 길, 산, 호수를 지나면서 ‘설마, 저기 저 끝을 간다고?’ 자문해 보곤 했다. 걸으면서 깨달은 것은 ‘설마는 가능성이다’라는 것이었다. 설마 하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이미 할 수 있으리란 걸 몸으로 안다. 나만 포기하지 않으면 ‘설마 하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데 어찌 포기할 수 있으랴.
 
  험하고 긴 여정이 외롭지 않았던 것은 좋은 이들과 함께 걸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가장 행복한 길을 걷다가 돌아올 수 있었다. “영혼의 생기를 되찾기 위해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던 존 뮤어의 말처럼 길을 걷고 나니 변함이 없는 듯 변해 있다. 일상의 산을 오르는 것이 가벼워졌다고나 할까! 빛의 길을 걷고 나니 영혼에 빛이 스몄나 보다.
 
● 존뮤어트레일 종주 퍼밋(permit)
 
  입장일 6개월 전부터 신청을 받는다. 신청서를 다운로드 받아 작성한 후 팩스로 신청하면 편하다. 퍼밋ID를 받아 예약한 후, 정식허가증은 트레일 입구에 있는 윌더니스 센터(Wilderness Cernter)에서 오전 10시 전에 받아야 한다. 지켜야 할 수칙들이 적혀 있으니 잘 읽고 지키도록 하자.
 
 
  ● 곰통(Bear Canister) 대여
 
  윌더니스 센터에서 곰통을 빌려 쓰고, 마친 곳의 센터에서 반납한다. 신용카드, 현금 가능.
 
 
  ● 뮤어트레일 랜치
 
  식량과 장비는 양동이(bucket)에 넣어 1주일 전에 도착하도록 보낸다. 하나당 보관비용은 55달러. 무게는 약10kg. 2주일간의 보관기한이 지나면 누군가에 의해 잘 쓰이고 있을 것이다.
 
 
  ● 주변 관광지
 
  • 요세미티 빌리지 안에 있는 안셀 애덤스 사진기념관!
  • 달력의 단골손님, 요세미티 하프돔
  • 데빌스 포스트 파일
  • 뮤어랜치에서 20분 떨어져 있는 유황온천
  • 미국 본토의 최고봉 휘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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