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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년 4월호

27 프랑스·스페인의 카미노 800km

고행의 길, 감동의 길

글 : 朴健三 시인·국악FM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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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는 거리 : 817km
⊙ 걷는 시간 : 약 1개월
⊙ 코스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사이군~푸엔테라레이나~생장 피에 드 포르
⊙ 난이도 : 조금 힘들어요
⊙ 좋은 계절 : 봄·여름·가을

순례자들이 아이고라산을 넘어 아세보로 향하는 산길을 걷고 있다.
  누가 내게 꼭 걷고 싶은 길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 카미노를 추천하겠다. 가장 외롭고 쓸쓸하며 때론 달콤한 고독을 즐길 수 있는 트레킹 코스이기 때문이다. 다만 카미노는 돈보다도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내일, 모래, 이렇게 미루다 보면 평생 갈 수 없는 게 카미노다. 그래서 월급쟁이들에겐 웬만한 용기가 아니고서는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일상에서 과감히 탈출, 모든 구속에서 해방되어 ‘조르바’처럼 자유인으로 단 한 달만이라도 살아 볼 것인가! 그것은 여러분의 선택에 달렸다. 진정한 선택이란 ‘일상과 자유’ 둘 중 어느 것 하나를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다.
 
  나는 4년 전, 2008년 4월 27일부터 5월 29일까지 32박33일 동안 ‘카미노’를 걸었다.
 
  이 고달프고 외롭고 쓸쓸한 행복을 즐겼다는 건 인생의 후반에 내가 택한 분명히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카미노는 당신에게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한 부류는 피레네를 넘어 산티아고까지 걸은 사람과 아직도 걷지 않은 사람이다.” 카미노를 걷고 난 후 ‘인간은 걸을 수 있는 만큼 존재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카미노란 무엇인가?
 
한 순례자가 카미노 표지판을 보며 방향을 확인하고 있다.

  ‘카미노’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야고보>의 순례 길 800km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를 일컫는데 이를 줄여서 ‘카미노’라 부른다.
 
  카미노는 대략 12개의 길이 있다. 그중에서 프랑스 남쪽 지방 ‘생장 피에 드 포르’(St. Jean Pied de Port)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 이르는 800km 순례 길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데 이 길은 순례객의 85% 이상이 이용하는 프란세스 길이다. ‘생장’을 제외한 나머지 길은 모두 스페인 서북부 지방을 따라 걷는다. 태양과 맞서 걸어야 하는, 그늘 한 점 없는 해발 800m 고원지대인 ‘메세타’ 지역이나 인간이 숙명적으로 피할 수 없는 죽음처럼 피할 수 없는 게 갈리시아 지방의 비다. 그러나 카미노를 다녀온 사람 누구나 그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그 길은 고행의 길이자 동시에 감동의 길이다. 카미노는 버리러 가는 길이다. 많이 줄이고 보다 많이 버릴수록 행복해진다.
 
  카미노 여정은 생장에서 출발,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크레덴시알(순례자 수첩)을 제출하고 증명서를 받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다시 서북부 땅끝 마을 피스테레(Fistirre) 등대까지 87km를 3일 동안 걷거나 버스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각자 소지한 귀중품(주로 내의나 양말, 심지어 스틱까지)을 하나씩 태우는 의식을 치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가톨릭 신도들은 이곳서 끝나는 게 아니라 무시아(Muxia)나 파티마(Fatima) 같은 성지를 순례하기도 하고 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포르투갈의 쿠임브라(Coimbra)나 리스보아(Lisboa)를 거쳐 ‘파두(Fado)’ 공연을 보고 마드리드를 경유해 귀국한다.
 
 
  배낭을 어떻게 꾸릴 것인가?
 
  마더 테레사님은 ‘인생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 같은 여정’이라 했다. 카미노 길 내내 매일 매일 낯선 알베르게(Albergue·순례자 쉼터)에서 잠을 잔다. 그곳에서 제공하는 건 침대와 베개뿐이다. 따라서 카미노에선 이불을 대신하는 침낭이 필수 장비다. 한 달 이상 걷는데 짐은 가벼워야 한다.
 
  첫째, 배낭이 가벼워야 하고, 둘째 배낭에 넣는 물건이 적어야 하고, 셋째 넣는 물건 자체가 가벼워야 한다.
 
  우선 350g짜리 가벼운 침낭을 준비한다. 역시 가벼운 판초 우의 한 벌, 옷은 입고 있는 외에 기능성 제품의 바지 하나와 긴 팔(또는 반 팔 각 한 벌) 티셔츠, 내의 상하 한 벌씩, 양말 한 켤레, 스포츠타월 한 장, 세면도구, 세탁용 물비누(빨랫비누는 카미노길에서 50센트만 주면 구입 가능), 옷핀(양말 건조 시 필요) 네 개 정도, 약간의 비상약(해열제, 지사제, 소염진통제 등 모두 합쳐 200g 이하)과 발에 바를 바셀린(50g 정도. 모자라면 카미노 여정 중 마을의 약국에서 언제든지 살 수 있다), 그리고 바르는 소염진통제를 추천한다.
 
  그리고 꼭 가져가야 할 책 한 권(나는 시집 한 권을 지니고 다녔다), 필기용 수첩, 가벼운 샌들, 작은 손전등 하나(나는 무게 100g 정도의 헤드랜턴을 사용했다)면 족하다. 여기에 배낭에 부착하는 것은 생장순례자협회에서 받은 조가비 하나뿐이다.
 
  순례자 통행증인 ‘크레덴시알’과 여권, 돌아오는 항공권, 그리고 약간의 유로화는 배낭 속의 비밀창고에 잘 보관해야 한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비상사태에 대비하여 지금 당장 필요 없는 비상약이나 물품을 챙기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지금 당장 필요 없는 물건은 아예 버려야 한다. 여성들은 7kg 이내로, 남자의 경우라도 절대 10kg을 넘지 않도록 배낭을 꾸려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자기가 입은 옷 외에 배낭엔 절대 두 벌씩 넣지 말아야 한다. 매일 빨래하는데 왜 두 벌씩이나 배낭에 넣고 다녀야 하는가. 햇볕이 좋아, 게다가 바람까지 살랑살랑 불면 빨래는 두어 시간이면 뽀송뽀송하게 마른다. 덜 마르면 옷핀에 꿰어 배낭에 달고 몇 시간 걸으면 마른다. 그래서 옷핀이 필요한 것이다. 적게 가져가라. 카미노는 버릴수록 행복해진다.
 
 
  갈리시아 지방은 꼭 걸어라
 
카미노 순례자들이 출발 전 생장 피에 드 포르의 순례자협회에서 등록을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갈리시아 지방의 비를 피할 수 없지만, 꽃과 잎의 계절인 4~5월과 풍요로운 9~10월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걷기에 편안한 계절이다. 특히 5월 스페인 카미노의 햇빛과 바람은 매혹적이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갈리시아 지방은—오 세브레이로에서 사리아, 포르토 마린, 아르주아를 거쳐 산티아고까지—한 곳도 빼놓지 말고 전 구간 110km를 반드시 걸어야 한다. 단 한 곳도 버스나 택시로 이동하면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주는 완주증명서를 받을 수 없다. 800km 전 구간 중 다른 곳은 걷지 않고 갈리시아 지방 110km만 걸어도 완주증을 준다. 이 점 꼭 명심하고 걷기 바란다.
 
  카미노의 안전, 숙식, 도중 생리현상 처리 등은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100% 안전하다. 자기 페이스대로 시속 4km의 속도를 유지하면서 꾸준히 걸으면 된다. ‘명상은 발끝에서 나온다’고 한다. 걸으면서 명상에 잠기기도 하고, 스스로 풍경으로 들어가 자신이 그 풍경의 일부가 될 때쯤엔 카미노는 자유로워진다. 고통에서 해방되고 행복해진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그런 빛깔의 하늘 아래 지평선을 이뤄 끝없이 펼쳐지는 밀밭 길, 이름을 알 수 없는 들꽃, 처절하고 고독한 이 풍광은 메세타 지역이 아니고는 도저히 맛볼 수 없다. 할 수만 있다면 어느 시인처럼 푸른 하늘에 우물을 파 그 파란 물로 그리운 사람의 눈이라도 적시고 싶었다.
 
 
  카미노의 5대 풍광
 
  나에게 카미노 5대 풍광을 꼽으라면, 첫 번째로 피레네의 숨 막히는 몽환적인 절경을 꼽고 싶다.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잠시 소풍 나온 내가 어느 날 문득 피레네에 서 있다니 얼마나 신기한 일이었던가! 두 번째로, 카리온에서 칼자디아로 가는 17.2km의 메세타 길이 끝없이 펼쳐져 숨이 탁 막히는 밀밭의 지평선, 세 번째로 ‘크루즈 데 페로’ 철 십자가와 돌무덤에 돌을 올리고 저마다 한 가지씩 소원을 빌고 아르고 산을 넘어 아세보로가는 두어 시간여 동안의 들꽃축제 길, 네 번째로는 절대 고독과 절대 적막이 맞닿아 있는 오 세이브레이로(O Cebreiro)로 가는 하늘 길에서 듣는 천상의 ‘바람 소리’와 1300m 정상에 펼쳐지는 풍광을 꼽고 싶다. 파울루 코엘류가 그의 자전적 소설 《순례자》에서 ‘죽음의 길을 마치고 깨달음을 얻게 된다’고 술회한 바로 그 길이다.
 
  마지막으론 갈리시아 지방의 떡갈나무 숲과 안개다. 유독 비가 많은 갈리시아 지방–비에 젖은 길–은 쇠똥이 진창을 이루기도 하지만 안개가 떡갈나무 숲을 헤집고 들어와 뺨에 입맞춤하고 스쳐 지나갈 때 그 부드러운 촉감은 첫 키스보다도 황홀하다. 게다가 카미노에서 마주치는 야생 양귀비꽃의 유혹은 자못 고혹적이다. 카미노는 분명히 고행의 길이다. 그러나 동시에 아름다운 감동의 길이기도 하다.
 
  ‘카미노를 왜 걷는가?’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나는 다만 그냥 걸었을 뿐이었다. 함께 걸으면서도 인간은 영원히 홀로인 존재임을 깨달았다.
 
  인간은 누구도 영원히 살 수 없다. 그러나 생의 어느 한순간만이라도 정직하게 살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바로 그 순간을 걷고 싶었다. 그리고 걸었다. 후회 없이 걸었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예전엔 볼 수 없던 것을 보았다.
 
  살아오면서 가장 고통스러웠고 가장 행복한 여행을 나에게 꼽으라면 단연 800km ‘카미노 순례길’이다. 눈만 뜨면 신발끈 졸라매고 걸었다. 바나나 한 개, 요구르트 하나, 빵 한 덩이. 이 소박한 식단이 아침식사의 전부다. 32박33일 동안 걸으면서 참으로 정직한 순간을 맛보았고 바로 그 순간 나는 정말 행복했었다. 이 긴 여행, 순례 길은 어떤 종교와도 상관없이 지금껏 살아온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나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푸른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지는 밀밭, 바람이 불 때마다 출렁이는 거대한 초록파도의 물결이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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