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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년 4월호

25 파키스탄 낭가파르바트 루팔

악마의 벽, 낙원의 베이스캠프

글 : 진우석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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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는 거리 : 37km
⊙ 걷는 시간 : 2박3일(혹은 1박2일)
⊙ 코스 : 타라싱~헤르리히코퍼 베이스캠프~샤이기리
⊙ 난이도 : 무난해요
⊙ 좋은 계절 : 5~8월

헤르리히코퍼 베이스캠프에서 바라본 4500m 높이의 루팔벽. 이 강렬한 빛에 얼마나 많은 등반가가 매혹되어 죽음을 맞았던가.
  험난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낭가파르바트(8125m)는 ‘죽음의 산(Killer Mountain)’으로 통한다. 1953년 초등(初登)이 있기까지 무려 31명의 목숨을 앗아가 산악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낭가파르바트 주변 마을은 낙원의 땅이다. 연녹색의 여린 풀들이 페르시아 양탄자처럼 펼쳐진 베이스캠프(3800m)에 누워 4500m 치솟은 세계 최고의 루팔벽을 보는 맛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악명 높은 세계 9위봉 낭가파르바트의 베이스캠프로 가는 길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부드러웠다.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북부 지역의 수도인 길기트까지는 지긋지긋해질 때까지 버스를 타야 한다. 대략 16~18시간, 운이 없으면 24시간, 만약 폭우로 길이 끊기면 도착 시간을 기약할 수 없다. 오후 2시경에 탄 버스의 에어컨은 선풍기 수준이었다. 게다가 옆자리에는 덩치 큰 펀자비(파키스탄 소수 민족들이 지배층인 펀자브 지역 사람들을 낮춰 부르는 말) 사내가 특유의 느끼한 웃음을 지으며 알은체를 했다.
 
 
  벌거벗은 산의 치명적 유혹
 
라토바의 목동 아이들. 낭가파르바트가 길러낸 맑고 투명한 아이들이다.

  밤새 어둠을 달려 온 버스가 인더스강이 흐르는 칠라스를 지날 무렵이면 옹색한 자리에서 시달린 몸은 말 그대로 파김치가 된다. 흐리멍덩한 눈동자에 찬란한 아침 빛을 받는 낭가파르바트가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잠을 못 자 헛것을 보나 하고 눈을 씻고 쳐다봐도 거대한 만년설 덩어리는 더욱 또렷해졌다. 낭가파르바트와 눈을 맞추자 신기하게도 그동안의 피곤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산스크리트어로 ‘낭가’는 벌거벗은 몸, ‘파르바트’는 산이다. 따라서 낭가파르바트는 벌거벗은 산이란 뜻이다. 산이 수직으로 치솟아 눈과 얼음이 붙지 않은 생김새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낭가파르바트의 특징은 수직으로 치솟은 벽에 있다. 그 벽을 살펴보면 동북쪽에는 라키오트(Rakhiot·3400m)벽, 남쪽으로는 루팔(Rupal·4500m)벽, 그리고 서쪽으로는 디아미르(Diamir·4500m)벽이 있다. 이 중에서 압권은 ‘수직의 벽’으로 부르는 루팔벽이다. 산의 서쪽 주민들은 이 산을 디아미르(Diamir)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디아미르는 ‘신의 산’ 혹은 ‘정령(精靈)의 산’이라는 뜻이다.
 
  낭가파르바트 트레킹은 북쪽으로 페어리메도우 코스, 남쪽으로 루팔 코스가 있다. 두 곳 모두 아름다운 길이지만 루팔은 파키스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통한다. 루팔 마을의 들머리는 타라싱 마을이다. 길기트에서 시커먼 흙탕물이 흐르는 강을 네 시간 역류하면 느닷없이 밀밭이 펼쳐지는데, 이곳이 타라싱이다. 마을에는 두 개의 게스트하우스가 있었고, 그 중 전망 좋은 숙소에 묵었다.
 
  다음 날, 이클라쿠 센이라는 청년을 가이드 삼고 짐을 실은 당나귀 한 마리를 앞세워 베이스캠프로 떠났다. 마을 언덕에 오르면 타라싱 빙하가 나타나면서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언덕에서 바라본 마을은 밀이 익어 가면서 황금빛으로 넘실거린다. 작은 빙하를 건너자 루팔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루팔은 파키스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손꼽히는 곳이다.
 
  밭에는 밀, 감자, 옥수수 등이 자란다. 길은 돌담을 따라 이어지고 길섶에는 형형색색의 야생화가 흐드러졌다. 히잡을 쓴 아낙들이 밭에서 일하는 모습은 우리의 들녘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을의 손바닥만한 가게에서 사과를 2kg 샀다. 사과는 작고 볼품없어 보였지만 제법 단맛이 났다.
 
  마을을 벗어나 언덕을 넘어서자 수초가 가득한 호수가 나타난다. 이어 산허리를 오른쪽으로 크게 돌자 갑자기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한 넓은 초지가 펼쳐진다. 그 가운데서 맑은 개울물이 흘러온다. 이 낙원처럼 아름다운 공간이 낭가파르바트 루팔벽의 베이스캠프다. 이곳을 헤르리히코퍼 베이스캠프라고 부른다. 헤르리히코퍼는 독일의 의사이자 등반가였다. 그는 20회 이상 원정대를 이끌고 찾아왔으니 반평생을 낭가파르바트와 함께한 셈이다.
 
  낭가파르바트 루팔벽은 구름 속에 제 얼굴을 묻고 몸은 암벽과 얼음을 갑옷처럼 두른 채 웅크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죽음의 산’이란 별칭답게 무시무시하고 음산했다. 캠프에 텐트를 치니 기다렸다는 듯 소나기가 쏟아진다. 빗줄기와 강한 바람이 텐트를 사정없이 할퀸다. 그렇게 3시간 정도 지나니 잠잠하다. 낭가파르바트에 온 신고식을 톡톡히 치른다.
 
 
  낭가파르바트에서 희생된 산악인들
 
하산 중에 만난 아낙과 아기. 여성은 무슬림답지 않게 사교성이 좋고 호기심이 많아 금방 친해졌다.

  다음 날 새벽, 우르르쾅! 빙하 무너지는 소리가 몇 번 들리고, 가이드가 소리를 지르기에 ‘무슨 사단이라도 났나’ 하고 텐트 문을 여니 맙소사! 여명 속에서 낭가파르바트 루팔벽이 완벽하게 드러났다. 가이드가 루팔벽을 보라고 깨운 것이다. 낭가파르바트 정상은 예리한 삼각형의 바위가 선명하게 보여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아침 빛은 가장 먼저 정상 삼각형을 비추더니 시나브로 얼음과 바위로 이루어진 루팔의 몸을 더듬기 시작한다.
 
  이 강렬한 빛에 얼마나 많은 등반가가 매혹되었던가. 가장 먼저 낭가파르바트의 치명적 유혹에 넘어간 사람은 머메리였다. 머메리는 ‘보다 어려운 등반’을 추구한 머메리즘(Mumerism・등로주의)의 선구자답게 1895년 낭가파르바트를 등반하기 위해 루팔 마을을 찾았다. 유럽의 등반가들이 아직도 알프스에 매달리고 있을 때, 눈을 히말라야로 돌린 것이다. 머메리 역시 이곳 캠프장에서 루팔벽을 보았을 것이다. 알프스 일대에서 온갖 등반 기록을 갈아치운 머메리가 루팔벽을 보았을 때의 심정은 어땠을까.
 
  “고도차 4500m, 험준한 버트리스(산체를 지지하듯 산정이나 능선을 향해 치닫고 있는 암벽), 단층애, 현수빙하를 거느리고 있는 엄청난 급경사를 이룬 상반부. 아무리 낙천적인 등반가라 할지라도 이 무시무시한 벽 앞에서는 시도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할 것이다.” 독일의 유명한 등반가 디렌프르트가 남긴 말이다.
 
  불행히도 머메리가 루팔벽을 보고 남긴 기록은 없다. 아마도 디렌푸르트처럼 ‘무시무시한 벽’ 앞에서 그저 입만 쩍 벌리지 않았을까. 머메리는 등반 가능한 루트를 찾아 루팔 마을을 지나고 마제노 고개(5399m)를 넘어 디아미르로 이동했다.
 
  그는 디아미르 계곡에서 6100m 지점까지 오른 후에 등반을 포기하고, 북면인 페어리메도우 방향으로 넘어가다가 홀연히 실종된다. 머메리의 죽음은 비극의 서막이었다.
 
  1934년 빌리 메르클 대장이 이끄는 대규모 독일 원정대는 당시 최고 등반가이자 이론가인 베첸바흐를 포함한 이른바 드림팀이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빌리 메르클, 베첸바흐를 비롯한 10명이 2주일이나 지속된 폭풍설 속에서 대참사를 당한다. 이어 1937년에 꾸려진 원정대는 히말라야 등반사상 최대인 16명, 원정대 전원이 눈사태로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비극은 1953년 헤르만 불이 정상에 오르며 막을 내리게 된다.
 
  노새들이 풀을 뜯고, 새가 지저귀는 베이스캠프의 아침은 그야말로 낙원의 풍경이었다. 어젯밤의 그 음산한 분위기가 사라진 낭가파르바트 루팔벽은 무섭지 않고 든든했다. 베이스캠프에서 빙퇴석 지대를 150m 정도 올라서면 제법 넓은 바진 빙하가 시작된다. 이 빙하는 낭가파르바트 주봉과 라이코트 사이에서 만들어진 거대한 얼음의 강이다. 이곳을 지나면 드넓은 초원, 토빈이다. 맑은 냇물이 초원 가운데를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흐르고 양과 야크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다. 토빈을 지나면 루팔 코스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캠프 사이트인 라토바가 나온다.
 
  라토바에서 꿈같은 하룻밤을 보내고, 타라싱으로 돌아오면서 루팔의 아낙들과 동행이 되었다. 그중에 아이가 둘이나 되는 젊은 아낙은 무슬림답지 않게 사교성이 좋고 호기심이 많아 금방 친해졌다. 그녀는 타라싱으로 밭일 하러 간다고 했다. 밭이 타라싱에 있으니 매일같이 루팔과 타라싱을 오르내려야 한다. 매일 쳐다보는 낭가파르바트는 그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그저 꽤 높은 동네 뒷산은 아닐까.
 
● 낭가파르바트 루팔 가이드
 
  루팔 코스는 길기트 및 디아미르 지역에 속한다. 8000m급 14좌 봉우리 중에서 가장 쉽고 빠르게 베이스캠프에 도달할 수 있다. 트레킹은 헤르리히코퍼, 라토바, 샤이기리 이상 3개의 베이스캠프를 차례로 거치게 된다. 모든 캠프지에 맑은 물이 흐르고 드넓은 초원이 펼쳐져 아름답다. 2박3일 일정이지만, 헤르리히코퍼 베이스캠프에서 1박하고 내려와도 된다. 가이드와 포터는 타라싱의 게스트하우스에서 구한다. 트레킹 중에 텐트가 꼭 필요한데 이 역시 게스트하우스에서 빌릴 수 있다.
 
 
  ● 교통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길기트로 이동한다. 길기트에서 루팔 트레킹의 출발점인 타라싱까지 가려면 전세 지프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길기트의 배낭여행자 숙소 마디나게스트하우스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 숙식
 
  타라싱에는 낭가파르바트 호텔과 뉴루팔 호텔이 있다. 뉴루팔 호텔이 시설 좋고 가격도 싸다. 식사도 저렴하고 괜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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