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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년 4월호

12 전북 고창 ‘고인돌질마재100리길’ 보은길

신화와 전설, 이야기 따라 걷는 길

글 : 진우석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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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는 거리 : 12.7km
⊙ 걷는 시간 : 5시간
⊙ 코스 : 검단소금전시관~참당암~도솔암~
    선운사
⊙ 난이도 : 무난해요
⊙ 좋은 계절 : 봄·겨울









소리재를 넘어 만나는 천마봉(오른쪽)과 선운산의 그윽한 풍경.
  전북 고창은 풍요로운 들판과 바다를 품은 고장이다.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판소리의 신재효와 진채선, 시인 미당 서정주 등 출중한 예인들이 화려한 문화를 일구었다. 이처럼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고창에 100리가 넘는 걷기 코스인 ‘고인돌질마재100리길’이 생겼다. 총 4개의 코스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지만, 그래도 가장 좋은 코스를 꼽으라면 4코스 보은길이다. 이 길은 선운사로 가는 옛길이고, 선운사 탄생 설화를 간직한 곳이다.
 
 
  선운사 탄생 설화를 간직한 보은길
 
  보은길 덕분에 숙제를 풀었다. 예전 선운사 일대의 지형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인천강을 따라 바닷물이 선운사 앞까지 흘러와 선운사 앞쪽은 길이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선운산 일대는 삼면이 물로 둘러싸인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였다. 그렇다면 예전에 선운사로 드나들던 길은 어디였을까? 그곳이 참당암 뒤편 참당고개를 통해 바닷가 마을인 심원과 연결된 길이다. 이 길이 보은길이고, 여기에 선운사 창건 설화가 서려 있다.
 
  선운사 창건 설화는 도솔암 마애불에서 이야기를 푸는 것이 순서다. 15m 높이의 마애불은 1500년쯤 전에 살았던 검단선사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전한다. 검단선사는 선운사를 창건한 스님이다. 그가 선운사를 창건할 당시 선운산은 도적떼의 소굴이었다. 검단선사는 도적들에게 소금 굽는 법을 가르쳐 생계수단으로 삼도록 했다. 양민이 된 그들은 고마운 마음을 담아 해마다 봄, 가을 두 차례 검단선사에게 보은염(報恩鹽)을 보냈는데 그때 소금을 운반했던 길이 바로 보은길이다.
 
  보은길은 예전 소금밭에서 시작한다. 그곳이 심원 사등마을로 바닷가에 검단소금전시장이 있다. 마을의 이름인 사등(沙登)은 ‘바닷모래가 쌓여 등성이를 이룬다’는 뜻이다. 이곳은 자염(煮鹽)으로 유명하다. 자염이란 바닷물을 가마솥을 이용해 끓여 석출하는 우리나라 전통 소금을 가리킨다. 예전에 소금을 만들던 모습이 바닷가 시멘트 둑에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검단소금전시장 앞의 드넓은 갯벌. 예전 소금을 캐던 그림이 갯벌 얼음과 어울려 독특한 영상을 전한다. 멀리 변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전시관 건물 옆에는 소금 굽는 벌막을 복원해 놓았으며, 여름철이면 화염(火鹽) 제조 과정을 재현하는 행사를 펼친다. 유리로 만든 전시관 전망대에 오르면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심원 갯벌 너머로 부안 변산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소금전시장을 출발해 논길을 따르면 ‘진채선 생가터’ 안내판이 보인다. 그곳을 따라가면 휑한 집터에 나무의자 몇 개만 놓여 있다. 진채선(1842~?)은 우리나라 최초의 판소리 여류 명창이다. 판소리 이론을 정립한 신재효 선생에게 판소리를 배우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됐고, 고종 때 경회루 낙성연(落成宴)에서 출중한 기예를 발휘해 대원군의 눈에 든다. 채선의 빼어난 솜씨에 깜짝 놀란 대원군은 채선을 애첩으로 삼고 총애했다.
 
  낙성연을 마치고 채선은 고창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대원군은 놓아주지 않았다. 이제나저제나 채선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던 신재효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리고 4년 뒤 대원군이 실각하자, 채선은 고향으로 돌아와 신재효를 찾아간다. 다시 만난 채선과 신재효는 다시 사랑을 나누었다고도 하고, 이미 채선이 왕가와 연분을 맺은 터라 손 한번 잡지 못하고 헤어졌다고도 전한다. 1884년 신재효가 세상을 뜬 뒤 채선은 꼬박 삼년상을 치른 뒤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진채선이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바닷가에서 소리 연습을 하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동편제의 우렁찬 소리가 마을은 물론 갯벌을 쩌렁쩌렁 울렸을 듯하다. 다시 길을 나서면 22번 지방도를 건너 화산마을 방향으로 들어선다. 지금부터는 병풍처럼 둘러쳐진 선운산 줄기를 바라보며 걷는다. 그곳 어느 지점에서 고개를 넘어 선운사로 들어갈지 고민이 된다.
 
 
  도솔암 마애불 배꼽에 숨겨진 비결
 
선운사로 내려가는 계곡의 겨울 풍경.

  화산마을 입구에는 느티나무를 비롯한 고목들이 즐비하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져버린 마을 숲이 여전히 잘 보존되어 있다. 여기서 작은 고개를 넘으면 연천마을이다. 인적 없는 아담한 옛집 뒤에 산길 입구가 나 있다. 그 앞에는 거대한 느티나무가 서 있다. 잠시 나무 아래 주저앉았다. ‘호랑이 장가가는 날’처럼 해가 난다.
 
  잠시 쉬다가 쫓기듯 엉덩이를 털고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든다. 500m쯤 올라서자 ‘개이빨산’이란 팻말이 보인다. 그곳으로 접어들자 산길은 비탈을 타고 돌면서 구렁이 담 넘듯 은근슬쩍 참당고개에 올라선다. 험악해 보이는 선운산 줄기에 이렇듯 쉬운 길이 있을 줄 몰랐다.
 
  기분 좋게 고갯마루를 내려오면 차밭이 보이기 시작한다. 참당암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인적 뜸한 참당암은 적막하다. 참당암 앞에서 시작하는 소리재 산길은 부드럽다. 소리재를 지나 다시 작은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드디어 조망이 열린다. 두루뭉술한 암봉들이 즐비한 천마봉 일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TV 드라마 <대장금>에서 최 상궁이 자살한 바위가 나오면 낙조대다. 낙조대란 이름처럼 멀리 서해가 아스라하다.
 
  낙조대에서 천마봉은 지척이다. 천마봉에서 내려다본 마애불과 도솔암, 그리고 도솔계곡의 설경은 선운산의 제1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대한 마애불이 장난감처럼 작고 귀엽게 보이고, 그 머리 위에는 내원궁이란 작은 암자가 자리 잡고 있다. 내원궁은 도솔천의 천상세계를 상징하고 마애불은 미륵하생의 지상낙원을 의미한다.
 
  하산은 도솔암으로 직접 내려서는 길을 따른다. 미끄러운 계단을 엉금엉금 내려오니 도솔암 마애불 앞이다. 마애불을 유심히 보면 유독 배꼽이 크다. 그곳에는 검단선사가 봉해 놓은 신비로운 비결(祕訣)이 하나 숨겨져 있는데, 그 비결이 세상에 출현하는 날에는 한양이 망한다는 흥미로운 전설이 내려온다. 또한 그 비결과 함께 벼락살을 동봉해 놓았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 비결을 꺼내려고 손을 대면 벼락을 맞아 죽는다고 한다. 실제로 전라감사 이서구가 그것을 꺼내다가 벼락이 쳐 도로 봉해 버린 사건이 있었다. 그 후 세상 사람들은 마애불의 전설을 철석같이 믿게 된다. 하지만 비결은 1893년 가을 동학접주 손화중에 의해 꺼내지고, 다음 해에 동학농민혁명의 불길이 전라도를 휩쓸게 된다. 비결의 개봉이 세상을 개벽하려는 농민들의 의식을 깨우는 데 일조한 게 아닐까.
 
  내원궁과 도솔암을 구경하고 내려오면 진흥왕이 말년에 왕위를 버리고 수행을 했다는 진흥굴과 600년쯤 묵은 소나무 장사송(長沙松·천연기념물 제354호)을 만난다. 이제부터는 평지처럼 완만한 숲길이다.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걷기 좋은 길은 선운사까지 이어진다. 선운사 경내는 고요하고, 대웅전 뒤편 동백나무는 깊이 잠들어 있다.
 
● ‘고인돌질마재100리길’ 가이드
 
  문광부에서 만든 ‘문화생태탐방로’ 중의 하나인 ‘고인돌질마재100리길’은 총 4구간 43.7km다. 1구간은 8.8km의 고인돌길(고인돌박물관~매산재~운곡저수지~용계리 청자도요지~원평마을 입구), 2구간은 인천강 복분자길(원평마을 입구~덕천사~할매바위~아산초등학교~병바위~연기마을 입구 7.7km), 3구간은 질마재길(연기마을 입구~분청사기요지~소요사~질마재~미당시문학관~서정주 생가~검단소금전시관 14.5km), 4구간은 보은길(검단소금전시관~진채선 생가~참당암~도솔암~선운사~선운사관광안내소 12.7km)이다.
  보은길은 전체적으로 수월하고 산길 구간도 어려운 곳이 없다. 참당암까지는 이정표가 확실하지만 그 이후는 이정표가 거의 없다. 참당암에서 소리재로 올랐다가 도솔암으로 내려오는 산길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어야 한다. 만약 참당암에서 시간이 부족하거나 산길 걷기에 자신이 없으면 선운사로 내려오면 된다.
 
 
  ● 교통
 
  자가용은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산 나들목으로 나와 각 구간 들머리를 찾아간다. 서울에서 고창행 버스는 센트럴터미널에서 07:00~19:00까지 약 40분 간격, 고창에서 선운사행 버스는 06:20~20:15까지 약 20분 간격으로 있다. 이 버스를 타면 1구간 고인돌박물관 근처, 2구간 원평마을, 3구간 선운사 입구, 4구간 사등마을로 갈 수 있다.
 
 
  ● 숙식
 
  숙소는 선운사 입구의 선운산관광호텔(063-561-3377)과 미당 서정주가 묵었던 동백호텔(063-562-1560)이 유명하다. 고창의 맛은 장어와 복분자다. 여기에 작설차를 넣어 고창의 3대 명물이라 한다. 자연산 장어는 사라진 지 오래고 모두 양식이다. 하지만 고창에서는 양식장어를 고창 갯벌에서 6개월쯤 키워 ‘고창갯벌 풍천장어’란 이름으로 특허를 냈다. 선운사 입구에 산장회관(063-563-3434) 등 유명한 식당이 많고, 검단소금전시장 앞의 금단양만(063-563-5125)은 직접 구워먹는 셀프 시설을 도입해 가격을 낮췄다. 1kg 3만5천원이다. 식당에서는 1인분 1만8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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