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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년 4월호

09 충북 괴산 화양동계곡길

화양동주 송시열이 아끼고 사랑했던 계곡

글 : 진우석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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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는 거리 : 4km(왕복 8km)
⊙ 걷는 시간 : 1시간30분(왕복 3시간)
⊙ 코스 : 화양동 버스정류장~경천암~주차장~
    파천~주차장
⊙ 난이도 : 무난해요
⊙ 좋은 계절 : 사계절






화양계곡 최고의 절경인 4곡 금사암. 수려한 풍광 속에 우암 송시열의 서재인 암서재가 자리해 있다.
  화양동계곡은 울창한 숲, 맑은 물과 너른 반석들이 어울린 별천지다. 백두대간 눌재에서 발원한 계류가 달천과 몸을 섞기 직전에 빚어낸 곳이 화양동계곡이다. 수량이 풍부하고 모래가 많아 물놀이하기 좋다. 하지만 물장구만 치고 돌아서기에는 좀 아쉽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손수 고르고 이름 붙인 9곡을 찾아 걸으며 숲, 물, 바위가 어울린 그윽한 산수미를 즐겨보자.
 
 
  ‘선유동은 부드럽고, 화양동은 호탕하다’
 
  괴산은 계곡의 고장이다. 백두대간 줄기에서 발원한 계곡에서 콸콸 시원한 물이 쏟아져나와 강으로 흘러든다. 문장대에서 발원한 신월천, 눌재에서 발원한 화양천, 장성봉과 악희봉 사이에서 발원한 쌍곡천, 조령과 백화산에서 발원한 쌍천 등이 대표적이다. 그중 청천면의 화양동계곡과 선유동계곡은 거리가 가깝고 막상막하로 아름다워 서로 비교되곤 한다.
 
  선유동구곡은 퇴계 이황이 송면 송정마을에 사는 함평 이씨를 찾아왔다가 계곡의 절묘한 경치에 반해 아홉 달 동안 머물며 9곡을 골라 이름 붙였다 하고, 화양구곡은 우암 송시열이 찾아와 머물며 이름 붙였다 한다. 화양동이 남성적으로 웅장하다면 선유동은 여성적으로 아기자기하다. 이러한 계곡미의 차이에서 두 사람의 성격을 미루어 짐작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성리학의 대가였던 송시열은 화양계곡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아꼈다. 심지어 자신을 화양동주(華陽洞主)라고 부를 정도였다. 화양계곡의 대표 경치로 꼽히는 화양구곡(경천벽·운영담·읍궁암·금사담·첨성대·능운대·와룡암·학소대·파천)은 그가 정계에서 은퇴한 후 이곳에서 은거하며 이름 붙인 것이다. 그래서 화양계곡 걷기는 9곡을 둘러보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다. 계곡을 따라 이어진 옛길을 2시간쯤 풍경을 음미하며 걸을 수 있다.
 
  화양동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주차장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도로 옆으로 1곡 경천벽(擎天壁)이 자리 잡고 있다. 기암이 가파르게 솟은 모습이 마치 하늘을 떠받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주차장을 지나면 자연학습관찰로가 시작되는데, 아름드리 느티나무들이 풍성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고풍스러운 나무들이 물과 어울린 모습이 보기 좋다. 수백 년 묵은 나무들은 말년의 송시열이 노구를 이끌고 산책하는 모습을 지켜봤을지 모른다.
 
  작은 다리를 건너면 2곡인 운영담(雲影潭)이 나온다. 기암과 잔잔한 옥빛 물결이 일품인 곳으로 화양동계곡 최고의 물놀이 장소다. 그곳에 몸을 담그면 옥빛으로 물들 것만 같다. 운영담을 지나면 길 양쪽으로 사람 키만한 돌기둥 두 개가 보인다. 조선시대에 화양서원을 찾은 지체 높은 양반들이 말에서 내리던 하마비(下馬碑)다. 조선 말기 한량으로 전국을 떠돌던 대원군 이하응은 말에서 내리지 않고 이곳을 지나가다가 묘(廟)지기에게 봉변을 당했다고 한다. 화양서원 안의 만동묘(萬東廟)로 오르는 길은 약 30개의 가파른 돌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권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축 구조다.
 
옥빛 풍광이 일품인 2곡 운영담. 물놀이 장소로 인기가 좋다.

 
  정치 건달의 소굴이 된 화양서원
 
  화양동계곡 안에 자리한 화양서원은 조선 팔도에서 가장 위세가 당당한 서원이었다. 서인 노론의 영수인 송시열이 은거하던 곳에 세워진 사액서원으로 명나라 두 황제의 위패가 봉안된 만동묘를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위세는 ‘화양묵패(華陽墨牌)’를 발행하여 관리와 백성들을 수탈하기까지에 이르렀다. 매천 황현(1855~1910)은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세상에 알려진 화양서원의 책임을 맡은 자들은 호중(충청도 일원)의 무뢰한 세도가들 자제들이다. 그들은 화양묵패를 가지고 평민을 잡아다가 가죽을 쪼고 골수를 빨아대는 남방의 좀과 같은 자들이다. 그 유래가 백 년이 되었으나 지방의 수령들이 그 위세를 두려워하여 아무도 감히 따지지를 못하였다.”
 
  훗날 대원군이 정권을 잡고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 가장 먼저 철폐된 곳은 물론 화양서원이었다. 서원 앞 물가엔 3곡 읍궁암(泣弓巖)이 있다. 북벌을 꿈꾸던 효종이 승하하자 우암이 새벽마다 올라가 활처럼 웅크려 절하며 울었다는 사연이 전한다. 여기서 좀 더 계곡을 따라 오르면 갑자기 풍경이 수려해진다. 금빛 모래가 펼쳐져 있는 4곡 금사담(金沙潭)은 화양계곡 최고의 절경이다. 옥빛 청수 너머의 큼직한 바위엔 우암이 제자를 가르치던 아담한 암서재가 위치해 있다. 암서재에 머물던 때가 우암에게는 ‘화양연화’(花樣年華・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와 같은 시기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암은 당쟁에 휘말려 83세의 나이에 사약을 받는다.
 
  별 보기 좋은 바위라는 5곡 첨성대(瞻星臺) 앞에서 다리를 건넌다. 뭉게구름처럼 생긴 6곡 능운대(凌雲臺)를 올려다보고 마지막 매점을 지나면 인적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물소리는 더욱 크게 울리지만 길에는 적막이 가득하다. 길게 누운 용이 꿈틀거리는 듯한 7곡 와룡암(臥龍巖)을 지나면 8곡 학소대(鶴巢臺). 학소대는 도명산의 입구인 철다리에서 잘 보인다. 백학이 이곳에 집을 짓고 새끼를 쳤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학소대에서 철다리를 건너면 도명산으로 오르게 된다.
 
  학소대부터는 인적이 뚝 끊긴다. 하지만 마지막 9곡인 파천(巴川)까지 이어진 호젓한 숲길을 빼놓을 수 없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이어진 숲길을 15분쯤 걸으면 새하얀 너럭바위가 깔린 파천이다. 옥빛을 담은 잔잔한 물결과 반질반질한 바위가 어울린 모습이 금사암 못지않은 비경이다. 흐르는 물결이 마치 ‘용의 비늘을 꿰어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파천이란 이름이 붙었다. 신선들이 이곳에 내려와 술잔을 나누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고 한다. 파천 너럭바위에 주저앉아 시원하게 세수를 했다. 잔잔한 수면으로 하늘이 바람이 구름이 내려와 앉는다.
 
● 화양동계곡길 가이드
 
  화양동계곡은 속리산국립공원에 속한다. 1곡 경천벽~2곡 운영담~3곡 읍궁암~4곡 금사담~5곡 첨성대~6곡 능운대~7곡 와룡암~8곡 학소대~9곡 파천까지 차례로 거치게 된다. 거리는 약 4km, 1시간20분쯤 걸린다. 아이와 함께 천천히 걷는다 해도 왕복 3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차를 가져왔으면 파천에서 주차장으로 되돌아가야 하고, 대중교통으로 왔으면 파천을 지나 32번 도로를 만나는 학습원 버스정류장까지 15분쯤 더 걸을 수 있다.
 
 
  ● 교통
 
  자가용은 중부고속도로 증평 나들목으로 나와 증평 읍내~592번 지방도(청안 방면)~부흥사거리~금평삼거리(좌회전)~화양동. 청주시외버스터미널(가경동, 1688-4321)에서 화양동행 버스는 07:20, 09:20, 11:20, 12:20, 14:00, 15:00, 16:40, 17:40에 있다. 화양동계곡에서 청주행 버스는 07:00, 08:50, 10:40, 13:00, 15:20, 16:40, 18:10, 19:30에 출발한다.
 
 
  ● 숙식
 
  화양계곡 입구에는 화양동오토캠핑장이 있다. 이곳에서 하룻밤 묵는 여정도 훌륭하다. 문의 속리산국립공원 화양동 분소 043-832-4347. 괴산의 대표 음식은 올갱이 요리다. 화양동계곡 안에서 파는 음식보다는 청천면 근처의 신토불이가든(043-832-5376)과 괴산 시내의 기사식당(043-833-5794)의 올갱이 요리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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