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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책부록
  1. 2011년 6월호

제14장 광복 후 한국의 독도영유권 회복과 연합국의 독도 문제 처리

글 : 愼鏞廈 독도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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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2]
 
  Q : 연합국은 일본의 패전에 대비해 일본이 침탈한 영토를 원주인에게 반환시키겠다는 정책을 갖고 있었는가?
 
  A : 그런 정책을 갖고 있었다. 1943년 11월 20일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영국 수상 처칠(Winston S. Churchill), 중국 총통 장제스(蔣介石)는 카이로회담에서 ‘카이로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일본으로부터 반환받고 일본을 축출해야 할 지역으로 ①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일본이 장악 또는 점령한 태평양의 모든 섬 ② 1894~1895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이 중국으로부터 절취한 만주·대만·팽호도 등 ③ 일본이 폭력과 탐욕으로 약취(掠取)한 모든 다른 지역 등을 들었다. 카이로선언은 한국의 독립까지 선언했다. 여기서 한국의 영토는 ‘일본이 폭력과 탐욕으로 약취한 모든 다른 지역’에 해당됐다. 1894~1895년 청일전쟁 때 일본이 절취한 영토를 반환 대상에 포함시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이 대한제국으로부터 독도를 강탈한 시기(1905년 2월)는 당연히 포함되어 독도도 반환되어야 할 대상에 포함된 것이었다.
 
  물론 카이로선언은 미국·영국·중국 등 3대 연합국의 공동선언이며, 따라서 그 자체가 처음부터 일본을 구속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카이로선언은 그 후 일본이 1945년 7월 26일의 포츠담선언(미국·영국·소련·중국)을 수락함과 동시에 포츠담선언의 제8항에 흡수돼 일본을 구속하는 문서가 되었다. 포츠담선언 제8항은 ‘카이로선언의 모든 조항은 이행될 것이며, 일본국의 주권은 혼슈(本州)·홋카이도(北海道)·규슈(九州)·시 코쿠(四國)와 우리가 결정하는 작은 섬들에 국한될 것이다’라고 규정했다.
 
  물론 포츠담선언도 그 자체로는 4대 연합국의 공동선언에 불과해 당시 일본에 대해 구속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일본은 1945년 8월 15일 포츠담선언을 무조건 수락한다고 선언해 항복했고, 같은 해 9월 2일에는 이것을 성문화했다. 일본은 “1945년 7월 26일 포츠담에서 미국·중국·영국 정부 수뇌들에 의하여 발표되고, 그 후 소련에 의해 지지된 선언에 제시한 조항들을 수락한다. (중략) 이후 일본정부와 그 승계자가 포츠담선언의 규정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확약한다”고 성문화된 항복문서에 조인했다. 포츠담선언과 카이로선언이 일본에 대해 구속력을 갖게 된 것이었다. 여기서 명확히 알 수 있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연합국의 일본 영토 처리 원칙은 일본 영토를 ‘1894년 이전의 원래 일본’으로 환원시킨다는 사실이다. 독도는 1905년 2월 일본이 ‘폭력과 탐욕으로 약취한 섬’ 이었기 때문에 일본 영토로부터 제외돼 원주인인 한국에 반환할 대상이 된 것이었다.
 

  [083]
 
  Q : 제2차 세계대전 종결 후 일본이 약취했던 한반도와 독도는 연합국에 의해 어떻게 한국에 반환되었는가?
 
  A : 일본이 1945년 9월 2일 항복문서에 조인한 후, 도쿄에 연합국 총사령부(the General Headquarters of the Allied Powers·GHQ)가 설치되어 일본 통치를 담당했다.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포츠담선언의 규정들을 집행하기 시작했다. 연합국 측은 즉각 한반도를 한국으로 이관했다.
 
연합국 최고사령관이 SCAPIN 제677호의 부속지도로 작성해 한국과 일본의 영토를 구획한 지도. 독도를 ‘TAKE’로 표시하고 한국 영토에 명료하게 부속시켰다.

  연합국 총사령부는 일본 영토로 규정한 4개 섬과 연합국이 결정하는 작은 섬들 중에서 인접국가들 사이에 흩어져 있는 작은 섬들을 일본 영토와 인접국 영토로 구분하는 데 약간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드디어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수개월의 조사 끝에 1946년 1월 29일 연합국 최고사령관 지령(SCAPIN·Supreme Commander for the Allied Powers Instruction Index Number) 제677호(약간의 주변 지역을 정치상 행정상 일본으로부터 분리하는 데 관한 각서)를 발표하고 집행했다. 이 SCAPIN 제677호의 제3조에서 독도(Liancourt Rocks·竹島)는 일본 영토에서 분리 제외되었는데 그 대목은 다음과 같다.
 
  이 지령의 목적을 위하여 일본은 일본의 4개 본도(北海島·本州·九州·四國)와 약 1000개의 작은 인접 섬을 포함한다고 정의된다. (1천 개의 작은 인접 섬에) 포함되는 것은 대마도 및 북위 30도 이북의 류큐(琉球) 제도(諸島)이다. 그리고 제외되는 것은 ① 울릉도·리앙쿠르암(Liancourt Rocks·독도·죽도)·제주도 ② 북위 30도 이남의 오키나와·이즈(伊豆)·난팡(南方)·오가사와라(小笠原) 및 화산군도(火山(琉黃)群島)와 다이토제도(大東諸島)·오키노토리시마(沖鳥島)·미나미토리시마(南鳥島)·중지조도(中之鳥島)를 포함한 기타 모든 외부 태평양제도 ③ 쿠릴열도·하보마이군도(齒舞群島, 小晶·勇留·秋勇留·志癸·多樂島 등 포함)·시코탄섬(色丹島) 등이다.
 
  연합국 최고사령관은 SCAPIN 제677호를 ‘일본의 정의(the definition of Japan)’라고 표현했다. SCAPIN 제677호 제3조에서 주목할 것은 위 ①②③의 집단분류이다. 제①집단에는 울릉도·독도·제주도를 순서대로 범주화해서 넣었는데,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에서 분리돼 한국에 반환되는 섬들임은 명백하다. 이것은 연합국 최고사령부가 수개월간 조사한 후 결정해 공표한 것이었고,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당시 국제법상의 합법적 기관이었으므로, 연합국 최고사령관이 독도를 원주인인 한국(당시 미군정)에 반환해 한국 영토로 결정한 것은 국제법상 효력을 갖는 것이었다. 이것은 SCAPIN 제677호의 부속 지도에서도 극명하게 표시되어 있다.
 
연합국 최고사령관지령(SCAPIN) 제677호는 제3조에서 독도(Liancourt Rocks)를 일본 영토에서 분리·제외하여(excluding) 한국에 반환시켰다.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과 동시에 미군정으로부터 한반도와 독도 등을 인수받아 한반도와 독도 등을 한국 영토로 규정했고, 한국의 독도 영유는 1946년 1월 29일 국제법상 합법적으로 재확인됐다. 독도는 1948년 8월 15일부터 한국의 실효적 지배를 다시 받게 된 것이었다.
 

  [084]
 
  Q : 일본정부는 “SCAPIN 제677호는 연합국의 최종결정이 아니므로 독도(죽도)를 한국에 반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항의했다는데 사실인가?
 
  A : 일본정부는 독도영유권 논쟁을 일으킨 직후 1952년 4월 25일 한국정부에 보낸 구술서에서, SCAPIN 제677호 제6조를 거론하며 “이 지령 가운데 어떠한 것도 포츠담선언 제8조에 언급된 여러 작은 섬의 최종적 결정에 관한 연합국의 정책을 표시한 것은 아니다”고 한 조항을 들어 이것이 일본 영토를 최종적으로 규정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SCAPIN 제677호 제6조에서 강조된 것은 자국(自國)의 국익을 추구하는 복잡미묘한 연합국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다른 연합국이 이의를 제기할 경우에 대비해 필요할 경우 수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에 불과하다. SCAPIN 제677호 제5조에서 “이 지령에 포함된 ‘일본의 정의(the definition of Japan)’는 그에 관하여 다른 특정한 지령이 없는 한, 또한 본 연합국 최고사령부에서 발하는 다른 모든 지령·각서·명령에 적용된다”고 명시한 후 일본 영토 정의에 수정을 가할 때에는 연합국 최고사령부가 반드시 다른 특정한 번호의 SCAPIN을 발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독도’를 일본정부의 주장처럼 일본 영토로 편입하려면 반드시 연합국 최고사령부가 다른 특정한 SCAPIN을 발표해 “한국에 반환했던 독도를 이번에는 일본에 영토 편입한다”고 해야 한다.
 

  [085]
 
  Q :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SCAPIN 제677호를 수정해 ‘독도’를 일본 영토로 다시 반환한다는 식의 특정한 SCAPIN을 발표했는가?
 
  A :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1946년 1월 29일 SCAPIN 제677호를 발표한 후 1952년 4월 28일 해체될 때까지 독도를 일본 영토로 귀속시킨다는 내용의 특정한 SCAPIN을 발표한 일이 전혀 없다. 따라서 독도는 국제법상으로 1946년 1월 29일 SCAPIN 제677호에 의해 한국 영토로 재확인되어, 오늘날까지 국제법상의 합법적 지배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연합국 최고사령부가 독도에 관해 발표한 SCAPIN이 하나 더 있는데, 그의 내용은 대한민국의 독도 영유를 더욱 보장하는 것이었다.
 

  [086]
 
  Q : 대한민국의 독도 영유를 보장하는 또 하나의 SCAPIN이란 어떤 것인가?
 
  A : SCAPIN 제1033호이다. 연합국 최고사령관은 1946년 6월 22일 SCAPIN 제1033호 제3조에서 일본인의 어업 및 포경업의 허가 구역(통칭 맥아더 라인)을 설정했는데, 그 b항에서 “일본인의 선박 및 승무원은 금후 북위 37도 15분, 동경 131도 53분에 있는 리앙쿠르암(독도)의 12해리 이내에 접근하지 못하며, 또한 동도(同島)에 어떠한 접근도 하지 못한다”고 규정해 일본인의 독도 접근을 금지했다. 이것은 연합국 최고사령관이 독도와 그 영해, 근접수역을 한국(당시 미군정)의 영토와 영해로 재확인하고 일본인의 독도 접근은 물론 독도 주변 12해리 영해와 근접수역에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해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명확히 재확인한 것이다.
 
연합국 최고사령관지령(SCAPIN) 제1033호는 일본 선박이 독도로부터 12해리 이내에 접근하거나 독도에 접안하는 것을 금지해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거듭 명백히 했다.

  이와 같이 국제법상 합법기관으로서의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SCAPIN 제677호와 제1033호를 통해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분명히 했다.
 

  [087]
 
  Q : 이 무렵, 일본은 미국 공군이 독도를 일본 영토로 간주했기 때문에 미 공군 폭격연습장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는데 사실인가?
 
  A :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직전인 1948년 6월 30일 미국 공군기가 독도 부근에서 폭격연습을 실시했는데, 독도에 출어 중이던 한국 어민 약 30여 명이 희생된 불상사가 있었다. 이 시기는 독도를 포함한 한반도가 주한(駐韓) 미군정의 통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이 사실이 독도를 일본 영토로 간주했다는 방증이 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 후인 1950년 4월 25일 미국 제5공군에 이를 조회해 항의했다. 미국 제5공군으로부터 같은 해 5월 4일 “당시 독도와 그 근방에 출어가 금지된 사실이 없었으며, 또 독도는 극동 공군의 연습목표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요지의 회답을 받았다. 그 후 한국전쟁 기간에 독도가 미일(美日)합동위원회에 의해 미 공군의 폭격연습장으로 선정되었다는 정보가 한국에 입수됐다. 대한민국 정부는 미 공군에 항의했고 미 공군사령관은 1953년 2월 27일 독도가 미 공군을 위한 연습장에서 제외되었다는 공식 회답을 대한민국 정부에 보내왔다. 이는 미 공군사령부도 독도를 한국 영토로 인정해 이에 회답하고 승복했음을 잘 나타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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