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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년 6월호

제4장 고려·조선 시대에 독도를 어느 나라가 관리했는가?

글 : 愼鏞廈 독도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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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3]
 
  Q : 고려시대에도 독도와 울릉도가 고려의 통치를 받았는가?
 
  A : 통일신라를 계승하여 한반도에 새로운 왕조를 세운 고려왕조는 옛 왕조를 이어 원래의 우산국 영토인 독도와 울릉도를 영유하고 정치적 통치권을 행사하였다. 이것은 다음의 다섯 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제1단계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울릉도 사람들로부터 그들의 왕으로서의 알현(謁見)과 공물을 받고 울릉도 사절들에게 고려의 관직을 주어 고려왕조의 울릉도·독도에 대한 영유와 통치권을 재확인한 단계이다. 왕건이 918년에 고려를 건국하고 929년 12월에 고창(지금의 경북 안동)전투에서 후백제를 크게 격파하여 후삼국 통일을 이루자, 울릉도 사람들은 930년(태조 13년) 9월, 백길(白吉)과 토두(土豆)를 사절로 보내 태조를 알현하게 하였다. 태조는 백길에게는 정위(正位), 토두에게는 정조(正朝)의 관직을 주었다.
 
울릉도 조공과 벼슬 하사를 언급한 《고려사》(高麗史)의 부분(930년).

  제2단계는 현종(顯宗·재위 1009~1031년) 때에 울릉도 주민들이 여진족의 일파인 동북여진(東北女眞)의 침략을 받아, 농업이 피폐되고 피란민이 본토에 건너오자 고려 조정이 농기구를 보내는 등 대책을 강구하였던 시기이다.
 
  울릉도·독도는 1018년(현종 9년) 동북여진의 침략을 받았다. 이해 11월 고려 조정은 이원구(李元龜)를 울릉도에 파견하여 농기구 등을 지원하였다.
 
  제3단계는 덕종(德宗·재위 1031~1034년) 때에 울릉도를 우릉성(羽陵城)이라고 하여 우릉성주(羽陵城主)를 두고 중앙정부가 적극 지원하면서 방어능력을 키우려고 노력하던 단계이다. 이 시기에는 이민족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울릉도를 요새화하려는 노력이 시도되었다.
 
  제4단계는 인종(仁宗·재위 1122~1146년) 때에 울릉도·독도를 중앙정부에서 직접 관장하지 않고 지방관제(地方官制)에 편입시켜 명주도(溟洲道·지금의 강원도)에 속하게 편제하였던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동북여진의 침략도 옛날 이야기가 됐고, 그 이후 인구도 격감하여 중앙정부가 직접 행정에 관여할 필요를 절감하지 않았으므로, 울릉도·독도를 강원도(명주도)에 편입하였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 할 것이다.
 
  제5단계는 의종(毅宗·재위 1146~1170년) 때부터 울릉도에 백성들을 옮겨 살게 하는 정책, 즉 사민(徙民) 정책을 추구하던 단계이다. 의종은 1157년에 울릉도의 토질이 비옥하여 옛날에 주현(州縣)을 둔 일도 있어 가히 백성들을 살게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사민정책을 실시하려고 김유립(金柔立)을 파견하여 조사하게 하였다.
 
  여기서 명확히 알 수 있는 것은, 고려왕조가 신라왕조를 계승하여 우산국 영토인 울릉도와 독도를 영유하고 통치하였으며, 1018년에 동북여진의 큰 침략을 받고 울릉도가 황폐해지자 이에 대한 매우 적극적인 통치대책을 강구하였다는 사실이다.
 
  고려왕조는 동해안 주민들의 자발적인 울릉도 이주를 장려한 편이었으며, 원래 남아 있던 울릉도 도민(우산국 국민)들과 자발적 이주민들에 의하여 고려 말기까지 일정 수의 고려 국민이 울릉도에 거주하였다. 이러한 상태에서 고려 말기(14세기 말엽)에 왜구(倭寇·일본 해적)가 창궐하여 고려의 동해안과 남해안, 중국의 동·남해안이 노략질을 당하였는데, 그때 울릉도도 다시 피해를 입었다.
 

  [024]
 
  Q : 조선왕조에서도 울릉도·독도를 통치했는가? ‘쇄환·공도 정책’은 왜 실시했는가?
 
  A : 조선왕조에 들어와서도 울릉도와 독도는 직접 통치를 받았다. 태종은 왜구가 울릉도를 침략하여 주민을 학살하자, 울릉도 주민을 본토로 쇄환(刷還·외국에서 유랑하는 동포를 데리고 돌아옴)하여 울릉도를 비워두는 정책을 시행했는데, 태종의 ‘쇄환·공도(空島) 정책’도 섬 관리정책의 하나였지 울릉도·독도의 영토를 방기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세종은 1445년(세종 7년) 김인우(金麟雨)에게 “우산(독도)·무릉(울릉) 등처안무사”(于山·武陵 等處按撫使)라는 직책을 주어 이곳에 파견, 울릉도 및 독도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우산도(독도)와 울릉도를 강원도 울진현에 속한 섬으로 기록한 것은 조선왕조의 독도 영유를 명확히 기록한 명백한 증거인 것이다.
 
  조선왕조는 1481년에 조선왕국의 영토 해설서로 《동국여지승람》을 편찬 발간하였다. 이어 50년 후인 1531년에는 이 책을 증보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발간했다.
 
  《동국여지승람》과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독도’(우산도)와 울릉도는 조선 강원도 울진현에 속한 동해 가운데 2개 섬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 책으로 조선왕조 정부는 독도가 조선 영토이며 강원도 울진현에 속한 섬임을 당시의 한자문화권 세계에 재천명한 것이다. 물론 이때 일본이 독도(우산도)가 조선 영토가 아니라고 반박한 적은 전혀 없었다. 당시 일본도 진실 앞에 승복한 것이었다. 즉 한국은 15세기와 16세기에 《신증동국여지승람》이라는 조선왕조 영토해설서를 통해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당시 한자문화권 세계에 알렸다. 일본을 포함한 모든 한자문화권 세계가 항의 없이 승복한 것은 물론이다.
 

  [025]
 
  Q : 일본정부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부속지도를 들어 ‘우산도’는 가상의 섬이고 독도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데?
 
  A :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조선 영토 해설과 함께 8도총도(전국지도)와 도별 지도가 부착되어 있다.
 
‘8도총도’, 1531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첫머리에 수록됨.

  일본 외무성은 최근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부속지도 ‘8도총도’에 우산도(독도)가 울릉도보다 더 한반도 쪽에 가깝게 그려져 있는 것을 들어, 우산도(독도)는 실재하지 않은 가상의 섬이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15세기 일본 지도의 오키시마가 지금의 위치처럼 정확히 그려져 있지 않다고 해서 오키시마가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섬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억지에 불과한 것이다.
 
18세기 후반 정상기의 <동국전도>의 19세기 초 복제품.

  15세기의 세계 모든 고지도는 오늘날처럼 정확하게 위치를 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당시의 지도제작 능력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유럽과 일본의 고지도들도 모두 그러하다. ‘8도총도’에서 우산도(독도)가 울릉도보다 더 한반도 쪽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는 것은 영토문제와 관련해서는, 울릉도가 한국 영토인 한, 더욱 명확히 한국 영토로 표시되어 있는 것이라고 해석돼야 옳다.
 
<해좌전도>(海左全圖) (19세기 초).

  한국에서는 지도 제작능력이 진보함에 따라 18세기에 들어와 우산도(독도)가 지금의 ‘독도’ 위치에 정확하게 그려지고 있다. 바로 ‘우산도’가 ‘독도’임을 명확히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18세기에 그려진 정상기의 <동국전도>(東國全圖)가 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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