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별책부록
  1. 2007년 4월호

아랍에미리트(UAE)의 역사

7개 부족이 1971년 연합국가 구성
국토면적은 제주도의 2배

金南成   

  • 기사목록
  • 프린트
  아랍에미리트(UAE)는 아라비아灣 남쪽 해안과 오만灣 북서 해안 지역에 흩어져 사는 여러 아랍 부족들이 모여 설립한 연합국가다. 중세 시대에 이 지역은 호르무즈 왕국의 일부였다.
 
  이 지역은 17~19세기 사이 「해적 해안」으로 불릴 정도로 해적들의 소굴이었다. 포르투갈과 영국 해군은 自國 상선 보호를 위해 이 지역에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처음 이 지역에 영향을 끼친 국가는 포르투갈이었지만, 이어 들어 온 영국의 독무대가 됐다.
 
  영국 해군은 인도를 왕래하는 自國 상선들이 라스 알 카이마族으로부터 공격당하자, 1791년 이 부족의 본부와 주변 마을을 공격했다. 영국의 군사력에 무너진 부족들은 이듬해 영국과 평화조약을 맺었다. 부족의 에미르(족장)들은 『외국 선박에 대한 해적행위를 금지한다』고 선언했지만 19세기 중반까지 해적 행위는 끊이지 않았다.
 
  참다못한 영국 해군은 다시 아랍에미리트 부족들을 공격했고, 1853년 영국 정부는 이 지역 족장들과 「영구 海上 평화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으로 각 토후국들은 영국의 보호국이 되었지만, 영국은 토후국끼리의 육상 교전에는 간섭하지 않았기 때문에 토후국들은 흥망과 이합집산을 되풀이했다.
 
  19세기 들어 유럽 국가들의 中東 식민화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영국과 아랍에미리트 토후국 족장들은 더욱 긴밀한 관계로 얽히게 된다. 1892년 족장들은 자신의 땅을 「영국이 아닌 그 어떤 나라에도 임차하지 않는다」, 「영국의 허락 없이 유럽의 다른 나라와 외교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조약에 서명했다. 대신 영국은 아랍에미리트를 다른 나라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해 주기로 약속했다.
 
  영국은 1892년 오늘날의 아랍에미리트 해안선인 트루셜 코스트(휴전 해안)에 대해 보호령을 설립했다. 하지만 영국은 경제적인 이득이 없는 에미리트에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
 
  영국의 무간섭주의적 태도가 변한 것은 20세기 초 에미리트 지역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부터다. 원유의 채굴권을 확보하기 위해 에미리트를 구성하는 부족 간의 영토 경계선을 결정해야 했다. 하지만 에미리트의 여러 부족 통치자들의 의견이 엇갈려 9개 부족의 영토 경계선을 구분하는 일을 영국에 맡겨야 했다.
 
 
  인구는 140만 명, 80%가 외국인
 
  골치를 앓던 영국은 1968년 7개의 아랍에미리트 부족을 비롯하여 바레인 및 카타르와 맺은 보호조약의 파기를 결정했다. 1971년 아랍에미리트 9개 부족은 하나의 연합국을 결성하기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7개 부족은 의견일치를 보았지만 여기에 반발한 바레인은 그해 8월, 카타르는 9월에 별도의 독립국을 구성했다.
 
  1971년 12월31일부터 영국의 보호에서 벗어나게 된 부족들은 재차 협상에 돌입하여 7개 부족이 아랍에미리트 연합국을 구성했다.
 
  UAE를 구성하는 7개의 토후국은 두바이(Dobai)를 비롯 UAE의 수도가 있는 아부다비(Abu Dhabi), 샤르자(Sharjah), 아즈만(Ajman), 푸자이라(Fujairah), 라스알카이마(Ras Al Khaimah), 움알콰인(Umm Al Quwain)이다.
 
  두바이의 면적은 3,885㎢로 제주도의 2.1배이며, 90%가 사막이다. 고온다습한 아열대 기후와 사막성 기후를 가지고 있으며, 여름엔 최고 53℃까지 올라간다. 현재 두바이의 1인당 GDP는 2만5000달러, 인구는 140만 명 정도이고 80%가 외국인이다.
 
  두바이의 외국인 근로자는 인도인이 절반 이상이고, 주변 아랍국가 출신도 많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103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정기구독 이벤트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