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孫珍鎬 서울 와인 스쿨 교육팀장
모든 포도 품종은 각기 자기가 선호하는 토양과 기후를 가지고 있다. 포도나무를 둘러싼 모든 환경요소, 즉 배수, 토질, 채광, 고도, 포도밭의 방향, 일조량, 강우량, 바람의 세기 등을 고려해 포도 품종을 선택해야 하고 그 포도나무를 심을 곳을 정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땅에 어떤 포도나무가 심어져 있다면, 그것은 긴 세월에 걸친 시행착오 속에서 가장 잘 맞는 포도 품종만 살아남고 선택되어진 자연도태, 적자생존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현재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포도 품종은 40여개 정도. 레드 와인 품종으론 카베르네 소비뇽, 피노 누아르, 메를로, 가메, 그레나슈 등이 있고, 화이트 와인 품종으로는 리슬링, 샤르도네, 소비뇽 블랑, 게뷔르츠트라미너, 세미용 등이 유명하다.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全세계 각국의 어떤 환경 속에서도 비교적 잘 적응하는 적포도 챔피언. 카베르네 소비뇽은 프랑스 보르도나 미국의 캘리포니아처럼 온화하고 건조한 기후, 공기 소통이 잘되는 척박한 자갈밭에서 최적의 포도주를 생산한다. 카베르네 소비뇽은 늦게 싹이 터 늦은 가을에야 완숙에 이르는 품종이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더운 기후에서나 비옥한 땅에서는 포도잼 주스처럼 느껴질 수 있고, 너무 선선한 곳에서는 완숙에 이르지 못해 풋풋한 풀냄새가 나타날 수 있다.
메를로(Merlot)
카베르네 소비뇽과는 반대로 메를로는 早生種(조생종)이다. 일찍 싹이 터 초가을이면 완숙에 이른다. 때문에 초 봄의 꽃샘추위를 가장 두려워한다. 점토질의 차가운 토양에서 좋은 결과를 보여 주며, 특히 프랑스의 포메롤(Pomerol) 지방처럼 철분이 많이 함유된 진흙질의 토양에서는 카베르네 소비뇽 못지않은 색깔과 향을 내며, 보관용 포도주를 만들 수 있다. 유명한 샤토 페트뤼스는 이 메를로 품종을 95% 이상 사용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순하고 부드러운 포도주로서 오래 보관하지 않는다.
피노 누아르(Pinot noir)
카베르네 소비뇽이 세계 각국의 각기 다른 토양과 기후 조건하에서 그런대로 잘 적응하며 일정한 품질의 포도주를 생산해내는 데 반해, 피노 누아르는 아직까지도 프랑스의 부르고뉴 지방을 벗어나서는 그만한 품질의 와인을 생산해 내지 못하고 있다. 신비스로울 정도로 부르고뉴의 토질과 기후 속에서 최적의 환경을 느낀다. 早生種으로 기후 변화에 민감하고 성격이 까탈스러워 재배하기가 쉽지 않다. 비교적 선선한 기후를 선호하며, 수확량을 잘 조절해 주어야 향과 질이 농축되어 세련되고 복합적인 향과 맛을 겸비한 최고의 부르고뉴 와인을 생산한다.
가메(Gamay)
1395년 프랑스 부르고뉴 公國(공국)의 군주 필립 르 하디(Philippe le Hardi)는 칙령을 내려 자기 땅인 부르고뉴에서는 가메라는 품종을 재배하지 못하게 했다. 가메로 만든 포도주가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지금까지 부르고뉴 적포도주는 피노 누아르로만 만든다. 그런데 부르고뉴에서 쫓겨난 이 천덕꾸러기는 그 아랫동네인 보졸레(Beaujolais)에서 자기 기량을 마음껏 발휘했다. 가메에게 부르고뉴의 석회질 많은 고급 토양은 부담스러웠던 반면에 화산재와 규토, 진흙질이 섞인 보졸레의 토양에서는 상큼하고 맛깔스러운 포도주를 생산해낸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보졸레 포도주다. 연한 루비 빛에 바나나와 산딸기 등 과일향이 풍부한 가벼운 와인이다.
샤르도네(Chardonnay)
적포도주에서 카베르네 소비뇽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특성을 갖고 있는 백포도 품종이 바로 샤르도네이다. 병충해에도 강하며 어디서든 잘 자라는 효자 품종이다. 1970~80년대 캘리포니아 와인 붐의 주역이며, 오늘날의 신세계 신흥 와인 생산국가들에 희망을 안겨준 품종이다. 프랑스 상파뉴 지방의 추위도 잘 견디고 호주의 더위도 잘 감내한다. 귀족적 품위와 우아함을 간직한 부르고뉴의 그랑 크뤼 와인, 새콤달콤하며 발랄한 신세계 와인, 거품과 기포로 세련되게 치장한 상파뉴 스파클링 와인 등이 샤르도네가 연출한 다양한 제품들이다.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샤르도네가 우아한 여인이라면 소비뇽 블랑은 발랄한 아가씨다. 화이트 와인이 좀 무겁거나 둔하게 느껴질 때 어김없이 구원병으로 집어 넣는 품종이다. 소비뇽 블랑의 스타일은 신선하고 활기차며 주도적이다. 풍부한 꽃향기와 과일향, 상큼하면서도 쌉쌀한 풍미는 소비뇽 블랑만의 개성으로 현대적 감각의 새로운 화이트 와인을 원하는 와인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신선하고 상큼한 스타일 때문에 샤르도네나 세미용(Semillon)과는 달리 전통적으로 오크통 숙성을 거치지 않았으나, 최근 이를 이용하여 미디움 바디 이상의 숙성용 포도주를 만들려는 새로운 시도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