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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인터뷰

許勝澈 前 대사가 말하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한반도’

“우크라이나 사태는 한반도 통일 상황의 예고편”

글 : 김성동  월간조선 기자  ksdhan@chosun.com

사진 : 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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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핵문제 등 한반도 문제에서 미·러 협력 불가능
⊙ 크림반도 점령 시 西方은 푸틴의 영토변경 시도 예측 못했다
⊙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5월 선거에서 親서방 후보의 당선을 방치하지 않을 것
⊙ 러시아는 친러 노선을 표방한 야누코비치라는 상품을 잘못 골랐다

許勝澈
⊙ 55세. 고려대 노어노문과 졸업. 미국 버클리대·브라운대 수학. 브라운대 슬라브어학 박사.
⊙ 하버드대학교 러시아연구소 연구교수(Mellon Fellow),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고려대 러시아·CIS 연구소장, 한국 우크라이나학회장, 駐우크라이나 한국대사, 한러대화 사무국장.
⊙ 저서: 《우크라이나-한국어 사전》(공저) 《나의 사랑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현대사》 등.
  미국 카터 정부의 안보보좌관을 지낸 브레진스키 교수는 1998년 출간한 그의 저서 《거대한 체스판》에서 우크라이나, 한반도, 터키, 이란, 아제르바이잔 등을 강대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충돌할 수 있는 지역으로 예측했다. 불행하게도 그의 예측은 책 발간 15년이 지난 시점에서 우크라이나에서 들어맞고 말았다.
 
  지난해 11월 친(親)러시아 성향의 야누코비치 정권이 유럽연합(EU)과의 협력협정 체결을 잠정 중단한다고 선언하면서 촉발된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과 이에 대응하는 미국, EU 등 서방이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로 맞서면서 신(新)냉전체제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서방의 파워게임 한가운데 놓여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반도는 미(美)·일(日)·중(中)·러의 파워게임 한가운데 놓여 있다. 이런 상황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가 통일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될 한반도 주변의 강대국들 간 갈등, 한국과 주변국들 간의 갈등이 전개될 상황을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남북통일을 준비해야 하는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문가인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허승철(許勝澈) 교수를 만났다.
 
  허 교수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외교부의 개방형 직제를 통해 우크라이나 대사를 지냈다. 우크라이나 대사로서 그는 주변국인 몰도바와 조지아(러시아 명 그루지야)의 대사도 겸임했다. 대사 재직 시 우크라이나 ‘올해의 인물(외교부문)’로 선정되기도 했다. 미국 브라운대학에서 슬라브어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허 교수는 하버드대 러시아연구소 연구교수 등을 지냈고 ‘한러대화’ 사무국장도 맡고 있다. ‘한러대화’는 한국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민간 대화채널이자 공공 외교채널이다.
 
  지난 2010년 한국과 러시아 간 민(民)·관(官)·산(産)·학(學) 협의체로 출범했다. 지난해 11월 한국을 공식 방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만 하루가 안 되는 한국 체류 일정에도 불구하고 한러대화 폐회식에 참석할 정도로 한·러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허 교수는 푸틴 대통령 참석하에 제막된 푸슈킨 동상을 서울에 들여오고 건립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5월 우크라이나 선거에서는 親서방 후보 당선될 것
 
  —크림반도 점령 등 러시아가 서방 세력에 맞서 우크라이나에서 강경 일변도로 밀어붙이고 있는데요.
 
  “러시아 지도층의 바람은 우크라이나를 유라시아연합의 일원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우방으로서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 남게 하는 것이었다고 봅니다. 지난 2010년 대통령 선거에서 야누코비치가 당선됨으로써 우크라이나에서 친서방 정권이 물러나고 친러 정권이 들어섰지만 러시아가 그 이후에도 우크라이나 국민감정에 좀 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면서 신중한 전략을 펼쳤으면 이번과 같은 강공(强攻)은 펼치지 않아도 됐을 겁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민의 어떤 정서를 잘못 읽었습니까.
 
  “우선은 야누코비치에 대한 생각이죠. 야누코비치는 중등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학력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젊은 시절의 범죄 전과 등 대통령 당선 이전부터 문제가 많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러시아의 지원으로 대통령이 됐죠. 물론 친서방 세력인 오렌지 혁명 세력의 분열도 한몫을 했지만요. 야누코비치는 대통령 당선 후 아들을 앞세워 이권을 독식하면서 2년 만에 경제적으로 재벌 서열 5위가 됐어요. 부패한 거죠. 게다가 티모셴코를 투옥하는 등 정적(政敵)을 탄압하면서 우크라이나 정치를 독재로 바꾸었습니다. 지난해 11월에는 국민들에게 EU 가입 기대를 한껏 높여 놓고 철회해 버렸죠. 저는 야누코비치의 최근 2, 3년의 실정을 보고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고 봤는데, 러시아는 야누코비치가 재선에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 것 같습니다. 야누코비치의 우크라이나를 안정적이라고 보고 후계자나 대체 인물을 키우지 않았던 겁니다. 야누코비치 이후를 대비하지 않았으니 강공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지난해 말부터 EU 가입 무산으로 시작돼 결국 야누코비치 퇴진으로 이어진 시위가 악화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할 수도 있었다는 뜻인가요.
 
  “우크라이나의 민도(民度)는 구 소련권 국가 중 가장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한 후 쿠치마 대통령에게만 재선(再選)을 허용했고 나머지는 대통령 재선을 허락한 일이 없습니다. 오렌지 혁명의 영웅이었던 유셴코도 재선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재선에 성공했던 쿠치마 역시 오렌지 혁명을 부른 장본인이었고요.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지도자의 실정을 무한히 참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시위를 막을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는 야누코비치가 재선을 포기하고 국민들에게 정치 발전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러시아는 2004년의 오렌지 혁명에 이어 야누코비치 카드로 두 번의 곤경을 맞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5월 25일로 예정돼 있는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서 친러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은 없는 겁니까.
 
  “현재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정서를 고려하면 5월 선거에 나서는 유력 대선 후보들은 모두 친서방으로 기울 겁니다. 선거 전략상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크림반도까지 복속하고 우크라이나 동부 지방을 노리고 있는 러시아가 그런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을까요.
 
  “그래서 우크라이나 사태는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러시아로서는 크림반도 복속에 그치지 않을 겁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본토가 유럽에 기우는 것을 용인할 수 없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친서방 후보로 기운 5월 대선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대한 공세도 그 일환이라고 봅니다.”
 
 
  우크라이나 다음은 어디?
 
지난 2월 시위대에 쫓겨 러시아로 도망간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처 파기하지 못하고 자택 호수에 던져 넣은 비밀 문건을 우크라이나 기자와 시위대가 건져내 바닥에 늘어놓고 분류하고 있다.
  러시아가 이토록 우크라이나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족적으로 생긴 것도 비슷하고 말도 비슷하기 때문일까. 한반도가 그렇듯이 동서 양 진영의 힘이 부딪치는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요인 때문이다.
 
  허 교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지난 1000년간 하나의 문화권에서 살아 오고 제정 러시아 시대, 구 소련을 거쳐 오며 한 국가적 단위로 살아 온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서 떨어져 나가는 상황을 인정하기 힘들 것입니다. 또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우호적인 세력으로 남아 있기보다는 대립적 정책을 추구하며 친서방 노선을 걷는 것도 용인할 수 없는 게 당연하죠. 브레진스키가 말한 대로 우크라이나 국경 끝까지 나토가 진출한다는 것은 러시아가 다시 예카테리나 이전의 유라시아 대륙 북방 지역 세력으로 후퇴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현실적으로 자연방어선도 없는 1576km에 달하는 우크라이나와의 육상 경계선에 나토군이 들어와 있는 상황은 상상하기도 힘든 안보 위협입니다.”
 
  허 교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다시 친러 정권을 세우는 것이 어려울 경우 우크라이나에 국가연합에 가까운 연방제를 실시하여 동부 지역에서라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중앙정부가 완전히 서방으로 기우는 것을 막으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부 지역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체를 군을 동원해 점령해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러시아 지상군이 들어오고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무리라고 봅니다. 동부 지역과 달리 다른 지역은 유럽으로 치우친 정서를 갖고 있는 국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 상당수가 EU 가입을 원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 지역 장악은 외교적으로도 러시아의 무리수가 되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적다고 봅니다.”
 
  —우크라이나 사태 전개 중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기습적으로 점령하는 등 서방이 러시아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인상을 받는데요.
 
  “러시아가 새로운 형태의 군사작전을 펼치며 크림반도 복속이라는 영토적 변경까지 시도할 것이라는 것을 서방이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러시아가 그루지야 사태 때처럼 대규모 군사행동을 하는 경우만 대비했는데 러시아는 조용히 부대를 이동시키며 자경단(自警團) 등을 앞세워 전광석화처럼 크림반도를 점령해 버렸습니다. 러시아의 예기치 못한 군사작전에 서방이 당한 겁니다.”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지역은 어디라고 예상합니까.
 
  “몰도바 공화국의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입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러시아군이 주둔하는 곳으로 이미 20년 이상 러시아가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수뇌부는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복속된 후인 최근 러시아로 공식 편입을 원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미국은 몰도바의 국경 경비 강화를 위한 지원을 결정하는 등 트란스니스트리아가 제2의 크림반도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트란스니스트리아를 완전 장악하면 우크라이나의 오데사 지역을 포함한 남부 해안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발트 3국의 접경지역 등이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주시해야 할 분쟁 가능 지역입니다.”
 
 
  러시아의 출구전략은?
 
지난해 12월 15일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 독립광장에서 20만에 달하는 시민들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퇴진과 정부 해산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하면 러시아로서도 부담이 크리라고 봅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러시아는 어떤 출구전략을 구사할 수 있을까요.
 
  “현재 시점에서 러시아로서는 마땅한 출구전략을 찾기 어렵다고 봅니다. 만약 친러 정권만 들어선다면 현 상태에서 사태를 종결시킬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5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보십시오. 여론 조사상 친서방의 1, 2위를 달리는 포로셴코, 티모셴코는 친서방 노선을 적극 내세우고 있고 친러 성향의 3위 후보인 티힙코까지 친러 성향을 숨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5월 선거를 통해서는 친러 정권의 탄생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죠. 결국 물리적 영향력 확대인데 러시아 입장에서는 크림반도만 복속시키는 것으로 끝낼 수 없습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동부 지역에 군을 투입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지역에 러시아군이 투입되는 순간 장기적인 게릴라전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라크의 미군과 같은 상황이 되는 거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집착하는 이유는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이유 때문입니까.
 
  “러시아는 나폴레옹 때도 점령당하고 히틀러에게도 점령당한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기억이 주는 영토에 대한 불안감을 미국 등 서방이 이해 못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나토가 자신의 국경 가까이 다가오는 상황을 러시아 국민들은 불안하게 느끼는 겁니다. 브레진스키도 예견했지만 폴란드가 나토에 들어가면서 러시아인들의 그런 불안은 더 커졌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없는 러시아는 그냥 동북쪽의 변방국가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러시아로서는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을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었을 겁니다. 더더욱이나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들어가는 것은 도저히 방관할 수 없습니다.”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문제가 거론될 때 유럽이 좀 더 가입 문제를 신중하게 다뤘어야 한다는 뜻입니까.
 
  “러시아의 이익과 안보 불안을 고려하면서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허 교수는 인터뷰 중 “우크라이나같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주변국을 관리하면서 야누코비치 카드를 쓴 것이 러시아에 어려움을 초래한 근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국민들한테 존경받는 지도자를 친러 진영의 대표주자로 내세웠으면 이번 사태뿐만 아니라 오렌지 혁명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거듭 말했다.
 
  —친서방 정권 아니면 친러 정권 등 국제 관계에서 보면 우크라이나는 중간은 없고 양 극단만을 오가는 정권이 반복되는데 특별한 정치·사회적 배경이 있습니까.
 
  “쿠치마 대통령 후계 구도 때부터 친러와 친서방으로 갈라진 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데요. 제가 보기에는 서방과 러시아 모두 자신들에게 올인하는 정권이 되기를 부추기는 것 같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지정학적 위치상 외교정책에 있어서 러시아와 서방의 중간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브레진스키나 키신저는 우크라이나의 적합한 모델로 핀란드 모델을 꼽은 적이 있습니다. 러시아와 척을 지지도 않으면서 단계적으로 서방 모델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죠. 핀란드는 독소전쟁 전 러시아의 침공을 이겨 낸 적이 있습니다. 핀란드 젊은이들은 서방 문화를 좋아하지만 러시아와의 교역 관계도 끊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나토를 끌어들이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핀란드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스위스처럼 산속에 박혀서 중립국 선언을 하면 모르겠지만 우크라이나는 널따란 평원이고 나라도 큽니다. 중립국 선언을 해도 국제 사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위치에 있는 거죠. 결국 균형 잡힌 외교로 문제를 풀어 가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핵폐기와 북한 핵폐기 문제는 달라

 
주한 우크라이나인들이 지난 3월 9일 군사력을 동원, 크림반도를 점령한 러시아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은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안전을 보장받기로 한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며 집회를 가졌다.
  —우크라이나는 구(舊)소련으로부터 1991년에 독립할 당시 핵무기를 보유하는 등 세계 5위의 군사강국이었지만 지금은 21위로 전락했는데요.
 
  “문제는 재정입니다. 군사력을 유지할 재정이 부족했고 부패가 심했기 때문입니다. 친서방 정권은 자신들의 힘이 아닌 나토의 힘을 빌려서 국방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자주화 의지가 빈약했기 때문이죠. 우크라이나의 국방력이 크게 약화한 것은 야누코비치 정권 시절입니다.”
 
  —독립 후 우크라이나는 세계 3위의 핵무기 보유국이었습니다. 국가안전 보장을 대가로 핵무기를 포기했는데 혹시 숨겨 놓은 핵무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는지요.
 
  “몇 개의 핵무기가 없어졌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하지만 신빙성은 없는 이야기고요. 핵무기는 관리와 운용에 많은 비용이 든다고 합니다. 국가안전보장 문제도 있었지만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도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하는 한 요인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로서는 구 소련의 핵기지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원치 않는 핵무기를 떠안게 된 측면도 있습니다. 제가 대사로 재직 시 통일부 분들이 우크라이나의 핵폐기 과정을 연구하러 많이 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크라이나 모델은 한반도 상황에 맞지 않는다고 충고했습니다. 원치 않는 핵무기를 떠안은 격이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개당 100만 달러씩 받는 조건으로 미국으로부터 약 2억 달러의 경제원조를 받고 핵무기를 처리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정권 유지의 최후의 보루로 핵무기를 개발했기 때문에 핵무기 보유의 근본 동기가 다르고, 경제적 보상으로 북한의 핵폐기를 유도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죠. 제가 대사로 재직할 당시 유셴코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있는 중·단거리 미사일은 10년 후에는 다 고물이 되기 때문에 나토와 같은 집단안보체제에 들어가야 한다고 나토 가입의 정당성을 내세우곤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까.
 
  “단기적으로는 북한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밀접하게 하는 데 우크라이나 사태를 이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엔에서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반대 결의안을 채택할 때 11개국이 반대했는데 그중 하나가 북한입니다. 게다가 북한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미국이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하는 성명까지 냈습니다. 당분간은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공조가 어려울 전망입니다. 또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문제에 집중하는 동안 작년에 푸틴 방문 시 협의했던 철도 문제 등 한·러 경협 추진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중간자 역할을 하며 강대국 갈등 조정해야
 
크림반도 세바스토폴 항에 있는 러시아 흑해함대 모습.
  —러시아와 서방의 중간에 끼인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저는 지금 우크라이나가 겪고 있는 문제는 한반도 통일 과정이나 통일 이후 상황의 예고편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통일을 대비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떤 정책을 취할 것인가를 깊게 고민해야 합니다. 교과서적인 이야기겠지만 최악의 정책은 우크라이나처럼 한쪽에 올인하는 정책이고 바람직한 정책은 중간자 역할을 수행하면서 강대국의 갈등을 조정, 완충하는 역할이라고 봅니다. 또 하나는 우크라이나의 경제적 대외 의존, 부패, 국론 분열이 지금의 사태를 키운 것을 교훈삼아 튼튼한 경제력과 군사력 그리고 사회 갈등 치유에도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한마디로 강대국에 둘러싸인 국가가 독립을 유지하고 독자적으로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대가를 치러야 하고 정치적·경제적·외교적 힘을 길러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러시아의 강공으로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던 서방 측은 러사아에 대한 경제제재로 맞서고 있는데 효과가 있을까요.
 
  “경제와 인적 제재에 치중한 서방의 제재는 당장은 큰 효과가 없는 것 같아 보여도 제재 강도가 강화되고 장기간 지속되면 러시아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올해 1/4분기에만 러시아의 외국투자금 중 640억 달러가 빠져나갔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적으로 가면 올 한 해 동안 러시아에서 1500억 달러의 해외 투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이번 사태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서방이 대(對)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는 데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므로 앞으로 세계 에너지 수급시장 환경이 크게 변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지켜보면서 신 냉전체제의 등장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시 냉전체제가 등장하는 건가요.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라고 봅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지난 20여 년간 지속된 서방과 러시아 간의 ‘게임의 룰’이 변했고 앞으로 긴장과 대립이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은 크지만, 신냉전체제로 가기에는 러시아 경제력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작습니다. 러시아 경제 규모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에 불과합니다. 우리 한국도 2%입니다. 제가 보기에 신냉전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가 세계적인 영향력을 회복해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와 같은 영향력을 회복하기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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