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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호

[인터뷰] 1950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자 함기용

건국 이후 태극기 달고 첫 세계 1등

글 : 김태완  月刊朝鮮 기자  
사진 : 서경리  月刊朝鮮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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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국가대표 선수는 애국심이 있어야 해요. 그릇이 커야 자기 뜻을 펼칠 수 있어요. 그릇이 바로 국가관, 애국심이죠”

⊙ 1950년 4월 19일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 함기용·송길윤·최윤칠 1~3위 싹쓸이
⊙ 이승만 대통령, 눈물 흘리며 축하
⊙ 6·25사변 당시 국군 앞에서 “인민군 만세!” 외쳤다가 죽을 고비

함기용
⊙ 82세. 고려대 상학과 졸업. 중소기업은행 지점장, 대한육상경기연맹 수석부회장,
    한국사회체육육상연합회 명예회장 역임.
⊙ 1950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 現 ㈜아산기획 회장.
1950년 4월 19일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결승선을 통과하는 함기용. 건국 이후 태극기를 달고 처음으로 우승했다.
  함기용(咸基鎔) 선생은 1950년 4월 19일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영웅이다. 함께 출전한 송길윤(宋吉允·작고)은 2위, 최윤칠(崔崙七)은 3위를 차지했다. 함기용은 당시 19세의 양정고보 3학년 학생이었다. 그리고 105리(里), 그러니까 42.195km 풀코스를 네 번밖에 안 뛴 신예(新銳)였다.
 
  세계 1~3위를 휩쓴 기쁨은 두 달 뒤 6·25사변의 포연(砲煙) 속에 사라졌지만,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은 눈물로 이들의 귀국을 반겼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손기정(孫基禎)과 1947년 보스턴 마라톤 서윤복(徐潤福)의 우승 이후 한국과 한국인의 위상을 드높인 사건이었다.
 
  기자는 김영랑 시인의 <장(壯)! 제패(制覇)> 발굴을 계기로 지난 5월 31일과 6월 7일 함기용 선생을 만나 우승 당시의 이야기와 근황을 들었다. 그의 말이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이후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우승한 최초의 한국인입니다. 손기정 선배는 일제강점기, 서윤복 선배는 미 군정기에 우승했지만, 저는 건국 이후 우승했으니까요.”
 
  그는 여든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젊고 여전히 날렵해 보였다. “집(경기 성남)과 동네 공원을 오가며 하루 8km 이상 걷는다”며 “현역 시절에는 몸무게가 53~54kg이었다. 지금도 60kg이 못 된다”고 했다.
 
  “그때 보스턴의 날씨가 안 좋았어요. 눈보라가 쳤지요. 어찌나 풍속이 강한지, 뛰는데 앞으로 내닫지 못하고 자꾸 옆으로 밀려가더군요. 그래도 무턱대고 달렸어요. 18km 지점쯤에서 앞서 달리던 미국, 캐나다 선수 그리고 최윤칠 선배를 따라잡았지요. 최 선배는 얼굴에 소금꽃이 하얗게 피고 피로의 기색이 뚜렷했어요. ‘최 선배 괜찮소? 기운 내십시오. 먼저 갑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앞질러 나갔지요. 그런데 경기 운영이 미숙했던 탓에 초반에 너무 스피드를 내 오버페이스를 하고 말았어요.”
 
  함기용은 초반에 바람을 안고 달리느라 20km까지는 50위 밖으로 처져 있었다. 그러나 25km까지 5km를 달리는 동안 순식간에 선두로 치고 올라왔다. 무시무시한 스피드로 달려 보스턴 마라톤의 유명한 32km 지점인 ‘상심의 언덕(Heartbreak Hill)’에 다다랐다.
 
  “아이고, 다리가 제대로 안 움직였어요. 더는 달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나를 쫓아온 선수가 있었다면 경기를 포기했을지 모르죠.”
 
 
  걷기 챔피언
 
보스턴 마라톤 우승 직후 일본에 들러 교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달리고 있는 모습. 오른쪽에서부터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 손기정.
  다행히 추격하는 선수가 없었다. 피로하면 걷고, 걷다가 달리고, 그러다가 또 쉬고, 그렇게 ‘상심의 언덕’에서 세 차례나 걸었다. 경기 도중 3번이나 걷고 우승했다고 해서 당시 미국 현지 언론에서는 ‘걷기 챔피언(Walking Champion)’이라고 불렀다. 얼마나 빨리 달렸으면 걷고도 우승했을까.
 
  “시합 전 손기정 선배가 이렇게 말했어요. 그때 그분이 마라톤 코치였어요. ‘나도 했고, 서윤복도 했는데 너희가 못 하라는 법이 어디 있느냐. 3명 중에 누가 우승해도 해야 한다’고요. 가슴이 뭉클했어요. 그때 손 선배가 선수들을 위해 직접 밥 짓고, 된장국 끓여 뒷바라지하느라 고생이 많았어요.”
 
  1등을 한 함기용의 기록은 2시간32분39초, 2등 송길윤은 2시간35분58초, 3등 최윤칠은 2시간39분45초였다. 양궁에서나 볼 수 있는 메달 싹쓸이를 1950년, 그것도 마라톤에서 이루었다.
 
  한국 선수들이 보스턴을, 아니 세계 육상을 ‘지배’했다는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거리 곳곳에 대형 아치와 현수막이 세워졌고 서울운동장(훗날 동대문운동장)에서 환영 육상대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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