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임기말 서두르는 차세대전투기 도입 : 월간조선

이명박(李明博) 정부가 추진하는 차세대전투기(F-X) 도입사업에서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록히드마틴의 F-35와 보잉의 F-15SE,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의 유로파이터 타이푼, 러시아의 수호이 T-50 PAK-FA 등 4개 기종이 한국시장 선점을 위해 치열한 물밑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8월 9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천영우(千英宇) 대통령 외교안보수석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천영우 수석은 토머스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초청으로, 방미기간 중 미국의 학계 관계자를 만나 북한 농축우라늄 프로그램(UEP)과 대북 식량지원, 한미 미사일협정 개정 논의 등 한반도 안보문제를 포함한 현안들을 중점 논의했다”면서 “그러나 그것은 드러난 의제일 뿐, 실제로는 F-X사업에 대한 논의가 핵심이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는 또 “천 수석 방미 때 기획재정부 예산실 소속 공무원을 대동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천 수석이 귀국해 기재부 예산실장을 불러 F-X사업 예산의 증액을 지시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는 “결국 F-X 총사업비가 9000억원가량 추가된 총 9조2000억원으로 조정 중”이라면서 “예산실이 바삐 움직이면서 F-X사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외교안보수석의 미국 방문길에 기재부 예산 담당자가 동행했다면, 현재의 관련 현안으로 미루어볼 때 이는 당연히 무기도입과 관련한 소요예산을 산출하기 위한 것”이라며 “F-X사업비를 9000억원 가까이 늘리려고 하는 것은 사실상 F-35를 생산하는 특정업체(록히드마틴)를 지원하기 위한 수순”이라고 했다.

록히드마틴사가 제작한 F-35 전투기.

그는 “내년도 F-X사업 추진예산으로 당초 국방부에서 요구한 액수보다 줄어든 300억원만 올려 배정할 것 같다”면서 “전체 사업예산에서 추가된 9000억원은 F-35의 현재가격(1억2000만 달러)으로 60대를 계상한 가격과 딱 맞아떨어진다”고 했다. 경쟁기종들의 정확한 가격은 알 수 없지만, 보잉의 F-15SE는 1000억원, EADS의 유로파이터 타이푼은 1380억원, 러시아의 수호이 T-50 PAK-FA는 1000억원 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일부 언론 등을 통해 ‘깡통전투기’로 보도된 바 있는 F-35를 도입하기 위해 올 7월 중장기예산을 9조원대에서 8조원대로 삭감했던 것을 원상회복시켜 추가로 편성한 것은 난센스”라며 “이 때문에 도입이 절실한 무기체계 예산이 삭감되는 등 다른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기자는 사실 확인을 위해 천영우 수석과 기재부 김동연 예산실장과의 전화 연결을 시도했으나, “회의중”이라는 답변만 들었다. 한편, 사업 주체인 방위사업청의 한 관계자는 “F-X사업 전체 예산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구체적인 수치까지 확인해 줄 수는 없다”고 했다.

지난 7월 20일 정부는 김관진(金寬鎭) 국방장관 주관으로 방위사업추진위원회(이하 방추위)를 열고 F-X사업은 스텔스 기능을 갖춘 차세대전투기 60대를 도입하는 것으로 8조2900억원을 투입하기로 의결했었다. 국방부는 내년 1월 F-X사업에 대한 제안 요청을 낼 예정이며, 사업 희망업체로부터 제안서를 받아 내년 10월 최종 기종을 결정할 계획이다. 내년 말 최종 기종이 선정되면, F-35 전투기는 아무리 빨라야 2016년 이후 도입이 가능해진다.

내년 10월 기종선정 불가능한 세 가지 이유

지난 8월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김황식 총리, 김관진 국방장관, 천영우 대통령 외교안보수석, 김효재 정무수석 등(왼쪽부터)이 회의시작 전 휴게실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국회 국방위의 한 관계자는 “기종선정을 내년 10월로 결정한 청와대가 이토록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면서 사실상 F-35로 내정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며 “최근 관련 부처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들이 포착되면서 이러한 의혹들은 점차 사실로 변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국방부가 내년 10월 사업자를 선정하겠다고 하는데, 이것은 어불성설(語不成說)”이라며 “청와대가 내년 10월에 기종선정을 하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우선 일정상 기종선정을 위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면서 “내년 1월 사업공고를 하고, 4월 말경 접수를 마감하면 현지조사를 실시한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방위사업청이 업체당 한 트럭분의 영문 자료를 분석하고 나면 5월 1일부터 현지평가팀을 구성해 현지로 출발해야 합니다. 기종별로 한 달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4개 업체를 현지조사하는 것은 최소 4개월이 걸립니다. F-X 1차사업(F-15K 도입) 때처럼, 현지평가팀은 5~7월 중 러시아를 먼저 가야 할 겁니다. 날씨가 추우면 테스트를 진행하기 어려우니까요.

게다가 이번에는 스텔스 성능을 갖춘 전투기를 선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RCS(레이더 반사면적) 테스트, 미사일 발사시험 테스트, 레이더 성능시험, 무장 기내삽입 여부, 한국군 조기경보기(피스아이)와의 데이터링크를 위한 테스트도 합니다. 이를 위해 현지에서 조기경보기(AWACS)까지 띄워야 할 겁니다. 이것을 마치면 평가팀이 리포트를 써야 하는데, 쓸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것입니다. 시간을 절약하려고 사업 희망국에서 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보고서를 작성할 수는 없을 것 아닙니까.”

국회 국방위의 한나라당 의원 보좌관은 “내년 4월 총선과 이어 벌어질 각 당의 대선후보 경선의 와중에 정치인들이 F-X사업 선정을 하도록 가만히 놓아두겠냐”고 했다. 그는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그것도 미국의 기종을 10월에 선정한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큰 부담일 것”이라면서 “한나라당이 민주당에 호재(好材)를 주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한나라당에서부터 제동을 걸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는 “또 하나의 문제점으로 후보 기종인 F-35가 내년 5월까지 평가받을 만한 기체로 나올 수 있을지 미지수”라며 “라이선스 계약과 공개경쟁 방식은 현재의 성능으로 경쟁해 평가받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완전하고 성능 좋은 전투기라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미 의회 경고받은 F-35

한 예비역 공군 장성은 “미국의 최신 스텔스 전투기들이 거듭된 고장과 가격상승으로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면서 “현존 최고의 스텔스기인 F-22 랩터는 현재 대당 가격이 4억 달러를 넘었고, F-35 역시 1억2000만 달러를 넘었다”고 했다.

그는 “현재 F-22는 최초 예상 생산물량이었던 750대에서 대폭 줄어든 183대로 생산이 종료된 상황”이라며 “F-22와 하이-로 개념에 입각해 합동작전을 펼치기 위해 개발한 F-35 역시 반복되는 설계 결함과 냉각장치 이상 등의 엔진 결함, 동체와 날개 접합부의 결함 등으로 개발 시제기(試製機)에 대한 리콜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또 “F-35는 무엇보다 소프트웨어의 결함 등으로 최근 미국 의회의 경고를 받았고, ‘넌-맥커디 규정’ 위반으로 계획 전체가 취소될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했다.

넌-맥커디 규정(Nunn-McCurdy Amendment)은 1983년 상원의원 샘 넌과 하원의원 데이브 맥커디가 미국의 무기획득 가격을 낮추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한 법이다. 무기개발이나 획득비용이 예상보다 15% 이상 올라가면 의무적으로 미 의회에 보고해야 하고, 25% 이상 올라가면 무기개발이나 획득 프로그램을 폐기한다는 내용이다.

미 국방성은 지난 4월 1일, 미 의회에서 F-35 개발 프로그램이 바로 넌-맥커디 규정을 어겼다고 정식으로 발표했다. 또한 미 국방성은 F-35 전투기의 대당 가격은 2002년 기준으로 8000만~9500만 달러였지만, 2009년 기준으로는 9500만~1억1300만 달러, 2011년 기준 1억2000만 달러를 상회하고 있다.

그는 “F-35는 현재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 차세대전투기 사업을 하는 여러 나라들에서조차 유럽과 러시아 전투기에 밀리고 있는 양상”이라면서 “스텔스 기술은 과도기 기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전투기 개발에서 지나치게 스텔스 테크놀로지에 무게를 둠으로써 현재 커다란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와 중국, 인도는 이미 F-22에 버금가는 스텔스 개발을 완료하고, 양산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다. 대(對)스텔스 기술 역시 속속 개발되고 있다. 또한 무인기가 대세를 이룰 미래 전장환경에서 과연 스텔스가 그토록 핵심적인 의미를 지닐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미국 역시 F-22의 뼈아픈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이미 6세대 전투기 개념 연구에 돌입한 상태다.

“왜 청와대가 MOU라도 쓰겠다고 기를 쓰는지 모르겠다”

방산업체 한 관계자는 “현재 F-35는 미 상원의원이 성능의 5%만 달성했다고 혹평할 정도로 목표성능의 20% 정도밖에 실현하고 있지 못하다”면서 “지금 날개 이상으로 교체까지 해야 하는 기종이 어떻게, 무엇으로 내년 5월에 경쟁 기종들과의 테스트에서 살아남겠느냐”고 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F-35 선정에 올인하고 있는 느낌”이라며 “업계에서는 ‘정권 말에 통 크게 도장 한 번 찍어 주고 가겠다는 것 아니냐’고 비아냥거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현지의 록히드마틴 직원들과 공화·민주 의원들이 워싱턴을 방문한 천영우 수석을 모셔가려는 열기가 뜨거웠다는 소식도 들린다”면서 “청와대가 F-X사업을 서두르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일단 이 정권에서 물리적으로 10월 기종선정 발표가 어렵다면, 록히드마틴에 양해각서(MOU)라도 써 주겠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면서 “왜, 유독 청와대가 F-35에 대해 MOU라도 쓰고 가겠다고 기를 쓰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청와대는 록히드마틴에 양해각서를 써 주면서 ‘국익(國益)’이라는 말로 국민들의 여론을 잠재우려 할 것”이라면서 “하지만 결국 정부가 내건 그러한 조건들 때문에 발목이 잡혀 업체들로부터 제소를 당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MOU 이야기가 나온 배경에 대해, 그는 “내년 후보기종으로 테스트를 받을 충분한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이라며 “그외에 가격, 인도시기, 생산대수 등에서 문제를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이 F-35를 도입한다면, 그것은 JSF(통합전투기) 프로그램 참여국인 이탈리아에서 생산하는 인터내셔널 버전인 F-35 C-1 기종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록히드마틴은 일본 미쓰비시사(社)에 ‘일본이 F-35라이선스 생산을 동의하면, 한국의 F-35 정비창을 일본이 운영하게 해 주겠다’며 설득하고 있다”면서 “정비창이 바다 건너에 있다면 유사시 어떻게 신속한 기체정비가 이뤄질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국회 국방위의 한 관계자도 “공군은 F-35를 생산하는 록히드마틴에 세 가지 이유 때문에 불신하고 있다”며 “록히드마틴이 가격, 인도시기, 생산대수 등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결국 공군 모 실무자는 허위 리포트를 작성해 올린 셈이 됐던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 주변 관여설

방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록히드마틴 측이 대통령 주변 측근들에게 줄을 대고 있다는 소문이 공공연하다”면서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을 비롯한 공식 라인과 기타 비공식 라인 등 몇몇 대통령 측근들의 이름이 업계에 거론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천영우 수석은 ‘얼굴마담’에 불과하고, 배후에 비공식 라인이 실질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흔적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고 했다.

방산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록히드마틴 쪽이 대통령 주변 사람들과 자주 어울린다는 것은 업계의 웬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청와대가 미완성 항공기, 가격 미정인 항공기, 성능 미입증 항공기를 사기 위해 다른 업체들을 들러리 세우는 듯한 일을 꾸미는 것을 보면 업계의 소문이 헛소문이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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