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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 禪佛敎 법맥 잇는 眞際 대선사

자고새 우는 곳에 백 가지 꽃이 향기롭도다

글 : 서철인  월간조선 기자

글 : 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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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선 수행하면 마음속 갈등과 시기, 질투, 공포, 불안이 봄눈 녹듯 녹아내려
⊙ “진제는 석가모니 이후 중원에서 선법을 중흥시킨 육조(六祖) 혜능(慧能)의 현신(現身)이다”
    (향곡 선사)
⊙ 차기 대통령은 전쟁을 원치 않으면서도 적이 우리의 국토를 침범하고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앗아갈 때는 강력히 응징할 줄 아는 지도자였으면

眞際 대선사
⊙ 법랍 57세, 속랍 77세. 1954년 해인사에서 출가, 석우 선사를 은사로 사미계 수지.
⊙ 1967년 향곡 선사로부터 법을 인가받아 경허-혜월-운봉-향곡 선사로 전해 내려온 법맥 이음.
    1971년 부산 해운정사 창건.
⊙ 現 대구 팔공산 동화사·부산 해운정사 조실, 대한불교조계종 원로의원.
⊙ 저서 : 법어집 《옛 연못에서 달을 건진다》 《돌사람 크게 웃네》 《石人은 물을 긷고 木女는
    꽃을 따네》 등.
  소년은 1930년대 초반 경남 남해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여섯 살 되던 해 어느 무더운 여름 날 동네 정자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한 점잖은 방랑객이 다가와 한마디 툭 던졌다.
 
  “장차 현인(賢人)이 될 관상이로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흘러 소년은 어느덧 스무 살 청년이 되었다. 그해 봄날 청년은 불자인 오촌당숙을 따라 동네에서 10리쯤 떨어져 있는 사찰에 갔다. 당시 사찰에는 승속(僧俗)이 모두 존경하고 추앙하는 대선사 한 분이 있었다. 대선사는 오촌당숙을 따라 친견하러 온 청년을 보더니 대뜸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생활도 좋지만 그보다 더 값진 생활이 있으니, 그대가 한번 해보지 않겠는가?”
 
  청년이 “무엇이 그리 값진 생활입니까?”라고 묻자 대선사는 “범부(凡夫)가 위대한 부처 되는 법이 있네. 이 세상에 한번 태어나지 않은 셈치고 수행의 길을 가보는 것이 어떻겠는가?”라고 답했다.
 
  그날 집에 돌아온 청년은 부모와 진지하게 상의한 끝에 얼마 후 출가했다. 그가 대선사 밑에서 6~7개월 동안 행자 생활을 하고 있을 때 하안거(夏安居)를 마친 선객(禪客) 스님 7~8명이 대선사께 인사도 하고 법문도 들을 겸 찾아왔다. 이들은 10년 동안 전국의 선방을 순회하며 수행해 온 스님들이었다.
 
  대선사는 이들의 절을 받은 후 “자네들 여름 석 달 동안 참선 정진을 잘했는지 시험을 해야 되겠네”라며 이렇게 말했다.
 
  “옛날 중국의 삼한(三漢) 시절에는 글자 운자(韻字) 하나를 잘 놓음으로 인해서 과거에 급제하던 때가 있었네. 이것은 그 당시 시험에 나왔던 문제인데, ‘일출동방대소(日出東方大笑), 곧 해가 동쪽에 떠올라 크게 웃는 모습이 어떠하더라’는 이 글귀에 운자 하나를 놓아보게. 당시 어떤 사람이 ‘해가 동쪽 산에서 나와 크게 웃는 모습이 나다’해서 나 ‘아(我)’자를 놓아 재상에 등용되었는데, 자네들은 어떤 자를 놓아보겠는가?”
 
  선객 스님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묵묵부답이었다. 그러자 대선사가 신출내기 행자인 청년에게 “그러면 네가 한마디 일러보아라”라고 했다. 청년은 잠시의 망설임이나 주저함도 없이 “저는 없을 ‘무(無)’ 자를 놓겠습니다”라고 답했다. 해가 동쪽 하늘에 떠올라 밝은 빛으로 온 세상을 비추지만 비추는 그 모습에는 호리(毫釐·매우 적은 분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의 상(相)도 없다는 뜻에서였다.
 
  청년의 대답을 들은 대선사가 매우 흡족해하며 이렇게 말했다.
 
  “행자가 장차 큰 그릇이 될 것이다.”
 
  당시 청년을 거두고 지도한 대선사가 조계종 초대 종정(宗正)을 지낸 석우(石友) 스님이다. 그리고 석우 스님으로부터 ‘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 本來面目·부모에게 이 몸 받기 전 어떤 것이 참 나인가)’이라는 화두(話頭)를 받아 선문(禪門)에 들어선 이 청년이 바로 진제 스님이다.
 
 
  부처는 生死의 해법을 가르치기 위해 사바세계에 온 것
 
스님을 친견하기 위해 대구 팔공산 동화사를 찾은 폴 니터 교수. 두 사람은 부처와 예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부산일보 제공)
  어느덧 법랍(法臘) 50이 넘은 진제 스님. 그는 경허(鏡虛)-혜월(慧月)-운봉(雲峰)-향곡(香谷) 선사로 전해 내려온 정통 법맥을 잇고 있는 국내 대표적 선승(禪僧)이다. 루이스 랭커스터(Lewis Lancaster) 미국 UC버클리대 교수나 폴 니터(Paul Knitter) 미국 유니언신학대 교수 등 세계적인 종교 석학들이 그를 친견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정도로 세계가 알아주는 선지식(善知識·지혜와 덕망이 있는 승려)이기도 하다.
 
  조계종 원로의원으로서 유력한 차기 종정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진제 스님은 현재 대구 팔공산 동화사와 부산 해운정사 조실(祖室·선승들의 수행을 책임지고 점검하며 가르치는 어른)로 있다. 석가탄신일(5월 10일)을 앞두고 부산 해운정사에서 진제 스님을 만났다.
 
  부처의 도를 깨쳤기 때문일까. 스님의 말은 시봉(侍奉) 스님들의 도움 없이는 해독이 불가능한 선문답이 많았다. 스님은 인터뷰 중간 중간 파안대소(破顔大笑)할 정도로 여여(如如)로웠지만 범부인 기자는 알 듯 모를 듯한 말씀을 해석하느라 진땀깨나 흘려야 했다.
 
  ―얼마 후면 ‘석가탄신일’입니다. 이날의 의미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죠.
 
  “모든 생명이 있는 중생은, 낳고 죽는 생사(生死) 문제로 번뇌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문제의 해법을 가르쳐주기 위해 사바세계에 오셨지요. 생로병사(生老病死)로부터 자유롭고, 탐하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의 속박에서 벗어나 모든 고통과 슬픔, 고뇌가 없는 이상(理想) 세계를 이 땅에서 성취하여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오늘 이 시대 우리에게 오신 부처님의 뜻입니다.”
 
  ―부처가 중생들에게 제시한 그 해법은 뭔가요.
 
  “부처님께서는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 바탕에는 부처와 똑같은 지혜(知慧)와 덕성(德性)이 갖춰져 있으니 마음 밭을 갈고 닦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인 위대한 가르침이죠. 또한 이미 부처로서 인격이 갖춰진 ‘참 나’에 대한 하화중생(下化衆生·모든 중생이 부처의 경지에 이르도록 이끄는 것)의 실천적 의미는, 보다 깊고 넓게 사회를 이롭게 하는 자비심과 봉사를 실천하라는 뜻입니다. 일상에서 이런 자비와 봉사를 실천하는 가운데 ‘참 나’를 밝히는 참선 수행을 꾸준히 하면 누구나 위대한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부처가 되면 삶이 달라지나요.
 
  “중생이 위대한 성인이 되는 것이니 삶이 달라질 수밖에 없죠. 참선을 하면 부처님처럼 대(大)지혜를 얻어 대자유와 대안락 속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참선을 하면 지혜롭고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해집니다. 참선 수행을 꾸준히 하면 마음속에 있는 가지가지의 갈등과 시기, 질투, 공포, 불안이 봄눈 녹듯이 녹아내려 평온한 여생을 누릴 수 있지요.
 
  죽음에 다다라서도 편안히 이 몸을 벗고 더 좋은 여건 속에서 새로운 몸을 받게 됩니다. 살아생전에 꾸준히 닦아 연마하고 항시 대오견성(大悟見性)의 발원(發願)을 세운다면 다음 생에는 반드시 더 좋은 여건 속에서 수행을 닦아 대오견성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깨닫지 못한 자는 자기 안에 진리가 있는 줄 몰라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요.
 
  “자기의 참모습입니다. 누구나 다 이 몸뚱이를 이끌고 있는 ‘참 나’가 있어요. 이 ‘참 나’는 우주가 생기기 이전에도 있었고, 우주가 멸한다 해도 변함이 없지요. 깨닫기 전에는 육도(六道·지옥 아귀 축생 인도 수라 천상)의 세계가 분명하더니, 깨달은 후에는 비고 비어서 항상 여여하며, 여여한 가운데 깨달음과 어리석음도 없지요. 때로는 만인 앞에 진리의 전(廛·가게)을 폈다 거두기도 하고, 주었다가 빼앗기도 합니다.
 
  깨달음이란, 모든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참 나’를 자각해서 세계가 영원토록 한 집이요, 만유(萬有)가 동체(同體)이며, 대안락과 대자유의 무심삼매(無心三昧·세속적인 잡념 없이 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경지)를 수용(收用)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깨달음의 경지를 말로 설명해 줄 수 있습니까.
 
  “깨달음의 경지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낮은 단계는 ‘법신(法身)의 진리’를 깨닫는 것으로, 온 세계가 조그마한 티끌도 볼 수 없는 청정한 모습임을 알게 되는 단계지요. 그 위가 ‘여래선(如來禪)의 진리’를 깨닫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는 육근(六根·눈 코 귀 혀 몸 뜻)과 육식(六識·육근에 의해 대상을 깨닫는 여섯 가지 작용)을 송두리째 뿌리 뽑아서 온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가 텅텅 비어 성인(聖人)과 범부의 경계가 없는 절대평등의 상태에 이름을 뜻하지요.
 
  그 위에 부처님께서 전하신 지극한 이치로서 ‘최상승(最上乘)의 진리’가 있습니다. ‘향상일로(向上一路)는 일천 성인도 전하지 못한다’는 이 진리는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깨달은 자만이 알 수 있는 세계죠.”
 
  ―깨달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뭐가 다른가요.
 
  “깨달은 자는 항상 여여한 고로 일월(日月)과 같이 마음의 지혜가 밝아 모든 갈등과 번뇌를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고, 생(生)과 사(死)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모든 유정(有情)과 무정(無情)이 더불어 한 몸이 되고, 온 세계가 한 집인 삶을 살아가게 되죠. 깨달은 이는 이처럼 일체처(一切處)에 자유를 누리고 밝은 눈을 갖게 되므로 모든 진리의 스승이 되어 만인을 바르게 살 수 있도록 인도하게 됩니다.
 
  아직 깨닫지 못한 자는 자기 안에 진리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바깥으로만 치달으니, 돈과 명예와 애욕 등 오욕락(五慾樂)으로 마음의 병통을 초래합니다. 온갖 시비(是非)와 갈등, 시기와 질투 때문에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없지요. 죽음에 이르러서는 공포와 불안, 애착과 원한에 괴로워합니다. 삶의 고통을 그대로 다 짊어지고 육도윤회(六道輪廻·깨달음을 얻지 못한 중생이 돌고 도는 6가지 세계) 속에서 쳇바퀴 돌 듯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올해 초 동안거가 끝난 후 대구 팔공산 동화사에서 법문을 하고 있는 진제 대선사.
 
  六祖 慧能의 현신
 
성철 스님은 그의 스승인 향곡 선사와 둘도 없는 도반이었다.
  ―스님은 언제 깨달음의 도를 깨쳤습니까.
 
  “서른세 살 때였습니다. 스승이신 향곡 선사로부터 인증을 받고 근 50년 동안 제방의 유명한 선지식들을 다 접했습니다. 나처럼 큰스님들을 많이 접한 이도 드물 겁니다. 깨달음의 세계는 깨달은 자들만이 주고받을 수 있지요.”
 
  진제 스님은 석우 선사로부터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기 전의 참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를 받은 후 운수행각(雲水行脚)의 길에 올랐다. 그때가 1957년, 세수(世壽) 24세 때였다. 그는 견성(見性)하겠다는 일념하에 동안거(冬安居) 두 달 동안 참선 수행에 정진했다. 그러던 중 머릿속에 반짝 떠오르는 것이 있어 도를 깨친 것으로 알고 빨리 동안거가 해제되기만을 기다렸다. 그 와중에 석우 선사가 열반(涅槃)에 들었다.
 
  스님은 자신의 깨침을 확인하기 위해 향곡 선사를 찾아갔다가 떨어지는 질문에 동문서답해 방망이만 맞았다. 이때부터 성철(性徹) 선사, 서옹(西翁) 선사 등 선지식으로 이름난 전국 고승(高僧)들을 참방(參訪)했다. 이후 향곡 선사로부터 ‘향엄상수화(香嚴上樹話)’라는 새로운 화두를 받았다.
 
  향엄상수화는 ‘어떤 사람이 아주 높은 나무 위에서 손이나 발로 가지를 잡거나 밟지 않은 채 오직 입으로만 물고 있다. 그런데 나무 밑에 있는 사람이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을 물었다. 대답하지 않으면 묻는 이의 뜻에 어긋나고, 대답하면 수십 길 낭떠러지에 떨어져 목숨을 잃을 상황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를 담고 있는 화두. 그는 이 화두를 붙들고 2년여 동안 신고(辛苦)한 끝에 28세 가을에 다시 향곡 선사를 찾았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오도송(悟道頌·선승이 자신의 깨달음을 읊은 선시)을 바쳤다고 한다.
 
  ‘이 주장자(杖子·법문할 때 드는 막대기) 이 진리를 몇 사람이나 알꼬/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도 다 알지 못하누나/한 막대기 주장자가 문득 금룡(金龍)으로 화해서/한량없는 조화를 자유자재 하는구나’
 
  이에 향곡 선사가 “용이 홀연히 금시조(金翅鳥·용을 잡아먹는다는 상상의 새)를 만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진제 스님이 “당황하여 몸을 움츠리고 세 걸음 물러나겠습니다”라고 답하자 향곡 선사는 “옳고, 옳다”며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이후 5년여 동안 수행 정진한 후 두 번째 오도송을 바쳤다.
 
  ‘한 몽둥이 휘두르니 비로정상 무너지고/벽력 같은 일갈(一喝)에 천만 갈등 흔적 없네/두 칸 토굴에 다리 펴고 누웠으니/바다 위 맑은 바람 만년토록 새롭도다’
 
  그러자 향곡 선사가 도를 깨친 선지식으로 인정하고 그에게 전법게(傳法偈)를 써주었다고 한다. 그 내용은 이렇다.
 
  ‘진제에게 부처님 심인법(心印法)을 부치노니/부처님과 조사의 산 진리는/전할 수도 없고 또한 받을 수도 없는지라/이제 그대에게 산 진리를 부치노니/만인 앞에 진리의 전을 펴거나 거두거나 그대에게 맡기노라’
 
  향곡 선사는 “진제는 석가모니 이후 중원(中原)에서 선법을 중흥시킨 육조(六祖) 혜능(慧能)의 현신(現身)”이라며 “당대 우리나라 해동대한민국에 있어서 참선법이 너를 좇아 크게 진작하여 융성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육조 혜능은 중국 선종의 6대(초대 달마대사) 조사로 중국에 선불교를 만개시킨 인물이다.
 
  ―스님 다음 법을 이을 제자가 정해졌습니까.
 
  “발심납자(發心衲子)들이 밤낮을 잊고 정진하고 있으니 좀 더 기다려보도록 하지요.”
 
 
  범종교적 지도자 孔子 존경
 
스승 향곡 선사와 함께한 젊은 시절의 진제 스님.
  스님은 선승이지만 현실참여적 발언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이번 정부의 종교편향주의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대통령이 특정 종교에 편향돼 있다고 봅니까.
 
  “국민이 다 아는 일 아닌가요. 대통령은 일부 특정 종교가 아닌 5000만 국민의 대통령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정부가 이슬람채권법을 도입하려 하자 기독교가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국민에게 이익이 된다면 도입해도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 싼 자본이 들어와서 모든 국민에게 혜택이 가고 국가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면 환영해야지요. 이슬람교는 계율을 존중하고, 없는 사람을 위해 있는 사람이 세금이나 기부금을 내는 전통 때문에 번창해 왔습니다.”
 
  ―불교는 타 종교를 배척하기보다 포용하는 느낌이 듭니다.
 
  “불교는 온 세계를 다 한집, 한 몸으로 봅니다. 부처님 사상에 ‘나’라는 허세(虛勢)가 없어서 인류와 같이 동고동락(同苦同樂)하지요.”
 
  ―범종교적 차원에서 평소 존경해 온 종교 지도자가 있습니까.
 
  “사대 성인 중 한 분인 공자(孔子)입니다. 한 제자가 공자에게 ‘유사 이래 가장 위대한 성인이 누구입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석가모니’라고 하면서 ‘석가모니는 다스리지 않아도 스스로 다스려지고, 법을 설하기 전에 만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흠모하였으니 그만큼 훌륭한 지혜와 덕을 갖춘 분이다’라고 설명하셨죠. 공자 외에 부처님의 살림살이를 다시금 선양하신 향곡·성철 두 선사를 참으로 존경합니다.”
 
  ―진리는 오직 하나님을 통해 구할 수 있다는 기독교 논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근자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 기독교인도 상당수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1962년부터 1965년까지 열렸습니다. 당시 전 세계 2000명 이상의 가톨릭 주교들이 공의회에 참석했죠. 이 공의회에서 주교들은 다른 종교 안에도 하나님이 존재하고 진리가 있다는 내용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공의회 차원에서 그 사실을 공인하기도 했고요.”
 
 
  모든 종교 唯一神的 태도에서 벗어나야
 
  ―그렇다면 왜 이런 기독교 논리가 만들어졌을까요.
 
  “그 이유는 지난번 대화를 나눈 미국 유니언신학대 폴 니터 교수에게 전해들은 것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젊은 시절 가톨릭 사제를 지낸 폴 니터 교수는 종교 간 대화의 벽을 허문 세계적인 석학이다. 달라이라마,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 등 세계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평화평의회국제위원회 이사로서 세계 평화운동에 앞장서 온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불교에 심취돼 오랫동안 명상수행을 해왔다. 2년 전에는 《부처님 없이 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었다》라는 책을 출간해 미국 종교계에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폴 니터 교수가 지난 1월 1일 부인 캐서린 코넬과 함께 대구 동화사를 찾았다. 한국 선불교의 법맥을 잇고 있는 진제 대선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스님은 폴 니터 교수에 대해 “서양의 신학자로서, 그만큼 신심(信心) 있고 순수한 분이 진리의 목마름에 종교와 나이를 초월해 머나먼 타국까지 와서 선지식을 만나고자 하는 열정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불교와 기독교의 성인인 부처와 예수에 관해 오랫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 과정에 폴 니터 교수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안에만 진리가 있는 것으로 주장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기독교는 로마 제국에서 종교로 성장해 갔습니다. 기독교 초기 예수의 메시지는 로마 제국에 맞서는 내용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동화되었죠. 이 과정에 소위 신학(神學)이라는 분야가 발전하게 됐습니다. 그 결과 정치적으로 로마 제국이 유일한 정치권력으로 이해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진리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종교로 이해하게 되었지요. 로마가 다른 나라들을 정복했듯이 기독교 역시 다른 종교를 정복하려는 태도를 갖게 된 것입니다.”
 
  ―폴 니터 교수가 기독교인들로서는 상당히 아픈 지적을 했네요.
 
  “폴 니터 교수뿐만 아니라 많은 신학자가 유일신적(唯一神的) 태도에서 벗어나야 보다 넓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는 쪽으로 연구 방향을 돌리고 있다고 하더군요. 폴 니터 교수는 최근 신학계에 일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복음주의적·보수적·근본주의적 그리스도인들도 이제는 많은 종교 사이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깨달아가고 있다는 얘기였죠.”
 
  ―그런데도 종교 간의 갈등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여러 종교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는 건 굉장히 두려운 일입니다. 자신들이 믿어왔던 유일신을 잃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죠. 그 때문에 다른 종교에 맞서고 있다고 보는 것이 폴 니터 교수와 같은 다원주의 신학자들의 견해이자 요즘 열린 사고를 가진 기독교인들의 생각입니다.”
 
 
  어떤 것이 나의 참모습인가
 
  ―불교계에는 그런 두려움이 없는 건가요.
 
  “불교에서는 개유불성(皆有佛性)이라고 해서 모든 중생(모든 생명체)은 불성이 있다고 가르쳐왔습니다. 물론 자신 안에 불성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극락세계에 가는 것은 아니죠. 자신의 참 나를 깨달아 최상승의 진리를 투과해야 영원한 극락세계에서 무심삼매를 수용합니다. 모든 진리는 하나이나 이르는 길은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국 간화선(看話禪)은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빠르고 좋은 수행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간화선은 화두를 마음으로 본다는 뜻으로 의심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법이다. 선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으로 중국에서 꽃을 피웠다가 고려시대 한국으로 전파된 후 800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진제 대선사는 ‘간화선을 통해 범부도 위대한 부처가 될 수 있다’고 가르쳐왔다.
 
  ―간화선 수행법을 쉽고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간화선에서 화두는 이 몸뚱이와 같고 의심은 생명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어떤 것이 나의 참모습인가’하는 의심에 6년간 삼매에 드셨는데, 새가 머리에 집을 지어도 모르셨습니다. 화두 없이 의심만 있다면 몸뚱이 없는 영혼과 같아 그 어떠한 것도 이룰 수 없고, 또 의심 없는 화두는 시체와 다를 것이 없어서 아무런 가치가 없지요. 따라서 화두와 의심이 하나가 되어 빈틈없이 밀어주는 게 간화선 수행법입니다.”
 
  ―일을 해야 먹고 사는 저희 같은 범부들로서는 상당히 어려운 수행법이 아닐 수 없군요.
 
  “화두를 들고 하루에도 천 번 만 번 의심을 하면 일상생활 가운데서도 수행이 가능합니다. 앉아서 좌선할 때는 반가부좌를 튼 다음 손을 배꼽 밑에 붙이고 가슴을 쫙 폅니다. 이때 시선은 전방 2m 아래에 고정하되 노려볼 필요는 없습니다. 대오견성은 일념삼매가 지속되어 참의심이 발동 걸려야 가능한 것이니, 끊임없이 의심하고 챙기고, 챙기고 의심해야 합니다. 반드시 화두 일념이 지속되어야 ‘참 나’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진제 스님은 “정안(正眼)을 갖춘 선사의 지도 아래 일상생활 속에 ‘참 나’를 찾아 지혜를 계발하면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자기를 모르고 천 년을 사는 것보다, 참 나를 알고 하루를 사는 것이 더 보람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젊은 세대는 불교를 어려운 종교라고 얘기합니다. 관련 서적들을 보면 솔직히 접근하기 어려운 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팔만사천 법문이 다 마음법을 설해 놓은 것입니다. 마음이 아닌 오욕락이라는 허상을 좇아 바깥으로 치달아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당연히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요. 하지만 인생이 무상하고 세상이 허무함을 알고,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 선지식을 찾아가 불교를 배운다면 불교는 어려운 게 아니라 하나하나 내 수행을 점검해야 할 방편임을 알게 됩니다. 마음에 관심이 없는데 마음법이 쉽게 느껴질 수 없는 이치지요.”
 
  최근 들어 불교는 동양에서보다 서양에서 주목받고 있다. 서구 지식인들 사이에 불교 수행법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 이에 대해 폴 니터 교수는 “기독교 종주국을 자처하는 유럽과 미국에 다양한 종교가 전파되었는데, 이민자들은 금전적 지원이 많은 이슬람교로, 독실한 기독교와 가톨릭 신자들은 내실(수행)의 부족함을 느끼고 선수행을 찾아 개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21세기, 불교가 흥하는 시대가 왔다”고도 했다.
 
 
  한국 禪은 세계정신문화의 정수
 
동화사 선방에서 젊은 승려들의 참선 수행을 지도하고 있는 진제 대선사.
  루이스 랭커스터 교수 역시 1990년대 말 “최근 들어 불교가 세계적으로 침체 현상을 보이고 있지만 21세기가 되면 불교가 널리 전파될 것으로 본다”고 예견한 바 있다. 랭커스터 교수는 “다가오는 시대에는 ‘수행이 없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라 정치’라는 구호들이 나오면서 서구를 중심으로 우리 선불교가 다시 크게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유럽과 미국에서 정신문화의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그 출발을 선불교 수행법에서 찾으리라는 선견지명이었다.
 
  ―최근 들어 미국이나 유럽의 젊은이들이 불교에 심취하는 데 반해, 한국의 젊은이들은 불교를 멀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일반적으로 볼 때 물질이 풍요로워지면 정신세계는 쇠퇴하기 마련입니다. 개인적인 문제나 사회적인 문제도 그 근본 원인은 정신의 황폐화에서 찾을 수 있지요. 선의 역할은 인인개개(人人箇箇)의 내적 수행을 통해서 불안한 정신에 안정과 평화가 스며들게 하는 것이지요. 안타깝게도 한국의 젊은이들은 세계정신문화의 정수(精髓)가 한국 선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역사의 단절과 이를 잇고자 하는 교육 등 사회적 노력이 부족한 것에 그 원인이 있지요. 우리 모두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불교문화가 단절되어 왔다는 말씀인가요.
 
  “역사적으로 볼 때 고려 이후 우리 불교문화는 단절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조선의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으로 사회문화를 대변하던 불교문화가 사라지게 되었고, 이어 일제 36년 동안에는 불교가 민족문화를 대변한다고 해서 탄압의 대상이 되었죠. 광복 이후로는 경제개발에 매진하다 보니 정신문화로서의 불교 가치가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반세기 동안 한국 현대사를 이어오니 이제 불교 하면 낡은 정신, 오래된 문화 등등 알지 못해 저지르는 실수들이 있습니다.”
 
  스님은 “자국의 민족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는 교육이 부족하다”며 “부디 사회 지도층들이 각성하여 젊은이들에게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는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 문화재의 70%는 불교 문화재입니다. 반만 년 우리 역사 중 불교가 국시(國是)였던 적이 절반 이상이지요. 민족교육은 곧 불교 교육이고, 불교문화 인식은 민족문화 고취라는 생각이 무리가 아닐 것입니다. 민족문화 자부심 고취와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측면에서 그 사상적 기반을 가진 한국 선불교를 알리는 노력이 사회적으로 이뤄졌으면 합니다.”
 
부산시 해운대에 위치한 해운정사. 1971년 진제 스님이 창건했다.
 
  해외 포교에도 적극적
 
  ―현재 동화사와 해운정사 조실로 있습니다. 후학들은 어떻게 지도합니까.
 
  “부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단 한 가닥의 법맥이 끊어지지 않게 공부하는 이들이 바른 참선법을 익히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일상생활 중 무르익은 평정심 가운데 부처님을 좇아 최고의 진리를 원만히 깨달아 지혜와 자비로 일체 중생을 위해서 살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지요.”
 
  ―제자들에게 특별히 강조하는 부분이 있습니까.
 
  “활구참선(活句參禪·말과 글에 속박되지 않고 ‘참 나’를 찾는 참선)을 할지언정 사구(死句·말과 글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함)를 참구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활구를 참구하면 부처님과 조사(祖師)의 스승이 되지만, 사구를 참구하면 자기 자신도 구제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활구참선이 무엇인가요.
 
  “일천성인(一千聖人)의 이마 위의 일구(一句·인생의 진리와 우주의 원리를 깨치는 경지)를 투과하지 못하면 활구의 세계를 전혀 모른다는 뜻입니다. 이마 위의 일구를 투과한 자는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고, 주기도 빼앗기도 하며 기(機)와 용(用)을 가지런히 쓰는 수완을 갖추게 되지요. 정해정식(精解情識·생각하고 헤아리고 분별하는 경지)에서 떨어진, 알음알이의 사구는 도저히 이러한 자재의 수완을 갖출 수가 없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구제할 수 없습니다.”
 
  스님은 해외 포교에도 적극적이다. 일찍이 미국과 유럽에 선불교를 전파한 숭산 큰스님처럼 해외에 나가 법문도 하고, 법문 서적을 영어로 번역해 세계 유명 대학 도서관에 기증할 계획도 갖고 있다.
 
  ―올 가을 미국에 간다고 들었습니다.
 
  “예, 9월 14일에 갑니다. 뉴욕에 있는 유니언신학대학에서 동양정신문화의 골수인 선불교에 대해 설법해 달라고 초청해서 갑니다. 여기에는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독교와 불교가 합심해 세인들에게 좋은 가르침을 전하자는 의욕도 깃들어 있지요.”
 
  ―역사적으로 세계는 종교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 많았지요.
 
  “남북이 대치 중인 한국 외에도 전 세계는 아직도 전쟁 중입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혹은 장기 집권을 위해 세력다툼을 벌이고 있지요. 바른 불교를 믿고 수행을 하면 이런 전쟁이 없습니다. 불교는 인인개개를 평등하게 바라봄으로써 평등한 민주주의 사상을 항시 유지하기 때문이죠. 부처님의 제일 덕목이 불살생(不殺生)이어서 총칼을 가지고 상대와 싸우지 않고 항시 자비심으로 양보합니다. 이것이 불교의 근본 사상입니다.”
 
  ―요즘은 전쟁이 아니라 폭설과 폭우, 지진과 해일 등 자연재해로 인명 피해가 큽니다. 스님은 이 같은 현상을 어떻게 보는지요.
 
  “인간에게는 생로병사가 있고, 우주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습니다. 인간도 100년을 사는 데 있어서는 오장육부(五臟六腑)와 수족(手足)에 병이 생길 수 있는 것과 같이, 폭우가 쏟아지고, 화산이 폭발하고, 해일이 발생하는 것은 지구 자전 중에 일어나는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이러한 자연재해를 면하고자 한다면 일상생활 속에 이웃을 돕고 진실된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참 나를 발견하는 참선 수행을 꾸준히 연마하십시오. 그러면 과거 생에 지은 모든 죄업이 소멸돼 이런 환란이 와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차기 대통령은 어떤 분이 되었으면 합니까.
 
  “모든 국민과 함께 자유와 평등, 평화를 사랑하는 분이었으면 합니다. 전쟁을 원치 않으면서도 적이 우리의 국토를 침범하고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앗아갈 때는 강력히 응징하여 전쟁을 억제하고 국방을 튼튼히 할 줄 아는 지도자, 우리 국민이 평화롭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조국수호에 빈틈이 없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우리 국민이 하나 되어 평화적인 조국 통일을 성취하여 세계에 우뚝 솟는 대한민국을 건설해 자손만대에 물려줄 수 있는 그런 분이 다음 대통령이 되었으면 합니다.”
 
  스님에게 “오늘을 사는 중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한 말씀”을 부탁드리자 이런 선문답이 돌아왔다.
 
  “춘삼월호시절(春三月好時節)에 자고제처백화향(啼處百花香)이로다.”
 
  ‘따뜻한 봄날 좋은 시절에 자고새(부처의 전생)가 우는 곳에 백 가지 꽃이 향기롭도다’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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