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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그들의 커밍아웃, 오타쿠의 정체

사회 부적응 변종인가, 新문화의 리더인가

글 : 함승민  월간조선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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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메이션 狂·전문가는 사회부적응자라는 의미
⊙ 가상의 캐릭터와 사랑에 빠져 케이블 TV에서 화제가 된 오타쿠
⊙ “옆에 이효리가 있어도 쿠션에 그려진 캐릭터를 사랑한다”
⊙ “별종이라 재수 없다” 對 “개성을 짓밟지 마라”의 끝없는 논쟁
⊙ 문화콘텐츠산업 성장의 원동력으로 오타쿠 이미지 바뀐 일본
안여돼. 안경 쓰고 여드름 난 돼지의 준말로 오타쿠의 외모를 비꼬는 신조어다. 방 안에만 틀어박혀 게임,만화,애니메이션을 탐닉하는 오타쿠들의 생김새가 대부분 이렇거나, 이럴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 말이 만들어졌다.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에 재학 중인 고석찬(高錫贊)씨는 자타가 인정하는 오타쿠(おたく)다. 오타쿠란 한 분야에 열중하는 마니아(mania·어떤 한 가지 일에 몹시 열중하는 사람 또는 그런 일)보다 더욱 심취해 있는 사람을 이른다.
 
  지난 1월 5일 찾은 그의 기숙사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벽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포스터와 브로마이드가 있다. 방 한쪽의 진열장에는 크고 작은 애니메이션 캐릭터 피규어(figure·모형인형)가 가지런히 진열돼 있다. 애니메이션 관련 서적과 잡지도 빼곡히 꽂혀 있다. 책 위에는 열쇠고리와 같은 작은 캐릭터 상품이 수북이 쌓여 있다. 컴퓨터의 바탕화면이나 마우스패드는 물론 달력이나 머그잔에도 미소녀 캐릭터가 있다. 컴퓨터 키보드는 자판 하나하나마다 캐릭터가 그려진 작은 스티커들이 붙어 있다.
 
  침대에는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커버가 깔렸다. 고석찬씨는 “너무 커서 기숙사에서는 속을 빼놓고 있다”며 한쪽 벽장에서 사람 크기의 베개커버를 꺼내서 보여줬다. 마찬가지로 만화 속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그가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한 것은 2004년부터다.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공부한 1년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매일 두세 시간씩 애니메이션을 본다. 특히 방학이 되면 학기 중 보지 못한 것까지 챙겨 보느라 밤을 새우기도 일쑤다. 지금까지 본 애니메이션은 헤아릴 수조차 없다. 수천 편은 족히 넘는다. 한 편당 적게는 12화, 많게는 300화 넘게 구성된다. 1화에 30분 정도의 길이라고 하니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애니메이션과 보낸 셈이다.
 
  주위 사람들은 간혹 그를 오타쿠라고 깔보듯이 부르며 놀린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오타쿠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애니메이션 정보를 나누고 자신의 생활을 보여준다.
 
  최근 고석찬씨와 같은 ‘오타쿠’가 늘고 있다. 케이블 TV를 통해 이런 사람들이 소개되기도 했다. 남들과 다른 모습을 가진 오타쿠. 그들은 누구일까?
 
 
  ‘당신’이라는 말에서 사회부적응자를 일컫는 말로
 
오타쿠 고석찬씨의 애니메이션 캐릭터 관련 수집품.
  오타쿠라는 말의 기원은 일본어에서 ‘당신’ 또는 ‘댁’을 의미하는 2인칭 대명사 오타쿠(おたく)다. 최근 《21세기 신문화의 리더, 오타쿠》를 쓴 이진천(李鎭千)씨는 “일본에서 만화와 게임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동호회에서 서로를 존칭으로 당신(오타쿠)이라고 부르다가 그것이 명사화됐고, 그 말이 잡지에 쓰인 것이 계기가 되어 상징적으로 특정 부류를 칭하는 이름으로 굳어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오타쿠라는 말을 정의하기엔 부족하다. 이 말은 때로 어느 관심사에 극도로 깊이 빠져들어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소유한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고, 또는 너무 한 가지 분야에 빠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을 일컫기도 한다. 그래서 누군가 “너 오타쿠 같다”는 말을 한다면 ‘너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것 같다’,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다’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고, ‘너 만화에 등장하는 미소녀 캐릭터나 좋아하는 변종 같다’나 심지어 ‘생김새가 안여돼(안경 쓰고 여드름 난 돼지의 준말로 오타쿠의 외모를 비꼰 신조어)다’라는 말까지다 된다.
 
  이처럼 오타쿠라는 말이 모호한 이유는 기준과 의미의 울타리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오타쿠는 보통 뚱뚱하더라’라는 말이 거꾸로 ‘뚱뚱하면 오타쿠다’는 말로 들리듯, 말이 생긴 후 그들의 특징을 바탕으로 의미가 덧붙여지고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마니아와 오타쿠의 차이
 
  오타쿠는 모두 ‘한 분야에 심취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오타쿠는 ‘마니아’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전문가들 역시 “오타쿠와 마니아를 구분하기 힘들지만 일반적으로 ‘분야’와 ‘강도’의 관점에서 구분한다”고 설명했다. 20년째 게임 프로듀싱 등 오타쿠 비즈니스에 종사한 일본인 사토 요시노리(佐藤良典)씨의 말이다.
 
  “10여 년 전 일본에서 불황 중에도 콘텐츠 산업이 잘나가자 사람들은 오타쿠 시장에서 그 원동력을 찾으려 했습니다. 오타쿠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됐죠.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오타쿠로 분류하기 모호한 모든 분야를 오타쿠로 묶어 조사하고 섞어버려서 어떤 분야를 오타쿠의 경계 안에 둬야 하는지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그래서 현재 내가 일하는 현장에서는 여행, 카메라, 패션 등 현실적인 것은 제외하고 크리에이터가 창조한 것에 열중한 사람들, 특히 기본적으로 서브컬처에 대해 몰두하는 사람들로 구분합니다.”
 
  특정 분야에 몰두하는 사람이라는 특징은 같지만, 마니아와는 달리 서브컬처로 한정시켜 생각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진천씨는 “오타쿠는 마니아에 비해 관심사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고 파헤치며, 그것을 인생에서 최고의 가치로 간주한다”며 관심의 강도로 오타쿠와 마니아를 구분했다. 마니아가 취미에 깊이 빠진다 해도 어디까지나 여가를 즐기기 위한 개념이다. 하지만 오타쿠는 인생을 위한 취미를 넘어, 취미를 위한 인생이 된다는 것이다. 고석찬씨는 “한창 피규어를 모을 때는 자취하면서 부모님께 받은 생활비를 밥도 거의 굶어가며 아껴 피규어를 샀다”고 했다.
 
  오타쿠 이진규씨는 최근 TV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가상의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자신의 애인이라며 데이트를 하고, 웨딩촬영까지 하면서 화제가 됐었다. 이에 대해 자신을 만화ㆍ애니메이션 오타쿠라고 밝힌 김상수(가명ㆍ30)씨는 기자에게 ‘모에’라는 개념을 설명했다. 모에란 만화ㆍ게임에 나오는 가상의 캐릭터에 갖는 의사(擬似) 연정(戀情)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그는 “가상의 캐릭터를 실제 사람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에 옆에 가수 이효리가 있어도 쿠션에 그려진 캐릭터를 더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에의 예처럼 ‘마니아보다 더 광적으로 관심분야에 파고들고 몰두하는 것이 오타쿠’라는 것이 이진천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현재 흔히 쓰이는 오타쿠의 의미가 넓어진 것도 사실임을 이들은 인정한다. 누군가 정의하고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런 ‘경향’이 있는 사람을 부르기 시작한 말이기 때문에 콕 집어 ‘여기는 오타쿠고 저기는 아니다’고 할 수 없다.
 
▣ 서브컬처(subculture)
 
  주류(主流) 위상을 지닌 문화에 반(反)해 그 사회의 일부 집단에 한정한 일정한 위상을 지닌 문화를 지칭한다. 회화나 순문학, 클래식 음악 등의 하이컬처에 대항하여 마이너하고 취미성이 강한 문화다. 지배적인 문화나 체제를 부정하고 적대시한다. 카운터컬처(counterculture)로 부르기도 한다.
 
  “독선과 편식이 심해”
 
  폭넓게 쓰이긴 하지만, 누군가 “야, 이 오타쿠야!”라고 하면 대부분의 ‘오타쿠’는 거부감을 느낀다. 심지어 오타쿠가 정확히 어떤 건지 모르는 사람들조차 오타쿠가 안 좋은 의미로 쓰인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왜 사람들은 오타쿠를 싫어하고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일까.
 
  오타쿠 김상수씨는 콘텐츠의 선정성과 폭력성을 지적했다. 그는 “대부분의 오타쿠가 미소녀ㆍ전쟁물 오타쿠고 여기엔 과도한 선정성과 폭력성이 나타난다”고 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오타쿠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미연시(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의 준말), 야겜(성인용 게임) 등과 관련된 카테고리가 존재해 많은 이가 정보를 나누고 있다. 이런 종류의 게임들은 주로 게임 속 여자캐릭터와 연애를 하고 마지막엔 성관계까지 맺는다는 내용이다. 당연히 노골적인 성적 묘사가 드러난다. 때로는 변태적인 성관계 장면도 있다.
 
  한 대학생은 “오타쿠는 너무 변태 같아서 왠지 싫다. 인터넷에서 보니 여자 캐릭터 피규어를 들고 야한 만화를 보면서 자위하는 오타쿠도 있다고 하던데, 방구석에서 혼자 하드코어한 야동을 보는 사람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사람들을 쉽게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가”라고 얘기했다.
 
  오타쿠가 하나에만 탐닉하는 모습도 일반인들에게 거부감을 준다. 오타쿠는 여러 방법으로 자신의 관심사에 빠져든다. 피규어나 프라모델(플라스틱 조립 모형)을 수집하기 위해 일본에 직접 간다. 방 전체를 캐릭터와 관련된 장식으로 꾸미기 위해 생활비의 대부분을 지출하기도 한다. 캐릭터와 똑같은 옷을 직접 만들어 입기도 하는데 때로는 남자가 여장을, 여자가 남장을 하기도 한다. 가상의 캐릭터를 실제 연인처럼 사랑하고 결혼하려는 오타쿠도 있다. 사토씨는 “기존 만화를 모방해 2차 창작을 하기도 하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와 자신이 성관계를 갖는 스토리로 만화를 그리는 것도 봤다”고 말했다.
 
  오타쿠의 심취 방식에 대해 또 다른 대학생은 “오타쿠의 그런 생활이 나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거부감을 부르는 것도 사실”이라며 “지나친 취미생활 방식 때문에 별종으로 보이고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다”고 털어놨다.
 
  오타쿠의 배타성과 폐쇄성도 문제가 된다. 김상수씨는 “오타쿠는 독선이 강하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 외에는 인정을 하지 않고 편식이 심하다”면서 배타성과 폐쇄성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장애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수원시에 사는 한 고등학생은 “오타쿠와는 공감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고 늘 자기들끼리만 알아듣는 얘기를 해서 친해지지도 못하고 친해지기도 싫다”고 얘기했다. 나아가 오타쿠의 배타성은 오타쿠 사이에서도 존재한다. 이어지는 김상수씨의 말이다.
 
  “미소녀 콘텐츠를 좋아하는 애들은 미소녀만 좋아하고, 전쟁물 좋아하는 애들은 전쟁물만 좋아합니다. 때로는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싸우기도 하죠. 오타쿠는 기본적으로 자기만의 틀에 갇혀 있는 편입니다. 이것이 오타쿠가 가진 기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오타쿠에 대한 안 좋은 시선에는 오타쿠 자신의 문제뿐 아니라 사회의 부정적 인식이 더해졌다. 특히 일본에서 일어났던 ‘미야자키 쓰토무 사건’의 영향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1989년 일본에서 3~4세의 소녀들을 4차례에 걸쳐 유괴, 성추행하고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범인의 방에서 그가 상당수의 만화와 애니메이션 관련 상품을 수집했음을 발견했다. 일본 매스컴은 이 사실을 바탕으로 범인이 오타쿠임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결국 이 사건은 일반 사람들에게 ‘오타쿠≒변태ㆍ사이코패스’라는 공식을 성립시켰다. 나아가 오타쿠에 대한 외설적이고 폭력적인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진천씨는 “‘미야자키 쓰토무 사건’은 임팩트가 너무 컸고, 그로 인해 부류 전체에 부정적인 인식이 심어졌다”고 얘기했다. 변태적이거나 어두운 오타쿠의 이미지는 여기에 기인한 부분이 크고 그것이 그대로 한국까지 흘러들어 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오타쿠 친구를 둔 한 네티즌의 글.
 
  일본보다 더 나쁜 한국의 오타쿠 이미지
 
  한국에서는 인터넷을 배경으로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게임이 급속도로 퍼졌다. 그와 함께 오타쿠의 개념과 ‘오타쿠≒변태’라는 이미지가 그대로 들어왔다. 오덕후(오타쿠를 우리말 발음처럼 바꾼 신조어)라는 말까지 만들어지면서 화제가 됐다. 하지만 일본에서 받아들이는 오타쿠와 한국의 오타쿠는 다른 점이 있다. 오히려 본토인 일본보다 한국적 맥락 속에서 부정적인 인식이 커졌다.
 
  한국은 오타쿠를 긍정적으로 보게 되는 계기가 없었다. 10여 년 전 일본은 버블경제의 붕괴와 함께 장기적인 경기침체에 허덕이고 있었다. 하지만 불경기 속에서도 만화ㆍ게임 관련 일본의 콘텐츠 비즈니스는 오히려 성장을 했다. 일본은 콘텐츠 산업의 원동력을 찾으려 했고 해답으로 오타쿠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오타쿠가 콘텐츠 산업의 성장을 위한 기반수요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오타쿠가 일본경제 회생의 기둥 역할을 한 셈이다. 이와 함께 오타쿠의 이미지에도 새로운 변화가 왔다. 사토씨의 말이다.
 
  “불경기 속에서도 게임이 많이 팔렸습니다. 그러자 일본이 그 이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오타쿠의 활약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이미지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20년 전 처음 오타쿠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친척들에게도 내 직업을 말할 수 없었죠. 그러다 오타쿠가 주목받기 시작하자 어느 날부터인가 주변에서는 나를 ‘선생님’이라고 당당히 부르고 친척들도 제 직업을 인정하더군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러한 극적인 이미지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국에서 만화ㆍ게임에 대한 ‘아동용’ 이미지가 강한 것도 이유다. 김상수씨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은 7~13세 아동용입니다. 그만큼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은 애들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애들이 즐겨야 하는 것을 커서도 즐기는 사람을 이상하게 쳐다보죠. 예를 들어 <뽀로로>는 한국에서 제일 많이 보는 만화입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동용이지 어른들이 보지는 않아요. 한국은 외국에 비해 이런 인식이 뿌리 깊습니다. 일본은 말할 나위 없고 미국만 해도 디즈니 같은 곳에서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만드는 데 말이죠.”
 
  오타쿠가 소비하는 콘텐츠의 대부분이 ‘일본 작품’이라는 거부감도 작용한다. 한 문화평론가의 말이다.
 
  “만화나 게임의 대부분은 일본 작품이기 때문에 일본의 오타쿠와 달리 한국의 오타쿠는 자문화가 아닌 타문화를 소비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타쿠의 특징인 콘텐츠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타문화의 추종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와 불편한 과거가 있는 일본의 문화를 추종하는 것이 그 거부감을 증폭시키는 것이죠.”
 
  한 예로 오타쿠 관련 인터넷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제 친구 좀 말려주세요. 친구가 심각한 오타쿠가 됐어요. 매일 애니메이션 보면서 못 알아들을 일본말만 하고 일본노래만 들어요. 심지어 식민지가 계속 됐어야 편했을 거라고 하고, 김구와 유관순이 가장 싫다는 말까지 해요.”
 
  타문화, 특히 일본 문화를 소비하는 데서 나오는 오타쿠의 부정적 모습과 거부감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예다.
 
▣ 코믹월드
 
  에스이테크노(주)에서 개최하는 아마추어만화종합행사. 아마추어 만화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소개ㆍ판매하고, 만화캐릭터로 분장하는 코스프레 및 만화와 관련된 각종 이벤트를 진행한다. 2010년 12월 24~25일 99번째 행사를 개최했다.
 
  학교에서 왕따 당하기도
 
오타쿠 고석찬씨의 방.
  사실 오타쿠가 ‘문제’가 되는 곳은 중ㆍ고등학교다. 만화ㆍ게임의 주요 소비층이 청소년이고,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특징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김상수씨는 “직장의 성인들은 서로의 취미생활을 가지고 뭐라 하지 않지만, 학생들은 다르다”며 “오타쿠 관련 인터넷 게시판에서 같은 반 학생에게 오타쿠라는 이유로 욕을 들었다거나 왕따를 당한다는 글을 종종 본다”고 말했다.
 
  일선의 고등학교 교사인 A씨는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학교에서 몇몇 아이에게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오타쿠라고 하면 다른 애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때로는 놀림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죠.”
 
  그는 이어 “보통 애들은 오타쿠가 별종같이 굴고 어울리려는 노력도 안 하기 때문에 싫다고 합니다. 오타쿠는 보통 애들이 자신의 취미생활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불만이죠. 둘 다 맞는 얘기예요. 그래서 보통 애들한테는 이해하라고 하고, 오타쿠에게는 깊이 빠지지만 말라는 원론적인 얘기밖에 할 수 없어요”라며 이들을 지도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오타쿠들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자신을 오타쿠라고 밝힌 고등학생 B군은 “단지 취미생활을 할 뿐이고 다른 사람에게 전혀 피해를 주는 일이 없는데도 사람들의 눈이 너무 비판적이다”며 “무조건 이상하게만 쳐다보는 것은 개인의 개성을 짓밟는 것이다”고 하소연했다. 김상수씨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디를 가도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가 있기 마련입니다. 축구동호회에도 전체 이미지를 망치는 사람이 있잖아요. 오타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오타쿠는 미꾸라지의 파장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심각하고 안 좋은 이미지만 각인돼서 이제 만화나 게임을 좋아한다고만 해도 오타쿠라고 하면서 색안경을 끼고 봅니다.”
 
  일방적으로 안 좋게만 보니까 오타쿠들도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를 꺼리고 음지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경험을 얘기했다.
 
  “오타쿠가 서브컬처를 탐닉한다고 해서 보통 사람들과 문화적으로 우열관계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오타쿠를 깔보죠. 전에 누군가 저보고 오타쿠라 영화도 안 보냐며 핀잔을 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 ‘그럼 넌 영화 좋아서 그 영화의 배경이나 의미에 대해서 공부하고 비평서적을 본 적은 있느냐?’고 했죠. 자기는 영화의 의미가 아니라 유행만 보면서, 관심사를 파고들고 공부하는 사람들을 싸잡아 수준 낮은 사람으로 매도하지 말아 달라고요.”
 
 
  “172만명의 오타쿠가 경제를 먹여 살린다”
 
  2010년 11월 28일 오타쿠를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듣고 양재 AT센터에서 개최된 코믹월드에 참가했다. 음지에 있다는 이미지와 달리 서울 시내 복판에서 원색의 화려한 캐릭터 분장을 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현장에 간 기자는 확실히 외계인이었다.
 
  예상 밖의 많은 사람이 행사에 참가했다. 이 사람들을 모두 오타쿠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서브컬처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처럼 서브컬처에 대한 수요와 관심이 늘면서 한편에서는 오타쿠의 긍정적인 면을 거론하는 경향이 드러나고 있다.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은 오타쿠가 문화콘텐츠 산업 발전에 미치는 영향이다. 2005년 노무라종합연구소는 “172만명의 오타쿠가 일본경제를 먹여 살린다”고 발표했다. 노무라종합연구소의 조사로는 일본에서 오타쿠에 의해 생성된 시장규모는 약 4100억 엔(4조원)이다.
 
  2009년 2월 4일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은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요즘 초등학생들이 닌텐도 게임기를 많이 가지고 있던데, 우리도 닌텐도 같은 것을 개발해 볼 수 없느냐”라고 한 적이 있다. 이와 관련해 오타쿠 전문가들은 “닌텐도 같은 경우는 기계를 찍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콘텐츠산업 기반의 문제고, 오타쿠가 그 기반 마련에 도움이 된다”면서 오타쿠를 통한 문화산업발전 가능성을 강조했다.
 
  이진천씨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밥줄이 생기면 한국의 크리에이터들도 양질의 콘텐츠를 만든다”며 “한국에서도 오타쿠를 통해 시장이 형성되고 수요가 늘어나면 전반적인 문화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사토씨는 “오타쿠는 취미의 학자다. 끊임없이 관심사에 대해 공부하기 때문에 때로는 나 같은 게임 개발자보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단순한 소비를 넘어 2차 창작을 하면서 문화발전을 위한 창의성과 독창성을 만든다”며 오타쿠가 특정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해 양적 효과뿐 아니라 콘텐츠 산업의 질적 향상에도 큰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오타쿠 성향’이 창의성으로 발휘된 예는 할리우드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세계적인 영화감독 워쇼스키 형제는 스스로를 일본 애니메이션 오타쿠라고 밝혔고 실제로 그들의 최고 흥행영화라고 할 수 있는 <매트릭스>도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로부터 콘셉트를 따왔다. <킬빌>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역시 오타쿠로 알려졌고 그의 영화에는 이런 요소가 많이 녹아 있다. 우리나라 영화 <올드보이> 역시 일본의 원작 만화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것을 보면 오타쿠와 그들의 서브컬처가 문화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 오타쿠 인구
 
  오타쿠가 몇 명이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어디까지 오타쿠로 규정할지가 모호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퍼진 부정적 인식 때문에 당사자한테 오타쿠냐고 물을 수도 없고, 본인이 오타쿠라고 답하는 사람도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콘텐츠 산업상품의 판매를 조사해 일본에 172만명 정도의 오타쿠가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好不好를 넘어 사회차원의 문제
 
  TV에서 화제가 된 오타쿠 이진규씨의 블로그를 찾았다. 이진규씨는 그가 주로 활동하던 블로그를 방송출연 이후 폐쇄했기 때문에 덧글용으로 쓴다는 그의 또 다른 블로그를 방문했다. 짧은 글 2개가 전부인 그 블로그에도 기자와 같은 과정으로 찾아온 수많은 사람의 덧글이 달려 있었다. 덧글은 이진규씨를 옹호하거나 비난하는 내용이다. 한 사람이 ‘다양성이 존중돼야 한다’며 이진규씨를 옹호하는 글을 올리면 다른 사람은 ‘다양성 존중의 차원을 넘는 수준’이라고 반박한다. 누군가 ‘나도 오타쿠가 싫지만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 또 다른 사람은 ‘그래도 정도가 심한 것은 사회적으로 문제’라고 답한다.
 
  미래상상연구소 홍사종(洪思琮) 대표는 오타쿠에 대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고, 대중적인 하위문화를 통해 문화산업화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기 때문에 돌고 도는 문화의 흐름에서 타문화 소비와 같은 그들의 단면으로 부정적 판단을 하는 것은 과민반응이다”면서도 “하지만 전문화(專門化)를 포장해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세상을 보지 않는 사회적 오타쿠는 전문성에서 전반적 이해로의 문화 패러다임이 넘어가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소통부재와 갈등촉진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변종적 사회부적응자라는 인식과 새로운 문화의 리더라는 가능성의 경계선 위에서 오타쿠에 대한 논쟁은 거세지고 있다. 결국 오타쿠를 어떻게 대할지는 개인의 판단에 전적으로 맡길 수밖에 없다. 물론 현행 법질서를 흔들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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