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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연구] 稅務大 개교 30주년에 되돌아본 警察大와 稅務大

경찰·세무대 출신, 조직의 구원자인가 갈등의 진원지인가

김태완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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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을 구원할’ 엘리트라 치켜세우다가도 한편으론 질투·시기하며 흠집 찾기에 열중이다”

“이제 조직 내 ‘메인 스트림(main stream)’을 형성해 가는 이들이 조직의 분위기를 바꿨다는 평가를 들을 수는 있을지언정 새로운 감동거리를 만들어내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 경찰·세무대 출신이 ‘변화’와 ‘개혁’을 얘기할수록 “세력화하려 한다”는 오해 받아
⊙ 세무대 출신들, “국세행정 최후 보루 역할 하라고 교육받았다”
⊙ 경찰대 출신들, “특혜와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는 우쭐함과 동시에 타인의 생각과 평판에 지나치게
    민감했다”
⊙ 세무대는 IMF로 인한 정부의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빌미로 김대중 정부 때인 2001년 2월 문닫아
⊙ 경찰대는 17대 국회에 이어 18대 국회에서 폐지법안 발의되는 등 끊임없는 폐교 위협
  조직은 사람의 미래다. ‘조직은 기계고 사람은 부속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조직을 만들고 부수는 것쯤은 손바닥 뒤집는 것만큼이나 쉬울지 모른다. 그러나 조직 하나가 태어나면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문화(文化)가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새로운 세(勢)도 형성된다. 조직을 만들 땐 예측하지 못했던 문제가 나타나기도 한다. 사람이 조직의 단순한 부속물(附屬物)이 아닌 이상 여러 상황을 예상해 신중하게 검토한 뒤 조직을 신설해야 한다. 없앨 때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늘이 매우 길다. 조직이 당시의 정치·사회적 상황에 따라 춤췄다가는 자칫 해악(害惡)이 되기 십상이다.
 
  우린 지금 우리 사회의 중요한 기둥이 돼 버린 두 조직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 본다. 경찰대와 세무대다. 두 조직은 박정희 정권 시절 잉태했다. 그러다가 국가가 혼란에 빠진 시절, 1980년대 초 전격적으로 개교(開校)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하나(세무대)는 사라졌고 또 하나(경찰대)는 폐교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제복을 입은 경찰대 학생들. 경찰대는 경찰 엘리트 산실이자 경찰조직의 개혁을 이끌어 온 실질적인 주체라는 평가와 함께 특혜시비에 시달려야 했다.
  한 공동체에서 소수 발탁된 조직 구성원에게는 심리학적 ‘잠수병(潛水病)’이 존재한다. 이는 물속 잠함(潛艦)에서 일하는 잠수부가 그 속에서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다가 뭍으로 나왔을 때 건강이 위험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조직 내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압력이 항시 존재한다. 작은 이탈도 용납하지 못한다. 조직은 이들 소수 정예 집단을 ‘조직을 구원할’ 엘리트로 치켜세우다가도 다른 한편에서는 흠집을 찾고 과오(過誤)로 인한 조직의 폐해를 비난한다.
 
세무대 입학식 장면. 1994년 당시 백원구 재무부 차관이 입학생들을 격려하고 있다. 세무대 출신들은 국세 행정의 개혁을 담당하며 국세청과 관세청을 변화시켰다.
  조직의 생리(生理)는 생각보다 비정하다. 만들 때 동원했던 논리들이 자구(字句)만 바꿔 폐지 논리로 둔갑한다. 국세청은 세무대를 개혁이 필요하다며 만들었고, 이번에는 개혁에 걸림돌이 돼 불필요하다며 없앴다. ‘세무대 실패’의 책임은 ‘정책판단’이라는 모호한 단어로 포장돼 아무에게도 지워지지 않았다. 겉으론 “많은 정보가 공개되고 사회의 투명성이 높아졌다”는 이유를 댄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자신의 기득권과 이익을 지키기 위한 왜곡된 조직 윤리가 없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세무·경찰 ‘귀족’의 탄생을 예고한 대우와 인기
 
1980년 12월 9일자 신문에 실린 경찰대 1기생의 대입 경쟁률. 당시 국내 입시 사상 처음으로 22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세무대와 경찰대는 일란성(一卵性) 쌍둥이다. 1980년대 초반 군사정부에 의해 세워졌다. 세무대는 1980년 4월 세무전문대학으로 문을 열고 이듬해 7월 2년제 국립세무대로 명칭을 바꿨다. 세정(稅政) 개혁과 세무비리 관행의 근절을 위한 ‘젊은 피’ 수혈이 목표였다. 입학생 전원에게 입학금과 수업료를 받지 않았다. 졸업 후에는 국세(國稅)분야 8급 공무원으로 채용했다.
 
  경찰대도 마찬가지였다. 유신(維新) 경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드센 데다 대졸자(大卒者)의 경찰지원이 눈에 띄게 줄고 경찰의 부패 이미지를 떨지 못하자 1981년 경찰대학을 세웠다. 이들은 4년간 국비로 교육받고 졸업 후 전원 경위 계급장을 달았다.
 
  세무대와 경찰대의 탄생은 사회에 만연한 부패의 사슬을 끊기 위한 고육책(苦肉策)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군사정부는 이들 대학 출신에게 파격적 대우를 해 주었다. 그러자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세무대 입학성적은 연세대·고려대 상대(商大)에 육박할 정도였고, 경찰대 역시 수백 대 일의 경쟁률에다 서울대 수준의 합격선을 자랑했다.
 
  세무대 학장을 역임한 현오석(玄旿錫) KDI 원장은 “세무대학은 수업연한이 전문대학과 같은 2년제임에도 전국 상위 1~2% 범위 내의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 세무공무원으로서의 윤리관과 조세법 및 국세행정실무 위주의 교과편성으로 강도 높은 교육을 했다”고 말했다.
 
  경찰대도 마찬가지였다. 이균범(李鈞範) 전 학장은 “전원 학비 면제에다 시험 없이 경위 계급장을 달고 경찰간부가 될 수 있어 인기가 높았고 첫 입학생의 경쟁률이 220대1이었으며 전국 석차 0.5% 이내에 들어야 지원이 가능했다”고 회고했다.
 
  기대치가 높은 만큼 세무대와 경찰대 1기생들이 느끼는 심리적 부담은 컸다. 선배가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역사(歷史)를 만들어 가야 했다. 아무런 역할모델이 없는 상태에서 후배들의 전범(典範)이 돼야 했고 스스로 부딪치며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려야 했다.
 
  경찰대 1기생인 A 총경은 “경찰대 1기에 경찰조직의 미래가 달렸다고 생각했다”며 “우리가 송곳 끝이 돼 새로운 미지의 세상으로 나가고자 했다”고 말했다.
 
  “졸업 초기만 해도 가장 큰 숙제가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와 반(反)부패였어요. 군사정부 시절, 경찰이 정권의 하수인이라는 부정적 이미지 속에서 경찰이 정권의 충복(忠僕)이 아니라 ‘국민의 경찰’이어야 한다고 교육받았어요.”
 
  1988년 1월 당시 경찰대 1기부터 3기까지 졸업생 333명과 4학년 재학생 등 441명이 “진정한 민주화를 위해 경찰의 정치적 중립이 선행돼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각 언론사에 보냈다. 기존 경찰조직으로선 ‘도발’에 가까운 하극상(下剋上)이었다. 이들은 “현재까지 민주화 과정에서 일어났던 경찰조직의 부끄러운 일에 대해 사과한다”고 했다.
 
 
  무서운 게 없던 젊은이들
 
1980년 8월 23일 자로 된 문교부의 세무대학 인가서.
  “당시엔 시대가 요구하는 경찰의 변화 방향을 온몸으로 떠안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졸업해도 24~26세밖에 안됐는데 뭘 아나요. 친구끼리 모여 경찰의 중립화 선언문까지 만들었죠. 파장이 컸어요. 당시 신문을 찾아보시면 사회면 톱기사로 소개될 정도였지요. 그때만 해도 대한민국은 부패공화국이었습니다. 경찰도 마찬가지였고. 경찰대 출신만이라도 청렴한 이미지를 보여주려 노력해야만 했죠. 또 한편으론 조직 내에서 융화하려, 왕따당하지 않아야 했어요. 겉돌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절한 선에서 융화하면서 청렴 강직한 이미지도 심어 줘야 했는데 그게 어려웠어요.”
 
  ―초임 시절 조직 융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
 
  “순경도 우리보다 나이가 많았어요. ‘김 경사님, 박 순경님’ 해야 할지, ‘김 경사, 박 순경’ 해야 할지 참 어려웠습니다. 고압적으로 ‘김 경사’라고 부르는 것이 옳지는 않지만, 계급사회에서 상사역할 못하면서 끌려가는 모습도 바람직하지 않잖아요. 술을 잘 먹으면 ‘어디서 술 배웠느냐’고 하고, 술을 못 먹으면 ‘무슨 고고한 척하고 동료와 애환(哀歡)을 못 나눈다’고 하더군요.”
 
  세무대 1기생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국세청에서 10년 근무하고 퇴직한 세무사 B씨의 말이다.
 
  “세무대는 기존 관료 조직의 세무비리를 척결하겠다는 기치를 내세우며 설립됐어요. 그러니 깨끗한 세정(稅政)환경을 구축한다는 측면에서 재학시절, 교수님들로부터 ‘국세(國稅)행정의 최후 보루 역할을 하라’ ‘부정부패 하지 마라’는 정신교육을 많이 받았습니다.”
 
  ―8급 세무 공무원으로 처음 접한 현장의 모습은 어떠했나요.
 
  “가장 지혜로운 게 겸손한 것이더군요. 튀면 조직에서 못 어울리게 되니까요. 대부분의 9급 공무원 나이와 경력이 저보다 많았어요. 겸손하려 노력했죠. 승진 경쟁에서 탈락한 이들 사이에서 일부 불만이 있을 수는 있었겠지요. 세무대 출신끼리 응집이 잘되고 네트워크가 잘되니까 ‘상부 지시보다 동문의 지시가 강하게 먹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감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러나 세무대라는 편견을 피부로 크게 느끼진 못했어요.”
 
  ―세무대 출신이 국세청에 들어가 뭘 했나요.
 
  “세무대 출신 중엔 주경야독(晝耕夜讀)하는 이가 많았어요. 저도 방통대에 편입해 석사학위까지 받았습니다. 과거에는 납세자 수준보다 세법지식이 뒤떨어진 세무 공무원도 있었지만 세무대 출신이 많이 포진하면서 납세자를 선도하는, 국민을 이끌어가는 행정이 이뤄질 수 있었다고 봐요. 이후 납세자가 세무공무원을 무서워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속된 말로 ‘돈 줘도 안되고, 세무대 출신을 만나면 힘들다’는 얘기였지요. 그러나 국세행정이 ‘레벨 업’됐지만, 세력화된다는 오해, 정부기구 축소라는 측면에서 (모교가 사라져)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1997년 당시 세무대 학생들의 ‘광교 한얼제’페스티벌 장면. 학생들은 재학시절 ‘국세 행정의 최후 보루 역할을 하라’ ‘부정부패 하지 마라’는 정신교육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갈등 진원지 가려지지 않은 채 세무대 문 닫아
 
2001년 2월 17일 열린 세무대의 마지막 졸업식 장면. 김대중 정부는 기업·금융·노사·공공 등 4대 부문 개혁 차원에서 세무대를 없앴다.

  세무와 경찰행정의 ‘개혁’ 명분을 선점(先占)한 두 대학 출신들은 기존 관료조직에서 때론 희생하며, 때론 저항하며 조직의 변화를 이끌었다. 그러나 졸업생 수가 점점 늘어 조직 내 파워가 커지면서 ‘젊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국세청 전직 간부 C씨의 말이다.
 
  “장단점이 있었어요. 게네가 처음 조직에 들어왔을 때 좋은 점이 많았으나 문제점도 점점 눈에 띄더라고요. 동문끼리 뭉치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국세청 내부에서 ‘세력(勢力)’이 되기 시작한 거죠. 세무대 출신들은 스물한두 살에 8급을 답니다. (다른 사람들은) 보통 9급으로 들어와 8급이 되는데 7~8년이 걸립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20대 후반에 9급으로 들어옵니다. 세무대 출신들이 이들과 부딪치면서 조직의 위계(位階)가 흔들리기 시작했지요. 세무대 출신과 비교해 4년간 일반 대학에서 교양과정을 거친 이들이 훨씬 대인(對人)관계가 원만했다는 점도 충돌 요인이더라고요.”
 
  그러나 다른 의견도 나온다. 1982년부터 5년간 국세청장을 역임한 안무혁(安武赫)씨 말이다.
 
  “군(軍)에도 일반장교와 학군장교가 있지만, 사관학교 출신은 어떤 계통(系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남다른 존재지요. 세무대도 사관학교처럼 계통을 세워가면 국세행정 체계를 바로잡을 것으로 생각했고 그들 역시 열심히 일했어요. 주위에서 단합해서 세력을 이룬다는 비판도 있었는데 저는 해(害)보다 장점이 더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조직이든 장점만 있는 게 아니라 장단점이 있는 게 아닌가요? 단점을 수정해 주면 장점이 살아나는데 장점을 보지 않고 단점만 보면 문제가 생겨요.”
 
  안 전 청장은 세무대 출신들을 적극 국세 개혁에 기용했고 이 과정에서 일부 1기생들이 근무 2년여 만에 7급을 달았다. 당시로선 대단한 파격이었다고 한다.
 
  세무대와 비(非)세무대 출신 간 차이가 조직 내 갈등으로 비화할 만큼 심각했는지를 두고도 견해가 갈린다. 세무대 출신 B씨는 “국세청 내 세무대와 비세무대 출신 간 벽이 높지 않았고 큰 갈등도 없었다”며 “(갈등설은)이를 문제화시켜 득(得)을 볼 일부 사람 또는 경쟁에서 밀린 일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설령 있었다 해도) 학교를 없앨 정도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한쪽에서 ‘변화’와 ‘개혁’을 외치면 일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쳐다보는 이가 생겨나게 된다. 사실 조직 내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쪽의 일방적인 주장이 크게 들리기 마련이다. 국세청 조직을 잘 아는 한 전문지 기자 D씨의 말이다.
 
  “과거 세무대 출신이 문제가 된 사건이 있었지요. 일선 세무서장도 모르는 정보를 세무대 출신들이 먼저 알게 되면서 불거졌지요. 세무대 출신이 곳곳에 포진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예컨대 ‘어느 세무서장이 좌천된다더라’, ‘누가 어디로 간다더라’ 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 소문을 들은 해당 서장이 청장에게 따지면서 문제가 커지게 됐어요.”
 
  세무대와 경찰대를 비판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나올수록, 자신을 ‘외부에서 주입된 타자(他者)’처럼 느끼게 되는 것은 심리적 불가항력이다. 미래의 변화상을 좇아가며 현재를 구성하는 ‘과거’를 용인할 수 없게 되면 쉽게 피로를 느끼게 된다. 또 ‘작은 정부’와 ‘시장경제’ 측면에서 보면, 특혜를 받아온 집단은 항시 조직 안팎의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IMF가 터지고 정부의 공공부문 구조조정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세무대는 2001년 2월 문을 닫게 된다. 안정남(安正男) 당시 국세청장이 유독 세무대 폐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2000년 8월부터 2002년까지 옛 기획예산처 차관으로 재직하며 공공부문 개혁을 이끌었던 김병일(金炳日) 전 기획예산처 장관(現 한국국학진흥원장)은 “세무는 전문성이 필요한데 정규 과정을 안 거친 이를 임용시켜 일을 시키려니 시간이 걸려 세무대를 만들었다”며 “그러나 세무대 출신이 늘면서 세무대와 비세무대 출신 간 ‘분파주의’를 걱정할 즈음에 2001년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기업·금융·노사·공공부문의 4대 개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당시 세무대와 함께 경찰대 폐지도 논의됐지만 경찰업무의 특수성 때문에 경찰대는 살아남았다”고 했다.
 
  뒤늦게 세무대 동문이 헌법재판소에다 ‘세무대학설치법 폐지법률안’이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처리됐다고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했지만 2001년 2월 22일 헌재는 이들을 외면했다.
 
 
 
“쿠데타 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 경찰대” vs. “경찰이 이만큼 똑똑해진 것은 경찰대 덕분”

 
경찰대 개교 20주년인 2001년 3월 경찰대 17기 졸업식 모습.
  살아남은 경찰대 역시 이후 끊임없는 폐교 위협과 특혜시비에 시달려야 했다. 그들 스스로 “경찰조직의 개혁을 이끌고 온 실질적인 주체”라는 ‘사명감’은 종종 오만이라는 비판과 싸워야 했다.
 
  사실 경찰대 출신들이 조직 내에서 ‘귀하신’ 엘리트로 떠받들어지진 않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오히려 내부 견제가 적지 않았다. 경찰의 핵심부서로 통하는 정보파트에 근무하지 못한 채 일선 서(署)의 형사반장이나 파출소장 등에 배치된 것이 그것이다. 조금 거칠게 표현해 ‘견제’ 내지 ‘배척’받는 분위기는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지다 바뀌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똑똑한’ 경찰대 출신과 ‘경찰을 지휘하는’ 검찰과의 충돌이 잦아지게 됐으며 수사권 독립의 문제도 부상(浮上)하게 됐다. 현재 논의 중인 경찰대 폐지론의 외곽에는 검찰이 있다는 게 경찰대 출신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경찰대 1기 출신 F씨는 “검찰은 경찰이 똑똑해지는 것을 위협적으로 생각한다”며 “검찰은 경찰대 폐지론이 나오면 건건(件件)이 편승해 논리를 하나 더 보태 볼까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17대 국회에서 민주당 최규식(崔奎植) 의원이 경찰대 폐지법안을 의원입법으로 발의했고, 18대 국회에 들어서도 전남 무안 출신의 민주당 이윤석(李潤錫) 의원이 경찰대 폐지법안을 준비 중이다. 폐지법안의 논거는 비교적 간단하다. 행정조직에서 일단의 특수집단이 국가예산에 의해 완전히 충원되고 특혜를 받게 되면, 사회적 특수계급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헌법 11조 2항 ‘특수계급의 창설금지’의 취지에 비춰 볼 때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자치경찰연구소 문성호(文成晧) 소장의 말이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해도, 순경이든 간부 후보든 시험을 치지 않고선 경찰이 될 수 없어요. 그런데 경찰대만 졸업 후 곧바로 경찰에 임용된다? 경찰대생들은 ‘일반 사립대 경찰행정학과와 비교해 엄청나게 성적이 높지 않으냐’고 말하는데, 비교를 왜 경찰대와 하나요. 서울대 법대, 고려대 법대를 나와도 경찰이 되려면 시험을 쳐야 하잖아요. 경찰대와 같은 사례는 어느 나라에도 없어요. 군사쿠데타가 점철된 칠레 정도가 우리와 비슷한 예인데, 칠레의 경찰대는 국방부 소속이죠. 과거 칠레의 쿠데타도 경찰대 출신이 주도했어요. 우리가 파쇼 국가도 아니고, 남미(南美) 같은 나라도 아닌데, 뒤늦게 파쇼국가가 될 필요가 없지요. 지금 경찰대는 세력이 너무 커졌어요. ‘우리나라에서 쿠데타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 경찰대’라고 말할 정도죠. 정보도 경찰대가 독점하고 있어요.”
 
  그러나 경찰대 1기 출신 H 총경은 “경찰대 폐지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경찰이 이만큼 변한 데는 경찰대 출신이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며 “과도한 특혜를 준다고 주장하지만 그런 메리트(merit)가 있기 때문에 인재가 들어온다. 경찰대 폐지 주장은 경찰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약체조직이기를 바라는 심사가 아니냐”고 따졌다. 그의 말이다.
 
  “17대 국회 당시 경찰대 폐지법안이 국회 상임위에 넘어갔을 때 대부분의 의원은 ‘이게 무슨 엉뚱한 법이냐’는 반응이었습니다. 경찰이 이만큼 변한 데는 경찰대 출신이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과거 경찰에 대한 이미지는 ‘정말 무식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경찰이 똑똑해졌다’, ‘펀더멘털(fundamental)이 탄탄해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누구 때문입니까. 바로 경찰대 때문이죠. 경찰대 폐지주장은 전형적 교각살우(矯角殺牛)의 발상입니다. 조직 내 다수를 차지하는 비경찰대 출신의 정서적 반감에 편승한 무책임한 포퓰리즘입니다. 무한경쟁 시대, 모든 조직이 인재 확보에 사활을 거는 상황에서 우수한 인재유입 경로인 경찰대를 폐지할 경우 조직의 경쟁력 약화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합니다.”
 
  1기부터 19기까지 5099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세무대는 현재 국세청 산하에 2976명이 재직 중이고 관세청 산하에 874명이 현직에 있다. 비록 모교(母校)가 없어져 구심점(求心點)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국세와 관세조직의 허리층을 형성하고 있다.
 
  경찰대는 2009년 3월 25일 졸업한 25기까지 2879명을 배출했다. 순경에서 치안총감까지 11개 경찰계급 중 그 직책이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중에서도 경찰의 핵이랄 수 있는 계급이 총경이다. 2009년 3월 현재 경찰대 출신 총경은 167명이다. 1기생의 49.1%(55명), 2기생의 42.3%(47명)가 총경이다. 또 치안감 3명, 경무관 11명에 이른다. 지난 1월엔 경찰청의 2인자인 치안정감을 배출했었다.
 
▣ 폐교된 뒤의 세무대 출신들
 
  세무대가 폐교될 위기에 처하자 세무대 동문과 교수들은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학교를 살리려 노력했다. 전직 국세청장을 찾아가 호소했고 국회를 찾아 부당함을 설득했다. 안무혁 전 국세청장이 당시 국회 부의장이던 오세응 의원을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무대는 2001년 2월 결국 문을 닫게 된다. 폐교 이후 실향민과 같은 처지가 된 세무대 출신들은 ‘10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했으나 허사였다. 세무대 1기생이 고작 30대 후반으로 국세청 중하위직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고 한다.
 
  1기부터 19기까지 전체 졸업생 5099명 가운데 현재 국세청 산하(국무총리실, 옛 재경부 포함)에 2979명이 근무하고 있다. 2만명의 국세청 공무원 중 14.9%를 점하고 있다. 또 관세청 산하(예금보험공사, 국민권익위원회 포함)에 874명이 현직에 있다.
 
  현직에 있는 세무대 출신들은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단합과 결집’의 시선으로 비치지 않을까 경계하면서도 여전히 “세무대 출신이 없으면 국세청 일이 안 돌아간다”고 서로를 위로해 가며 살고 있다고 한다. 세무대 1기 출신 한 세무사는 “세무대 출신들이 현재 핵심적인 위치의 실무책임자(계장)로서 노련한 경험을 토대로 새로 입사한 후배 공채 공무원을 지도하는 형편이라고 듣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졸업생 중 1200여 명이 조직을 떠났다. 동문 중 세무사로 활약하고 있는 이가 663명이다.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한국세무사회 회원 중 단일 출신대학으론 가장 많다. 또 공인회계사와 AICPA(미국공인회계사) 28명, 변호사·검사 8명, 감정평가사 8명, 관세사 4명, 노무사 1명 등에 이른다. 이 밖에 200여 명은 대기업 임원으로 취업하거나 법무법인, 은행 PB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현직에 있는 이들 가운데 부이사관 1명, 서기관 16명, 사무관 268명이 간부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세무대 동문회 측은 “현직에서는 해마다 ‘올해의 국세인상’이나 ‘관세인상’에 항상 동문이 포함돼 있다”며 “대통령 표창 및 국무총리상, 모범공무원 표창도 매년 30여 명 수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무·경찰대 출신에 씌워진 멍에

 
  개인의 인성과 품성이 어떠하든 경찰·세무대 출신들의 어깨에는 항시 ‘개혁’이나 ‘변화’ 같은 가치들이 놓여 있다. 기존 조직 내 관료들의 나쁜 전철을 밟아서도, 되풀이해서도 안된다는 사명(使命)이다. 사회 경험을 하기 전, 물이 들기 전에 학교에서 귀가 따갑게 들었던 것들이 청렴, 봉사, 공평무사(公平無私) 같은 단어였다. 그러니 기존 관료조직은 ‘낡은 것’, ‘오래된 것’, ‘바꿔야 할 것’으로 간주해야 했다. ‘보수’와 ‘진보’의 이데올로기를 대입(代入)시킬 때 세무대·경찰대 출신들은 조직 내에서 ‘진보’의 역할을, 기존 관료들은 ‘보수’의 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론 일을 해본 경험과 노하우(knowhow)도 무시할 수 없었다.
 
  경찰·세무대 출신들은 이렇게 낡은 관행을 바꾸면서 기존 노하우를 습득해야 하는 딜레마(dilemma)에 빠졌다. 세무대의 마지막 학장이었던 현오석 KDI 원장은 “세무대 졸업자는 대부분 약관(弱冠)의 나이에 세정현장에 투입됐기 때문에 참신하다는 인상을 주고 또한 통합전산망 체제에 대한 사전교육을 통해 ‘보수적인 국세행정’에 참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고 회고했다.
 
  경찰대 1기생부터 4기생까지를 모두 교육했던 이균범 전 경찰대학장은 “경찰대의 가장 큰 자부심은 대학 입학 때부터 경찰관이 되겠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4년간 교육을 받아 단순한 채용시험에 의해 선발된 사람들과 본질적으로 사고방식의 차이가 있었다”며 “이들에게 주어진 사명감은 허약한 경찰 이미지를 극복하고 국민의 경찰로 거듭나는 데 있었다”고 강조했다.
 
  세무대 내국세학과 교수로 정년 퇴임한 윤세익(尹世益) 교수는 “국민은 세무 공무원이 아무리 체납(滯納) 정리를 잘했다고 해도 손뼉을 치지 않는다. 모질게 위장(僞裝)자료를 찾아내도 격려는커녕 도리어 욕을 얻어먹는 게 현실”이라며 “사회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정의롭고 묵묵히 공직자의 길을 가라고 가르쳤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이 경험한 관료조직은 단순한 ‘옛것’이 아니었고 기존 관료들 역시 ‘옛것 지키기’에 능숙한 부패한 능구렁이들만은 아니었다. 경찰대·세무대 출신들이 학교에서의 경험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현실적인 노하우를 기존 관료들은 이미 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세무대 1기의 이야기다. 그는 “현장에서 만난 세무 공무원들이 밖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비양심적이거나 부패적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공무원 시험을 통해 선발된 분들이니 기본적 소양과 양심이 있었다는 얘기”라며 “이미 문제 직원들은 5공화국 정부에 의해 축출된 탓도 있었고 국세청에서 지속적으로 윤리교육을 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 경찰대 폐지와 관련한 대안들
 
  경찰대 출신 간의 승진경쟁은 이미 정평이 난 검찰 못지않게 치열하다. 승진경쟁 때문에 기수별 결속력이 무너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물론 경찰조직을 개혁해야 한다는 정서적 공감대는 탄탄하다는 게 정설이다. 한 경찰대 1기생의 이야기다.
 
  “국비(國費)로 교육받은 우수 인재들인데, 40대 때 계급 정년으로 나가면 아깝지요. 국가 예산의 효율적 측면에서 보면 정부도 본전 생각이 날 것입니다. 4년 투자한 것도 투자한 것이지만 다른 분야에서 국가 공무원으로 활용할 수 있게 길을 열어 주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경찰대 출신의 고위직 장악과 경찰대 출신 간의 치열한 승진경쟁을 빌미로 경찰대를 폐지하자는 주장과 경찰대 존속을 전제로 대학체제를 바꾸자는 주장이 지난 17대 국회부터 여러 차례 논의됐다. 그렇다고 심각하게 논의되는 수준은 아닌 듯하다.
 
  일단 존속을 전제로 한 대안으로는 경찰대학의 정원을 축소(120명→80명)하거나 졸업 후 임용계급 하향조정(경위→경사), 자동임용이 아닌 졸업시험을 거치게 하는 방안, 순경 공채 출신자의 경찰대 문호개방, 경찰대학원을 설치해 일선 경찰관도 대학원을 졸업 후 경위계급을 부여할 수 있게끔 하자는 안(案)이 있다.
 
  또 경찰대학 폐지를 전제로 경찰대 기존 시설과 인력을 경찰간부의 재교육기관으로 활용하자는 안, 경찰대학원으로 전환해 수료자에 대하여 경위계급을 부여하는 방안 등이 제시되고 있다.
 
  특혜와 관심 속에 값비싼 대가도 치러
 
  세무·경찰대 출신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스스로를 조직 내 가치 있는 구성원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선망’과 ‘시기’가 병존하는 조직에서 결코 기가 죽는 일이 없이 ‘제 할 일’을 하는 것일까.
 
  기자가 만난 한 경찰대 1기생은 “특혜와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는 우쭐함과 동시에 타인의 생각이나 평판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한 나를 깨닫게 됐다”고 했다. 그를 포함한 이 엘리트들은 “조직에 헌신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집단교육을 받은 이들이다. 다시 말해 부패한 세무·경찰 조직을 추슬러야 한다는 사명을 벗어나면 존재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기존 관료의 반대에 부딪히며 상처를 입지만 남의 반대를 피해 갈 수 없다는 사실도 경험하게 된다. 어떤 의견을 갖고 있든지 간에 그것에는 전혀 반대되는 견해가 따르는 법이다. 이 같은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서는 많은 세월이 흘러야 했다.
 
  한 세무대 1기생은 “겸손하기 위해, 노련한 아랫사람과 맞추기 위해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20대 초·중반에 첫 발령을 받은, 사회 경험이 적고 관료조직이 뭔지 몰랐던 이들로선 값비싼 대가를 치렀을지도 모른다.
 
  다른 경찰대 1기생은 “조직 내 선두그룹에 대한 따가운 시선은 어느 사회나 있을 수 있다. 가진 자가 겸손해야 하고 지위가 높아질수록 더 겸손해야 한다”며 “위에서 눌리고 밑에서 받히고, 동기생끼리의 견제도 있을 수 있지만, 이 모든 것이 한 인간(人間)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몇 가지 가정을 해 보자. 세무·경찰대 출신들이 조직 내 현재의 자리를 잡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첫째, 관료조직을 보호하기보다 조직을 변화시켜 조직 내에서 인정을 받는 데 자신의 존재 이유를 맞췄나?
 
  둘째, 선민(選民)의식에 사로잡혀 반대를 위한 반대를 선택했나? 이 과정에서 부적절한 선택을 하지 않았나?
 
  셋째, 누군가가 자신의 입장을 찬성하지 않을 경우 쉽게 타협하지 않았나? 타인이 찬성하지 않으면 자신의 입장을 바꾸거나 자신이 믿는 의견을 고쳤나?
 
  넷째, 타인이 자신과는 반대되는 의견을 말하면 자신이 모욕이나 업신여김을 당했다고 느꼈나?
 
  다섯째, 전혀 알지도 못하는데 ‘아는 척함’으로써 타인에게 강력한 인상을 주려 했나?
 
  경찰·세무대 출신 개개인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을 택하든, 조직은 자신의 의지만으론 살아가기 어렵다는 점이다. 어떤 조직이든 마찬가지다. 꾸밈이 없고 솔직하며 정직하게 살아가길 원하는 자아상(自我像)은 상처받게 된다.
 
세무대의 마지막 졸업식 뒤인 2001년 2월 27일 열린 폐교식 모습. 세무대가 폐교될 위기에 처하자 세무대 동문과 교수들은 대학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으나 결과를 되돌리지는 못했다.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두 대학 출신을 여럿 만났지만 모두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조직 내 자신들에게 쏟아질 시선이 두렵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경찰대 출신의 경우 조만간 경찰청장을 배출할 정도로 고위직까지 올라갔지만, 끊임없는 특혜시비 속에서 어떤 역풍을 맞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세무대 출신도 국세청의 허리층을 형성하며 후일 국세청장을 배출할 만큼 조직 내 위상이 확고하다. 그러나 10년 뒤 세무대 출신의 운명을 장담할 수 없다. 세무대 출신끼리 경쟁이 치열한 데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 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경찰대 출신은 “조직 내 일부 구성원들의 반대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에 부딪히면서 반대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능력을 배웠다”고 했다. 세월(歲月)이 그를 강인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다. 조직을 위해 헌신하면서도 잘못된 조직논리에 단호하게 부딪치지 못해 좌절했다. 일부 선배 기수 중 조직에서 이탈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세무대 1기 출신의 말이다.
 
  “하급 공무원으로 한계를 느꼈습니다. 고시(高試) 출신과 달리, 저희는 8급으로 들어와 세무조사 같은 실무적인 일을 많이 했는데, 결재권이 없다 보니,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윗선에서 다 결정해 버렸습니다. 결국은 행정이 세법(稅法)대로 이뤄져야 하는데 과거엔 우리 사회가 그렇지 못한 측면이 있었지요. 또 공직사회가 상명하복(上命下服)으로 구성되고, 상사가 인사권을 쥐고 있으니 그 뜻에 반하면서 ‘법대로’ 하기가 굉장히 어렵거든요. 하급 공무원의 한계죠. 뜻대로 소신을 펼 수 없어 낙망(落望)했고, 그런 것을 잘하는 분들이 고급관료로 성공을 하더라고요. 지금의 국세청은 그렇지 않겠지만, 당시엔 그런 것을 보면서 많은 한계를 느꼈어요.”
 

 
  경찰·세무대 출신들의 功過
 
  이들은 ‘봉사하는 리더’나 ‘우선 승차자’인 ‘퍼스트 라이더(first rider)’가 아니라 ‘무임 승차자’인 ‘프리 라이더(free rider)’로 살아왔다는 조직 내 비난을 받아 왔다.
 
  하지만 이들이 공짜로 대학을 다녔고 졸업 후 별도의 시험 없이 공무원으로 임용됐다는 것을 빼고는(사실 이것을 특권이라고 공격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정책의 문제다) ‘특권을 즐겼다’는 증거도 딱히 찾아볼 수 없다. 기자가 만난 수많은 경찰대 출신, 세무대 출신은 흡사 사관학교 출신이었다. 조국, 공익, 헌신, 희생, 봉사를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이제 조직 내 ‘메인 스트림(main stream)’을 형성해 가는 이들이 조직의 분위기를 바꿨다는 평가를 들을 수는 있을지언정 새로운 감동거리를 만들어내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경찰대 1기 출신 한 총경의 토로다.
 
  “후배들에게 승진을 빨리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고 싶어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치안감, 치안정감으로 승진하는 것은 오히려 경찰조직을 약화시킬 수 있어요. 1기생들은 50대 중반쯤 치안감을 하는 것이 맞다고 봐요. 경찰조직 내 경력·나이로 볼 때, 그때가 적당해요. 경찰청장은 50대 후반이나 60대 정년이 됐을 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조직이 안정되고 조기에 옷 벗고 나가지 않게 되죠. 일부 선두주자들이 과도하게 승진 경쟁을 하면서 경찰조직이 지나치게 연소화(年少化)됐어요. 연소화되면 외부에서 경찰조직을 우습게 봅니다. 1기들은 어쩔 수 없겠지만, 후배들은 1기 모습을 보면서 승진템포를 조절할 것을 권합니다.”
 
  ―승진 조절을 마음대로 할 수 있나요?
 
  “경위는 2년 지나면 승진할 수 있고, 경감은 3년 지나면 승진할 수 있어요. 시험 봐서 승진할 수 있고, 심사해서 승진할 수 있는데, 승진심사는 보통 8~9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험을 보려면 바로 응시할 수 있지요. 이번에 치안정감이 된 친구가 바로 그런 경우죠. 2년 지나면 시험치고, 3년 지나면 바로 시험을 쳤어요. 저는 후배들에게 경위 5년 달고, 경감 7년 하고 시험을 치라고 권하고 싶어요. 경찰대 출신들이 경찰조직의 상위직 또는 경찰청장 배출하는 데 만족하거나 의미를 둬선 안됩니다. 경찰조직의 변화, 명예와 자존심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엘리트들이 메인 스트림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는 ‘헌신’밖에 답이 없다. 어떤 사회건 ‘질투’란 있기 마련이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참을 수 없는’ 법이다. 이 질투의 감정은 인간의 능력이 동일하지 않는 한, 또한 노력에 대한 결과나 보상이 같지 않은 한, 언제든지 생길 수밖에 없다. 만약 세무·경찰대 출신들과 엇비슷한 노력을 했는데도 한 사람은 승자가 되고 또 한 사람은 패자가 됐다면 조직 내 갈등과 질투는 필연적이다.
 
  서울대 윤리교육과 박효종(朴孝鍾) 교수의 말이다.
 
  “질투를 잠재우기 위한 방법은 한 가지뿐입니다. 질투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나 계층이, 힘닿는 한 ‘베푸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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