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취재] 그들만의 리그 - 프로야구 2軍 24시 : 월간조선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9회말 2아웃까지 아무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야구에서는 인생처럼 드라마틱한 변수가 작용한다. 역전 홈런포 한 방으로 운명이 뒤바뀌고, 결정적인 순간에 삼진 아웃을 당해 두 번 다시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공간에서 똑같은 시간을 투자해 일을 하지만 연봉은 천양지차다. 삼성 본관 건물에 근무하지만 李健熙(이건희) 회장과 수위의 월급이 다르듯이.

인생도, 야구도 냉정하다. 능력 없는 자에게 기회는 없다. 아무리 기다려도 능력 없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는다.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없는 부분이 더 많다. 무작정 그 사람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며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남다른 그 무엇이 있어야 살아남고,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프로였던 사람은 없다. 남몰래 땀 흘리고 눈물 닦으며 준비한 사람만이 프로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1軍버스는 25인승, 2軍버스는 45인승

부산 사직구장에 선 필자.

지난 7월27일 오전 8시 잠실구장 앞.

45인승 버스에 선수들이 하나둘씩 올라 탄다. 프로선수를 꿈꾸는 2군 선수들이다. 두산 2군 박종훈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허겁지겁 달려와 버스에 오른다. 덩치 큰 선수들은 의자에 앉자마자 파란색 목 받침 쿠션을 목에 두른다.

두산의 1군 김경문 감독이 『좁은 버스 타고 다니느라 힘들 텐데 이동 중에라도 편히 자라』며 선물해 준 것이다. 1군 버스가 25인승으로 비행기 비즈니스 클래스라면, 2군 버스는 앞좌석에 무릎이 닿는 이코노믹 클래스처럼 불편했다.

야구의 이코노미석에서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해서 옮겨 가고 싶다면, 실력을 쌓아야 한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선수들은 금세 곯아떨어졌다. 버스가 한 시간 만에 도착한 곳은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경사리에 있는 두산 2군 연습장 「베어스 필드」. 지난해 신축한 야구장과 숙소는 시설이 모두 깨끗했다. 버스가 도착했을 때쯤, 2군 숙소에서 생활하는 선수 15명이 아침식사를 마치고 산보를 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선수들은 유니폼으로 갈아입기 위해 라커룸으로 이동했다.

홍성흔의 세 번째 2軍 생활

두산 1군의 포수로 활약하다 부상으로 2군行을 선택한 홍성흔 선수.

2군 숙소를 둘러봤다. 그곳은 15명만 생활할 수 있다고 했다. 2군이라고 다 똑같은 2군이 아니었다. 숙소에서 생활하는 선수들은 2군에서 특별관리하기 때문에 고졸 신인이나 코칭스태프가 허락한 선수만이 숙소생활을 할 수 있다. 2군에서 실력을 인정받아야 숙소생활을 할 수 있다.

숙소는 2인1실로 사용하는 9평짜리 방 12개와 15평짜리 온돌방 하나가 전부였다. 신축 건물이라 시설이 깨끗하고 좋았지만, 한 가지 없는 게 있었다. 바로 여자 화장실. 군대처럼 남자들만 생활하다 보니 남자 화장실만 있는 「금녀의 공간」이었다.

숙소를 둘러보는데 낯익은 이름이 보인다.

홍성흔(30). 두산 1군의 주장이자 포수였던 홍성흔이 목과 허벅지에 담이 들려 지난 7월3일 2군으로 내려와 3주째 2군 후배들과 함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미 훈련장으로 나갔는지 방은 텅 비어 있었다. 다른 방 안에 있던 지각생 몇 명이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연습장으로 열심히 뛰어갔다.

오전 9시30분. 아침 운동 시간이다. 두산 2군에는 감독 외 투수코치 1명, 타격코치 1명,수비코치 1명이 있다. 2군에서 훈련하는 선수는 최소 30명이 넘는데, 코칭스태프 수가 1군에 비해 적었다. 선수들은 찜통더위 속에서 오전 훈련을 시작했다. 삼삼오오 흩어져 장비를 나르고 연습 준비에 들어갔다. 투수들은 불펜에서 피칭연습을 했다. 홍성흔이 후배들의 공을 받아 줬다.

『공을 던질 때 중심이 흔들리면 안 돼. 손 모양을 이렇게 바꾸면 공이 더 정확하게 나가겠지』

『2軍 출신은 피부색부터 달라요』

홍성흔은 개인 훈련하기도 바쁜 시간에 후배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었다. 홍성흔 옆에는 2군 포수 양의지(20)가 있었다.

투수코치가 혼자서 선수들 훈련을 지도하는 게 벅차다 보니 홍성흔은 틈틈이 후배들의 동작을 봐주었다. 한참을 연습하던 2군 선수들이 지친 듯했다. 한 명이 페트병에 물을 떠오자 다들 숨도 안 쉬고 벌컥벌컥 마셨다.

홍성흔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프로데뷔 8년차인데 이번이 세 번째 2군 생활이에요. 2군에 내려올 때마다 후배들을 보면서 자극을 많이 받습니다. 1군에서는 장비나 시설이 다 갖춰졌는데, 2군들은 실밥 다 터진 공 갖고 훈련하고, 부러진 장비를 고쳐서 쓰더라고요. 1군 같으면 배트에 금이 가면 버리는 게 많거든요.

무더운 여름에도 전기세 아끼려고 땡볕에서 훈련하고 경기하잖아요. 2군에 있다가 1군에 올라온 아이들은 피부색부터 달라요. 흑인처럼 까맣게 타서 1군에 올라가면 다들 「진짜 열심히 했구나」하고 인정해 주거든요. 여기서는 검은 피부가 훈장이에요. 선수들 얼굴 좀 보세요. 선크림 바르고 아무리 자외선을 차단한다고 해도 말괄량이 삐삐처럼 다들 주근깨를 달고 다니잖아요』

―후배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주시나요.

『이곳에서 죽기 살기로 훈련하지 않으면 평생 2군 선수밖에 될 수 없다는 점이죠. 가끔 목표의식 없이 훈련하는 후배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2군에서 고생하고 1군에 올라와 자리 잡은 김현수나 고영민은 「1군 아니면 안 된다」는 목표의식이 있었거든요. 1군 선배 누구를 목표로 잡고, 그 선배와 경쟁해서 이겨 보겠다는 각오로 준비하지 않으면 기회는 없어요.

가끔 1군과 2군 생활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선수들 중에서 「난 원래 1군 선수야. 2군에 잠깐 머물다 가면 돼」라는 생각을 하는 선수들이 있어요. 그건 아니거든요. 초심을 잃지 않고, 부상으로 2군에 왔든 다른 이유로 왔든 다시 처음부터 새롭게 실력을 다져서 1군에 올라가겠다는 생각으로 연습해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1군 주장이지만 2군에 와 있잖아요. 1군 포수는 채상병이지 홍성흔이 아니에요. 저도 여기서 실력을 쌓고 1군에 올라가 채상병과 다시 경쟁해야 합니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 훈련할 때마다 정신을 가다듬어요』

수비훈련을 하는 두산 2군 선수들.

홍성흔이 2軍行을 자청한 까닭

홍성흔은 2군行을 자청해서 내려왔다. 목에 痰(담)이 들려 송구가 잘 되지 않았고, 타석에서 방망이가 잘 터지지 않았다. 1군의 김경문 감독은 홍성흔이 파이팅이 강하고 팀 주장으로 후배들에게 큰 힘이 되니까 『힘들면 벤치만이라도 지켜 달라』고 했다.

홍성흔은 정중히 거절했다. 『부상으로 1군 경기를 뛸 수 없는데 2군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2군 선수들이 올라올 수 있는 기회를 뺏는 것』이라며 2군行을 자청한 것이다. 규정상 기혼 선수는 2군 숙소생활을 할 수 없는데 홍성흔은 『야구에 전념하고 싶다』며 숙소에 들어왔다. 코칭스태프는 홍성흔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이 수비와 타격 훈련을 하고 있었다. 태양은 점점 붉게 타오르는데,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땀 흘리는 선수들의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오전 11시30분쯤 선수들은 훈련을 마치고 장비 정리를 했다. 연습이 힘들어서 배가 고팠는지 다들 부리나케 식당으로 향했다.

점심 메뉴는 돌솥 김치알밥. 테이블에는 콘샐러드, 오징어채, 무생채, 부추겉절이, 김치가 놓여 있었다. 선수들은 4명씩 한 테이블에 앉아서 뜨거운 돌솥밥을 「후후」 불어 가며 맛있게 먹었다. 그릇은 설거지한 듯 깨끗했다. 밥 한 톨 남기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자기가 먹는 상은 알아서 치웠다.

2軍 선수 식대는 1軍의 절반

더그아웃 풍경.

2군 선수들의 점심식사 가격은 6000원. 1군 선수들은 한 끼에 보통 1만2000원이 넘는 뷔페식으로 식사를 한다. 1군과 2군은 밥값부터 다를 수밖에 없었다. 2군의 한 코칭스테프는 『이 힘든 과정을 이겨 내면 진정한 프로가 될 수 있다』며 『2군의 생명은 헝그리 정신』이라고 말했다.

선수들은 15분 내에 식사를 마친 후 다들 2층 숙소로 올라갔다. 오후 1시부터 SK와 경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그 전까지 잠깐 눈을 부치거나 쉬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간에 잠을 자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들 전화통화나 인터넷, 또는 개인 훈련을 했다.

정확히 오후 1시가 됐다. 2군 경기 시간이다. 월요일을 제외한 週 6일 경기가 치러지는 1군에서는 야간경기 한 번 치를 때마다 100만원 정도의 전기료를 낸다. 2군에서는 전기료를 아끼려고 30℃가 넘는 무더위를 무릎쓰고 낮 1시에 경기를 시작한다.

아버지는 2軍 감독, 아들은 2軍 선수

SK선수들과 게임이 시작됐다. 더그아웃 왼쪽에는 2군 박종훈 감독이 앉아있다. 20~30명의 선수들은 다들 더그아웃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경기를 지켜봤다.

1회 초 SK 공격이 시작됐다. 선수들은 선발투수 이원재를 향해 파이팅을 외친다. 신기한 것은 더그아웃에서 말하는 웬만한 소리는 마운드까지 다 들린다는 사실이다. 감독이 암호로 『췻췻, 취취췻』 소리를 내자 투수가 더그아웃을 바라봤다.

박종훈 감독은 마운드를 향해 암호로 사인을 하며 직접 소리쳤다. 감독이 작전을 내는데 선수들은 덩달아 신이 났다. 더그아웃은 관중석이 된 듯 시끌벅적해졌다. 심판이 스트라이크를 외치면 선수들은 이원재를 향해 『멋져. 최고야. 나이스』를 외쳤다. 볼이 나오면 야유를 했다.

SK 여섯 번째 타자 박윤이 타석에 들어섰다. 갑자기 두산 더그아웃은 조용해졌고, 박종훈 감독이 검은 선글라스를 벗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박윤은 박종훈 감독의 아들이다. 동시대에 아버지는 두산 2군 감독, 아들은 SK 2군 선수로 뛰고 있었다. 박감독은 박윤이 삼진을 당하자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팀 투수가 삼진 잡은 것은 기뻐해야 할 일인데, 상대가 다름아닌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박감독은 이런 얘기를 했다.

『윤이를 통해 많이 배워요. 2군 선수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가장 힘들어하는 점은 무엇인지. 올 시즌 처음 2군을 맡고 「내 만족이 아닌 책임질 수 있는 지도자가 되자」고 마음먹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더라고요. 내 욕심이 큰 것인지 선수들 기량이 부족한 것인지, 두 가지가 잘 조율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아버지의 마음으로 선수를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박종훈 두산 2군 감독(왼쪽)과 그의 아들 박윤 선수(SK소속).

박종훈 감독이 아들에게서 배운 교훈

두산 2군 숙소.

―아버지의 마음으로 선수들을 보면서 어떤 게 달라졌습니까.

『연습만 많이 시키고 체벌하면서 선수들을 혹사시키는 감독이 간혹 있어요. 그건 감독의 자기만족이거든요. 2군 선수들에게는 조언해 주고,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는 것이 채찍보다 더 중요하더라고요. 고등학교 때까지 자기가 최고인 줄 알고 프로지명 받아서 입단했는데, 2군에 와보니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란 것을 알고 자신감을 잃는 선수들이 많습니다.

아들에게 상담해 주면서, 우리 선수들의 심리를 더 잘 읽게 됐어요. 전에는 베테랑 선수들과 팀 성적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게 전부였는데, 지금은 아닙니다. 선수들이 어떤 문제점에 봉착해 있는지, 어떤 고민을 하는지까지 이해하게 됐습니다』

박감독은 2군 경기에서 중요한 것은 「승패」가 아니라고 했다. 1군처럼 승부싸움에 목 매는 게 아니라 각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 올려 주는 게 2군의 존재 이유라고 설명했다. 『진정한 야구선수는 「체력」·「기술」·「정신력」 이 삼박자가 잘 맞아야 하는데 2군 선수는 세 가지 중 꼭 하나씩 결핍되어 있다』고 했다.

『그나마 셋 중에 하나라도 다른 것보다 뛰어나면 늦게나마 다른 것을 극복해서 1군으로 올라갈 수 있는데, 그게 쉽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만년 2군에만 머무르는 선수들이 생기고, 1~2년 해보다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선수가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2군은 선수를 기다려 준다』

라커룸.

『두산은 他 구단에 비해 2군 체계가 잘 잡혀 있어요. 최근 1~2년 사이 두산 2군 선수 4명 정도가 1군에 올라가서 자리 잡았잖아요.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지만, 2군은 선수를 기다려 줍니다. 그렇다고 천년만년 기다리는 것은 아니고 고졸 신인의 경우 3년, 대졸 신인은 1년을 기다려 주죠. 여기에서 훈련하고 노력했는데 발전이 없으면 그때는 짐 싸서 집에 가는 길밖에 없는 거예요』

박감독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금세 5이닝이 끝났다. 더그아웃은 찜질방처럼 후끈거렸다. 선수들은 모두 그라운드로 나갔다. 한 명은 그라운드에 물을 뿌리고, 다른 한 명은 땅을 고르고, 또 다른 선수들은 몸을 풀었다. 1군에 있었다면 모두 경기진행요원들이 했을 법한 일들을 2군 선수들은 모두 직접 했다. 몇몇 선수들은 페트병을 반 잘라 얼음물을 가득 담아 와서 돌렸다.

『난 절대 사우나는 안 가』

두산 2군 숙소 식당에서 식사하는 선수들.

얼마나 더운지 선수들의 얼굴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한 명이 물 한 모금을 들이키며 말한다.

『난 목욕탕에 가도 절대 사우나는 안 들어가. 세상에서 제일 가기 싫은 데는 찜질방이야』

갑자기 옆에 있던 선수들이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래, 나도 안 간다』 했다.

더그아웃을 나와서 기록하는 곳으로 갔다. 양쪽에 SK 선수와 두산 선수가 2명씩 앉아 있었다. 그날 경기를 하지 않는 선수들이었다. SK 선수 한 명은 기록을 했고, 다른 한 명은 투수의 球速(구속)을 기록했다. 두산 선수 한 명은 볼 카운트와 점수 상황을 컴퓨터로 입력해 전광판에 표시를 했다. 또 다른 한 명은 역시 투수의 구속과 방향을 체크했다.

2군 투수 김강률이 구속 표시를 잘못 했는지 수정액으로 지우며 빨리 마르라고 후후 불어 댔다. 큰 글씨로 또박또박 이름을 적고, 숫자가 정확한지 다시 한번 체크를 했다. 2군 경기는 그 어느 것 하나 선수들의 손이 안 가는 게 없었다.

맞은편 SK 더그아웃으로 갔다. 계형철 감독이 앉아 있었다. 『원정 온 팀이기 때문에 경기 끝나면 곧바로 버스 타고 인천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1군 같으면 원정 3경기를 할 때 인근 호텔에서 2박3일 묵는데 2군은 웬만한 거리면 출퇴근 개념이라고 했다. 계형철 감독은 『매일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많고,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힘들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다 배우면서 성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군에 타율이 3할5푼이 넘는 친구들이 적잖은데, 1군으로 올라갈 자리가 없어서 못 간다』며 『실력이 돼도 빈 자리가 없어 못 가는 선수들을 보면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날 두산은 수비 실책을 많이 내서 SK에 4대 7로 졌다.

땀냄새가 진동하는 선수들

두산 2군 숙소의 세탁실.

오후 3시쯤 경기가 끝났다. 양팀 선수들은 서로 인사를 한 뒤 각 팀 더그아웃 총집합이 됐다. 두산 박종훈 감독은 몇 명을 지목하면서 앞으로 나오라고 소리쳤다. 선수들과 그날 경기를 평가한 후 앞으로 부른 5명에게 『초반에 에러가 나니까 후반이 힘들잖아. 수비 하나 제대로 못 하면 어떻게 하나. 정신력을 놓지 않고 열심히 해야지』 했다.

곧바로 오후 훈련에 들어갔다. 열심히 타격훈련하고, 다른 사람이 친 공을 줍고, 온 힘을 다해 뛰면서 수비 연습하는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 2군 선수들이었다.

오후 4시쯤 박감독이 『그만, 수고했다』고 말하자 다들 가뭄에 단비를 맞은 듯 기뻐했다. 선수들 옆으로 다가서자 땀 냄새가 진동했고, 땀방울이 맺혀 있는 얼굴은 유난히 붉고 검게 보였다.

선수들은 라커룸에서 샤워를 한 후 옷을 갈아입고 세탁기를 찾았다. 2군 숙소에서 생활하는 15명은 세탁기에 「상의」,「하의」 표시된 바구니에 옷을 담아 놓으면 되지만 집에서 다니는 선수들은 자기가 직접 빨아 입어야 했다. 선수들은 빨래를 분류하고 나서 2층 숙소로 올라갔다.

감독은 코치들과 그날 경기와 훈련을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다. 부상 선수를 체크하고, 누가 타격 감이 좋았는지, 경기 몇 회 때 누구의 실책으로 실점을 했는데 그 선수의 문제점이 뭔지, 어떻게 보완해야 할지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평화로운 저녁

클리닝 타임 미팅시 직접 운동장에 물을 뿌리는 매니저.

숙소에 머물지 않는 선수들은 오후 5시쯤 잠실로 이동하는 45인승 버스에 다시 올라탔다. 몇 명은 버스에 타자마자 눈을 감았고, 몇 명은 전화통화하거나 신문을 읽었다. 감독과 코칭스태프들도 버스를 타고 이천구장을 떠났다. 숙소는 코치들이 1주일씩 돌아가며 선수들과 생활하기 때문에 당번을 제외하곤 모두 집으로 갔다.

벌써 저녁시간이 됐다. 오후 5시30분. 식당 테이블에는 고기 굽는 불판이 놓여 있고, 상추·파채·부추전이 차려 있었다. 선수들은 많이 배고팠는지 자리에 앉자마자 부추전을 뚝딱 해치웠다. 달궈진 불판 위에 쇠고기 안창살을 올려놨다. 불판에 빈틈이 안 보일 정도로 고기를 가득 올려놓고 굽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굽고 먹느라 정신없었다. 식당에서 주방장이 나오더니 『1군에 올라간 (김)현수는 고기도 잘 먹고, 뭐든 남보다 더 잘 먹더라』며 『누가 더 잘 먹어서 체력 비축하나 지켜보겠다』고 했다. 갑자기 고기 한 점에 여러 개 젓가락이 부닥치기 시작했다.

2군 선수 15명과 홍성흔, 그리고 코치 한 명이 오순도순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방으로 올라가 각자 자유시간을 즐겼다. 외출이 안 되고, TV·전화통화·인터넷 외에는 세상과 소통의 통로가 없었다. 몇 명은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했고, 몇 명은 한방에 모여 일본 야구게임을 시청했다. 또 다른 선수는 인터넷 야구게임 「마구마구」를 했다. 역시 오락할 때도 야구 생각만 하는 2군 선수들이었다. 식후 졸음이 몰려온 선수들은 잠시 눈을 붙였다. 숙소는 평화로웠다.

오후 7시30분쯤. 선수들은 1층에서 체력훈련을 했고, 실내연습장에서 혼자 개인훈련하는 선수들이 눈에 띄었다. 부상 선수는 트레이너에게 치료를 받았다. 2시간이 지나자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수들이 각자 자기 방으로 흩어졌다. 하루 일과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늦은 밤 11시쯤 선수들의 취침을 위해 숙소 건물 전체에 불이 꺼졌다. 체력훈련장과 실내연습장의 불빛만 반짝였다.

5년 만에 2軍 탈출한 고영민

고영민.

프로야구 두산(1軍)의 김경문 감독은 지난 4월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을 다 짊어진 사람처럼 힘들어했다. 옆에서 말 붙이기조차 어려웠다. 2007 프로야구 시즌 개막 후 팀이 계속 꼴찌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달 반 만에 두산이 중간순위 8위에서 1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그제서야 김감독은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지난겨울 선수들에게 강조했던 것은 오직 타격이었어. 방망이만 잘 터지면 우승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스윙연습에 중점을 뒀는데, 개막 후 뚜껑을 열어 보니 수비가 엉망이었던 거야. 설마 그 정도일 줄은 상상을 못 했지. 충격을 받은 후 수비훈련을 강화했어. 자연히 성적은 따라오더군』

두산은 지난 7월30일 현재 프로야구 88 게임을 치르며 45승2무41패로 승률 5할2푼3리를 기록하며 한화와 종합 2위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두산의 성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올 시즌 두산 경기를 모두 출장한 낯선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두산의 2루수 겸 3번타자 고영민(23). 잠실구장에서 고영민을 만났다.

만화영화의 가제트 형사처럼 긴 팔과 다리를 쭉쭉 뻗어 수비하기 때문에 「고제트」란 별명을 얻은 그는 요즘 「2익수」로도 불린다. 2루수지만 우익수 수비 위치까지 발로 뛰며 커버해서 붙은 이름이다. 지난 6, 7월에만 홈런 8개를 기록하며 팀이 어려울 때마다 큰 힘이 됐다.

고영민이란 이름이 낯설어 두산 신인인 줄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그는 프로데뷔 5년차다. 2002년 두산에 입단해 4년간 2군 생활을 하다가 올 시즌 어렵게 중심 타선에 올랐다. 2군 생활 5년 만에 비로소 빛을 보게 됐다.

『2군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내일」이 너무 막연하다는 점이죠. 열심히 해도 1군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매일 똑같은 훈련을 반복하다 보니 실력이 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2군 생활이 내 야구인생에 최정상은 아닌가 싶어서 야구를 그만두려고 했어요. 군대 문제를 핑계로 운동을 접겠다고 했는데, 어머니께서 한 말씀하셨죠.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최선을 다했는지 돌아보고, 그게 아니라면 그만둘 자격이 없다」고요』

경기 중 장내 정리 시간에 코칭스태프들이 선수들을 불러 지시사항을 내리고 있다.

2軍 마지막 경기서 부상 입어

고영민에게 어머니는 특별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부에 들어가고 싶다고 하자 매몰차게 거절했던 어머니였다. 어린 마음에 너무 상심해서 방 한구석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고는 마음이 아프셨는지 동네 체육사로 데려가 야구 글러브 하나를 사주셨다. 아들이 좋아하는 것이 야구라면 당신도 좋아하겠다고 하셨던 어머니다.

『2005년 8월이었죠. 처음으로 1군 엔트리에 올라갈 수 있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정말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쁘고 즐거웠는데, 2군 마지막 경기에서 그만 발목 부상을 당했습니다.

며칠 전 내린 비가 1루 베이스 밑에 고여 있었던 거죠. 안타를 치고 열심히 뛰어서 1루를 밟는데 그만 베이스가 돌아가면서 발목이 같이 꺾였어요. 처음에는 오른쪽 발목이 돌아갔는데, 꾹 참고 다음 타석 때 또 뛰다가 왼쪽 발목까지 인대가 늘어난 거예요. 어쩔 수 없이 그 시즌을 접었습니다』

땀은 정직했다

휴식시간에 야구게임을 하는 선수들.

고영민은 2군 생활이 오래 지속되면서 슬럼프를 겪었다. 여기서 선수생활을 끝내야 하나 고민했지만, 억울해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인생은 한 번인데 정말 죽을 힘 다해 노력해 보고 안 되면 그때 깨끗이 야구를 접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노력했다.

『2006년에 다시 한 번 기회가 찾아왔어요. 당시 2루수였던 안경현 선배가 부상을 당해 빈 자리를 메울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그런데 김경문 감독님이 저에게 기회를 주시더라고요.

저의 장점인 빠른 발을 살려서 열심히 했죠. 시즌 타율 2할7푼에 도루 17개를 했어요. 프로 데뷔 4년 만에 처음으로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그해 겨울 전지훈련에 가서 정말 미친 듯이 훈련했습니다. 모두 잠든 새벽까지 스윙연습을 했죠. 밤마다 땀으로 샤워를 했습니다. 땀은 정직하더라고요』

1군 진입 이후 그는 2군 시절의 징크스를 하나 버렸다.

『2군 생활을 4년 가까이 하다 보니 1군에 올라와서 시차 적응이 안 되는 거예요. 2군에서는 오전 6시30분에 일어나서 오전 운동하다가 오후 1시에 경기를 하는데, 1군에서는 오전 10시~12시쯤 일어나서 저녁 때 야간경기를 하잖아요. 일찍 일어나서 인근 목욕탕을 다녀오면 그날 경기가 잘 풀리더라고요. 만약 목욕탕에 갔다 왔는데 안타가 안 나왔다 싶으면 그 목욕탕은 두 번 다시 안 가고 다른 데로 갔어요. 지금은 그런 거 신경 안 쓰죠(웃음)』

2006년 고영민의 연봉은 2100만원. 올 시즌에는 4200만원으로 정확히 2배가 올랐다. 작년보다 월급을 더 받다 보니 기쁨도 두 배. 예전에는 밥값, 술값, 차 기름 값으로 돈을 다 썼는데 이제는 다달이 부모님께 용돈을 50만원씩 부쳐드린다. 올 시즌 열심히 해서 앞으로 연봉이 더 오르면 적금을 들고 부모님께 효자 노릇을 하고 싶단다.

『2군에서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낼 때 가장 힘이 되신 분은 두산 김광림 코치와 김광수 코치예요. 수비나 타격 기술 등 참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김광수 코치는 「2군 생활은 자신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시기」라며 격려해 주셨죠. 제가 성장할 수 있도록 기다려 준 분들이 계셨기에 오직 한 길만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광수 코치는 고영민이 고졸 신인으로 두산에 입단할 당시 「발 빠르고 경기 감각이 있었지만 기본기가 약했다」고 했다. 체력훈련을 하면서 스윙 자세 등 기본적인 것들을 다듬어 갔다고 회상했다. 코치가 본 고영민은 스피드 있고 체력이 남보다 강한 선수였다.

거듭된 훈련을 통해 조금씩 실력을 쌓아 가면 1군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보였다고 했다. 김코치는 『고영민이 다른 선수들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독창적인 플레이를 해서 가끔 감독이나 코칭스태프를 깜짝 놀라게 할 때가 있었다』고 했다. 경기 중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노하우가 있었고, 경기 흐름을 읽는 시각이 다른 선수보다 두 수는 앞서 있었기에 꼭 1군에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올 시즌 全경기에 출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꾸준히 체력훈련하면서 기본기를 다졌던 게 도움이 됐어요. 2군에서 생활할 때 가졌던 마음가짐을 잊지 않고 더 열심히 해야겠죠. 앞으로 최선을 다해서 프로야구 8개 구단 중 가장 뛰어난 「2익수」가 되고 싶어요』

2軍 4번타자 이두환, 1軍을 꿈꾸다

이두환.

2006년 10월, 당시 고등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두환은 프로야구 구단 두산 입단식에서 『두산 유니폼을 입게 돼 설렌다』며 『형들처럼 그라운드에서 멋진 플레이를 펼치고 싶다』고 말했다. 같은 날,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 있었던 임태훈도 『빨리 마운드에 오르고 싶다』고 했다.

10개월이 지난 지금, 『야구팬 중 임태훈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불릴 정도로 임태훈은 두산 1군에서 중간계투 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지난 7월30일까지 임태훈은 42경기에서 73이닝 동안 삼진 60개를 뽑으며, 피홈런 2개를 허용하고 방어율 2.47을 기록했다. 올 시즌 이틀에 한 번꼴로 마운드에 올라 고졸 신인답지 않게 담력 있는 좋은 피칭을 선보여 투수부문 신인상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반면 이두환은 2군 4번타자로 열심히 홈런을 치고 있지만, 팬은 주변에 친한 친구들이 전부다. 그렇지만 상심할 필요는 없다. 고졸 신인 타자가 첫해 1군 엔트리로 바로 등록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베테랑 선배들이 각 포지션마다 제 몫을 해내고 있어 고졸 신인들은 2군에서 보통 2~3년씩 기량을 쌓는다.

지난 7월27일 이천 숙소에서 만난 이두환은 생각보다 밝은 표정이었다.

―춘천에서 열린 2군 올스타전에서 보고 열흘 만이네요. 그날 홈런 레이스에서 홈런 2개를 쳤던데, 기분이 어땠어요.

『내 생에 그렇게 많은 관중 앞에서 야구해 보는 것은 처음이었어요. 비록 춘천시민 3500명이 전부였지만, 저에겐 잊지 못할 경험이었습니다. 그래도 고등학교(장충高) 때는 학교 팬들이라도 몇 명 있었는데, 2군에서는 단 한 명도 응원하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홈런을 쳐도 기쁘지 않고, 에러를 해도 「아차!」 하면 그만이에요. 차라리 못 하면 못 한다고 욕하며 질타하는 팬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가장 가슴 아프고 끔찍한 건 무관심이거든요.

고등학교 때는 타석에서 전율이 느껴졌어요. 끝내기 안타나 홈런이 나오면 정말 야구할 맛이 났어요. 그때 그 기억을 잊지 않고 더 분발하려고요』

―2군 생활은 운동 외에 해야 하는 잔 일이 많잖아요. 힘들지 않나요.

『야구 기록지에 기록하고, 그라운드에 물 뿌리는 일, 땅 고르고 공 줍는 일, 장비 나르는 것은 전혀 힘들지 않아요. 30℃가 넘는 무더위에 땡볕에서 훈련하는 것도 참을 수 있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어렵게 1군에 올랐을 때, 그 가치를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롯데 4번타자 이대호 선배나 두산 김동주 선배처럼 실력 있는 타자가 되고 싶어요. 가끔 슬럼프를 겪거나 마음이 답답할 때는 그냥 머리를 비우죠. 잡생각이 많으면 타석에서 공이 정확히 안 보여요. 그래서 마음을 가볍게 하고, 날아오는 공에만 집중하려고 해요』

―2군에서 중점을 두고 훈련하는 부분은 어떤 겁니까.

『변화구에 적응하려고 해요.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프로야구 경기 보면 「왜 저거 하나 못 치나」 답답했는데, 막상 프로구단에서 여러 투수를 상대해 보니 정말 다르더라고요. 1군 투수들은 더 무섭겠죠. 헛 방망이질 안 하고 잘 치려면, 공을 정확히 보고 변화구를 잘 파악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수비를 좀더 잘하고 싶어요. 지금은 1루수인데 기회가 닿으면 3루수를 해보고 싶어요』

『야구 그만둔다는 생각 해본 적 없어요』

담소를 나누는 선수들.

―중간에 야구를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나요.

『한 번도 없었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10년 넘게 오직 한 길만 바라보고 달려왔거든요. 초등학교에서 태권도반 수업을 들었는데, 한번은 야구부 선생님이 부르셨죠. 「야구하면 잘할 것 같은데 혹시 해보고 싶은 생각 없냐」고 물으시기에,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테스트를 봤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포수를 했는데, 정말 힘들었죠. 고등학교 2학년 때 경기 중에 왼쪽 무릎을 다쳐 더 이상 포수를 할 수 없게 됐죠. 6개월 가까이 재활훈련을 하면서 쉬었는데, 그때도 야구를 그만둔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었어요. 지금도 가끔 포수를 그만둔 것에 대해 아쉬워할 때가 있어요』

―그럼 야구 인생에 큰 힘이 된 사람은 누군가요.

『초등학교 때 야구에 처음 눈을 뜨게 해 준 김진석 감독님과 고등학교 때 유영준 선생님이에요. 무엇보다 저를 믿고 기회를 많이 주셨거든요. 특히 유영준 선생님은 제가 포지션을 바꾸고 재활하는 과정에서 많이 도움을 주셨어요』

―쉬는 날에는 주로 뭘 하나요.

『만화책을 좋아해서 만화방에 가거나 극장에 가요. 최근 「피안도」라는 흡혈귀가 나오는 내용의 만화책을 봤어요. 가끔 컴퓨터 게임을 해요. 그런데 일주일에 월요일 하루밖에 못 쉬니까 하고 싶은 것 다 하기는 좀 힘들더라고요』

―월급받으면 한 달에 얼마 정도 쓰세요.

『제 연봉이 2000만원인데요, 저는 다달이 받는 월급에서 30만원만 써요. 나머지는 어머니께 드리죠. 제가 외아들이라 부모님께 더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커요. 두 분은 의류업에 종사하세요. 가죽점퍼 만들어서 파는 일을 하시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운 건 아니지만 그리 넉넉지 않거든요. 월급 타서 부모님께 드렸는데, 그 돈으로 제 앞으로 적금을 부어 주시는 것 같아요. 저는 친구들 만나서 술은 잘 안 마시기 때문에 돈이 크게 들어갈 일은 별로 없어요』

『마지막에 웃을래요』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친구 (임)태훈이가 1군에서 잘하고 있잖아요. 가끔 프로야구 중계를 보거나 잠실에서 1군 경기를 볼 때면 부럽기도 해요. 저도 빨리 제 자리를 잡는 게 가장 큰 바람이에요. (임)태훈이가 투수로 활약하는 것처럼, 저는 방망이를 잘 터뜨리는 「이두환」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지금은 태훈이가 웃지만, 마지막에는 제가 웃고 싶어요』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오는 9월1일부터 1군 선수 엔트리를 26명에서 31명으로 추가할 예정이다. 경기 출장 인원은 24명에서 29명으로 늘어난다. 두산 김경문 감독은 『2군에서 홈런 펑펑 친다는 (이)두환이를 9월쯤 1군으로 데려오려고 한다』고 했다.

지난 시간 이두환과 2군 선수들의 땀방울이 보상받을 좋은 기회가 왔다. 그 소식을 들으면서 검게 그을린 2군 선수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 2부 리그란?

10개 구단이 총 432경기 소화

한국의 프로야구는 LG·두산·삼성·한화·롯데·KIA·SK·현대 8개 구단으로 운영된다. 8개 구단에서 뛸 수 있는 야구선수들은 많지 않다. 한국야구위원회는 각 팀의 선수 상한을 26명, 경기 출장 인원의 상한을 24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통상 「프로야구 선수」라고 불리는 프로선수는 208명에 불과한 셈이다.

각 구단은 이 208명에 포함되지 않는 선수들로 「2군」을 편성, 운용하고 있다. 208명에 포함되는 선수들이 펼치는 야구 경기가 「1부 리그」다.

2군은 「북부 리그」와 「남부 리그」로 나뉜다.

북부 리그에는 상무·LG·현대·두산·SK에 경찰팀이, 남부 리그에는 한화·롯데·KIA·삼성이 속해 있다. 모두 10개 팀이다. 2군 경기 일정은 4월6일부터 8월16일까지다. 경기는 남부 리그가 총 180경기(각 팀당 90경기), 북부 리그가 총 252경기(팀당 84경기)를 치른다.

2부 리그의 상무와 경찰팀에서 뛰는 2부 리그 선수들은 이곳에서 병역의무를 마칠 수 있다.

2부 리그는 야간에 경기를 하지 않는다. 전기비를 아끼기 위해 오후 1시에 경기를 시작한다. 비가 오거나 다른 사정으로 게임이 연기되면 다음날 두 게임을 몰아서 한다.

2군의 코칭스태프는 감독 1명과 코치 3명으로, 1군 코칭스태프의 절반 정도 이다. 경기를 진행하는 심판은 3명으로 1군에 비해 1명이 적다. 2군 선수는 각 팀당 30명 정도이고, 연봉은 평균 2000만원 선이다.

KBO는 올해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2군 올스타전 `퓨처스 리그」를 개최했다. 지난 7월18일 춘천 의암구장에서 열린 2군 올스타전에는 남부 리그와 북부 리그에서 각각 20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외국인 선수는 참가자격이 없었다.

경기 결과는 북부 리그와 남부 리그가 3대 3 동점을 기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