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이야기] 문 닫는 뉴욕 플라자 호텔 : 월간조선

뉴욕 맨해튼의 플라자 호텔이 사라지게 됐다. 호텔을 새로 인수한 회사가 건물을 콘도로 개조하여 팔기로 결정한 것이다.

뉴욕 플라자 호텔은 100년 전에 세워졌다. 호텔의 그랜드 볼룸에선 상류층의 파티와 무도회가 수없이 많이 열렸었다.

뉴욕 플라자 호텔의 첫 손님으로 이름을 올린 사람은 당시 최고 부자의 하나였던 밴더빌트의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그들의 하인과 하녀들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뉴욕 플라자 호텔은 뉴욕을 찾는 세계의 귀족과 부자들이 묵어 가는 명소였다. 화려한 하룻밤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이 곳에서 신혼의 첫날밤을 보내기도 했다. 맨해튼의 심장부에 자리를 잡고 센트럴 파크를 바라보는 위치, 20세기 초엽의 고풍스러운 外樣(외양)과 사치스러운 실내장식으로 뉴욕 플라자 호텔은 최근까지도 뉴욕 최고의 호텔 가운데 하나로 꼽혀 왔다.

호텔의 팜 코트 식당과 오크 바는 호텔 투숙객이 아니어도 고급 분위기를 즐기며 쉬어 갈 수 있었다. 스코트 피츠제럴드는 상류층의 생활을 그린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무대로 이 호텔을 택했다. 영화 「北北西로 진로를 돌려라」의 주연배우 케리 그랜트는 이 호텔 바에 앉아 마티니를 마시다 납치당한다. 영화 「나 홀로 집에」 2편의 무대도 뉴욕 플라자 호텔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플라자 호텔의 주인도 여러 번 바뀌었다. 한때는 부동산 왕 트럼프가 구입하여 아내를 사장으로 앉혔었다. 그녀는 이혼 후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트럼프는 여기서 다시 호화스러운 재혼식을 올렸다.

텅 빈 호텔

지은 지 100년 된 고풍스러운 외양의 뉴욕 플라자 호텔.

100년 전 요란한 그랜드 오프닝으로 문을 열었던 뉴욕 플라자 호텔은 문을 닫으면서 호텔의 내부 장식과 가구·집기를 모두 처분하는 淸算(청산) 세일 행사로 자신들의 폐업을 알렸다. 「발견한 사람이 임자」라는 광고를 내걸고, 입장객에게는 10달러씩의 입장료를 받았다. 세일 첫날 아침부터 호텔 앞 도로에서 두 블록에 걸쳐 입장객들이 장사진을 쳤다.

가장 싼 상품은 1달러짜리 물컵이었다. 가장 비싼 물건은 2만5000달러짜리 스테인웨이 그랜드 피아노였다. 세일을 시작하기 전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좋은 물건을 이미 몽땅 사갔다는 소문이 돌아 사람들이 분개했다. 크리스티 측은 플라자의 물건을 되파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건물을 인수한 회사 관계자들의 친지와 이웃, 사돈의 팔촌들까지 행사 시작 일주일 전에 쓸 만한 물건들을 챙겨 갔다고 한다. 플라자 호텔의 집기로 자기 업소를 치장해 보려는 뉴욕 시내 식당 업주들도 플라자 호텔의 집기들을 싹쓸이 해가는 대열에서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호텔 세일에 참가한 사람들 가운데는 역사적인 호텔을 구경하면서, 쓸 만한 중고품을 챙겨 가려는 이가 많았을 것이다. 여기서 신혼의 밤을 보냈거나, 차를 마시며 데이트를 즐겼던 추억을 찾아 되새겨 보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세일 행사가 시작된 지 열흘 쯤 지난 후 뉴욕 플라자 호텔을 찾았다. 세일은 7월까지 계속된다는데, 들어가 보니 거의 빈 상태다. 입장료 10달러도 받지 않았다. 이미 돈을 받고 사람을 들일 만큼 괜찮은 물건이 없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로비 홀에 남아 있는 물건들은 그림과 거울·의자들이 대부분이다. 803개의 객실 벽에 두세 개씩 걸려 있던 그림의 수가 엄청날 텐데 홀에 남은 것이 많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림은 호텔의 전경이나 분수대를 그린 수채화였는데, 크기에 따라 175~300달러 정도였다.

연회장의 테이블 의자로 사용하던 진홍색 우단 의자가 165달러, 팜 코트에서 쓰던 낮은 의자가 65달러였는데, 낡은 의자들만 남아 있었다. 한구석에는 25인치 TV가 50여 개 놓여 있었다. 화려한 金裝 프레임의 거울이 눈에 띄는데 값은 300달러였다. 무척 무거운 거울인데, 대부분 팔렸다는 딱지가 붙어 있다.

우선 지하실에 내려가 부엌부터 구경을 했다. 지하 조리실은 끝없이 넓었다. 작은 부엌들이 미궁처럼 통하고 있다. 밀물이 들어와 쓸어간 듯 대형 철제품 기구만 남고 휑하니 비어 있었다. 그릇과 집기는 모두 총판장으로 올라가고, 호텔 역사를 말하는 서빙 카트들이 낡고 불결한 모습으로 어지럽게 남아 있을 뿐이다. 산뜻하고 폼 나게 손님상에 오르던 고급 요리들이 지하의 亂場(난장)과 소란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잘 믿어지지 않는다.

객실도 오픈되어 있었다. 16층부터 내려오며 살펴보았다. 과거의 화려한 치장을 모두 벗은 채 매트리스만 달랑 남겨진 방 안은 초라하기만 하다. 이렇게 낡고 작게만 느껴지는 방들이 그 유명한 플라자 호텔의 객실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호텔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실망스러웠다. 공원은 바로 눈 아래 있었지만, 창문이 높이 붙어 있어 나무 숲과 고층 건물들이 윗부분만 툭 잘려 보일 뿐이었다. 까치발을 하고 얼굴을 창 밖으로 내밀어야 겨우 경관이 보였다. 아마도 이 호텔을 건축할 때에는 탁 트인 경관보다는 밀폐된 아늑함을 더 중시했던 것 같다.

老醜를 드러낸 여배우 같아

구식의 좁은 엘리베이터가 다니지만, 층계를 통해 내려왔다. 아무것도 볼 것이 남지 않은 객실 몇 개를 더 둘러보았다. 샹들리에가 켜 있는 복도는 고급 실크로 도배된 벽과 아름다운 장식 문양과 카펫들이 어제의 화려함을 상기시켜 주지만, 불빛이 없는 어두운 층은 황량하기 이를 데 없다. 열린 창문을 통해 가끔씩 펄럭이는 커튼이 을씨년스러움을 더한다.

1층에는 팔고 남은 허접한 집기와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호텔 이니셜이 수놓인 슬리퍼, 욕실의 타월들, 침대 시트와 커버들…. 고용인들이 입던 유니폼도 모두 매물로 나와 있다. 「호텔 메이드와 벨보이의 유니폼을 사서 무엇에 쓰나」 싶었는데, 『할로윈 축제 때 분장 옷으로 입으면 좋을 것』이라며 사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팔리지 않고 쌓여 있는 것들은 객실에 구비되어 있던 비품들이다. 수백 개의 다리미와 다리미판, 헤어 드라이어, 자명종시계가 그득하다. 그곳에서 호텔 이니셜이 붙은 전화를 하나 샀다. 「1336호」라는 룸 넘버가 적혀 있었다. 전화선이 달린 평범한 구식 터치폰이지만 내 책상 위에 가져다 놓기로 했다. 숫자 버튼 하나가 고장나서 바꿀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저곳을 호출하는 아이콘이 가득 달려 있고, 호텔 이니셜이 그려진 전화기를 책상 위에 놓으니 잘 선택한 것 같아 흐뭇하다. 전화벨 소리도 부드러웠다.

갖가지 글라스와 접시, 은그릇과 크리스털 얼음통도 꽤 남아 있었다. 고급으로 여겨지는 식기들이 몇 달러 정도의 가격으로 살 수 있었다. 호텔방에 있던 성경책을 여러 권 사 가는 사람도 보았다.

벽에 붙은 램프를 떼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가끔 『여러분, 벽에 붙은 램프를 떼는 건 위험합니다. 절대로 떼지 마시오』라는 방송이 나오곤 했다. 빈 껍데기만 남은 호텔은 화려했던 여배우가 온갖 치장과 화장으로 老醜(노추)를 가리다가 마침내 벗어 버리고 허망한 실상을 보여 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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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이야기] 문 닫는 뉴욕 플라자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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