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언셀러 시인·출판기획자 류시화의 베스트셀러 메이킹 연구 : 월간조선

대개의 작가들은 新刊(신간)이 나오면 언론 취재에 적극적으로 응하고 독자와 직접 만나는 이벤트도 마다하지 않는다. 詩人이자 번역가인 류시화씨의 경우 신간을 내놓고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도 그의 작품은 늘 화제가 되고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1983년부터 지금까지 시집과 수필집, 번역서를 합쳐 80여 권의 책을 펴낸 류시화씨는 그동안 1000만 권 이상을 팔아 100억원 이상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류시화씨를 아예 벤처기업, 중소기업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류시화씨는 2002년 12월, 「지구별 여행자」(김영사)라는 수필집을 내놓았는데 책을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할 시점에 해외여행을 가서 자연스럽게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그런데도 발간 한 달 만에 7만 권이 팔렸으며, 매일 1500권의 주문이 들어온다.

김영사 관계자에게 류시화씨와의 전화인터뷰를 주선해 달라고 부탁하자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작가의 근황과 책과 관련된 사항이라도 알려달라고 하자 『본인이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답변만 들려 주었다. 류시화씨와 친밀하다고 알려진 또다른 출판사 사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작가가 원하지 않으니 무슨 말이든 해줄 수가 없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모 출판사 사장은 『취재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냐?』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가 하면 『늘 규모가 크지 않은 출판사에서 책을 냈던 류시화씨가 이번에는 왜 메이저급인 김영사에서 책을 냈는지 모르겠다』고 촉각을 곤두세우는 출판사 사장도 있었다. 출판사 사장들과 접촉해 본 결과, 잘못 말했다가 까다롭게 출판사를 고르는 류시화씨에게 후일 「간택」받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까봐 상당히 우려하는 분위기였다.

류시화씨는 매우 의욕적으로 책을 펴내고 있다. 지난해에 번역서 다섯 권과 여행 수필집 한 권까지 모두 여섯 권의 책을 펴냈다. 류시화씨가 2002년에 다섯 권의 번역서를 낸 것에 대해서 한 출판관계자는 『급하게 번역하여 내놓는 것이 아니라 평소 준비해 놓았다가 팔릴 만한 시점에 내놓는 것이다. 류시화씨는 자신의 책이 팔릴 만한 시점까지 계산에 넣고 책을 내놓는 사람이다. 그런 상업적 감각이 있기 때문에 그의 책이 팔린다』라고 말했다.

모 인사는 『한 때 류시화씨의 한 달 인세 수입이 3억원을 넘을 때도 있었다. 요즘은 예전만큼 많지는 않지만 여전히 폭발적이다. 그의 시집은 기본적으로 100만 부가 팔린다』고 전했다.

언제나 세 권은 베스트셀러에 포함

「여전히 폭발적」이라는 평가는 서점에 나가면 바로 증명된다. 웬만한 대형서점 詩 부문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그의 책이 보통 세 권은 포함되어 있으며, 스테디셀러에도 두세 권이 올라가 있다. 류시화씨의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푸른숲)는 1991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107쇄를 펴냈다. 1996년에 펴낸 시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열림원)은 47쇄를 발행했고, 류시화씨가 엮은 잠언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열림원)은 1998년에 발행되어 44쇄를 찍었다. 이 세 가지 책은 거의 몇 년간 詩 베스트셀러 10위권 밖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 책들은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집계한 2002년 상반기 베스트셀러 詩 부문 10위 안에 모두 들어갔다.

1997년에 발간된 수필집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열림원)은 지금까지 51쇄가 발행된 스테디셀러이다. 류시화씨가 번역한 것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이레)로 200만 권 이상 팔렸으며 지금도 매일 200∼300권씩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 그의 책은 왜 독자로부터 큰 반응을 얻는 것일까? 여러 사람에게 『그 비결이 뭘까』라고 질문했더니 한결같이 『나도 그것이 알고 싶다』고 답했다.

우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자. 1958년 출생인 류시화의 본명은 안재찬이다.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한 경희大 국문학과 2학년 때인 1980년에 「아침」이란 詩로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과한 후 1980년부터 1982년까지 朴德奎(박덕규), 李文宰(이문재), 河在鳳(하재봉) 등과 함께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했다.

류시화씨의 대학교 후배인 이레출판사 고석 사장은 류시화씨가 학교 다닐 때부터 어학실력이 뛰어났으며, 천재성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학교 다닐 때 이미 대학가에서 이름난 詩人이었으며 다른 학교에서 일부러 류시화씨를 보러올 정도였다고 한다. 류시화라는 이름은 이미 대학시절에 지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문학평론가 南鎭祐(남진우)씨는 자신의 평론집 「바벨탑의 언어」에서 안재찬의 詩세계를 「순환과 회귀」라고 정의하면서 <안재찬의 詩에서 가장 중요한 상상력의 움직임은 외부로 확산하려는 힘과 내부로 수렴하려는 두 힘의 갈등이며, 그중 항상 후자가 전자보다 우위에 있다. 그는 적극적인 현실참여를 주장하고 있는 민중주의자들에게 현실 도피라는 비난을 받을 소지를 안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앞만 바라보며 바빠 나아가는 이때, 「온 곳으로 되돌아가며」라고 노래하는 그의 낮은 음성 속엔 우리가 경청할 만한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라고 기술했다.

南鎭祐씨는 『안재찬 詩人이 여러 가지 면에서 1980년대 한국 시문학에 많은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안재찬은 사회적·역사적 상상력이 지배하던 1980년대에 신비주의적 세계관을 수정하지 않아 문단으로부터 「외계인」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안재찬은 시운동 동인지를 통해 50여 편의 詩를 발표한 후 『詩人은 전쟁이 나도 다락방에서 사랑의 詩를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고별사를 남기고 1983년부터 詩作(시작)을 중단했다.

라즈니쉬 명상센터에서 생활

이후 안재찬 대신 류시화라는 이름으로 명상서적 번역 작업에 들어가 「성자가 된 청소부」,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티벳 사자의 서」, 「장자, 도를 말하다」 등을 번역했다. 1988년부터 미국과 인도 등지의 명상센터에서 생활하고 인도여행을 하면서 명상가로 변신했다. 인도의 대표적인 명상가인 라즈니쉬 명상센터에서도 생활한 적이 있는 그는 라즈니쉬의 주요 저작들을 여러 권 번역했다.

류시화씨는 詩人, 번역가, 명상가 외에도 엄청난 독서광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매년 약 100여 권의 명상서적을 원서로 읽는다고 한다. 16년째 겨울이면 인도를 방문하는 여행가이기도 하다.

번역집만 출간했던 그가 첫 번째 시집을 발표한 건 1991년의 일이다. 이어 산문집 등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작품집을 발표했다. 류시화씨가 내놓은 첫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에 이어 1996년에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을 펴냈고, 독자들의 호응은 실로 뜨거웠다.

그와 함께 시동인 활동을 한 詩人과 선배 詩人 등에게 전화하여 류시화씨의 詩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물었지만 대개 『할 얘기가 없다』고 말했다. 한 평론가는 『안재찬이 류시화가 된 뒤 그의 詩를 눈여겨보지 않아 평가하기 힘들다』는 답변을 들려 주었다.

한 중견 詩人은 류시화씨의 詩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몹시 불쾌해 했다.

『류시화씨는 詩人이 아니에요. 그 사람이 쓴 걸 詩라고 하면 안 돼요. 적절한 용어를 찾으세요. 대중의 심리에 부응하고 세속적 욕망에 맞춰 쓴 건 詩가 아니지요. 詩는 일반인들이 보기 힘든 장르입니다. 대중에게 다가가는 장르가 아니라 대중이 노력을 통해 다가와야 하는 장르지요. 자기 성찰을 하는지, 자기 과시를 하는지, 독자들이 판별해야 합니다』

또다른 중견 詩人은 류시화씨의 詩 작업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류시화씨의 글들은 명상을 통해 인간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뉴에이지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詩들이 몽환적이죠. 몽환적 증후군에 빠지면 현실 감각이 없어지고 對人관계를 원만하게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삶의 가치는 치열하게 사는 겁니다. 인터넷 앞에서 지내던 사람들이 삭막함과 황폐함에 염증을 느끼다가 몽환적인 기분에 빠지면 현실을 잊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명상에 기초한 詩들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러한 혹평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류시화씨는 현재 대중들에게 가장 각광받는 詩人이다. 종로서적과 교보문고 집계에 따르면 1989∼1998년까지 10년간 週間 베스트셀러 순위에 가장 많이 올랐던 책은 류시화씨의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21회)였다. 10년 동안 베스트셀러 순위에 이름을 가장 많이 올린 저자 역시 류시화씨(42회)였다.

「시로 여는 세상」 2002년 여름호가 대학생 530명에게 「좋아하는 詩人」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윤동주, 류시화, 김소월, 천상병, 한용운이라는 답변이 나왔다.

2001년에 발표한 金才允(김재윤·한국출판연구소 연구부장)씨의 명지大 국어국문학과 박사학위 논문 「한국 현대시에 대한 독자반응 연구」를 보면 일반독자들이 류시화씨를 얼마나 높게 평가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 논문은 일반독자 300명과 교수·詩人·평론가 등 전문독자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기초로 작성되었다.

일반독자들은 류시화씨를 20세기의 위대한 詩人 10위, 21세기에 주목할 詩人 1위로 꼽았다. 평소 좋아하는 詩人에는 윤동주에 이어 류시화씨가 2위에 올랐다. 최근에 읽은 시집을 묻는 질문에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1위),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7위),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립다」(11위)로 20위 안에 류시화씨의 시집이 세 권이나 들어 있었다. 평소 좋아하는 詩를 묻는 질문에는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 6위, 사랑을 잘 노래한 詩人을 묻는 설문에서는 류시화씨가 2위를 차지했다. 여러 종목에서 2위, 6위, 10위, 11위 등으로 나온 것도 현역 詩人만 놓고 봤을 때는 언제나 류시화씨가 1위였다.

다만 20세기의 훌륭한 詩, 사회 변혁에 영향을 미친 詩人 항목에서는 류시화씨는 20위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전문독자들은 그 어떤 항목에서도 류시화 詩人을 일체 거론하지 않았고, 순위에도 올리지 않았다.

인터넷 서점 yes24에 올라온 독자서평을 보면 독자들이 류시화씨의 작품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실감할 수 있다. 책마다 몇십 개, 혹은 100개가 넘는 독자서평이 올라와 있었는데, 대개 류시화씨의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는 내용이고 비판은 극히 드물었다.

표지 디자인, 書體까지 결정

류시화 열풍이 본격적으로 분 것은 1997년의 일이다. 지금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는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 그해 출간되어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대체 류시화씨의 작품이 어떤 연유에서 독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사랑을 받는 걸까? 「지구별 여행자」를 펴낸 김영사의 관계자는 한 달 만에 7만 부가 팔린 비결을 『독자들이 류선생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고 답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미화 연구실장은 「우리시대 스테디셀러의 계보」라는 책에서 류시화씨의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된 원인을 이렇게 썼다.

<199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이 가능하게 했다. 민중문학계열의 詩가 독식하던 1980년대를 벗어나 1990년대라는 변화된 세상에서 그의 글들이 어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감성적 자연친화 사상은 류시화로부터 이루어진다>

류시화씨의 詩는 라디오 DJ들이 가장 선호하는 詩라고 한다. 저작권협회가 집계한 라디오에서 가장 많이 낭송되는 詩가 바로 류시화씨의 詩이다.

출판사 마음산책의 정은숙 대표는 류시화씨를 이렇게 평했다.

정은숙 대표는 열림원 재직 시절 류시화씨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라는 책을 기획했다.

『출판 기획자가 책의 방향을 잡고 원고의 얼개를 짜주기도 합니다. 각 장의 구성을 다시 하기도 하고 원고 매수도 조정하고, 원고를 부드럽게 고치라는 주문도 하지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필자가 받아들이는 선에서 제시하는 겁니다. 류시화 선생의 경우는 기획자가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여지가 없습니다. 책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표지 디자인, 서체까지 본인이 다 결정합니다. 완벽주의자이면서 아주 섬세한 분이에요. 감각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기획자가 따로 의견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배울 점이 많습니다』

정은숙 대표는 류시화씨를 섬세하고 예민하며 달변가라고 평했다. 몇해 전 신간을 내고 서점에서 독자와의 대화를 할 때 두 시간 동안 독자를 울고 웃게 하는 이야기 구성이 대단했다고 한다. 머리를 길게 기르고 특이한 복장을 고수하지만 기행을 일삼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깔끔하고 현실감각이 있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신비로운 꿈과 자연스런 상상의 세계

「마음을 여는 101가지 이야기」를 펴낸 이레출판사의 고석 사장은 류시화씨의 詩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류시화 詩人의 詩는 읽을 때보다 들을 때 더 가슴에 와 닿는다고 합니다. 자연스러운 낭송이 가능한 것은 詩人이 티베트, 인도 등을 여행하며 시상이 떠오르면 입으로 외우고 중얼거려 운율이 밴 문장으로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詩人은 한 인터뷰에서 이제 詩를 책상에서 쓰고 고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문자적 의미의 언어를 버렸다고 말했습니다. 류시인의 詩를 「입으로 순화된 詩」라고들 하죠. 입 속에서 100번을 읊고 읊어 낭송되기 쉬운 詩를 쓰기 때문에 독자의 가슴을 두드린다고 생각합니다』

詩人이자 문학평론가인 李昇夏(이승하·중앙大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작가세계」 1999년 가을호에서 류시화씨의 詩가 독자들에게 폭넓고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첫째 이유는 발간 시점에 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민중문학의 위세가 많이 수그러들었을 때 나왔다. 둘째, 안재찬은 비록 詩壇을 떠났지만 같은 사람인 류시화는 수많은 번역서를 통해 독자를 확보해 두고 있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셋째는 제목을 잘 선택했다는 점이다. 한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제법 긴 제목은 이전에도 베스트셀러 시집 군을 형성했을 정도였는데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니, 여성 독자와 청소년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제목이었다>

류시화씨는 「기획자」라는 타이틀을 싫어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韓淇皓(한기호) 소장은 류시화씨를 탁월한 기획자라고 말했다.

『본인이 아니라고 해도 류시화씨는 훌륭한 기획자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번역하여 출판사를 직접 선정하고 적당한 타이밍에 내놓습니다. 본인은 「지금까지 번역한 80여 권의 책 가운데 80∼90%가 팔리지 않았으니 성공한 게 아니다. 적중률이 낮다」고 얘기한다지만 그건 겸손한 얘기지요』

번역서는 보통 책값의 3∼5%의 인세가 지급되는데 류시화씨는 10%를 받는다. 그것은 류시화씨가 고정독자 10만 명을 지닌 「보증수표」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류시화씨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기획을 한 적이 없습니다. 기획이라면 계획하고 계산해서 책의 모양새를 만들어가는 것일 텐데, 난 그렇게 한 적이 없으니 기획자는 절대로 아닙니다. 제가 지금까지 번역한 명상서적이 70∼80권이 됩니다. 그 중에서 80∼90%는 초판도 팔리지 않았지요. 세간에서는 제가 책을 내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과 다릅니다』라고 말했다.

류시화씨는 어떤 책이든지 출판을 전제로 읽지 않는다고 한다. 그냥 읽다가 좋으면 번역하고, 어느 날 책으로 낼 만하다고 판단되면 인연이 닿은 출판사에 연락해서 책으로 낸다는 것이다. 류시화씨는 출판사와 사전계약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류시화씨는 한 권의 책을 오래 준비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98년에 나와 지금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는 잠언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의 경우 류시화씨가 약 13년 동안 준비한 책이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는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기 전에 류시화씨의 눈에 띄어 저작권계약을 아주 싼값에 했다고 한다. 「마음을…」은 류시화씨가 2년 동안 세 번 번역을 하고 난 뒤에 책으로 펴냈다. 인도여행기를 담은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은 10년 동안 인도여행을 한 뒤에 썼다.

『우리 독자는 지혜를 구한다』

신간 「지구별 여행자」는 그가 15년에 걸쳐 인도 대륙을 여행하면서 얻은 삶의 교훈과 새로운 깨달음의 기록이다. 오랜 기간 충분히 준비했기 때문에 그의 책이 빛을 본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다. 류시화씨가 팔릴 만한 번역서를 골라 내는 안목을 갖고 있다며, 책을 고르는 안목에 대해서는 모두들 류시화 개인의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류시화씨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책을 고르는 기준이 「감동」에 있음을 강조했다. 자신이 감동을 하여 눈물을 흘리면 독자도 눈물을 흘릴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출판 관계자들에게 『잘 팔릴 만한 책을 고르기보단 꼭 읽히고 싶은 책을 내는 게 좋을 것』이라고 권고했다. 류시화씨는 우리나라 독자의 「질」이 매우 높다며 『일본이나 미국에선 독자들이 책에서 정보를 구합니다. 그러나 우리 독자들은 지혜를 구합니다. 한번 산 책을 함부로 버리지 않아요. 책을 흥미와 오락거리로 여기지 않는다는 증거지요』라고 말한 바 있다.

류시화씨는 구도, 명상 분야가 전통적인 베스트셀러 분야이기 때문에 자신이 펴낸 책이 호응을 얻었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1980년대 사회과학 서적이 인기를 누릴 때 명상서적 출판이 시작되었는데 류시화씨는 그 이유를 『명상서적이 가장 현실적이기 때문에 대중들이 관심을 가진다』고 밝힌 바 있다.

인도를 잘못 읽는다는 비판

류시화씨는 독자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고 있지만 전문가에게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모 인사는 『류시화씨는 자신을 대중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류시화씨의 작품은 문학평론가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문예지에도 실리지 않는다. 현대문학이 한 번 다룬 적이 있는데 1997년 8월호 「죽비소리」에서 류시화씨의 시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을 <저급함도 역겨움도 모르는 외눈박이 독자들에게나 매혹적인 시집이 될 것>이라고 혹평했다.

문학담당 기자를 지낸 조선일보 金侊日(김광일) 논설위원에게 왜 류시화씨의 작품론이 신문 문학면에 실리지 않는지 그 이유를 물어봤다.

『신문이 대중문학을 문학면에 다루는 걸 蛇蝎視(사갈시)하여 꺼리고 있습니다. 대중문학에 대해 좀 유연해지긴 했지만 아직도 신문에 대중문학이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신문은 대중지입니다. 고급문학만 다루는 동인 신문이 아니라면 대중문학을 다뤄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합니다』

류시화씨의 작품론과는 별개로 그가 보는 인도에 대한 시각이 잘못되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책을 낸 이옥순 박사(숭실大 강사·인도현대사 전공)는 『우리 작가들이 인도를 보는 눈은 100년 전 영국 식민주의자들이 오리엔탈리즘의 눈으로 인도를 본 것과 놀랍도록 똑같다』며 『동양인인 우리가, 식민지 체험을 가진 우리가, 서구가 상상하고 날조한 동양을 우리 것으로 내면화하고 있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책에서 이옥순 박사는 류시화씨뿐만 아니라 인도에 관한 글을 쓴 강석경, 송기원, 황지우, 법정스님, 한비야, 김영현 작가 등 여러 작가의 글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옥순 박사는 류시화씨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에 대해 『다 명상가 같고 철학자 같은 하층민들을 만나지만 인도를 단일한 세계, 작은 마을로 단순화하는 맹점을 보인다. 절대적 빈곤상태에 있는 하층민들이 과연 정말 가난해도 행복한가?』라고 되물었다.

인도 뉴델리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사회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모 인사는 류시화씨에 대해 이런 견해를 밝혔다.

『한국에서 출판된 인도관련 책을 읽고 나니 화가 나더군요. 인도에 대해 제대로 쓴 책은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인도에 대한 환상을 심어 줄 우려가 있는 책들입니다. 힌두철학의 윤회사상은 이승에서 자신의 처지에 반발하면 다음에 더 나쁘게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인도의 10억 인구가운데 5000만 명이 엄청난 富를 누리고, 1억5000만 명이 이른바 중산층이고, 4억명은 겨우 밥 먹고 사는 정도입니다. 3억명은 건드리면 터진다는 일명 不可觸賤民(불가촉천민)이고 1억 명은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죽습니다. 4억 명이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어도 상류사회가 눈도 깜짝하지 않는 곳이 바로 인도입니다. 빈민들은 다음 세상에 잘 태어나기 위해 비참한 생활에 순응하며 살고 있지요.

한국 여행객들 가운데 인도를 無慾(무욕)의 나라로 오해하여 때때로 큰 사고를 당하기도 합니다. 지난해 가이드 한 명만 대동하고 슬럼가를 취재하던 한국의 모대학 여자 강사가 바로 그 가이드에게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인도는 여성차별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심한 곳입니다. 여성들이 성적으로 학대당하고 비참한 삶을 살고 있지요. 작가들은 인도에 대한 제대로 된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자칫 독자들에게 잘못된 환상을 심어 주는 것은 아닌지 작가들은 작품을 쓸 때 신중해져야 합니다』

류시화씨는 예전의 한 인터뷰에서 『인도를 미화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울지 않는 사람은 없어요. 여행자들은 거기서 兩價(양가)감정에 빠집니다. 저것이 체념일까, 초월일까. 하지만 인도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게 혈족과 종교 등으로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어 있지요. 대신 인도인들은 정신의 평화를 찾아냈지요』

공식 비공식 인터뷰를 통해 류시화씨의 작품이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비결을 분석해 본 결과 세 가지로 결론 내릴 수 있었다.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를 할 정도의 탄탄한 문학적 기본기, 대중에게 인기 있는 명상과 인도라는 키워드를 류시화의 시각으로 철저히 再생산한 점,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작품을 쓴 점」이 바로 그것이다. 문학이 외면당하고 출판시장이 枯死(고사)하고 있다는 아우성이 들리는 지금, 류시화를 연구해야 출판 불황의 출구가 보인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