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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 정보철] 李會昌의 作戰參謀 劉承旼 여의도연구소장

金大中의 左派的 경제정책 비판한 保守 색채의 시장경제주의자

송동훈    dhso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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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은 劉守鎬 前 의원, 형은 劉承政 서울지법 부장판사
李會昌 후보에게 경제ㆍ국정ㆍ통일ㆍ복지 분야 정책 자문하다 정치권에 입문
李會昌 대통령 만들기의 核
  劉承旼(유승민·44) 여의도연구소장은 한나라당 李會昌(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작전 참모」다. 매일매일의 정세분석과 정책 자문, 연설문 작성 등 李會昌의 가장 가까이에서 李會昌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 서고 있다. 한나라당 당직자들에게 「李會昌 후보의 최측근이 누굴까요」 하고 물으면 대개 劉소장을 꼽는다.
 
  劉소장의 현재 직책은 대통령선거대책위원회의 미디어대책위원회(위원장 辛卿植 의원, 본부장 金武星 의원) 산하에 있는 메시지團의 단장이다.
 
  메시지團은 李會昌 후보가 국민에게 선보이는 모든 정치적·정책적 메시지를 관리하고 생산하는 곳이다. 劉소장은 메시지團 산하에 배치된 연설문 팀, 인터뷰 팀, TV토론 컨텐츠 팀을 직접 관할하고 있다.
 
  TV토론회와 각종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준비하고, 모든 연설문 작성과 정책포럼 참석자료를 챙기는 게 그의 일이다. 한마디로 李會昌 후보가 국민에게 선보이고 있는 모든 정책적 제안과 메시지는 劉소장의 손을 거쳐 생산된 것으로 보면 된다.
 
  그런 만큼 大選이 가까워질수록 劉소장은 바빠지고 있다. 최근에는 시간 단위로 밀려드는 각종 보고서와 정책자료집을 검토하고 수정하는 일로 24시간이 부족한 형편이다. 李會昌 후보에게 직접 보고하는 시간과 회의하는 시간까지 절약하고 있다.
 
  劉소장은 『잠 좀 자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한다.
 
  劉소장은 선대委가 본격적으로 출범하기 이전부터 李會昌 후보의 연설문을 도맡아 써 왔고, 경제·남북 문제 등 주요정책에 대해서 조언해 왔다. 劉소장은 여론조사를 통해 각종 정책에 대한 여론 지지도를 파악하고, 여론의 추이를 후보에게 보고하는 일을 해 왔다.
 
 
 
 李會昌의 정책 가정교사로 출발
 
  李후보의 정책 가정교사役을 맡아 온 것도 劉소장이다. 경제·국제·통일·복지 등 각 분야 소장파 학자들과 넓은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는 劉소장은 李會昌 후보와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李후보가 각 분야에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왔다.
 
  최근까지 劉소장은 1주일에 두세 번씩 李會昌 후보와 각 분야 전문가가 만나는 조찬모임을 꾸려 왔다. 빌라 게이트로 李會昌 후보가 현재의 옥인동 저택으로 이사오기 전에는 1주일에 두세 번씩 심야 보고를 위해 가회동 빌라를 찾았다.
 
  李會昌 후보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劉소장은 명문 법조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劉소장의 아버지는 판사·변호사를 지낸 뒤 13代(민정당)·14代(민자당) 국회의원을 지낸 劉守鎬(유수호)씨다. 그는 大邱지방변호사회 회장과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낸 원로 법조인으로, 자민련 전당대회 의장과 상임고문을 지내기도 했다.
 
  劉소장의 친형 劉承政(유승정)씨는 서울지법 부장판사이고, 자형 金鎭基(김진기)씨는 大邱고등법원 판사로 재직 중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劉소장은 전형적인 모범생은 아니었다고 한다. 劉소장의 형 承政씨는 『承旼이는 高3 때 가출한 친구를 찾겠다고 공부를 중단하고 찾아나서기도 했던 의리파』라고 말했다. 경북高(1976년 졸업)와 서울大 경제학과(1982년 졸업)를 졸업한 劉소장은 미국 위스콘신大 매디슨 칼리지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劉소장은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1987년부터 2000년 초까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연구위원으로 일했다. KDI 시절 劉소장은 주로 재벌정책, 공기업 민영화, 규제개혁, 산업정책, 공정거래정책 등을 다뤘다.
 
  그는 경제개혁추진위원회와 세계화추진위원회 등 다양한 정부위원회에서 일했고, DJ 정부가 출범한 1998년 이후에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과 공정거래위원회 자문관을 지내기도 했다. 경제학자 劉承旼은 시장경제주의자지만, 맹목적인 시장경제 지상주의자는 아니다.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정부가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해야 하고, 시장에서 실패한 사람들을 위해 복지·교육 등에도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劉소장의 생각이다. 이는 한나라당 정책의 큰 틀이기도 하다. 劉소장은, 정부가 개입해서 만드는 새로운 게임의 규칙은 관치경제·정경유착의 청산과 불공정의 근절이라고 말한다.
 
 
 
 KDI 연구위원 시절 李會昌 첫 만남
 
  金滿堤(김만제) 前 정책위의장은 『劉소장은 정책개발 능력과 정치적 감각을 갖추고 있는 최고의 브레인』이라고 칭찬했다. 그가 李會昌 후보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8년 11월이었다. 劉소장은 『아는 분의 소개로 李會昌 후보를 만나, 재벌정책에 대해 조언한 것이 첫 만남이었다』고 말했다.
 
  劉소장은 그 후 1999년 한해 동안 주말을 이용해 李會昌 후보를 만나 경제 이슈에 대해 정책 조언을 했다. 만남은 非정기적이었고, 비밀리에 이뤄졌다. 劉소장이 KDI를 그만두고 李會昌 후보를 공개적으로 돕기 시작한 것은 2000년 2월 한나라당 內 정책기관인 여의도연구소의 長으로 취임하면서부터다.
 
  그는 이를 두고 「자의반 타의반」이라고 말했다.
 
  KDI의 연구위원이었던 劉소장은 金大中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위기감을 가졌다고 했다. 劉소장은 『정권교체 후에 기업·금융 구조조정과 재벌정책 등을 보면서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다. DJ 정부의 경제정책 입안자들은 공개적으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내심으로는 색깔 있는 좌파적 정책들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劉소장은 이때부터 소위 「안티 DJ」 학자가 됐다. 각종 기고문과 토론회 등에서 DJ의 경제정책을 비난하던 劉소장은 결국 1998년 말부터 「대외활동 금지 처분」을 받았다. 1999년에는 실질적인 감봉 처분까지 받았다.
 
  결국 劉소장은 1999년 말 李會昌 후보가 제안한 여의도연구소장직을 받아들였다. 劉소장은 『DJ 경제정책에 대한 반감과 위기의식이 아니었다면, 李후보의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의도연구소장으로 한나라당에 입성한 劉소장은 3년여 동안 李會昌 후보의 핵심 브레인으로 활동했다. 李會昌 후보가 劉承旼 소장을 신뢰하는 이유는 많다. 그 중에서 대부분의 당직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장점은 세 가지다.
 
  우선은 똑똑하다는 것이다. 한 핵심 당직자는 『李후보 본인이 워낙 머리가 좋아, 설득하려면 충분한 이론적 근거와 설득력을 갖춰야 한다. 그런 李후보를 정책적으로 보좌하는 劉소장은 당연히 뛰어난 두뇌와 논리의 소유자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메시지團 산하의 인터뷰 팀 권영진 팀장은 『모든 이슈를 꿰뚫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엄청난 양의 자료를 소화한다. 정책자료·연설문·각종 포럼 자료를 철저하게 읽고 챙긴다』고 말했다.
 
  성실함이 두 번째 장점으로 꼽힌다.
 
  劉소장은 『일이 많기 때문에 일에 매달리는 것이 남들 눈에는 성실하게 비친 모양』이라고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단순하게 일이 많기 때문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9층에 있는 여의도연구소장실을 방문해 본 사람은 누구나 정책자료와 보고서 등 서류더미 속에 묻혀 있는 劉소장을 볼 수 있다. 劉소장은 하루에 3~4시간밖에 자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점심과 저녁을 사무실에서 도시락으로 시켜 먹으면서 일한다.
 
  劉소장의 세 번째 장점은 언행이 무겁고 신중하다는 것이다.
 
  李후보가 劉소장을 신뢰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미디어대책위원회 金武星 본부장은 『李후보는 자신을 과시하거나, 얘기를 이리저리 옮기거나, 자리를 탐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劉소장은 겸손하고, 입이 무겁고, 자리를 탐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실력·성실함·충성심 겸비
 
  한 핵심 당직자는 『劉소장이 黨에 들어와서 중요한 역할을 한 지 3년이 다 돼가는데 그동안 물의를 일으킨 적이 한 번도 없다. 李후보의 측근으로 있으면서도 적을 만들지 않았다. 劉소장이 그만큼 신중하고 자신을 위해 욕심을 부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밖의 장점으로 사람들은 李후보에 대한 충성심을 든다.
 
  劉소장의 충성심은 상도동계와 동교동계의 YS와 DJ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과는 다르다. 劉소장은 나라를 위해서 李會昌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고, 그 확신의 바탕에서 李후보에게 충성을 한다고 얘기한다.
 
  후보 비서실의 한 관계자는 『劉소장은 맹목적으로 李후보의 명령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다. 李후보에게 알맞은 정책적 조언을 하고, 방향이 틀리다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직언하고 논리적으로 설득시키려 한다』고 말했다.
 
  劉소장은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강한 의지를 갖고 있기도 하다. 李후보가 빌라 게이트·盧風(노풍)으로 인해 곤경에 처했을 때도 劉소장은 주변 사람들에게 『위기이지만 걱정할 것은 아니다. 곧 상황이 호전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劉소장 본인은 『주제를 벗어나는 행동을 한 적이 없고, 정치적인 욕심이 없다. 다만, 열심히 李會昌 후보를 도울 뿐』이라고 말했다.
 
  劉소장에 대한 반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劉소장이 통일정책 등에 있어 지나치게 보수적이라고 지적한다. 한 수도권 초선 의원은 『후보의 핵심 정책 브레인인 만큼 균형 잡힌 시각에서 정책을 제시하고 후보에게 선택의 권한을 줘야 하는데,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있다』고 말했다.
 
  李후보로부터 지나치게 신임을 받는 것도 일부 의원들에게는 질시와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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