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지의 성격으로 시작된 이 잡지는 점차 독자들의 열망을 수용, 현실로 뛰어든다. 月刊朝鮮은 1980년대 「언론자유의 한계점에서 아슬아슬하게 정권과 맞서면서」 또 한편으로는 「수사식 보도」의 전통을 수립하게 된다. 사회, 정치 그리고 북한문제에 관련한 각종 특종을 통해 月刊朝鮮은 스스로의 성격과 이미지, 그리고 영향력을 만들어왔다. 1980년대 말부터 月刊朝鮮은 두 가지 역할을 하게 된다. 현존 권력의 부정과 비리에 맞서면서 동시에 체제 수호자의 역할을 하는 것, 그리고 북한의 현실을 알리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이 잡지의 미덕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평범한 국민들보다 한 발짝 뒤에서 걸음을 놓치지 않고, 때로는 딱 한 발짝 앞서가며 民心을 읽어왔다는 것이다
未踏의 현지로
필자가 처음으로 「月刊朝鮮」을 가까이 접한 것은 1996년 6월. 대학원 논문을 쓰고 있던 중 역대 서울대 총장 연쇄 인터뷰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그때가 사실은 初相逢(초상봉)이었다.
최고 40만부 이상을 발행해 왔다는 한국 최정상급 월간지임에도 필자에게는 전철의 광고로나 익숙해져 있는 이름이었다. 편집장이 필자에게 「月刊朝鮮」 19년史 평가를 청탁했을 때는 나의 이런 寡聞(과문)이 되려 객관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있지 않았을까 나름대로 판단했다. 그리하여 未踏(미답)의 현지로 떠나는 편력이 시작되었다.
보름 가량의 시간을 「月刊朝鮮」 19년, 평균 6백쪽이 넘는 빽빽한 활자본 2백28권에 묻혀 살았다. 국립 중앙도서관과 서울대학교 도서관, 그리고 과천 시립도서관을 휴관일을 피해가며 이용했다. 중앙도서관의 연속간행물실은 폐가식이어서 책의 상태가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는 개가식으로 운영하고 있어 상태는 초기로 갈수록 나빴다. 목차가 떨어져 나간 호, 아예 글을 찢어서 가버린 비양심적인 학자(?)의 소행도 보였고, 「月刊朝鮮」 몇월호라는 볼펜글씨가 기사 머리에 씌여 있거나 간지가 꽂혀 있는 것으로 보아 복사를 해간 흔적도 심심찮게 발견되었다.
1996년 1월호부터만 보관하고 있는 과천시립도서관의 「月刊朝鮮」 역시 수많은 사람들의 손때에 절어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잡지를 읽어온 것일까? 왜 사람들은 시대착오적으로 두꺼운 이 잡지를 아직도 읽고 있는 것일까? 재미있는 것이 하고 많은 이 개명한 영상물과 전자매체의 시대에 말이다.
회색지대에 머문 80年代
「月刊朝鮮」 속에 묻혀 있는 동안 필자는 한동안 감정의 起伏(기복)에 시달렸다. 목차만 따라가도 시대의 흐름과 그 緩急(완급)이 느껴졌다. 시간적으로는 고대사에서 최근대사, 현재, 미래에까지, 공간적으로는 한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유럽, 미주, 그 어느 無主地(무주지)에까지, 그리고 인간이라는 깊이 모를 존재들의 내면 깊숙이까지 관심을 뻗치고 있는 놀라운 오지랖에 숨이 몰릴 때가 있었다. 오랜 시간 理論書(이론서)에 익숙해져 있는 내게 이토록 현장적이고 당대적인, 그리고 경험적이고 귀납적인 지식의 세계는 아직 낯설었다.
1980년 4월, 서울의 봄에 탄생한 창간호에는 자유의 냄새가 배어나왔다. 4·19 20주년을 맞은 시절답게 군사정권이 물러가고 이제 민주주의가 꽃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권두언을 쓴 이화여대 대학원장 李建鎬(이건호) 교수는 「불어라 봄바람, 해빙의 계절에 부쳐」라는 권두언에서 이렇게 썼다.
「겨울은 가는 것일까, 아니 이미 간 것 같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해빙이다. 지난 겨울을, 그것도 영하 20도에 가까운 겨울을 지나치게 오랫동안 회고만 하고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미소지으며 따스한 햇볕 아래서 소생하는 풀잎들이며, 아름다운 새소리며 흐르는 시냇물을 거리낌없이 즐기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겨울은 가지 않았다. 그해 5월 광주에서 심상찮은 변이 일어났는데도 「月刊朝鮮」 7월호에는 별 말이 없었다. 다만 「와이드 화보 광주사태」라는 제목이 붙은 11장의 흑백사진과 경찰측 자료로 보이는 두 장짜리 사건일지가 있을 뿐이었다. 장발의 청년들이 화염과 가스 속에서 서툴게 걷고 있는 모습, 교련복에 장총을 든 학생, 헬맷과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남자와 딱정벌레같이 뒤집힌 자동차, 그리고 계엄군이 지나간 뒤 공원 앞에 모여 앉은 중절모의 노인들. 이 노인들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불안을 감추고 있다.
같은 호 맨 뒷면에서 편집자는 「최근 일련의 사정들은 국내 각 분야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잡지 제작에 있어서도 예외일 수가 없다. 그런 가운데서도 본지는 창간 취지가 퇴색됨이 없이 최선을 다할 것임을 다시 한 번 다짐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암시와 더불어 「月刊朝鮮」은 이내 답답해졌다. 독자들이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단골 이발소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한달에 한 번 가는 삼류 이발비용 천5백원을 돌려 月刊朝鮮과 예약을 하고부터는 떨리는 손으로 빗과 가위를 든 거울 앞에 선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는 30대의 시골 匹夫(필부)」(80년 9월)라고 소개한 전남 보성의 한 독자는 「月刊朝鮮이 만일 지금 수준으로 머문다면 차라리 예전대로 이발소에나 가서 동네분들의 時談(시담)이나 듣겠다」고 으름짱을 놓았다.
「독자를 주인으로 역사를 심판관으로」 해 달라는 주문(80년 7월), 「直筆(직필)은 사람이 죽이지만 曲筆(곡필)은 하늘이 죽인다」는 폐부를 찌르는 격언(80년 11월)들이 답지되는 동안에도 「月刊朝鮮」은 주로 민주주의, 지도자, 공화제, 복지국가 등을 주제로 원론을 확인하거나 한국사상 재정리 등의 특집을 다루면서 회색지대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초기 月刊朝鮮은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술지적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독자들의 채찍은 매서웠다.
「수많은 저명 교수들에 의한 집필이 과연 좋은 잡지를 만드는 가장 좋은 비방이 아니다. 우리 현실이 암담하다고 할 때 과연 머리만 가지고 이를 개선하겠다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현실을 바로 보는 눈과 현실을 느끼는 감각, 또 현실과 맞부딪치는 손과 발의 보조가 맞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카데미즘도 좋으나, 저널리즘도 크게 생각해야 된다는 뜻이다. 사회과학 계통의 대학 학술지에다 간단한 잡문 등을 끼워 넣을 듯한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80년 6월)
독자의 권력
月刊朝鮮을 검토해 가면서 이 잡지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단어를 하나만 대라고 하면 「힘」이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힘 센 정치인에서 힘 있는 재벌, 힘 있는 조직, 힘 있는 글…. 도무지 힘과 힘의 사활을 건 각축이 없다면 이 잡지는 맥이 빠지고 말리라는 생각이었다. 多種多樣(다종다양)의 「힘들」 로 인하여 현실은 그야말로 다글다글 끓어오르고, 잡지는 그 속에서 재미있을 꺼리(?)들을 영리하게 찾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가장 강력한 힘은 「독자의 權力(권력)」이었다. 따분한 것과 궁금한 것을 못참는 이들 독자들은 3金씨와 같이 月刊朝鮮 최고의 단골손님은 아니었다. 그러나 장외에서 훈수를 두다가도 불쑥 뛰어들어와 자신들의 요구나 취향을 관철시키느라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칭찬 몇 마디로 편집자를 구슬리기도 했다. 그들이 이 잡지를 천천히 바꾸고 있었다.
아카데미즘에서 저널리즘으로
1980년 7월 문공부는 1백 72종의 잡지를 폐간했다. 8월에는 수백명의 언론인이 대량 해직됐다. 그 해 말에는 언론통폐합을 단행하여 일간지 11개를 폐간 또는 다른 신문에 통합시키고, 방송사도 통합하여 언론 구조를 대폭 개편했다. 편집자는 1980년을 마무리하면서 「우리가 항용 쓰는 多事多難(다사다난)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큰 일을 겪고 어려운 고비를 수없이 넘긴 해도 갔다」라고 했다.
대신 독자들의 성화에 잡지 저널리즘의 징후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필진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교수들 사이에 記者와 르포라이터, 프리라이터, 다큐멘터리 작가, 자유기고가 등 비제도권 필자들이 끼여 들기 시작한 것이다. 말하자면 「집중취재; 순복음 중앙교회, 천막에서 왕국이 이뤄지기까지」라는 소설가 李光馥(이광복)씨의 글과, 「헤겔철학 수용의 문제- 임석진의 정신현상학 번역을 계기로」(81년 4월)라는 학술논문이 공존하고 있었다.
1982년 4월, 편집자는 「月刊朝鮮의 발행부수는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것보다 훨씬 많았지만 3월호를 계기로 비약적인 신장을 했다」라고 쓰고 있다. 원인이 된 기사는 「도큐멘터리 5·16 군사혁명」. 필진은 조선일보 편집국 특별취재팀의 차장급 기자 崔埈明(최준명·경제부), 曺然興(조연흥·사회부), 金德亨(김덕형·문화부) 세 사람이었다.
당시 일간지들이 경쟁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한 朴正熙(박정희) 시대의 정치 이면사가 당국의 압력으로 일제히 중단됐다. 조선일보는 연재 준비중이던 기사 5백매를 한꺼번에 月刊朝鮮에 싣게 되었다. 1982년 초반부터는 일간지를 대신하여 잡지들이 현실정치가 不在(부재)한 틈을 메꾸기 시작했다. 단골 메뉴는 제5공화국 이전의 정치비화들이었다.
역대 月刊朝鮮 부장 許述(56·백범기념관건립위원회 사업본부장), 劉正顯(59·대전시티즌축구단 사장), 趙甲濟(54·현직) 씨의 일치된 견해는 1980년대 언론자유를 그나마 폭넓게 누린 것은 월간지라는 것.
『안기부와 끊임없는 승강이를 벌이면서 만들긴 했지만 일간지에 비해 게릴라식 통제가 어려웠고』(許述) 『언론을 완전 통제하는 것은 어려우므로 그나마 월간지에 약간의 숨구멍을 터 놓았던』(劉正顯) 측면이 있었다.
월간지들은 부수경쟁을 하면서 독자를 겨냥했다. 『언론자유의 한계점에서 아슬아슬하게 정권과 맞서면서』(趙甲濟) 정치 부재의 시대에 지난 정권의 秘話로써 독자의 정치열을 부추기기도, 채워주기도 했던 것이다.
정치 秘話로 본격 잡지 저널리즘 시대
이 때 두드러진 필자는 李祥雨(이상우·63)씨.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 출신으로 당시 일본 아사히 TV 서울지국 기자로 있던 그는 82년 5월호에 「워싱턴-서울의 정치 드라머」를 기고하면서 잡지 저널리스트 시대를 예고한다. 그는 박정희 정권의 어두운 부분에 초점을 맞춰 독자를 이끌어 들였다.
MBC 해직기자 출신이면서 소설가였던 吳交力鎭(오효진)씨의 등장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1982년 4월 경남 의창군에서 현직 순경의 난동으로 1백여명의 사상자가 난 사건 현장을 취재한 「세상천지 사람들아 이런 일이 우짠일고」라는 2백50매짜리 두툼한 기사로 등장했다. 그리고 극작가 金敎植(김교식)씨도 「실록 金昌龍(김창용)」으로 제1공화국 시대를 조명하면서 주 필자의 한 사람으로 부상한다.
무엇보다 이 잡지의 발행부수를 늘리는 역할을 한 기사는 李英石(이영석) 당시 중앙일보 편집위원의 「JP와 HR」(82년 11월). 김종필과 이후락의 대결을 다룬 이 기사는 현실정치의 磁場(자장)에 한발 가까이 다가서서 정치에 목마른 독자들을 끌어 들였다. 당시 편집주간을 맞고 있었던 李興雨(이흥우·71·재팬포럼 발행인 겸 편집인)씨는 이 기사로 부수가 2~3만부에서 5~6만부로 두 배 이상 뛰었다고 회상한다.
「잡지의 사명감과 대중성은 조화되어야 할 명제이면서도 자칫 상치되는 위험성이 항상 따른다. 재미 있으면서도 사명감을 다하는 내용, 혹은 그 두 기사의 이상적인 배분, 많은 제약 속에서 그런 명제를 염두에 두면서 제작에 임하고자 한다」(83년 2월)는 편집자의 말에는 학술지의 면모를 유지하기 어려워진 편집자의 고뇌가 들어 있다. 그러나 독자들의 열망을 흡수하는 것이야말로 잡지의 사명이 되었다.
이런 흐름에 따라 그동안 請託(청탁)과 編輯(편집)을 主로 하고 뒷전에 있었던 月刊朝鮮 기자들이 본격적으로 취재 일선에 나서는 변화가 일어난다. 徐炳旭(서병욱) 기자의 「포니냐 맵시냐-다시 불붙은 자동차 판매전쟁」(82년 12월), 「아파트는 투기장터인가」(83년 4월), 그리고 다음 호 朴基龍(박기룡) 기자의 본격 인터뷰 기사 「신현확 전 국무총리와의 對話-잔 파도에 집중하면 큰 흐름을 망친다」 등 현재까지 주류를 이루는 기사의 전통이 수립되기 시작한다.
月刊朝鮮 기자로 합류하기 전에 쓴 오효진씨의 「경기고와 서울고」(83년 2월)는 인맥조사의 효시로 주목할 만하다. 관계, 법조계, 업계, 학계, 의약계, 언론계, 문화계 등에 형성되어 있는 學脈(학맥)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어 한국 사회 권력 형성의 원천을 탐사해 갔다. 이어 「서울법대」, 「경북고」(85년 6월)로, 가장 최근에는 「광주-목포」(98년 4월) 학맥조사까지 지속된다. 같은 맥락에서 1990년대에 들어 세 차례에 걸쳐 실시했던 「공직자 병력조사」는 정치권의 태풍을 몰고 오는 데에도 기여했다.
月刊朝鮮 역사상 1984년은 잡지 저널리즘의 틀이 잡히는 해로 기록될 만하다. 金大中 당시 출판국장(現 조선일보 주필)과 중앙일보 해직기자 출신 許述 부장 체제에서 月刊朝鮮 기자들의 약진은 두드러진다. 1983년 10월 합류한 趙甲濟 기자는 사회문제에 깊이 파고들어 「수사식 보도」의 전통을 마련했다. 1983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세 번에 걸쳐 「코리안 커넥션, 히로뽕 지하제국 탐험」, KAL기 사고의 배경을 파고든 「KAL에 칼을 댄다」(84년 4월) 등이 그것이다.
KAL에 관한 문제제기는 「비행기 왜 자꾸 떨어지나」(85년 11월)를 거쳐, 이듬해 국제적 특종이 된 「KAL 007 최후의 목격자」(86년 12월)로 이어진다. 뉴욕 타임스는 月刊朝鮮의 이 기사를 외신면 주요기사로 다루었고 일본의 「문예춘추」 등 세계 여러나라 언론이 인용, 보도했다. 나중에 블랙박스 분석결과 月刊朝鮮의 보도대로 007편 점보기는 자동항법장치(INS)를 끄고 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5월호에는 「前 대통령 박정희의 肉筆原稿」가 특종으로 실렸고, 6월호에는 「이승만 대통령 제거계획」, 연이어 7월호에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 고백」이 실려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같은 호에 남북회담의 秘話(비화) 「한밤에 만난 김일성」이 실렸다. 당시는 주류가 아니었지만 본격적인 북한 관련 첫 기사로 볼 수 있다. 이 기사는 일본의 요미우리 신문이 인용 보도했다.
사망자 「2천명」說과 「2백명」說
이 시기에도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朴鐘圭(박종규)와 車智澈(차지철)」이라는 표제가 자주색 테이프로 뭉개진 흔적이 뚜렷하다. 모종의 권력이 잡지 위에 엄존하고 있음을 알리는 隱喩(은유)와도 같았다. 전두환 정권은 전임자 박정희에 관련된 부정적 기사를 결사적으로 막았다고 하는데 돌이켜 보면 全정권은 전임자의 격하를 막은 현재로서는 유일한 정권으로 남아있는 셈이다. 이 기사는 시간을 기다려 이듬해 12월에 실리게 된다.
85년 2·12 총선. 이 선거에서 국민들은 新民黨(신민당) 후보를 대거 당선시켜 절대권력의 맞수를 창출한다. 이리하여 85년부터 87년 6월까지 민주화로 뜨거운 정치의 시대가 열린다. 85년 4월 「민정당 낙선의원, 왜 떨어졌나」 라는 기사에서 趙甲濟 기자는 「우리 사회의 알짜배기 계층이 그 正義感을, 정의라는 추상명사를 黨名(당명)으로 쓰고 있는 정당을 향해 발사했다」라고 맺고 있다. 알짜배기 계층이라면 중산층을 의미할 것이고, 정의감이라면 현존 권력이 무언가 부당한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암시일 터이다.
5년전 화보로 언뜻 비쳤던 광주사태가 긴 잠을 깨고 月刊朝鮮 85년 7월호에 다시 등장한다. 月刊朝鮮 경쟁지 「新東亞」와 함께 이 문제를 처음으로 지면에 드러냄으로써 정부의 간섭을 불렀다. 그러나 사망자 추산에서 月刊朝鮮은 당시 취재기자 세 명의 의견을 종합하여 2백명설을 내세웠다.
이 기사로 月刊朝鮮은 일부 지역에서 불매운동을 당하는 지탄을 받았다. 나중에 진실은 2백명편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시대적 진실」은 어느 편에 있었는지(그런 것이 있다면) 한 번 쯤 생각해 볼 부분이다.
85년 7월 「오효진의 인간탐구」가 시작된다. 李敏雨(이민우) 당시 신민당 총재를 시작으로 정계, 종교계, 예술계, 재야인사 할 것 없이 폭넓은 인물을 대상으로 해서 90년대까지 이어진 인기 시리즈다. 그가 탐구한 인물중에 盧泰愚(86년 3월), 金泳三(86년 6월), 金大中(87년 8월)이 대통령이 되었다. 許述 전 부장은 오효진의 기사들에 대해 「糖衣錠(당의정)」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평한다.
現代史 심층부에 접근하다
언론자유의 폭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었지만 聖域(성역)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국 내 CIA」(86년 2월)로 조갑제 기자가 사표를 내야 했던 사건과 87년 10월 「이후락 증언」(오효진)에 대한 당국의 제작방해는 대표적인 筆禍로 꼽아둘 만하다. 신동아와 함께 다룬 「이후락 증언」 기사를 당국이 문제삼는 바람에 40만부가 넘는 책이 팔려 나갔고 月刊朝鮮 史上 이 기록은 지금까지 깨어지지 않고 있다.
1986년에서 87년으로 가는 길목에서 민주화의 열기는 정점으로 치닫고 있었다. 86년 6월에는 「각계 시국선언문 총수록」에서 재야의 목소리를 담고 있고, 오랫동안 금기시되어온 직선제 개헌이 관심권내에 들어온다. 그리고 1987년 이른바 고문정국으로 접어들어 고문은 月刊朝鮮 최대의 관심사로 부각된다. 「고문과 조작」 시리즈, 「판사들의 고민」을 내보내는 등 이 시기 人權(인권)에 초점을 맞춘 기사를 많이 다룬다.
민주화 열기의 반영으로 87년 6월 月刊朝鮮은 「4·13 개헌 유보조치에 대한 각계의 반응 일지」를 싣고, 7월에는 「시국에 대한 33인의 견해, 民意(민의)를 따르라」 라는 時論(시론)을 내보낸다. 그리고 6.29 선언이라는 「국민과 정권간의 대타협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그 직후 발간된 8월호에는 그 때의 감격이 「평화혁명」이라는 대형 활자로 나타나 표지를 덮는다.
민주화의 열기가 고조되어 그 분수령을 넘을 때까지, 곧 85년에서 87년 사이 月刊朝鮮의 책값은 불과 3백원밖에 오르지 않았다. 책이 많이 팔렸다는 의미, 또는 물가가 안정되어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정국은 대통령 선거로 다시 달아오른다. 月刊朝鮮의 다음 표적은 전두환 정권시대의 총체적인 비리·비화를 파헤치는 것. 가장 돋보이는 것은 특종 「정승화 증언」(87년 9월)이다. 이 기사를 통해 「월간조선」은 전두환 정권의 가장 큰 약점인 12·12 사건을 건드리기 시작한다.
당시 편집장 劉正顯씨에게 기억할 만한 기사를 물으니 『기자가 흔히 낙종은 잊어버리고 특종만 기억한다는 말이 있지만 정승화 증언은 전두환 정권의 발생적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치 않을 때 그것을 밝힌 중요한 기사』라고 말했다.
이 특종을 계기로 안개 속에 가려져 있었던 12·12가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부하들에게 묶여 고문까지 당한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의 증언은 국민들의 公憤(공분)을 샀고 잡지는 순식간에 25만부가 팔려 나갔다. 나중에 이 증언은 책으로도 출판되었다(「12·12 정승화는 말한다」, 까치).
이어진 1987년 12월, 「긴급특집 12·12사건의 진상, 장군들의 밤 10시30분」으로 12·12사건은 좀 더 분명하게 설명되었다. 그 후 「내가 겪은 80년 5월의 광주」(88년 3월), 「전경환의 새마을 본부」(88년 4월), 「전두환의 인맥과 금맥」(88년 5월), 게다가 하나회 멤버에서 정치자금, 부정부패의 혐의까지 5공비리에 대한 총공세가 펼쳐졌다. 月刊朝鮮은 5공 청문회의 교과서를 미리 쓰고 있었던 셈이다. 최근간호인 99년 3월호에는 나카소네 전 총리의 초대로 일본행에 다녀온 全斗煥씨 부부의 평화로운 나날을 담고 있다. 사뭇 대조적인 장면이었다.
동시에 「국가안전기획부」, 「치안본부 대해부」(88년 3월), 「주한 미 대사관」(88년 11월) 등 권력이 뭉쳐있는 곳곳에 月刊朝의 시선이 꽂히기 시작한다. 이제 언론자유의 폭은 가늠할 수 없어 보인다.
理念戰線 이상 없는가
그러나 月刊朝鮮은 다시 과거청산의 열기 속에서 냉정을 유지하기 시작한다. 1988년 들어 우리 사회의 좌우 대립구도가 더욱 분명해진 때문이다. 88년 후반기의 「좌익단체 연구」, 「논쟁:우익궐기론은 신파시즘 vs 5만 좌익의 심각한 위협」(88년 10월) 등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좌와 우의 극단화 양상이 펼쳐지는 가운데 月刊朝鮮은 균형감각을 발휘했다.
이 때 「전환시대의 논객 이영희 교수」(88년 10월) 인터뷰에서 『체제수호라고 하는데 도대체 우리나라에 지켜야 할 당위성을 가진 체제라는 게 여태껏 있었습니까』(326쪽)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월간조선은 體制(체제)와 政權(정권)은 구분되는 것임을 인식하고,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은 「지켜야 할 당위성 있는 체제」임을 분명히 한다.
요컨대 학술 중심에서 저널리즘으로, 80년 후반기 들어 정치 저널리즘으로, 정체성을 확립해 온 月刊朝鮮은 89년에 이르러 두 가지 중요한 역할을 맡고 나섰다 .현존 권력의 부정과 비리에 맞서면서 동시에 체제수호자의 역할을 하는 것. 이것은 정권반대가 체제반대로 이어지고, 자연스럽게 親北(친북)성향으로 변해가는 세력과 戰線(전선)을 형성하는 계기가 된다.
1993년 韓完相(한완상) 당시 통일부총리, 1995년 金正男(김정남) 당시 청와대 교문수석, 그리고 최근 98년 11월에 시작된 崔章集(최장집) 대통령정책자문위원장과의 사상시비의 맥은 거슬러 올라가면 이 시기에 닿아 있다고 할 것이다. 은폐되고 왜곡된 「사실」을 밝히는 작업에 돌진했던 月刊朝鮮은 이제 이념전선의 오른편에서 체제와 반공이념의 수호자로 90년대의 아젠다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북한에 대한 관념적인 傾倒(경도)라는 현상과는 별도로 이때부터 月刊朝鮮은 북한 현실에 대한 사실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그 계기가 된 것은 1989년 9월부터 3회에 걸쳐 게재된 「김현희는 말한다」. 북한 핵 문제와 북한 인권, 군대 및 안보 관련 사안은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해 지금까지 月刊朝鮮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특히 탈북 벌목공·정치범 수용소 등 북한 인권에 관한 집요한 문제제기로 월간조선은 94년 관훈클럽 언론상을 받는다.
실용주의적 역사관과 사실적 北韓 접근
이와 함께 秘話(비화), 秘錄(비록)을 통해 과거 정권의 어두운 그림자에 집착해 왔던 월간조선은 시각을 바꾸어 국민의 입장에서 「그동안 우리가 잘 했던 것은 무엇인가」를 묻기 시작한다. 그 속에서 월간조선은 위대한 성취의 역사를 발견하고 현대사에 대한 평가작업에 들어 갔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작업은 이런 맥락에 닿아 있었다.
북한문제와 현대사 재평가 작업의 결과물은 두 권의 별책부록으로 집대성되었다. 북한 실상에 관련해서는 「북한, 그 충격의 실상」(91년 1월), 우리 현대사를 긍정적인 시각에서 조명한 것은 「한국인의 성적표」(95년 1월).
「살아본 사람과 가본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4백72쪽 분량의 부록 「북한, 그 충격의 실상」은 관념적이고 허구적인 북한 인식을 돌려놓는 계기가 됐다. 이 책은 일본 최대의 출판사 고단샤(講談社)에서 펴낸 북한관련 「月刊朝鮮 三部作」의 하나로서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북한 입문서」이다.
「피·땀·눈물로 쓴 해방 50년 우리 시대의 內容證明(내용증명)」이라는 부제를 단 「한국인의 성적표」 역시 7백쪽에 달하는 단행본으로 발행된다.
「해방 50년의 진정한 의미는 實用(실용) 勞動(노동) 軍事(군사) 科學(과학)을 경시한 채 事大主義(사대주의)에 근거한 위선적 名分으로써 우리 민족의 에너지를 고갈시켰던 朝鮮朝的 지배이념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라고 현대사에 대한 감격을 말하는 이 책은 月刊朝鮮의 역사관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80년대 말에 시작된 이념전쟁의 오른편에서 체제 부정 세력에게 내놓는 實證資料(실증자료)이기도 했다. 「무차별적인 韓國 現代史 부정과 反軍(반군), 反財閥(반재벌) 캠페인 및 親北 선동의 본질은 論理가 아닌 말장난, 실천이 불가능한 空論(공론), 현실을 외면한 名分論(명분론)」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또 9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50주년을 기념하여 조선일보에서 주최,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된 성취의 역사 「우리들의 이야기」의 중요한 자료로도 십분 활용된다.
90년대에도 특종이 많은 잡지의 전통은 계속되었다. 80년대 사회문제와 정치문제에서 대부분의 특종이 나왔던 것과는 달리 북한 관련 특종이 유독 많은 것이 특징이다. 89년 3월호의 「李穗根(이수근)은 간첩이 아니었다」, 「목탄차로 달리는 공화국」(90년 12월), 「간첩 이선실 사건」(92년), 「북한탈출 벌목공들의 러시아 유랑 25시」(94년 3월), 「김일성은 올해 안에 死亡」(94년 5월), 「안명철 증언-임신자 비밀처형과 생체실험의 내막」(95년 3월), 「김정일의 육성 고백」(95년 10월호 부록 녹음테이프), 그리고 최근의 「황장엽 망명」(97년) 특종 등.
황장엽 망명은 월간조선의 金容三 기자가 조선일보에 먼저 기사를 게재한 특종으로 수개월 전에 기사가 준비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었다.
시청각 매체와의 결합
그리고 두 가지 破格(파격)이 시도된다. 언론 사상 최초로 녹음 테이프와 비디오 테이프를 부록으로 내놓은 것. 그 첫 시도는 「12·12 사건-장군들의 현장육성」이라는 제목으로 보안사의 12·12 사건 감청 테이프를 입수, 해설을 부쳐 재가공한 것이었다. 그 이후로도 金正日, 朴正熙, 미 대통령 클린턴의 연설이 월간조선 독자들에게 제공된다.
비디오 테이프로 제작된 것은 북한에서 나온 다큐멘터리 「야수들의 싸움」(97년 6월). 호랑이와 사자의 대결을 영상에 담은 이 이색적인 볼거리까지 포함하면 월간조선은 이제 활자, 오디오, 비디오를 동원한 다중적인 전략으로 독자를 공략했던 것이다. 이런 시도는 시청각에 예민한 1990년대 독자들에 대한 봉사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화분야에서의 강성 발언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93년부터 시작된 「한자쓰기 운동」과 「한글전용 반대」. 이 잡지는 95년 「舊 중앙청 건물 철거」에 반대 입장을 固守(고수)한 국내 유일의 언론이기도 했다.
「김영삼 정권은 풍수 정권인가」(95년 10월)라는 제하의 기사는 옛 중앙청 건물을 철거하겠다는 사고의 원천을 찾아 실증적인 자료로 공박하는 내용이다. 비과학적인 풍수설에 기대어 민족정기를 부활시키겠다는 발상은 명분일 뿐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는 빠져있다는 결론이었다. 한국통으로 알려진 일본 산케이 신문의 구로다 기자는 「한국인의 역사관」이라는 책에서 이 기사에 대한 감상을 이렇게 쓰고 있다.
「한국에서는 매스컴을 포함한 世論(세론)이 對日(대일) 과거사에 관한 한 事實(사실)과 상관없이 무엇이든 말해도 된다, 또는 써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만큼 센세이셔널하다. 그러나 국수주의적 정서보다 「事實(사실)」에 입각해서 기사를 쓰는 언론이 있음을 확인한 것은 기쁜 일이었다」
舊 중앙청(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반대는 결국 좋은 성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다만 구로다 기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쇠말뚝을 뽑아 독립기념관에 전시하겠다는 방침만은 시행되고 있지 않은 듯.
그러나 「오보 없는 언론은 특종 없는 언론과 같다」는 언론계의 변명성 격언으로도 면책받을 수 없는 誤報도 있었다. 94년 5월, 「작가 이병주는 빨치산이었다!」에 이어 다음호에는 「작가 이병주는 빨치산이 아니었다!」가 실렸다. 빨치산 경력 여부가 당사자나 후손들에게 아직도 중요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 살고 있음을 인정한다면 이 誤報는 「본질적인 실책」이었음에 틀림없다.
『사실확인 작업도 없이 무책임하게 내놓은 편집장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로서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대책을 세우기 어려운 무명의 평범한 사람이 당했다면 더 심각했을 것이 아닌가. 그때부터 월간조선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 정기구독도 끊었다. 언론이 正道를 걷기 위해서는 제3, 제4의 확인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철저한 조사 끝에 자신이 없으면 발표도 말아야 한다』
故 이병주 선생의 장남 李權基(52ㆍ부산 경성대 인문대학장) 교수는 5년이 지난 지금도 월간조선에 대한 불만을 풀지 않고 있었다.
독자의 權力을 아는 잡지
走馬看山(주마간산)격으로 훑어본 터에 遍歷(편력)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럽지만 「月刊朝鮮」으로의 짧은 편력, 혹은 긴 소풍은 몇 가지 감상과 할 말을 남기고 있었다. 도서관에 묻히기 전에 필자는 편집장께 『월간조선은 너무 이념적인 잡지 같다』라고 말했던 것과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철저히 독자에게 영합하는 잡지」라고 말하는 쪽이 좀 더 정확할 것 같았다.
독자들을 계도하고, 지도하고, 이끌기 보다 오히려 독자들에게 계몽당하기를 원하는 쪽이었다. 독자에 대한 믿음과 존중이 남다른 잡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월간조선 19년치를 훑어보기 위해 고투한 보람은 힘과 힘들의 투쟁을 거중조정하기도 하고, 승자를 가려내기도 하는 「무서운 判官으로서의 힘」, 곧 독자의 권력을 발견한 데 있었다.
월간조선은 선취된 이론과 관념으로 이들 독자 대중을 계도하고 지도하는 대신 독자, 또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평범한 국민들의 한 발짝 뒤에서 걸음을 놓치지 않고, 때로는 딱 한 발 앞서가며 민심을 읽는 집중력을 보여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걱정되는 바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 달그락거리며 세상을 시끄럽게 하려는 노력은 저널리즘의 속성이니 두기로 하자. 충격이 관습처럼 되어버린 마당에 격론, 대결, 충격, 육성 고백, 직격 등의 말들이 동원된다 해서 정말로 충격을 받는 사람도 이제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대는 어디에 있었는가
90년대 이후 「월간조선」은 두 발 중 적어도 한발은 떼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0년 「현대사 긍정」, 「북한 인권」이라는 입장은 냉정하게 따져보면 전자는 시간적으로 「과거」, 후자는 공간적으로 「저쪽」이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는 어디에 있는가.
1997년 우리가 IMF로 갈 때, 우리 사회에는 「지식의 고갈」이라는 안타까운 현상이 있었다. 어떤 경제학 교수는 『우리 같은 경제학자들은 모두 모아서 무인도에 유폐시켜야 한다』라고 했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몰라서 미국, 일본, 유럽의 학자들을 찾아 비싼 값에 「기사」와 「논문」을 사들이느라 바빴다. 그러고도 한국의 언론, 한국의 지식인들은 본질적인 자기 반성을 하지 않았다.
「냉전이 끝났다」고 말한 지 오랜 선진 諸國(제국)에서는 한참 전에 자본의 놀라운 增殖力(증식력)을 알아채고 한 나라를 통째로 투기 대상으로 삼을 만한 파괴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세계가 이렇게 빠르게 돌아가는 와중에도 지금 이곳에는 정치와 이념이 범람했다. 換亂(환란)의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언론에서도 눈치채고 있었겠지만 손을 쓰기는커녕 제대로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독자에게 영합한다는 것은 독자에게 책임을 진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나라를 지키겠는 잡지」라는 주장에 앞서 언론의 使命이라는 흔한 말도 있는데 월간조선은 거기에 얼마만큼 충실했는지 자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월간조선」이 지난 19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해 온 역할에 대한 일말의 신뢰 때문에 필자는 결국 이렇게 묻게 된다. 외환 위기가 절정해 달하고 있을 때까지 「대통령은 없었다」(98년 3월)고 문제제기했던 「月刊朝鮮」 그대는 그때 어디에 있었는가.●
필자가 처음으로 「月刊朝鮮」을 가까이 접한 것은 1996년 6월. 대학원 논문을 쓰고 있던 중 역대 서울대 총장 연쇄 인터뷰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그때가 사실은 初相逢(초상봉)이었다.
최고 40만부 이상을 발행해 왔다는 한국 최정상급 월간지임에도 필자에게는 전철의 광고로나 익숙해져 있는 이름이었다. 편집장이 필자에게 「月刊朝鮮」 19년史 평가를 청탁했을 때는 나의 이런 寡聞(과문)이 되려 객관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있지 않았을까 나름대로 판단했다. 그리하여 未踏(미답)의 현지로 떠나는 편력이 시작되었다.
보름 가량의 시간을 「月刊朝鮮」 19년, 평균 6백쪽이 넘는 빽빽한 활자본 2백28권에 묻혀 살았다. 국립 중앙도서관과 서울대학교 도서관, 그리고 과천 시립도서관을 휴관일을 피해가며 이용했다. 중앙도서관의 연속간행물실은 폐가식이어서 책의 상태가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는 개가식으로 운영하고 있어 상태는 초기로 갈수록 나빴다. 목차가 떨어져 나간 호, 아예 글을 찢어서 가버린 비양심적인 학자(?)의 소행도 보였고, 「月刊朝鮮」 몇월호라는 볼펜글씨가 기사 머리에 씌여 있거나 간지가 꽂혀 있는 것으로 보아 복사를 해간 흔적도 심심찮게 발견되었다.
1996년 1월호부터만 보관하고 있는 과천시립도서관의 「月刊朝鮮」 역시 수많은 사람들의 손때에 절어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잡지를 읽어온 것일까? 왜 사람들은 시대착오적으로 두꺼운 이 잡지를 아직도 읽고 있는 것일까? 재미있는 것이 하고 많은 이 개명한 영상물과 전자매체의 시대에 말이다.
회색지대에 머문 80年代
「月刊朝鮮」 속에 묻혀 있는 동안 필자는 한동안 감정의 起伏(기복)에 시달렸다. 목차만 따라가도 시대의 흐름과 그 緩急(완급)이 느껴졌다. 시간적으로는 고대사에서 최근대사, 현재, 미래에까지, 공간적으로는 한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유럽, 미주, 그 어느 無主地(무주지)에까지, 그리고 인간이라는 깊이 모를 존재들의 내면 깊숙이까지 관심을 뻗치고 있는 놀라운 오지랖에 숨이 몰릴 때가 있었다. 오랜 시간 理論書(이론서)에 익숙해져 있는 내게 이토록 현장적이고 당대적인, 그리고 경험적이고 귀납적인 지식의 세계는 아직 낯설었다.
1980년 4월, 서울의 봄에 탄생한 창간호에는 자유의 냄새가 배어나왔다. 4·19 20주년을 맞은 시절답게 군사정권이 물러가고 이제 민주주의가 꽃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권두언을 쓴 이화여대 대학원장 李建鎬(이건호) 교수는 「불어라 봄바람, 해빙의 계절에 부쳐」라는 권두언에서 이렇게 썼다.
「겨울은 가는 것일까, 아니 이미 간 것 같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해빙이다. 지난 겨울을, 그것도 영하 20도에 가까운 겨울을 지나치게 오랫동안 회고만 하고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미소지으며 따스한 햇볕 아래서 소생하는 풀잎들이며, 아름다운 새소리며 흐르는 시냇물을 거리낌없이 즐기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겨울은 가지 않았다. 그해 5월 광주에서 심상찮은 변이 일어났는데도 「月刊朝鮮」 7월호에는 별 말이 없었다. 다만 「와이드 화보 광주사태」라는 제목이 붙은 11장의 흑백사진과 경찰측 자료로 보이는 두 장짜리 사건일지가 있을 뿐이었다. 장발의 청년들이 화염과 가스 속에서 서툴게 걷고 있는 모습, 교련복에 장총을 든 학생, 헬맷과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남자와 딱정벌레같이 뒤집힌 자동차, 그리고 계엄군이 지나간 뒤 공원 앞에 모여 앉은 중절모의 노인들. 이 노인들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불안을 감추고 있다.
같은 호 맨 뒷면에서 편집자는 「최근 일련의 사정들은 국내 각 분야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잡지 제작에 있어서도 예외일 수가 없다. 그런 가운데서도 본지는 창간 취지가 퇴색됨이 없이 최선을 다할 것임을 다시 한 번 다짐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암시와 더불어 「月刊朝鮮」은 이내 답답해졌다. 독자들이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단골 이발소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한달에 한 번 가는 삼류 이발비용 천5백원을 돌려 月刊朝鮮과 예약을 하고부터는 떨리는 손으로 빗과 가위를 든 거울 앞에 선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는 30대의 시골 匹夫(필부)」(80년 9월)라고 소개한 전남 보성의 한 독자는 「月刊朝鮮이 만일 지금 수준으로 머문다면 차라리 예전대로 이발소에나 가서 동네분들의 時談(시담)이나 듣겠다」고 으름짱을 놓았다.
「독자를 주인으로 역사를 심판관으로」 해 달라는 주문(80년 7월), 「直筆(직필)은 사람이 죽이지만 曲筆(곡필)은 하늘이 죽인다」는 폐부를 찌르는 격언(80년 11월)들이 답지되는 동안에도 「月刊朝鮮」은 주로 민주주의, 지도자, 공화제, 복지국가 등을 주제로 원론을 확인하거나 한국사상 재정리 등의 특집을 다루면서 회색지대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초기 月刊朝鮮은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술지적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독자들의 채찍은 매서웠다.
「수많은 저명 교수들에 의한 집필이 과연 좋은 잡지를 만드는 가장 좋은 비방이 아니다. 우리 현실이 암담하다고 할 때 과연 머리만 가지고 이를 개선하겠다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현실을 바로 보는 눈과 현실을 느끼는 감각, 또 현실과 맞부딪치는 손과 발의 보조가 맞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카데미즘도 좋으나, 저널리즘도 크게 생각해야 된다는 뜻이다. 사회과학 계통의 대학 학술지에다 간단한 잡문 등을 끼워 넣을 듯한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80년 6월)
독자의 권력
月刊朝鮮을 검토해 가면서 이 잡지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단어를 하나만 대라고 하면 「힘」이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힘 센 정치인에서 힘 있는 재벌, 힘 있는 조직, 힘 있는 글…. 도무지 힘과 힘의 사활을 건 각축이 없다면 이 잡지는 맥이 빠지고 말리라는 생각이었다. 多種多樣(다종다양)의 「힘들」 로 인하여 현실은 그야말로 다글다글 끓어오르고, 잡지는 그 속에서 재미있을 꺼리(?)들을 영리하게 찾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가장 강력한 힘은 「독자의 權力(권력)」이었다. 따분한 것과 궁금한 것을 못참는 이들 독자들은 3金씨와 같이 月刊朝鮮 최고의 단골손님은 아니었다. 그러나 장외에서 훈수를 두다가도 불쑥 뛰어들어와 자신들의 요구나 취향을 관철시키느라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칭찬 몇 마디로 편집자를 구슬리기도 했다. 그들이 이 잡지를 천천히 바꾸고 있었다.
아카데미즘에서 저널리즘으로
1980년 7월 문공부는 1백 72종의 잡지를 폐간했다. 8월에는 수백명의 언론인이 대량 해직됐다. 그 해 말에는 언론통폐합을 단행하여 일간지 11개를 폐간 또는 다른 신문에 통합시키고, 방송사도 통합하여 언론 구조를 대폭 개편했다. 편집자는 1980년을 마무리하면서 「우리가 항용 쓰는 多事多難(다사다난)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큰 일을 겪고 어려운 고비를 수없이 넘긴 해도 갔다」라고 했다.
대신 독자들의 성화에 잡지 저널리즘의 징후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필진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교수들 사이에 記者와 르포라이터, 프리라이터, 다큐멘터리 작가, 자유기고가 등 비제도권 필자들이 끼여 들기 시작한 것이다. 말하자면 「집중취재; 순복음 중앙교회, 천막에서 왕국이 이뤄지기까지」라는 소설가 李光馥(이광복)씨의 글과, 「헤겔철학 수용의 문제- 임석진의 정신현상학 번역을 계기로」(81년 4월)라는 학술논문이 공존하고 있었다.
1982년 4월, 편집자는 「月刊朝鮮의 발행부수는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것보다 훨씬 많았지만 3월호를 계기로 비약적인 신장을 했다」라고 쓰고 있다. 원인이 된 기사는 「도큐멘터리 5·16 군사혁명」. 필진은 조선일보 편집국 특별취재팀의 차장급 기자 崔埈明(최준명·경제부), 曺然興(조연흥·사회부), 金德亨(김덕형·문화부) 세 사람이었다.
당시 일간지들이 경쟁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한 朴正熙(박정희) 시대의 정치 이면사가 당국의 압력으로 일제히 중단됐다. 조선일보는 연재 준비중이던 기사 5백매를 한꺼번에 月刊朝鮮에 싣게 되었다. 1982년 초반부터는 일간지를 대신하여 잡지들이 현실정치가 不在(부재)한 틈을 메꾸기 시작했다. 단골 메뉴는 제5공화국 이전의 정치비화들이었다.
역대 月刊朝鮮 부장 許述(56·백범기념관건립위원회 사업본부장), 劉正顯(59·대전시티즌축구단 사장), 趙甲濟(54·현직) 씨의 일치된 견해는 1980년대 언론자유를 그나마 폭넓게 누린 것은 월간지라는 것.
『안기부와 끊임없는 승강이를 벌이면서 만들긴 했지만 일간지에 비해 게릴라식 통제가 어려웠고』(許述) 『언론을 완전 통제하는 것은 어려우므로 그나마 월간지에 약간의 숨구멍을 터 놓았던』(劉正顯) 측면이 있었다.
월간지들은 부수경쟁을 하면서 독자를 겨냥했다. 『언론자유의 한계점에서 아슬아슬하게 정권과 맞서면서』(趙甲濟) 정치 부재의 시대에 지난 정권의 秘話로써 독자의 정치열을 부추기기도, 채워주기도 했던 것이다.
정치 秘話로 본격 잡지 저널리즘 시대
이 때 두드러진 필자는 李祥雨(이상우·63)씨.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 출신으로 당시 일본 아사히 TV 서울지국 기자로 있던 그는 82년 5월호에 「워싱턴-서울의 정치 드라머」를 기고하면서 잡지 저널리스트 시대를 예고한다. 그는 박정희 정권의 어두운 부분에 초점을 맞춰 독자를 이끌어 들였다.
MBC 해직기자 출신이면서 소설가였던 吳交力鎭(오효진)씨의 등장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1982년 4월 경남 의창군에서 현직 순경의 난동으로 1백여명의 사상자가 난 사건 현장을 취재한 「세상천지 사람들아 이런 일이 우짠일고」라는 2백50매짜리 두툼한 기사로 등장했다. 그리고 극작가 金敎植(김교식)씨도 「실록 金昌龍(김창용)」으로 제1공화국 시대를 조명하면서 주 필자의 한 사람으로 부상한다.
무엇보다 이 잡지의 발행부수를 늘리는 역할을 한 기사는 李英石(이영석) 당시 중앙일보 편집위원의 「JP와 HR」(82년 11월). 김종필과 이후락의 대결을 다룬 이 기사는 현실정치의 磁場(자장)에 한발 가까이 다가서서 정치에 목마른 독자들을 끌어 들였다. 당시 편집주간을 맞고 있었던 李興雨(이흥우·71·재팬포럼 발행인 겸 편집인)씨는 이 기사로 부수가 2~3만부에서 5~6만부로 두 배 이상 뛰었다고 회상한다.
「잡지의 사명감과 대중성은 조화되어야 할 명제이면서도 자칫 상치되는 위험성이 항상 따른다. 재미 있으면서도 사명감을 다하는 내용, 혹은 그 두 기사의 이상적인 배분, 많은 제약 속에서 그런 명제를 염두에 두면서 제작에 임하고자 한다」(83년 2월)는 편집자의 말에는 학술지의 면모를 유지하기 어려워진 편집자의 고뇌가 들어 있다. 그러나 독자들의 열망을 흡수하는 것이야말로 잡지의 사명이 되었다.
이런 흐름에 따라 그동안 請託(청탁)과 編輯(편집)을 主로 하고 뒷전에 있었던 月刊朝鮮 기자들이 본격적으로 취재 일선에 나서는 변화가 일어난다. 徐炳旭(서병욱) 기자의 「포니냐 맵시냐-다시 불붙은 자동차 판매전쟁」(82년 12월), 「아파트는 투기장터인가」(83년 4월), 그리고 다음 호 朴基龍(박기룡) 기자의 본격 인터뷰 기사 「신현확 전 국무총리와의 對話-잔 파도에 집중하면 큰 흐름을 망친다」 등 현재까지 주류를 이루는 기사의 전통이 수립되기 시작한다.
月刊朝鮮 기자로 합류하기 전에 쓴 오효진씨의 「경기고와 서울고」(83년 2월)는 인맥조사의 효시로 주목할 만하다. 관계, 법조계, 업계, 학계, 의약계, 언론계, 문화계 등에 형성되어 있는 學脈(학맥)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어 한국 사회 권력 형성의 원천을 탐사해 갔다. 이어 「서울법대」, 「경북고」(85년 6월)로, 가장 최근에는 「광주-목포」(98년 4월) 학맥조사까지 지속된다. 같은 맥락에서 1990년대에 들어 세 차례에 걸쳐 실시했던 「공직자 병력조사」는 정치권의 태풍을 몰고 오는 데에도 기여했다.
月刊朝鮮 역사상 1984년은 잡지 저널리즘의 틀이 잡히는 해로 기록될 만하다. 金大中 당시 출판국장(現 조선일보 주필)과 중앙일보 해직기자 출신 許述 부장 체제에서 月刊朝鮮 기자들의 약진은 두드러진다. 1983년 10월 합류한 趙甲濟 기자는 사회문제에 깊이 파고들어 「수사식 보도」의 전통을 마련했다. 1983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세 번에 걸쳐 「코리안 커넥션, 히로뽕 지하제국 탐험」, KAL기 사고의 배경을 파고든 「KAL에 칼을 댄다」(84년 4월) 등이 그것이다.
KAL에 관한 문제제기는 「비행기 왜 자꾸 떨어지나」(85년 11월)를 거쳐, 이듬해 국제적 특종이 된 「KAL 007 최후의 목격자」(86년 12월)로 이어진다. 뉴욕 타임스는 月刊朝鮮의 이 기사를 외신면 주요기사로 다루었고 일본의 「문예춘추」 등 세계 여러나라 언론이 인용, 보도했다. 나중에 블랙박스 분석결과 月刊朝鮮의 보도대로 007편 점보기는 자동항법장치(INS)를 끄고 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5월호에는 「前 대통령 박정희의 肉筆原稿」가 특종으로 실렸고, 6월호에는 「이승만 대통령 제거계획」, 연이어 7월호에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 고백」이 실려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같은 호에 남북회담의 秘話(비화) 「한밤에 만난 김일성」이 실렸다. 당시는 주류가 아니었지만 본격적인 북한 관련 첫 기사로 볼 수 있다. 이 기사는 일본의 요미우리 신문이 인용 보도했다.
사망자 「2천명」說과 「2백명」說
이 시기에도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朴鐘圭(박종규)와 車智澈(차지철)」이라는 표제가 자주색 테이프로 뭉개진 흔적이 뚜렷하다. 모종의 권력이 잡지 위에 엄존하고 있음을 알리는 隱喩(은유)와도 같았다. 전두환 정권은 전임자 박정희에 관련된 부정적 기사를 결사적으로 막았다고 하는데 돌이켜 보면 全정권은 전임자의 격하를 막은 현재로서는 유일한 정권으로 남아있는 셈이다. 이 기사는 시간을 기다려 이듬해 12월에 실리게 된다.
85년 2·12 총선. 이 선거에서 국민들은 新民黨(신민당) 후보를 대거 당선시켜 절대권력의 맞수를 창출한다. 이리하여 85년부터 87년 6월까지 민주화로 뜨거운 정치의 시대가 열린다. 85년 4월 「민정당 낙선의원, 왜 떨어졌나」 라는 기사에서 趙甲濟 기자는 「우리 사회의 알짜배기 계층이 그 正義感을, 정의라는 추상명사를 黨名(당명)으로 쓰고 있는 정당을 향해 발사했다」라고 맺고 있다. 알짜배기 계층이라면 중산층을 의미할 것이고, 정의감이라면 현존 권력이 무언가 부당한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암시일 터이다.
5년전 화보로 언뜻 비쳤던 광주사태가 긴 잠을 깨고 月刊朝鮮 85년 7월호에 다시 등장한다. 月刊朝鮮 경쟁지 「新東亞」와 함께 이 문제를 처음으로 지면에 드러냄으로써 정부의 간섭을 불렀다. 그러나 사망자 추산에서 月刊朝鮮은 당시 취재기자 세 명의 의견을 종합하여 2백명설을 내세웠다.
이 기사로 月刊朝鮮은 일부 지역에서 불매운동을 당하는 지탄을 받았다. 나중에 진실은 2백명편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시대적 진실」은 어느 편에 있었는지(그런 것이 있다면) 한 번 쯤 생각해 볼 부분이다.
85년 7월 「오효진의 인간탐구」가 시작된다. 李敏雨(이민우) 당시 신민당 총재를 시작으로 정계, 종교계, 예술계, 재야인사 할 것 없이 폭넓은 인물을 대상으로 해서 90년대까지 이어진 인기 시리즈다. 그가 탐구한 인물중에 盧泰愚(86년 3월), 金泳三(86년 6월), 金大中(87년 8월)이 대통령이 되었다. 許述 전 부장은 오효진의 기사들에 대해 「糖衣錠(당의정)」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평한다.
現代史 심층부에 접근하다
언론자유의 폭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었지만 聖域(성역)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국 내 CIA」(86년 2월)로 조갑제 기자가 사표를 내야 했던 사건과 87년 10월 「이후락 증언」(오효진)에 대한 당국의 제작방해는 대표적인 筆禍로 꼽아둘 만하다. 신동아와 함께 다룬 「이후락 증언」 기사를 당국이 문제삼는 바람에 40만부가 넘는 책이 팔려 나갔고 月刊朝鮮 史上 이 기록은 지금까지 깨어지지 않고 있다.
1986년에서 87년으로 가는 길목에서 민주화의 열기는 정점으로 치닫고 있었다. 86년 6월에는 「각계 시국선언문 총수록」에서 재야의 목소리를 담고 있고, 오랫동안 금기시되어온 직선제 개헌이 관심권내에 들어온다. 그리고 1987년 이른바 고문정국으로 접어들어 고문은 月刊朝鮮 최대의 관심사로 부각된다. 「고문과 조작」 시리즈, 「판사들의 고민」을 내보내는 등 이 시기 人權(인권)에 초점을 맞춘 기사를 많이 다룬다.
민주화 열기의 반영으로 87년 6월 月刊朝鮮은 「4·13 개헌 유보조치에 대한 각계의 반응 일지」를 싣고, 7월에는 「시국에 대한 33인의 견해, 民意(민의)를 따르라」 라는 時論(시론)을 내보낸다. 그리고 6.29 선언이라는 「국민과 정권간의 대타협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그 직후 발간된 8월호에는 그 때의 감격이 「평화혁명」이라는 대형 활자로 나타나 표지를 덮는다.
민주화의 열기가 고조되어 그 분수령을 넘을 때까지, 곧 85년에서 87년 사이 月刊朝鮮의 책값은 불과 3백원밖에 오르지 않았다. 책이 많이 팔렸다는 의미, 또는 물가가 안정되어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정국은 대통령 선거로 다시 달아오른다. 月刊朝鮮의 다음 표적은 전두환 정권시대의 총체적인 비리·비화를 파헤치는 것. 가장 돋보이는 것은 특종 「정승화 증언」(87년 9월)이다. 이 기사를 통해 「월간조선」은 전두환 정권의 가장 큰 약점인 12·12 사건을 건드리기 시작한다.
당시 편집장 劉正顯씨에게 기억할 만한 기사를 물으니 『기자가 흔히 낙종은 잊어버리고 특종만 기억한다는 말이 있지만 정승화 증언은 전두환 정권의 발생적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치 않을 때 그것을 밝힌 중요한 기사』라고 말했다.
이 특종을 계기로 안개 속에 가려져 있었던 12·12가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부하들에게 묶여 고문까지 당한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의 증언은 국민들의 公憤(공분)을 샀고 잡지는 순식간에 25만부가 팔려 나갔다. 나중에 이 증언은 책으로도 출판되었다(「12·12 정승화는 말한다」, 까치).
이어진 1987년 12월, 「긴급특집 12·12사건의 진상, 장군들의 밤 10시30분」으로 12·12사건은 좀 더 분명하게 설명되었다. 그 후 「내가 겪은 80년 5월의 광주」(88년 3월), 「전경환의 새마을 본부」(88년 4월), 「전두환의 인맥과 금맥」(88년 5월), 게다가 하나회 멤버에서 정치자금, 부정부패의 혐의까지 5공비리에 대한 총공세가 펼쳐졌다. 月刊朝鮮은 5공 청문회의 교과서를 미리 쓰고 있었던 셈이다. 최근간호인 99년 3월호에는 나카소네 전 총리의 초대로 일본행에 다녀온 全斗煥씨 부부의 평화로운 나날을 담고 있다. 사뭇 대조적인 장면이었다.
동시에 「국가안전기획부」, 「치안본부 대해부」(88년 3월), 「주한 미 대사관」(88년 11월) 등 권력이 뭉쳐있는 곳곳에 月刊朝의 시선이 꽂히기 시작한다. 이제 언론자유의 폭은 가늠할 수 없어 보인다.
理念戰線 이상 없는가
그러나 月刊朝鮮은 다시 과거청산의 열기 속에서 냉정을 유지하기 시작한다. 1988년 들어 우리 사회의 좌우 대립구도가 더욱 분명해진 때문이다. 88년 후반기의 「좌익단체 연구」, 「논쟁:우익궐기론은 신파시즘 vs 5만 좌익의 심각한 위협」(88년 10월) 등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좌와 우의 극단화 양상이 펼쳐지는 가운데 月刊朝鮮은 균형감각을 발휘했다.
이 때 「전환시대의 논객 이영희 교수」(88년 10월) 인터뷰에서 『체제수호라고 하는데 도대체 우리나라에 지켜야 할 당위성을 가진 체제라는 게 여태껏 있었습니까』(326쪽)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월간조선은 體制(체제)와 政權(정권)은 구분되는 것임을 인식하고,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은 「지켜야 할 당위성 있는 체제」임을 분명히 한다.
요컨대 학술 중심에서 저널리즘으로, 80년 후반기 들어 정치 저널리즘으로, 정체성을 확립해 온 月刊朝鮮은 89년에 이르러 두 가지 중요한 역할을 맡고 나섰다 .현존 권력의 부정과 비리에 맞서면서 동시에 체제수호자의 역할을 하는 것. 이것은 정권반대가 체제반대로 이어지고, 자연스럽게 親北(친북)성향으로 변해가는 세력과 戰線(전선)을 형성하는 계기가 된다.
1993년 韓完相(한완상) 당시 통일부총리, 1995년 金正男(김정남) 당시 청와대 교문수석, 그리고 최근 98년 11월에 시작된 崔章集(최장집) 대통령정책자문위원장과의 사상시비의 맥은 거슬러 올라가면 이 시기에 닿아 있다고 할 것이다. 은폐되고 왜곡된 「사실」을 밝히는 작업에 돌진했던 月刊朝鮮은 이제 이념전선의 오른편에서 체제와 반공이념의 수호자로 90년대의 아젠다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북한에 대한 관념적인 傾倒(경도)라는 현상과는 별도로 이때부터 月刊朝鮮은 북한 현실에 대한 사실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그 계기가 된 것은 1989년 9월부터 3회에 걸쳐 게재된 「김현희는 말한다」. 북한 핵 문제와 북한 인권, 군대 및 안보 관련 사안은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해 지금까지 月刊朝鮮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특히 탈북 벌목공·정치범 수용소 등 북한 인권에 관한 집요한 문제제기로 월간조선은 94년 관훈클럽 언론상을 받는다.
실용주의적 역사관과 사실적 北韓 접근
이와 함께 秘話(비화), 秘錄(비록)을 통해 과거 정권의 어두운 그림자에 집착해 왔던 월간조선은 시각을 바꾸어 국민의 입장에서 「그동안 우리가 잘 했던 것은 무엇인가」를 묻기 시작한다. 그 속에서 월간조선은 위대한 성취의 역사를 발견하고 현대사에 대한 평가작업에 들어 갔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작업은 이런 맥락에 닿아 있었다.
북한문제와 현대사 재평가 작업의 결과물은 두 권의 별책부록으로 집대성되었다. 북한 실상에 관련해서는 「북한, 그 충격의 실상」(91년 1월), 우리 현대사를 긍정적인 시각에서 조명한 것은 「한국인의 성적표」(95년 1월).
「살아본 사람과 가본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4백72쪽 분량의 부록 「북한, 그 충격의 실상」은 관념적이고 허구적인 북한 인식을 돌려놓는 계기가 됐다. 이 책은 일본 최대의 출판사 고단샤(講談社)에서 펴낸 북한관련 「月刊朝鮮 三部作」의 하나로서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북한 입문서」이다.
「피·땀·눈물로 쓴 해방 50년 우리 시대의 內容證明(내용증명)」이라는 부제를 단 「한국인의 성적표」 역시 7백쪽에 달하는 단행본으로 발행된다.
「해방 50년의 진정한 의미는 實用(실용) 勞動(노동) 軍事(군사) 科學(과학)을 경시한 채 事大主義(사대주의)에 근거한 위선적 名分으로써 우리 민족의 에너지를 고갈시켰던 朝鮮朝的 지배이념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라고 현대사에 대한 감격을 말하는 이 책은 月刊朝鮮의 역사관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80년대 말에 시작된 이념전쟁의 오른편에서 체제 부정 세력에게 내놓는 實證資料(실증자료)이기도 했다. 「무차별적인 韓國 現代史 부정과 反軍(반군), 反財閥(반재벌) 캠페인 및 親北 선동의 본질은 論理가 아닌 말장난, 실천이 불가능한 空論(공론), 현실을 외면한 名分論(명분론)」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또 9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50주년을 기념하여 조선일보에서 주최,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된 성취의 역사 「우리들의 이야기」의 중요한 자료로도 십분 활용된다.
90년대에도 특종이 많은 잡지의 전통은 계속되었다. 80년대 사회문제와 정치문제에서 대부분의 특종이 나왔던 것과는 달리 북한 관련 특종이 유독 많은 것이 특징이다. 89년 3월호의 「李穗根(이수근)은 간첩이 아니었다」, 「목탄차로 달리는 공화국」(90년 12월), 「간첩 이선실 사건」(92년), 「북한탈출 벌목공들의 러시아 유랑 25시」(94년 3월), 「김일성은 올해 안에 死亡」(94년 5월), 「안명철 증언-임신자 비밀처형과 생체실험의 내막」(95년 3월), 「김정일의 육성 고백」(95년 10월호 부록 녹음테이프), 그리고 최근의 「황장엽 망명」(97년) 특종 등.
황장엽 망명은 월간조선의 金容三 기자가 조선일보에 먼저 기사를 게재한 특종으로 수개월 전에 기사가 준비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었다.
시청각 매체와의 결합
그리고 두 가지 破格(파격)이 시도된다. 언론 사상 최초로 녹음 테이프와 비디오 테이프를 부록으로 내놓은 것. 그 첫 시도는 「12·12 사건-장군들의 현장육성」이라는 제목으로 보안사의 12·12 사건 감청 테이프를 입수, 해설을 부쳐 재가공한 것이었다. 그 이후로도 金正日, 朴正熙, 미 대통령 클린턴의 연설이 월간조선 독자들에게 제공된다.
비디오 테이프로 제작된 것은 북한에서 나온 다큐멘터리 「야수들의 싸움」(97년 6월). 호랑이와 사자의 대결을 영상에 담은 이 이색적인 볼거리까지 포함하면 월간조선은 이제 활자, 오디오, 비디오를 동원한 다중적인 전략으로 독자를 공략했던 것이다. 이런 시도는 시청각에 예민한 1990년대 독자들에 대한 봉사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화분야에서의 강성 발언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93년부터 시작된 「한자쓰기 운동」과 「한글전용 반대」. 이 잡지는 95년 「舊 중앙청 건물 철거」에 반대 입장을 固守(고수)한 국내 유일의 언론이기도 했다.
「김영삼 정권은 풍수 정권인가」(95년 10월)라는 제하의 기사는 옛 중앙청 건물을 철거하겠다는 사고의 원천을 찾아 실증적인 자료로 공박하는 내용이다. 비과학적인 풍수설에 기대어 민족정기를 부활시키겠다는 발상은 명분일 뿐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는 빠져있다는 결론이었다. 한국통으로 알려진 일본 산케이 신문의 구로다 기자는 「한국인의 역사관」이라는 책에서 이 기사에 대한 감상을 이렇게 쓰고 있다.
「한국에서는 매스컴을 포함한 世論(세론)이 對日(대일) 과거사에 관한 한 事實(사실)과 상관없이 무엇이든 말해도 된다, 또는 써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만큼 센세이셔널하다. 그러나 국수주의적 정서보다 「事實(사실)」에 입각해서 기사를 쓰는 언론이 있음을 확인한 것은 기쁜 일이었다」
舊 중앙청(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반대는 결국 좋은 성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다만 구로다 기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쇠말뚝을 뽑아 독립기념관에 전시하겠다는 방침만은 시행되고 있지 않은 듯.
그러나 「오보 없는 언론은 특종 없는 언론과 같다」는 언론계의 변명성 격언으로도 면책받을 수 없는 誤報도 있었다. 94년 5월, 「작가 이병주는 빨치산이었다!」에 이어 다음호에는 「작가 이병주는 빨치산이 아니었다!」가 실렸다. 빨치산 경력 여부가 당사자나 후손들에게 아직도 중요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 살고 있음을 인정한다면 이 誤報는 「본질적인 실책」이었음에 틀림없다.
『사실확인 작업도 없이 무책임하게 내놓은 편집장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로서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대책을 세우기 어려운 무명의 평범한 사람이 당했다면 더 심각했을 것이 아닌가. 그때부터 월간조선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 정기구독도 끊었다. 언론이 正道를 걷기 위해서는 제3, 제4의 확인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철저한 조사 끝에 자신이 없으면 발표도 말아야 한다』
故 이병주 선생의 장남 李權基(52ㆍ부산 경성대 인문대학장) 교수는 5년이 지난 지금도 월간조선에 대한 불만을 풀지 않고 있었다.
독자의 權力을 아는 잡지
走馬看山(주마간산)격으로 훑어본 터에 遍歷(편력)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럽지만 「月刊朝鮮」으로의 짧은 편력, 혹은 긴 소풍은 몇 가지 감상과 할 말을 남기고 있었다. 도서관에 묻히기 전에 필자는 편집장께 『월간조선은 너무 이념적인 잡지 같다』라고 말했던 것과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철저히 독자에게 영합하는 잡지」라고 말하는 쪽이 좀 더 정확할 것 같았다.
독자들을 계도하고, 지도하고, 이끌기 보다 오히려 독자들에게 계몽당하기를 원하는 쪽이었다. 독자에 대한 믿음과 존중이 남다른 잡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월간조선 19년치를 훑어보기 위해 고투한 보람은 힘과 힘들의 투쟁을 거중조정하기도 하고, 승자를 가려내기도 하는 「무서운 判官으로서의 힘」, 곧 독자의 권력을 발견한 데 있었다.
월간조선은 선취된 이론과 관념으로 이들 독자 대중을 계도하고 지도하는 대신 독자, 또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평범한 국민들의 한 발짝 뒤에서 걸음을 놓치지 않고, 때로는 딱 한 발 앞서가며 민심을 읽는 집중력을 보여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걱정되는 바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 달그락거리며 세상을 시끄럽게 하려는 노력은 저널리즘의 속성이니 두기로 하자. 충격이 관습처럼 되어버린 마당에 격론, 대결, 충격, 육성 고백, 직격 등의 말들이 동원된다 해서 정말로 충격을 받는 사람도 이제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대는 어디에 있었는가
90년대 이후 「월간조선」은 두 발 중 적어도 한발은 떼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0년 「현대사 긍정」, 「북한 인권」이라는 입장은 냉정하게 따져보면 전자는 시간적으로 「과거」, 후자는 공간적으로 「저쪽」이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는 어디에 있는가.
1997년 우리가 IMF로 갈 때, 우리 사회에는 「지식의 고갈」이라는 안타까운 현상이 있었다. 어떤 경제학 교수는 『우리 같은 경제학자들은 모두 모아서 무인도에 유폐시켜야 한다』라고 했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몰라서 미국, 일본, 유럽의 학자들을 찾아 비싼 값에 「기사」와 「논문」을 사들이느라 바빴다. 그러고도 한국의 언론, 한국의 지식인들은 본질적인 자기 반성을 하지 않았다.
「냉전이 끝났다」고 말한 지 오랜 선진 諸國(제국)에서는 한참 전에 자본의 놀라운 增殖力(증식력)을 알아채고 한 나라를 통째로 투기 대상으로 삼을 만한 파괴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세계가 이렇게 빠르게 돌아가는 와중에도 지금 이곳에는 정치와 이념이 범람했다. 換亂(환란)의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언론에서도 눈치채고 있었겠지만 손을 쓰기는커녕 제대로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독자에게 영합한다는 것은 독자에게 책임을 진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나라를 지키겠는 잡지」라는 주장에 앞서 언론의 使命이라는 흔한 말도 있는데 월간조선은 거기에 얼마만큼 충실했는지 자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월간조선」이 지난 19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해 온 역할에 대한 일말의 신뢰 때문에 필자는 결국 이렇게 묻게 된다. 외환 위기가 절정해 달하고 있을 때까지 「대통령은 없었다」(98년 3월)고 문제제기했던 「月刊朝鮮」 그대는 그때 어디에 있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