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의 편지

그들은 왜 ‘최악의 대통령’이 되었을까?

  • 글 : 배진영 월간조선 편집장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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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대선을 앞두고 ‘편집장의 편지’에 무슨 얘기를 써야 할지 궁리를 많이 했습니다.
 
  ‘전체주의의 위험을 깨닫지 못하고 당리당략(黨利黨略)·사리사욕(私利私慾)에 사로잡혀 반(反)나치 단일대오를 구축(構築)하지 못해, 독재와 전쟁과 학살이라는 비극을 자초(自招)했던 바이마르 공화국 정치인들에 대해 얘기해 볼까?’
 
  ‘근래 어지러운 행보로 사람들을 놀라고 낙담하게 하는 지식인들을 비판해 볼까?’
 
  ‘전체주의 세력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던지겠다고 큰소리치다가 후보 자리를 놓치는 순간 방관자로 돌아서 버린 국민의힘 정치인들의 작태에 대해 한마디 해볼까?’
 
  그러다가 문득 얼마 전 읽은 책이 떠올랐습니다. 미국의 언론인 네이선 밀러(1927~2004년)의 《최악의 대통령》(원제 Worst Presidents)이라는 책입니다. 저자인 밀러는 성공한 미국 대통령과 그렇지 못한 대통령의 차이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실용주의, 자신감이 넘치는 성격, 미래를 향한 비전, 조화와 협력을 끌어내는 정치력, 정직과 성실, 그리고 미국인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해 정책에 반영하는 능력 등은 일반적으로 위대한 대통령과 좋은 대통령이 갖추고 있는 덕성이다.
 
  그렇다면 최악의 대통령, 나쁜 대통령의 특징은 위대하거나 좋은 대통령의 덕성과 반대되지 않겠는가? 즉 자신감의 결여, 불량한 성격, 타협과는 거리가 먼 형편없는 정치력과 무능, 비전의 결핍, 부정직하고 불성실한 태도, 의사소통 단절 등이 그것이다. 이 책에서 필자는 한 가지 판단 기준을 추가했다. 바로 ‘그들이 대통령으로 활동하면서 국가와 국민에게 얼마나 큰 손해를 끼쳤는가’이다.〉

 
  이런 기준에 따라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불명예의 전당’에 오른 미국 대통령은 모두 열 명입니다. 지미 카터(제39대·1977~1981년 재임), 윌리엄 태프트(제27대·1909~1913년 재임), 벤저민 해리슨(제23대·1889~1893년 재임), 캘빈 쿨리지(제30대·1923~ 1929년 재임), 율리시즈 그랜트(제18대·1869~1877년 재임), 앤드루 존슨(제17대·1865~1869년 재임), 프랭클린 피어스(제14대·1853~ 1857년 재임), 제임스 뷰캐넌(제15대·1857~1861년 재임), 워런 하딩(제29대·1921~1923년 재임), 리처드 닉슨(제37대·1969~1974년 재임)이 그들입니다. 이들 가운데 몇 사람을 살펴보겠습니다.
 
 
  “4년씩이나 복음을 들려줄 수는 없다”
 
  이 책에서 첫머리에 오른 사람은 작년 12월 세상을 떠난 지미 카터였습니다. 재직 중 인권 외교니 주한미군 철수니 하면서 한국인들의 속을 무척 썩였던 사람이죠. 한국인들은 그를 ‘무능하기는 해도 선량한 이상주의자’로 기억하지만 카터의 고향인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애틀랜타 컨스티투션》 기자 레그 머피는 이렇게 말했다는군요.
 
  〈지미 카터는 내가 만난 서너 명의 사기꾼 중 한 사람이다. 나는 그가 인간적으로 온화한 사람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인도되어 감동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하루나 이틀 정도는 복음의 소리를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4년씩이나 복음을 들려줄 수는 없다. (중략) 나는 지도력이란 어떻게 하면 표를 많이 받을 것인지를 궁리하는 냉정한 자질 이상의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카터는 대통령은 됐지만, ‘어떻게 하면 표를 많이 받을 것인지를 궁리하는 냉정한 자질 이상의 무엇인가’가 부족했습니다. 그는 “국가의 최고 지도자로서 수행해야 할 외교 문제나 국가적 차원의 대사(大事)에 대해 무지한 조지아 마피아의 조언만 신뢰하여 실수를 거듭”했습니다. 또 의회나 반대당, 국민들과의 소통에도 실패했습니다. 결국 그는 4년 만에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습니다. 밀러는 그를 이렇게 평합니다.
 
  〈그는 지적이고, 정직하고, 봉사를 생활화하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너무 독선적으로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만 믿었다. 그는 자신이 추진한 프로그램과 정책에 대해 근면하고 성실한 태도로 임했다. 그러나 실천하는 과정에서 국민을 설득하고 교육하는 데에 실패했다.〉
 
 
  ‘用人’ 실패한 그랜트와 하딩
 
  남북전쟁의 영웅으로 제18대 대통령이 된 율리시즈 그랜트의 재임 기간은 측근들의 부패와 무능으로 악명 높습니다. 밀러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랜트의 주위에는 변변치 못하고 황당하며 노골적인 사기꾼 천지였다. 그들의 대다수가 정치와 행정에서의 경험이 미천했고, 재능이 없었으며, 성실하지도 않았다. 그랜트는 한때 수많은 군사를 지휘한 총사령관으로 활약했으나 대통령으로서는 사람을 쓰는 일에 최악이었다. 아동기의 애정 결핍, 30대 때 겪었던 여러 실패와 고통으로 인해 그랜트는 친밀함을 주요 무기로 삼았다. 즉 그는 자신에게 아첨하는 사람, 듣고 싶은 이야기만 하는 사람 그리고 자신의 이권을 위해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쉽게 잘 속아 넘어갔다.〉
 
  그랜트와 비슷한 이유로 악명을 떨친 워런 하딩의 실패 원인도 비슷했습니다.
 
  〈하딩은 오하이오주 시골 법정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작은 마을의 조직폭력배와 협잡꾼들을 자신과 어울려 놀 친구랍시고 백악관으로 데려왔다. 대통령 취임식이 있던 날, 어느 시민은 저녁에 몹시도 혼란스럽게 뛰어다니는 하딩의 친구들을 향해 다른 사람들이 “야! 야! 갱들이 여기 다 모였구나!”라고 소리치는 소리를 사방에서 들었다.〉
 
  하지만 저자가 가장 미워하고 경멸한 ‘최악의 대통령’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워터게이트 사건을 일으켰다가 탄핵 직전에 사임한 리처드 닉슨입니다. 밀러는 “하딩 행정부에서 의사당 지붕까지 팔아먹으려 했던 오하이오 갱, 율리시즈 그랜트를 둘러싼 친인척들이 단지 돈만 밝히는 부정축재자들이었다면, 닉슨은 더욱 원대한 목적을 위해 음모를 꾸미는 악당이었다”면서 “닉슨은 미국의 헌법 자체를 완전히 파괴하려 했었다”고 말합니다. 밀러가 닉슨에게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그의 성장 환경과 성격입니다.
 
 
  헌법 자체를 완전히 파괴하려 했던 아웃사이더, 닉슨
 
  〈빈곤한 환경에서 태어나 백악관의 주인이 되기까지, 닉슨은 눈부신 성공을 거둔 당사자임에도 마치 황소 같은 고집과 뒤틀린 성격 때문에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 인식했다. 그는 자신을 경멸하고 얕보는 사람에게 마음속 깊이 분노를 느꼈고, 언젠가 복수하리라 각오했다. 그는 인생이란 본인처럼 ‘가지지 못한 자’와 ‘모든 것을 쥔 채 살찐 엉덩이로 앉아 있는 사람’ 간의 투쟁으로 보았다. 그는 이러한 분노를 우리야를 죽인 다윗처럼 신성한 흉내와 겸손한 모습으로 감추었다. (중략)
 
  닉슨은 만사를 경멸하는 태도와 부정행위를 저지르고도 당당한 정신상태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운명을 맹신했고, 모든 곳에 계략과 불법적인 공모가 존재한다고 단정하던 사람이었다. (중략)
 
  백악관에 입성하기 위한 오랜 역정에서 뼈에 사무친 원한을 쌓아 두었던 닉슨은 정적들을 나열한 일종의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방식으로 악의적인 형태의 분노를 터뜨렸다. (중략)
 
  닉슨은 한 보좌관에게 “사실 나를 이 정계로 들어서게 이끈 것은 어렸을 때 받은 비웃음과 멸시와 푸대접이었다”라고 고백했다. (중략)
 
  불행하게도 닉슨 행정부의 이러한 핵심 측근들은 민주적인 절차를 깔보았을 뿐만 아니라 복잡하게 전개되고 그래야 하는 정책의 입안 과정을 무시했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밀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일부 전문가는 개인의 사생활은 대통령으로서의 자질과는 무관하다고 말하지만 이는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성격과 내면의 자질은 공인(公人)에게 아주 중요한 덕목이다.〉
 
  이 책을 번역한 분은 대통령학 연구자인 김형곤 건양대 교수입니다. 김 교수는 원래 2002년에 이 책을 국내에 번역 소개했는데, 그때 한국어판 제목은 《이런 대통령 뽑지 맙시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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