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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편지

총화단결에서 지리멸렬까지

- 1988 서울올림픽과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상전벽해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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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사(新聞史)에 유명한 일화가 있다. 현재 명실상부하게 1위인 《조선일보》는 1960년대까지 사세(社勢)가 미약했으나 1970년대 약진하며 1위를 넘봤다. 《조선일보》가 1위가 된 것은 1978년쯤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정작 경쟁지가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은 7~8년 뒤였다는 게 정설(定說)이다. 이런 현상에는 몇 가지 추론(推論)이 가능하다.
 
  해당 회사 간부들이 차마 윗선에 보고하지 않았든지, 아니면 ‘나는 영원한 선두(先頭)’라는 환상에 취해 현실을 정확히 바라보지 못할 때 벌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인식(認識)의 지체를 시차(時差·Time lag)라고 하는데 국가 간에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1948년 남북은 각각의 정부를 세우면서 공식적으로 분단됐다. 지금으로부터 꼭 70년 전의 비극이었다.
 
  당시 북한은 남한보다 훨씬 잘살았다. 수력발전소를 비롯해 중공업 시설이 북한에 치중돼 있었고 남한은 농업, 경공업 위주였기 때문이다. 북한이 압록강에 세워진 수풍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보내 주다 끊어 버리면 남한은 암흑천지가 되기 일쑤였다. 당시 남북한 지도자들의 슬로건을 보면 남북 간 국력(國力)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김일성은 “이밥(흰쌀밥)에 고깃국 먹고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서 살게 해 주겠다”고 했다. 밥과 고깃국과 기와집이 모든 인민이 바라던 부(富)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싸우면서 건설하자”고 했다. 가뜩이나 가난했던 나라가 6·25로 잿더미가 됐고 북한이 호시탐탐 남침(南侵) 야욕을 감추지 않았기에 우리는 싸우면서 건설해야 했다.
 
  그랬던 남과 북의 경제력이 역전된 것이 1974년이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예에서 본 것처럼 북한이 ‘마침내 남한이 우리보다 잘살게 됐구나’ 하고 깨달은 것은 10년 뒤인 1984년이라고 한다. 그해 남한은 큰 수해(水害)를 겪었다. 북한이 무슨 속셈에선지 남한에 구호물품을 보내겠다고 했다. 아마 그들은 남한이 거부하리라 짐작했던 것 같다.
 
  남한이 덥석 이 제의를 수락하자 북한은 구호물품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북한이 보낸 구호물품이란 것은 그야말로 가관(可觀)이었다. 한국의 1960~70년대 수준으로 질이 낮았기 때문이다. 북한은 남북 경제력이 역전되자 군사력으로 이를 막아 보려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1983년 버마 아웅산테러, 1986년 김포공항 테러, 1987년 KAL기 테러였다.
 
  이 테러로 북한은 남북한 힘의 균형을 맞추기는커녕 ‘불량국가’ ‘깡패국가’라는 낙인을 스스로 제 얼굴에 찍는 꼴이 돼 버렸다. 북한이 테러를 일으켰을 때 우리는 대화를 구걸하지 않고 가야 할 길을 계속 갔다. 그 결과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 30년 전에 연 서울올림픽은 한민족 역사상 기념비적인 행사였다.
 
  돌이켜 보면 88올림픽은 세계 최빈국(最貧國)에서 중진국(中進國)으로 도약한 ‘한강의 기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정화(精華)였다.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나라, 남의 구호물자를 받기만 하던 나라가 방문객들의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들 정도로 발전했고 남에게 구호물자를 주는 입장이 되자 북한은 결국 ‘남북대화’의 협상 테이블로 걸어나왔다.
 
  그 결과가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대회였다. 두 차례의 남북 ‘코리아 단일팀’은 남북이 과연 같은 피를 지닌 민족이며 둘이 뭉쳤을 때 훨씬 강해진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당시 북한의 수뇌부들은 놀랐다고 한다. 경제력으로도, 군사력으로도 힘들어 대화의 문을 열었는데 뜻밖의 결말을 예측하고 경악했던 것이다.
 
  그들이 대화를 가장(假裝)한 것은 북한의 우위를 과시하고 남한에게서 뭔가를 뜯어내 그 밑천으로 남한을 집어삼키려던 속셈이었는데 북한 전역에 둘러쳐진 장막을 열수록 북한 주민들이 남한에 동화돼 끝내는 북한 체제가 붕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막다른 골목에 몰린 북한은 그즈음 ‘너 죽고 나 죽자’는 동귀어진(同歸於盡) 식 해법을 찾는다.
 
  그것이 바로 핵개발이다. 북한의 핵개발사를 유심히 살펴보면 88서울올림픽 이후 도무지 한국을 앞서 나갈 방도가 없음을 깨달은 북한이 1990년대 중반부터 핵개발에 매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는 사이 북한의 경제력은 갈수록 뒷걸음질쳤다. 한 통계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북한 경제력은 남한의 1970년대 중반 수준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특히 북한의 1인당 명목 GDP가 남한의 3.7% 수준인데 이것을 구체적인 수치로 밝히자면 1018달러다. 한국의 1인당 명목 GDP가 1018달러 근처였던 것이 1977년이니 40년 가까운 격차가 나는 셈이다. 한국의 2015년 1인당 명목 GDP는 2만7195달러이며 올해에는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대망의 3만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962년생인 기자의 개인적인 기억으로도 1988년까지의 26년은 해마다 무언가 사정이 나아지는 것이었다. 1969년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한 반(班)에 120명이 넘어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눠 수업했던 동기들은 하나같이 가슴에 콧물 닦기 용 손수건을 달고 검정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병 우유를 맛보고 설사를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쯤엔 검정고무신이 ‘범표 운동화’로 바뀌었으며 초등학교 4학년 때엔 흑백TV에서 드라마 〈여로〉가 방영될 때는 동네 주민들이 한데 모여 눈물을 흘리곤 했던 것이다. 전화기와 냉장고가 들어오고 1985년 말 직장에 취업했을 때는 신용카드라는 것을 만들어 보고 신문사 입사시험을 치러 다닐 때인 1987년 민주화 열풍이 불었다.
 
  그때 우리 국민들은 ‘하면 된다’ ‘노력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기풍을 가지고 있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올해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렸다. 하계올림픽과 달리 동계올림픽은 선진국, 혹은 초강대국이 아니면 개최할 수가 없는 스포츠 제전(祭典)이다. 지금까지 동계올림픽 개최국은 1924년 첫 동계올림픽 개최지였던 프랑스를 비롯해 몇 안 된다.
 
  스위스·미국·독일·노르웨이·이탈리아·오스트리아·일본·유고·캐나다·러시아 등 11개국뿐이며 대한민국이 마침내 12번째 개최국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의 수준이 한 세대가 지난 1988년에 비해 훨씬 세련되고 교양 있게 발전했어야 하거늘 작금에 벌어지는 상황은 뒷걸음질치는 북한의 경제력처럼 여기저기서 불협화음이 들리고 있다.
 
  여기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우리가 혹시 동계올림픽을 열 수준이 안 되는데 역대 정부가 강원도 표(票)를 의식해 무리를 한 것 아닌가 하는 추론이다. 올림픽이 열린다고 숙박비와 음식값에 왕창 바가지 요금을 매기는 것은 꼴사납기 그지없는 풍경이다. 자원봉사자를 박대한다는 뉴스가 잇따라 터지는 것도 비슷한 범주다.
 
  둘째, 우리는 여전히 ‘올림픽은 메달싸움’이라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니 쇼트트랙 선수를 두들겨패고 ‘메달권 밖 선수’들을 박대하고 있는 것이다. 스키니 빙상이니 하는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 수준도 후진국 범주에 머물러 있다. 국제정보에 무지해 애꿎은 선수들이 출전조차 못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 수준이 그 지경이기 때문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것은 순수해야 할 스포츠를 정치의 부속기관처럼 여겨 무리하게 북한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30년 전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의연하면 북한이 오히려 겁을 먹고 스스로 대화의 장(場)으로 나올 텐데 현 정권은 무슨 강박증을 앓고 있는 것처럼 북한을 끌어들이고 퍼주지 못해 안달이 난 지경이다.
 
  대한민국을 향해 핵 위협을 하는 북한에 대한 유엔의 공조를 피해자 격인 우리가 스스로 깨뜨리는 데 앞장서고 북한의 ‘인질’이 되겠다고 나서는 꼴이 돼 버렸다. 미국의 주요 지도자들이 이런 대한민국을 정신이상자 혹은 나라(Nation)가 아닌 부족(部族·Tribe)쯤으로 여겨도 우리가 항변할 말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유엔 공조 깨고 북한에 아무리 머리를 조아린들 김정은 동생 김여정이 온다고 한들 평창올림픽 이후 남북이 평화롭게 살 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좌충우돌, 우왕좌왕, 좌고우면하는 엉킨 스텝으로 대한민국의 입지(立地)만 좁아질 것이다. 총화단결에서 지리멸렬, 이 사자성어만이 지난 30년을 비교해 본 내 머릿속을 맴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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