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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편지

힘없는 사람의 생존법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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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 원자력 산업이 공중분해 될 위기다. 문재인 대통령의 탈(脫) 원전(原電) 지시 때문이다. 그러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11개 학과 대표들이 반발 성명을 발표했다. “탈원전 정책은 원자력 공학에 대한 위협이 아닌 공학 전반에 대한 위협이다. 학문이 국가에 버림받는 선례를 남기도록 좌시하지 않겠다”는 게 골자다.
 
  11월이면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6개월이 된다. 그다지 길지 않은 기간인데 곳곳에서 폭파음이 요란하다. 대한민국 역사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정도로 정통성이 무너지고 있으며, 교육 현장은 “아이들이 ‘실험용 쥐’냐”며 학부모와 학생들이 반발할 정도로 원칙이 훼손됐고, 공영방송에서는 신종 홍위병들이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붕괴의 굉음(轟音) 가운데 가장 우려되는 것이 안보(安保)다. 공산당을 막고 간첩을 잡아야 할 국정원-검찰-경찰-기무사의 대공(對共) 기능이 마비됐고 군(軍)은 지휘부에 대한 약점 들춰내기-망신 주기로 사기가 잔뜩 저하됐다. 문득 10개월 전에 읽은 문재인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의 한 구절이 떠올라 서가에 꽂힌 책을 다시 들춰봤다.
 
  “특전사령부 예하 제1공수특전여단 제3대대에 배치됐다. 특수전 훈련 때 폭파 주특기를 부여받았다. 나는 공수병이자 폭파병이 됐다. 6주간의 특수전 훈련을 마칠 때 정병주 특전사령관으로부터 폭파 과정 최우수 표창을 받았다. 정 사령관은 나중 12·12 신군부 쿠데타 때 끝까지 저항하다 반란군의 총에 맞아 참군인의 표상이 된 인물이다. 전두환 여단장은 그 쿠데타를 이끌고 성공해 대통령까지 됐다. 관등성명을 외웠던 두 직속상관의 운명이 그렇게 극적으로 엇갈렸다. 자대로 돌아온 후 전두환 여단장으로부터 화생방 최우수 표창을 받은 일도 있었다.”
 
  정말 ‘운명(運命)’처럼 대통령은 특전사 공수병 때처럼 지금도 ‘폭파(爆破)’라는 능기(能技)를 유감없이 선보이고 있다. 본인이나 그의 지지자들은 지금 행하는 모든 작업을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적폐청산’이라고 굳게 믿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게는 이 모든 작업의 최종 결과가 ‘대한민국 폭파’처럼 될 것처럼만 보인다.
 
  내친김에 책을 다시 읽어보니 지금 상황을 예언한 것 같은 대목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1959년 추석 때 태풍 ‘사라’호가 내습(來襲)했을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대통령이 당한 피해를 기록한 부분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이 처한 불안한 상황을 예시적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아 안타까웠다.
 
  “사라호 태풍 때 우리 집도 지붕이 날아갔다. 그때 우리 집은 흙벽돌로 지었고 지붕은 판자에 루핑이 씌워져 있었다. 하필 아버지가 장사를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해 집에 안 계실 때였다. 세찬 태풍이 몰아쳐 나무로 된 부엌문을 계속 흔들자 문이 견디지 못해 장석이 떨어져 나갔다. 어머니와 내가 문이 열리지 않도록 붙잡았고 누나도 거들었다. 그러다가 바람의 힘을 이기지 못해 문을 놓치고 말았다. 문이 확 열리면서 남은 장석마저 떨어져 나갔다. 그러자 바람이 순식간에 집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바람이 집에 가득 차서 집안이 팽창하는 듯하더니 어느 순간 바람이 위로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지붕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그 지붕은 어디로 날아가 버렸는지 찾지도 못했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며 ‘태풍 사라’에서 김정은이 들고 설치는 핵폭탄과 미사일을 연상했다. ‘우리 집은 흙벽돌로 지었고’라는 부분에서 혼자 힘으로 나라를 지킬 수 없는 우리의 무력함을 떠올렸다. ‘어머니와 내가 문이 열리지 않도록 붙잡았고 누나도 거들었다’는 부분에서 북핵 위기에 대한 한미일(韓美日) 동맹을 생각했다. ‘바람의 힘을 이기지 못해 문을 놓치고 말았다’는 부분에서 한미일 동맹의 균열과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올 김정은이 우려됐다. ‘지붕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는 부분에서는 대한민국의 불길한 징조가 내뿜는 것 같은 냄새가 느껴졌다.
 
  가난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뼈저린 아픔을 숨기지 않고 표현했다. 《운명》을 비롯해 대통령이 쓴 책을 다 숙독했지만 《운명》에서만큼 진솔하게 표현한 책을 보지는 못했다. 대통령보다는 못하지만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아, 우리의 대통령이 꽤나 어려운 소년시절을 지냈구나” 하며 공감하기도 했다. 다음은 그 관련 부분들이다.
 
  “가난한 아이들은 설과 추석 때나 겨우 목욕탕에 갔다. 선생님들이 위생검사를 한다며 한번씩 웃통을 벗겨보고는 때가 많으면 아이들 앞에서 창피를 주기도 했다. 나는 그런 일을 한번도 겪지 않았지만 다른 아이가 겪는 것을 보면서 모멸감과 함께 반항심을 느끼곤 했다.”
 
  “초등학교에서 도시락이 필요한 학년이 됐을 때 아이들 태반은 도시락을 싸 오지 못했다.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급식을 했다. 학교가 공급받는 급식재료 양이 일정하지 않았던지 강냉이 떡을 한 개씩 줄 때도 있었고 반 개씩 줄 때도 있었다. 그나마도 안 될 때는 강냉이 죽을 끓여서 줬다. 그런데 급식을 나눠주는 그릇이 없었다. 강냉이 떡은 그래도 괜찮았지만 강냉이 죽일 때가 문제였다. 도시락을 싸 온 아이들의 도시락 뚜껑을 빌려서 죽을 받아 먹도록 했다. 도시락 뚜껑이 부족할 때엔 2명이 교대로 사용하기도 했다. 나는 도시락 뚜껑을 빌릴 때마다 자존심이 상했다. 그런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무상급식 논쟁을 관심 있게 본다.”
 
  “가난 때문에 하고 싶어도 못한 것이 많다. 지금도 나는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집에 자전거가 있었던 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가난이 내게 준 더 큰 선물도 있다. ‘돈이라는 게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라는 지금의 내 가치관은 오히려 가난 때문에 내 속에 자리 잡은 것이다”라고 썼는데 이 부분은 내 신조(信條)와 정반대였다. 나는 가난해서 잘살아 보려 발버둥 치고 있는데 왜 대통령은 ‘돈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굳혔는지 알 수 없다.
 
  가난했지만 ‘도시락 뚜껑을 빌릴 때마다 자존심이 상했고 어머니를 도와 (얼굴에) 검댕을 묻히는 연탄배달 일이 늘 창피했다’는 것으로 미뤄 자존감이 남달랐던 대통령은 결국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키워나가는 길’을 선택했다. 그런 그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람이 고 리영희씨다. 《운명》의 한 부분을 소개한다.
 
  “대학시절 나의 비판의식과 사회의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은, 그 무렵 많은 대학생들이 그러했듯 리영희 선생이었다. 나는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가 발간되기 전에, 그 속에 담긴 ‘베트남전쟁’ 논문을 《창작과 비평》 잡지에서 먼저 읽었다. 대학교 1, 2학년 무렵 잡지에 먼저 논문 1, 2부가 연재되고 3학년 때 책이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 접한 리영희 선생 논문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베트남 전쟁의 부도덕성과 제국주의적 전쟁의 성격, 미국 내 반전운동 등을 다뤘다. 결국은 초강대국 미국이 결코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는 것이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근거가 제시돼 있었고 명쾌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미국을 무조건 정의로 받아들이고 미국의 주장을 진실로 여기며 상대편은 무찔러 버려야 할 악으로 취급해 버리는 우리 사회의 허위의식을 발가벗겨 주는 것이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대통령이 왜 취임 초부터 ‘한반도 운전자론(論)’을 주창했는지 이해하게 됐다. 비록 허망해 보이지만 대망(大望)을 품어보는 것은 사나이 대장부에게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불과 6개월 만에 대통령의 입에서는 국민 전체의 기운을 쏙 빼고 어깨를 축 처지게 하는 말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안보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어떻게 할 여건이 못 된다. 외부 요인이 이렇더라도 내부가 제대로 결속되고 단합한다면 충분히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10월 10일)
 
  “우리가 뼈저리게 느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한반도 문제인데도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해결할 힘이 없고 합의를 이끌어낼 힘도 없다는 사실이다.”(올 7월 G20정상회담 후)

 
  여기서 ‘내부적으로 단합한다면 충분히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왜 적폐청산을 앞세워 정치보복을 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잡아넣기 위해 치졸한 플레이를 하느냐고 묻고 싶지는 않다. 다만 가난한 자(者)의 생존법에 대한 소견을 소개하고자 한다. 힘없는 사람이 자존심을 지키는 길을 순서대로 말하면 이렇다.
 
  첫째, 자신의 능력부족을 인정하지만 비굴하지 말아야 하는 게 상책(上策)이다. 둘째, 오랜 벗이 돕겠다면 자격지심 갖지 말고 감사하게 받는 게 중책(中策)이다. 셋째, 능력도 없는데 힘 있는 척 허세(虛勢)를 부리는 게 하책(下策)이다. 이런 사람은 동냥도 못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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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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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yuhn    (2017-10-27)     수정   삭제 찬성 : 2   반대 : 3
어렸을 때 집에 자전거가 없어서 지금도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논리의 비약 수준이 거의 핵폭탄 급입니다
ㅋㅋㅋㅋㅋ
  나그네    (2017-10-24)     수정   삭제 찬성 : 4   반대 : 4
좋은 글 입니다

20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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