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편집장의 편지

대한민국은 끝내 ‘만경봉호’에 집단 승선할 것인가?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행주와 걸레 사이
 
  수건(手巾)이 영락(零落)하면 행주나 걸레가 된다. 행주와 걸레는 쓰임새가 분명 다른데 구분하기가 영 쉽지 않다. 사전(辭典)에서 행주는 ‘그릇이나 밥상 따위를 닦거나 씻는 데 쓰는 헝겊’이다. 걸레는 ‘더러운 곳을 닦거나 훔쳐내는 데 쓰는 헝겊’이다. 말대로라면 행주가 걸레보다 깨끗해야 옳다.
 
  그렇다면 엉망으로 놔 둔 행주와 매번 세제(洗劑)로 푹 삶아 햇볕에 바싹 말려 놓은 걸레는 어떨까. 집권 한 달을 넘긴 문재인 대통령 정부의 인사(人事) 파행을 보면서 집권세력이 ‘행주와 걸레의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대표적인 예를 몇 가지 들어 보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하기 전 ‘5대 인사원칙’이라는 것을 공언했다. 위장전입·병역면탈·부동산투기·세금 탈루(脫漏)·논문표절에 해당되면 발탁에서 배제하겠다는 것이었다. 문 대통령 세력은 자기들은 ‘걸레 같은’ 과거 정권과 달리 수건이나 적어도 깨끗한 행주는 된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나는 이 기준에 들어맞는 인재를 단 한 명도 찾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지금 전개되는 상황이 과연 그렇다. 하나같이 위장전입·병역면탈·부동산투기·세금탈루·논문표절에 음주운전·성희롱·막말까지 뒤범벅이다. 주목받는 것은 문 대통령 세력들이 과거 거침없이 내뱉었던 독설(毒舌)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서울대 교수이던 2016년 8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음주운전 경력이 있는 이철성 경찰청장을 임명하자 자기 소셜미디어에 “음주운전 단속의 총책임자가 이런 범죄를 범하고 은폐까지 했다”며 “미국 같으면 애초 청문회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다”고 썼다.
 
  조국 수석의 당시 글은 날이 시퍼렇다. “우병우 (전) 수석의 마음은 ‘나의 비위를 덮으려면 더 센 비리를 가진 사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여왕’의 마음은 ‘비위에도 불구하고 포도청장직을 제수했으니 이 미욱한 자가 짐에게 얼마나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겠는가!’”
 
  조국 수석은 2010년 8월에도 이명박 정부 장관 후보자들의 위장전입이 밝혀지자 〈맹모(孟母)는 실제 거주지를 옮긴 실거주자였기에 위장전입 자체가 거론될 수 없다. 인지상정? 이는 좋은 학군으로 이사하거나 주소를 옮길 여력이나 인맥이 없는 시민의 마음을 후벼 파는 소리!〉라는 글을 썼다.
 
  조국 수석의 글을 자세히 인용하는 것은 흔히 하는 말처럼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조국 수석의 ‘내로남불’을 비아냥거리거나 출범한 지 얼마 안 된 문재인 정부에 저주(詛呪)를 내려 하루빨리 좌초하길 바라는 못된 심보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우리는 도학자(道學者)를 뽑는 것이 아니다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의 좌표(座標)가 막 사서 포장을 뜯어 보니 뽀송뽀송한 냄새가 나는 수건은커녕 행주와 걸레 그 중간의 어딘가라고 본다. 나라가 그러니 국민들의 수준도 엇비슷할 것이다. “너는 무슨 증거로 대한민국을 폄훼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우리는 단군(檀君) 이래 지금의 20~30년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부유해 본 적이 없다. 배불리 먹어 보지도 못했다.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지도 못했다. 우리는 오천 년간 매번 이런저런 강대국에 짓밟혀 문화재를 빼앗기고 민초(民草)들의 목숨을 바쳤으며 필경엔 나라마저 강탈당했다.
 
  그 과정에서 권위는 무너졌고 예의와 도덕은 사라져 버렸다. 영화 〈국제시장〉처럼 ‘너죽고 나살자 식’의 개인주의가 팽배해졌으며 그런 의식은 우리가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여러 수치의 틈 속에 도사려 여전히 숨쉬고 있다. 즉 우리는 아직도 정신적·도덕적으론 개발도상국인 것이다.
 
  그런 이 나라를 먹고살게 만든 게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전 대통령과 근대화의 국부(國父) 박정희 전 대통령이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까지의 40여 년 분투였다. 그런 나라를 비판을 능기(能技)로 삼아 온 후임자들이 무너뜨린 것도 모자라 반목과 질시라는 악성 인자까지 심어 놓았다.
 
  2017년의 대한민국이 겪는 비극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고 나는 믿는다. 만일 우리의 좌표를 인정한다면 장관이나 차관 같은 공직자의 임명 기준이 티 한 점 없는 도학자(道學者)를 찾는 게 아니라 최악(最惡) 아닌 차악(次惡)의 능력자를 구하는 것으로 바뀌고 정권마다 겪는 구인난이 없어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놓여 있는 좌표를 냉정히 바라보고 거기 수긍한다면 국제적으로 대한민국이 취할 방향이 금세 나온다. 스스로를 지킬 능력이 없는 우리는 현존하는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보호가 없다면 북한 아니면 일본·중국·러시아 가운데 한 나라에 반드시 먹히고 말 운명이다.
 
  그게 적화(赤化)통일이 될지, 옛날처럼 굽신거리며 조공(朝貢)을 바치거나 아예 식민지(植民地) 같은 형태가 될지를 지금 단언할 수는 없지만 미국이라는 존재가 없다면 그렇게 되는 게 우리의 운명인 것이다. “너는 무슨 증거로 대한민국의 능력을 불신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300년 넘게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잇고 있는 영국·미국 같은 영미(英美)계 국가들에도 흠이 없을 수는 없다. 그들도 헤아릴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른 역사가 있으며 국익(國益) 앞에서는 한없이 치사해지는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거론한 국가들과 비교하면 그들은 차악(次惡)에 속한다.
 
  영미계 국가의 특징은 ‘약속(約束)을 준수한다’는 것이다.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쉬워 보이지만 그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질서가 있다는 것이며 질서가 있다는 것은 나라의 기반이 탄탄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들은 ‘약속을 어기는 민족’을 야만인 혹은 인간 이하로 여긴다.
 
  사드(THHAD) 미사일 반입을 놓고 경상북도 성주(星州)에서 벌어지는 광경이나 위안부 합의를 놓고 한일 간에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며 미국이나 일본은 한국을 ‘국가 간의 기본적인 약속조차 안 지키는 나라’로 여길 것이 분명하며 그것이 앞으로 무슨 결과를 초래할지 두렵기만 하다.
 
 
  300만과 5000만
 
  좌편향 정권이 행주 타령을 하든 걸레 타령을 하든 그것이 내부 논쟁으로만 그친다면 별 문제가 될 수 없다. 다만 이것이 한미동맹 해체로 이어진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애치슨 라인’이 6·25를 불러왔듯 우리의 운명을 결정지을 최후의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는 점이다.
 
  남북 간의 마지막 전쟁은 대한민국의 패배로 귀결될 것이다. 우리는 북한의 포화(砲火)와 미사일이 떨어지는 순간 내부 분열로 변변한 저항조차 못할 것이다. “우리 민족끼리 함께 살자”는 악마(惡魔)의 달콤한 유혹에 빠지는 국민이 상당수가 될 것이다. 이는 한민족의 절멸(絶滅)로 이어진다고 본다.
 
  북한이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삼대(三代)에 걸쳐 핵폭탄과 핵미사일을 개발한 것은 “경제가 파탄나도 2500만 가운데 노동당원 300만명만 살면 된다”는 결심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곁가지’ 2200만명을 희생한다고 가정하면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하나도 두렵지 않은 것이다.
 
  대한민국이 일군 부(富)를 김정은이 차지한다면 같은 논리가 적용될 것이다. 맨처음 김정은은 국군과 경찰, 보수세력을 도륙내 버릴 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고사기총 소리가 한반도 전역에 피비린내와 함께 진동할 것이다. 문제는 김정은의 숙청(肅淸)이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김정은의 총부리는 국내의 좌파세력으로 향할 것이다. 그 옛날 할아버지 김일성이 박헌영에게 적용했던 것처럼 김정은은 그들을 미제(美帝)의 간첩으로 몰아 무자비하게 숙청할 것이다. 순진하게도 북한을 흠모했던 이들은 개마고원의 척박한 고원 위에서 때늦은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2500만 북한 주민과 5000만 남한 주민 가운데 300만의 귀족과 필요한 ‘노예’들만 남기면 북한은 아무리 제재를 받더라도 100년 이상을 지탱할 수 있다. 김정은은 지금 평양의 주석궁에서 그런 궁리를 하고 있으리라고 본다.
 
  나는 지금 대한민국의 처지가 지옥을 지상낙원이라 믿으며 만경봉호에 올라타려고 기다리는 북송(北送)교포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제발 옥쇄(玉碎)를 각오하지 말자. 옥쇄는 바둑에서나 통용될 말이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