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 한나라당을 취재할 때의 일입니다. 현재의 새누리당 전신이죠. 1998년 정계 입문한 박근혜(朴槿惠) 부총재가 2001년 11월 전주 우석대에서 특강을 했습니다.
“지역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원인은 지역정당에 제왕적으로 군림하고 있는 1인 보스 중심 체제 때문이며, 각 정당은 이제 지역의 사슬로부터, 1인 지배의 늪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한나라당은 야당이었습니다. 이회창(李會昌) 총재가 여러 차례 집권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향해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을 때였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이란 표현을 워낙 자주 듣던 마당이라 ‘제왕적 총재’ 얘기도 그저그런 비판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정치부 기자들이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이죠.
이후 박 부총재는 몇 차례 더 정당 민주화를 거론하며 공천 과정 투명화, 당내 민주화, 총재의 공천권 남용 방지 등을 주장했습니다. 갈수록 발언 수위가 강해졌습니다. 그러더니 2012년 1월이 되자 당내 비주류군(群)인 김덕룡, 이부영 부총재 등과 연합해 이 총재에게 당권·대권 분리, 집단지도체제 도입 등 구체적 대책의 실천을 압박했습니다.
여기까지 이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군요. 유독 제가 그런 의심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집단 탈당 취재를 한 경험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입니다. 1992년에는 이종찬(李鍾贊), 1997년엔 이인제(李仁濟) 등 대선주자급의 탈당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봤던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박 부총재의 움직임과 92년, 97년 상황이 오버랩되면서 ‘혹시…’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당시만 해도 박 부총재는 기자들과 제대로 만난 적이 없습니다. 지금은 짐작도 못할 일이지만, 당시엔 박 부총재의 당내외 영향력이 미미할 때였습니다. 영향력이 없다는 말은 뉴스와 정보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도 즐기지 않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기자들이 그를 찾을 리가 없지요. 심지어 사석(私席)에선 기라성 같은 영남 출신 중진의원들이 ‘가시나(계집아이의 사투리)가 뭘…’이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제왕적 총재’ 비판에 앞장선 박근혜 부총재
올해 초 정가를 떠들썩하게 했던 정윤회 실장(당시 이렇게 불렀습니다)한테 부탁을 해서 국회의원회관에서 면담을 했습니다. 2002년 1월 20일쯤이었죠. 인사말 정도를 건넨 다음 물었습니다. “요즘 말씀하시는 것 죽 보니까 탈당하시겠는데요. 그런 취재를 많이 해 봤는데 비슷한 과정으로 보여요. 대개 이런 식으로 하다가 당을 떠나거든요”라고요. 박 부총재는 “무슨 말씀이세요. 저 그런 생각 없어요”라고 딱 잘라 부인하더군요. 그러더니 그는 그동안 당내 민주화 주장을 했던 이유 등을 길게 설명했습니다. ‘제왕적 총재’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포인트였습니다. 제왕적 총재의 행태를 사례를 들어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 아니라 다분히 총론(總論)에 가까운 내용이어서 구체적인 내용을 기억하진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회창 총재와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는 것만은 명백해 보였습니다.
본인은 부인했지만, 저는 제 감(感)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탈당할 때 하더라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큰 우산 속에 있을 때와 우산이 없을 때가 상당히 다르다는 점입니다. 자칫 정치부 기자들 관심 밖으로 밀릴 수 있습니다. 그 얘기는 국민으로부터 멀어진다는 의미입니다”라고 나름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2월 들어서도 한나라당 내 정당민주화 논란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주류인 이회창 총재와 비주류 간 공방이 제대로 된 접점을 찾지 못했죠. 밀고 당기기를 하면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더니 돌연 박 부총재가 탈당을 했습니다. 2월 말이죠. 제가 예언 아닌 ‘예언’을 한 이후 40일 정도 지난 뒤였습니다. 박 부총재가 저와 만났을 때는 탈당 생각을 하지 않다가 상황이 바뀌어 그렇게 결정했을까요. 진상은 모르지만, 40일간 결심을 바꿀 만한 정황은 별로 없었습니다.
결국 1인 신당 만든 박 대표
박 부총재가 탈당을 결행하자 언론은 그야말로 ‘소설’을 썼습니다. 새천년민주당·한나라당 밖의 제3지대 신당설 등 온갖 정계개편 시나리오를 기사화했습니다. 2002년 3월 초 《세계일보》 기사 한 토막을 옮겨 보겠습니다. 다른 신문들도 대개 비슷했습니다.
〈박근혜 의원과 이수성 전 총리가 회동을 갖고 신당 창당에 합의하는 등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신당 창당 움직임이 가시권에 들어서고 있다. 신당 추진 세력은 6월 지방선거 전 박 의원과 한나라당 탈당이 예상되는 김덕룡 의원, 무소속의 정몽준 의원 등 중심으로 정치 선진화를 기치로 한 신당을 만들어 지방선거에 참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만 아닙니다. 당시 집권당인 민주당 J 의원 등의 이름도 합류 가능 인사에 오르내리는 등 여야의 비주류들이 이리저리 총결집할 것처럼 기사를 쓰더군요. 저도 그중에 한 명이긴 했지만, 정치부 기자들의 취재 한계라고 해야 하나요. 신당 추진 세력이 말하는 것, 때로는 희망사항을 검증을 거치지 않고 쓰다 보니 이런 ‘심각한 오보’가 생기더군요.
실제는 어떻게 됐습니까. 박근혜 의원이 탈당해 만든 한국미래연합은 1인 정당이 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탈당한 현역의원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정당민주화고, 1인 지배 종식이고 어쩌고를 논하기조차 쑥스러운 지경의 정당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해 여름 제가 한국미래연합을 찾았습니다. 또다시 정윤회 당시 대표 비서실장을 통해 면담 일정을 조정했습니다. 제가 “그래 탈당하고 보니 어떻습니까”라고 소감을 물었더니 박 대표는 제가 상상도 못한 질문을 하더군요. “왜 이회창 총재 기사는 그렇게 쓰고 저희 기사는 안 쓰는 것이죠”라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저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무슨 뜻인지 딱 와 닿지가 않더군요.
‘정치부 기자의 기사 판단 기준으로 보면, 이회창 대통령후보와 박근혜 대표는 기사 가치에 있어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그걸 모른단 말인가, 아니면 알면서 떠보는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한참을 얘기하고 보니 제 상상 밖의 영역, 즉 왜 동등하게 취급해 주지 않느냐는 범주의 주장이었습니다. 이유를 길게 설명했는데, 나중에 일어날 때 다시 같은 취지의 질문을 해 당혹해한 적이 있습니다.
‘네 죄를 알렸다’ 식 공격에서 나타난 제왕적 모습
박 부총재, 박 대표는 한나라당 대표, 대선 후보를 거쳐 이제 대통령이 됐습니다. 그는 요즘 한때 자신의 비서실장이었던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 ‘배신의 정치’ 등의 용어를 써 가며 공격해 원내대표 자리에서 낙마시켰습니다. 표면적 이유는 ①국회에서 야당과 협상을 제대로 못했고 ②여당 원내사령탑이란 자리를 자기 정치에 이용했다는 것입니다. ②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자기 개인의 소신인 ‘법인세 인상’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 등을 ‘교섭단체 대표’의 주장인 양 언급한 것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일리있는 지적입니다. 유승민 의원 개인과 교섭단체 대표라는 자리는 다릅니다. 당연히 구분해서 발언했어야 하는 것이지요.
보다 중요한 문책(問責) 사유인 ①은 아닙니다. 공무원연금 개혁 자체를 하지 않으려는 야당을 설득하려면 당근(carrot)이 필요한데, 국회법 개정안이 그것입니다. 박 대통령과 황우여 현 교육부총리가 주도해 만든 국회선진화법 아래서 야당과 ‘주고받기’를 하지 않고는 법안 통과를 시킬 수 없습니다. 완승(完勝), 완패(完敗)는 없습니다.
만약 다른 원내대표가 대야 협상에 나섰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었을까요. 저는 지금 같은 여건을 바꾸지 않는 한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또 국회법 개정안을 받을 수 없다며 공무원연금 개혁을 미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저는 박근혜 정부 임기내 연금법에 아무런 손도 대지 못할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②가 문제인데, 이건 조용히 불러 조율(調律)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국정을 다루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국무회의에서 ‘네 죄를 알렸다’는 식으로 호통치는 모습은 21세기에 사는 국민들을 불편하게 합니다. 거기다가 박 대통령 본인이 정치 입문 후 타파하고자 했던 제왕적 모습과도 흡사해 보입니다. 박 대통령 취임 후 2년이 넘도록 오래전 기억을 되살려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모습을 보면서는 그때의 표정, 단어 등이 눈앞에 선합니다.⊙
“지역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원인은 지역정당에 제왕적으로 군림하고 있는 1인 보스 중심 체제 때문이며, 각 정당은 이제 지역의 사슬로부터, 1인 지배의 늪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한나라당은 야당이었습니다. 이회창(李會昌) 총재가 여러 차례 집권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향해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을 때였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이란 표현을 워낙 자주 듣던 마당이라 ‘제왕적 총재’ 얘기도 그저그런 비판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정치부 기자들이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이죠.
이후 박 부총재는 몇 차례 더 정당 민주화를 거론하며 공천 과정 투명화, 당내 민주화, 총재의 공천권 남용 방지 등을 주장했습니다. 갈수록 발언 수위가 강해졌습니다. 그러더니 2012년 1월이 되자 당내 비주류군(群)인 김덕룡, 이부영 부총재 등과 연합해 이 총재에게 당권·대권 분리, 집단지도체제 도입 등 구체적 대책의 실천을 압박했습니다.
여기까지 이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군요. 유독 제가 그런 의심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집단 탈당 취재를 한 경험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입니다. 1992년에는 이종찬(李鍾贊), 1997년엔 이인제(李仁濟) 등 대선주자급의 탈당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봤던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박 부총재의 움직임과 92년, 97년 상황이 오버랩되면서 ‘혹시…’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당시만 해도 박 부총재는 기자들과 제대로 만난 적이 없습니다. 지금은 짐작도 못할 일이지만, 당시엔 박 부총재의 당내외 영향력이 미미할 때였습니다. 영향력이 없다는 말은 뉴스와 정보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도 즐기지 않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기자들이 그를 찾을 리가 없지요. 심지어 사석(私席)에선 기라성 같은 영남 출신 중진의원들이 ‘가시나(계집아이의 사투리)가 뭘…’이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제왕적 총재’ 비판에 앞장선 박근혜 부총재
올해 초 정가를 떠들썩하게 했던 정윤회 실장(당시 이렇게 불렀습니다)한테 부탁을 해서 국회의원회관에서 면담을 했습니다. 2002년 1월 20일쯤이었죠. 인사말 정도를 건넨 다음 물었습니다. “요즘 말씀하시는 것 죽 보니까 탈당하시겠는데요. 그런 취재를 많이 해 봤는데 비슷한 과정으로 보여요. 대개 이런 식으로 하다가 당을 떠나거든요”라고요. 박 부총재는 “무슨 말씀이세요. 저 그런 생각 없어요”라고 딱 잘라 부인하더군요. 그러더니 그는 그동안 당내 민주화 주장을 했던 이유 등을 길게 설명했습니다. ‘제왕적 총재’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포인트였습니다. 제왕적 총재의 행태를 사례를 들어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 아니라 다분히 총론(總論)에 가까운 내용이어서 구체적인 내용을 기억하진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회창 총재와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는 것만은 명백해 보였습니다.
본인은 부인했지만, 저는 제 감(感)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탈당할 때 하더라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큰 우산 속에 있을 때와 우산이 없을 때가 상당히 다르다는 점입니다. 자칫 정치부 기자들 관심 밖으로 밀릴 수 있습니다. 그 얘기는 국민으로부터 멀어진다는 의미입니다”라고 나름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2월 들어서도 한나라당 내 정당민주화 논란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주류인 이회창 총재와 비주류 간 공방이 제대로 된 접점을 찾지 못했죠. 밀고 당기기를 하면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더니 돌연 박 부총재가 탈당을 했습니다. 2월 말이죠. 제가 예언 아닌 ‘예언’을 한 이후 40일 정도 지난 뒤였습니다. 박 부총재가 저와 만났을 때는 탈당 생각을 하지 않다가 상황이 바뀌어 그렇게 결정했을까요. 진상은 모르지만, 40일간 결심을 바꿀 만한 정황은 별로 없었습니다.
결국 1인 신당 만든 박 대표
박 부총재가 탈당을 결행하자 언론은 그야말로 ‘소설’을 썼습니다. 새천년민주당·한나라당 밖의 제3지대 신당설 등 온갖 정계개편 시나리오를 기사화했습니다. 2002년 3월 초 《세계일보》 기사 한 토막을 옮겨 보겠습니다. 다른 신문들도 대개 비슷했습니다.
〈박근혜 의원과 이수성 전 총리가 회동을 갖고 신당 창당에 합의하는 등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신당 창당 움직임이 가시권에 들어서고 있다. 신당 추진 세력은 6월 지방선거 전 박 의원과 한나라당 탈당이 예상되는 김덕룡 의원, 무소속의 정몽준 의원 등 중심으로 정치 선진화를 기치로 한 신당을 만들어 지방선거에 참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만 아닙니다. 당시 집권당인 민주당 J 의원 등의 이름도 합류 가능 인사에 오르내리는 등 여야의 비주류들이 이리저리 총결집할 것처럼 기사를 쓰더군요. 저도 그중에 한 명이긴 했지만, 정치부 기자들의 취재 한계라고 해야 하나요. 신당 추진 세력이 말하는 것, 때로는 희망사항을 검증을 거치지 않고 쓰다 보니 이런 ‘심각한 오보’가 생기더군요.
실제는 어떻게 됐습니까. 박근혜 의원이 탈당해 만든 한국미래연합은 1인 정당이 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탈당한 현역의원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정당민주화고, 1인 지배 종식이고 어쩌고를 논하기조차 쑥스러운 지경의 정당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해 여름 제가 한국미래연합을 찾았습니다. 또다시 정윤회 당시 대표 비서실장을 통해 면담 일정을 조정했습니다. 제가 “그래 탈당하고 보니 어떻습니까”라고 소감을 물었더니 박 대표는 제가 상상도 못한 질문을 하더군요. “왜 이회창 총재 기사는 그렇게 쓰고 저희 기사는 안 쓰는 것이죠”라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저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무슨 뜻인지 딱 와 닿지가 않더군요.
‘정치부 기자의 기사 판단 기준으로 보면, 이회창 대통령후보와 박근혜 대표는 기사 가치에 있어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그걸 모른단 말인가, 아니면 알면서 떠보는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한참을 얘기하고 보니 제 상상 밖의 영역, 즉 왜 동등하게 취급해 주지 않느냐는 범주의 주장이었습니다. 이유를 길게 설명했는데, 나중에 일어날 때 다시 같은 취지의 질문을 해 당혹해한 적이 있습니다.
‘네 죄를 알렸다’ 식 공격에서 나타난 제왕적 모습
박 부총재, 박 대표는 한나라당 대표, 대선 후보를 거쳐 이제 대통령이 됐습니다. 그는 요즘 한때 자신의 비서실장이었던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 ‘배신의 정치’ 등의 용어를 써 가며 공격해 원내대표 자리에서 낙마시켰습니다. 표면적 이유는 ①국회에서 야당과 협상을 제대로 못했고 ②여당 원내사령탑이란 자리를 자기 정치에 이용했다는 것입니다. ②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자기 개인의 소신인 ‘법인세 인상’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 등을 ‘교섭단체 대표’의 주장인 양 언급한 것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일리있는 지적입니다. 유승민 의원 개인과 교섭단체 대표라는 자리는 다릅니다. 당연히 구분해서 발언했어야 하는 것이지요.
보다 중요한 문책(問責) 사유인 ①은 아닙니다. 공무원연금 개혁 자체를 하지 않으려는 야당을 설득하려면 당근(carrot)이 필요한데, 국회법 개정안이 그것입니다. 박 대통령과 황우여 현 교육부총리가 주도해 만든 국회선진화법 아래서 야당과 ‘주고받기’를 하지 않고는 법안 통과를 시킬 수 없습니다. 완승(完勝), 완패(完敗)는 없습니다.
만약 다른 원내대표가 대야 협상에 나섰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었을까요. 저는 지금 같은 여건을 바꾸지 않는 한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또 국회법 개정안을 받을 수 없다며 공무원연금 개혁을 미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저는 박근혜 정부 임기내 연금법에 아무런 손도 대지 못할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②가 문제인데, 이건 조용히 불러 조율(調律)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국정을 다루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국무회의에서 ‘네 죄를 알렸다’는 식으로 호통치는 모습은 21세기에 사는 국민들을 불편하게 합니다. 거기다가 박 대통령 본인이 정치 입문 후 타파하고자 했던 제왕적 모습과도 흡사해 보입니다. 박 대통령 취임 후 2년이 넘도록 오래전 기억을 되살려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모습을 보면서는 그때의 표정, 단어 등이 눈앞에 선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