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년 1월 1일. 모임이 있어 충남 서산에 갔습니다. 구제역과 AI(조류 인플루엔자)의 창궐로 곳곳에서 소독작업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모는 차가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나서자 분사기에서 허연 연기 같은 소독약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소독약의 양과 분사속도를 보니 “저래 가지고 되겠어”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정말 뿌리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전문가가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그 정도로 죽을 구제역 바이러스라면 한국에 상륙조차 하지 않았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며칠 뒤 TV를 보니 그곳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구제역 소독약으로 생석회를 물에 희석해서 뿌리는 모양입니다. 그래야 효과가 있다고 하네요. 그런데 물에 희석하면 추위로 얼어 빙판이 될 우려가 있다고 생석회만 뿌리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구제역 방역 작업을 했다는 ‘실적’은 될지 모르지만 구제역 바이러스가 생석회 위에 앉아 조롱하지 않겠습니까.
엉성한 방역에 속수무책 된 구제역
그 탓인지 구제역 확산은 속수무책 상태가 됐습니다. 오죽하면 《충남도정신문》(충남도청이 발행하는 신문)이 1월 10일 첫 호외(號外)를 발행했겠습니까. 창간 20년 만에 처음이라고 합니다. 구제역에 대해 농가나 국민들의 행동요령을 담았다네요. 왜 이런 안내가 이제야, 특정 지역에서만 이뤄지고 있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1월 6일 구제역 대책 관계장관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작년 11월 29일 경북 안동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지 40여 일 만입니다.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뒤입니다. 청와대 발표를 보면 “치밀하고 철저한 방역대책을 세우라” “내년도 근본대책을 세우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내년도 근본대책’이란 표현이 눈에 띄지만, 공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실제 작년 11월 말, 12월에 국무회의에서 구제역 대책이 논의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북한의 연평도 도발, 정부 예산안 단독처리 등의 사건에 휩싸여 구제역 대책은 뒷전으로 밀렸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참 한심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가 대통령이 관심 갖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는 그런 나라입니까. 북한의 연평도 도발은 국방부가, 예산안 문제는 기획재정부가 중심이 돼 대처하면 되는데, 농림수산식품부나 행정안전부 같은 부서도 그런 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나요.
무엇보다 작년 한 해에 우리나라에서 구제역이 세 번이나 발생했습니다. 처음 발생했을 때 철저하게 대책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면, 아니 작년이 아니라 재작년 또는 그 이전에 대책을 세웠다면 한국은 벌써 구제역 청정(淸淨)국가가 됐을 것입니다.
미국은 80년간 구제역 발생 0
저도 신문 보고 안 일이지만, 구제역은 후진국형 전염병이라고 합니다. 위생과 소독, 방역이 허술한 나라에서 주로 발병한다고 하네요. 선진국 일본에서도 작년 4월 구제역이 발생했다는데, 이게 10년 만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여행객을 통해서 유입된 모양이지요. 우리도 후진국은 아니니까 여행객을 통해 구제역 바이러스가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합니다. 방역 당국은 베트남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베트남뿐 아니라 중국, 몽골, 인도 등은 아예 구제역을 방치하고 있답니다. 그런 나라와 인접하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교류를 끊을 수는 없고, 어떻게든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국이 계속 구제역 바이러스를 따라다니며 뒷북을 치더니 이제는 전수(全數) 백신을 맞게 하고 매몰은 최종 단계로 미루는, 구제역 정책 전환을 했다고 합니다.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도 답답합니다. 매년 반복되거나 일 년에 몇 차례씩 발병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차 타고 달리다 보면 구릉지대를 새까만 소들이 뒤덮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몇 마리일까 셀 수조차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키우는 한우는 그에 비하면 ‘몇 마리’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입니다. 그런 나라에서 구제역이 80년간 발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중국, 베트남, 인도 같은 나라를 방문하지 않아서일까요. 중국, 베트남, 인도 사람들이 미국에 가지 않아서일까요.
다 아닐 것입니다. 하도 궁금해서 전문가에게 글을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매년 구제역 때문에 지친 수의사와 정치인들이 1929년부터 박멸작업을 벌여 그 후 80년 동안 미국에서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80년간 청정국가라면 그 후 관리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것입니다. 한 번 예방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미국과 한국의 가축 사육 환경이 물론 다르지요. 이웃도 다르고요. 그럼에도 이건 아닙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참 우리는 ‘예방이 안 되는 나라’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제대로 된 안전지대가 없어
구제역뿐만이 아닙니다.
작년 12월 서울외곽순환도로 화재 기억나시죠. 고속도로 밑 주차할 수 없는 곳에 차를 세워둔 것은 물론 여러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은 채 주유를 하는 바람에 차량 37대가 모두 타고, 순환도로도 끊어져 다시 만들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주차금지 구간을 설정해 놓거나 안전규정을 만든 것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지키면 상당수의 사고는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나더라도 피해가 현저히 줄어들게 됩니다. 만약 시청·군청이 불법주차 단속을 철저히 하고, 각종 안전규정에 대한 점검이나 교육을 제대로 하고 있다면 서울외곽순환도로 사고도 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사고가 난 후 그 장소에서 버젓이 불법 주차장 영업이 계속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건 뭐 예방 운운이 사치고, 재발도 막지 못한다는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1월 초 대한토목학회 이태식 회장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냥 지나쳤는데 이 회장이 매우 중요한 지적을 하더군요. 북한의 연평도 도발 보도 때 연평도의 대피시설을 눈여겨 본 모양입니다. 만든 지 족히 몇십 년씩 된 것들입니다. 그것을 전부 재점검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몇십 년 전에는 북한의 공격용 무기가 신통치 않았을 때였습니다. 지금은 포탄의 위력이 엄청나게 향상됐습니다. 그러니 만약 북한이 대피시설 위로 포탄을 퍼부었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대피시설이란 게 오히려 큰 화를 부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이 회장은 연평도엔 그나마 그런 시설이라도 있지만 대도시엔 그런 것조차 없다고 했습니다. 잊고 살았는데 정말 그렇더군요. 예를 들어 경기도 수원을 북한이 공격했다고 할 경우 수원 시민은 어디로 대피해야 할까요. 대피할 곳이 있습니까. 훈련은 돼 있나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같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의 ‘후미진’ 곳을 한번 살펴보세요. 그곳은 원래 비상시 대피로로 쓰여야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물건을 잔뜩 쌓아놓아 창고처럼 쓰고 있습니다. 비상 상황이 발생해 정말 그곳을 이용하려 할 때 사람 목숨을 몇 명이나 살릴 수 있을까요.
사후 수습보다 더 중요한 게 사전 조치
우리는 항상 사고가 났을 때마다 ‘인재(人災)였다’는 지적을 피해간 적이 없습니다. 이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닙니다. 주변에 위험 요소들이 널려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하나씩 둘씩 없애야 합니다. 그것이 곧 예방이고, 그런 것을 잘하는 국가가 선진국입니다.
비단 사건·사고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세상사가 다 그렇습니다. 정치, 경제 분야에서도 문제가 될 요소를 찾아 사전 조치하는 것이 사후 수습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아무런 사고도 생기지 않게 하는 것, 그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로 평가받아야 합니다. 새해 들어 온갖 갈등과 잡음을 접하며 우리는 왜 미리미리 대비하지 못할까 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며칠 뒤 TV를 보니 그곳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구제역 소독약으로 생석회를 물에 희석해서 뿌리는 모양입니다. 그래야 효과가 있다고 하네요. 그런데 물에 희석하면 추위로 얼어 빙판이 될 우려가 있다고 생석회만 뿌리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구제역 방역 작업을 했다는 ‘실적’은 될지 모르지만 구제역 바이러스가 생석회 위에 앉아 조롱하지 않겠습니까.
엉성한 방역에 속수무책 된 구제역
그 탓인지 구제역 확산은 속수무책 상태가 됐습니다. 오죽하면 《충남도정신문》(충남도청이 발행하는 신문)이 1월 10일 첫 호외(號外)를 발행했겠습니까. 창간 20년 만에 처음이라고 합니다. 구제역에 대해 농가나 국민들의 행동요령을 담았다네요. 왜 이런 안내가 이제야, 특정 지역에서만 이뤄지고 있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1월 6일 구제역 대책 관계장관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작년 11월 29일 경북 안동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지 40여 일 만입니다.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뒤입니다. 청와대 발표를 보면 “치밀하고 철저한 방역대책을 세우라” “내년도 근본대책을 세우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내년도 근본대책’이란 표현이 눈에 띄지만, 공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실제 작년 11월 말, 12월에 국무회의에서 구제역 대책이 논의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북한의 연평도 도발, 정부 예산안 단독처리 등의 사건에 휩싸여 구제역 대책은 뒷전으로 밀렸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참 한심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가 대통령이 관심 갖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는 그런 나라입니까. 북한의 연평도 도발은 국방부가, 예산안 문제는 기획재정부가 중심이 돼 대처하면 되는데, 농림수산식품부나 행정안전부 같은 부서도 그런 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나요.
무엇보다 작년 한 해에 우리나라에서 구제역이 세 번이나 발생했습니다. 처음 발생했을 때 철저하게 대책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면, 아니 작년이 아니라 재작년 또는 그 이전에 대책을 세웠다면 한국은 벌써 구제역 청정(淸淨)국가가 됐을 것입니다.
미국은 80년간 구제역 발생 0
저도 신문 보고 안 일이지만, 구제역은 후진국형 전염병이라고 합니다. 위생과 소독, 방역이 허술한 나라에서 주로 발병한다고 하네요. 선진국 일본에서도 작년 4월 구제역이 발생했다는데, 이게 10년 만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여행객을 통해서 유입된 모양이지요. 우리도 후진국은 아니니까 여행객을 통해 구제역 바이러스가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합니다. 방역 당국은 베트남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베트남뿐 아니라 중국, 몽골, 인도 등은 아예 구제역을 방치하고 있답니다. 그런 나라와 인접하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교류를 끊을 수는 없고, 어떻게든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국이 계속 구제역 바이러스를 따라다니며 뒷북을 치더니 이제는 전수(全數) 백신을 맞게 하고 매몰은 최종 단계로 미루는, 구제역 정책 전환을 했다고 합니다.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도 답답합니다. 매년 반복되거나 일 년에 몇 차례씩 발병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차 타고 달리다 보면 구릉지대를 새까만 소들이 뒤덮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몇 마리일까 셀 수조차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키우는 한우는 그에 비하면 ‘몇 마리’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입니다. 그런 나라에서 구제역이 80년간 발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중국, 베트남, 인도 같은 나라를 방문하지 않아서일까요. 중국, 베트남, 인도 사람들이 미국에 가지 않아서일까요.
다 아닐 것입니다. 하도 궁금해서 전문가에게 글을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매년 구제역 때문에 지친 수의사와 정치인들이 1929년부터 박멸작업을 벌여 그 후 80년 동안 미국에서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80년간 청정국가라면 그 후 관리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것입니다. 한 번 예방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미국과 한국의 가축 사육 환경이 물론 다르지요. 이웃도 다르고요. 그럼에도 이건 아닙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참 우리는 ‘예방이 안 되는 나라’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제대로 된 안전지대가 없어
구제역뿐만이 아닙니다.
작년 12월 서울외곽순환도로 화재 기억나시죠. 고속도로 밑 주차할 수 없는 곳에 차를 세워둔 것은 물론 여러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은 채 주유를 하는 바람에 차량 37대가 모두 타고, 순환도로도 끊어져 다시 만들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주차금지 구간을 설정해 놓거나 안전규정을 만든 것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지키면 상당수의 사고는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나더라도 피해가 현저히 줄어들게 됩니다. 만약 시청·군청이 불법주차 단속을 철저히 하고, 각종 안전규정에 대한 점검이나 교육을 제대로 하고 있다면 서울외곽순환도로 사고도 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사고가 난 후 그 장소에서 버젓이 불법 주차장 영업이 계속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건 뭐 예방 운운이 사치고, 재발도 막지 못한다는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1월 초 대한토목학회 이태식 회장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냥 지나쳤는데 이 회장이 매우 중요한 지적을 하더군요. 북한의 연평도 도발 보도 때 연평도의 대피시설을 눈여겨 본 모양입니다. 만든 지 족히 몇십 년씩 된 것들입니다. 그것을 전부 재점검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몇십 년 전에는 북한의 공격용 무기가 신통치 않았을 때였습니다. 지금은 포탄의 위력이 엄청나게 향상됐습니다. 그러니 만약 북한이 대피시설 위로 포탄을 퍼부었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대피시설이란 게 오히려 큰 화를 부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이 회장은 연평도엔 그나마 그런 시설이라도 있지만 대도시엔 그런 것조차 없다고 했습니다. 잊고 살았는데 정말 그렇더군요. 예를 들어 경기도 수원을 북한이 공격했다고 할 경우 수원 시민은 어디로 대피해야 할까요. 대피할 곳이 있습니까. 훈련은 돼 있나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같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의 ‘후미진’ 곳을 한번 살펴보세요. 그곳은 원래 비상시 대피로로 쓰여야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물건을 잔뜩 쌓아놓아 창고처럼 쓰고 있습니다. 비상 상황이 발생해 정말 그곳을 이용하려 할 때 사람 목숨을 몇 명이나 살릴 수 있을까요.
사후 수습보다 더 중요한 게 사전 조치
우리는 항상 사고가 났을 때마다 ‘인재(人災)였다’는 지적을 피해간 적이 없습니다. 이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닙니다. 주변에 위험 요소들이 널려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하나씩 둘씩 없애야 합니다. 그것이 곧 예방이고, 그런 것을 잘하는 국가가 선진국입니다.
비단 사건·사고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세상사가 다 그렇습니다. 정치, 경제 분야에서도 문제가 될 요소를 찾아 사전 조치하는 것이 사후 수습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아무런 사고도 생기지 않게 하는 것, 그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로 평가받아야 합니다. 새해 들어 온갖 갈등과 잡음을 접하며 우리는 왜 미리미리 대비하지 못할까 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