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됩니다. 그것은 ‘조선’이란 나라가 붓잡이(文人)들이 칼잡이(武人)들을 누르고 정권을 잡아 중앙집권적 문민통치 시스템을 유지한, 세계사적으로 희귀한 사례였다는 점입니다.
전문가들은 붓잡이들이 칼잡이를 누르고 권력을 차지한 사례는 서양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고, 아시아권에서도 중국과 조선에서만 볼 수 있는 ‘역사적 예외’였다고 합니다.
우리의 오랜 문민통치 역사가 빚어낸 총체적 결과물이 ‘조선왕조실록’일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물려준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된 글자 수는 6400만 자로서, 한 면에 700~900자씩의 한자가 빡빡하게 쓰인 지면이 7만여 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입니다. 이는 중국 최대의 기록물로 평가되는 명나라 ‘皇明(황명)실록’의 네 배, 청나라 ‘大淸(대청)역조실록’의 세 배나 되는 세계에서 가장 내용이 풍부한 ‘실록’입니다.
그런데 준엄한 제왕들의 통치를 기록해 놓은 것이라고 생각되는 실록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기절초풍할 내용들이 발견됩니다. 차기 대권 승계자인 세자(후에 문종)의 부인이 동성애를 하다 들통나는 장면, 쿠데타가 일어나자 사다리를 타고 궁궐을 탈출, 남의 초상집에 들어가 상주의 상복을 뺏어 입고 곡을 하는 군주(광해군), 임금(인조)이 자기 아들(소현세자)을 독살하고 며느리와 손자까지 살해하는 장면 등 충격적이고 적나라한 기록들이 수없이 발견됩니다. 무슨 뜻으로 이런 기록을 남겼을까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최고 권력자들 거침없이 비판
저는 조선왕조실록의 수많은 기록 중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이 왕이나 고관대작들에 대한 史官(사관)들의 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시대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던 국왕이 그릇된 판단을 하거나 이치에 닿지 않는 행동을 하면 사관들은 임금의 잘잘못에 대해 적나라한 필치로 비판의 필봉을 휘두릅니다.
중종 39년 11월 15일 실록에는 사관이 왕에 대해 이러한 논평을 적어놓았습니다.
<史臣(사신)은 논한다. 중종대왕은 인자하고 유순한 면은 있으나 결단성이 부족하여 일할 뜻은 있었지만 일을 한 실상은 없었다. 좋아하고 싫어함이 분명치 않고 어진 사람과 간사한 무리를 뒤섞어 등용했기 때문에 재위 40년 동안 혼란한 때가 많아 끝내 조금의 안정도 이루지 못했으니 슬프다.>
명종은 아침저녁으로 성질이 변화무쌍하게 변화하는 인간 유형이었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사관의 비판도 가혹하기 그지없습니다. 다음은 명종 17년(1562) 7월 12일의 기록입니다.
<임금은 기쁨과 분노가 일정하지 않아 아침에 벌을 주었다가 저녁에는 상을 주고, 또는 저녁에 파면시켰다가 아침에 다시 임명하니 환관들이 임금의 마음을 미리 헤아려 두려워하지 않았다. 임금이 항상 젊은 내시 하나를 총애하여 침실 곁에 있게 하고 절도 없이 상을 하사하고, 심지어 내탕금으로 그가 살 집을 사주기까지 했다.>
재임 시절 황음무도한 행동을 일삼았던 연산군에 대해 실록은 다음과 같이 적나라한 실상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사신은 논한다. 왕의 음탕이 날로 심해 족친과 先王(선왕)의 후궁을 모아 왕이 친히 잔을 들어서 마시게 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장녹수와 宮人(궁인)을 시켜 누구의 아내인지 비밀히 알아보게 하여 외워두었다가 궁중에 묵게 하여 밤에 강제로 간음하며 낮에도 그랬다…(중략)…홍백경은 왕에게 고종사촌형이 되는데 홍백경이 죽고 부인이 과부로 살자 왕이 그의 아름다움을 듣고 드디어 간통했다.>(연산군 11년 4월 12일)
“종기를 빨고 치질을 핥을 인간들”
사관들은 왕에게뿐만 아니라, 올바른 간언을 하지 못하고 비위 맞추기에 급급한 대신들을 향해서도 거침없이 “종기를 빨고 치질을 핥아가며 아첨하는 무리”라고 비판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제왕이나 국정의 주요 업무를 맡았던 대신들이 사망할 경우 卒記(졸기)라 하여 공직자로서, 인간으로서의 됨됨이를 평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종 14년(1519) 10월 3일에 사망한 좌의정 신용개의 졸기를 소개합니다. 이 대신은 평소 술을 즐겼던 모양인지 이런 졸기가 왕조실록에 실려 있군요.
<사신은 논한다. 나라에 재상이 있는 것은 집이 기둥이나 주춧돌에 의지하는 것과 같다. 신용개는 평생 마음 쓰는 것이 장부의 도량이 있는 듯하고 문장도 칭찬할 만한 데가 있었으므로 청요한 벼슬을 두루 거쳐도 비난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실천하는 학문이 부족했으므로 대신이 되어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고 자신을 위하는 일이 잦았다. 마음에 불편한 생각이 있으면 취하도록 술을 마셔 정신을 잃고 거꾸러져 실려 가기도 했다. 사람들이 ‘별볼일없는 재상’이라고 했으나 그 속에 비난의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관계 서로 다른 기록들을 모두 후세에 전해
조선시대에는 당쟁의 결과 특정 정파가 득세하여 주요 대신들이 교체되거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이미 편찬된 실록을 다시 쓰거나 改修(개수)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록을 다시 편찬할 때도 원실록을 폐기처분하지 않고 수정된 실록과 함께 후대에 남겨주었습니다. 후대가 두 가지 기록을 비교 검토함으로써 당대의 역사를 객관적 시각으로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처럼 수정된 실록을 발간한 사례는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 숙종실록과 숙종보궐정오, 현종실록과 현종개수실록, 경종실록과 경종수정실록 등 네 차례나 됩니다. 원본 실록과 수정된 실록을 비교해 보면 한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상반된 가치평가를 내리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사례 중의 하나로 숙종 시절 대제학을 지냈던 오도일의 졸기를 소개합니다.
오도일은 평소 술을 즐겨 임금 앞에서 자주 주사를 부렸지만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숙종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임금이 기우제를 올리기 위해 사직단에서 기도를 하는 자리에서 작주관(제사 때 술을 따르는 관리) 오도일이 술에 취하여 넘어져 飮福酒(음복주)를 엎지르는 불경죄를 저질렀습니다.
오도일은 이 사건으로 귀양을 갔다가 숙종 29년(1703) 2월 14일 장성 유배소에서 죽었는데, 실록은 그의 죽음에 대해 이런 졸기를 남겼습니다.
<오도일이 장성 유배소에서 죽었다. 본래 방탕하고 몸을 단속하지 못했는데 만년에는 더욱 방자하고 패악해 사람의 도리가 없었다. 유배지에 있으면서 더욱 뜻을 잃고 슬퍼하여 오로지 술로 마음을 풀었는데, 취하면 옷을 벗고 벌거숭이가 되었다. 같은 당에 속한 고을 관리가 관청 기생을 보냈는데 오도일은 이들을 발가벗겨 쫓아다니며 희롱하므로 사람들이 차마 볼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이 가서 이 모습을 구경하자 또 억지로 옷을 벗게 했으나 그 사람이 달아나 겨우 면했다. 남쪽 사람이 침을 뱉고 꾸짖으며 ‘사람 짐승’으로 지목했다.
젊어서는 자못 청백하다고 스스로 일컬었는데, 만년에는 부유한 상인의 집에 붙어살면서 날마다 술과 고기를 마련하게 하고 요구가 끝이 없어 상인이 크게 원망했다. 종실 전성군 이혼은 행동이 개, 돼지와 같아서 사람 축에 끼지 못했는데 오도일은 그 富(부)를 탐해 아들을 장가들게 하니, 그 당파 사람들도 더럽게 여겼다.>
그런데 ‘숙종실록’은 당파싸움이 기승을 부렸던 시기에 편찬된 관계로 객관적이지 못하다 하여 후에 다시 ‘숙종보궐정오’가 편찬됐습니다. 같은 인물의 죽음에 대해 새로 편찬한 ‘숙종보궐정오’(숙종 29년 2월 14일)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군요.
<전 판서 오도일이 장성 적소에서 죽었다. 오도일은 뛰어난 재주가 있으며 총명이 빛났고, 풍치가 사람을 움직이고 문사가 넉넉하고 민첩했다. 몸을 다스리기를 청백하게 하여 세상에서 그를 인정했다.
성품이 술을 좋아해 몹시 취한 적이 많아서 세상일을 경영할 뜻이 없는 듯했으나 안팎 벼슬에 나가 문득 빛나는 명성이 있었다. 임금도 재주가 많음을 기특하게 여겼으므로 세상에 드문 특별한 은혜를 입었다.
그러나 성품이 단정하지 못하고 정성스러움이 부족하며 기를 숭상하고 남을 업신여기기를 좋아했다. 술이 취하면 같은 좌석에 있는 사람을 욕하는 일이 많았고, 당론에 용감하여 과격한 주장을 했다.
또 영리에 담담하지 못해 기사년(1689) 후에 그 거취가 공론에 불만족한 것이 많았고, 갑술년(1694)에 이사명 등을 논핵한 상소는 진실로 사람들이 말할 수 없는 것이어서 같은 당 사람들의 원망과 미움을 받았다. 행동이 방종하여 여러 번 실패를 당했으나 나감만 있고 물러감이 없었다.>
관대한 기록정신
정권이 바뀌어 새로운 집권자들이 실록을 새로 편찬하면서도, 전 정권의 기록을 말살하지 않고 후대에 남겨 객관적 시각을 갖도록 했던 관대한 기록정신이야말로 조선시대 文治(문치)의 정수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재임 중 불법자금 수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던 盧武鉉(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로 온 나라가 한바탕 홍역을 치렀습니다. 國民葬(국민장) 기간 동안 난무하던 전직 대통령에 대한 미화찬양식 추모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그의 죽음을 비판적으로 본 내용들도 기록으로 남겨놓는 것이 정당한 역사기록 정신이 아닐까요.⊙
전문가들은 붓잡이들이 칼잡이를 누르고 권력을 차지한 사례는 서양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고, 아시아권에서도 중국과 조선에서만 볼 수 있는 ‘역사적 예외’였다고 합니다.
우리의 오랜 문민통치 역사가 빚어낸 총체적 결과물이 ‘조선왕조실록’일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물려준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된 글자 수는 6400만 자로서, 한 면에 700~900자씩의 한자가 빡빡하게 쓰인 지면이 7만여 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입니다. 이는 중국 최대의 기록물로 평가되는 명나라 ‘皇明(황명)실록’의 네 배, 청나라 ‘大淸(대청)역조실록’의 세 배나 되는 세계에서 가장 내용이 풍부한 ‘실록’입니다.
그런데 준엄한 제왕들의 통치를 기록해 놓은 것이라고 생각되는 실록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기절초풍할 내용들이 발견됩니다. 차기 대권 승계자인 세자(후에 문종)의 부인이 동성애를 하다 들통나는 장면, 쿠데타가 일어나자 사다리를 타고 궁궐을 탈출, 남의 초상집에 들어가 상주의 상복을 뺏어 입고 곡을 하는 군주(광해군), 임금(인조)이 자기 아들(소현세자)을 독살하고 며느리와 손자까지 살해하는 장면 등 충격적이고 적나라한 기록들이 수없이 발견됩니다. 무슨 뜻으로 이런 기록을 남겼을까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최고 권력자들 거침없이 비판
저는 조선왕조실록의 수많은 기록 중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이 왕이나 고관대작들에 대한 史官(사관)들의 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시대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던 국왕이 그릇된 판단을 하거나 이치에 닿지 않는 행동을 하면 사관들은 임금의 잘잘못에 대해 적나라한 필치로 비판의 필봉을 휘두릅니다.
중종 39년 11월 15일 실록에는 사관이 왕에 대해 이러한 논평을 적어놓았습니다.
<史臣(사신)은 논한다. 중종대왕은 인자하고 유순한 면은 있으나 결단성이 부족하여 일할 뜻은 있었지만 일을 한 실상은 없었다. 좋아하고 싫어함이 분명치 않고 어진 사람과 간사한 무리를 뒤섞어 등용했기 때문에 재위 40년 동안 혼란한 때가 많아 끝내 조금의 안정도 이루지 못했으니 슬프다.>
명종은 아침저녁으로 성질이 변화무쌍하게 변화하는 인간 유형이었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사관의 비판도 가혹하기 그지없습니다. 다음은 명종 17년(1562) 7월 12일의 기록입니다.
<임금은 기쁨과 분노가 일정하지 않아 아침에 벌을 주었다가 저녁에는 상을 주고, 또는 저녁에 파면시켰다가 아침에 다시 임명하니 환관들이 임금의 마음을 미리 헤아려 두려워하지 않았다. 임금이 항상 젊은 내시 하나를 총애하여 침실 곁에 있게 하고 절도 없이 상을 하사하고, 심지어 내탕금으로 그가 살 집을 사주기까지 했다.>
재임 시절 황음무도한 행동을 일삼았던 연산군에 대해 실록은 다음과 같이 적나라한 실상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사신은 논한다. 왕의 음탕이 날로 심해 족친과 先王(선왕)의 후궁을 모아 왕이 친히 잔을 들어서 마시게 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장녹수와 宮人(궁인)을 시켜 누구의 아내인지 비밀히 알아보게 하여 외워두었다가 궁중에 묵게 하여 밤에 강제로 간음하며 낮에도 그랬다…(중략)…홍백경은 왕에게 고종사촌형이 되는데 홍백경이 죽고 부인이 과부로 살자 왕이 그의 아름다움을 듣고 드디어 간통했다.>(연산군 11년 4월 12일)
“종기를 빨고 치질을 핥을 인간들”
사관들은 왕에게뿐만 아니라, 올바른 간언을 하지 못하고 비위 맞추기에 급급한 대신들을 향해서도 거침없이 “종기를 빨고 치질을 핥아가며 아첨하는 무리”라고 비판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제왕이나 국정의 주요 업무를 맡았던 대신들이 사망할 경우 卒記(졸기)라 하여 공직자로서, 인간으로서의 됨됨이를 평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종 14년(1519) 10월 3일에 사망한 좌의정 신용개의 졸기를 소개합니다. 이 대신은 평소 술을 즐겼던 모양인지 이런 졸기가 왕조실록에 실려 있군요.
<사신은 논한다. 나라에 재상이 있는 것은 집이 기둥이나 주춧돌에 의지하는 것과 같다. 신용개는 평생 마음 쓰는 것이 장부의 도량이 있는 듯하고 문장도 칭찬할 만한 데가 있었으므로 청요한 벼슬을 두루 거쳐도 비난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실천하는 학문이 부족했으므로 대신이 되어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고 자신을 위하는 일이 잦았다. 마음에 불편한 생각이 있으면 취하도록 술을 마셔 정신을 잃고 거꾸러져 실려 가기도 했다. 사람들이 ‘별볼일없는 재상’이라고 했으나 그 속에 비난의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관계 서로 다른 기록들을 모두 후세에 전해
조선시대에는 당쟁의 결과 특정 정파가 득세하여 주요 대신들이 교체되거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이미 편찬된 실록을 다시 쓰거나 改修(개수)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록을 다시 편찬할 때도 원실록을 폐기처분하지 않고 수정된 실록과 함께 후대에 남겨주었습니다. 후대가 두 가지 기록을 비교 검토함으로써 당대의 역사를 객관적 시각으로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처럼 수정된 실록을 발간한 사례는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 숙종실록과 숙종보궐정오, 현종실록과 현종개수실록, 경종실록과 경종수정실록 등 네 차례나 됩니다. 원본 실록과 수정된 실록을 비교해 보면 한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상반된 가치평가를 내리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사례 중의 하나로 숙종 시절 대제학을 지냈던 오도일의 졸기를 소개합니다.
오도일은 평소 술을 즐겨 임금 앞에서 자주 주사를 부렸지만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숙종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임금이 기우제를 올리기 위해 사직단에서 기도를 하는 자리에서 작주관(제사 때 술을 따르는 관리) 오도일이 술에 취하여 넘어져 飮福酒(음복주)를 엎지르는 불경죄를 저질렀습니다.
오도일은 이 사건으로 귀양을 갔다가 숙종 29년(1703) 2월 14일 장성 유배소에서 죽었는데, 실록은 그의 죽음에 대해 이런 졸기를 남겼습니다.
<오도일이 장성 유배소에서 죽었다. 본래 방탕하고 몸을 단속하지 못했는데 만년에는 더욱 방자하고 패악해 사람의 도리가 없었다. 유배지에 있으면서 더욱 뜻을 잃고 슬퍼하여 오로지 술로 마음을 풀었는데, 취하면 옷을 벗고 벌거숭이가 되었다. 같은 당에 속한 고을 관리가 관청 기생을 보냈는데 오도일은 이들을 발가벗겨 쫓아다니며 희롱하므로 사람들이 차마 볼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이 가서 이 모습을 구경하자 또 억지로 옷을 벗게 했으나 그 사람이 달아나 겨우 면했다. 남쪽 사람이 침을 뱉고 꾸짖으며 ‘사람 짐승’으로 지목했다.
젊어서는 자못 청백하다고 스스로 일컬었는데, 만년에는 부유한 상인의 집에 붙어살면서 날마다 술과 고기를 마련하게 하고 요구가 끝이 없어 상인이 크게 원망했다. 종실 전성군 이혼은 행동이 개, 돼지와 같아서 사람 축에 끼지 못했는데 오도일은 그 富(부)를 탐해 아들을 장가들게 하니, 그 당파 사람들도 더럽게 여겼다.>
그런데 ‘숙종실록’은 당파싸움이 기승을 부렸던 시기에 편찬된 관계로 객관적이지 못하다 하여 후에 다시 ‘숙종보궐정오’가 편찬됐습니다. 같은 인물의 죽음에 대해 새로 편찬한 ‘숙종보궐정오’(숙종 29년 2월 14일)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군요.
<전 판서 오도일이 장성 적소에서 죽었다. 오도일은 뛰어난 재주가 있으며 총명이 빛났고, 풍치가 사람을 움직이고 문사가 넉넉하고 민첩했다. 몸을 다스리기를 청백하게 하여 세상에서 그를 인정했다.
성품이 술을 좋아해 몹시 취한 적이 많아서 세상일을 경영할 뜻이 없는 듯했으나 안팎 벼슬에 나가 문득 빛나는 명성이 있었다. 임금도 재주가 많음을 기특하게 여겼으므로 세상에 드문 특별한 은혜를 입었다.
그러나 성품이 단정하지 못하고 정성스러움이 부족하며 기를 숭상하고 남을 업신여기기를 좋아했다. 술이 취하면 같은 좌석에 있는 사람을 욕하는 일이 많았고, 당론에 용감하여 과격한 주장을 했다.
또 영리에 담담하지 못해 기사년(1689) 후에 그 거취가 공론에 불만족한 것이 많았고, 갑술년(1694)에 이사명 등을 논핵한 상소는 진실로 사람들이 말할 수 없는 것이어서 같은 당 사람들의 원망과 미움을 받았다. 행동이 방종하여 여러 번 실패를 당했으나 나감만 있고 물러감이 없었다.>
관대한 기록정신
정권이 바뀌어 새로운 집권자들이 실록을 새로 편찬하면서도, 전 정권의 기록을 말살하지 않고 후대에 남겨 객관적 시각을 갖도록 했던 관대한 기록정신이야말로 조선시대 文治(문치)의 정수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재임 중 불법자금 수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던 盧武鉉(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로 온 나라가 한바탕 홍역을 치렀습니다. 國民葬(국민장) 기간 동안 난무하던 전직 대통령에 대한 미화찬양식 추모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그의 죽음을 비판적으로 본 내용들도 기록으로 남겨놓는 것이 정당한 역사기록 정신이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