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플레위엔 전망대에서 본 노르웨이 제2도시 베르겐 전경.
자전거 여행자, 자유인의 또 다른 이름이다. 나는 나를 속박하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꿈꾸었다.
가슴 뛰는 삶을 살기 위해 어릴 적 꿈을 좇아 자전거 세계여행으로 후반생(後半生)을 시작했다. 내가 의미하는 여행이란 투어(tour)가 아닌 저니(journey·인생의 축도)이다.
이것은 가이드 없는 처절한 단독여행이 본질이다. “인간은 나태와 안락을 버리고 연약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탈피할 때만이 위대해질 수 있다”라고 생텍쥐페리는 그의 작품 《야간비행》에서 갈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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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웨이 베르겐의 브뤼겐 역사지구. 중세 한자동맹 때 축조된 건물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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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은 아름다운 물의 도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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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 웁살라의 붉은색 전통 목조가옥. |
핀란드 헬싱키에서 시벨리우스와 작별을 고하고 거대 유람선으로 발틱해를 건너 스웨덴으로 갔다. 국토는 북유럽에서 가장 커 한국의 5배이지만 인구는 서울시보다 적다. 그러니 1인당 국토 향유 면적이 넓어 울창한 삼림과 호수 등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고 야생이 살아 숨 쉰다.
스웨덴인은 자연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매력적 성취를 이루었다. 긴긴밤 극야(極夜) 덕분일까? 그들은 인류에게 하루도 없어서는 안 될 발명품을 쏟아냈다. 다이너마이트의 노벨을 필두로 안전성냥, 지퍼, 진공청소기, 초고화질 카메라, 터보엔진, 치과용 임플란트 등을 만든 수많은 발명가를 키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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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 웁살라의 고분군(古墳群). 경주 대릉원 고분군과 너무 유사해 놀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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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 구시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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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아문센 탐험대의 동상. 남극점을 정복한 아문센은 필자의 어린 시절 우상이었다. |
이번 여정의 마무리는 모험가의 나라 노르웨이. 노르딕 3국 중 최북단에 자리한 노르웨이는 절승(絶勝)의 단애(斷崖), 숨 막히는 피오르, 우주의 커튼 오로라 등 자타가 공인하는 ‘자연의 왕국’이다.
자연환경만 멋진 것이 아니고 음악, 미술, 조각 등 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인재가 많다. 문학 또한 빠지지 않아 《인형의 집》을 쓴 입센을 비롯,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세 명이나 배출했다.
매혹적인 ‘솔베이지의 노래’의 고향이자, 오래된 항구도시 베르겐을 유유자적 돌아보았다. 한자동맹 시절에 융성했던 자취는 물론, 북해산 고등어와 연어 시식도 여정의 일부로 당연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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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웨이 베르겐의 어시장. 북해에서 갓 잡아온 생선을 즉석에서 요리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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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바이킹 선장(船葬)박물관’. 바이킹은 인간이 죽으면 배를 타고 멀리 떠난다고 믿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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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웨이 오슬로 비겔란 조각공원의 대표 작품 ‘모노리탄’. |
이번 〈백야기행〉의 ‘하이라이트’인 프람 호(Fram 號) 박물관이 있는 오슬로 외곽 지역, 뷔그데이(Bygdoy Peninsula). 바이킹 후예들이 목숨을 걸고 도전했던 ‘탐험 박물관’이 포진되어 있는 이곳은 노르웨이인의 성지(聖地)나 다름없다.
유년 시절부터 내 꿈의 멘토이자 위대한 탐험가 3인방, 아문센, 헤이에르달, 난센을 만나 오랫동안 가슴에 묻어두었던 소회를 전하고, 긴 여정의 피날레를 장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