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년 4·19혁명 당시 서울 태평로에서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 1주일 후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다.
1976년 4월 1일 21살의 스티브 잡스가 자기 집 차고에서 스티브 워즈니악, 론 웨인과 함께 컴퓨터 조립 키트인 ‘애플 I’을 만들었다. PC시대가 열렸다.
2003년 홍콩 가수 겸 배우 장궈룽이 홍콩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24층에서 투신, 자살했다. 〈영웅본색〉 〈천녀유혼〉 〈동사서독〉 등의 영화로 한국에도 팬이 많았다.
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가 영국령 포클랜드제도(諸島·아르헨티나명 말비나스)를 침공했다. 그해 6월 14일 아르헨티나가 패배하면서 군사정권도 함께 무너졌다. 반면에 임기 초기 개혁으로 인한 실업률 상승 등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던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승전으로 인기가 올라가면서 장기집권의 기반을 닦았다.
2005년 4월 2일 제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종(善終)했다. 폴란드 태생인 그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손을 잡고 냉전 해체에 크게 기여했다.
1922년 4월 3일 이오시프 스탈린이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됐다. 레닌은 생전에 스탈린을 경계해 당내 서열이 비교적 낮은 사무기구의 장(長) 자리를 맡겼다. 스탈린은 그 자리를 이용해 당의 조직과 인사를 장악하고, 가공할 독재자가 됐다.
1948년 4월 3일, 남로당의 지시를 받은 제주도 내 공산분자들이 ‘단독정부수립 반대’를 외치며 폭동을 일으켰다.
1968년 4월 4일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이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암살당했다. 범인은 백인우월주의자 제임스 얼 레이였다.
1975년 4월 4일 스무 살의 청년 빌 게이츠가 폴 앨런과 함께 마이크로소프트(MS)를 설립했다. 하버드대학을 다니다가 학업을 중단한 빌 게이츠는 일이 안 되면 학교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1896년 4월 6일 제1회 근대 올림픽이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렸다. 로마제국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면서 올림픽을 중단시킨 지 1503년 만이었다.
1896년 4월 7일 서재필이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1820년 4월 8일 에게 해의 밀로스 섬에서 한 농부가 기원전 130년에서 10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비너스상을 발견했다. 오스만제국 주재 프랑스 대사 샤를 프랑수아 드 리파르도가 이 조각상을 구입, 루이 18세에게 헌납했다. 이 조각상이 〈밀로의 비너스〉다.
1970년 4월 8일 와우아파트가 붕괴했다. 34명이 죽고 40명이 부상을 당했다. 개발연대의 ‘빨리빨리’가 빚은 참사였다. ‘불도저 시장’ 김현옥씨는 이 사건으로 물러났다.
1864년 4월 10일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이 북군의 율리시즈 그랜트 장군에게 항복했다.
1979년 4월 11일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이 반군과 탄자니아군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났다. 아민은 영국 엘리자베스2세에게 스코틀랜드의 왕위를 요구하는가 하면, 이웃 탄자니아와 분쟁이 발생하자 탄자니아 대통령에게 권투시합으로 결판을 내자고 하는 등 1970년대 내내 해외토픽란을 장식했다.
1951년 4월 11일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를 유엔군사령관직에서 해임했다. 4월 19일 미국 상·하 양원합동회의에서 연설하면서 그는 “노병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1961년 4월 12일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세계 최초로 유인 우주비행에 성공했다. 1981년 4월 12일에는 미국이 최초의 우주왕복선 콜롬비아호를 발사했다.
1919년 4월 13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됐다. 행정수반인 국무총리에는 이승만이 선출됐다.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은 개헌논의를 중단하고 제5공화국헌법에 따라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선언은 그해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후 부글부글 끓던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1864년 4월 14일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이 연극관람 중 피격, 다음 날 세상을 떠났다. 범인은 남부 출신 배우 존 윌크스 부스였다. 그는 대통령 저격 후 무대에 뛰어올라 “폭군은 언제나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외쳤다.
1912년 4월 15일 영국의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 침몰했다. 기관장 조지프 G. 벨 등 기관부 선원들이 배가 완전히 침몰하기 2분 전까지 위치를 지키면서 배에 전기가 계속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이들은 전원 배와 운명을 같이했다.
2007년 4월 16일 미국 버지니아공대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 33명이 사망했다. 범인은 한국계 미국인 조승희였다.
2014년 4월 16일 전라남도 진도 해상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을 비롯해 304명이 사망·실종됐다. 정부의 미숙한 초동 대처에 대해 비난이 일었다. 박근혜 정권은 출범 1년 만에 기울기 시작했다.
1975년 4월 17일 크메르 루주가 론 놀 정권을 타도하고 캄보디아를 장악했다. 이들은 이상적인 농업공산주의 국가를 만들겠다면서 전체 국민의 1/4인 200만명을 학살했다.
1906년 4월 1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1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1942년 4월 18일 B-25 16대로 편성된 미국 둘리틀 폭격대가 도쿄를 비롯해 요코하마, 요코스카, 나고야, 오사카 등지를 폭격했다, 36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일본 군부와 국민들이 받은 충격은 컸다. 일본 해군은 유사한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서태평양 지역의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겠다는 생각으로 그해 6월 미드웨이 해전을 벌였다가 참패했다.
1960년 4월 19일 서울시내 대학생들이 3·15부정선거에 항의해 들고일어났다. 1주일 후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했다.
2004년 4월 22일 북한 용천역에서 열차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휴대폰을 사용해 시한폭탄을 터뜨려 김정일을 암살하려 한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1986년 4월 26일 소련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가 폭발, 방사능이 유출됐다. 이웃한 스웨덴에서 방사능이 검출되는 상황에서 소련 정부는 열흘이 되도록 침묵했다. 이 사건으로 소련 체제의 무능과 경직성, 폐쇄성, 무책임함이 드러났다.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은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 정책에 박차를 가했지만, 소련의 붕괴를 재촉했을 뿐이다.
1920년 4월 28일 영친왕 이은이 일본 황족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와 결혼했다. 식민지 조선인들로서는 환영할 수 없는 정략결혼이었다. 하지만 마사코는 평생 남편에게 헌신하고, 말년에는 한국의 장애아동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한국인 ‘이방자 여사’가 됐다.
1945년 4월 28일 철수하는 독일군들 틈에 끼여 도주하던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와 그의 연인 클라라 페타치가 빨치산들에게 붙잡혀 처형됐다. 두 사람의 시신은 정육점 고깃덩어리처럼 밀라노 시내에 매달렸다.
1952년 4월 28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됐다. 일본은 7년 만에 점령 상태에서 벗어나 주권을 회복했다.
1969년 4월 28일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지방행정과 상원 개편을 위한 국민투표에서 패한 직후 사임했다. 사임 선언문은 간결했다. “나는 공화국 대통령 직무를 정지한다. 이 결정은 오늘 정오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1995년 4월 28일 대구 지하철 공사장 인근에서 가스 폭발 사고가 발생, 102명이 사망하고 117명이 부상을 당했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열린 천장절(천황의 생일) 기념행사장 단상에 폭탄을 투척했다. 중국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 등이 사망하고, 주중공사 시게미쓰 마모루는 다리를 잃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인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식이 달라졌다.
1945년 4월 30일 베를린 함락을 앞두고 아돌프 히틀러가 애인 에바 브라운과 함께 자살했다. 그는 유언장에서 자신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독일인들에게 계속해서 유대인과 볼셰비즘에 맞서 투쟁하라고 요구했다.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이 함락되면서 월남공화국이 패망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일기에 “지키지 못하면 모두 죽어야 한다”고 썼다.⊙
2003년 홍콩 가수 겸 배우 장궈룽이 홍콩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24층에서 투신, 자살했다. 〈영웅본색〉 〈천녀유혼〉 〈동사서독〉 등의 영화로 한국에도 팬이 많았다.
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가 영국령 포클랜드제도(諸島·아르헨티나명 말비나스)를 침공했다. 그해 6월 14일 아르헨티나가 패배하면서 군사정권도 함께 무너졌다. 반면에 임기 초기 개혁으로 인한 실업률 상승 등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던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승전으로 인기가 올라가면서 장기집권의 기반을 닦았다.
2005년 4월 2일 제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종(善終)했다. 폴란드 태생인 그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손을 잡고 냉전 해체에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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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무렵의 레닌과 스탈린. 레닌은 스탈린의 폭력성을 경계했지만, 스탈린은 1923년 공산당 서기장이 됐다. |
1948년 4월 3일, 남로당의 지시를 받은 제주도 내 공산분자들이 ‘단독정부수립 반대’를 외치며 폭동을 일으켰다.
1968년 4월 4일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이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암살당했다. 범인은 백인우월주의자 제임스 얼 레이였다.
1975년 4월 4일 스무 살의 청년 빌 게이츠가 폴 앨런과 함께 마이크로소프트(MS)를 설립했다. 하버드대학을 다니다가 학업을 중단한 빌 게이츠는 일이 안 되면 학교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1896년 4월 6일 제1회 근대 올림픽이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렸다. 로마제국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면서 올림픽을 중단시킨 지 1503년 만이었다.
1896년 4월 7일 서재필이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1820년 4월 8일 에게 해의 밀로스 섬에서 한 농부가 기원전 130년에서 10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비너스상을 발견했다. 오스만제국 주재 프랑스 대사 샤를 프랑수아 드 리파르도가 이 조각상을 구입, 루이 18세에게 헌납했다. 이 조각상이 〈밀로의 비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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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4월 8일 와우아파트 붕괴 참사는 ‘빨리빨리’를 외치던 개발연대가 낳은 비극이었다. |
1864년 4월 10일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이 북군의 율리시즈 그랜트 장군에게 항복했다.
1979년 4월 11일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이 반군과 탄자니아군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났다. 아민은 영국 엘리자베스2세에게 스코틀랜드의 왕위를 요구하는가 하면, 이웃 탄자니아와 분쟁이 발생하자 탄자니아 대통령에게 권투시합으로 결판을 내자고 하는 등 1970년대 내내 해외토픽란을 장식했다.
1951년 4월 11일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를 유엔군사령관직에서 해임했다. 4월 19일 미국 상·하 양원합동회의에서 연설하면서 그는 “노병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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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유리 가가린은 1961년 4월 12일 인류 최초로 우주비행에 성공했다. |
1919년 4월 13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됐다. 행정수반인 국무총리에는 이승만이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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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은 개헌논의 중단을 발표, 국민의 반발을 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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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에서 남군이 패한 지 나흘 후인 1864년 4월 14일 링컨 대통령이 피격, 다음날 사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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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4월 15일 영국의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가 대서양에서 빙산과 충돌, 침몰했다. |
2007년 4월 16일 미국 버지니아공대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 33명이 사망했다. 범인은 한국계 미국인 조승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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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을 태운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
1975년 4월 17일 크메르 루주가 론 놀 정권을 타도하고 캄보디아를 장악했다. 이들은 이상적인 농업공산주의 국가를 만들겠다면서 전체 국민의 1/4인 200만명을 학살했다.
1906년 4월 1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1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1942년 4월 18일 B-25 16대로 편성된 미국 둘리틀 폭격대가 도쿄를 비롯해 요코하마, 요코스카, 나고야, 오사카 등지를 폭격했다, 36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일본 군부와 국민들이 받은 충격은 컸다. 일본 해군은 유사한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서태평양 지역의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겠다는 생각으로 그해 6월 미드웨이 해전을 벌였다가 참패했다.
1960년 4월 19일 서울시내 대학생들이 3·15부정선거에 항의해 들고일어났다. 1주일 후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했다.
2004년 4월 22일 북한 용천역에서 열차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휴대폰을 사용해 시한폭탄을 터뜨려 김정일을 암살하려 한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1986년 4월 26일 소련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가 폭발, 방사능이 유출됐다. 이웃한 스웨덴에서 방사능이 검출되는 상황에서 소련 정부는 열흘이 되도록 침묵했다. 이 사건으로 소련 체제의 무능과 경직성, 폐쇄성, 무책임함이 드러났다.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은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 정책에 박차를 가했지만, 소련의 붕괴를 재촉했을 뿐이다.
1920년 4월 28일 영친왕 이은이 일본 황족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와 결혼했다. 식민지 조선인들로서는 환영할 수 없는 정략결혼이었다. 하지만 마사코는 평생 남편에게 헌신하고, 말년에는 한국의 장애아동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한국인 ‘이방자 여사’가 됐다.
1945년 4월 28일 철수하는 독일군들 틈에 끼여 도주하던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와 그의 연인 클라라 페타치가 빨치산들에게 붙잡혀 처형됐다. 두 사람의 시신은 정육점 고깃덩어리처럼 밀라노 시내에 매달렸다.
1952년 4월 28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됐다. 일본은 7년 만에 점령 상태에서 벗어나 주권을 회복했다.
1969년 4월 28일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지방행정과 상원 개편을 위한 국민투표에서 패한 직후 사임했다. 사임 선언문은 간결했다. “나는 공화국 대통령 직무를 정지한다. 이 결정은 오늘 정오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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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4월 28일 대구지하철 공사장 인근에서 가스 폭발사고가 발생, 102명이 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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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는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시라카와 요시노리 대장 등 일본 요인들을 살상했다. |
1945년 4월 30일 베를린 함락을 앞두고 아돌프 히틀러가 애인 에바 브라운과 함께 자살했다. 그는 유언장에서 자신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독일인들에게 계속해서 유대인과 볼셰비즘에 맞서 투쟁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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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4월 30일 철문을 부수며 월남 대통령 관저로 진입하는 북베트남군 전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