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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ot 〈5〉 모네의 에트르타와 정선의 양수리

자연은 걸작의 산실이다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사진 : 이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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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트르타 해변은 프랑스 노르망디의 백미다.
에트르타 해변의 조약돌을 주워 가는 관광객들이 하도 많아 마을 노인들이 밤낮으로 감시하니 주의할 일이다.
  “영원한 인상주의자는 모네(Monet) 한 명뿐”이라는 말이 있다. 그는 처음부터 인상주의를 시작했고 인상주의의 최후 생존자로 살다 갔다. 모네는 다섯 살 때 프랑스 르아브르(Le Havre)로 이주했다. 파리 서북쪽에 있는 이 항구에서 모네는 14년을 보냈다. 그가 본 것은 영국의 항구 포츠머스로 떠나는 선박과 파도뿐이었다.
 
모네가 그린 〈에트르타 해변〉의 엄마 코끼리다. 이곳은 모르스 르블랑의 《괴도 뤼팽》 시리즈에도 등장한다. 르블랑의 고향도 에트르타다.
  무료한 삶을 살던 모네에게 예술혼을 지펴 준 것은 유일하게 그를 격려했던 숙모 르카드르 부인이었다. 모네는 15세 때 노르망디의 거친 파도를 소재로 삼아 그림을 그리다 풍자만화를 팔아 돈을 벌기도 했다. 그런데 그 바다를 소재로 한, 지금도 남아 있는 스케치가 화가들로부터 “전문가 수준”이라는 격찬을 받은 것이다.
 
엄마 코끼리의 실제 모습이다.

고지에 올라서면 에트르타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기암괴석 앞으로 푸른 바다가 하얀 포말로 뒤덮이는 광경이 일품이다.
  어느 날 에트르타 부근을 헤매다 표지판을 발견했다. 앞의 풍경과 똑같은 그림이었는데 작가가 모네였다. “어, 이건 뭐지?” 일부러 찾아 헤맸으면 힘들었을 텐데 길을 잃고 우연히 모네가 그린 풍경과 마주한 것이다. 모네가 그린 풍경을 보며 모파상은 《여자의 일생》을, 모리스 르블랑은 《뤼팽》 시리즈를 썼다.
 
 
  남한강, 북한강 두 물이 합쳐 두물머리, 양수리(兩水里)다. 조선 진경(眞景)산수의 대가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의 매 같은 눈이 이곳을 지나쳤을 리 없다. 수도 한양의 명승을 화폭에 담은 그가 한강의 절경 두 곳을 보고 붓을 휘두르니 곧 녹운탄(綠雲灘)과 독백탄(獨栢灘)이다. ‘탄(灘)’은 ‘거센 여울’이라는 뜻이다.
 
겸재 정선이 그림 〈독백탄〉을 부조로 새겨 놓았다.
  독백탄 부근은 원래 나루터였다. 나루터였던 곳 근방에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소원을 빌면 성취된다 해서 ‘소원나무’라고도 불린다.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내공을 닦는 곳이 양수리 독백탄인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혹자는 “열다섯 번 이상 이곳에 와 봐야 제맛을 안다”고 했는데 안개 낀 새벽이 제격이다.
 
독백탄의 현장 모습이다.

누군가 액자 모양의 작품을 설치해 놓았다. 마치 자연풍경이 액자 속에 담긴 그림같이 보인다.
  한 예술가가 그곳에 금속으로 초대형 액자를 만들어 놓았다. 사람들은 그 액자를 통해 물결과 섬을 보고 스스로 그 안에 들어가 자연과 하나가 된다. 흔히 인공구조물은 경치를 망치기 십상인데 그 액자는 묘하게 자연과 어울린다. 근방에 세미원도 있다. 연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도 좋고 요즘처럼 쓸쓸한 풍경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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