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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추억이 살아 있는 보성문구사

글·사진 : 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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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지붕 밑 ‘보성문구사’ 간판에 오후 햇살이 길게 내려앉았다.
간판은 보성중고등학교 앞에서 장사하던 시절 주인 할아버지가 직접 쓴 붓글씨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 혜화초등학교 앞.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보성문구사가 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오래된 간판에는 체육복, 유도복, 교련복이라는 글씨가 정갈하게 적혀 있다. 낡은 간판 밑 문구사는 보물찾기하듯 옛것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다. 오래된 교복단추와 학교 배지, 교련복 휘장은 먼지 내려앉은 그대로 세월을 견디고 있다. 70년대 유행한 외국 가수의 대형 브로마이드나 전등 옆에 걸린 바람 빠진 축구공은 저 자리에서만 족히 30년은 지낸 듯하다.
 
  “영훈중고등학교 앞에서 1년, 동성초등학교 앞에서 10년, 보성고등학교 앞에서 30년, 혜화초등학교 앞에서 지금까지… 내가 문방구로는 산 역사야.”
 
경신고부터 동성초, 보성고를 거쳐 지금의 혜화초까지, 할아버지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각 학교의 배지와 휘장들을 꺼내 보이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주인 할아버지가 첫 문구점을 시작한 것은 68년 경신고등학교 앞이다. 자전거를 타고 당시 문구 도매상이 모여 있던 종로5가에 가서 물건을 떼오곤 했다. 1970년에는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하며 그해 봄 형제들에게 30만원을 빌려 동성초등학교 앞에 문방구를 차렸다. 20만원으로 슬레이트 지붕 얹힌 4평 남짓의 단층 건물을 전세로 얻고, 한쪽 구석에 신방을 차렸다. 남은 10만원으로 학용품을 사와 시작한 것이 10년을 한곳에서 장사했다. 보성중고등학교 앞으로 건너오면서는 이름을 보성문구사로 바꿨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랴. 문구사 오락기 앞에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저 간판, 내가 직접 쓴 거야. 군대에서 차트를 썼었거든. 예전에는 교련복, 체육복, 교복에 교모까지 다 팔았지. 여기 앉아 있으면 50대 중년들이 가끔 와. 경신고나 보성고 출신들이지. ‘아저씨 아직도 계시냐’며 웃는데 개구쟁이 얼굴 그대로 다 남아 있어. 10원짜리 장사로 시작해 이슬비에 옷 젖는다고, 한길 걷다 보니 돈을 제법 벌어서 아들, 딸 결혼 다 시키고 건물도 샀지.”
 
  문방구 앞에는 여전히 쫀드기나 아폴로, 뽑기 등 불량식품이 널려 있다. 학교 앞을 오가는 아이들이 종종 100원짜리 동전을 들고 와 하나 둘 사갔다. “꼬마야! 그거 손으로 만지지 마라! 옛날엔 아이들이 수줍어서 나한테 말도 못 걸었는데 요즘 애들은 당돌해. 시대가 바뀌었어.” 아직도 꼬장꼬장한 주인 할아버지 앞으로 옛 금성사 선풍기가 청테이프를 몸에 칭칭 두르고 ‘팽팽’ 돌아간다.⊙
 
30여 년 전 사용했던 자연학습 교재들.

진열대에 놓은 달달한 달고나와 쫀드기, 별사탕.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맛보았던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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