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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단골집 ④ 바이올리니스트 유시연

바이올리니스트 유시연의 시크릿 가든 효창공원·악기 수리점 ‘브릿지’

글·사진 : 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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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연
⊙ 서울대 재학 중 도미. 커티스 음악원, 영국왕립음악대학, 예일대학 석사. 뉴욕주립대학 박사.
⊙ 17세에 《동아일보》 콩쿠르 1위 입상, Jacqueline Ward 기념상, Martin 음악상,
    Woolsey Hall 콩쿠르, Broadus Erle 기념상 등 수상.
⊙ 스턴, 핀커스 주커만, 이고르 오이스트라흐, 이다 헨델, 헤르만 크레버스, 죠세프 긴골드,
    도로시 딜레이 등 세계적인 음악가에게 사사.
⊙ 現 숙명여대 교수.
  음악가가 음악을 대하는 자세는 경건하고 아름답다. 예술 하는 이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음악은 자신과의 깊은 내면의 대화 속에서 영적인 부분을 끌어올려 구현하는 것이기에 음악가는 누구보다 예민하고 까다롭다.
 
  바이올리니스트 유시연씨는 자신을 ‘수도승’이라고 말한다. 항상 내면의 소리를 듣기 위해 수도자처럼 생활한다는 그녀가 학교와 집을 빼놓고 거의 매일 찾는 곳은 학교 뒤 효창공원.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울적할 때 그녀는 숲 한가운데 앉아 가다듬는다.
 
  “물속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물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려야 하듯, 내면의 소리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그만큼 자신의 번잡함을 가라앉혀야 해요. 효창공원은 바쁜 일상을 벗어나 제가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이에요.”
 
유시연 숙명여대 교수가 바이올린 전공 학생들과 함께 효창공원에서 작은 연주회를 열었다. 학생들이 연주를 시작하면 공원을 지나는 시민들이 호기심에 기웃거리며 하나 둘 모여든다. 어두운 객석을 바라보는 무대 위보다 사방이 뚫린 자연 속에서 사람들의 표정을 마주 대하며 관객과의 소통을 배운다.
  7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운 그녀는 서울대 재학 중 도미해 커티스음악원과 영국왕립음악대학, 예일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뉴욕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000년도부터 숙명여대 교수로 재직 중에 있다. 평생을 바이올린을 만져 온 그녀에게 음악은 정신 그 자체다.
 
  “숲 속 한가운데 온 것 같죠?”
 
  뒷짐을 지고 사뿐사뿐 효창공원을 걷던 그녀가 돌담 위에 살짝 걸터앉으며 숲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숲은 계절에 따라, 내 마음에 따라 모습을 바꾸며 나에게 다가와요. 나무에도 생명이 있다는 느낌을 받으니까. 나무를 쓰다듬으며 ‘수고했다’ ‘대견하다’하고 말을 걸기도 하죠.”
 
이태리 장인에게 악기 제작과 수리를 배운 변혜진 대표가 신중한 눈빛으로 악기를 살피고 있다.
  숨을 한 번 쉬고 난 뒤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기 시작했다.
 
  “모든 예술은 일상이나 생활에서 벗어나 사람의 자연 본성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연에 접하는 것은 음악의 본질과 만나는 접점인 셈이지요. 그리고 이곳이 원래 왕릉이 있던 곳이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좋은 기운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제작된 지 100년이 넘은, 유시연씨의 바이올린. 바이올린 몸통 안에 장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서울 용산구 효창동과 공덕동 일대를 아우르는 효창공원은 조선 정조(正祖)의 맏아들 문효세자(文孝世子)와 그의 생모(生母), 순조(純祖)의 후궁 숙의 박씨(淑儀 朴氏) 및 영온옹주(永溫翁主)의 묘가 안장되어 있던 묘원이다. 일제 때 사적(史蹟) 격하(格下)를 위해 효창원 일부를 공원으로 개발했고, 1940년 공원이 됐다. 일제 말기 세자 묘는 경기도 고양시 소재 서삼릉으로 옮겼다. 이후 백범 김구 선생에 의해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지금의 삼의사 묘역에 안장했고, 김구 선생이 흉탄에 쓰러지자 공원 서북쪽 언덕에 안장했다. 그때부터 이 일대가 독립운동에 앞장선 선열들의 묘역으로 자리 잡게 됐다.
 
  이곳의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산책 나온 이웃 주민들이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학교 뒤에 좋은 공원이 있는데 다들 잘 나와보지 않아요. 그래서 날씨 좋은 날이면 학생들을 데리고 1년에 2번씩 공원의 정자에서 수업을 진행해요. 그러면 산책하는 사람들이 둘러싸고 구경하거나 박수를 치는데, 학생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지요.”
 
악기 조율은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이루어진다. 악기는 어떻게 만지느냐에 따라 음색이 크게 변한다. 특히 연주회를 앞둔 음악가들은 어느 때보다 음색의 변화에 예민해진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나왔던 것이 지금은 그녀 수업의 필수 코스가 됐다. 무작위로 선정된 ‘관객’과 마주한 학생들은 활이 바이올린에 붙지도 않을 만큼 ‘벌벌’ 떤단다. 하지만 이 경험은 곧 무대에 올랐을 때 자신감으로 발현된다. 연주가와 관객의 소통을 이끌어내는 소중한 경험이다.
 
  이러한 수업을 하게 된 것은 그녀가 학생 때부터 결심했던 일이라고 한다. 미국 유학 중 방학기간에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유럽에서 열리는 음악 교육 캠프에 참여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학생들을 보며 생각과 생활 방식을 배웠다.
 
  “외국에서는 음대 학생들이 용돈을 벌기 위해서 거리에 나와 연주를 하곤 해요. 이것을 ‘버스킹’이라고 부르는데, 학생 때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해볼 기회가 있어도 용기가 없어 못 했어요. 그 생각이 나서. 학생들에게 꼭 한 번씩 도전해 보도록 했어요.”
 
바이올린을 전공한 변혜진 브릿지 대표는 누구보다도 음악가의 예민함을 알고 이해해 주는 이다. 유시연씨는 “소리를 누구보다 아는 사람이 만지는 것이라 믿음이 간다”며 웃어보인다.
  수줍음이 많아 사람 앞에 나설 때마다 떨린다는 그녀. 수줍게 웃는 모습이 천상 소녀다. 그녀가 낙엽을 두어 개 주워 손에 쥐는데 한 손에 잡힐 듯 여린 손가락마다 굳은살이 박여 울퉁불퉁하다. 겉은 여리지만 그녀의 내면은 얼마나 단단한 음악적 감수성으로 중무장했을지 상상이 갔다.
 
  “단풍 다 지기 전에 아름다운 가을 한 자락 잡아다가 감성에 넣자.”
 
  자칭 ‘효창공원 예찬론자’라는 그녀가 지난가을 공원에서 쓴 글이라며, 나직이 시를 읊고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인다.
 
“독일에는 곳곳에 공원이 있어 늘 부러웠어요. 2000년도에 숙명여대에 와서 효창공원을 찾아내고는 반가웠죠. 공강이 있을 때마다 공원 가길 즐겼어요. 사색에 잠긴 베토벤이나 브람스처럼 뒷짐지고 걷다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자연에서 좋은 기운을 얻는 것 같아요.”
  공원을 빠져나와 그녀가 향한 곳은 집에서 5분 거리의 악기 수리점, 브릿지. 안경을 콧등에 걸친 채 첼로를 매만지고 있던 브릿지의 대표 변혜진씨가 반갑게 그녀를 맞았다. 변혜진 대표는 이화여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뒤 이태리의 악기 장인이 모여 있는 도시에서 7년 동안 악기 제작과 수리 과정을 공부한 베테랑이다. 10년 전 유시연 교수와 연을 맺은 이후로 연주회나 음악 녹음이 있을 때마다 쭉 그녀의 분신과 같은 바이올린을 변 대표가 도맡아왔다.
 
  “특히 음악회를 앞두고 갑자기 바이올린에서 원하는 소리가 안 나올 때가 있어요. 그러면 당장 달려오죠. 한밤중이라도 제가 부탁하면 봐주는 분이에요.”
 
여리여리한 그녀의 손가락엔 굳은살이 두툼하게 박여 있다.
  이제는 서로의 눈빛만 봐도 척이면 척이다. 이곳은 바이올린을 손보는 곳이면서 그녀의 사랑방이기도 하다. 둘은 도란도란 집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딸의 학교 생활 이야기를 묻는가 하면 저녁 찬거리 얘기까지, 보통의 주부들처럼 한참이나 수다를 떨었다.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이야기를 나누더니 그제야 가방에 숨겨둔 그녀의 분신, 바이올린을 올려놓는다.
 
  “유 교수님은 까랑까랑한 소리를 좋아해요. 굉장히 소리에 예민한 사람이기 때문에 항상 맞추기 어려운 사람이지요.”
 
  여기에 그녀가 말을 덧붙인다. “악기는 밸런스와 소리 모든 것이 순간순간 바뀌니까. 몸이 나이 들어가면서 근육과 귀가 편안해지는 소리를 찾아가요. 마치 악기처럼요.”
 
  방금 조율을 마친 바이올린을 어깨에 올리고 가볍게 숨을 고른 그녀가 활을 바이올린에 올린다. 낙엽을 밟으면서도 바스락 소리 없이 고요히 공원을 거닐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의 바쁜 하루를 따라다니면서 본 가장 편안한 모습이었다.
 
  “음악에 있어서는 인위적인 것을 걷어내는 것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아닐까 해요. 클래식은 밸런스가 중요해요. 인간이 내는 가장 원초적인 음. 인간과 자연이 균형을 맞추는 것. 음악은 가장 자연스러울 때 아름다운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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