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여행] 청송 고택에서의 하룻밤 : 월간조선

제법 쌀쌀해진 바람에 코끝이 시려 온다. 고향집의 뜨끈뜨끈한 아랫목이 생각나는 가을, 가족과 함께 한옥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온돌방에 모여 앉아 삶은 감자와 고구마를 먹으며 옛 추억에 잠겨보는 것도 좋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를 자장가 삼아 두툼한 솜이불을 덮고 누우면 잠이 솔솔 온다. 우리나라에서 10번째 슬로시티로 지정된 경북 청송에서 소박한 가을 정취를 담아 왔다.

아름드리 왕버드나무가 인상적인 청송 덕천마을의 송소 고택.

청송 파천면의 덕천마을은 낮은 산 아래 8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작은 산촌 마을로, 5채의 고택(故宅)이 남아 있다. 조선 영조 때 만석(萬石)의 부(富)를 누린 심처대(沈處大)의 7대손 송소(松韶) 심호택(沈琥澤)이 이곳에 옮겨와 살며 마을이 번성했다고 한다. 99칸의 전통 한옥인 송소 고택은 사랑채를 비롯해 안채, 별당 등 7동의 건물을 ㅁ자 형으로 지었다. 송소 고택과 돌담을 하나 두고 지은 송정 고택은 심호택의 둘째아들 송정(松庭) 심상광(沈相光)의 집이다. 담벼락에 핀 구절초와 잘 가꾼 텃밭이 볼 만하다. 마당에 달빛이 내려앉으면 청사초롱을 들고 마을 밖으로 나서 보자. 졸졸졸 흐르는 실개천에는 까만 다슬기가 가득하다. 다슬기를 주워 삶아 먹는 것도 산골마을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다.

두툼한 솜이불이 있는 송정 고택의 방.

가을의 청송은 고택 체험 외에도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오색 옷을 갈아입은 주왕산은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걷는 길과 산을 오르는 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농업용 저수지로 만들어진 주산지는 오래된 버드나무가 투명한 호수에 휘드러진 자태를 비춰보는 곳이다. 관광도 식후경. 주왕산 자락의 약수터에서 톡 쏘는 맛의 달기약수도 맛보자. 달기약수에 약재를 넣어 끓인 백숙은 이곳의 별미다. 날짜가 맞는다면 청송의 장터를 둘러보는 것도 좋다. 청송장(4, 9일)과 진보장(3, 8일)은 청송의 대표적인 5일장이다.⊙

마을 앞 실개천에서는 달빛을 받으며 다슬기를 줍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을의 유일한 식당인 ‘소슬 밥상’에서는 아침식사가 끝나면 천연 염색체험을 진행한다. 치자 잎으로 직접 물들인 손수건은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주왕산은 단풍과 어우러진 폭포를 구경할 수 있어 가을 여행지로 인기가 좋다.

가을볕에 붉게 익은 사과가 탐스럽다. 바구니 가득 사과를 따는 아주머니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달기약수로 끓인 백숙은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사진=조선DB)

철분이 섞여 있어 톡 쏘는 맛이 나는 달기약수.(사진=조선DB)

청송 덕천마을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진보면에 5일장이 섰다. 동해에서 잡아온 싱싱한 오징어를 파는 할머니도 늘어난 손님에 흥이 났다. 청송, 영양, 안동, 영덕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붐비는 진보장은 동해안에서 잡은 각종 수산물을 내륙으로 보내던 길목 역할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