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여기] 일본군의 지하요새에 만든 제주 평화박물관 : 월간조선

아름답고 평화로운 섬 제주도 곳곳에는 우리가 잊고 지내온 아픈 과거의 상흔이 남아 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말기 전세(戰勢)가 불리해지자 제주도에 제58군 사령부를 창설, 미군의 본토 침공에 대비한 최전방 군사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일본군은 제주도민을 강제동원해 제주도의 오름(기생화산)과 해안 일대에 진지동굴을 구축했다.

높이 1.6~3m, 너비 1.5~3m 규모의 땅굴 내부. 안전한 관람을 위해 목재를 덧대고 조명을 설치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 가마오름에 건설한 미로(迷路) 형태의 지하요새다. 일본군이 이곳에 땅굴진지를 구축한 것은 전투기가 출격했던 알뜨르비행장이 인근에 있고, 제주 서부 지역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총길이가 2km에 이르는 지하요새는 수직구조의 지하 3층 규모로 출입구만 33곳이나 된다. 바로 이 지하요새에 평화박물관(관장 이영근·李英根)이 들어섰다. 관람객들에게 공개되어 있는 지하요새의 제1땅굴 340m 구간은 높이 1.6~3m, 너비 1.5~3m 규모로 당시 사령관실로 사용했던 10평 남짓한 방과 회의실·숙소·의무실 등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방이 있다. 단체 관람객이 오면 평소 공개하지 않던 구간을 보여주기도 한다. 영상 유물 등 각종 자료를 관람할 수 있는 실내 전시관도 있다. 진지 구축을 위해 강제징용당했던 이들의 증언과 당시 종군기자가 실제 촬영한 영상을 볼 수 있다.

관람객을 위해 개방된 진지에는 땅굴을 파기 위해 강제징용당했던 제주도민들의 모습이 모형으로 설치되어 당시 상황을 알려주고 있다.

이영근 관장은 2004년 3만6000여m²에 달하는 가마오름 전체를 사들인 후 평화박물관을 세웠다. 그가 이 박물관을 세운 것은 아버지(이성찬)가 일제 말 이 요새 건설 공사에 동원됐던 아픈 기억 때문. 이 관장은 “가마오름의 진지동굴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강제동원돼 등잔불 밑에서 채찍질을 당하며 삽과 곡괭이로 만들어낸 지하요새”라면서 “평화박물관이 우리 선조들이 왜 나라를 빼앗겼는지 반성하고, 평화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고민하는 산 역사의 현장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가마오름 일본군 진지는 2006년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308호로 등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