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강을 끼고 달리는 길은 춘천행 기차여행의 백미(白眉)다.
북한강 물줄기와 나란히 달리는 춘천행(行) 열차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대학시절 친구들과 함께 떠났던 MT의 추억도 있고, 옛 사랑과 함께한 여행의 설렘도 서려 있다. 어떤 이에게는 ‘다시는 돌아 나올 것 같지 않던’ 군 입대의 기억도 있을 터다. 추억을 싣고 달리던 경춘선 열차가 아쉽게도 올해를 마지막으로 사라진다. 1939년 7월 개통한 지 71년 만이다. 12월 21일부터는 단일 노선이었던 경춘선 옆으로 복선 노선의 전철이 새로 개방된다. 덜컹거리는 무궁화호 기차는 사라지고 세련된 신식 전철이 춘천을 오가게 된다. 전철이 들어서면 녹슨 철길과 아기자기한 간이역은 옛 이야기가 된다.
경춘선 복선 전철이 들어서는 곳은 서울 상봉역과 춘천역 사이의 81.4km 구간이다. 기존 노선보다 13.2km 단축됐다. 복선 전철의 운행 시간은 89분으로 기존 경춘선 열차보다 25분이 빨라진다. 내년 말 용산에서 출발하는 시속 180km급 좌석형 급행 전철이 운행되면 서울~춘천 간 거리가 40분대로 좁혀진다. 운임도 내려간다. 춘천에서 신상봉역까지 운임은 약 2600원. 기존 청량리에서 출발하던 무궁화호 운임(5400원)에 비하면 반값 정도 수준이다. 수도권 통합 환승 할인제의 혜택도 볼 수 있다.
경춘선 복선 전철이 생기면서 생기는 가장 큰 변화는 오랫동안 손님을 맞이하던 역사들이 사라지거나 옮겨간다는 것이다. 경춘선은 현재 청량리·성북·화랑대·퇴계원·사릉·금곡·평내호평·마석·대성리·청평·상천·가평·경강·백양리·강촌·김유정·남춘천 등 모두 17개의 기차역이 운영되고 있다. 이 중 화랑대·사릉·금곡·가평·경강·백양리·강촌·김유정·남춘천 등 9개 역이 바뀌게 된다. 대성리역과 청평역은 이미 역사를 옮기거나 신설돼 운영 중이다.
경춘선 기차여행 중 MT장소로 가장 유명한 곳이 강촌역이다. 피암(避岩·낙석을 피하기 위함) 터널로 만들어진 강촌역은 그 모양이 독특해 사진 촬영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역사 기둥에 남은 온갖 낙서가 추억을 말해준다. 간이역사인 화랑대·경강·백양리역은 아담하고 안락한 분위기로 손님들을 끌어모은다. 서울에서 마지막 남은 간이역인 화랑대역에는 ‘우리 역에서 기차를 타볼 수 있는 날 OO일’이라는 표지판이 내걸렸다. 영화 ‘편지’의 촬영장소로도 유명한 경강역은 아름드리나무가 어우러져 포근한 분위기를 낸다. 유일한 무인 역사인 백양리역은 마을 안 호젓한 철길에 ‘땡땡땡’ 울리는 열차 안내만이 손님을 맞아준다. 이제 기억 속으로 사라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곳은 단풍철과 맞물려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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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일한 무인(無人) 역사인 백양리역. 호젓한 산골의 간이역은 기억 속에 자리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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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강역에서 바라본 기찻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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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강을 품으며 달리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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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인 화랑대역.(문화재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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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촌역을 떠나 춘천으로 향하는 기찻길. 강촌역이 옮겨지면 이 길로는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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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차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간식. 삶은 계란과 귤을 까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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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처 자리표를 구하지 못한 입석 손님들이 통로에 앉아 단잠을 청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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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춘선의 방송을 담당하는 신병철 차장. 전철이 개통되면 방송실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단다. 그가 춘천행 기차에서 도착 안내 방송을 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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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춘선 열차의 스낵코너를 담당하는 최승자씨. 2년 전부터 춘천행 열차의 손님들에게 간식을 배달하고 있다. 추억과 낭만이 서린 경춘선과 쌓인 정(情)이 누구보다 많은 최씨다. 열차가 사라지면 서울역으로 돌아가 다른 기차를 타게 된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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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차의 좌석을 돌려 4명이 마주보고 앉으면 그때부터 게임이 시작된다. MT를 떠나는 학생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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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촌역을 찾은 연인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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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궁화호 남춘천-청량리’ 열차 여행객들이 마지막 추억이 될 표지판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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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신설 역사 공사로 폐물이 된 청평역 철길. 일 년 사이 무성한 잡초가 자랐다. 기차는 떠났지만 이 길을 추억하는 우리의 기억 속에는 오랫동안 머무를 것이다. |
| ⊙ 여행 노트 경춘선 열차는 남춘천행이 청량리에서 오전 6시15분부터 오후 8시까지 50분에 한 대꼴로 운영된다. 남춘천에서 청량리로 향하는 상행선은 오전 5시20분부터 9시까지 운영된다. |
최세빈
(2017-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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