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여년 근무한 OECD 박차고 나와 월세 50만원에서 시작
⊙ 23년 치 의안, 국회의원 자료 등 1억 개 데이터 확보
⊙ 국내 시장 규모 30조원으로 추정
⊙ “스타트업은 신뢰 주면서 차근차근 고객 만족하게 해야 하는 평판 비즈니스”
鄭智恩
1984년생. 로열할로웨이런던대 정치경제학과 졸업, 서울대 행정대학원 정책학 석사 / 유네스코 정책 컨설턴트, OECD 정책분석가, 월드뱅크 산하 Global Partnership for Education 시니어 컨설턴트 역임. 現 코딧 대표이사, 기획재정부 제6기 중장기전략위원회 위원,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위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지식정보위원회 위원
⊙ 23년 치 의안, 국회의원 자료 등 1억 개 데이터 확보
⊙ 국내 시장 규모 30조원으로 추정
⊙ “스타트업은 신뢰 주면서 차근차근 고객 만족하게 해야 하는 평판 비즈니스”
鄭智恩
1984년생. 로열할로웨이런던대 정치경제학과 졸업, 서울대 행정대학원 정책학 석사 / 유네스코 정책 컨설턴트, OECD 정책분석가, 월드뱅크 산하 Global Partnership for Education 시니어 컨설턴트 역임. 現 코딧 대표이사, 기획재정부 제6기 중장기전략위원회 위원,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위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지식정보위원회 위원
- 정지은 코딧 대표이사
회사를 휴직하고 서울에 머물던 그가 이메일로 사직서를 제출하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본부가 있는 프랑스 파리에서 직원이 날아왔다. OECD에서 테뉴어(종신재직권)를 받은 이가 스스로 퇴직하겠다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확인차 직원이 왔지만, 정작 그가 회사를 그만두려는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이대로 5년 뒤 마흔이 되면 그냥 이 자리에 주저앉을 것 같아서, 가슴 뛰는 일을 해보고 싶어서가 이유였다. 그렇게 그는 모두가 선망하는 국제기구를 때려치우고 스타트업 회사를 만들었다. 법안·규제·정책정보 등 기업 리스크 관리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코딧의 정지은 대표이사 얘기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과 함께하는 스타트업 4번째 기업인 코딧의 정 대표를 2월 29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본사에서 만났다.
“코드(Code)는 라틴어로 ‘법률의 집대성’이라는 뜻입니다. 코드에 IT를 붙여서 코딧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과 빅테크 기업, 스타트업, 정부부처, 국회, 협회,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가 주요 고객입니다.”
“법령·정책 정보 제공 서비스”
― 정확히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겁니까.
“저희는 많은 양의 의안(議案), 법안, 법령, 정책 자료를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기업들에 맞춤형으로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재생에너지 관련 기업이 저희 사이트에서 ‘재생에너지’를 설정해놓으면, 관련 법률이나 조항이 업데이트될 때마다 알람이 갑니다. 국회 입법뿐 아니라 법령, 준칙, 고시(告示), 공고, 행정예고 등 관련 법규의 변화 전부를 알 수 있습니다. 국회의 법은 심사에 들어갔다 병합되고, 폐기되는 일이 반복되고, 법이 바뀌면 시행령, 시행규칙이 매번 새롭게 만들어지는데 회사 입장에서 자사(自社)와 관련된 법, 규제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하는 서비스입니다. 법과 관련된 정책, 뉴스도 함께 제공되고, 저희가 보유한 자체 엔진을 통해 영문(英文)으로 자동 번역도 됩니다.”
― 국내에서 이런 서비스를 하는 곳이 없다고 하던데요.
“저희가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의 블룸버그 거버먼트(Bloomberg Government)와 법안 분석 전문 기업인 피스컬노트(FisfcalNote) 등이 먼저 시작해 기업용으로 제공 중입니다.”
― 개인과 접점이 적은 B2B(비즈니스 to 비즈니스) 사업이네요.
“맞습니다. 사실 정부의 정책, 법령은 복잡하고 알기 어렵습니다. 포털 사이트에 검색어를 넣어도 관련 뉴스 몇 개가 뜨는 것이 고작입니다. 우리 회사에 필요한 법이 어떻게 개정 중인지, 가장 많이 언급한 사람은 누군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의 반응은 어떤지 등 모든 관련 정보를 제공합니다.”
― 기본 데이터는 어디에서 가져옵니까.
“정책 및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국회, 정부부처, 지자체 등 관련 부서에서 모두 가져옵니다. 법안 관련자들의 소셜미디어 , 유튜브, 블로그도 다 보는데 입법기관 관련자들을 모조리 트래킹한다고 보면 됩니다. 저희의 역할은 정확하게 세상에 퍼져 있는 법 관련 정보를 수치화해 대외정책 및 컴플라이언스 팀의 성과가 퀀터파이(quantify·정량화) 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외국계·스타트업 기업이 주된 고객
‘AI 법안 모니터링 코딧’이라는 제목의 홈페이지(thecodit.com)는 국회일정·의안·법령·조례·인물·회의록·리포트 등으로 구성돼있다. ‘코딧의 기술을 통해 5000만 건 이상의 국회 및 정부 데이터 중 필요한 정보만 모니터링 하자’는 문구가 눈에 띈다.
2020년 4월에 설립된 코딧은 이듬해 12월에 서비스를 시작했고, 6개월 만에 법인 회원 수가 100곳을 돌파했다. 현재 코딧에 가입한 업체는 4000여 곳이다. 서비스 이용 범위에 따라 구독료는 차등 적용한다. 추가 비용을 내면 개별 회사에 맞는 맞춤형 리포트도 받을 수 있다. 코딧은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형태로 제공되는데, 번역·트래킹모델·회의록 추출·숨은 규제 찾기 등과 관련한 특허를 10개 이상 취득했다. 회사는 개발팀과 정책팀이 주축이 되어 10명의 직원이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개발팀은 데이터를 수집해 실시간으로 가져오고, 번역 모델을 계속 돌린다. 번역 엔진은 코딧이 특허를 가진 자체 모델이다. 정책팀은 과거 국회나 정부부처, 지자체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이들로 구성돼 고객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 사방에 흩어진 법 관련 정보를 한곳에 모으는 일이 쉽진 않죠.
“개발팀에서 업무를 하는데 20년치 조례 데이터까지 다 갖고 있습니다. 특정 회사 입장에서는 실제 사업을 할 때 조례가 제일 중요하거든요. 킥보드 운행 허용 범위가 지자체별로 다르고, 태양광 패널의 이격(離隔) 거리 규정도 다 다릅니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려는 회사가 지역별로 일일이 규정을 찾고, 주의사항은 없는지 살피려면 엄청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겁니다. 저희 사이트에서 관련 검색어를 설정하면 맞춤형으로 실시간 정보를 받는 겁니다. 정책팀은 가령 ‘국회에서 법안이 유보됐다’고 뜨면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고객들에게 설명하고, 또 IPO(기업공개)를 앞둔 회사들의 비(非)재무적인 이슈 등을 조언하는 역할을 합니다.”
― 기업 입장에서 꼭 알아야 하지만 품은 많이 들고, 골치 아픈 일이죠.
“네. 저희 서비스는 파인튜닝(fine tuning·미세하게 조정)을 하는 작업이거든요. 챗 GPT가 학습하지 못한 국내 데이터를 학습시키고 정확한 답변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세세한 부분을 학습시켜 제공합니다.”
정지은 대표에 의하면 국내 시장 규모는 30조원으로 추산된다. 코딧의 가장 큰 클라이언트는 외국계 기업과 스타트업이 많다. 대기업은 자체적으로 정책팀, 대관팀이 꾸려져 있는 곳이 많아서 많이 사용하는 편은 아니다. 정지은 대표는 “외국계 기업은 통상 한국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묶어서 본사가 싱가포르, 홍콩 등에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한국어 서비스보다 영어로 된 서비스를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OECD ‘영 프로페셔널’에 입사한 최초의 한국인
수많은 검색 엔진 포털 사이트 중에서 공공(公共)의 섹터, 특히 법령이라는 분야를 시작하게 된 것은 정지은 대표의 이력 때문이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유학을 떠난 그는 영국에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왔다. ‘또래의 친구들과 차별화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어서’ 유학을 떠났던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경제학, 정책학에 관심이 컸고 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공공 섹터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 졸업 후 국내에 들어왔다가 우연한 기회에 외교부에서 7개월 동안 인턴 및 연구원 생활을 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OECD 가입 10주년 기념 회의를 돕는 일을 맡았는데 덕분에 경제 관련 국제기구들을 접할 수 있었다. 함께 일했던 외교부 서기관의 추천으로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들어갔고 재학 중에 유네스코에서 석 달 동안 인턴십을 하고 약 2년간 근무했다.
“유네스코에서 나이지리아를 담당했는데 나이지리아 관련 데이터가 너무 없는 거예요. 기본 데이터가 있어야 연구를 할 수 있는데 데이터 자체가 부족하거나 너무 오래됐거나 해서 답답하더라고요. 유네스코 본부와 OECD 본부가 모두 프랑스 파리에 있는데, 마침 OECD에서 인재를 구하고 있어 지원했습니다. OECD에 가면 데이터에 대한 목마름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 데이터에 대한 목마름이라니, 특이하네요.
“그때는 진짜 그랬어요(웃음). 시험을 무려 넉 달 동안 보는 바람에 유네스코는 잠깐 쉬었습니다. 면접이 끊임없었어요.”
― 뉴스를 보니까 400대 1의 경쟁률을 뚫었다고요.
“네. 운 좋게도 유네스코에서의 경력이 OECD에서 요구하는 일과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제가 뽑히기 이전에 OECD에서 근무한 한국인은 있었지만 ‘영 프로페셔널’이라는 OECD 공채 프로그램을 통해 들어간 한국인은 제가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 OECD에 들어가 보니 목마름이 사라지던가요.
“OECD 회원국이 36개예요. 특정 이슈가 생기면 그 이슈 담당 공무원들이 각국에서 날아와 그룹을 만들고, OECD 사무국이 관련 내용을 매니지했습니다. 국가별로 자기들의 입장을 반영하기 위해 미팅하고, 첨예하게 대립했습니다. 글로벌에서의 정책 및 규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다양한 각도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삶은 편하지만 그게 옳은 걸까’ 싶어”
― OECD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했는데 가장 인상 깊은 프로젝트가 있다면요?
“OECD는 경제기구이다 보니 경제적인 지표로만 모든 것을 평가하고 GDP에 있는 내용을 주로 말합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말하지만 웰빙이나 행복, 자살률에 관한 측정이 주축을 이루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패러다임이 변하는 시점이 왔고 손에 잡히지 않는 지표들을 어떻게 지표화하는지를 연구할 계기가 있었습니다. ‘GDP가 높은 국가가 국민 행복률이 1등은 아니다’라는 지표와 같이 경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New Approaches to Economic Challenges)을 다룬 연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 직장으로서의 OECD는 어떻습니까.
“좀 불안정합니다. 미국이 예산을 주지 않으면 프로젝트가 중단되곤 하기 때문에 테뉴어 여부가 가장 중요합니다. OECD에 입사하면 대다수의 관심사가 ‘내가 테뉴어를 받을 수 있을까’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 그 어렵다는 테뉴어를 땄는데 스스로 퇴사했습니다.
“네. 리포트 패턴이 정해져 있고, 오래 일하다 보니 너무 익숙해졌습니다. 일은 잘 맞았는데 좀 두려웠습니다. 2011년 입사해서 2019년에 퇴직했는데, 제가 마지막에 근무하던 때는 IT 기술이 많이 나올 때였거든요. 그걸 접목해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고, 변화를 꿈꿨다고나 할까요. 사실 OECD와 같은 연구기관들은 습성상 많이 보수적이고 변화를 선호하지 않거든요. 제가 마흔이 넘으면 계속 그곳에 있을 것 같았고 그러면 삶은 편하겠지만 그게 옳은 걸까 싶었습니다.”
“사업 구상하며 살아 있다 느껴”
정지은 대표의 고민에 주위 사람들은 모두 반대했다. 부모님은 물론, 지인들 또한 ‘남들은 들어가지 못해 난리인 곳인데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했다. 하지만 정 대표는 ‘아이디어만 갖고서도 사업성이 있을까’ 싶은 마음에 연세대에서 운영하는 예비창업 패키지의 문을 두드렸다. 사업 아이템은 그가 늘 해왔던 데이터 관련으로 법령 포털 사이트 웹사이트였다. 때마침 코로나19로 세계가 봉쇄에 나서면서 그는 계속 서울에 머물게 됐다. 연세대 예비창업 프로그램에서 멘토링을 했던 이택경 매쉬업엔젤스 대표가 그에게 투자를 약속하면서 정지은 대표의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
“투자를 해준다는 분이 막상 생기니까 법인도 만들어야 하고, 직원도 뽑아야 하고, 사무실도 얻어야 하고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OECD에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 본인도 뜻밖이었지만 OECD도 놀랐겠네요.
“오죽하면 프랑스 현지에서 직원이 서울로 날아왔겠어요(웃음). 익숙함을 선호하는 프랑스 사람들 입장에서는 제 퇴직의 이유가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는 거죠. 그런데 저는 사업 아이디어를 내고, 그걸 구상할 때 가슴이 뛰었고 그제야 살아 있다는 느낌이 막 들었거든요.”
― 탄탄대로인 직장을 버린다는 아쉬움은 없었습니까.
“별로 없었어요. 오히려 제가 앞으로 해나갈 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막 설레던데요(웃음). 아이디어만 있는 회사를 뭐를 믿고 투자해주신 건지 아직도 신기해요.”
그렇게 정지은 대표는 2020년 4월에 자기 종잣돈 0원에 개인 사비로 송파구 위례에 월 50만원짜리 사무실을 얻었다. 매출이 생기기 전까지 월급은 없이, 이희준 최고기술개발자(CTO), 디자이너와 셋이서 사업을 시작했다. ‘맨땅에 헤딩’이라는 표현 그대로 자료를 마구잡이로 모았다. 국회의원실을 일일이 뒤져서 법안을 다운받고, 정부부처 보도자료, 법령, 조례, 고시를 모조리 뒤졌다. 필요한 데이터가 없으면 국민 신문고에 쓰고, 정부부처에 질의서를 보내 요청했다. 여태까지 이런 자료를 요청한 사람이 없었기에 정부부처 사무관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서 ‘대체 너희는 누구기에 이런 자료를 요청하느냐’고 했을 정도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1년의 세월이 흐르고 흘렀다.
1호 고객은 외국계 회사와 전동 킥보드 회사
― 공무원들이 자료를 주는 데 호의적이던가요.
“처음에는 저희 요청을 듣고 다들 황당해했죠(웃음). 그래도 다들 기존의 데이터를 새롭게 활용한다는 저희의 선의(善意)를 좋게 봐주셨는지 자료를 선뜻 제공했습니다. 세종시에 직접 자료 받으러 내려가기도 하고, 이미지 파일을 데이터로 바꾸고, 1년 반 동안 매일 그것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나 완전히 망했다’ 싶었습니다.”
― 왜요?
“‘고생은 대단히 했는데 우리가 만든 것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드는 겁니다. 제가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도 그걸 사용하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그래서 대단히 고민을 했는데 이왕 시작한 일이고, 또 이게 망하더라도 누군가 이런 시도를 했다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란다는 마음으로 계속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21년 12월에 코딧의 초기 모델이 나왔다. 1호 고객은 외국계 회사 A사와 전동 킥보드 회사인 B사였다. A사는 대형 로펌에 큰돈을 내고 국내 법안을 모니터링 중이었는데 세부적인 시행책들이 빨리 업데이트되지 않아 답답해하다가 코딧을 찾았다. B사는 진동 킥보드 법이 헬멧 착용 여부, 견인 여부, 속도 규제 등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는 터라 이런 법령 포털 서비스를 요구했다. 코딧 이용료로는 A사 500만원, B사 150만원. 회사를 만들고서 1년 반 만의 첫 매출이었다.
“그때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두 회사가 카드로 결제했는데 저희 컴퓨터 창에 ‘결제’라고 전표가 뜨는 거예요. 화면 창이 너무 신기해서 한동안 그냥 바라만 봤습니다. ‘내가 만든 서비스를 정말 세상에서 요구하는 사람이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그 이후 코딧은 고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알음알음으로 문의가 쇄도했다. 정지은 대표는 “마케팅으로 쓸 돈이 없었고 우리에게 문의하는 고객들을 일일이 콘택트해 미팅하고 서비스를 설명했다”고 말했다.
2020년 4월 창업, 2021년 12월에 첫 서비스, 100호 고객이 모인 것은 2022년 여름이었다.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업체가 코딧의 유료 회원이 됐다.
보유 데이터 1억 건
― 코딧에는 몇 개의 데이터가 있나요.
“1억 건 정도의 데이터가 있습니다. 23년 치 의안 및 국회의원 데이터, 12년 치 법령 관련 뉴스, 15년 치 정책 자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서버 이용료로만 1000만원 이상 지출하고 있습니다.”
― 이미지, 동영상을 서비스하는 것이 아닌데 서버 이용료가 어마어마하네요.
“인공지능(AI)을 돌리는 서버는 따로 있습니다. 정부의 서버가 한정돼 있어서 아주 오래된 기록들은 삭제하더라고요. 저희가 저장해놓지 않으면 과거 데이터를 찾기 어려울 것 같아서 예전 것까지 전부 모으고 있습니다. 정부부처와 협업을 하는 일도 늘었습니다. 부처와 함께 숨겨진 규제를 찾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기도 하고, 국책연구원과 정책데이터를 분석하는 리포트도 정기적으로 발간하고 있습니다.”
― 무형의 재산으로 매출을 창출하기는 참 어려운데, 우리나라는 정보 콘텐츠는 공짜라는 시각이 강하잖아요.
“맞습니다. 신문, 잡지, 책 등 텍스트 정보에 대해 선뜻 돈을 내려 하지 않는 문화가 있죠. 저희도 사이트를 만들면서 어떻게 해야 돈을 낼 값어치가 있는 사이트가 될까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사실 아무리 세상에 널려 있는 정보라도 찾고, 수집하고, 새롭게 변환하고, 쓸모 있게 구성하는 비용이 꽤 들잖아요. 그래서 고객들에게 우리 사이트를 경험하고 결정하기까지 시간을 준다는 차원에서 일정 기간 무료로 모니터링 플랫폼을 체험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 스타트업의 성공 조건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스타트업뿐 아니라 오래가는 회사는 고객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회사라고 봅니다. 뭔가 속이고, 부풀리고, 외형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것은 오래가지 못하더라고요. 그보다는 내실 있고, 정직한 회사가 롱런의 비결이라고 봅니다. 특히 스타트업은 투자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평판(評判) 비즈니스입니다. 신뢰를 주면서 차근차근 고객을 만족하게 하면 결국 소문이 나게 돼 있지만, 그런 과정을 스킵하고 외형에만 치중하거나, 무조건 투자를 많이 받아서 자본금을 늘린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처럼 100년, 200년 가는 기업을 만드는 첫걸음은 신뢰입니다.”
일본 법령 데이터 서비스 출시
정지은 대표는 실제로 코딧에 투자하겠다는 몇몇 투자자에게 정중하게 거절 의사를 표했다. 딱 필요한 금액만큼만 투자받는 것이 회사에 도움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란다. 현재 누적 자본금도 한 손으로 꼽을 만한 사람들에게만 투자받아 51억원, 정부 지원금 및 보증기금으로 약 20억원을 받았고, 직원은 단 10명뿐이다. 지난해 회사 매출은 7억원, 영업이익은 적자를 기록했는데 올해에는 흑자를 예상하고 있단다. 코딧은 지난해 연말에 일본 법령 데이터 서비스를 시범 출시해 화제가 됐다. 아시아 최대 스타트업 페어인 ‘이노베이션 리더스 서밋 2023-도쿄’에서 첫선을 보인 코딧의 서비스 버전에 미쓰비시, 일렉트로닉스 등 12개의 일본 현지 법인이 관심을 보였다.
“창업할 때부터 글로벌화를 꿈꿨습니다. 처음에는 동남아를 고려했는데 그 나라들은 뜻밖에 사람을 상대로 정보를 얻는 시스템이 많았습니다. 공무원들이 어떤 법령에 대해서 유권 해석을 해주는 식(式)으로 말이죠. 데이터 시스템이 아닌 곳은 좀 위험할 것 같아서 일본에 먼저 진출했습니다.”
― 일본의 법령 정보들이 많이 오픈돼 있던가요.
“일본의 참의원, 중의원의 경우 정보가 공개돼 있어서 많이 얻었고, 필요에 따라서는 일본 공무원에게 직접 요청했습니다. 저희가 하고자 하는 일을 설명하니까 선뜻 정보를 주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저희가 요즘 눈여겨보는 곳은 농수산물 대규모 생산과 거래가 이뤄지는 트릿지(Tridge)예요. 전 세계 주요 농축산물에 대한 작황과 가격 등 데이터를 분석해서 유통업체가 식품업체 등에 제공하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더라고요. 저희도 법안과 관련한 원스톱 서비스를 전 세계를 상대로 제공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일본 시장이 안정화되면 진출 국가를 넓혀서 유럽연합(EU), 미국 등 해외 주요국의 법령 데이터를 확보해 해외 각국의 법·규제·정책동향을 비교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 기본 정보를 국회, 정부로부터 받아야 하는데 애로사항은 없습니까.
“사실 정부가 법을 바꾸면 회사나 개인이 거기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그러기 위해서 저희 같은 업체에 공개할 수 있는 정보를 더 많이 오픈하기를 바라죠. 우리는 아직까지 입법 예고 외에 시행령 및 시행규칙과 관련된 구체적인 결정사항과 관련된 회의록이나 회의 일정 및 예정일 등은 알 수 없습니다.”
주 7일, 늦은 밤 일하는 즐거움
인터뷰 내내 똑 부러지는 말투로 조곤조곤 설명했던 정지은 대표의 요즘 고민은 ‘구인(求人)’이란다. 창업한 지 아직 3년도 채 되지 않는 신생 회사 대표가 벌써 사람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 다소 의아했다.
“직원 뽑는 게 가장 어렵습니다. 저희는 데이터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원천 소스에 대한 사업 리스크는 적은 편입니다. 간혹 저희에게 ‘데이터가 틀렸다’며 항의하는 고객이 있는데 저희 잘못이라기보다는 원본이 망가진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저희가 해당 법령 기관에 직접 문의해서 원본 소스를 바꾸어달라고 요청하고, 저희도 수정합니다. 이제 일이 많이 익숙해졌는데 여전히 직원을 구하고, 그들과 호흡을 맞추는 일은 어려워요.”
― 사업 오래 한 분들이 하는 인재 확보의 어려움을 벌써 느낀다니요.
“진짜요, 일은 사람이 한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니까요(웃음). 저희가 10명뿐이지만 굳건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원팀이기 때문입니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늦은 밤까지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거든요. 누가 강요해서 늦게까지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할 일이 남아 있고,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니까 그냥 하는 겁니다. 새로 뽑을 직원에게 무조건 우리 문화를 따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사람 구하는 게 가장 어려워요.”
― 스타트업을 취재해보니 재밌어서,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주 7일 일한다는 분들이 많데요.
“맞습니다. 저희 지난해 연말에는 단체로 일주일간 방학을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일하다 보면 번 아웃 올 것 같아서 단체로 쉬자고 했습니다. 휴가와는 별도로 방학을 가졌는데, 사무실에 나오지 않을 뿐이지 다들 집에서 일하고 있더라고요(웃음). 요즘도 저한테 ‘멀쩡한 직장 때려치우더니 고생을 사서 한다’며 쯧쯧거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어떡합니까.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세상에 새로운 무언가 하나는 꼭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게 코딧입니다.”⊙
“코드(Code)는 라틴어로 ‘법률의 집대성’이라는 뜻입니다. 코드에 IT를 붙여서 코딧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과 빅테크 기업, 스타트업, 정부부처, 국회, 협회,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가 주요 고객입니다.”
“법령·정책 정보 제공 서비스”
― 정확히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겁니까.
“저희는 많은 양의 의안(議案), 법안, 법령, 정책 자료를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기업들에 맞춤형으로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재생에너지 관련 기업이 저희 사이트에서 ‘재생에너지’를 설정해놓으면, 관련 법률이나 조항이 업데이트될 때마다 알람이 갑니다. 국회 입법뿐 아니라 법령, 준칙, 고시(告示), 공고, 행정예고 등 관련 법규의 변화 전부를 알 수 있습니다. 국회의 법은 심사에 들어갔다 병합되고, 폐기되는 일이 반복되고, 법이 바뀌면 시행령, 시행규칙이 매번 새롭게 만들어지는데 회사 입장에서 자사(自社)와 관련된 법, 규제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하는 서비스입니다. 법과 관련된 정책, 뉴스도 함께 제공되고, 저희가 보유한 자체 엔진을 통해 영문(英文)으로 자동 번역도 됩니다.”
― 국내에서 이런 서비스를 하는 곳이 없다고 하던데요.
“저희가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의 블룸버그 거버먼트(Bloomberg Government)와 법안 분석 전문 기업인 피스컬노트(FisfcalNote) 등이 먼저 시작해 기업용으로 제공 중입니다.”
― 개인과 접점이 적은 B2B(비즈니스 to 비즈니스) 사업이네요.
“맞습니다. 사실 정부의 정책, 법령은 복잡하고 알기 어렵습니다. 포털 사이트에 검색어를 넣어도 관련 뉴스 몇 개가 뜨는 것이 고작입니다. 우리 회사에 필요한 법이 어떻게 개정 중인지, 가장 많이 언급한 사람은 누군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의 반응은 어떤지 등 모든 관련 정보를 제공합니다.”
― 기본 데이터는 어디에서 가져옵니까.
“정책 및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국회, 정부부처, 지자체 등 관련 부서에서 모두 가져옵니다. 법안 관련자들의 소셜미디어 , 유튜브, 블로그도 다 보는데 입법기관 관련자들을 모조리 트래킹한다고 보면 됩니다. 저희의 역할은 정확하게 세상에 퍼져 있는 법 관련 정보를 수치화해 대외정책 및 컴플라이언스 팀의 성과가 퀀터파이(quantify·정량화) 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외국계·스타트업 기업이 주된 고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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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정지은 대표가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두잉 비즈니스 인 코리아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
2020년 4월에 설립된 코딧은 이듬해 12월에 서비스를 시작했고, 6개월 만에 법인 회원 수가 100곳을 돌파했다. 현재 코딧에 가입한 업체는 4000여 곳이다. 서비스 이용 범위에 따라 구독료는 차등 적용한다. 추가 비용을 내면 개별 회사에 맞는 맞춤형 리포트도 받을 수 있다. 코딧은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형태로 제공되는데, 번역·트래킹모델·회의록 추출·숨은 규제 찾기 등과 관련한 특허를 10개 이상 취득했다. 회사는 개발팀과 정책팀이 주축이 되어 10명의 직원이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개발팀은 데이터를 수집해 실시간으로 가져오고, 번역 모델을 계속 돌린다. 번역 엔진은 코딧이 특허를 가진 자체 모델이다. 정책팀은 과거 국회나 정부부처, 지자체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이들로 구성돼 고객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 사방에 흩어진 법 관련 정보를 한곳에 모으는 일이 쉽진 않죠.
“개발팀에서 업무를 하는데 20년치 조례 데이터까지 다 갖고 있습니다. 특정 회사 입장에서는 실제 사업을 할 때 조례가 제일 중요하거든요. 킥보드 운행 허용 범위가 지자체별로 다르고, 태양광 패널의 이격(離隔) 거리 규정도 다 다릅니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려는 회사가 지역별로 일일이 규정을 찾고, 주의사항은 없는지 살피려면 엄청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겁니다. 저희 사이트에서 관련 검색어를 설정하면 맞춤형으로 실시간 정보를 받는 겁니다. 정책팀은 가령 ‘국회에서 법안이 유보됐다’고 뜨면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고객들에게 설명하고, 또 IPO(기업공개)를 앞둔 회사들의 비(非)재무적인 이슈 등을 조언하는 역할을 합니다.”
― 기업 입장에서 꼭 알아야 하지만 품은 많이 들고, 골치 아픈 일이죠.
“네. 저희 서비스는 파인튜닝(fine tuning·미세하게 조정)을 하는 작업이거든요. 챗 GPT가 학습하지 못한 국내 데이터를 학습시키고 정확한 답변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세세한 부분을 학습시켜 제공합니다.”
정지은 대표에 의하면 국내 시장 규모는 30조원으로 추산된다. 코딧의 가장 큰 클라이언트는 외국계 기업과 스타트업이 많다. 대기업은 자체적으로 정책팀, 대관팀이 꾸려져 있는 곳이 많아서 많이 사용하는 편은 아니다. 정지은 대표는 “외국계 기업은 통상 한국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묶어서 본사가 싱가포르, 홍콩 등에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한국어 서비스보다 영어로 된 서비스를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OECD ‘영 프로페셔널’에 입사한 최초의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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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사무국에서 정지은 대표는 정책분석가로 9년간 일했다. |
“유네스코에서 나이지리아를 담당했는데 나이지리아 관련 데이터가 너무 없는 거예요. 기본 데이터가 있어야 연구를 할 수 있는데 데이터 자체가 부족하거나 너무 오래됐거나 해서 답답하더라고요. 유네스코 본부와 OECD 본부가 모두 프랑스 파리에 있는데, 마침 OECD에서 인재를 구하고 있어 지원했습니다. OECD에 가면 데이터에 대한 목마름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 데이터에 대한 목마름이라니, 특이하네요.
“그때는 진짜 그랬어요(웃음). 시험을 무려 넉 달 동안 보는 바람에 유네스코는 잠깐 쉬었습니다. 면접이 끊임없었어요.”
― 뉴스를 보니까 400대 1의 경쟁률을 뚫었다고요.
“네. 운 좋게도 유네스코에서의 경력이 OECD에서 요구하는 일과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제가 뽑히기 이전에 OECD에서 근무한 한국인은 있었지만 ‘영 프로페셔널’이라는 OECD 공채 프로그램을 통해 들어간 한국인은 제가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 OECD에 들어가 보니 목마름이 사라지던가요.
“OECD 회원국이 36개예요. 특정 이슈가 생기면 그 이슈 담당 공무원들이 각국에서 날아와 그룹을 만들고, OECD 사무국이 관련 내용을 매니지했습니다. 국가별로 자기들의 입장을 반영하기 위해 미팅하고, 첨예하게 대립했습니다. 글로벌에서의 정책 및 규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다양한 각도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삶은 편하지만 그게 옳은 걸까’ 싶어”
― OECD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했는데 가장 인상 깊은 프로젝트가 있다면요?
“OECD는 경제기구이다 보니 경제적인 지표로만 모든 것을 평가하고 GDP에 있는 내용을 주로 말합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말하지만 웰빙이나 행복, 자살률에 관한 측정이 주축을 이루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패러다임이 변하는 시점이 왔고 손에 잡히지 않는 지표들을 어떻게 지표화하는지를 연구할 계기가 있었습니다. ‘GDP가 높은 국가가 국민 행복률이 1등은 아니다’라는 지표와 같이 경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New Approaches to Economic Challenges)을 다룬 연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 직장으로서의 OECD는 어떻습니까.
“좀 불안정합니다. 미국이 예산을 주지 않으면 프로젝트가 중단되곤 하기 때문에 테뉴어 여부가 가장 중요합니다. OECD에 입사하면 대다수의 관심사가 ‘내가 테뉴어를 받을 수 있을까’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 그 어렵다는 테뉴어를 땄는데 스스로 퇴사했습니다.
“네. 리포트 패턴이 정해져 있고, 오래 일하다 보니 너무 익숙해졌습니다. 일은 잘 맞았는데 좀 두려웠습니다. 2011년 입사해서 2019년에 퇴직했는데, 제가 마지막에 근무하던 때는 IT 기술이 많이 나올 때였거든요. 그걸 접목해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고, 변화를 꿈꿨다고나 할까요. 사실 OECD와 같은 연구기관들은 습성상 많이 보수적이고 변화를 선호하지 않거든요. 제가 마흔이 넘으면 계속 그곳에 있을 것 같았고 그러면 삶은 편하겠지만 그게 옳은 걸까 싶었습니다.”
“사업 구상하며 살아 있다 느껴”
정지은 대표의 고민에 주위 사람들은 모두 반대했다. 부모님은 물론, 지인들 또한 ‘남들은 들어가지 못해 난리인 곳인데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했다. 하지만 정 대표는 ‘아이디어만 갖고서도 사업성이 있을까’ 싶은 마음에 연세대에서 운영하는 예비창업 패키지의 문을 두드렸다. 사업 아이템은 그가 늘 해왔던 데이터 관련으로 법령 포털 사이트 웹사이트였다. 때마침 코로나19로 세계가 봉쇄에 나서면서 그는 계속 서울에 머물게 됐다. 연세대 예비창업 프로그램에서 멘토링을 했던 이택경 매쉬업엔젤스 대표가 그에게 투자를 약속하면서 정지은 대표의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
“투자를 해준다는 분이 막상 생기니까 법인도 만들어야 하고, 직원도 뽑아야 하고, 사무실도 얻어야 하고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OECD에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 본인도 뜻밖이었지만 OECD도 놀랐겠네요.
“오죽하면 프랑스 현지에서 직원이 서울로 날아왔겠어요(웃음). 익숙함을 선호하는 프랑스 사람들 입장에서는 제 퇴직의 이유가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는 거죠. 그런데 저는 사업 아이디어를 내고, 그걸 구상할 때 가슴이 뛰었고 그제야 살아 있다는 느낌이 막 들었거든요.”
― 탄탄대로인 직장을 버린다는 아쉬움은 없었습니까.
“별로 없었어요. 오히려 제가 앞으로 해나갈 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막 설레던데요(웃음). 아이디어만 있는 회사를 뭐를 믿고 투자해주신 건지 아직도 신기해요.”
그렇게 정지은 대표는 2020년 4월에 자기 종잣돈 0원에 개인 사비로 송파구 위례에 월 50만원짜리 사무실을 얻었다. 매출이 생기기 전까지 월급은 없이, 이희준 최고기술개발자(CTO), 디자이너와 셋이서 사업을 시작했다. ‘맨땅에 헤딩’이라는 표현 그대로 자료를 마구잡이로 모았다. 국회의원실을 일일이 뒤져서 법안을 다운받고, 정부부처 보도자료, 법령, 조례, 고시를 모조리 뒤졌다. 필요한 데이터가 없으면 국민 신문고에 쓰고, 정부부처에 질의서를 보내 요청했다. 여태까지 이런 자료를 요청한 사람이 없었기에 정부부처 사무관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서 ‘대체 너희는 누구기에 이런 자료를 요청하느냐’고 했을 정도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1년의 세월이 흐르고 흘렀다.
1호 고객은 외국계 회사와 전동 킥보드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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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의 디지털플랫폼 정부 실현 보고회 후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가 정지은 대표. |
“처음에는 저희 요청을 듣고 다들 황당해했죠(웃음). 그래도 다들 기존의 데이터를 새롭게 활용한다는 저희의 선의(善意)를 좋게 봐주셨는지 자료를 선뜻 제공했습니다. 세종시에 직접 자료 받으러 내려가기도 하고, 이미지 파일을 데이터로 바꾸고, 1년 반 동안 매일 그것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나 완전히 망했다’ 싶었습니다.”
― 왜요?
“‘고생은 대단히 했는데 우리가 만든 것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드는 겁니다. 제가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도 그걸 사용하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그래서 대단히 고민을 했는데 이왕 시작한 일이고, 또 이게 망하더라도 누군가 이런 시도를 했다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란다는 마음으로 계속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21년 12월에 코딧의 초기 모델이 나왔다. 1호 고객은 외국계 회사 A사와 전동 킥보드 회사인 B사였다. A사는 대형 로펌에 큰돈을 내고 국내 법안을 모니터링 중이었는데 세부적인 시행책들이 빨리 업데이트되지 않아 답답해하다가 코딧을 찾았다. B사는 진동 킥보드 법이 헬멧 착용 여부, 견인 여부, 속도 규제 등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는 터라 이런 법령 포털 서비스를 요구했다. 코딧 이용료로는 A사 500만원, B사 150만원. 회사를 만들고서 1년 반 만의 첫 매출이었다.
“그때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두 회사가 카드로 결제했는데 저희 컴퓨터 창에 ‘결제’라고 전표가 뜨는 거예요. 화면 창이 너무 신기해서 한동안 그냥 바라만 봤습니다. ‘내가 만든 서비스를 정말 세상에서 요구하는 사람이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그 이후 코딧은 고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알음알음으로 문의가 쇄도했다. 정지은 대표는 “마케팅으로 쓸 돈이 없었고 우리에게 문의하는 고객들을 일일이 콘택트해 미팅하고 서비스를 설명했다”고 말했다.
2020년 4월 창업, 2021년 12월에 첫 서비스, 100호 고객이 모인 것은 2022년 여름이었다.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업체가 코딧의 유료 회원이 됐다.
보유 데이터 1억 건
― 코딧에는 몇 개의 데이터가 있나요.
“1억 건 정도의 데이터가 있습니다. 23년 치 의안 및 국회의원 데이터, 12년 치 법령 관련 뉴스, 15년 치 정책 자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서버 이용료로만 1000만원 이상 지출하고 있습니다.”
― 이미지, 동영상을 서비스하는 것이 아닌데 서버 이용료가 어마어마하네요.
“인공지능(AI)을 돌리는 서버는 따로 있습니다. 정부의 서버가 한정돼 있어서 아주 오래된 기록들은 삭제하더라고요. 저희가 저장해놓지 않으면 과거 데이터를 찾기 어려울 것 같아서 예전 것까지 전부 모으고 있습니다. 정부부처와 협업을 하는 일도 늘었습니다. 부처와 함께 숨겨진 규제를 찾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기도 하고, 국책연구원과 정책데이터를 분석하는 리포트도 정기적으로 발간하고 있습니다.”
― 무형의 재산으로 매출을 창출하기는 참 어려운데, 우리나라는 정보 콘텐츠는 공짜라는 시각이 강하잖아요.
“맞습니다. 신문, 잡지, 책 등 텍스트 정보에 대해 선뜻 돈을 내려 하지 않는 문화가 있죠. 저희도 사이트를 만들면서 어떻게 해야 돈을 낼 값어치가 있는 사이트가 될까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사실 아무리 세상에 널려 있는 정보라도 찾고, 수집하고, 새롭게 변환하고, 쓸모 있게 구성하는 비용이 꽤 들잖아요. 그래서 고객들에게 우리 사이트를 경험하고 결정하기까지 시간을 준다는 차원에서 일정 기간 무료로 모니터링 플랫폼을 체험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 스타트업의 성공 조건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스타트업뿐 아니라 오래가는 회사는 고객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회사라고 봅니다. 뭔가 속이고, 부풀리고, 외형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것은 오래가지 못하더라고요. 그보다는 내실 있고, 정직한 회사가 롱런의 비결이라고 봅니다. 특히 스타트업은 투자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평판(評判) 비즈니스입니다. 신뢰를 주면서 차근차근 고객을 만족하게 하면 결국 소문이 나게 돼 있지만, 그런 과정을 스킵하고 외형에만 치중하거나, 무조건 투자를 많이 받아서 자본금을 늘린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처럼 100년, 200년 가는 기업을 만드는 첫걸음은 신뢰입니다.”
일본 법령 데이터 서비스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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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딧은 지난해 연말 일본 법령 데이터를 시범 출시해 화제가 됐다. |
“창업할 때부터 글로벌화를 꿈꿨습니다. 처음에는 동남아를 고려했는데 그 나라들은 뜻밖에 사람을 상대로 정보를 얻는 시스템이 많았습니다. 공무원들이 어떤 법령에 대해서 유권 해석을 해주는 식(式)으로 말이죠. 데이터 시스템이 아닌 곳은 좀 위험할 것 같아서 일본에 먼저 진출했습니다.”
― 일본의 법령 정보들이 많이 오픈돼 있던가요.
“일본의 참의원, 중의원의 경우 정보가 공개돼 있어서 많이 얻었고, 필요에 따라서는 일본 공무원에게 직접 요청했습니다. 저희가 하고자 하는 일을 설명하니까 선뜻 정보를 주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저희가 요즘 눈여겨보는 곳은 농수산물 대규모 생산과 거래가 이뤄지는 트릿지(Tridge)예요. 전 세계 주요 농축산물에 대한 작황과 가격 등 데이터를 분석해서 유통업체가 식품업체 등에 제공하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더라고요. 저희도 법안과 관련한 원스톱 서비스를 전 세계를 상대로 제공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일본 시장이 안정화되면 진출 국가를 넓혀서 유럽연합(EU), 미국 등 해외 주요국의 법령 데이터를 확보해 해외 각국의 법·규제·정책동향을 비교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 기본 정보를 국회, 정부로부터 받아야 하는데 애로사항은 없습니까.
“사실 정부가 법을 바꾸면 회사나 개인이 거기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그러기 위해서 저희 같은 업체에 공개할 수 있는 정보를 더 많이 오픈하기를 바라죠. 우리는 아직까지 입법 예고 외에 시행령 및 시행규칙과 관련된 구체적인 결정사항과 관련된 회의록이나 회의 일정 및 예정일 등은 알 수 없습니다.”
주 7일, 늦은 밤 일하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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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원팀인 직원들과 조촐하게 열었던 회사 창립 3주년 파티 장면이다. |
“직원 뽑는 게 가장 어렵습니다. 저희는 데이터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원천 소스에 대한 사업 리스크는 적은 편입니다. 간혹 저희에게 ‘데이터가 틀렸다’며 항의하는 고객이 있는데 저희 잘못이라기보다는 원본이 망가진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저희가 해당 법령 기관에 직접 문의해서 원본 소스를 바꾸어달라고 요청하고, 저희도 수정합니다. 이제 일이 많이 익숙해졌는데 여전히 직원을 구하고, 그들과 호흡을 맞추는 일은 어려워요.”
― 사업 오래 한 분들이 하는 인재 확보의 어려움을 벌써 느낀다니요.
“진짜요, 일은 사람이 한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니까요(웃음). 저희가 10명뿐이지만 굳건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원팀이기 때문입니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늦은 밤까지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거든요. 누가 강요해서 늦게까지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할 일이 남아 있고,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니까 그냥 하는 겁니다. 새로 뽑을 직원에게 무조건 우리 문화를 따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사람 구하는 게 가장 어려워요.”
― 스타트업을 취재해보니 재밌어서,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주 7일 일한다는 분들이 많데요.
“맞습니다. 저희 지난해 연말에는 단체로 일주일간 방학을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일하다 보면 번 아웃 올 것 같아서 단체로 쉬자고 했습니다. 휴가와는 별도로 방학을 가졌는데, 사무실에 나오지 않을 뿐이지 다들 집에서 일하고 있더라고요(웃음). 요즘도 저한테 ‘멀쩡한 직장 때려치우더니 고생을 사서 한다’며 쯧쯧거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어떡합니까.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세상에 새로운 무언가 하나는 꼭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게 코딧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