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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대중문화 속으로

영화 〈서울의 봄〉 다르게 읽기

〈서울의 봄〉 전두광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글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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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 공기에 따라 ‘의도된 오독’… 콘텐츠 제작 측·좌파 언론이 유도하는 그대로 대중심리가 따라가지는 않아
⊙ 야권, 〈서울의 봄〉 흥행하면서 군부 독재에 ‘검찰 독재’ 비견
⊙ 일각에서는 “이태신(장태완)=입만 산 선동가, 전두광(전두환)=판단력·결단력 가진 난세의 영웅”이라는 영화평도 나와
⊙ 2005년 MBC 〈제5공화국〉 방송 때에도 ‘전두환 신드롬’… 강한 리더십 열망하는 대중의 욕망 반영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서울의 봄〉
  한국 영화 〈서울의 봄〉이 어마어마한 흥행 세(勢)를 보여주고 있다. 11월 22일 개봉해 6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더니 12월 8일 현재 누적 관객 수 547만1694명까지 치솟은 상태다. 시간이 지날수록 입소문을 타 일일 흥행 수치가 높아지는 추세로 볼 때 ‘1000만 영화’ 등극도 먼 일은 아니라는 예상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만성(慢性)적 부진에 시달리던 한국 영화계로선 가뭄에 단비 같은 흥행이다.
 
  많이 알려졌다시피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일어난 ‘12·12 사태’를 다룬 영화다.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일정 부분 픽션을 가미했기 때문에 관련 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바꿨다.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과 명예훼손 소송 및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 등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예컨대 전두환 당시 국군보안사령관은 ‘전두광’,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은 ‘이태신’,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은 ‘정상호’, 노태우 제9보병사단장은 ‘노태건’이라는 식이다. 근래 〈남산의 부장들〉이나 〈헌트〉 등도 같은 방식을 취했다.
 
 
  〈서울의 봄〉 흥행에 근현대사 열공하는 MZ들
 
  일단 영화에 대한 평단의 반응은 호평 일색이다. ‘전두광’을 온전한 악(惡)으로 ‘이태신’은 완전무결한 선(善)으로 묘사해 명확한 선악(善惡) 구도를 성립시키려다 보니 만화적인 설정으로 치달은 경향은 있지만, 감정 과잉의 신파(新派)조 묘사로 억지 감흥을 끌어내려 하지 않고 가능한 한 건조하게 전개를 성실히 쌓아 올렸다는 평가다. 그래도 의도한 메시지, 또는 인상 자체는 잘 보전(保全)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전문지 《씨네21》에 기고된 영화평론가들의 한 줄 평으로도 잘 알 수 있다. “권력이 영원할 줄 아는 사악한 바보들에게”(박평식), “검사의 봄에 되돌아보는, 뱀의 욕망이 낳은 탄식과 울분의 밤”(이용철), “야만과 무능의 그 겨울밤에 대한 분노가 시종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펄펄 끓는다”(이동진) 등등.
 
  언론미디어 보도도 대개 이와 유사한 논조다. 특히 〈서울의 봄〉이 MZ 세대에서 인기 있다는 통계에 초점을 맞춰 작성된 보도들이 많다. 실제로 국내 최대 영화상영관 체인 CGV가 발표한 11월 22~28일 통계에 따르면 〈서울의 봄〉 성별 및 연령별 예매 분포에서 성별로 여성 50.4% 대 남성 49.6%, 연령별로는 30대 29.9%, 20대 26.2%, 40대 23% 순이었다. 이를 두고 〈[파고들기] MZ는 왜 ‘서울의 봄’ 전두광에 분노할까〉(노컷뉴스 2023년 11월 30일 자), 〈“인강 듣고 논문 찾아봐”… ‘서울의 봄’ 흥행에 근현대사 열공하는 MZ들〉(뉴스1 2023년 11월 29일 자) 등이 쏟아졌다.
 
 
  “군복 대신 검사의 옷을 입고…”
 
  상황이 이러니 정치권도 이 같은 문화 현상에 편승(便乘)하지 않을 리 없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2023년 11월 2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어제 영화 〈서울의 봄〉을 보았다”며 “군복 대신 검사의 옷을 입고, 총칼 대신 합법의 탈을 쓰고 휘두르는 검사의 칼춤을 본다. 군부 독재만 그러했던 것이 아니라 지금의 검찰 독재도 모습과 형태만 바뀌었을 뿐 언제든지 국민들은 탱크로 밀어버리면 되는 존재로 여기는 독재의 피, 독재적 발상은 음습한 곳에서 아니 때로는 대놓고 악의 쇠사슬처럼 이어져 가는 것은 아닐까 싶다”고 감상을 밝혔다. 그러면서 “전 국민이 봐야 할 영화”라고 추천하기도 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 〈서울의 봄〉 관련 기사를 공유하며 “육사 사조직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의 반란으로 ‘대한군국(軍國)’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단지 옛날 일이 아니”라며 “인물과 논리를 바꾸어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세력은 현재에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우파(右派) 언론미디어의 대응은 대부분 ‘팩트 체크’ 정도다. “영화와 실제를 혼동하지 말자”는 것이다. 〈공수부대 진격 홀로 막은 정우성… 영화 ‘서울의 봄’, 어디까지 진짜?〉(《조선일보》 2023년 11월 28일 자), 〈‘서울의 봄’을 틈타 ‘가짜뉴스’ 양산하는 친명계 의원들… 국민을 바보 취급하나〉(펜앤드마이크 2023년 11월 29일 자) 등. 이 외에 다른 의견을 제시하기 힘든 게 사실이기도 하다.
 

  이렇게만 보면 우파 진영 입장에서 또다시 ‘대중문화 리스크’가 닥친 것으로도 보인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불과 5개월여 앞두고 또다시 ‘선거용 영화’에 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이곳저곳에서 들린다. ‘선거용 영화’란 공직선거가 가까워올 때 생성되는 정치적 긴장과 관심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영화를 뜻한다. 모두가 민감할 시점이면 ‘이런 영화’, 즉 정치적 쟁점 또는 ‘편 가르기’와 관련된 영화가 나왔다는 점만으로 언론미디어의 관심을 모아 보도 횟수가 폭증(暴增)하고 정치에 몰입된 일부 대중이 알아서 온라인 공간을 휘젓고 다니며 홍보해주니 실제 들인 홍보비용의 몇 배 이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게 사실이다.
 
 
  ‘전두환은 타고난 인물’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예상 밖의 반응들도 나오고 있다. 다수 언론미디어에서 ‘밀고 있는’ 메시지와는 거리가 있는 반응들 말이다. 11월 25일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 MLB파크에 ‘뉴타입’이라는 이용자명으로 올라온 한 포스팅이 대표적인 예다. 제목은 ‘전두환은 진짜 타고난 인물임’.
 
  “〈서울의 봄〉 보니까 머리도 좋고 기민하며 빠른 판단 추진력, 배짱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 인물임엔 틀림없습니다. 광주학살 같은 건 천벌 받아 마땅하지만 12·12 군사반란 같은 건 그냥 돌이켜보면 하나의 역사였죠. 이건 어떤 의미로 누가 정의고 악이냐는 이분법 논리는 배제돼야 한다고 봅니다. 저런 머리로 정치를 진지하게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반대로 저런 능력들을 갖추고 있는 인간이 야망을 안 가질 수 없는 거죠.”
 
  해당 포스팅은 금세 화제를 모아 좌파 성향 이용자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또 다른 커뮤니티 사이트들, 클리앙이나 더쿠 등으로 계속 옮겨져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대부분 극히 비판적인 반응이었지만, 개중에는 일부 동조하는 반응도 뒤따랐다. 그리고 해당 시점 이후로 그런 동조 반응들은 국내 최대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에서 나름 쉽게 볼 수 있는 감상평이 되고 있다. 디시인사이드 ‘만화 갤러리’에 2023년 12월 2일 자로 올라온 포스팅도 이런 종류다.
 
  “이태신〈〈〈그냥 신념만 앞서지 능력은 x뿔도 없는 입만 산 선동가. 멍청한 자가 신념을 가지는 게 가장 무섭다는 말의 표본 그 자체
 
  전두광〈〈〈미친 판단력과 결단력으로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뒤집어낸 난세의 영웅. 말로만 떠드는 이상보단 현실적인 행동으로 승리를 거머쥔 혁명가
 
  좌파들이 대놓고 전두환 까려고 만든 영화인데 그 영화에서조차 무능한 이태신보다 전두광의 압도적인 능력이 더 돋보임ㅋㅋㅋㅋㅋㅋㅋㅋ”

 
 
  ‘전두환 신드롬’ 부른 MBC 〈제5공화국〉
 
MBC 드라마 〈제5공화국〉은 뜻하지 않게 ‘전두환 신드롬’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 외에도 수없이 많다. 특히 남성 이용자들이 많은 ‘야구 갤러리’ 등에서 그렇다. 그런데 전두환 전 대통령과 ‘12·12 사태’를 다룬 대중문화 콘텐츠를 놓고 이처럼 예상치 못한 반응이 일어나 화제를 모으는 건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5년 MBC 특별기획 주말드라마 〈제5공화국〉 방영 당시에도 사실상 같은 상황이 벌어졌었다. 당시 우파 진영에선 ‘노무현 정권이기에 공영방송 MBC에서 나올 수 있는 드라마’라며 ‘전두환 때리기’를 통해 ‘우파 때리기’ ‘한나라당 때리기’가 이어질 것이라 우려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정반대 반응이 일어났다. 당시 상황을 담은 《서울신문》 2005년 5월 13일 자 기사 〈전두환이 멋있다? ‘제5공화국’ 이덕화 연기 호평〉을 보자.
 
  〈현대사 관련 드라마는 항상 민감했다. ‘제5공화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연출진은 대법원 판결문에 따라 스토리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결문에 실린 권위에 기대서서 민감한 문제를 과감히 뚫고 나가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드라마가 방영도 되기 전에 신군부 인사 10여 명은 방영 중지를 요청했다. 대법원 판결문도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이 정도면 전두환이 악역이겠다 싶은데 정작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멋있다’거나 ‘카리스마 넘친다’는 호의적 평가가 나오고 있다. 회사원 이주환(33)씨는 “최규하, 정승화, 장태완 등은 상황 판단도 제대로 못 하는 우유부단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데 전두환은 명확한 목표의식과 강력한 행동력을 갖춘 인물로 묘사돼 있다”고 말했다.〉
 
 
  ‘전사모’ 생기기도
 
  이처럼 뜻밖의 반응이 일어나자 좌파 성향 언론미디어들은 일제히 이 같은 현상을 우려하고 나섰다. ‘민중의소리’ 2005년 6월 8일 자 기사 〈‘전두환 신드롬’은 없다〉를 보자.
 
  〈최근 《일간스포츠》에서 MBC 드라마 〈제5공화국〉의 인기에 힘입어 ‘전두환 신드롬’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드라마가 5공의 실상을 드러낸다는 당초의 취지와는 달리 드라마가 상영되면서 전 전 대통령의 카리스마가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 이 매체는 드라마를 통해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이란 전사모(cafe.daum.net/leejongpirl) 카페를 비롯한 팬카페까지 속속 생겨날 정도라고 보도했다. SBS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은 ‘제5공화국 신드롬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5공의 성격과 공화에 대한 격렬한 토론을 벌이기까지 했다. 《조선일보》도 7일 ‘MBC 제5공화국 실제 인물들은 지금 뭐 하나’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 드라마는 전두환 전 대통령 역을 맡은 이덕화의 ‘카리스마 연기’에 힘입어 ‘전사모(전두환을 사랑하는 모임)’가 결성되는 등 전두환 미화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혹자는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신군부 인사들의 압력이 가해진 탓에 미화(美化) 방향으로 흘렀다는 논리를 펴기도 했지만, 이 같은 의혹에 대해선 〈제5공화국〉 신호균 책임프로듀서부터가 “공식 기록에만 의존한 것이었다. 그걸 뒤엎을 만한 걸 (신군부 인사들이) 가져온 것도 아니고 해서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실제로도 그렇다. 〈제5공화국〉도 사실 〈서울의 봄〉과 마찬가지로 선악(善惡) 구분이 명확하게 설정된 콘텐츠였다. 음모와 아무 관계없는 장면에서도 전두환 전 대통령만 나왔다 하면 음산한 배경음악이 깔리고 음습한 밤길 장면들도 툭하면 등장한다. 반대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민주산악회 등이 등장하면 배경음악부터가 밝고 희망찬 곡조로 바뀐다. 전 전 대통령의 폭력성을 강조하기 위해 컵을 던지거나 화분을 발로 차는 등의 행동을 집어넣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영 내내 ‘전두환 미화’ 논란이 일어나 제작진은 끝없이 해명 인터뷰를 내보내야 했고, 전 전 대통령 역할을 맡은 배우 이덕화 등이 단체로 광주 망월동 5·18 국립묘지를 참배하기도 했다.
 
 
  ‘의도된 오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1979).
  그럼 〈제5공화국〉이나 〈서울의 봄〉 등에선 왜 이처럼 제작 측의 의도, 그리고 좌파 성향 언론미디어의 유도와 정반대 반응이 함께 일어나고 마는 것일까. 전두환 전 대통령에 호의적인 이들이라면 ‘아무리 천하의 악인으로 묘사하려 해도 어느 정도 팩트에 의존하기만 하면 그 능력과 카리스마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식의 의견을 펼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보다는 해당 콘텐츠가 등장하는 시점의 시대 공기(空氣)와 연관이 있고, 시대의 욕망 또는 시대가 바라는 비전과 더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보는 게 마땅하다. 이를 두고 ‘의도된 오독(誤讀)’이라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세계 대중문화의 메카 미국에서도 이 같은 ‘의도된 오독’은 심심찮게 발견된다. 예를 들어 〈성난 황소〉(1980), 〈좋은 친구들〉(1991) 등을 연출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평전(評傳) 《비열한 거리, 마틴 스코세이지: 영화로서의 삶》에 이를 보여주는 대목이 등장한다. 〈대부〉의 명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1979년 작 〈지옥의 묵시록〉을 보러 극장을 찾았을 때의 에피소드다.
 
  영화 중 베트남전을 무대로 일련의 미군 헬리콥터들이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을 틀어놓고 어느 베트남 마을을 무차별 폭격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해당 장면은 분명 전쟁의 광기(狂氣)와 그 속에서 윤리 도덕관이 무너져가는 병사들을 묘사한 것이었다. 그 직전에 헬리콥터들을 지휘하는 킬고어 중령(로버트 듀발 분)이 읊는 “난 아침에 맡는 네이팜탄 냄새를 사랑하지”라는 광기 어린 대사 또한 나온다. 그런데 극장 안의 관객들은 그 장면이 등장하자 바로 열광하면서 “모두 다 죽여버려!”라고 소리치고들 있더라는 것이다. 전쟁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도록 연출된 장면에서 오히려 통쾌감을 느끼고들 있더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위의 광경을 전달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본인의 1976년 작 영화 〈택시 드라이버〉를 통해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 바 있다. 주인공 트래비스 비클(로버트 드니로 분)은 베트남전 트라우마와 대도시 뉴욕에서의 고독과 고립 속에 서서히 이성(理性)을 잃어간다. 두발을 모히칸족처럼 자르고 대통령 선거 후보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뒤 타깃을 같은 지역의 사창가로 옮겨 그곳에서 매춘부로 일하는 어린 소녀를 구출한다는 명분으로 갑자기 쳐들어가 포주와 관련 인물들을 모조리 사살(射殺)한다. 그러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총알이 다 떨어져 실패하고 만다. 그런데 이 역시 관객들에겐 그 비극과 아이러니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오히려 주인공을 ‘밤의 영웅’처럼 바라보는 시각을 자아냈다는 것이다.
 
 
  애국가요로 오해받은 ‘미국에서 태어나’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미국에서 태어나’도 오독된 예술작품 중 하나이다.
  대중음악 분야에서도 같은 현상은 반복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의 록 가수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1984년에 발표한 노래 ‘미국에서 태어나(Born in the U.S.A.)’가 있다. 해당 노래는 발표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줄곧 ‘미국 찬가(讚歌)’처럼 여겨지곤 한다. 실제로 1984년 미국 대선 당시 공화당 측에선 이 노래를 유세(遊說)용으로 쓸 수 있을지 요청하고, 당시 대통령이던 로널드 레이건도 1984년 9월 19일 공개연설에서 “많은 미국 젊은이가 존경하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에게 미국의 미래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40년 가까이 지난 2020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에 감염된 뒤 이 노래를 들으며 회복했다고 언급한 바도 있다. 그렇게 ‘미국에서 태어나’는 미국에서 애국주의 우파의 상징과도 같은 노래가 된 상태지만, 실제 가사는 그런 위상과는 영 딴판이다.
 
  “다 죽어가는 깡촌에서 내팽개쳐지듯 태어나
  흠씬 두들겨 맞은 개 같은 삶을 살게 됐고
  인생 절반은 그 상처를 치유하는 데 쓰게 되지
  작은 동네 경범죄에 휘말리니 그들은 내게 소총을 쥐여주고는
  다른 나라로 가서 노랑이(아시아인)들을 죽이라고 하더군
  고향으로 돌아와 공장에 취직하려니 담당자가 ‘내겐 권한이 없네’
  재향군인회를 찾아가니 ‘젊은이, 이해가 안 되나?’
 
  미국에서 태어나 / 나는 미국에서 태어났어
  미국에서 태어나 / 나는 미국에서 잊힌 사람이야”

 
  애초에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열렬한 민주당원이다. 위 노래도 미국 저소득층의 비참한 삶과 그런 그들의 처지를 이용해 베트남전에 보내버리고는 책임지지 않는 미국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오히려 반미적(反美的)이라고까지 할 만하다. 그래서 레이건 대통령이 이 노래를 언급할 때도 스프링스틴은 “레이건은 아마 노래도 안 듣고 헛소리를 하는 것이다”고 조롱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할 때는 아예 “트럼프는 멍청한 나르시시스트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까지 비난한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 노래는 미국 애국주의 우파의 상징처럼 남아 있다. 미국인들도 가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닐 텐데 후렴으로 반복되는 “미국에서 태어나(Born in the U.S.A.)”가 워낙 인상적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역시 ‘의도된 오독’이 일어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시대의 공기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1976).
  ‘의도된 오독’은, 언급했듯, 해당 콘텐츠가 등장하는 시대의 공기와 연관이 있다. 앞서 〈지옥의 묵시록〉이나 〈택시 드라이버〉도 마찬가지다. 1970년대 중반은 미국에서 사회·문화적 반전(反轉)이 일어나던 시기다. 1970년대 초중반 석유 파동으로 경기(景氣) 후퇴가 일어나 경제 불황이 시작됐고, 워터게이트 사건이 벌어졌으며, 베트남전에서도 패배해 사이공이 함락(陷落)됐다. 세상이 이렇게 총체적으로 어두워지자 미국 대중은 대중문화에서 보다 밝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록키〉(1977), 〈스타워즈〉(1977), 〈슈퍼맨〉(1978), 그리고 디스코 음악의 시대가 열렸다.
 
  그러면서 전쟁과 자본주의 체제에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시각을 보유하던 영화들에서조차 미국 대중은 ‘의도된 오독’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소위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한 것이다. 그렇게 〈택시 드라이버〉에선 ‘밤의 영웅’을 발견하고, 〈지옥의 묵시록〉에선 ‘패배한 전쟁’을 잊고 미군이 무차별 폭격을 가하며 승리하는 현장을 발견해 열광했다는 얘기다.
 
  ‘미국에서 태어나(Born in the U.S.A.)’ 사연도 마찬가지다. 냉전(冷戰)의 공포가 극한까지 치달아 있던 1980년대 중반, 성조기(星條旗) 아래 모두가 똘똘 뭉쳐 자유세계를 지켜내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澎湃)해 있던 시절이기에 실제 가사가 지닌 자조적(自嘲的)이며 비관적인 내용은 의도적으로 무시해버리고 오직 “미국에서 태어나(Born in the U.S.A.)”라는 후렴만 반복해 따라 부르며 애국심을 다졌다는 해석이다. 시대의 욕망, 시대가 바라는 비전이 너무나도 간절한 시기라면 이렇듯 콘텐츠 의도가 한껏 굴절(屈折)돼 전달되기도 한다.
 
 
  남자들은 ‘난세의 영웅’을 찾는다?
 
  그리고 이런 식이라면 〈제5공화국〉 당시 일었던 ‘전두환 신드롬’도 어느 정도 이유를 가늠할 수 있다. 이런저런 정쟁(政爭)들로 늘 어지럽던 노무현 정권 시절, 정권의 강한 리더십과 추진력, 돌파력 등을 기대하는 대중심리가 만연해 있다 보니 아무리 제5공화국 인사들을 악(惡)의 무리로, 특히 전두환 전 대통령을 최악의 인간으로 묘사한다고 해도 그 안에서 대중은 자신들이 욕망하고 기대하던 부분만을 취하고 나머지는 무시해버리며 기꺼이 ‘의도된 오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한편, 또 다른 해석도 존재한다. 〈제5공화국〉이나 〈서울의 봄〉을 두고 전두환 전 대통령에 호의적인 반응들은 대부분 남성 이용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남초(男超) 커뮤니티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애초에 남성층은 여성층과는 사뭇 다른 문화 경험들을 통해 선악의 도식화(圖式化)된 구분에 연연하지 않고 강한 의지로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이른바 ‘난세(亂世)의 영웅’ 설정에 우호적이라는 해석이다. 이에 대해 〈제5공화국〉 방영 당시 오창석 문화평론가는 “《삼국지》나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 일본 역사 인물들을 다룬 일본 소설 《대망》 등을 탐독하며 자란 남성층에게 ‘난세의 영웅’은 오히려 친숙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라며 “극적 대립 구도에서 일반적으로 악역에 더 매력을 느끼는 심리와는 또 다른 부분이다. 공존과 원칙, 명분 등을 선호하는 여성층의 경향과는 크게 갈라지는 부분으로, 남성층에선 자기 의지를 관철해 실체화시키는 ‘주체성 자기(自己)’에 대한 애착과 동경이 강한 탓”이라 분석하기도 했다.
 

  물론 〈서울의 봄〉이 향후 ‘1000만 영화’로 가는 과정에서 대중적으로 어떤 심리를 자아내 어떤 식으로 그들 인식에 영향을 미치게 될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제5공화국〉과 〈서울의 봄〉은 같은 소재를 취했어도 결국은 다른 콘텐츠이고, 노무현 정권 시절의 공기와 지금의 그것도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정확히 같은 효과가 일어나리라 예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개봉 초반부터도 벌써 예상과는 다른 반응들이 스멀스멀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소한도 콘텐츠 제작 측과 좌파 언론미디어들이 유도하는 그대로 대중심리가 따라가지는 않으리라는 예상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대중심리란 그렇게 찰흙 주물럭거리듯 자기 뜻대로 간단히 소조(塑造)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복잡한 대중문화의 속성
 
  어찌 됐든 대중문화시장에는 이처럼 특이한 현상들이 많다. 인간 심리와 직결되는 분야이기에 인간 내면의 가지각색 부조리(不條理) 요소들이 투영돼 예상치 못한 반응들을 이끌어낸다. 이처럼 복잡한 대중문화 속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또 〈제5공화국〉이 방영 당시 일으켰던 ‘전두환 신드롬’을 기억하는지 못하는지, MBC 측에선 〈서울의 봄〉의 일대 흥행에 편승하려는 전략으로 〈제5공화국〉 재방영을 결정했다. “당시 재야인사들의 행보,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과 삼청교육대, 6·29선언까지 〈서울의 봄〉을 예·복습하기 좋은 작품”이라는 소개와 함께 말이다. 그렇게 〈제5공화국〉은 MBC 케이블채널 MBC 온(ON)에서 2023년 12월 2일부터 매주 토·일요일 4편씩 연속 방영되고 있다.
 
  ‘다시 돌아온 〈제5공화국〉’은 또 어떤 반응을 일으키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서울의 봄〉과 함께 이번에도 콘텐츠 자체 의도와는 관계없이 지금의 시대 공기를 가늠해보는 바로미터 역할을 할 것만은 분명하다. 진지하게 관찰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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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사33    (2023-12-21) 찬성 : 2   반대 : 0
글 잘보았습니다. 덕분에 지옥의 묵시록을 한번더 챙겨보게 되었습니다... 평론가님 말씀대로 저도 영화를 보고 걱정을 하였습니다. 그시대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아이들이 그 미친(?)영화를 보면서 혹시 역사를 영화로 배우면 어쩌지 하고 걱정도 하였습니다.. 참 한심하다고 하던 찰나 문갑식 형님이 소개를 해주던데 갑식이 형님이 이 논평을 보고 말씀하셨군요... ㅋㅋ... 어쨋든 제 걱정이 기우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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