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외교가에서 ‘작은 거인’이라는 별명
⊙ 문학 교수 꿈꿔… 모친 성화에 친 외무고시 1차 시험에서 수석
⊙ 사라 두테르테 다바오 시장, 봉봉 대통령 후보와 연대해 부통령 겸 교육부 장관 취임
柳鐘守
1962년생. 연세대 보건학 박사 / 美뉴욕플러싱 YMCA 이사장, 뉴욕가톨릭재단 부총장, 유엔재단 새천년개발사업 고문, 現 바레인왕국 국가보건의료최고위원회 고문, 남미개발은행(IDB) 남미국가 진단검사역량 강화사업 수석책임역, 서울의과학연구소(SCL) 국제사업 고문, 연세대 보건대학원 초빙교수
⊙ 문학 교수 꿈꿔… 모친 성화에 친 외무고시 1차 시험에서 수석
⊙ 사라 두테르테 다바오 시장, 봉봉 대통령 후보와 연대해 부통령 겸 교육부 장관 취임
柳鐘守
1962년생. 연세대 보건학 박사 / 美뉴욕플러싱 YMCA 이사장, 뉴욕가톨릭재단 부총장, 유엔재단 새천년개발사업 고문, 現 바레인왕국 국가보건의료최고위원회 고문, 남미개발은행(IDB) 남미국가 진단검사역량 강화사업 수석책임역, 서울의과학연구소(SCL) 국제사업 고문, 연세대 보건대학원 초빙교수
- 테레사 마리아 대사. 사진=뉴시스
지난 9월 13일, 주한 필리핀 대사 테레사 마리아(52)와의 점심 약속이 있었다. 하지만 직전 일정 탓에 30분 이상을 지각했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늦게 출발해서 미안하다’는 문자 메시지를 몇 개나 보냈다. 중남미 국가들의 검진 기술 향상 - 감염병 대응 시스템 강화 사업에 참여하는 나라들의 보건부 전문가들과의 화상회의가 예상보다 길어진 탓이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식당에 들어선 필자를 대사는 환한 미소로 맞았다.
“필리핀 출장 준비에 얼마나 바쁘세요?”
필자는 필리핀 관련 사업을 하나 진행하고 있다. 연세대 보건대학원-서울의과학연구소(SCL)와 함께 필리핀 바타안주 정부-주립병원과 검진 역량 강화 사업을 진행 중이다. 바타안주는 우리가 잘 아는 옛 클라크 미국 공군기지가 있던 지역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테레사 대사는 이 사업의 진전 상황을 꼼꼼히 챙겼다.
테레사 대사는 필리핀 외교부에서 재정 담당 차관을 지낸 후 독일 대사를 역임했다. 그 후 한국으로 부임했다. 자그마한 체구의 테레사 대사는 맑고 온화한 미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여성이다. 그녀는 한국 외교가에서 ‘작은 거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필자는 5박 6일간의 필리핀 출장을 마치고 귀국했다. 다음 날인 9월 23일 어김없이 테레사 대사가 안부전화를 해왔다. 저녁을 함께하자고 했다. 지난번 잘못이 있어서, 9월 29일 저녁 약속장소로 서둘러 달려갔지만, 가까스로 시각을 맞출 수 있었다. 그녀는 온화한 미소로, 숨을 헐떡거리는 나를 맞았다.
테레사 대사는 약속 시각 한 시간 전에 도착해 휴대폰으로 대사관 업무를 처리하면서 나를 기다렸다고 한다. 사람을 편하게 대하는 것이 외교관의 제일 큰 소양이라면, 그녀는 외교관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
어머니 성화에 바뀐 인생 행로
“저는 책벌레였습니다. 모범생이었고요. 국립필리핀대학에서 영미 문학과 필리핀 문학을 복수 전공했습니다. 학부를 마치고 모교의 시간강사로 발탁됐어요. 꽤 공부를 잘했다고 봐야겠죠. 캐나다 온타리오에 있는 퀸즈칼리지에서 석사를 마치고, 다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외국에 나가서 박사 학위를 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문학 교수를 할 생각이었죠.”
그런데 우연히 운명처럼 직업 외교관의 길로 들어섰다. 변호사인 아버지의 가까운 지인이 필리핀 최초의 여성 대사였다. 그녀가 테레사 대사의 아버지에게 “딸이 외교관이 되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대사의 어머니는 당장 다음 달에 있는 필리핀 외무고시를 경험 삼아 치르라고 재촉했다. 최소한 3~4년 공을 들인 외교관 지망자 가운데 0.1% 정도만 선택되는 외무고시를, 아무런 준비 없이 치른다는 게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모친의 성화에 등을 떠밀려, 외무고시 1차 시험에 응시했다.
테레사 대사는 시험 과목을 정확하게 기억했다. 국제법, 국제경제학, 세계사, 필리핀 역사, 영어, 제2 외국어.
시험은 쉽지 않았다. 책벌레로서 획득한 지식과 교양, 대학 시절부터 시사주간지 《타임(Time)》을 열독하며 얻은 세계 정치, 경제, 분쟁에 대한 이해들이 큰 도움이 됐다. 연습 삼아 치른 외무고시 1차 시험에서 수석으로 합격했다.
외무고시 2차 시험은 선배 외교관들이 지원자 한 명을 두고 폭풍처럼 질문을 쏟아붓는 압박 면접이었다. 3차 시험은 외교부 장관이 주최하는 디너 파티였다. 15명의 2차 시험 합격자들이 파트너를 동행해 파티에 참석했다.
복장의 품위와 세련미, 음식과 술을 먹는 태도, 다른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능력이 평가 항목이었다고 한다.
마지막 시험은 3분 즉흥발표. 면접 응시자들이 박스 안에 든 종이를 하나씩 뽑아서, 거기에 적힌 주제로 연설을 했다고 한다.
테레사 대사는 종이에 적힌 프랑스 예술가의 작품 세계에 대해 프랑스어로 설명했다. 불어에 능숙한 당시 외교장관이 최고 점수를 주었다.
15명의 2차 합격자 가운데 2명이 탈락했다. 호텔 연회장에서 열리는 간단한 면접이라고 생각했는데, 호락호락한 면접이 아니었다. 탈락한 2명 중 한 명은 데려온 파트너의 태도 불량으로, 한 명은 단상에서 입이 얼어 낙방했다.
남편은 외교부 차관
외교관은 국가를 대표해 국제회의에 참석하고, 즉흥 발언을 한다. 해외에 나가면 주재국에서 주최하는 각종 연회와 파티에 참석하는 일이 빈번하다. 한국 외교부에서 공공외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한 후배는 외교관의 애로에 대해 이런 얘기를 했다.
“적성에 안 맞으면 정말 하기 어려운 게 외교관입니다. 미얀마에 나가면 미얀마 정부 사람만 상대하는 게 아니라 그곳에 나온 수많은 나라의 외교관과 만나야 합니다. 저녁마다 파티니까,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굉장히 화려해 보이죠. 영어나 프랑스어가 어설프고, 현안에 대한 지식이 얕으면, 왕따 되기 십상입니다. 아무리 자기 나라가 힘이 세도 외교관 모임에 불러주지 않습니다. 매일 저녁 와인 잔 들고 서먹서먹한 분위기 속에서 얼굴 빛깔 다른 사람들과 두세 시간씩 대화를 해보십시오. 보통 고역이 아닙니다.”
필리핀에서는 지금도 외교부 장관이 주최하는 호텔 연회에서의 최종 면접이 외무고시 3차 시험이다. 한국 외무고시 3차 시험도 호텔 연회장에서 디너 파티로 실시한다면, 외교관 적격자를 가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국 사회의 여론은 어떨지 그것도 궁금하다.
테레사 대사는 부부 외교관이다.
남편은 외교부 차관으로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근무 중이고, 외동딸 몬테세라트는 엄마와 함께 서울 성북동 필리핀 대사 공관에서 살고 있다. 베를린대에 재학 중인데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 수업이 많아 서울 체류가 가능하다고 한다.
박정희와 마르코스
지난 6월 30일 필리핀의 정권이 바뀌었다. 새 대통령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2세(64).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의 아들로 흔히 ‘봉봉’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1965년부터 21년간 장기 집권했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1986년 민주화 항쟁으로 사임했다. 봉봉의 어머니는 3000여 개의 하이힐을 남기고 남편과 함께 하와이 망명길에 오른 이멜다 여사다.
부통령에는 아버지로부터 다바오 시장직을 물려받은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장녀 사라 두테르테(43)가 취임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의 삶의 궤적은 우리 박정희 대통령의 그것과 흡사하다. 두 사람 모두 1917년생이다. 박 대통령은 1961년 군사 쿠데타로 집권했고, 마르코스는 1965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돼 대통령이 됐다. 박 대통령은 19년간, 마르코스는 21년간 장기 집권했다.
박 대통령은 1972년 10월 유신으로 장기 집권의 길로 들어섰다. 마르코스는 1972년 계엄령을 선포하고 정적과 언론인들을 투옥시키면서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박 대통령의 딸 박근혜는 부친이 암살된 지 32년 후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마르코스 대통령의 아들 봉봉은 부친이 민주화 시위로 물러난 지 36년 만에 필리핀 대통령으로 선임됐다.
어찌 됐건 필자는 필리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 푹푹 찌는 무더위를 무릅쓰고…. 취임식장에서 6년간 필리핀 대통령을 지낸 두테르테를 직접 볼 수 있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 하면 떠오르는 것은, 마약 사범에 대한 거침없는 처벌이다. 영장 없이 체포하는 것은 물론 즉결 처분이 이뤄지기도 했다. 국제사회가 경악했다.
“범죄에 대한 대응 역시 정의로워야 한다”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충고에 두테르테는 “지옥에나 가라”고 대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과 2020년 미국으로 초청하자 “나는 미국을 방문하지 않는다. 갈 일이 없다”며 거절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늘 내 친구”라고 주장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2021년 의회에서의 마지막 국정 연설에서 “나는 미국을 방문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미국을 방문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테레사 대사에게 여러모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던 두테르테 대통령의 근황을 물었다.
“어제 나온 여론조사에서 필리핀 사람들의 81.4%가 ‘두테르테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잘 수행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현직에 있을 때 국정수행 지지율이 매우 높았습니다.”
― 이유가 뭔가요.
“두테르테 대통령은 민다나오 다바오 시장 시절부터 선이 굵은 정치인이었습니다. ‘나는 나, 두테르테다’라는 모습으로 국민의 마음을 훔쳤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숨기지 않고, 자신감을 가진 정치인이었기에, 필리핀 국민들에게 그 인기는 폭발적이었습니다. 필리핀 인구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민다나오 지역의 영주 격인 분입니다. 대중의 마음을 읽고, 움직이는 노련한 정치인입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다바오 검찰청 검사 시절부터 ‘범죄와의 전쟁’으로 이름을 날렸다. 1988년 다바오 시장에 선출된 후 7차례 22년간 재임했다. 사병(私兵)부대인 ‘다바오 척살대’를 동원해 무법천지이던 다바오를 범죄청정 도시로 만들었다. 이 과정이 국제사회의 윤리 기준과 일치했는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 6년 재임기간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요.
“무엇보다 범죄와의 전쟁에서 큰 성과를 냈습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지방도로와 교량, 공항과 교통시설을 가장 많이 건설했습니다.”
봉봉 신임 대통령, 부모와 이미지 분리 성공
봉봉 신임 대통령은 1986년 부모와 함께 하와이로 망명을 떠났다. 1989년 아버지의 사망 후 필리핀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고향인 필리핀 북부 일로코스노르테주에서 주지사와 상원의원을 지냈다.
지난 필리핀 대선 때 경쟁 후보들은 독재자의 아들 프레임을 씌워 봉봉을 맹공격했다
“봉봉 후보는 부모가 축재한 재산을 국가에 모두 반환해야 한다. 그래야만 대통령 선거 출마 자격이 있다. 봉봉 후보는 부모의 부정부패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을 져라.”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시대를 기억하지 못하는 2030세대 상당수는 봉봉 마르코스를 필리핀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강력한 리더로 받아들였다. 마르코스-두테르테 팀은 지난 5월 9일 대선 투표에서 60% 이상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승리했다.
필리핀은 한국 인구의 2배가 넘는 1 억 명 이상의 인구를 갖고 있다. 전체 인구의 연령은 23.4세. 한국(43.4세)보다 무척 젊은 나라다. 젊은 층의 표심이 대선 결과를 갈랐다고 보는 게 타당한 분석으로 생각된다. 필리핀의 젊은이들은 부패 척결, 경제 부흥, 일자리 창출, 의료보장제도 확충을 원하고 있다.
필자는 필리핀 대선 직후 수도 마닐라와 북부 루손 지역을 방문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젊은이들이 봉봉 마르코스의 사진과 필리핀 국기가 인쇄된 검은 셔츠를 입고 거리를 질주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레게 음악의 제왕으로 불리는 밥 말리라는 자메이카 출신 가수가 있다. 봉봉 티셔츠는 밥 말리를 추모하는 미국의 젊은이들이 입고 다니는 셔츠의 디자인과 컬러가 유사했다. 대통령 당선자가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받들어지고, 퇴임 대통령이 80%의 지지율을 받고 있는 것이 필리핀의 정치 수준이고, 정치 문화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전직 대통령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불행한 인생 말년을 맞는다. 정치 발전의 징표인지,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현상인지 판단이 쉽게 서지 않는다.
봉봉 대통령은 영국 옥스퍼드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공부했다. 지난 대선에서 소셜 미디어를 전략적으로 사용하여 독재자와 사치의 여왕으로 불린 부모의 이미지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봉봉은 초대형 인플루언서다. 30세 미만들이 애용하는 틱톡에 120만 명, 유튜브에 200만 명, 페이스북에 500만 명이 넘는 팔로우들이 있다. 봉봉 마르코스의 메시지,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새로운 필리핀을 건설하자’는 호소는 언론 미디어의 중계 없이 곧바로 젊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남부 민다나오-북부 루손 정치 엘리트 집안의 결합
필리핀 대선에서는 대통령 후보와 부통령 후보가 각각 선거를 치른다. 대통령 후보 한 사람에게만 표를 던지는 미국과 다르다.
대통령 후보와 부통령 후보는 선거전에서 자신의 당선에 도움이 될 후보를 골라 연합전선을 구축한다. 사라 두테르테(43) 다바오 시장은 대통령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봉봉 마르코스 대통령 후보와 연대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중립을 선언했지만, 두테르테의 측근들은 사라 두테르테와 봉봉 마르코스 지지를 공식화했다.
남부 민다나오 섬을 기반으로 하는 두테르테 집안과 북부 루손 섬을 기반으로 한 마르크스 집안의 정치적 정략결혼이 이뤄진 것이다. 6년 후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이 대통령에 도전하는 기반이 마련된 것으로, 필리핀 언론은 평가하고 있다.
사라 부통령은 취임식을 6월 30일이 아닌 6월 19일 자신이 시장으로 재직하고, 아버지가 시장을 지낸 다바오시에서 부친 두테르테 대통령과 봉봉 마르코스 대통령 당선인이 참석한 가운데 가졌다. 필리핀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거주하는 민다나오 지역의 맹주로서, 대통령의 그림자가 아니라 역동적인 부통령 활동을 전개하겠다는 의지를 표시한 것이다. 사라 부통령은 교육부 장관도 겸직하게 됐다.
두테르테 집안의 강력한 개혁 DNA로 교육개혁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겠다는 각오다.
필자가 9월 중순 필리핀 출장 때 만난 죠에트 갈시아 바타안 주지사는 “사라 부통령이 교육부 장관으로서 야심 찬 사업을 벌써 시작했다”고 했다.
“공립학교 교사들의 연봉을 사립학교 교사 수준으로 인상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공공교사 노조의 강력한 지원으로 다른 교육 개혁안 추진이 힘을 받을 것 같다. 공립학교 교사 임금 인상은 수년간 논의됐지만, 예산 확보가 관건이었다. 사라 부통령이 팔 걷고 나선다면 교육예산 증액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사라의 정치력과 실행력이 아버지처럼 탁월할지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봉봉 대통령이 직접 당부한 3가지
테레사 대사는 지난 여름 휴가 당시 봉봉 대통령의 호출에 귀국해 봉봉 대통령을 만났다. 대통령과의 공식 면담이라기보다는 사적인 만남이었다.
봉봉 대통령은 테레사 대사 부부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가까운 장래에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한국 정부에 전하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3가지 분야에서 한국과 성과 있는 협력이 이뤄졌으면 한다는 뜻을 밝혔다.
― 봉봉 대통령께서 지시한 세 가지 분야의 협력은 어떤 것인가요.
“첫 번째는 핵발전 신성장 대체 에너지 개발 분야입니다. 대한민국의 원전(原電)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안전하고 효율성이 입증돼 있습니다. 우리 필리핀은 오염 없는 그린 에너지를 국가의 성장 동력으로 삼으려 합니다. 원전은 가장 효율적인 녹색 에너지원입니다. 필리핀 정부는 지난 3월 원전 건설 재개를 결정했습니다.
두 번째는 한국이 생산하는 경비정과 소형 전투기 분야의 협력입니다. 한국산 경비정과 훈련기는 품질이 좋고, 가격 경쟁력이 있습니다. 필리핀의 바다와 영토를 경비하고, 국방력을 증강하는 데 도움이 될 테니 잘 챙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농업 협력입니다. 농업 생산성 향상과 식량 안보의 확보를 위해, 한국과의 협력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봉봉 대통령은 필리핀 경제에서 농업과 수산업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감안해 농수산부 장관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원전만이 에너지 수요 감당 가능”
대한민국 정부는 지난 5 년 동안 핵발전소의 문을 닫고 탈원전에 전념해왔다. 그런데 필리핀 신임 대통령은 한국과의 핵발전 기술 협력으로 필리핀의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고 싶단다. 돌아가신 김동길 박사님의 표현처럼 ‘이게 뭡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리핀에서는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1984년 바타안주 지역에 핵발전소를 건설했다. 완공하고도 1986년에 발생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로 가동을 하지 못했다. 원전 건설에 만연했던 부패스캔들과 환경단체의 극력 반대는 가동 포기로 이어졌다.
방치했던 핵발전소를 가동하고, 한발 더 나아가 친환경적인 새 원전을 건설하는 데 한국의 협력을 구한다는 것은 우리로서도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바타안 지역은 지진이 자주 발생하고, 휴양 시설이 많아서 핵발전소 가동에 반대하는 주민 여론이 만만치 않다. 한전과 사업 재개를 위한 MOU까지 체결했지만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봉봉 대통령은 원자력 발전만이 필리핀의 에너지 수요를 감당할 수 있고, 한국의 원자력 기술이 필리핀의 안전한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실행해낼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필리핀 마닐라 인근에 있는 바타안주 죠에트 갈시아 주지사와 저녁을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출장 전 테레사 대사와의 오찬에서 전해 들은 바타안주의 휴면 중인 핵발전소 재가동 문제에 대해 주지사의 의견을 물었다.
주지사의 입장은 필리핀 중앙정부의 계획과 결이 약간 달랐다.
“한국 기술이 세계 최고이고 지진 상황에서도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바타안주의 주민들은 우리 섬이 관광과 첨단기술 산업단지로 부가가치를 높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바타안은 작은 섬 지역입니다. 지진이 자주 발생해서, 주민들은 핵발전소를 바타안주에 두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필리핀이 저개발의 늪에 빠진 이유
인구 100만 명이 채 안 되는 바타안주는 필리핀에서 가장 개인 소득이 높은 지역이다. 거대한 미군기지가 있던 클락과 수빅이 위치해 있고, 마닐라와도 인접해 있다. 수도권의 중산층이 즐겨 찾는 고급 리조트와 한국에도 꽤 알려진 골프장이 많이 위치해 있다.
하원의원이었던 죠에트 갈시아 주지사는 친형 알버트 갈시아 직전 주지사와 자리를 맞바꿨다. 자신이 하원의원 임기 제한에 걸리자 형이 하원의원으로 가고, 자신은 주지사에 출마해 당선됐다. 작고한 형제의 부친 또한 주지사를 역임했고, 그 아들과 딸들이 주지사, 하원의원, 시장 직을 주고받고 있다.
갈시아 집안의 정치적인 영향력은 바타안주에서는 절대적이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에 경제 원조를 해주던 ‘막사이사이(Ramon Magsaysay· 1907~1957년)’의 필리핀이 오늘 같은 저개발의 늪에 빠진 이유로 많은 이가 ‘토지개혁’의 미흡을 꼽는다. 국제적인 상식이다. 예닐곱 개의 대가문이 필리핀 전역의 땅을 나눠 갖고 있다.
마르코스 대통령의 정적(政敵)으로, 마르코스 정권에 살해된 니노이 아키노. 그의 부인인 코라손 아키노는1986년 마르코스 대통령을 쫓아내고 대통령에 취임했다. 우리에게는 아키노 부부가 ‘민주 투사’로 각인돼 있지만, 아키노 집안은 필리핀을 나눠 갖고 있는 빅 패밀리의 하나다. 필리핀의 정치와 역사를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그렇다는 얘기다.
‘한국의 선진 건강보험 시스템을 배우고 싶다’
죠에트 갈시아 주지사는 하원의원 시절인 2015년 서울로 필자를 찾아왔다.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일하는 자신의 친구를 통해 필자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당시 필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대외협력단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한국의 선진 건강보험 시스템을 배우고 싶다’는 게 그의 용건이었다.
대한민국의 건강보험 시스템은 세계 최고다.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 교민들(미국 영주권 소지자)이 치과 치료를 위해, 암 치료를 위해 한국을 찾는다. 경상도 산골에 사는 농민 류종수씨가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의 명의에게서 진찰을 받는 일을,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 국민 대다수가 큰 부담 느끼지 않고, 동네 병원에서 CT나 MRI 찍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한국 건강보험이 세계 최고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한때 뜬금없이 대한민국을 ‘헬조선’으로 부르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대한민국이 지옥이라고? 외국 한 번 못 나가본 바보들이,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싶은 못난이들이 떠들어댄 망발이었다.
최근 미국의 유력 언론이 한국을 세계 6대 강국으로 평가했다. 우리가 프랑스와 일본을 국력에서 앞질렀다는 엄청난 낭보를, 한국 언론 어디에서도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다.
지난 5월 바타안 주지사가 된 죠에트 갈시아는 지난 9월 필자를 필리핀으로 초청했다. 그러고 ‘바타안주의 보건의료 국제고문이 돼달라’고 요청했다. 그의 진지한 제안을 그 자리에서 수락했다. 바타안주 의료보건 시스템을 전면 디지털화하고, 주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경감시키고 싶다는 그의 계획을 힘껏 도울 생각이다.
필자는 급한 대로 연세대 보건대학원과 서울의과학연구소가 남미개발은행과 진행하는 감염병 예방 시스템 강화 프로젝트에 필리핀이 참여할 것을 권했다.
“젊은 필리핀 일꾼들을 챙기는 게 또 하나의 보람”
“2022년 9월 기준으로 약 5만168명의 필리핀인들이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1만1000쌍의 필리핀-한국 국제결혼 부부가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대사로서 한국에 살고 있는 필리핀인들을 누이처럼 자상하게 돌보고 싶어요. 제 시간이 많이 부족하고, 대사관 인력이 부족한 게 안타까워요.
도시와 농촌의 일터에서 한국인들이 우리 젊은이들을 잘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대다수의 주한 필리핀인은 잘 살고 있어요. 필리핀인들은 매사 긍정적이고, 정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형제자매처럼 잘 챙겨주세요. 한국도 정을 나누고, 자식을 위하여 덕을 쌓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이지 않습니까?”
테레사 대사는 자신이 말한 대로, 대사관저의 직원을 형제자매처럼 돌보고 있다. 서울 종각에 위치한 하나로검진센터에서 직원들에게 내가 직접 들은 이야기다.
하나로검진센터의 자매기관인 서울의과학연구소에 근무하는 네팔 출신 보건학 박사 후보자 프라카쉬 연구원의 얘기다.
“대사관저에서 살림을 챙기는 필리핀 여성이 토요일 아침 8시에 정밀검진을 받으러 왔을 때 테레사 대사가 딸과 함께 동행해서 등록과 검사 과정을 도와주었어요. 직원들이 전문의 진료를 할 때 같이 오시기도 합니다. 대사님이 이렇게 직원들을 살뜰하게 돌본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테레사 대사는 1년 8개월 뒤에 한국을 떠날 예정이다. 그녀는 2024년 필리핀 수교 75주년 행사를 대사로서 치르고 싶다고 했다.
“필리핀과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함께 피를 흘렸습니다. 한국전쟁 때 필리핀은 7500명의 병력을 파견했습니다. 필리핀은 그때 독립한 지 4년밖에 되지 않은 신생국이었습니다. 많은 필리핀 청년이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하여 소중한 목숨을 바쳤습니다.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형제의 나라입니다. 한국과 필리핀의 활발한 경제-산업 협력을 희망합니다. 한국과 필리핀 간의 자유무역협정(FTA)이 곧 체결될 겁니다. FTA 체결을 성공적으로 완료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테레사 대사는 고상하고 정확한 영어를 구사했다. 그녀의 음성은 단아했다. 인문학을 통해 얻은 세상에 대한 넓은 이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법률 전문가로서의 정확함, 사람에 대한 무한 배려가 그녀의 말과 몸짓에 적절하게 통합돼 있었다.
아담한 체구를 가진 외교가의 거인 테레사 대사에게, 그녀의 조국 필리핀은 더 큰 임무를 준비하고 있지 않을까?⊙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식당에 들어선 필자를 대사는 환한 미소로 맞았다.
“필리핀 출장 준비에 얼마나 바쁘세요?”
필자는 필리핀 관련 사업을 하나 진행하고 있다. 연세대 보건대학원-서울의과학연구소(SCL)와 함께 필리핀 바타안주 정부-주립병원과 검진 역량 강화 사업을 진행 중이다. 바타안주는 우리가 잘 아는 옛 클라크 미국 공군기지가 있던 지역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테레사 대사는 이 사업의 진전 상황을 꼼꼼히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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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독필리핀 대사 시절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와 함께. 마리아 대사는 주독대사, 외교부 차관 등을 지냈다. |
이후 필자는 5박 6일간의 필리핀 출장을 마치고 귀국했다. 다음 날인 9월 23일 어김없이 테레사 대사가 안부전화를 해왔다. 저녁을 함께하자고 했다. 지난번 잘못이 있어서, 9월 29일 저녁 약속장소로 서둘러 달려갔지만, 가까스로 시각을 맞출 수 있었다. 그녀는 온화한 미소로, 숨을 헐떡거리는 나를 맞았다.
테레사 대사는 약속 시각 한 시간 전에 도착해 휴대폰으로 대사관 업무를 처리하면서 나를 기다렸다고 한다. 사람을 편하게 대하는 것이 외교관의 제일 큰 소양이라면, 그녀는 외교관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
어머니 성화에 바뀐 인생 행로
“저는 책벌레였습니다. 모범생이었고요. 국립필리핀대학에서 영미 문학과 필리핀 문학을 복수 전공했습니다. 학부를 마치고 모교의 시간강사로 발탁됐어요. 꽤 공부를 잘했다고 봐야겠죠. 캐나다 온타리오에 있는 퀸즈칼리지에서 석사를 마치고, 다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외국에 나가서 박사 학위를 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문학 교수를 할 생각이었죠.”
그런데 우연히 운명처럼 직업 외교관의 길로 들어섰다. 변호사인 아버지의 가까운 지인이 필리핀 최초의 여성 대사였다. 그녀가 테레사 대사의 아버지에게 “딸이 외교관이 되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대사의 어머니는 당장 다음 달에 있는 필리핀 외무고시를 경험 삼아 치르라고 재촉했다. 최소한 3~4년 공을 들인 외교관 지망자 가운데 0.1% 정도만 선택되는 외무고시를, 아무런 준비 없이 치른다는 게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모친의 성화에 등을 떠밀려, 외무고시 1차 시험에 응시했다.
테레사 대사는 시험 과목을 정확하게 기억했다. 국제법, 국제경제학, 세계사, 필리핀 역사, 영어, 제2 외국어.
시험은 쉽지 않았다. 책벌레로서 획득한 지식과 교양, 대학 시절부터 시사주간지 《타임(Time)》을 열독하며 얻은 세계 정치, 경제, 분쟁에 대한 이해들이 큰 도움이 됐다. 연습 삼아 치른 외무고시 1차 시험에서 수석으로 합격했다.
외무고시 2차 시험은 선배 외교관들이 지원자 한 명을 두고 폭풍처럼 질문을 쏟아붓는 압박 면접이었다. 3차 시험은 외교부 장관이 주최하는 디너 파티였다. 15명의 2차 시험 합격자들이 파트너를 동행해 파티에 참석했다.
복장의 품위와 세련미, 음식과 술을 먹는 태도, 다른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능력이 평가 항목이었다고 한다.
마지막 시험은 3분 즉흥발표. 면접 응시자들이 박스 안에 든 종이를 하나씩 뽑아서, 거기에 적힌 주제로 연설을 했다고 한다.
테레사 대사는 종이에 적힌 프랑스 예술가의 작품 세계에 대해 프랑스어로 설명했다. 불어에 능숙한 당시 외교장관이 최고 점수를 주었다.
15명의 2차 합격자 가운데 2명이 탈락했다. 호텔 연회장에서 열리는 간단한 면접이라고 생각했는데, 호락호락한 면접이 아니었다. 탈락한 2명 중 한 명은 데려온 파트너의 태도 불량으로, 한 명은 단상에서 입이 얼어 낙방했다.
남편은 외교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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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대사의 가족들. 남편 에두아르도 드 베가는 현직 필리핀 외교부 차관이다. |
“적성에 안 맞으면 정말 하기 어려운 게 외교관입니다. 미얀마에 나가면 미얀마 정부 사람만 상대하는 게 아니라 그곳에 나온 수많은 나라의 외교관과 만나야 합니다. 저녁마다 파티니까,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굉장히 화려해 보이죠. 영어나 프랑스어가 어설프고, 현안에 대한 지식이 얕으면, 왕따 되기 십상입니다. 아무리 자기 나라가 힘이 세도 외교관 모임에 불러주지 않습니다. 매일 저녁 와인 잔 들고 서먹서먹한 분위기 속에서 얼굴 빛깔 다른 사람들과 두세 시간씩 대화를 해보십시오. 보통 고역이 아닙니다.”
필리핀에서는 지금도 외교부 장관이 주최하는 호텔 연회에서의 최종 면접이 외무고시 3차 시험이다. 한국 외무고시 3차 시험도 호텔 연회장에서 디너 파티로 실시한다면, 외교관 적격자를 가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국 사회의 여론은 어떨지 그것도 궁금하다.
테레사 대사는 부부 외교관이다.
남편은 외교부 차관으로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근무 중이고, 외동딸 몬테세라트는 엄마와 함께 서울 성북동 필리핀 대사 공관에서 살고 있다. 베를린대에 재학 중인데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 수업이 많아 서울 체류가 가능하다고 한다.
박정희와 마르코스
지난 6월 30일 필리핀의 정권이 바뀌었다. 새 대통령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2세(64).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의 아들로 흔히 ‘봉봉’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1965년부터 21년간 장기 집권했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1986년 민주화 항쟁으로 사임했다. 봉봉의 어머니는 3000여 개의 하이힐을 남기고 남편과 함께 하와이 망명길에 오른 이멜다 여사다.
부통령에는 아버지로부터 다바오 시장직을 물려받은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장녀 사라 두테르테(43)가 취임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의 삶의 궤적은 우리 박정희 대통령의 그것과 흡사하다. 두 사람 모두 1917년생이다. 박 대통령은 1961년 군사 쿠데타로 집권했고, 마르코스는 1965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돼 대통령이 됐다. 박 대통령은 19년간, 마르코스는 21년간 장기 집권했다.
박 대통령은 1972년 10월 유신으로 장기 집권의 길로 들어섰다. 마르코스는 1972년 계엄령을 선포하고 정적과 언론인들을 투옥시키면서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박 대통령의 딸 박근혜는 부친이 암살된 지 32년 후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마르코스 대통령의 아들 봉봉은 부친이 민주화 시위로 물러난 지 36년 만에 필리핀 대통령으로 선임됐다.
어찌 됐건 필자는 필리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 푹푹 찌는 무더위를 무릅쓰고…. 취임식장에서 6년간 필리핀 대통령을 지낸 두테르테를 직접 볼 수 있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 하면 떠오르는 것은, 마약 사범에 대한 거침없는 처벌이다. 영장 없이 체포하는 것은 물론 즉결 처분이 이뤄지기도 했다. 국제사회가 경악했다.
“범죄에 대한 대응 역시 정의로워야 한다”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충고에 두테르테는 “지옥에나 가라”고 대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과 2020년 미국으로 초청하자 “나는 미국을 방문하지 않는다. 갈 일이 없다”며 거절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늘 내 친구”라고 주장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2021년 의회에서의 마지막 국정 연설에서 “나는 미국을 방문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미국을 방문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테레사 대사에게 여러모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던 두테르테 대통령의 근황을 물었다.
“어제 나온 여론조사에서 필리핀 사람들의 81.4%가 ‘두테르테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잘 수행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현직에 있을 때 국정수행 지지율이 매우 높았습니다.”
― 이유가 뭔가요.
“두테르테 대통령은 민다나오 다바오 시장 시절부터 선이 굵은 정치인이었습니다. ‘나는 나, 두테르테다’라는 모습으로 국민의 마음을 훔쳤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숨기지 않고, 자신감을 가진 정치인이었기에, 필리핀 국민들에게 그 인기는 폭발적이었습니다. 필리핀 인구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민다나오 지역의 영주 격인 분입니다. 대중의 마음을 읽고, 움직이는 노련한 정치인입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다바오 검찰청 검사 시절부터 ‘범죄와의 전쟁’으로 이름을 날렸다. 1988년 다바오 시장에 선출된 후 7차례 22년간 재임했다. 사병(私兵)부대인 ‘다바오 척살대’를 동원해 무법천지이던 다바오를 범죄청정 도시로 만들었다. 이 과정이 국제사회의 윤리 기준과 일치했는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 6년 재임기간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요.
“무엇보다 범죄와의 전쟁에서 큰 성과를 냈습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지방도로와 교량, 공항과 교통시설을 가장 많이 건설했습니다.”
봉봉 신임 대통령은 1986년 부모와 함께 하와이로 망명을 떠났다. 1989년 아버지의 사망 후 필리핀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고향인 필리핀 북부 일로코스노르테주에서 주지사와 상원의원을 지냈다.
지난 필리핀 대선 때 경쟁 후보들은 독재자의 아들 프레임을 씌워 봉봉을 맹공격했다
“봉봉 후보는 부모가 축재한 재산을 국가에 모두 반환해야 한다. 그래야만 대통령 선거 출마 자격이 있다. 봉봉 후보는 부모의 부정부패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을 져라.”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시대를 기억하지 못하는 2030세대 상당수는 봉봉 마르코스를 필리핀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강력한 리더로 받아들였다. 마르코스-두테르테 팀은 지난 5월 9일 대선 투표에서 60% 이상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승리했다.
필리핀은 한국 인구의 2배가 넘는 1 억 명 이상의 인구를 갖고 있다. 전체 인구의 연령은 23.4세. 한국(43.4세)보다 무척 젊은 나라다. 젊은 층의 표심이 대선 결과를 갈랐다고 보는 게 타당한 분석으로 생각된다. 필리핀의 젊은이들은 부패 척결, 경제 부흥, 일자리 창출, 의료보장제도 확충을 원하고 있다.
필자는 필리핀 대선 직후 수도 마닐라와 북부 루손 지역을 방문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젊은이들이 봉봉 마르코스의 사진과 필리핀 국기가 인쇄된 검은 셔츠를 입고 거리를 질주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레게 음악의 제왕으로 불리는 밥 말리라는 자메이카 출신 가수가 있다. 봉봉 티셔츠는 밥 말리를 추모하는 미국의 젊은이들이 입고 다니는 셔츠의 디자인과 컬러가 유사했다. 대통령 당선자가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받들어지고, 퇴임 대통령이 80%의 지지율을 받고 있는 것이 필리핀의 정치 수준이고, 정치 문화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전직 대통령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불행한 인생 말년을 맞는다. 정치 발전의 징표인지,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현상인지 판단이 쉽게 서지 않는다.
봉봉 대통령은 영국 옥스퍼드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공부했다. 지난 대선에서 소셜 미디어를 전략적으로 사용하여 독재자와 사치의 여왕으로 불린 부모의 이미지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봉봉은 초대형 인플루언서다. 30세 미만들이 애용하는 틱톡에 120만 명, 유튜브에 200만 명, 페이스북에 500만 명이 넘는 팔로우들이 있다. 봉봉 마르코스의 메시지,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새로운 필리핀을 건설하자’는 호소는 언론 미디어의 중계 없이 곧바로 젊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남부 민다나오-북부 루손 정치 엘리트 집안의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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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30일 대통령 취임식에서의 마르코스 대통령과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 각각 북부와 남부의 유력 정치 가문을 대표한다. 사진=AP/뉴시스 |
대통령 후보와 부통령 후보는 선거전에서 자신의 당선에 도움이 될 후보를 골라 연합전선을 구축한다. 사라 두테르테(43) 다바오 시장은 대통령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봉봉 마르코스 대통령 후보와 연대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중립을 선언했지만, 두테르테의 측근들은 사라 두테르테와 봉봉 마르코스 지지를 공식화했다.
남부 민다나오 섬을 기반으로 하는 두테르테 집안과 북부 루손 섬을 기반으로 한 마르크스 집안의 정치적 정략결혼이 이뤄진 것이다. 6년 후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이 대통령에 도전하는 기반이 마련된 것으로, 필리핀 언론은 평가하고 있다.
사라 부통령은 취임식을 6월 30일이 아닌 6월 19일 자신이 시장으로 재직하고, 아버지가 시장을 지낸 다바오시에서 부친 두테르테 대통령과 봉봉 마르코스 대통령 당선인이 참석한 가운데 가졌다. 필리핀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거주하는 민다나오 지역의 맹주로서, 대통령의 그림자가 아니라 역동적인 부통령 활동을 전개하겠다는 의지를 표시한 것이다. 사라 부통령은 교육부 장관도 겸직하게 됐다.
두테르테 집안의 강력한 개혁 DNA로 교육개혁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겠다는 각오다.
필자가 9월 중순 필리핀 출장 때 만난 죠에트 갈시아 바타안 주지사는 “사라 부통령이 교육부 장관으로서 야심 찬 사업을 벌써 시작했다”고 했다.
“공립학교 교사들의 연봉을 사립학교 교사 수준으로 인상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공공교사 노조의 강력한 지원으로 다른 교육 개혁안 추진이 힘을 받을 것 같다. 공립학교 교사 임금 인상은 수년간 논의됐지만, 예산 확보가 관건이었다. 사라 부통령이 팔 걷고 나선다면 교육예산 증액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사라의 정치력과 실행력이 아버지처럼 탁월할지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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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2세 대통령은 대통령궁에서 마리아 대사를 만나 한국 방문을 희망한다는 뜻을 밝혔다. |
봉봉 대통령은 테레사 대사 부부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가까운 장래에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한국 정부에 전하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3가지 분야에서 한국과 성과 있는 협력이 이뤄졌으면 한다는 뜻을 밝혔다.
― 봉봉 대통령께서 지시한 세 가지 분야의 협력은 어떤 것인가요.
“첫 번째는 핵발전 신성장 대체 에너지 개발 분야입니다. 대한민국의 원전(原電)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안전하고 효율성이 입증돼 있습니다. 우리 필리핀은 오염 없는 그린 에너지를 국가의 성장 동력으로 삼으려 합니다. 원전은 가장 효율적인 녹색 에너지원입니다. 필리핀 정부는 지난 3월 원전 건설 재개를 결정했습니다.
두 번째는 한국이 생산하는 경비정과 소형 전투기 분야의 협력입니다. 한국산 경비정과 훈련기는 품질이 좋고, 가격 경쟁력이 있습니다. 필리핀의 바다와 영토를 경비하고, 국방력을 증강하는 데 도움이 될 테니 잘 챙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농업 협력입니다. 농업 생산성 향상과 식량 안보의 확보를 위해, 한국과의 협력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봉봉 대통령은 필리핀 경제에서 농업과 수산업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감안해 농수산부 장관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원전만이 에너지 수요 감당 가능”
대한민국 정부는 지난 5 년 동안 핵발전소의 문을 닫고 탈원전에 전념해왔다. 그런데 필리핀 신임 대통령은 한국과의 핵발전 기술 협력으로 필리핀의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고 싶단다. 돌아가신 김동길 박사님의 표현처럼 ‘이게 뭡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리핀에서는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1984년 바타안주 지역에 핵발전소를 건설했다. 완공하고도 1986년에 발생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로 가동을 하지 못했다. 원전 건설에 만연했던 부패스캔들과 환경단체의 극력 반대는 가동 포기로 이어졌다.
방치했던 핵발전소를 가동하고, 한발 더 나아가 친환경적인 새 원전을 건설하는 데 한국의 협력을 구한다는 것은 우리로서도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바타안 지역은 지진이 자주 발생하고, 휴양 시설이 많아서 핵발전소 가동에 반대하는 주민 여론이 만만치 않다. 한전과 사업 재개를 위한 MOU까지 체결했지만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봉봉 대통령은 원자력 발전만이 필리핀의 에너지 수요를 감당할 수 있고, 한국의 원자력 기술이 필리핀의 안전한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실행해낼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필리핀 마닐라 인근에 있는 바타안주 죠에트 갈시아 주지사와 저녁을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출장 전 테레사 대사와의 오찬에서 전해 들은 바타안주의 휴면 중인 핵발전소 재가동 문제에 대해 주지사의 의견을 물었다.
주지사의 입장은 필리핀 중앙정부의 계획과 결이 약간 달랐다.
“한국 기술이 세계 최고이고 지진 상황에서도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바타안주의 주민들은 우리 섬이 관광과 첨단기술 산업단지로 부가가치를 높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바타안은 작은 섬 지역입니다. 지진이 자주 발생해서, 주민들은 핵발전소를 바타안주에 두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필리핀이 저개발의 늪에 빠진 이유
인구 100만 명이 채 안 되는 바타안주는 필리핀에서 가장 개인 소득이 높은 지역이다. 거대한 미군기지가 있던 클락과 수빅이 위치해 있고, 마닐라와도 인접해 있다. 수도권의 중산층이 즐겨 찾는 고급 리조트와 한국에도 꽤 알려진 골프장이 많이 위치해 있다.
하원의원이었던 죠에트 갈시아 주지사는 친형 알버트 갈시아 직전 주지사와 자리를 맞바꿨다. 자신이 하원의원 임기 제한에 걸리자 형이 하원의원으로 가고, 자신은 주지사에 출마해 당선됐다. 작고한 형제의 부친 또한 주지사를 역임했고, 그 아들과 딸들이 주지사, 하원의원, 시장 직을 주고받고 있다.
갈시아 집안의 정치적인 영향력은 바타안주에서는 절대적이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에 경제 원조를 해주던 ‘막사이사이(Ramon Magsaysay· 1907~1957년)’의 필리핀이 오늘 같은 저개발의 늪에 빠진 이유로 많은 이가 ‘토지개혁’의 미흡을 꼽는다. 국제적인 상식이다. 예닐곱 개의 대가문이 필리핀 전역의 땅을 나눠 갖고 있다.
마르코스 대통령의 정적(政敵)으로, 마르코스 정권에 살해된 니노이 아키노. 그의 부인인 코라손 아키노는1986년 마르코스 대통령을 쫓아내고 대통령에 취임했다. 우리에게는 아키노 부부가 ‘민주 투사’로 각인돼 있지만, 아키노 집안은 필리핀을 나눠 갖고 있는 빅 패밀리의 하나다. 필리핀의 정치와 역사를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그렇다는 얘기다.
‘한국의 선진 건강보험 시스템을 배우고 싶다’
죠에트 갈시아 주지사는 하원의원 시절인 2015년 서울로 필자를 찾아왔다.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일하는 자신의 친구를 통해 필자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당시 필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대외협력단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한국의 선진 건강보험 시스템을 배우고 싶다’는 게 그의 용건이었다.
대한민국의 건강보험 시스템은 세계 최고다.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 교민들(미국 영주권 소지자)이 치과 치료를 위해, 암 치료를 위해 한국을 찾는다. 경상도 산골에 사는 농민 류종수씨가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의 명의에게서 진찰을 받는 일을,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 국민 대다수가 큰 부담 느끼지 않고, 동네 병원에서 CT나 MRI 찍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한국 건강보험이 세계 최고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한때 뜬금없이 대한민국을 ‘헬조선’으로 부르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대한민국이 지옥이라고? 외국 한 번 못 나가본 바보들이,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싶은 못난이들이 떠들어댄 망발이었다.
최근 미국의 유력 언론이 한국을 세계 6대 강국으로 평가했다. 우리가 프랑스와 일본을 국력에서 앞질렀다는 엄청난 낭보를, 한국 언론 어디에서도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다.
지난 5월 바타안 주지사가 된 죠에트 갈시아는 지난 9월 필자를 필리핀으로 초청했다. 그러고 ‘바타안주의 보건의료 국제고문이 돼달라’고 요청했다. 그의 진지한 제안을 그 자리에서 수락했다. 바타안주 의료보건 시스템을 전면 디지털화하고, 주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경감시키고 싶다는 그의 계획을 힘껏 도울 생각이다.
필자는 급한 대로 연세대 보건대학원과 서울의과학연구소가 남미개발은행과 진행하는 감염병 예방 시스템 강화 프로젝트에 필리핀이 참여할 것을 권했다.
“젊은 필리핀 일꾼들을 챙기는 게 또 하나의 보람”
“2022년 9월 기준으로 약 5만168명의 필리핀인들이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1만1000쌍의 필리핀-한국 국제결혼 부부가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대사로서 한국에 살고 있는 필리핀인들을 누이처럼 자상하게 돌보고 싶어요. 제 시간이 많이 부족하고, 대사관 인력이 부족한 게 안타까워요.
도시와 농촌의 일터에서 한국인들이 우리 젊은이들을 잘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대다수의 주한 필리핀인은 잘 살고 있어요. 필리핀인들은 매사 긍정적이고, 정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형제자매처럼 잘 챙겨주세요. 한국도 정을 나누고, 자식을 위하여 덕을 쌓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이지 않습니까?”
테레사 대사는 자신이 말한 대로, 대사관저의 직원을 형제자매처럼 돌보고 있다. 서울 종각에 위치한 하나로검진센터에서 직원들에게 내가 직접 들은 이야기다.
하나로검진센터의 자매기관인 서울의과학연구소에 근무하는 네팔 출신 보건학 박사 후보자 프라카쉬 연구원의 얘기다.
“대사관저에서 살림을 챙기는 필리핀 여성이 토요일 아침 8시에 정밀검진을 받으러 왔을 때 테레사 대사가 딸과 함께 동행해서 등록과 검사 과정을 도와주었어요. 직원들이 전문의 진료를 할 때 같이 오시기도 합니다. 대사님이 이렇게 직원들을 살뜰하게 돌본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테레사 대사는 1년 8개월 뒤에 한국을 떠날 예정이다. 그녀는 2024년 필리핀 수교 75주년 행사를 대사로서 치르고 싶다고 했다.
“필리핀과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함께 피를 흘렸습니다. 한국전쟁 때 필리핀은 7500명의 병력을 파견했습니다. 필리핀은 그때 독립한 지 4년밖에 되지 않은 신생국이었습니다. 많은 필리핀 청년이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하여 소중한 목숨을 바쳤습니다.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형제의 나라입니다. 한국과 필리핀의 활발한 경제-산업 협력을 희망합니다. 한국과 필리핀 간의 자유무역협정(FTA)이 곧 체결될 겁니다. FTA 체결을 성공적으로 완료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테레사 대사는 고상하고 정확한 영어를 구사했다. 그녀의 음성은 단아했다. 인문학을 통해 얻은 세상에 대한 넓은 이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법률 전문가로서의 정확함, 사람에 대한 무한 배려가 그녀의 말과 몸짓에 적절하게 통합돼 있었다.
아담한 체구를 가진 외교가의 거인 테레사 대사에게, 그녀의 조국 필리핀은 더 큰 임무를 준비하고 있지 않을까?⊙
필리핀의 小통령들 필리핀은 부통령 제도를 두고 있다. 그렇지만 부통령에게는 부처 장관들을 지휘할 명령권이 없다. 대통령을 대행하는 ‘대통령 업무 총괄 총장(The Executive Secretary of the President)’이 행정부의 수반 격이다. 필리핀 사람들은 이 자리를 ‘소통령(Little President)’이라고 부른다. 소통령은 행정 각 부처가 제안하는 법률과 정책을 조율한다. 고위 공무원 인사와 예산을 결정하는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테레사 대사와 EU 주재 대사를 역임한 그녀 남편(필리핀 외교부 차관)의 양가 친인척 가운데 소통령을 역임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필리핀을 몇 개의 빅 패밀리가 나눠 갖고 있다는 사실은 앞에서 조명했다. 테레사 패밀리의 대단한 네트워크를 조금만 소개한다. 우선 남편의 조부, 테레사 대사의 시조부가 1970년대 초반 아버지 마르코스 대통령 시절 대통령 업무 총괄 총장직을 지냈다. 새로 대통령이 된 아들 마르코스 대통령의 소통령이 테레사 대사의 5촌 아저씨(73)이다. 테레사 대사 어머니의 사촌오빠다. 조카 테레사 대사를 자랑스러워하는 당숙은 필리핀 대법원장을 지내고 행정부의 수반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저씨의 소통령 임명 소식을 들은 테레사 대사가 아저씨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디토! (필리핀인들이 아저씨를 부르는 애칭) 축하해요! 건승하세요!” 한 시간쯤 뒤 신임 소통령이 조카 테레사 대사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테레사 잘 지내니? 장관님들과 국무회의 중이어서 전화를 바로 못 했다. 내 옆 자리에 외교부 장관님이 앉아 계신다. 안부 전해줄게!” 테레사 대사의 귀에 외교장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