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스하고 부드러운 죽음의 혀를 밟고 바다를 건너고 싶다’(천병석)
⊙ ‘수천 개의 별들로 떠올라 저 무량한 시공간을 헤맨다’(김선희)
⊙ ‘수천 개의 별들로 떠올라 저 무량한 시공간을 헤맨다’(김선희)
- 충남 예산수덕사IC 부근에서 한국도로공사 제설차량이 제설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신진 작가들은 나이가 필요 없다. 나이를 씹어 먹을 자들이다. 새로운 표정, 새로운 목소리가 한국 문단을, 문학을 살찌운다.
여기 중년의 신인(新人)이 있다. 남몰래 스패너 공구로 너트·볼트 따위를 죄거나 풀듯 시를 써왔다. “뭐 하는 거지?”라는 주위 시선을 귓등으로 흘렸다. 묵은지 같은 시고(詩稿)를 묶어 커다란 종이상자에 인질처럼 가두어 놓았던 그들이다.
그들 ‘중고 신인’, 아니 ‘중년 신인’을 응시하자니 윤민우의 소설 〈도시가스(City Gas)〉에 나오는 중년의 검침원 이야기가 떠오른다.
소설 속 산전수전 다 겪은 ‘그’는 군용 파카를 입고 있다. 4월 폭설이 내린 어느 날, 얼어 죽은 집이 즐비한 가운데 가스 검침에 나섰다. 마치 스무 살로 돌아간 것처럼 흥분하는 대목이 나온다. 다음은 소설의 한 대목이다.
〈제설차 운전대를 잡은 뒤부터 그는 왕년의 정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도로에 다른 차량이라곤 없었다. 눈, 눈 더미뿐이었다. 백색으로 마비된 도시 한복판에서 그는 불도저처럼 용감했다. 그는 빗발치는 눈보라에다 대고 외쳤다. 길을 비켜라, 참전용사께서 나가신다!〉
중년 신인은 우리 문학에서 ‘복학생’ 같은 존재이리라. 복학생은 온갖 모험을 다 치른 존재다. 돌이켜보면 586세대가 된 그들의 20대는 늘 군용(軍用) 야상을 즐겨 입었다. 어쩌면 그들의 형이나 부모는 왕년에 월남이나 독일, 중동에 갔다 왔거나 수십 년간 덤프트럭을 몰던 산업 전사인지 모른다.
천병석의 ‘무덤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싶다’
자연과 여행을 사랑하는 모더니즘 시인 천병석(千倂錫·60)은 작년 9월 《양들에 관한 기록》(모악 刊)이라는 첫 시집을 펴냈다. 60대에 첫 시집이라니…. 전체 126쪽에 불과하나 시어(詩語)의 질량은 천근만근이다.
기자는 오랫동안 이 시집을 가방에 넣고 다녔는데 가방이 꽤나 무겁던 이유를 알겠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시의 매혹에 빠져들었다. 시들이 마치 로드 무비에서 만나는 풍광처럼 자연의 노래로 가득한데 시상(詩像)이 맑고 투명하여서 현대판 진경산수화를 시로 대신 그린 듯했다. 혹은 태곳적 시인의 노래처럼 시원(始原)의 신화론적 이미지가 팽창하는 듯했다.
마른 흙은 물이 되어 끓어오르고
진흙은 꽃이나 물푸레나무가 되기도 하였다
끓어오른 물방울 몇은
다시 딱정벌레가 되어 창문 너머 달아나기도 했다
한밤중 창문을 깨고 날아든 돌멩이는
손 닿지 않은 공중에서 마른 흙처럼 부서진다
-천병석의 ‘혜성이 모두 친절하진 않다1’ 중 일부
‘혜성이 모두 친절하진 않다1’에서 드러난 천 시인의 상상력은 우리 시단에서 아주 귀하다.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용기와 미(美)의 인식은 시인이 살아온 생을 더듬어 봐야 윤곽이 잡힐 테지만 이미 그의 머릿속에 화려한 은하계가 자리 잡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 은하계에 모여 사는 백성과 신하들에게 먼저 고개 숙여 인사를 전한다.
떨어지는 꽃들의 찰나를 보고 싶다.
아침이 오는 소리를 듣고 싶다
폭포 위로 가고 싶다
소멸한 시간들이 다른 시간대로
뛰어내리기 위하여 줄지어 선 그 끝
끝에 피는 꽃은 어떤 꿈일까
떠나는 길 위로 내리치는 번개
존재의 호통 소리를 듣고 싶다
멈춰버린 시간의 궤도 위에 하얗게 작별하는 폐(肺)
멀리 나간 바다 너머로 침몰하며 손짓하는 검푸른 침대
멈춰버린 맷돌
따스하고 부드러운 죽음의 혀를 밟고 바다를 건너고 싶다
노 저어 오는 무덤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싶다
푸르고 새하얀 눈물과 아주 이별할 때까지
바람의 눈물 집을 터뜨리고 싶다
눈물보다 고요히 천지를 적시며 오는
찔레꽃 피어오를 때
-천병석의 ‘꽃들, 폭포에 피다’ 중 일부
시 ‘꽃들, 폭포에 피다’는 시인의 역량이 농축된 스케일이 큰, 쩨쩨하지 않은 시다. 절제된 미니멀리즘 사조를 쓰레기통에 쑤셔 박을 기세다. ‘소멸한 시간들이 다른 시간대로 뛰어내리기 위하여 줄지어 선 그 끝’에 바로 시인이, 그의 시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그만이 노래할 수 있는 시적 대상이 ‘그 끝’에 있다. 누가 감히 번개를 향해 ‘존재의 호통 소리를 듣고 싶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바람의 눈물 집을 터뜨리고 싶다’는 시인의 선언을 들으며 놀라움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천 시인의 이런 노래를 듣고 독자도 같은 꿈을 꿀 수 있다. 소시민의 궁상맞 고 위축된 얼굴, 쪼들린 지갑을 가슴 속에 구겨 넣고 잠시라도 딴 세상 사람처럼 노래할 수 있다. 그처럼 ‘떨어지는 폭포를 멈추라’고 외칠 수 있다. 아니, 한 번 외쳐보자.
그러나 목소리가 굵고 크지만 천 시인은 작은 꽃 한 송이, 찔레꽃 한 잎, 뱃전의 한 점 눈을 지극한 눈으로 응시할 줄 안다. 그가 용기 있게 포착한 찰나의 한순간이 지구 전체의 비밀, 우리 삶의 숙명, 생의 꼭짓점[頂點]을 담고 있는지 모른다.
더러는, 나, 너, 우리
가장자리로 밀려 나온 찔레꽃 한 잎일 때도 있어라
뱃전에 스미어 사라지는 한 점 눈일 때도 있어라
떠도는 빈 병 안으로
요행히 흘러든 꽃잎인지도 몰라라!
출렁출렁, 소리에, 눈, 멀어
바다로 바다로 나아가는 새하얀 꽃잎인지도 몰라라!
-천병석의 ‘꽃들, 폭포에 피다’ 중 일부
김선희의 ‘내 잠의 캄캄한 하늘에 수천 개의 별들’
중견의 김선희(金善姬·74) 시인이 낸 아홉 번째 시집 《금성에 관한 소문》(작가마을 刊)을 읽었다. 작년 12월에 나온 시집엔 이상하게도 마치 신인 시절 가졌을 법한 설렘이 담겨 있었다.
시를 아는 독자라면 ‘프록시마’를 읽으며 무량한 시공간을 헤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읽고 나서 “이제 잠은 내게서 광대해졌다”고 선언하면 좋겠다. 김 시인은 1987년 부산MBC 신인문예와 1991년 《문학세계》로 등단했다.
천문학자의 책을 읽고 잠이 들었다
지구에서 가장 가깝다는 별 프록시마가 떠오른다
얼마나 가까운지 그 거리는 39조 킬로미터,
4광년 센타우루스 자리에 있는 프록시마에 닿으려면
보이저 1호가 시속 6만 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려가서
그 별에 도착하는데 7만 3000년쯤 걸릴 것이라 한다
우리 은하에 있는 수천억 개 별들 중에서
가장 가까운 별이라 한다
나는 잠 속에서 그 광대한 시공간의 거리에 떨어졌다
어쩌면 내가 어린 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보았을지도 모르는 가장 가까운 우리 은하의 별
프록시마란 이름이 내 잠의 캄캄한 하늘에
수천 개의 별들로 떠올라 나는 저 무량한
시공간을 헤매고 또 헤맨다
이제 잠은 내게서 광대해졌다
꿈은 수많은 별들의 세계를 헤쳐나간다.
프록시마, 잊혀지지 않는 꿈속의 우리 별이다
-김선희의 ‘프록시마’ 전문
마지막 행 ‘프록시마, 잊혀지지 않는 꿈속의 우리 별이다’는 선언에 왠지 울컥해지는 것은 나이 탓일까.
이 대목에서 아주 다른 이야기를 시작할까 한다.
천주교 전설 속 인물 크리스토포루스(Christophorus)의 얘기다.(김윤식의 《문학을 걷다》에서 부분 인용)
이스라엘 가나안 출신의 거인 레프로부스는 힘센 사람을 섬기기 위해 순서대로 왕과 악마를 찾았다. 그런데 악마가 왕의 십자가를 두려워함을 보고 그는 왕을 섬기기로 마음먹었다. 왕을 찾아다녔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 그때 한 은둔자가 나타나 이런 말을 했다.
“가난한 자들을 섬기는 일이 곧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이다.”
이 말을 듣고 레프로부스는 돈이 없어 강을 못 건너는 이들을 등에 업어다 강을 건너게 했다. 어느 날 한 아이가 찾아왔다.
그런데 강 속으로 걸어가면 갈수록 아이가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돌덩이 같은 무게가 바위, 산, 대륙, 지구, 아니 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레프로부스는 반대편 강기슭으로 지팡이를 뻗어서야 겨우 지탱할 수 있었다. 그러자 그 아이가 말했다.
“당신은 지금 전 세계를 옮기고 있다. 내가 바로 네가 그토록 찾던 왕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후 그는 이름을 ‘그리스도를 멘 자’란 뜻의 크리스토포루스로 개명했다. 영어로 크리스토퍼(Christopher)다.
우리가 그토록 찾던 ‘그 아이’는 어디에 있을까. 어쩌면 우리 가까이에 있을지 모른다.
한영식(韓營植·57) 시인이 쓴 ‘동자승3’을 읽어보았다. 마치 ‘무거운 아이’와 같은 느낌이 시에 담겨 있다. 한 시인은 아직 시집을 내지 못했으나 시력(詩歷)은 40여 년이 넘는 중견 신인이다.
서두르지 마라
새들이 날아와 쉴 수 있는 나무가 될 때까지
기다려라
바다와 산 사이의 무덤
그 슬픈 사연을
너도 아는 날이 오리니
너에게 산이 되고 하늘이 되고 땅이 되는
푸른 빛깔의 파도가
밀려오는 날
대웅전 맑은 목탁 소리
길 따라 흐르는 물결처럼
사람들의 마을로 울려 퍼지는 날이 오리니
-한영식의 ‘동자승3’ 전문
깨달음을 주려는 선시(禪詩)처럼 느껴지는데 ‘동자승’이 독자에게 말을 걸듯 여운을 준다. 읽다 보면 바다와 산 사이의 무덤 같은 슬픈 사연이 마음에 걸린다. 그 사연이 목탁 소리와 연결되고 길 따라 흐르는 물처럼 사람의 마을로 퍼져간다.
시인 한영식은 대학 학부과정을 13년 만에 마쳤다고 한다. 이후 장애인 복지관에서 근무했다. 장애인을 휠체어 택시에 태워 집이나 병원으로 보내는 일을 했다.
지팡이 하나 믿고 가는 길이거늘
사람들아 보이지 않느냐
노란 돌
우리가 지팡이 하나로 암흑을 걷는 유일한 출구거늘
사람들아, 그곳이 주차장이 아니거늘
우리가 다리를 부딪치고
넘어져 무릎이 까져도
인도에 불법주차한 사람들아
당신들이 걷는 길이 있듯
우리가 걷는 길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아
캄캄한 길 가는 우리들
상처에 대해
두 눈 뜨고 외면하는 사람들아
-한영식의 ‘시각 장애인이 전하는 말씀’ 전문
한영식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 장애인의 자리도 있는 것일까. 비장애인이 말하는 ‘우리’라는 단어가 장애인들에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단어인지 아무도 모른다.”
이 시를 음미하자니 폴 세잔(Paul Cezanne·1839~1906년)의 회화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세잔은 평생 5편의 카드놀이 연작을 남겼는데 두 사람을 그린 버전과 세 사람을 그린 버전이 있다.
여기 서로 마주 앉아 카드를 하는 두 사람이 있다. 상상력을 조금 보태면 한쪽은 장애인, 다른 한쪽은 비장애인이다. 쉽게 승부가 나지 않을 게임을 하는데 그림에는 없으나 카드놀이하는 두 사람 곁에 오르간이 있다. 오르간에서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실은, 두 사람은 건성으로 카드 패를 들 뿐 귀를 세워 연주를 듣고 있다. 장애인, 비장애인의 승부는 이 신(神)의 연주 앞에 아무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연주가 끝나고 한 남자는 아무 망설임도 없이 카드 패를 던지며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1854~1900년)의 문장을 외칠 것만 같다.
“유토피아가 포함되지 않은 세계지도는 들여다볼 가치도 없어! 왜냐하면 그런 지도는 인류가 늘 지향하고 있는 나라를 빠뜨린 것이니까.”
‘중년 신인’ 혹은 ‘중고 신인’
한영식과 김중호
김중호(金重號·57) 시인 역시 시력이 40년이 넘는다. 아직 근사한 시집을 갖지 못했을 뿐이다. 시인에게 꼭 시집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는 작년 겨울 문학지 《사이펀》에서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왔고 대학 시절부터 결이 고운 시를 써왔다. 생업에 종사하다 지금은 농사를 짓고 있다.
몇 편의 시를 읽어보았다. 무겁지 않게, 혹은 가볍지 않게 무언가 지남철처럼 당기는 힘이 느껴졌다. 그 힘은 일상에서 모종의 의미를 간파하는 버릇(?)인데 그를 둘러싼 주변이 모든 시적 대상이 되는 식이다.
가상타
그가 바다에서 붙잡혀
육지로 올 때
제 몸을 향해
먹물이라도 뿌렸다면
누가 그를
육지로 데리고 올까
피데기는
제일 먼저
자기를 이해하였다
자기를
깊이 이해하는 일이
자기를 살리는 길임을
잊지 않았다.
-김중호의 ‘피데기’ 전문
바다에서 잡혀 반건조 상태로 육지에 도착한 오징어 피데기는 자신의 육체를 버리지 않았다. 행여 저항하기 위해 먹물이라도 뿌렸다면 갈가리 찢겨 바다에 버려졌으리라. 그러나 오징어는 다른 선택을 한다. 자신을 죽여 타인의 미각을 채울 수 있음을 깨닫는다. 기꺼이 식탁에 올라 반건조 피데기로 환생할 길을 고른 것이다. 시인은 말한다. ‘자기를 깊이 이해하는 일이 자기를 살리는 길’이라고.
한편, 시인은 냉장고를 정리하며 양파를 응시한다. 밑동은 곯았으나 위로는 싹이 난 양파를 본다. 물 한 모금, 빛 한 조각 없이, 냉기 속에서 싹이 돋은 양파를 보며 깨닫는다. ‘삶은 조건이 아니라 생의 의지이며 스스로 힘을 키워가야 한다’고.
냉장고를 정리하는 날
거기 오래된 양파 있더라
버릴 작정으로 살피는데
밑동은 곪았지만
그 위로 노란 싹이 났더라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물 한 모금 없이
빛 한 조각 없이
이 차가운 냉기 속에서
싹이 가능한가
…
그들은 살았다
스스로를 강건하게 만들어갔다
괜한 설움 혹은 미련
그런 건 다 버리고
스스로의 에너지를 집결시켰다
삶은 조건이 아니라
생의 의지임을
생은 조건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을 키워가야 한다는 것을
-김중호의 ‘양파’ 일부
겨울풀이 없었다면
봄이 오겠는가
겨울풀이
온몸으로 바람을 막지 않았다면
봄이 오겠는가
겨울풀이
겨울바람에 넘어지지 않았다면
봄이 오겠는가
봄은
누군가를
밟고서 오는 것
봄은
누군가를
기억하며 오는 것
-김중호의 ‘겨울풀’ 일부
김 시인의 ‘의미찾기’ 그물망에는 그만의 어떤 선함이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시를 읽자니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1749~1832년)가 쓴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 나오는 경구와 같은 시가 떠오른다.
눈물에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하고,
근심에 찬 여러 밤을
울면서 지새워보지 못한 사람은
그대들을 알지 못하리, 천상의 힘들이여!
우리 인간들을 삶으로 인도하는 그대들,
이 가난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어놓고
게다가 또 괴로움에 시달리게 하는구나!
그래, 모든 죄는 이 지상에서 그 업보를 치러야지!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제2권 13장 중 일부
배동욱 ‘잠자리는 날개를 접지 못한다’
인생에선 공짜가 없다. 무료 쿠폰이나 할인권도 없다. 반드시 정당한 대가를 치러야 인생을 얻을 수 있다. 땀 없이 땀의 가치를 배울 수 없다. 관찰학습으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지만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배우지 못한다.
괴테는 말한다. 눈물 젖은 빵, 근심에 찬 여러 밤을 지새워야 삶에 도달할 수 있다고. 비록 괴로움에 시달리더라도 우리가 알 수 없는 천상의 힘이 그대를 지켜주리라.
작년 10월에 출간된 배동욱(裵東郁·64) 시인의 첫 시집 《아르고스, 눈을 감다》도 탄탄한 사유의 힘이 느껴진다. 더께처럼 쌓인 사유의 지층이 두꺼운데 197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적인 시작(詩作)을 해왔으니 시력이 50년은 족히 되지 않을까. 시 ‘잠자리’만 봐도 중년 신인의 재능을 간파할 수 있다.
잠자리는 날개를 접지 못한다
아르고스의 눈을 가진 자 누군들
날개를 접을 수 있으랴
하늘을 가득 메우던 잠자리가
죽어도 접지 못하는 날개로
날아가는 마지막 자리가 어딘지
알지 못한다.
-배동욱의 ‘잠자리’ 전문
‘잠자리’는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인간을 닮았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르고스(Argos)는 100개의 눈을 가진 거인. 아르고스의 눈을 지닌 인간은 늘 싸우고 경쟁하며 ‘승자독식’을 정당화하는 존재들이다.
잠자리처럼 인간은 평생 안주할 수 없다. 자신을 기어코 채찍질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날개를 접을 수 없다’는 것은 머무를 수 없이 늘 떠다니는 부유(浮游)의 존재라는 의미와 닿아 있다.
시인은 말한다. “죽어도 접지 못하는 날개로 날아가는 마지막 자리가 어딘지 모른다”고. 그 마지막은 죽음일 테지만,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정답은 없다.⊙
여기 중년의 신인(新人)이 있다. 남몰래 스패너 공구로 너트·볼트 따위를 죄거나 풀듯 시를 써왔다. “뭐 하는 거지?”라는 주위 시선을 귓등으로 흘렸다. 묵은지 같은 시고(詩稿)를 묶어 커다란 종이상자에 인질처럼 가두어 놓았던 그들이다.
그들 ‘중고 신인’, 아니 ‘중년 신인’을 응시하자니 윤민우의 소설 〈도시가스(City Gas)〉에 나오는 중년의 검침원 이야기가 떠오른다.
소설 속 산전수전 다 겪은 ‘그’는 군용 파카를 입고 있다. 4월 폭설이 내린 어느 날, 얼어 죽은 집이 즐비한 가운데 가스 검침에 나섰다. 마치 스무 살로 돌아간 것처럼 흥분하는 대목이 나온다. 다음은 소설의 한 대목이다.
〈제설차 운전대를 잡은 뒤부터 그는 왕년의 정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도로에 다른 차량이라곤 없었다. 눈, 눈 더미뿐이었다. 백색으로 마비된 도시 한복판에서 그는 불도저처럼 용감했다. 그는 빗발치는 눈보라에다 대고 외쳤다. 길을 비켜라, 참전용사께서 나가신다!〉
중년 신인은 우리 문학에서 ‘복학생’ 같은 존재이리라. 복학생은 온갖 모험을 다 치른 존재다. 돌이켜보면 586세대가 된 그들의 20대는 늘 군용(軍用) 야상을 즐겨 입었다. 어쩌면 그들의 형이나 부모는 왕년에 월남이나 독일, 중동에 갔다 왔거나 수십 년간 덤프트럭을 몰던 산업 전사인지 모른다.
천병석의 ‘무덤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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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병석 시인의 첫 시집 《양들에 관한 기록》 |
기자는 오랫동안 이 시집을 가방에 넣고 다녔는데 가방이 꽤나 무겁던 이유를 알겠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시의 매혹에 빠져들었다. 시들이 마치 로드 무비에서 만나는 풍광처럼 자연의 노래로 가득한데 시상(詩像)이 맑고 투명하여서 현대판 진경산수화를 시로 대신 그린 듯했다. 혹은 태곳적 시인의 노래처럼 시원(始原)의 신화론적 이미지가 팽창하는 듯했다.
마른 흙은 물이 되어 끓어오르고
진흙은 꽃이나 물푸레나무가 되기도 하였다
끓어오른 물방울 몇은
다시 딱정벌레가 되어 창문 너머 달아나기도 했다
한밤중 창문을 깨고 날아든 돌멩이는
손 닿지 않은 공중에서 마른 흙처럼 부서진다
-천병석의 ‘혜성이 모두 친절하진 않다1’ 중 일부
‘혜성이 모두 친절하진 않다1’에서 드러난 천 시인의 상상력은 우리 시단에서 아주 귀하다.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용기와 미(美)의 인식은 시인이 살아온 생을 더듬어 봐야 윤곽이 잡힐 테지만 이미 그의 머릿속에 화려한 은하계가 자리 잡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 은하계에 모여 사는 백성과 신하들에게 먼저 고개 숙여 인사를 전한다.
떨어지는 꽃들의 찰나를 보고 싶다.
아침이 오는 소리를 듣고 싶다
폭포 위로 가고 싶다
소멸한 시간들이 다른 시간대로
뛰어내리기 위하여 줄지어 선 그 끝
끝에 피는 꽃은 어떤 꿈일까
떠나는 길 위로 내리치는 번개
존재의 호통 소리를 듣고 싶다
멈춰버린 시간의 궤도 위에 하얗게 작별하는 폐(肺)
멀리 나간 바다 너머로 침몰하며 손짓하는 검푸른 침대
멈춰버린 맷돌
따스하고 부드러운 죽음의 혀를 밟고 바다를 건너고 싶다
노 저어 오는 무덤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싶다
푸르고 새하얀 눈물과 아주 이별할 때까지
바람의 눈물 집을 터뜨리고 싶다
눈물보다 고요히 천지를 적시며 오는
찔레꽃 피어오를 때
-천병석의 ‘꽃들, 폭포에 피다’ 중 일부
시 ‘꽃들, 폭포에 피다’는 시인의 역량이 농축된 스케일이 큰, 쩨쩨하지 않은 시다. 절제된 미니멀리즘 사조를 쓰레기통에 쑤셔 박을 기세다. ‘소멸한 시간들이 다른 시간대로 뛰어내리기 위하여 줄지어 선 그 끝’에 바로 시인이, 그의 시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그만이 노래할 수 있는 시적 대상이 ‘그 끝’에 있다. 누가 감히 번개를 향해 ‘존재의 호통 소리를 듣고 싶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바람의 눈물 집을 터뜨리고 싶다’는 시인의 선언을 들으며 놀라움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천 시인의 이런 노래를 듣고 독자도 같은 꿈을 꿀 수 있다. 소시민의 궁상맞 고 위축된 얼굴, 쪼들린 지갑을 가슴 속에 구겨 넣고 잠시라도 딴 세상 사람처럼 노래할 수 있다. 그처럼 ‘떨어지는 폭포를 멈추라’고 외칠 수 있다. 아니, 한 번 외쳐보자.
그러나 목소리가 굵고 크지만 천 시인은 작은 꽃 한 송이, 찔레꽃 한 잎, 뱃전의 한 점 눈을 지극한 눈으로 응시할 줄 안다. 그가 용기 있게 포착한 찰나의 한순간이 지구 전체의 비밀, 우리 삶의 숙명, 생의 꼭짓점[頂點]을 담고 있는지 모른다.
더러는, 나, 너, 우리
가장자리로 밀려 나온 찔레꽃 한 잎일 때도 있어라
뱃전에 스미어 사라지는 한 점 눈일 때도 있어라
떠도는 빈 병 안으로
요행히 흘러든 꽃잎인지도 몰라라!
출렁출렁, 소리에, 눈, 멀어
바다로 바다로 나아가는 새하얀 꽃잎인지도 몰라라!
-천병석의 ‘꽃들, 폭포에 피다’ 중 일부
김선희의 ‘내 잠의 캄캄한 하늘에 수천 개의 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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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 시인의 아홉 번째 시집 《금성에 관한 소문》 |
시를 아는 독자라면 ‘프록시마’를 읽으며 무량한 시공간을 헤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읽고 나서 “이제 잠은 내게서 광대해졌다”고 선언하면 좋겠다. 김 시인은 1987년 부산MBC 신인문예와 1991년 《문학세계》로 등단했다.
천문학자의 책을 읽고 잠이 들었다
지구에서 가장 가깝다는 별 프록시마가 떠오른다
얼마나 가까운지 그 거리는 39조 킬로미터,
4광년 센타우루스 자리에 있는 프록시마에 닿으려면
보이저 1호가 시속 6만 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려가서
그 별에 도착하는데 7만 3000년쯤 걸릴 것이라 한다
우리 은하에 있는 수천억 개 별들 중에서
가장 가까운 별이라 한다
나는 잠 속에서 그 광대한 시공간의 거리에 떨어졌다
어쩌면 내가 어린 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보았을지도 모르는 가장 가까운 우리 은하의 별
프록시마란 이름이 내 잠의 캄캄한 하늘에
수천 개의 별들로 떠올라 나는 저 무량한
시공간을 헤매고 또 헤맨다
이제 잠은 내게서 광대해졌다
꿈은 수많은 별들의 세계를 헤쳐나간다.
프록시마, 잊혀지지 않는 꿈속의 우리 별이다
-김선희의 ‘프록시마’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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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수많은 별의 세계를 헤쳐나간다. 프록시마, 잊히지 않는 꿈속의 우리 별이다. 사진=조선일보DB |
이 대목에서 아주 다른 이야기를 시작할까 한다.
천주교 전설 속 인물 크리스토포루스(Christophorus)의 얘기다.(김윤식의 《문학을 걷다》에서 부분 인용)
이스라엘 가나안 출신의 거인 레프로부스는 힘센 사람을 섬기기 위해 순서대로 왕과 악마를 찾았다. 그런데 악마가 왕의 십자가를 두려워함을 보고 그는 왕을 섬기기로 마음먹었다. 왕을 찾아다녔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 그때 한 은둔자가 나타나 이런 말을 했다.
“가난한 자들을 섬기는 일이 곧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이다.”
이 말을 듣고 레프로부스는 돈이 없어 강을 못 건너는 이들을 등에 업어다 강을 건너게 했다. 어느 날 한 아이가 찾아왔다.
그런데 강 속으로 걸어가면 갈수록 아이가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돌덩이 같은 무게가 바위, 산, 대륙, 지구, 아니 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레프로부스는 반대편 강기슭으로 지팡이를 뻗어서야 겨우 지탱할 수 있었다. 그러자 그 아이가 말했다.
“당신은 지금 전 세계를 옮기고 있다. 내가 바로 네가 그토록 찾던 왕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후 그는 이름을 ‘그리스도를 멘 자’란 뜻의 크리스토포루스로 개명했다. 영어로 크리스토퍼(Christopher)다.
우리가 그토록 찾던 ‘그 아이’는 어디에 있을까. 어쩌면 우리 가까이에 있을지 모른다.
한영식(韓營植·57) 시인이 쓴 ‘동자승3’을 읽어보았다. 마치 ‘무거운 아이’와 같은 느낌이 시에 담겨 있다. 한 시인은 아직 시집을 내지 못했으나 시력(詩歷)은 40여 년이 넘는 중견 신인이다.
서두르지 마라
새들이 날아와 쉴 수 있는 나무가 될 때까지
기다려라
바다와 산 사이의 무덤
그 슬픈 사연을
너도 아는 날이 오리니
너에게 산이 되고 하늘이 되고 땅이 되는
푸른 빛깔의 파도가
밀려오는 날
대웅전 맑은 목탁 소리
길 따라 흐르는 물결처럼
사람들의 마을로 울려 퍼지는 날이 오리니
-한영식의 ‘동자승3’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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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경기도 용인시 에버랜드에서 단기 출가 중인 동자승들이 거북이를 만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
시인 한영식은 대학 학부과정을 13년 만에 마쳤다고 한다. 이후 장애인 복지관에서 근무했다. 장애인을 휠체어 택시에 태워 집이나 병원으로 보내는 일을 했다.
지팡이 하나 믿고 가는 길이거늘
사람들아 보이지 않느냐
노란 돌
우리가 지팡이 하나로 암흑을 걷는 유일한 출구거늘
사람들아, 그곳이 주차장이 아니거늘
우리가 다리를 부딪치고
넘어져 무릎이 까져도
인도에 불법주차한 사람들아
당신들이 걷는 길이 있듯
우리가 걷는 길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아
캄캄한 길 가는 우리들
상처에 대해
두 눈 뜨고 외면하는 사람들아
-한영식의 ‘시각 장애인이 전하는 말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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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의 그림 〈카드놀이하는 사람들〉 |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 장애인의 자리도 있는 것일까. 비장애인이 말하는 ‘우리’라는 단어가 장애인들에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단어인지 아무도 모른다.”
이 시를 음미하자니 폴 세잔(Paul Cezanne·1839~1906년)의 회화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세잔은 평생 5편의 카드놀이 연작을 남겼는데 두 사람을 그린 버전과 세 사람을 그린 버전이 있다.
여기 서로 마주 앉아 카드를 하는 두 사람이 있다. 상상력을 조금 보태면 한쪽은 장애인, 다른 한쪽은 비장애인이다. 쉽게 승부가 나지 않을 게임을 하는데 그림에는 없으나 카드놀이하는 두 사람 곁에 오르간이 있다. 오르간에서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실은, 두 사람은 건성으로 카드 패를 들 뿐 귀를 세워 연주를 듣고 있다. 장애인, 비장애인의 승부는 이 신(神)의 연주 앞에 아무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연주가 끝나고 한 남자는 아무 망설임도 없이 카드 패를 던지며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1854~1900년)의 문장을 외칠 것만 같다.
“유토피아가 포함되지 않은 세계지도는 들여다볼 가치도 없어! 왜냐하면 그런 지도는 인류가 늘 지향하고 있는 나라를 빠뜨린 것이니까.”
‘중년 신인’ 혹은 ‘중고 신인’
한영식과 김중호
김중호(金重號·57) 시인 역시 시력이 40년이 넘는다. 아직 근사한 시집을 갖지 못했을 뿐이다. 시인에게 꼭 시집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는 작년 겨울 문학지 《사이펀》에서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왔고 대학 시절부터 결이 고운 시를 써왔다. 생업에 종사하다 지금은 농사를 짓고 있다.
몇 편의 시를 읽어보았다. 무겁지 않게, 혹은 가볍지 않게 무언가 지남철처럼 당기는 힘이 느껴졌다. 그 힘은 일상에서 모종의 의미를 간파하는 버릇(?)인데 그를 둘러싼 주변이 모든 시적 대상이 되는 식이다.
가상타
그가 바다에서 붙잡혀
육지로 올 때
제 몸을 향해
먹물이라도 뿌렸다면
누가 그를
육지로 데리고 올까
피데기는
제일 먼저
자기를 이해하였다
자기를
깊이 이해하는 일이
자기를 살리는 길임을
잊지 않았다.
-김중호의 ‘피데기’ 전문
바다에서 잡혀 반건조 상태로 육지에 도착한 오징어 피데기는 자신의 육체를 버리지 않았다. 행여 저항하기 위해 먹물이라도 뿌렸다면 갈가리 찢겨 바다에 버려졌으리라. 그러나 오징어는 다른 선택을 한다. 자신을 죽여 타인의 미각을 채울 수 있음을 깨닫는다. 기꺼이 식탁에 올라 반건조 피데기로 환생할 길을 고른 것이다. 시인은 말한다. ‘자기를 깊이 이해하는 일이 자기를 살리는 길’이라고.
한편, 시인은 냉장고를 정리하며 양파를 응시한다. 밑동은 곯았으나 위로는 싹이 난 양파를 본다. 물 한 모금, 빛 한 조각 없이, 냉기 속에서 싹이 돋은 양파를 보며 깨닫는다. ‘삶은 조건이 아니라 생의 의지이며 스스로 힘을 키워가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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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그들은 살았다. 괜한 설움 혹은 미련 그런 건 다 버리고….’ |
거기 오래된 양파 있더라
버릴 작정으로 살피는데
밑동은 곪았지만
그 위로 노란 싹이 났더라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물 한 모금 없이
빛 한 조각 없이
이 차가운 냉기 속에서
싹이 가능한가
…
그들은 살았다
스스로를 강건하게 만들어갔다
괜한 설움 혹은 미련
그런 건 다 버리고
스스로의 에너지를 집결시켰다
삶은 조건이 아니라
생의 의지임을
생은 조건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을 키워가야 한다는 것을
-김중호의 ‘양파’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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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
봄이 오겠는가
겨울풀이
온몸으로 바람을 막지 않았다면
봄이 오겠는가
겨울풀이
겨울바람에 넘어지지 않았다면
봄이 오겠는가
봄은
누군가를
밟고서 오는 것
봄은
누군가를
기억하며 오는 것
-김중호의 ‘겨울풀’ 일부
김 시인의 ‘의미찾기’ 그물망에는 그만의 어떤 선함이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시를 읽자니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1749~1832년)가 쓴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 나오는 경구와 같은 시가 떠오른다.
눈물에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하고,
근심에 찬 여러 밤을
울면서 지새워보지 못한 사람은
그대들을 알지 못하리, 천상의 힘들이여!
우리 인간들을 삶으로 인도하는 그대들,
이 가난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어놓고
게다가 또 괴로움에 시달리게 하는구나!
그래, 모든 죄는 이 지상에서 그 업보를 치러야지!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제2권 13장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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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욱 시인의 첫 시집 《아르고스, 눈을 감다》 |
괴테는 말한다. 눈물 젖은 빵, 근심에 찬 여러 밤을 지새워야 삶에 도달할 수 있다고. 비록 괴로움에 시달리더라도 우리가 알 수 없는 천상의 힘이 그대를 지켜주리라.
작년 10월에 출간된 배동욱(裵東郁·64) 시인의 첫 시집 《아르고스, 눈을 감다》도 탄탄한 사유의 힘이 느껴진다. 더께처럼 쌓인 사유의 지층이 두꺼운데 197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적인 시작(詩作)을 해왔으니 시력이 50년은 족히 되지 않을까. 시 ‘잠자리’만 봐도 중년 신인의 재능을 간파할 수 있다.
잠자리는 날개를 접지 못한다
아르고스의 눈을 가진 자 누군들
날개를 접을 수 있으랴
하늘을 가득 메우던 잠자리가
죽어도 접지 못하는 날개로
날아가는 마지막 자리가 어딘지
알지 못한다.
-배동욱의 ‘잠자리’ 전문
‘잠자리’는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인간을 닮았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르고스(Argos)는 100개의 눈을 가진 거인. 아르고스의 눈을 지닌 인간은 늘 싸우고 경쟁하며 ‘승자독식’을 정당화하는 존재들이다.
잠자리처럼 인간은 평생 안주할 수 없다. 자신을 기어코 채찍질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날개를 접을 수 없다’는 것은 머무를 수 없이 늘 떠다니는 부유(浮游)의 존재라는 의미와 닿아 있다.
시인은 말한다. “죽어도 접지 못하는 날개로 날아가는 마지막 자리가 어딘지 모른다”고. 그 마지막은 죽음일 테지만,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정답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