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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대중문화 속으로

연예인들의 大選 후보 지지 선언이 사라진 이유

SNS에서 비판 활성화되면서 정치적 발언 조심하게 돼

글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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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정치판에 들어와 무식을 드러내니 당신을 지적하는 것”(우파 논객 캔디스 오웬스의 인기 가수 카디 비 비판)
⊙ 1971년 大選 때 김지미의 金大中 지지 선언이 효시… 1992년 제14대 大選부터 본격화
⊙ 언노련·민언협·여연 등, 1992년에는 연예인들의 특정 후보 지지 비판
⊙ 歐美에서도 연예인들의 정치적 발언 퇴조… 미국인·영국인의 1/4, “연예인의 특정 후보 지지 역효과”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2007년 12월 6일 이명박 후보 지지 선언을 한 연예인들. 이런 모습은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사진=조선DB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5월과 3월 차이는 있지만 지난 대선(大選)과 마찬가지로 ‘봄의 대선’이다. 그런데 19대 당시와 비슷한 분위기는 단순히 시기적인 부분 외에도 생각보다 많다. 대표적으로 대중문화 분야와 연결되는 부분, 즉 ‘연예인들의 대선 후보 지지 선언’ 없는 분위기가 19대에 이어 20대 대선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사실 이 점은 19대 당시에도 나름대로 화제가 됐던 부분이다.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2017년에도 연예인들의 지지 선언이 ‘있긴 있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경선(競選) 과정에서 많이 드러났다. 부산에서 열린 문재인 당시 경선 후보의 북 콘서트에 가수 강산에, 방송인 김미화 등이 참석해 ‘사실상의 지지 선언’을 한 바 있고, 문 후보가 민주당 국민경선인단 모집을 위해 진행한 ‘그래요 문재인’ 등의 캠페인에도 가수 이은미 등이 참여했었다.
 

  그래도 확실히 이전과는 달랐다. 이미 더불어민주당 지지로 대중에 잘 알려진 연예인들만 같은 입장을 반복 표명하는 수준이었지 수많은 연예인이 새롭게 ‘커밍아웃(coming out)’하는 흐름은 없었다. 새로운 게 없으니 뉴스 가치가 떨어져 보도도 잘 안 되었다. 그러다 보니 대중 입장에서는 ‘연예인들의 대선 후보 지지 선언’ 자체가 아예 없었던 듯 기억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20대 대선을 앞두고는 또 다른 분위기다. 이번에는 ‘진짜로’ 거의 보이질 않는다. 간혹 보이더라도 무명(無名)에 가까운 연예인들이 인지도 상승을 위해 벌이는 듯한 지지 선언만 있는 정도다. 왜 연예인들은 정치판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선거판에서 점점 멀어지려 하는 걸까. 또 그게 왜 2017년 대선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걸까. 이를 두고 기존에 언론에서 제시한 한두 가지 원인을 바로 들어볼 수야 있겠지만, 상황을 좀 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예인들의 대선 후보 지지 선언 역사부터 찬찬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김지미의 DJ 지지 선언
 
김지미. 사진=조선DB
  ‘연예인들의 대선 후보 지지 선언’은 생각보다 역사가 길다. 물론 대선이 시작된 이래 아예 없었던 적은 한 번도 없겠지만, 그 자체로 대중적 화제를 불러 모은 건 1971년 제7대 대선을 시작으로 본다. 그중에서도 배우 김지미의 김대중(金大中) 당시 신민당 대선 후보 지지가 상당한 화젯거리로 회자(膾炙)됐다.
 
  김지미는 대선을 앞둔 1970년 신민당 경선 당시 김대중 후보 기자회견장에 배우로서 유일하게 참석해 큰 관심을 모았다. 김지미의 친오빠가 신민당 대덕·연기 지구당 위원장을 맡고 있었기에 그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이지만, 어찌 됐건 당시 파장은 엄청났다. 1960~70년대에 김지미는 근래 대선 후보 지지를 표명하고 나서는 대부분 연예인보다 훨씬 엄청난 대스타였다. 동시에 32편의 영화에 겹치기 출연한 적도 있었다고 술회(述懷)할 정도로 “김지미가 없으면 대한민국 영화계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까지 나오던 때다.
 
  아이러니한 건, 이처럼 위험천만(?)한 일을 했던 김지미지만, 정작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2000년 전후 영화진흥위원회 재출범을 둘러싸고 문성근·유인택·명계남 등의 충무로포럼과 갈등을 빚어 결국 김지미가 영화인협회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는 상황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1970년 당시 파격적인 기자회견장 참석을 두고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까지 했던 김지미였기에 더더욱 충격적인 에피소드로 남게 됐다.
 
 
  ‘이미지 정치’ 필요성 대두
 
정주영 전 현대 회장과 코미디언 이주일. 1992년 총선에서 정 회장은 최불암, 강부자, 이주일 등 연예인들을 통일국민당으로 영입했다. 사진=조선DB
  이후 직선제(直選制)가 부활한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지나 1992년 14대 대선에 이르러 ‘연예인들의 대선 후보 지지 선언’은 차원이 다른 규모를 띠기 시작했다. 많은 점에서 연예인들이 현실정치에 대대적으로 개입한 첫 시점이라 볼 만하다.
 
  이유는 몇 가지로 나뉜다. 먼저 한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대중문화시장도 폭발적 성장세를 이뤄 연예인들의 대중적 인기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또 그동안 TV 보급률이 치솟아 방송화면을 통한 ‘이미지 정치’ 중요성이 대두됐단 점도 있다. 특히 사상 처음 대선 TV 광고와 찬조 연설 등이 도입되면서 대중에 친숙한 연예인들이 다수 필요해져 정당 차원에서의 영입 노력도 치열해진 측면이 있다.
 
  한편 연예인들 입장에서는 1980년대 내내 영화배우 출신 미국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을 지켜본 효과가 많이 거론된다. 선진국에서는 연예인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그에 적극 참여하는 게 당연시되고, 또 정치적 출세도 가능한 모습이 연출되다 보니 국내 연예인들이 그에 자극받은 측면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듯 서로의 이해관계가 만난 탓인지 1992년부터는 개개인도 아니라 ‘단체’ 규모 연예인 지지 선언이 왕성하게 이뤄지기 시작했다. 김영삼 후보 측 민주자유당에서는 이벤트기획사 서공 공정훈 대표의 큰나래회가 주축이 됐다. 큰나래회에는 배우, 가수, 개그맨 등 120여 명의 연예인들이 참여했다. 또 배우 이덕화·장미희·길용우·하희라·박규채와 가수 주현미·김완선·최성수·현철·심신 등도 김영삼 후보를 지지하고 나섰다. 한편 정주영 후보의 통일국민당은 보다 적극적으로 연예인들을 TV 찬조 연설 등에 내세웠다. 개그맨 이주일, 배우 최불암·강부자 등이 TV에 나와 지지를 호소했고, 이에 선거보도감시연대회의에서는 “일부 연예인이 대중적 인기를 등에 업고 유세장에 등장해 특정 후보의 지지를 부탁하는 것은 후보자의 정책과 자질에 근거한 유권자의 올바른 판단을 가로막는 행위로 정치의 저질화와 정치 과정의 왜곡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입장 달라지자 태도 변한 좌파단체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이 엿보인다. 이처럼 연예인들의 대선 후보 지지 선언에 우려를 표한 선거보도감시연대회의는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민주언론운동협의회, 한국여성단체연합, 여성민우회 등이 준비위를 꾸려 발족한 단체였다. 지금은 연예인들의 정치적 의사 표명을 두둔하고 칭송하는 좌파(左派) 진영 단체들이지만 당시에는 180도 다른 의견을 내며 “특정 정당 유세장에 동원된 연예인들과 후보 찬조 연설을 하는 연예인들의 방송 프로그램 출연은 대선 기간 동안 금지돼야 한다”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뒷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김대중 후보의 민주당에는 소위 ‘드러내놓고’ 김 후보 지지를 선언하는 연예인들이 다른 두 당에 비해 턱없이 적었던 것이다. 배우 오지명·정한용·김을동·손숙 등이 있었지만 당시 화제를 모을 만한 스타들은 또 딱히 없었다.
 
  이후 2000년대 들어 좌파 진영 정당에 인기 연예인들의 지지가 이어지자 이 같은 비판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된 것으로 보아, 같은 사안이라도 이불리(利不利)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형국을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다.
 
 
  ‘폴리테이너’의 등장
 
2004년 3월 9일 국회 앞에서 열린 노무현 탄핵 반대 집회. 배우 문성근, 명계남씨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조선DB
  1992년에 이처럼 뜨거운 반향을 일으킨 탓인지 1997년 제15대 대선에서 연예인 지지 선언은 보다 큰 규모로 진행됐다. 그리고 고도화(高度化)됐다. 먼저 이회창 후보의 한나라당 측에서는 1992년 당시 활약한 큰나래회 후신(後身) 한나래회 외에 배우 이정길이 단장을 맡은 연예인자원봉사단도 가세(加勢)했다. 연예인자원봉사단에는 배우 임채무·남성훈·이상아·현석·권은아와 가수 현미·태진아·김수희·설운도 등 40여 명이 참여했다.
 
  한편 이번에는 김대중 후보의 새정치국민회의 측에서도 적극적으로 연예인들을 섭외해 문화예술인지원단이라는 단체를 구성했다. 연예인 출신 정치인들인 최희준·정한용 의원 외에 배우 남궁원·최종원·최명길, 가수 송대관 등이 참여했다. 또 배우 박근형·이대근·손창민·김수미·백일섭·오정해, 가수 이선희·신해철 등도 김 후보 지지 연예인들로 꼽혔다. 이때는 심지어 권영길 후보의 건설국민승리21조차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소속 예술인 30~40명을 모아 민주와진보를위한문화예술인모임을 발족, 지원기금을 모금하는 등의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연예인 단체 구성을 안 하는 정당이 없는 수준까지 갔던 셈이다.
 
  그다음 2002년 제16대 대선은 연예인 참여에 있어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규모가 계속 확장 추세였던 것과 별개로, 연예인에서 갑자기 비례대표 국회의원 등으로 변신하곤 했던 과거와 달리 연예계 활동과 정치 활동을 병행하는 이른바 ‘폴리테이너’의 등장을 알린 대선이었기 때문이다. 많이들 기억하고 있듯, 노무현 후보의 새천년민주당 측에 섰던 배우 문성근과 명계남이 대표적이다. 문성근은 개혁당 창당준비위 시절부터 실행위원장을 맡고 있었고, 명계남도 새천년민주당 국민참여운동본부 부본부장을 맡으며 100만 서포터스 사업단장으로서 저 유명한 ‘희망돼지’ 사업을 총괄했었다. 단순히 세(勢)를 과시하는 차원, 친근한 얼굴로 대중의 시선을 모으는 정도 역할이 아니었던 셈이다.
 
 
  2007년 대선 후보들, K-팝 문화 편승 시도
 
  그리고 2007년 제17대 대선에서는 ‘연예인들의 대선 후보 지지 선언’에 있어 두 가지 특기할 만한 현상이 나타난다. 먼저, 이때는 한류(韓流) 현상으로 젊은 연예인들의 영향력이 상상 이상으로 치솟고, 특히 K팝 한류의 시작으로 K팝 아티스트들을 따르는 열성 팬덤이 그 규모나 고도화 차원에서 무시 못 할 수준이 됐다. 그러다 보니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서도 만약 K팝 아티스트의 지지가 이뤄진다면 그 거대한 팬덤을 통째로 자신들의 표(票)로 가져올 수 있으리라는 발상을 하게 됐다.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당시만 해도 낯선 K팝 팬덤 문화를 그런 식으로 이해하려는 분위기가 실제 존재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7년 대선을 앞둔 11월 26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문화산업강국 만들기’ 대선 후보 초청 문화산업정책 간담회 상황이다. 이날 간담회에는 이명박(李明博)·정동영(鄭東泳) 후보는 물론 이문세, 박상원, 박진영, 보아,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등 수많은 연예인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는데, 여기서 정 후보가 당시 한창 K팝 한류의 기수(旗手)로서 맹활약하던 가수 보아를 향해 던진 말이 인상을 남겼다. “보아 씨가 이 정동영을 지지한다면 1000만 표는 올라갈 텐데…” 이제 팬덤 현상을 중심으로 정치권에서는 연예인들의 지지 선언을 격하게 원하지만 글로벌화돼가는 연예인 입장에서는 오히려 부담스러워 멀어지려 하는 모습이 연출됐던 셈이다.
 
 
  이기는 편에 선다
 
  한편 또 다른 측면에서 2007년 대선은 ‘연예인들의 대선 후보 지지 선언’의 본질(本質)을 드러내는 때이기도 했다. 연예인들 지지 선언의 ‘쏠림 현상’이 극심한 대선이었기 때문이다.
 
  많이들 기억하다시피, 2007년 대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인 우세(優勢)를 이어가다 결국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압승(壓勝)으로 마무리된 대선이었다. 그 탓인지 연예인들의 지지도 이명박 후보 쪽으론 줄지어 이어진 반면, 정동영 후보 쪽으론 거의 찾아보기조차 힘든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 이명박 후보 쪽으론 12월 6일 하루 동안에만 최수종, 유진, 에릭, 차태현 등 내로라하는 연예인 35명이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대적인 합동 지지 선언을 했지만, 정동영 후보 쪽으론 탈북자 출신 가수 김용과 동명이인 개그맨 김용, 개그맨 엄용수 등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밖에 없었다.
 
  결국 미국 등지의 선거 풍경을 예로 들며 연예인들의 대선 후보 지지 선언이 얼마나 건강하고 세련된(?) 풍조인지 역설하던 연예인들이지만, 선거 판세가 어떠하든 자신이 지지해온 정당이나 정치인을 뚝심 있게 지지하는 미국 등지 연예인들과 달리 판세를 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지는 쪽’에 서고 싶어 하지는 않는 한국 연예계 실태가 드러나게 된 셈이다.
 
  이 같은 분위기를 다시금 증명한 게 바로 다음 2012년 제18대 대선 상황이다. 박근혜(朴槿惠) 후보와 문재인(文在寅) 후보가 박빙(薄氷)의 대결을 펼침에 따라 연예인들의 지지 선언도 양쪽 고르게 분할해 활성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에서 연예인들의 대선 후보 지지 선언이란 대략 ‘이런 식’이었던 셈이다.
 
  이제 다시 처음 제시한 화두(話頭), 연예인들의 대선 후보 지지 선언이 급격히 줄었던 2017년 제19대 대선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언론에서 상황을 분석한 원인은 크게 둘로 나뉜다.
 
  첫째, 19대 대선은 워낙 급작스레 치러진 선거이기에 미리 연예인들을 포섭하고 단체를 꾸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점. 얼핏 맞는 얘기 같기도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왜 예정대로 진행돼 시간적 여유가 풍부했던 20대 대선에서도 같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또 지난 대선들에서도 볼 수 있듯 마음만 먹으면 대선을 한 달도 채 남겨놓지 않은 때에도 얼마든지 연예인들을 포섭해 지지 기자회견을 열 수 있는데, 그걸 텃밭 다지듯 오랜 기간이 필요한 일처럼 여긴다는 게 옳은지도 의심스럽다.
 
  한편 또 다른 원인으로 제시되는 게 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졌던 이른바 ‘연예계 블랙리스트 파문’이다. 자신이 지지하던 후보가 낙선(落選)하는 경우 정권으로부터 블랙리스트에 올라 탄압받는 일이 생길까 두려워 좀처럼 지지 선언을 하지 못하는 추세로 가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앞선 2007년 대선 사례 등으로 볼 때 2017년 대선은 더불어민주당 지지 연예인들에 있어 상당히 ‘안전한’ 대선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여파로 줄곧 문재인 후보의 압도적 우세가 이어지고 있었고 실제 결과도 그렇게 나왔다. 그럼 최소한도 문 후보 지지 연예인들만큼은 19대 대선 때 다수 튀어나왔어야 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럼에도 양 후보 진영 모두 연예인 지지 선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해, 일각에서는 어찌 됐건 블랙리스트라는 개념이 널리 알려진 이상 애초에 정치권과는 연을 맺지 않는 게 유리하다는 인식을 불렀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 연예계 블랙리스트란 게 과연 실체로서 작동이 된 문서인지 여전히 알 수 없고, 그에 피해를 입었다는 사례조차 제대로 규명된 게 없는 데다, 애초 한국 대중문화계는 민간(民間) 비중이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크기에 현실적으로 정권이 연예인들에게 탄압을 가하고 불이익을 준다는 게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블랙리스트 파문이 연예인들에게 정치 알레르기를 심고 심리적 압박을 줬다는 게 과연 납득할 만한 가설(假說)인지 의문이다.
 
 
  소셜미디어 등장
 
  그런 점에서 사실 보다 설득력 있는 원인은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꾸 정치권과 연계해서만 생각하려다 보니 무리한 해석들이 나온다. 실제로 2012년과 2017년 사이 가장 큰 사회·문화적 변화 중 하나는, 그 사이 소셜미디어(SNS)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인터넷 기반 여론문화가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활성화됐다는 점이다. 웬만한 연예인 커리어를 단번에 나락으로 떨어뜨릴 정도의 힘이 인터넷 세상 속 대중에게 주어졌고, 그 대중은 시시콜콜한 연예인 스캔들뿐 아니라 연예인 입에서 튀어나오는 이런저런 정치·사회적 메시지나 행적 등에 대해서도 자신들 생각과 맞지 않으면 여지없이 거센 비판을 가했다.
 
  물론 이런 현상은 2002년과 2007년 대선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광경이긴 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인터넷 세상 여론은 주로 좌파 성향 대중에 의해 좌지우지(左之右之)되고 있었고, 그만큼 좌파 진영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연예인들은 나름 ‘안전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2007년 대선 이후 상황은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디시인사이드, 에펨코리아, 일베저장소, 엠엘비파크 등 우파 성향을 띠는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점차 규모를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2010년대 유튜브 열풍이 일고부터는 신의한수, 가로세로연구소 등 우파 유튜브 채널들도 구독자 수를 늘리며 영향력을 떨쳐나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2000년대 초반에 우파 성향 연예인들이 그저 지지 성향을 밝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인터넷 세상에서 ‘두들겨 맞았던’ 것처럼, 좌파 성향을 내비치거나 좌파 진영 대선 후보 등을 지지하는 연예인들도 같은 입장에서 숱한 공격을 받고 혹 작은 실수라도 범하면 반대 성향 인터넷 대중에 의해 비난이 끊이지 않는 흐름이 이어졌다. ‘어느 쪽이건’ 정치와 맞닿게 되면 연예인으로서 활동에 지장이 갈 정도로 분위기가 험해지게 됐다는 얘기다. 그것도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수년에 걸쳐 끈질기게 비난이 이어지는 장기전(長期戰)이 속속 연출되곤 했다.
 
  이러니 어느 쪽 성향이건 연예인들이 대선 후보 지지는커녕 정치적 입장을 뚜렷이 밝히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게 된 것이다. 나아가 한국의 해외난민 수용 문제에 적극적 홍보활동을 펼쳐온 배우 정우성처럼, 그저 사회적 의견 제시 정도도 그와 다른 생각을 가진 대중에 의해 꾸준히 공격당하는 상황들이 이어져 그조차도 점차 꺼리는 분위기로 옮아갔다. 그러니 단순히 단체 만들 시간이 부족했다거나 ‘연예계 블랙리스트’ 때문에 연예인들의 대선 후보 지지가 사라져가는 게 아니라,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연예인 속성상 직업적 활동영역과는 다른 지점에서까지 비판과 공격의 여지를 남기는 일은 꺼리게 된 것이라 보는 게 옳다. 실(失)의 위험은 크지만 이렇다 하게 득(得) 될 건 하나도 없으니 아예 그쪽은 간접적으로나마 거론하지 않게 된 흐름이다.
 
 
  “당신이 멍청해 보이니 이용한 것일 뿐”
 
  끝으로, 연예인들의 정치적 입장 표명에 가장 너그럽고 그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미국과 유럽의 현재 상황을 살펴보자. 당연한 얘기지만, 미국이나 유럽이라고 한국과 같은 인터넷 대중여론의 새 국면을 피해 나갔을 리 없다. 소셜미디어와 유튜브를 통해 그간 대중적으로 쉽게 포착되기 어려웠던 우파 논객들 존재가 부각되기 시작한 것도 한국과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먼저 미국부터 점차 분위기가 달라져 가고 있다.
 
  지난 미국 대선 당시 인기가수 카디 비가 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을 지지하며 그와 인터뷰까지 갖자 우파 논객 캔디스 오웬스가 이를 비판하고 나선 에피소드가 대표적이다. 오웬스는 카디 비를 향해 “조 바이든과 버니 샌더스는 당신 노래에 관심도 없다. 당신이 멍청해 보이니 이용해 먹기 쉬워 당신을 이용한 것일 뿐”이라며 “(조 바이든과의 인터뷰 도중) 세금 줄여달라면서 의료·복지 시스템의 확충을 원한다고 말한 건 무식의 극치다. 당신이 음악에만 집중하면 아무도 당신에게 뭐라 하지 않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정치판에 들어와 무식을 드러내니 당신을 지적하는 것”이라 날선 비판을 가했다.
 
  이처럼 뉴미디어를 통해 자기 언로(言路)를 확보한 정치 논객들에 의해 연예인의 정치 발언 및 행적이 바보 취급당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연예인들의 적극적인 정치적 입장 표명에도 조금씩 제동이 걸리는 분위기다.
 
 
  연예인의 지지 효과 없어
 
  더 큰 차원에서는, 근 몇 년 사이 미국과 유럽에 걸쳐 연예인들의 정치 개입 자체를 비판하는 사회 분위기가 점차 확산돼 가는 추세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좌·우파 가릴 것 없이 언론의 비판도 심심찮게 등장하고, 연예인들이 특정 후보를 지지해봤자 실제 선거에서는 아무런 효과도 없더라는 무용론(無用論) 조사도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
 
  미국 매체 더힐의 2019년 여론조사가 한 예다. 해당 조사를 통해 할리우드 연예인들의 정치적 지지 선언은 유권자들의 투표에 거의 영향을 못 미친다는 점이 드러남은 물론, 설문에 응한 이들 중 24%는 연예인들이 지지를 호소한 후보를 ‘더 꺼리게 된다’고까지 밝힌 바 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영국 시장조사 및 데이터 분석 기업 유고브의 2018년 조사에서도 63%의 영국인들은 연예인의 특정 후보 지지 선언이 자신들 투표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밝혔고, 25%는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오히려 해당 후보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된다는 의견을 표했다.
 
 
  ‘정치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 연예인들’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를 방증하듯, 2018년 미국 테네시주(州) 주지사 중간선거에서 젊은 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세계적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공개적으로 지지한 민주당 후보 필 브레드슨은 그 지지에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공화당 후보 마샤 블랙번에게 패배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예상보다도 더 벌어진 격차로 참패를 겪게 됐다.
 
  상황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언론 논조(論調)도 바뀌어간다. 영국 BBC 뉴스 한국판 2018년 4월 5일 자 기사 ‘연예인이 정치에 뛰어드는 이유’에서 영국신문사 샤웃아웃UK 대표 마테 네르가미니는 “정치인들이 젊은 층에 매력적으로 어필하기 위해 유명인사들의 영향력에 의존하는 것은 상투적이고 구시대적(舊時代的)인 발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요즘은 정반대로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할리우드 연예인들도 속속 늘어가는 추세다. 미국 폭스뉴스 2020년 11월 1일 자 기사 ‘정치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 연예인들’에 따르면 인기 코미디언 케빈 하트, 컨트리 여왕 돌리 파튼, 배우 조시 더멜 등 많은 연예인이 정치적 발언을 스스로 금하는 자세를 취하거나 그런 선언들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결국 2017년에 이어 2022년 대선에서도 똑같이, 많은 부분 더 심화된 형태로 펼쳐지고 있는 ‘연예인들의 대선 후보 지지 선언’ 부재(不在) 현상은 비단 한국만의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세계 선진국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흐름이라고 볼 만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너무나도 단순할 듯싶다. 이제 인터넷 기반으로 궁금했던 수많은 정보를 스스로 얻을 수 있게 된 세상인데 애초 첨예(尖銳)한 정치 사안들에 비전문적일 수밖에 없는 연예인들 말에 귀 기울여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는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처럼 당연한 생각이 대중에 스며들기까지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게 더 신기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리고 세계적 관심을 모으는 K팝 그룹 방탄소년단의 멤버 정국은 지난 1월 1일 새해 첫날을 맞아 GQ코리아와 가진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많이 끌리고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본인 일을 잘하는 사람인 것 같다”며 “그런 사람들에 끌리다 보니 저도 제 할 일을 먼저 잘하려고 하는 것 같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비단 정국뿐 아니라 이제 세계 대중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저 세상 변화에 극히 둔한 사람들조차 이를 이해하게 될 때까지 아직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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