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陰地의 戰士들

엄상익 변호사가 경험한 정보기관 〈15〉 경찰 인사비리 ‘정보보고서’ 유출 장본인은 대통령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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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안전기획부장 교체에 앞장선 박철언의 파워
⊙ “박철언은 정도전 같은 인물… 한반도의 틀 바꿀 구상 중”
⊙ 뇌물·청탁 판치는 경찰 조직 비리 난맥상
⊙ 대통령에게 올린 정보보고서, 경찰청장에게 넘어가

嚴相益
1954년생. 경기고·고려대 법대 졸업 / 사법고시 24회, 사법연수원 15기 수료 / 국가안전기획부 정책연구관, 법무법인 ‘정현’ 변호사 역임 / 現 엄상익법률사무소 변호사
경찰청은 과거 내무부 산하 치안본부였다.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91년 치안본부는 내무부 外廳인 경찰청으로 승격했다. 사진=조선DB
  나는 국가안전기획부 특수부서에서 처음 해보는 낯선 일들과 마주치고 있었다. 대통령 내외가 편히 볼 수 있도록 《월간조선》이나 《신동아》 《월간중앙》의 기사를 요약하라고 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베스트셀러도 한 장으로 압축하라고 했다. 시사 잡지와 책을 다양하게 읽는 좋은 기회였다.
 
  대통령이 관리해야 할 인사들의 명단이 건네지기도 했다. 선물이나 돈봉투를 대통령을 대신해 그들에게 직접 전달하고 그 받는 태도를 글로 써 올리라고 했다. 하얀 봉투에 금박의 대통령 문장(紋章)을 붙이고 그 안에 돈을 집어넣기도 했다. 나는 갑자기 대통령의 비서가 된 느낌이었다. 선물을 받는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황송해했다.
 
  더러 국회에 동원되어 갔다. 국회의원이 안전기획부장에게 질문하면 그 핵심을 옆에서 듣고 즉석에서 답변을 써주는 작업이었다. 내게는 이미 특수팀의 경험으로 정보기관에 대한 연구가 축적돼 있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대통령의 안전기획부(안기부) 순시 직전이었다. 박철언팀의 책임을 맡은 사람이 나를 불러 지시했다.
 
 
  대통령 연설문 작성에 관여
 
  “대통령이 안기부 순시를 왔을 때 간부들 앞에서 할 훈시(訓示)를 쓰시오.”
 
  “뭘 써야 하는 거죠?”
 
  내가 난감해서 되물었다. 나는 정무 경험이 전혀 없는 30대 중반의 병아리 변호사일 뿐이었다. 대통령의 뜻을 짐작하기조차 불가능했다.
 
  “알아서 쓰시오.”
 
  “그래도 대통령의 통치 철학에 대해 기본은 알아야 그걸 기초로 문장을 만들 것 아닙니까?”
 
  “여태까지 우리가 적당히 다 만들었어요. 대통령의 취임사도 우리 팀에서 썼어요. 취임사를 쓴다는 건 대통령의 철학을 우리가 만든다는 거요. 심지어 대통령이 사석의 모임에서 해야 할 말도 다 우리가 창작했지. 대통령은 우리가 보낸 쪽지를 보면서 또박또박 그대로 읽으셨고 말이야. 대통령은 먼저 자신이 알아서 어떤 지시를 내린 적이 없어. 우리가 앞서 가면 나중에 그걸 추인(追認)하는 모양이었지. 적당히 알아서 써.”
 

  그 말의 행간에 스며 있는 의미가 묘했다. 명령을 이행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고민했다. 나에게 대통령이 빙의(憑依)했다고 가정하고 시나리오 작가가 되어 생각해보았다.
 
  먼저 수고했다며 점잖게 간부들을 칭찬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대통령 한마디에 그들은 춤을 추는 사람이니까. 그다음은 어떤 얘기를 할까? 민주화에 맞추어 과거 정보기관의 구태(舊態)를 버리고 정보 전문기관으로 다시 탄생하라고 방향성을 제시해야 할 것 같았다. 박세직 부장 때 정보기관 개혁을 연구한 적이 있다.
 
  마지막으로 좀 더 구체적인 실천 방침을 줄 필요가 있었다. 인물의 질이 그 조직의 품격을 결정한다. 엘리트들을 뽑아 최고의 대접을 해줘야 최고의 정보기관이 된다고 지시해주면 될 것 같았다. 엘리트들을 조직으로 유인할 수 있는 합당한 대우를 연구해보라는 지시를 썼다. 정보기관의 운영 방향을 대통령 입을 빌려서 내가 정한 셈이었다. 며칠 후 대통령이 다녀가고 안기부 기획조정실의 간부가 와서 내게 의논했다.
 
  “대통령이 다녀가신 뒤 지금 간부들이 모여 고민을 하고 있어요. 대통령이 여기 들어온 고시(高試) 출신 엘리트들을 잘 대접해 조직의 근간이 되도록 하라고 명령을 하셨는데, 그동안 행정고시 출신 5급 사무관들은 여러 명 있었어요. 그 사람들은 행정부처에서 사무관이었으니까 여기에서 그 직급도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2년 전부터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람들을 영입했는데 그 사람들을 어떻게 대우해야 할지가 문제죠. 잘 대우해주지 않으면 변호사를 한다고 다 나가버릴 거니까 말이죠. 부장님 의견은 그 사람들을 3급 부이사관 자리를 주면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그에 대해서는 내부 반발이 엄청납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안기부에 7급으로 들어와 일생을 바쳐서 나이 50대가 되어야 3급이 될까 말까 합니다. 그건 너무 불공평하다는 거죠.”
 
  무심히 대통령의 말을 썼는데 그 위력이 엄청난 것 같았다.
 
  “그러면 사법고시 출신은 모두 4급 정도로 재조정해서 임명하면 안 될까요?”
 
  나의 개인 의견이었다. 당시 4급이면 중앙부처의 과장이나 세무서장이나 경찰서장급이었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기 전이던 그 무렵 지방의 군수나 작은 도시의 시장이 가지는 직급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내 방으로 조선시대 임금의 교지(敎旨) 같은, 대통령 직인이 찍힌 임명장이 전해졌다.
 
 
  ‘청송사업’의 실체
 
‘6공의 황태자’ 박철언 전 정무장관. 박철언 전 장관은 전두환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으며, 노태우 대통령의 처 고종사촌으로 6공 정권에서도 승승장구했다. 사진=뉴시스
  어느 날 특수부서의 책임자가 나를 불렀다. 그가 나를 천거했기 때문에 나는 그의 계열이었다. 그 자리에는 그가 천거한 사람들 몇 명이 모여 있었다. 박철언의 조직이 눈에 보이지 않는 두 부류로 변한 것 같았다.
 
  하나는 권력의 실세 박철언을 보스로 모시는 기존 팀이었다. TK(대구·경북)로 학연과 지연 중심으로 끈끈하게 뭉쳐 있는 사람들이었다. 다른 한 팀은 배명인 안기부장이 데리고 와 그 특수부서의 후임 책임자로 임명한 사람과 그가 조직한 팀이었다. 내 느낌으로 내가 속한 곳은 일종의 용병부대이고 성골(聖骨)에 속하지 못하는 6두품쯤 될까. 기존 박철언 부하들은 새로 임명된 책임자를 백안시하는 느낌이었다. 새로 임명된 책임자는 기존 박철언 팀에서 하는 업무에 대해서는 간섭을 하지 않았다. 미묘한 분위기였다.
 
  권력의 실세 박철언과 안전기획부장 간의 권력갈등이라고나 할까. 자신의 조직 속 치외법권을 못마땅해했던 배명인 안기부장이나 박세직 안기부장이 얼마 있지 못하고 교체됐다. 권력의 실세 박철언이 대통령을 움직여 그렇게 한 것이라는 소리가 돌았다. 그곳 사람들은 특히 권력의 기류에 민감했다. 새로운 책임자가 우리 몇 명에게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박철언 팀이 ‘청송사업’이라는 걸 해왔어요.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만나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정책 의견을 듣고 보고서로 써서 대통령에게 올렸어요. 중간의 여과 과정 없이 대통령에게 직접 간 거지요. 그런 것들을 바로 정책화하고 접촉한 인물 중 능력자는 대통령에게 천거했죠. 그런 사람들이 공천을 받고 의원 배지를 달았어요. 나도 그 청송사업을 벤치마킹하기로 했어요. 그 사업명을 우리는 편의상 ‘M’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이 자유롭게 인재들을 찾아 만나보세요. 보수나 진보 좌우를 가리지 마세요. 정보를 수집하라는 게 아닙니다. 진짜 들어야 할 세상 얘기나 지혜를 구해 오세요. 그러면 나는 그 내용들을 대통령 책상 위에 바로 올려놓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소리든 나쁜 소리든 있는 그대로 해야 합니다. 대통령과 세상 사이에 벽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필요한 비용은 얼마든지 쓰십시오. 최고급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최고의 음식을 대접하세요. 룸살롱에 가서 대접하세요. 형식적인 관계로 끝내지 마시고 능력 있는 인물이면 누구든지 상대방의 마음을 얻으라는 말입니다.”
 
  나의 보스가 된 그는 비상한 머리와 인내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동시에 시대의 파도를 타고 새로운 대통령을 만들려는 야심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인재들을 만나 지혜를 얻어오는 일은 재미있을 것 같았다. 당시 30대 중반이던 나는 그곳에 모인 사람 중 제일 젊은 편이었다. 회의가 끝난 후 책임자가 친근한 눈길로 나를 보면서 스스럼없는 어조로 말했다.
 
  “여러 분야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들으면서 세상 공부를 많이 해봐. 그리고 여기 조직의 돈으로 당신 인맥을 만들어봐. 그게 여기 근무하는 가장 큰 장점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는 상관과 부하의 벽을 허물고 형 같은 자상한 태도로 대해주었다.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장악하는 능력가였다.
 
 
  “박철언은 정도전 같은 인물”
 
1985년 평양을 방문해 북한 김일성(맨 왼쪽)을 만난 박철언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장 특별보좌관(맨 오른쪽). 사진=박철언 전 장관 홈페이지
  나는 《정관정요(貞觀政要)》라는 통치학의 고전을 읽었다. 그 책은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여과 없이 그대로 왕에게 알려주는 것이 좋은 참모가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대개는 벼슬자리에 얽매여서 있는 그대로 얘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떤 내용을 대통령에게 올릴지 생각해보았다. 먼저 정권 내부에서 보는 시대 상황과 정치적 지형을 알 필요가 있었다. 안기부에는 오랫동안 많은 정보를 머릿속에 축적하고 있는 정보관들이 많았다. 그들의 솔직한 생각을 알 필요가 있었다. 대부분 일부만 상부에 올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정보관을 지낸 대학 선배에게 점심을 사면서 이런 말을 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중앙정보부로 왔죠. 박정희 대통령은 말만 많이 하는 정치인을 모두 사기꾼같이 생각했어요. 우리 정보부가 그런 모리배들을 눌러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나름대로 뜨거운 애국심을 가지고 일했어요. 김대중과 김영삼 모두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했던 사람들입니다. 재야(在野) 인사들은 말은 많지만 국가 건설에 삽질 한 번 안 한 사람들이 많아요. 내 의식 속 재야 정치인이나 재야 인사들의 인상은 그런 겁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전두환 대통령이 나타났죠. 정통성은 약하지만 혼란기의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경제발전에 대한 공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두환이 아니면 당시 솔직히 약체 정부의 질서를 잡을 사람이 있었을까요? 나는 그렇게 보는 거죠. 노태우 대통령이 직선제 개헌을 하고 김영삼·김대중과 당당히 겨루어 이겼으니 이제는 민주화 정권입니다.
 
  저는 대통령직선제를 요구하는 6·10대회장에 가서 직접 봤습니다. 회사원, 음식점 주인들도 시위에 참가하더라고요. 그 정도면 국민적 저항이었죠. 우리 부서에서는 그걸 보고 대통령직선제를 수용하는 ‘6·29 선언문’을 작성해서 노태우 후보에게 올렸어요. 사실 그 선언으로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 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진 겁니다. ‘정치 9단’인 김영삼과 김대중을 이길 수 있었겠어요? 다행히 그들이 서로 싸우는 바람에 어부지리를 얻은 거죠. 다음 대선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은 더 사투(死鬪)를 벌이고 노태우 대통령은 전두환같이 귀양 가고 싶지는 않겠죠.
 
  그런데 지난 총선에서 여소야대의 현상이 벌어져 정권이 발목을 잡힌 거야. 그래서 지금 우리 정치팀에서는 대책을 구상하고 있어요. 전에는 야당이 커지면 국회의원을 빼오거나 공안정국을 만들어 야당 의원의 수를 줄이기도 했죠. 그러나 박철언 보스를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하는 우리는 그런 잔재주를 넘어서야죠. 지금 우리 보스(박철언)는 차원 높은 큰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그 큰 그림이라는 게 뭡니까?”
 
  “보스는 조선의 정도전(鄭道傳) 같은 인물이죠. 6공화국을 설계하고 만든 분이니까요. 보스는 지금 북한을 염두에 두고 남쪽에 있는 보수정당들의 통합을 구상하고 있어요. 보스가 추진한 북방정책의 목적이 뭡니까? 남북 간 평화가 보장되는 통일된 조국이죠. 보스는 한반도의 근본적인 틀을 바꿀 파격적인 구상을 하고 있어요. 다만, 앞으로 보스 앞에 놓인 정치적 경쟁자들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우리 팀의 당면 현안입니다.”
 
  대충 큰 그림이 뭔지 희미하게 짐작이 되었다. 오랫동안 정보관을 해온 그는 권력 내부의 적폐 문제를 이렇게 지적했다.
 
  “가진 사람들의 사치나 졸부적 행태가 없는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르고 있습니다. 한번 장관을 하면 평생 먹을 것뿐만 아니라 자식, 손자들도 잘살 재산을 축적합니다. 장성(將星)들도 제대 후 군수회사의 이사로 있으면서 미국 회사의 리베이트를 받아 잘살고 있어요. 정치인들은 그만둔 후에도 석유회사 이사로 있으면서 미국 석유 메이저 회사들로부터 뒷돈을 받고 있습니다. 부동산 임대, 주식이나 사채 같은 금융자산 수입으로 고액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이 수십만명입니다. 백화점을 가보면 그들의 자식들이 사치스럽게 살고 있는 걸 볼 수 있어요. ‘보통 사람들의 시대’라는 구호로 탄생한 이 정권에서 앞으로 그런 사회적 빈부 갈등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죠.”
 
 
  “노태우 대통령이 들어선 후 조짐이 이상해”
 
  그 부서 경제팀에 고교 동기가 있었다.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경제기획원(지금의 기획재정부)에서 근무하다가 미국 유학을 가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당시 경제적 현실을 이렇게 말해주었다.
 
  “국민들을 풀어놓으니까 사람들이 더 이상 경제발전을 위해 희생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해. 빈부격차를 보고 지금까지 이용만 당해왔다는 분노가 일고 있지. 너나 나나 같은데 왜 너는 잘살고 나는 못사느냐는 거지. 더 이상 뼈 빠지게 일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일하는 시간은 줄여야 하고 월급은 더 받아야겠다고 하는 거야. 요즈음 일어나는 임금투쟁과 근로시간 단축이 그걸 말하는 거지. 노태우 대통령은 평생 군인으로 살아온 분이라 민주화가 뭔지, 빈부격차가 극심한 경제가 뭔지 몰라.
 
  폭발하는 욕구에 편승해서 좌파혁명이 머리를 들 건데 어떻게 거기에 대응하느냐가 우리 팀의 숙제지. 우리 팀은 일반 경제부서와 달리 정치적 측면에서 경제를 바라보고 있어. 스페인의 프랑코 총통의 권위주의 통치가 끝난 후 물가가 오르고 실업률도 20%였지. 동구권도 무너지면서 경제가 와해됐어.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고 살길을 찾아야지. 정권에서 표를 뺏기지 않으려고 퍼붓는 추곡수매 자금이나 농어촌 부채 경감 그리고 복지 자금을 대폭 줄여야 해. 땅값이 올라 도로를 만들기 힘든 현상도 막아야 하고. 더 본질적인 것은 우리 국민이 일본 사람처럼 맡은 일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하는 정신적 변화야.”
 
 
  “박철언, YS의 직격탄 맞을 것”
 
  법에만 고정됐던 나의 시야(視野)가 넓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더러 시간이 나면 운동을 하기 위해 남산 체육관에 들렀다. 우리나라 최초의 헬스클럽 격인 그곳에는 거물급들이 많이 다니고 있었다. 그곳에서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의 모습을 자주 보았다. 계단에서 가끔 마주치곤 했다. 그곳에는 장관이나 정치인, 은행장 그리고 사회 명사(名士)들이 많이 왔다. 그곳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간단한 아침 식사를 제공했다. 그들과 함께 아침을 먹으면서 시국담을 들으면 많은 참고가 되곤 했다. 어느 날 저녁 주요 일간지의 원로 정치부 기자를 만나 얘기를 들었다. 그는 나의 입장을 눈치채고 이런 말을 해주었다.
 
  “박철언씨가 안기부 내에 만든 TF팀이 노태우가 대통령 후보 되면서 전국 조직이 된 걸로 압니다. 그중 월계수회를 보면 정치권에 줄을 대려는 바람난 교수들, 권력욕을 가진 지방 유지(有志)들, 그리고 돈 냄새 나는 허영심에 들뜬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지금 박철언이 월계수회를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실현하는 기반으로 삼고 있는데, 글쎄요. 이제 김영삼의 직격탄을 맞지 않겠어요? 노태우 대통령의 측근 노릇을 하면서 정치기술로 권력을 잡으려고 하는 건 길게 가거나 성공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기자 입장에서 말한다면 이제는 외형적·형식적 민주화를 넘어서 실질적인 정치 민주화가 되어야겠지요. 개발독재 시대 정치논리의 틀에 매여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여소야대 국회가 됐습니다. 개혁의 핵심사항은 모두 법률로 제정되어야 하는데 그게 될 리가 없죠. 대통령이 단임제인데 임기 초에 국정을 파악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조금만 지나면 권력의 누수현상이 벌어지고 하는데 뭘 할 수 있을까요? 한 번 하고 마는 대통령이 리더십을 가지기도 힘들고 말이죠. 그래서 정계개편을 하려고 시도하는 거겠죠.
 
  앞으로 싸움들이 볼 만할 겁니다. 지금 정권 내부에서 내각제를 검토하는 모양인데 그 제도는 정당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 있고 직업공무원 제도가 확립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게 되겠어요? 밥과 술을 얻어먹었으니 그럴듯한 총론적 정책 의견 한마디는 해야겠네. 아직은 국민들이 내 손으로 뽑는 대통령을 원하니까 내각제 개헌 시도는 좀 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당시 내가 있는 법률팀은 내각제를 연구하기도 했다. 나는 여러 정치부 기자나 국회의원을 만나 정치 분야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늘리고 있었다.
 
 
  경찰의 인사 비리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청사. 사진=뉴시스
  출근하면 책상 위에는 지난 밤 만들어진 분야별 정보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나는 조직원이라기보다는 반(半)독립적으로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었다. 변호사로서 잡지에 고정 칼럼도 쓰고, 시사 잡지에 기고를 하기도 했다. 북한법을 검토하고 책을 쓰기도 하고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서울 시내의 경찰서장을 마치고 경찰청에서 총경으로 근무하는 친구를 만났다. 사법고시 출신이었다. 만난 자리에서 그는 경찰의 인사부패를 내게 말했다. 간부들의 진급과 보직을 경찰의 고위직 세 사람이 독점하고 뒤로 뇌물이 오간다는 것이다. 그런 경찰 인사의 부패는 성실히 일하는 수많은 경찰관을 절망하게 한다는 하소연이었다. 그리고 그런 경찰 인사의 부패 정보는 절대로 대통령에게 들어가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청와대의 치안담당비서관이 그런 정보를 중간에서 차단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귀담아들어 둘 필요가 있는 내용이었다. 경찰에 들어간 고시 출신인 대학 동기가 아직 총경으로 진급하지 못하고 오지의 경찰서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문득 전에 만난 경찰서 보안과장을 하던 고시 동기의 모습이 떠올랐다. 행정고시와 사법고시 양과(兩科)에 합격한 그는 경찰로 들어갔다. 무쇠난로 위 노란 주전자에서 하얀 김이 피어오르던 그 옆 의자에 구겨진 전투복을 입은 그가 지친 듯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전투복 깃에는 하얀 무궁화 3개를 수놓은 계급장이 붙어 있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경찰이라는 게 이거 참 묘한 기관이에요. 지금 내 밑의 부하 수십명이 유흥업소를 단속한다고 돌아다니고 있어요. 그런데 부하라고 해도 모두 어디 가서 뭘 하는지 내가 이렇게 앉아서 뭘 알겠어요? 상관하고 부하라고 하지만 진짜 명령하고 복종하는 관계인지 아니면 경찰관마다 각자 개인사업을 하는 건지 나는 잘 모르겠어요. 그러다가 어떤 놈 하나가 사고를 내면 상관이라고 멋모르고 앉아 있는 나는 당장에 보직이 날아가는 거죠. 책임자인 나는 불쌍한 존재입니다.”
 
 
  “업소 등쳐 먹고 사는 게 경찰 같다”
 
  그는 경찰 간부가 된 걸 후회하는 표정이었다.
 
  “좋은 점도 말해봐요.”
 
  내가 방향을 바꾸어 물었다.
 
  “이 경찰서라는 게 사람들만 바글거리지 예산은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 관내(管內) 유지나 업소들을 등쳐 먹고 사는 게 경찰인 거 같아. 관내 유지들한테 밥은 잘 얻어먹어요. 그 외 장점이라는 게 뭐가 있을까?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가끔 내 위의 서장이 참모들 데리고 나가서 회식을 하는데 잔이 순차적으로 돌다가도 내 차례만 오면 뛰어넘는다니까. 한마디로 내가 싫다는 노골적인 표현이지. 그렇게 나만 따돌림당하고 있어.
 
  왜냐? 보안과장이라는 내 직책이 관내 각 파출소장의 인사를 담당하고 있어. 파출소장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돈이 잘 걷히는 업소가 많은 곳의 소장을 하고 싶어 해요. 그래서 업소나 유지로부터 걷은 돈을 서장(署長)에게 상납하고 좋은 자리의 파출소장을 하려고 하죠. 내가 와서 그걸 인사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하려고 하니까 서장이 싫어하는 거죠. 지난번 추석에도 파출소장 한명이 찾아와 나한테 돈봉투를 내놓더라고요. 같은 경찰끼리도 다 돈으로 움직이는 것 같아. 여기 와서 보니까 계급이 아니라 자기네 인맥을 통해 서로 끼리끼리예요. 순경도 자기 라인으로 통하는 상사들이 있어요. 순경 하나를 징계하려고 해도 거의 불가능해요. 그 친구한테 상납을 받고 끈끈하게 얽혀 있는 간부들이 그물같이 연결되어 있으니까 말이야.”
 
  그의 얼굴에선 경찰에 대한 애정도 의욕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가 이런 말을 덧붙였다.
 
 
  뇌물·청탁 난무하는 경찰 조직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했던 치안본부 특수수사대 건물. 현재 이곳에는 청소년 문화시설이 들어서 있다. 사진=조선DB
  “얼마 전 집안에서 누가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어요. 내가 경찰 간부라고 바로 연락이 와서 담당 형사를 찾아갔죠. 그 형사는 이파리가 3개고 나는 한참 높은 무궁화가 3개 아닙니까? 군대로 치면 비교가 안 되는 계급 차이죠. 그런데 그 형사가 나보고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나중에 상관이 되면 그때는 복종하겠지만 지금은 봐줄 수 없다는 거예요. 원 더러워서.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내가 친척에게 받은 돈 20만원을 뇌물로 건네줬다니까. 그러니까 고마워하는 게 아니라 이 ××가 날 완전히 의심해버리더라니까. 내가 돈을 많이 받고 나서 자기는 조금밖에 안 주는 걸로요.
 
  이 경찰이라는 게 겉으로만 조직이지 내부는 다 개인 사무실이고 개인 회사예요. 앞으로 경찰에 부탁할 일이 있으면 절대로 경찰 간부에게 하지 말고 직접 담당 형사에게 돈을 먹이라니까. 그 외에는 방법이 없어요. 형사는 형사대로 과장은 과장대로 서장은 서장대로 각자 자기 의뢰인 청탁을 받고 그 대가를 받아요. 책임도 각자 지고요. 여기 내 밑에 순경으로 있어도 퇴근하고 나가면 다들 관내 업소의 사장들이야. 아내를 시켜서 유흥업소나 식당을 하는 경우가 많지.
 
  나는 국회의원을 하려고 잠정적으로 이 조직에서 참고 있는 거예요. 서울로 올라가 4대문 안의 경찰서장 한 번 하고 바로 출마할 거예요. 경찰서장을 해야 정치인하고 연결돼 공천줄을 잡을 수 있으니까. 그때까지만 참을 겁니다.”
 
 
  대통령이 문서 유출
 
  경찰 인사의 부패상은 대통령에게 알릴 만했다. 나는 내가 들은 말을 여과 없이 그대로 대통령 책상 위에 올리는 보고서(이른바 ‘특상보고서’)로 썼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제보자의 이름은 적지 않았다.
 
  사흘 후 내게 말을 해준 경찰 총경한테서 전화가 왔다. 자기가 한 말이 그대로 담긴 보고서를 경찰청장이 가지고 와서 그 글 속의 경찰 총경이 누군지 색출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경찰청장은 전 조직을 동원해서 지금의 경찰 인사가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대응자료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의 목소리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자신의 경찰 인생은 여기서 끝이 난 것 같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대통령에게 올린 보고서가 통째로 현 경찰청장에게 넘어간 게 틀림없었다. 그 보고서는 극소수 사람만 볼 수 있었다. 보안사고였다. 보고서 유출경위에 대해 조사를 의뢰했다. 얼마 후 조사 결과가 나왔다. 범인은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내가 쓴 보고서를 읽고 고교 후배인 경찰청장에게 주면서 앞으로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다는 것이다.
 
  경찰청장이 대통령과 끈끈한 관계임을 체크하지 못했던 것이다. 자칫하면 제보자의 앞날을 망칠 뻔했다. 다행히 내게 말해준 경찰 간부인 친구들은 후에 경찰청장이 되고 국회의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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