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陰地의 戰士들

엄상익 변호사가 경험한 정보기관 〈13〉 연방제 통일까지 검토한 박철언의 안기부 특수조직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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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 박철언에게 허리 굽힌 안기부와 정부 인사들
⊙ 청와대 여직원까지도 빈틈 없이 챙긴 박철언
⊙ 박철언이 참석한 연회에서 본 진풍경
⊙ “박철언! 대통령!” 연발한 안기부 직원들
⊙ 서예가가 안기부에서 근무한 까닭

嚴相益
1954년생. 경기고, 고려대 법대 졸업 / 사법고시 24회, 사법연수원 15기 수료 / 前 국가안전기획부 정책연구관, 법무법인 ‘정현’ 변호사. 現 엄상익법률사무소 변호사
노태우 정권의 실세로 불린 박철언 전 정무장관. 사진=조선DB
  1989년 즈음 안전기획부에는, 그 안에서도 베일에 싸인 특수한 조직이 있었다. 직접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지시받는 조직이었다. 안기부 내에서도 그 특수부서에 대한 호기심이 대단했다. 한 정보관은 나에게 그 특수부서가 만들어진 배경을 이렇게 알려주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법조의 엘리트들을 청와대로 끌어들였어요. ‘5공의 기획자’라는 평이 있는 군(軍) 출신 허화평이 거의 모든 권한을 쥐고 정국을 운영할 때였죠. 전두환 대통령의 용병술입니다. 논리적이고 명석한 법조 엘리트팀이 점차 대통령의 신임을 얻고 검사 출신 박철언이 두각을 나타냈죠. 전두환 대통령은 박철언 팀에게 법률뿐 아니라 대북(對北) 비밀접촉과 북방정책까지 맡겼습니다. 그런 일들을 비밀리에 수행하기 위해서는 보안이 유지되는 곳에서 임무를 수행할 조직이 필요했죠. 그래서 안전기획부 내에 특수조직을 만들어 숨겨둔 겁니다. 영리한 박철언은 그곳에서 전두환 이후의 노태우 시대를 준비했고 성공시켰죠.”
 
 
  ‘실세’ 박철언의 등장
 
  노태우 대통령의 처 고종사촌 동생인 박철언은 5공 정권에 이어 6공 정권에서도 실세로 부상했다. 정보관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노태우 정권이 탄생하자 그의 친인척인 박철언은 위세가 대단했죠. 그의 특수조직은 대통령의 두뇌 역할을 했어요. 그 조직은 안기부를 비롯해서 외무부, 상공부, 경제기획원, 법제처, 통일부 등 정부 각 부처에서 엘리트 공무원들을 차출해서 정책연구관이라는 직책으로 근무시키고 있어요. 인원의 반은 청와대에서 근무하게 하고 나머지 반은 안전기획부 내 특수조직에 숨겨두고 있죠. 그 외곽 조직으로 북방문제 연구소와 정치조직인 ‘월계수회’가 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박철언을 청와대 정책보좌관에 이어 정무장관에까지 기용해 그에게 정치 수업을 시키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은 박철언의 특수조직을 그대로 유지하라는 특명(特命)도 내렸답니다.”
 
  나는 그에게 “박철언씨가 정무장관이 되고 차기 대권(大權) 후보로 커가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 그 특수조직은 누가 관리하고 있는가” 물었다.
 
  “박철언 장관과 친구인 고위직 검사가 후임으로 와서 그 조직을 대리해 관리하고 있는데 기존 조직이 워낙 단단해서 장악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기존 조직원들은 모두 박철언 장관의 지시를 직접 받고 충성하고 있으니까요.”
 

  그 무렵 어느 날이었다. 중견 검사인 고교 선배가 나를 보자고 했다. 독일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검찰의 요직인 법무부 검찰국에 있는 엘리트 검사였다. 그가 안전기획부에 파견 나와 있다고 했다. 안전기획부장실 바로 위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그가 반가워하면서 말했다.
 
  “배명인 법무장관이 안전기획부장으로 오면서 나보고 같이 가자고 하시는 거야. 그래서 따라왔는데 얼마 되지 않아 그만두셨어. 성품이 원만한 분이라 야당 지도자들을 만나셨는데 그게 윗분의 심기(心氣)를 건드렸는지도 몰라. 그래서 내가 지금은 박철언 장관의 특수조직 실장으로 왔어. 내가 독일에 있을 때 북방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박철언 장관이 온 적이 있었지. 그때 함께 다니면서 통역도 하고 가까워졌는데 그런 인연으로 온 거야. 엄 변호사, 이 조직에 한번 와보지 않을래? 재미있을 거야. 하겠다면 내가 명령을 내도록 할게.”
 
 
  서예가가 안기부에 근무했던 까닭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 특수부서의 법률정책 연구관으로 명령이 났다. 나의 사무실은 안전기획부장 집무실 바로 위층에 있는 방이었다. 바닥에는 두툼한 연두색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안전기획부장실에 소음이 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 깔았다고 한다. 그 층 전체가 박철언 장관의 특수부서가 사용하는 사무실들이었다. 정부 각 부처에서 차출된 엘리트 공무원들이 정책연구관이라는 이름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나는 여러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인사했다. 그중 국전(國展) 수상 경력이 있는 서예가가 있었다. 붓글씨를 쓰는 사람이 왜 그곳에 있는지 의문이었다. 그걸 눈치챈 듯 그가 이렇게 자신을 설명했다.
 
  “나는 조선 시대 왕이 내리는 교지(敎旨)를 쓰는 사관(史官) 같은 역할을 해요. 여기서 6·29선언이 만들어졌는데 대통령에게 올리는 그 글을 내가 마지막에 붓글씨로 썼어요. 여기서 만들어지는 정책 의견들은 모두 내가 마지막에 직접 붓글씨로 써서 대통령에게 올리죠.”
 
 
  ‘사람 사로잡는’ 능력이 있는 박철언
 
박철언 전 장관은 노태우 정권 당시 대북 밀사 역할도 했다. 사진은 1991년 12월 13일 남북합의서 채택 직후, 청와대로 노태우 대통령을 예방한 양측 대표단 및 수행원들이 기념사진 촬영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는 장면. 사진=조선DB
  박철언이라는 인물의 치밀성을 보는 것 같았다. 그 부서의 실질적 지휘자는 박철언 장관인 것 같았다. 언론에서는 그를 집중적으로 주목하는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박철언이라는 인물은 이미 청와대와 안기부, 그리고 월계수회라는 정치조직을 장악하고 대통령을 뒷받침하는 거물(巨物)이었다. 언론은 정권의 ‘황태자’ 박철언이 공천권까지 장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는 어떤 인물일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박철언 장관의 청와대 근무 시절, 청와대에서 서기관으로 근무하던 고교 동기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박철언이란 인물은 사람들을 사로잡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일례로 서기관인 그가 휴가 가는 날, 다른 부서의 상급자인 박철언 정책보좌관이 그를 직접 찾아와 돈이 든 봉투를 준 적이 있다고 했다. 청와대 내에서 부서가 다르고 아랫사람인데도 그렇게 챙겨주는데 마음이 뭉클했다고 했다. 박철언은 청와대 여직원들까지 빈틈없이 챙겨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치밀한 성격이라고 했다.
 
  내가 근무하게 된 특수부서의 구석방에는 옛날에 쓰던 옆의 손잡이를 돌려서 통화를 하는 검은색 자석전화기가 있었다. 남북 비밀회담을 수행하기 위해 북측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전화라고 했다. 남북 간 어떤 오해가 발생했을 때 즉각 문제를 해결하는 통로라고도 했다. 당직 설 때 북측에서 전화가 오면 받아서 그 내용을 메모했다가 전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특수부서의 한 사무실에는 북한과의 비밀회담을 전담하는 김용환 정책연구관이 있었다. 통일부 공무원으로 있다가 차출되어 특수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대머리에 후리후리한 마음이 좋아 보이는 인상의 남자였다.
 
  그는 이따금씩 정책연구관들의 사무실 문을 열고 “출장 갔다 왔습니다” 하고 인사하고 평양에서 가져온 선물들을 나누어 주었다. 북한의 룡성맥주, 묘향산의 생수, 평양의 반찬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오이소박이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가 북에 갔다 오는 날이면 특수부서 연구관들이 모여 간단한 다과회를 열어 대북 접촉과 관련된 생생한 얘기들을 들었다. 그런 날이면 빈 사무실의 탁자 위에는 북한산 뱀술, 과자, 사과, 잣 등이 준비되고 술안주로 하기 위해 장충동 족발집에서 따로 족발을 사 오기도 했다.
 
 
  북한을 다녀온 안기부 연구관의 고백
 
1972년 비밀리에 북한을 방문한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 김일성. 이후락씨의 생전 증언에 따르면, 김일성은 이후락에게 독한 술을 대접하며 판단을 흐리게 했다고 한다. 사진=조선DB
  소주잔에 부어진 북한산 뱀술은 노란빛이 감돌았다. 그걸 한잔 입에 털어 넣으면서 김용환 연구관이 북한에 갔다 온 감상을 이렇게 말했다.
 
  “북쪽 사람들은 먼저 술로 우리를 제압하려고 들어요. 그걸 받아 마시면 어찌나 독한지 정신을 차리려고 애써도 소용이 없어. 그래서 술에 취하지 않는 약을 개발해달라고 연구소에 부탁했었죠. 그 약을 담은 캡슐을 휴대하고 가서 술 마실 때면 먼저 먹었는데 별 효과가 없어요. 오히려 구역질만 나요.”
 
  김정일의 폭탄주 공세도 대단하다고 했다.
 
  “어떻게 평양으로 갔다 옵니까?”
 
  연구관 중의 한 사람이 물었다.
 
  “승용차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통일각으로 가요. 거기 주차장에서 북측이 대기시킨 벤츠를 타고 개성으로 가서 기차를 타고 평양의 룡성역에 갑니다. 평양의 서재골 초대소에서 묵으면서 허담, 한시해 등과 회담을 하죠. 지금까지 벌써 서른 번 넘게 북한을 다녀왔어요.”
 
  “우리가 기획하고 있는 대북정책의 핵심이 뭡니까?”
 
  파티에 참석한 정치 파트의 연구관이 물었다.
 
  “남북문제는 솔직히 지금까지는 국내 정치를 풀기 위해 이용한 면이 많았죠. 외교정책도 그래요. 여태까지는 북을 고립시키기 위한 외교였죠. 또 서방세계하고만 놀던 반쪽짜리 외교였죠. 그런데 북한을 다녀보니까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북한도 방대한 영토 안에서 많은 주민을 통치합니다. 남북이 유엔에도 가입했고, 국제적으로도 많은 나라가 북을 국가로 인정하잖아요? 북은 북대로 남은 남대로 공존하면서 평화롭게 지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하려면 지금까지 하던 정치적 쇼나 공허한 사상전이 아닌 진정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수적인 조직에서 벌어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움직임
 
1998년 10월 30일 정주영(왼쪽에서 두 번째) 현대 명예회장의 숙소인 백화원 초대소를 방문한 김정일이 정몽헌(정주영의 다섯 번째 아들) 현대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맨 오른쪽은 정주영 회장의 매제인 김영주 한국프랜지 회장이다. 사진=조선DB
  내가 “진정한 접근이 뭐냐”고 물었더니, 그 연구관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박철언 장관의 북방정책을 보좌하고 있습니다. ‘다뉴브강의 물결’이란 작전명으로 헝가리부터 시작해서 소련까지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그 목적이 뭐겠습니까? 결국 북한을 개방시켜 같은 민족끼리 같이 잘살자는 겁니다. 거기서 저는 확고하게 느낀 게 있습니다. 남북이 각자 현 체제를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동등한 대표성을 가진 과도기구를 만들어 연방제 통일을 실현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북한의 연방제 방안의 골격을 수용하고 군사문제도 북한의 의견을 감안해야 합니다. 김일성 주석도 남한이 그렇게 해준다면 얼마든지 정상회담을 할 용의가 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반공(反共)교육에 세뇌되어 성장한 나는 혼란스러웠다. 보수적인 조직에서 이뤄지고 있는 상상을 초월한 전향적인 움직임에 놀란 것이다. 그 말에 경제 파트 연구관이 물었다.
 
  “그런 목적을 위해 우리가 구체적으로 뭘 추진해야 하죠?”
 
  “교류를 추진해야죠. 현대의 정주영 회장은 금강산에 관광특구를 만들어 속초에서 금강산으로 갈 수 있게 하고 철원에서 내금강과 외금강을 연결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하고 있어요. 북한 통천에 자동차부속품 공장도 구상하고 있죠. 정부에서 허락만 해주면 현대에서 시베리아 개발도 하겠다고 합니다.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도 합작투자를 위해 북한과 헝가리를 다녀왔어요. 그 외에 비무장지대 안에 평화시(平和市)를 만들어 그 안에 남북한 이산가족이 편하게 만날 수 있는 호텔도 짓고 거기서 학술을 교류하기도 하고 상품도 교역하고 그런 방안들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남북이 서로 신뢰하면 남북연합과 단일 민족 국가의 성립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데 공감했습니다. 문제는 주변 강대국이에요. 미국의 허락을 얻지 못하면 우리는 한 발자국도 나아가기가 힘들어요. 중국도 한반도의 통일을 싫어하고. 반공의식에 젖은 경직된 국민 여론도 문제고. 박철언 장관님이 공산국가를 저돌적으로 뚫고 들어가는 건 대단한 겁니다.”
 
  나의 고정관념과 편견이 깨지고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는 순간이었다.
 
 
  공무원 사회에 돌던 ‘3579’라는 말의 의미
 
  그 특수부서의 팩스에서는 매일 독특한 정보가 올라오고 있었다. 백담사에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하루를 보내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언론은 박철언이 전 대통령을 귀양 보낸 주인공이라고 보도하고 있었다. 나는 그 특수부서의 정치팀에서 일하는 정책연구관에게 그런 배경들을 물어보았다. 그가 이렇게 설명해주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사실상 정권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했죠. 자기가 상왕(上王)으로 있으면서 자기 뜻을 받들 수 있는 인물로 장세동, 노신영, 그리고 노태우 세 사람을 생각했어요. 노태우의 인내심은 대단했죠. 인간적으로 전두환 측근들로부터 무시를 당하면서도 잘 견뎌냈죠. 정호용이나 김복동이 왜 대권 주자가 되지 못했는지 압니까? 참지 못하고 성질을 드러내고 화를 냈기 때문이에요.”
 
  정책연구관은 “당시 상황으로는 전두환이 계속 집권하고 싶었고 연기자로 노태우를 내세웠다”는 식의 주장을 펼쳤다.
 
  내가 “1노3김이 붙은 1987년 대선 때 엄청난 선거자금을 쓴 걸로 알고 있다”고 떠보듯이 물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국회의원 선거만 해도 수십억원이 드는데 대통령직선제하에서의 선거는 수천억원이 드는 겁니다. 그런 돈을 뿌린다고 해도 그게 제대로 쓰일지 의문이었어요. 지역별 선거책임자인 국회의원이나 지구당위원장이 그 돈을 중간에서 먹거나 자기를 위해 쓸 가능성이 많은 거죠. 정권 말 권력의 누수 현상도 있고 말이죠. 6·29선언을 고뇌에 찬 민주화 결단이라고 했지만 그건 사실 이벤트성(性)으로 한 말이고 우리는 기가 막혔던 거죠. 그런데 엉뚱하게 노태우 후보에게 기회가 온 겁니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야권통합을 하지 않고 서로 물어뜯고 싸운 겁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김영삼은 김대중을 매도하고 김대중은 지역감정을 최대한 부추기면서 호남에서 김영삼의 득표를 방해했죠. 그때 공무원 사회에 ‘3579’라는 말이 돌았죠. 김대중이 잡으면 3급까지, 김영삼이 잡으면 5급까지, 김종필이 잡으면 7급까지 공무원들이 숙청될 거라는 내용이었죠. 야당 출신이 대통령이 되면 도와준 사람들에게 한자리 줘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공무원들을 다 내보내야 한다는 거죠. 전체 공무원 사이에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실업자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돌고 그게 그들이 집권여당을 위해 뛰게 한 면이 있어요. 김대중 후보가 그걸 눈치채고 공무원들의 자리를 보장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호남 출신 공무원을 빼고는 사람들이 그 말을 믿지 않았죠. 우리는 물고 뜯는 김대중과 김영삼 사이를 파고든 겁니다. 그 결과 36%의 지지율로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이 된 거죠. 천운(天運)이라고 할까, 어부지리라고 할까. 그런 면이 있었어요.”
 
 
  “다른 분이 대통령 됐다면 우린 감옥에 갔을 것”
 
  정책연구관은 “노태우 대통령 당선은 절대 저절로 된 게 아니다. 그 뒤에는 치밀하게 선거판을 컨트롤한 박철언 장관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설명이다.
 
  “박철언 장관님은 앞을 내다보시고 미리미리 전국적인 선거조직을 만들었어요. 우리 부서를 핵(核)으로 삼아 전국에 204개 거점을 만들고 거점별로 30명에서 200명까지 회원을 만들었어요. 그 사람들을 주말이면 모이게 해서 1박 2일의 MT를 하는 ‘노태우 스쿨’을 만들었죠. 매번 40명 정도가 노태우 후보 집에서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유대를 강화해나갔죠. 그게 ‘월계수회’입니다. 우리 정치팀은 정세분석, 전략수립, 홍보 및 선전전략, 보통사람의 시대라는 이미지메이킹 작업을 했어요.
 

  월계수회에서 여러 명이 국회에 입성했죠. 우리 부서의 강재섭 실장은 전국구 의원이 되셨고요. 박철언 계열만 이미 30명이 넘습니다. 우리 팀들이 청와대의 비서실을 장악했어요. 우리는 계속 대북비밀접촉과 국내 정치나 당면 주요 현안을 담당하면서 지금부터 ‘포스트 노태우’를 준비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내가 “안기부가 정치에 개입하는 꼴인데…” 하고 말하자, 그는 더 힘주어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현 정치 상황을 보면 (안기부의 정치 개입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1988년 4·26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되고 김영삼이 ‘5공 청산’을 들고나왔습니다. 소수로 전락한 여당은 야당의 주장을 받아들여 5공 청산 청문회가 열리는 걸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우리 정치팀은 여소야대의 상황을 타개할 정계 개편을 검토하고 있어요. 정책연합을 할 것인지 정당통합을 할 것인지 연립정권의 가능성을 분석하고 그 이론적 근거와 명분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김대중당이 이해관계의 방향은 달라도 내부적으로는 상당 부분 공감할 겁니다. 앞으로 법률팀에서는 내각제 개헌에 대해서도 연구해주셔야 할 겁니다.”
 
  내가 있는 법률팀이 어떤 일을 하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법률팀 말단 여직원까지 강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정치 투사 같았다. 한 여직원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노태우 대통령이 아닌 다른 분이 대통령이 되었더라면 우리는 전부 감옥에 갔을 거예요. 연구관들이 전부 공무원인데 선거운동을 했으니까요. 저 같은 여직원까지 연구관님들을 따라 지방까지 내려가 조직을 독려하고 선거운동에 참여했어요. 목숨을 걸고 박철언 장관님의 명령에 따른 거죠.
 
  그런데 옆에서 보니까 강재섭 연구관님만은 달랐어요. 검사 출신인 그분은 능력이 탁월했어요. 세상에서는 박철언 장관님이 모든 일을 다 하는 것처럼 알려졌는데 사실은 강재섭 연구관님이 뒤에서 중요한 일을 다 해냈어요. 강재섭 연구관님은 박철언 장관님과는 철학이나 생각이 다른 분 같았어요. 박철언 장관님이 강재섭 연구관에게 사조직으로 만든 월계수회에 가서 강연하라고 해도 가지 않으셨어요. 강재섭 연구관님은 노태우 후보의 연설회나 여의도의 정치집회 같은 곳도 사양하셨어요. 당시 검사 신분이라 정치 개입은 단호하게 거절하신 거죠.”
 
  여직원들은 박철언 장관 못지않게 강재섭에 대한 신뢰와 존경이 큰 것 같았다.
 
 
  박철언과의 첫 대면
 
1994년 경북고등학교 총동창회에 참석한 노태우 전 대통령(앞줄 왼쪽), 박준규 국회의장(맨 오른쪽), 박철언 전 장관(뒷줄 오른쪽). 사진=조선DB
  그로부터 얼마 후 지나 북한산 자락의 한 별장에서 특수부서 단합대회가 있었다. 내게도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다. 내가 갈 자리가 아닌 것 같아 주저했다. 박철언 장관을 본 적이 없었고, 그와 공식·비공식적으로 어떤 관계도 아니었다.
 
  박철언의 사람들은 나를 경계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당연했다. 그들은 힘을 합쳐 노태우 대통령을 만들어냈다는 프라이드가 강했다. 대부분이 TK(대구·경북)라는 학연(學緣)과 지연(地緣)으로 끈끈하게 뭉쳐 있었다. 나는 그들과 어떤 연결고리도 없었다. 우연히 그들의 처마 밑에 머무르게 된 나그네에 불과했다. 굳이 따지자면 글과 서류를 만들어주는 비정규직의 머슴이라고나 할까. 그런데도 연회에 참석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북한산 자락에 있는 넓은 별장의 잔디밭을 가로지르는 도로로 월계수회 소속 의원들의 검은 승용차가 미끄러져 들어오고 있었다. 내가 있는 특수부서의 정책연구관들 차량이 연이어 들어왔다. 나는 먼저 그 장소에 도착해 구경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박철언 정치팀의 한 사람이 내게 이렇게 알려주었다.
 
  “새로 우리 조직에 들어온 검사들하고 당신을 이 행사에 참여시킬 것인지를 조직에서 고민하다가 끼워주기로 결정했어.”
 
  감사해야 할지 어떨지 어정쩡한 마음이었다. 어느 면으로는 그 조직의 네트워크에 가입했다는 것은 출세의 사다리 앞에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윽고 박철언 장관이 당도했다.
 
  “보스가 거의 다 오셨습니다.”
 
  철문으로 된 정문 쪽에서 무전기를 든 안기부 요원이 외쳤다. ‘보스’라는 단어가 특이하게 귀에 들려왔다. 월계수회 소속 국회의원들을 비롯해 외무부・상공부 등 각 부처의 중견 공무원, 그리고 안전기획부 요원들이 도로 양쪽으로 줄을 서서 기다렸다.
 
  이윽고 검은색 로얄살롱 차가 잔디밭 저쪽의 커다란 철문을 통과해 미끄러져 들어오고 있었다. 차의 뒤쪽 범퍼 양쪽 끝에 뿔같이 튀어나온 기다란 안테나가 회초리같이 허공을 날카롭게 가르며 흔들렸다. 차량 뒤쪽의 긴 안테나는 그 무렵 특권의 상징이기도 했다. 도열해 있던 국회의원 중 맨 앞에 있던 사람이 허리를 깊숙이 굽혀 인사한 후 공손하게 로얄살롱의 문을 열었다.
 
 
  야쿠자들의 근엄한 의식 같았던 연회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등을 꼿꼿하게 편 보스 박철언 장관의 옆모습이 보였다. 근엄한 기운이 주변에 서려 있는 것 같았다. 얼핏 차 안이 들여다보였다. 그의 자리 앞 콘솔박스 위에는 일간신문들이 정리되어 놓여 있었다.
 
  그가 차에서 천천히 내리자 도열해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 박철언 장관이 천천히 식장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사람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연회장 안에는 또 다른 조직원들이 줄을 서 있었다. 박철언 장관이 들어와 그곳에 서 있는 조직원 한 명 한 명과 포옹을 했다. 그들을 안아주면서 귓속말로 다정하게 한마디씩 속삭이는 모습이었다. 포옹을 한 하급 조직원이 감격한 표정으로 옆 사람에게 하는 말이 들려왔다.
 
  “보스가 지난번 선거에서 내가 행동대원으로 충성한 걸 다 알고 계셔. 다음번 대통령이 되면 아마 나를 잊지 않으실 거야.”
 
  그다음은 술잔을 돌리는 의식이었다. 넓은 연회장의 벽을 따라 긴 탁자들이 장방형으로 놓여 있고 그 뒤에 조직원들이 서 있었다. 탁자 앞에는 빈 잔들이 놓여 있었다. 일본 야쿠자들의 근엄한 의식 이상으로 성대했다. 보스 박철언이 술병을 들고 한 사람 한 사람씩 술을 따라주기 시작했다. 술을 받는 사람은 허리를 굽히고 황공해하는 모습이었다. 모두들 그 기회에 보스의 눈도장을 받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옆에 있던 정치팀 연구관이 내게 조용히 귓속말로 속삭였다.
 
  “보스가 술을 따라줄 때 고개를 깊이 숙이고 황송한 자세를 취해. 그리고 충성하겠다는 뭔가를 한마디 해. 아주 중요한 자리야.”
 
  나는 그곳의 이방인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밖으로 나가 그 자리를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어느새 보스 박철언 장관이 술병을 들고 내 앞에 섰다. 그가 소리 없이 처음 보는 나를 살피고 있는 것 같았다. 나 역시 그를 처음으로 보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냥 덤덤하게 술을 받았다. 순간 그가 멈칫하는 표정이었다. 뭔가 다른 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그가 날카로운 의혹의 눈빛으로 순간 나를 다시 관찰하는 것 같았다.
 
 
  “박철언! 박철언! 대통령! 대통령!”
 
  잠시 후 그가 내 옆의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갔다. 그런 의식이 끝난 후 잔치가 벌어졌다. 기다리고 있던 밴드의 연주 소리가 높아지고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공중에서 부딪치고 들끓었다. 그러나 그건 외형적인 모습일 뿐이었다. 거기 앉아 있는 사람들의 신경이 모두 중앙에 앉아 있는 보스에게만 쏠려 있었다. 한 사람이 튀어나와 마이크를 잡고 소리쳤다.
 
  “여러 동지들, 우리는 노태우 대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위대한 사업을 성공시켰습니다. 거기에 만족하고 이렇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또 뛰어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 계시는 박철언 장관님을 대한민국 최고의 영도자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걸 위하여 우리 모두 건배합시다.”
 
  그가 잔을 높이 쳐들었다. 그는 서울 법대를 졸업하고 안전기획부에서 중견간부로 있는 사람이었다.
 
  “위하여!”
 
  그가 선창했다.
 
  “위하여!”
 
  모인 사람들의 함성이 연회장 공중에서 회오리쳤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함께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박철언! 박철언! 대통령! 대통령!”
 
  나는 조용히 행사장 밖으로 나왔다. 그곳에는 그 조직을 대리해 관리하기로 하고 온 박 장관의 친구가 씁쓸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박철언 장관과 대학 시절 같이 공부했고, 검사 생활도 같이했다는 친구였다.
 
  그 무렵 벌써 차기 대권을 둘러싸고 3당 합당과 거대 여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이라는 시대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박철언이라는 연(鳶)이 시대의 바람을 타고 높이 솟아오를지 어떨지 궁금했다. 아이로니컬하게 바람이 불어도 연은 떠오르지 못했다. 대통령을 꿈꾸던 보스 박철언은 추락해서 감옥으로 간다. 연회장 밖에 외롭게 서 있던 친구는 훗날 김영삼 정부에서 민정수석이 되고 장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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